지난 금요일인 2월 27일 부터 이태원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에르 위그 리미널' 관람후기 입니다.
이번 전시회는 아시아 최초로 열리는 전시회로 저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작가이자 호기심이 생기지만 상당히 난해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전시회라는 생각입니다. 미술 무지랭이에게는...
| 피에르 위그 개인전 - 리미널
블랙박스, 그라운드갤러리 / 2025.02.27. – 2025.07.06.
리움미술관은 현대미술의 고정된 형식을 깨고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탐구해 온 세계적 작가 피에르 위그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리미널》을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는 피노 컬렉션(Pinault Collection)의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와 공동 제작한 작품을 포함하여 피에르 위그의 지난 10여 년의 예술적 탐구를 새롭게 조명합니다.
장소는 지상 1층과 지하 1층으로 구성된 그라운드 갤러리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전시회 티켓팅 및 가격
현재 리움미술관에서는 두 개의 전시회가 각각 열리고 있는데요. 두 전시회 모두 유료 전시회지만 주말 전시는 몇일 전부터 매진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피에르 위그 리미널 전시회 티켓 가격은 16,000원 입니다. 또한 리움 현대미술관 소장품전 티켓 가격은 12,000원 인데요. 두 전시회 통합권 가격은 20,000원 으로 정가 대비 8,000원이 저렴합니다.
바보 같이 한 전시회 티켓만 구입하지 마시고 통합권 구매하세요. (전시장 입구에서 후회하시는 분 몇 몇 봤습니다.
|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1962년 9월 11일 (62세), 프랑스 파리출신인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는 프랑스 현대 예술가로 영화와 조각에서부터 공공 개입과 생활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는 파리와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만 한국에는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닙니다.
작가의 이름을 한글로 챗 gpt에 입력하니 아래와 같이 답변해 주세요. 아마도 학습할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는 것 같네요. (아마 다음에 입력하면 이미 학습이 완료되어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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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고정된 형식을 깨고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탐구해 온 세계적 작가 피에르 위그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리미널》을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는 피노 컬렉션의 푼타 델라 도가나와 공동 제작한 작품을 포함하여 피에르 위그의 지난 10여 년의 예술적 탐구를 새롭게 조명합니다.
이번 전시 제목 ‘리미널’은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전시 《리미널》은 불가능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전시에서 새로운 주체성은 어떻게 탄생될 수 있는가,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 의존성을 어떤 방법으로 인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됩니다. 전시는 신작 <리미널>, <카마타>, <이디엄>을 포함하여 총 12점의 작품으로 구성됩니다. 이 작품들은 실시간 데이터를 활용한 프로그램과 생명공학을 결합하며,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 관계가 생성하는 감각적이고 시적인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 도슨트 X, 오디오가이드 X
피에르 위그 '리미널 (Liminal)' 전시회는 별도 도슨트나, 오디오 가이드도 지원되지 않습니다. 리움 전시회에서 오디오 가이드 없는 전시회가 있었는지 기억이...
그렇지만 개인 스마트폰으로 아래 QR 코드를 인식하면 자세한 설명을 사진과 택스트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전시장 1층
블랙박스, 그라운드갤러리 1층은 상당히 어둡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해당 공간이 보통 어두운 조명에서 작품 전시가 진행되는 곳이기는 한데요. 이번에는 거의 암흑세상에 가깝네요. 주의 하셔야 합니다.
| 난해하다
이번 리움 피에르 위그 개인전 '리미널 (Liminal)' 작품들은 상당히 그로테스크 하면서도 어둡고 난해한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품 설명을 보면서도 작품을 이해하기 상당히 어려운, 작품설명이 한글인데도, 없던 난독증이 생기는 상황...
최근 전시회 중에서 역대급으로 빨리 보고 나온 전시회입니다. (59분 컷)
전시장에 들어와서 보이는 첫 인상입니다. 먼저 나체로 누워 있는 여성을 먼저 만나게 되었는데요.
(사진에 모자이크 칩니다. 다음 음란물 기준이 상당히 어이없는 부분이 많아서요.)
리미널 (Liminal) / 2024 – 현재
실시간 시뮬레이션, 사운드, 센서 작가, 갤러리 샹탈 크루젤, 마리안 굿맨 갤러리, 하우저&워스, 에스더 쉬퍼, 타로 나수, 안나 레나 필름 제공
<리미널>에서 나타나는 비워진 인간 형태는 세계도, 뇌도, 얼굴도 없이, 공허에 둘러싸인 무한하고 평평한 표면을 따라 이동합니다. 이 작품은 순수하게 사변적인 인간 조건에 관한 시뮬레이션으로, 작가에게는 실험의 일종입니다.
<리미널>은 과도기적 상태, 즉 우리의 감각적 현실과 비인간적 존재 사이의 통로이며 둘 다 인간 형태를 통해 비인간과 인간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이는 전달자(passeur)이자 신탁의 형상(oracular figure)입니다. 작가는 한 인간의 형태를 보여줍니다. 인간이 아닌 이 존재는 공간이자 경계적 환경(liminal milieu)으로 제시됩니다.
예민한 막처럼 존재하는 경계적 환경은 물리적인 환경을 감지하고,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이지 않는 정보를 받는 빈 공간입니다. 이 경계적 환경으로서 인간 형태는 미묘한 몸짓을 만들어내고, 언어가 되는 이 몸짓은 비인간 존재에게 읽히며, 이는 다시 인간 형태에서 다양한 행동을 유발하고 반응합니다. 그러나 비인간 존재는 자극을 찾고, 학습하고, 그 기억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하면서 전시를 넘어, 모든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여 구성되어 갑니다.
아래 동영상을 보시면 앞으로 만나게 될 리움미술관 전시 리미널의 분위기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리미널 (Liminal) / 피에르 위그 2024 현재
비어 있고, 수수께끼 같으며, 얼굴이 없고, 속이 텅 빈, 두뇌도 세계도 없는 하나의 외피가 텅 빈 표면 위를 움직인다. 이는 무한한 공허 속에 떠 있는 하나의 막(膜)과도 같다. ㅡ 피에르 위그
주드람 4 (Zoodram 4) / 2011
수족관, 화살게, 소라게,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잠든 뮤즈>(1910)를 바탕으로 수지로 제작한 소라 껍데기 이시카와 재단 소장
<주드람 4>은 자연적 생태계를 재현한 것도 아니고 세트장도 아닙니다. 조건들이 정해져 있으나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세계입니다.
생물들은 익숙한 환경을 찾고자 하는 본능을 따라 행동합니다. 여기에 서식하는 소라게가 있습니다. 이 소라게는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și)의 알려진 조각 <잠든 뮤즈(Sleeping Muse)>(1910)의 복제품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반복되도록 의도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게와 뮤즈의 얼굴은 인간이 아닌 존재와 인간의 형상 사이 두 종의 교합을 나타낸다고 하지만 난 뭔말인지 모르겠다. 그냥어항속에서 이 작품을 보면서 설마설마 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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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스프링 (Offspring) / 2018
라이트박스, 빛, 안개, 사운드 시스템, 향 . 리움미술관 제공
<오프스프링>은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조건을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자기 생성 도구입니다. 작품의 빛은 여기서 생성된 우발적인 결과와 동기화를 시도합니다.
앞 작품인 리미널이 너무 강해서 이 작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는... * 음악: 에릭 사티(Erik Satie)의 ‘짐노페디(Gymnopédies)’ 2, 3번(1888),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편곡
이번 리움미술관 피에르 위그 개인전 '리미널 (Liminal)' 전시회에서 가장 인상깊게 만났던 작품 소개합니다.
휴먼 마스크 (Human Mask) / 2014
영상, 컬러, 사운드, 19분 피노 콜렉션, 안나 레나 필름 제공
처음에는 영상속 인물이 가면을 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몸에 털장식을 하고 다소 부자연 스러운 행동으로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작품 소개를 보는 순간 당황했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바로 피에르 위그 작품속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원숭이라는...그리고 일본 느낌의 배경과 가면...
작품 구성 이유는 이러하다.
후쿠시마 주변 핵 배제 구역을 배경으로 한 <휴먼 마스크>는 자연적, 기술적 재앙 직후 버려진 도시 위를 항해하는 드론 영상과 함께 막이 오릅니다. 버려진 식당에서 어린 소녀의 얼굴 가면을 쓴 원숭이가 자신이 배운 동작들을 인형처럼 끊임없이 반복하다가 때로는 끝없이 기다리는 듯 멈춰 서 있습니다.
이 원숭이는 지시와 본능, 우연과 필연 사이를 오갑니다. 재앙이 일어난 직후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순간, <휴먼 마스크>는 유일한 매개자인 무의식적 배우가 뒤집어 쓴 인간 존재의 잔존하는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이 영상은 우리가 모두 쓰고 있는 ‘인간’이라는 가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 블랙박스, 그라운드갤러리 지하
피에르 위그 '리미널 (Liminal)' 1층 작품감상을 마치고 지하로 한 층 내려가는데...
<U움벨트 - 안리>는 여러 상상력의 공동 제작 결과물입니다. 인간의 상상력이 비인간의 인지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언어나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것과 같은 모든 알려진 표현 방식을 우회하고, 주체가 스스로 외부가 되어 결과를 미리 결정할 수 없게 됩니다.
작품의 이미지는 실재하지 않는 인물인 안리를 상상하는 누군가의 뇌 활동을 기록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에 의해 생성됩니다. 이미지는 지속적인 최적화, 학습, 인식 과정을 사용하는 심층 신경망에 따라 재구성됩니다.
일단 전시가 시작하면, 이미지 시퀀스들은 주변 조건들과 관련된 여러 매개변수들에 의해 끊임없이 수정됩니다.
사실 이 작품은 뭐가 뭔지...
그리고 피에르 위그의 두 번째 어항작품...
캄브리아기 대폭발 16 (Cambrian Explosion 16) / 2018
수조, 투구게, 화살게, 아네모네, 모래, 바위 / 작가, 하우저&워스 제공
캄브리아기(Cambrian Period)는 약 5억 4천만 년 전부터 4억 8천만 년 전까지의 시기로, 생명체의 급격한 다양화가 일어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삼엽충, 아노말로카리스 등 다양한 해양 동물들이 등장했으며, "캄브리아기 폭발"이라는 대규모 생물 다양화가 일어났습니다. 해양 생태계가 형성되고, 동물들의 주요 분류군이 분화한 중요한 진화의 전환점입니다.
물에 떠 있는 이 바위는 중력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검은 모래 위에는 대부분의 생명체의 시작점인 5억 4천만 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 당시에 출현한 고대 종 두 종이 살고 있습니다. 이 종은 원시 상태 이후 형태가 변하지 않은 살아있는 화석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들의 본능적인 행동은 개체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지속되며 번식을 이어가면서 반복됩니다. <캄브리아기 대폭발 16>은 지속적인 시작입니다.
아래 영상 어항부분 왼쪽 모서리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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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 (S) (Mind’s Eye (S)) / 2022
재구성되어 형상화된 딥 이미지, 안리의 상상 이미지에서 만들어진 결과물 / 개인 소장
<마음의 눈>은 상상의 영역인 <U움벨트 – 안리>에서 추출된 정신적 이미지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정신적 이미지는 실제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순환하거나 주체들의 마음에서 외부화되어 물리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는, 합성적이고 생물학적인 물질의 집합체가 됩니다.
음 이번 피에르 위그 '리미널 (Liminal)' 전시회는 역대급으로 난해한 전시회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이번 리움미술관 지하 전시장 중앙에 있는 이 까만 물건은 무었인가?
처음에는 피에르 위그 작품이 아닌 무순 전기박스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가는데...
일정 빈도로 어항에 불이 들어왔다가 꺼졌다가를 반복한다. 이번 피에르 위그 전시회에서 만나보는 세번째 어항
주기적 딜레마(엘 디아 델 로호) (Circadian Dilemma (El Día del Ojo)) / 2017
수족관, 장님동굴테트라(Astyanax mexicanus, 눈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조류, 동굴을 스캔하여 떠낸 시멘트 주물, 검은 변색 유리, 위치 기반 프로그램 작가, 마리안 굿맨 갤러리, 뉴욕, 파리, 로스앤젤레스 제공
다양한 종의 테트라 물고기가 서식하는 수족관의 풍경은 멕시코 수중 동굴을 리모델링한 것입니다. 수백만 년 전 어두운 동굴에 들어온 테트라는 서서히 앞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잃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멕시코 테트라는 장님 동굴 물고기(blind cave fish)라고도 불립니다.
작품의 제목은 동물, 식물, 곰팡이, 박테리아에서 관찰되는 하루 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을 의미합니다. 동굴 물고기의 주기는 변이를 겪었고, 시각과 관련된 유전자가 퇴화되어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눈먼 동굴 물고기의 생체 시계는 이렇게 변화하여 하루 주기 리듬이 빨라지고 더 이상 지구의 24시간 자전을 따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수조 안에는 장님 테트라와 시력을 가진 테트라가 공존합니다. 따라서 두 가지 하루 주기 리듬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수조의 변색 유리는 주변 환경에 반응합니다. 유리 안에 있는 액정으로 인해 유리가 투명해질 수도, 불투명해질 수도, 심지어는 검은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리는 빛의 양, 가시성, 날씨 관련 데이터를 받는 알고리즘에 의해 색이 변합니다. 수조의 위치와 환경에 따라 유리 색이 변화하여 빛을 통과시키거나 차단하며, 유리 양쪽 면의 가시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물고기의 시력은 회복되거나 상실될 수 있습니다.
이번 리움미술관 전시회 '피에르 위그 '리미널 (Liminal)' 마지막 작품소개입니다.
카마타 (Camata) / 2024 – 현재
기계 학습으로 구동되는 로보틱스, 자기생성 영상, 실시간 인공지능 편집, 사운드, 센서 작가, 갤러리 샹탈 크루젤, 마리안 굿맨 갤러리, 하우저&워스, 에스더 쉬퍼, 타로 나수, 안나 레나 필름 제공
기계의 집합체가 아타카마 사막에서 무덤 없이 발견된 인간 해골에 대해 알 수 없는 의식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건조한 사막으로, 천문학자들이 외계 행성, 즉 태양계 밖에 존재하는 행성을 연구하는 시험장이기도 합니다. 이 의식은 결코 끝나지 않는 장례 의식이자, 작업 극장이며, 특정한 주체성의 학습과 형성 과정처럼 보입니다.
영상은 선형성도, 시작도, 끝도 없이 영구적으로 자신의 편집을 수행하는 자기 제시입니다. 금색 구 안의 센서가 지속적으로 출력되는 이미지를 수정합니다. 이 수수께끼 같은 의식이 관람자 앞에서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동안, 관람자는 서로 다른 현실들 사이의 거래, 신체 없는 존재에서 생명 없는 인간의 신체로의 전환을 목격합니다.
여기까지가 2025년 리움미술관 첫 전시회인 피에르 위그 '리미널 (Liminal)' 개인전 후기였습니다.
강아지와 함께 강원도 여행중에 1박 2일 숙박했던 강릉 세인트존스 호텔 조식 이용후기 입니다.
조식 뷔페 가격 및 강아지 동반 가능여부, 그리고 너무나도 길었던 웨이팅 이야기...
| 세인트 존스 호텔 조식 가격 및 시간
조식 시각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데요. 1부는 6시 30분 부터 8시30분까지, 2부는 8시 30분 부터 10시 30분까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세인트존스호텔 조식 가격은 성인 기준 40,000원 이고요. 체크인시 선구매할 경우 1부는 32,000원 2부는 36,000원 입니다. 소인은 24,000원, 유아는 무료
강릉 세인트존스 호텔 런치와 석식 시간 및 가격은 아래 내용 참고 하세요.
쓰리밀즈 (Three Meals)
강릉 세인트존스 호텔 조식은 오션동 3층에 위치한 쓰리밀즈에서 식사 가능합니다. 레이크 동 등 다른 동에서도 이동이 가능합니다.
| 웨이팅 39분
저희는 2인 뷔페 패키지 상품을 구입하였고, 다음날 아침 8시 50분에 쓰리밀즈에 도착해서 줄 서고 8시 55분에 조식뷔페 등록 하였는데요. 입장은 9시 34분에 했습니다. 무려 강릉 세인트존스 호텔 조식 웨이팅 40분 가까이 걸렸네요. 국내외 여러 호텔들을 다녀 봤지만 이렇게 웨이팅이 긴 경우는 처음이었네요.
웨이팅 시간 고려한 일정 관리
저는 오전 11시 체크아웃 이었는데요. 원 계획은 한 시간 정도 여유있게 식사하고 방에서 잠깐 쉬고 짐정리 하려고 했는데. 강릉 세인트존스호텔 조식 웨이팅에 40분 정도 예상못한 시간이 소요되어 다소 오전 시간이 바쁘게 되었습니다만, 별도 비용 없이 체크아웃을 한 시간 미뤄 주셔서 큰 불편 없었습니다. 오후 일정이 있으신 분들은 해당 시간도 참고해 주세요.
세인트 존스호텔의 경우 반려견 친화적인 강릉 강아지 동반 호텔입니다.
이곳 조식이 가능한 쓰리밀즈도 반려견과 함께 식사가 가능한데요. 그래서 많은 투숙객분들이 강아지와 함께 웨이팅 중입니다. 다만 강아지와 함께할 수 있는 식사 공간이 적어서 일반 투숙객 보다 몇 배 더 긴 웨이팅이 필요하네요.
| 깔끔한 쓰리밀즈 조식뷔페
세인트존스 호텔 쓰리밀즈 실내입니다. 넓고 깔끔한 분위기와 다양한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역시나 호텔 조식뷔페는 관광지나 아시아권이 잘 준비되어 있는...
웨이팅은 상당히 당황스러웠지만 입장하고 나면 쾌적하고 편안하게 식사 가능합니다. 또한,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식기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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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펫 식사 공간
세인트존스 호텔 조식뷔페인 쓰리밀즈에는 아래 사진과 같이 강아지와 함께 식사 가능한 공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2개의 별도 공간에 각각 3개의 테이블이 있고요. 일반 투숙객에 불편 없이 식사가 가능합니다. 반려견과 식사하는 사람이 많아지만 룸 밖에서도 강아지와 함께 식사가 가능한데요. 우리 설탕이는 다소 대인기피?가 있어서 조금 더 웨이팅 하고 해당 룸에서 식사 했습니다.
강아지 관련 식사는 준비되어 있지 않고요. 별도로 밥그릇과 음식은 챙겨 오셔야 합니다.
쓰리밀즈는 크게 3곳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요. 메인 음식이 준비되어 있는 이 공간부터 소개합니다.
베이컨과 돈까스, 감자웨지, 브로컬리 요리 등 맛있게 잘 요리되어 있습니다.
볶음밥과 달걀후라이와 스크램블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느 호텔이나 리조트 조식뷔페에도 빠지지 않는 소시지. 개인적으로는 아침에 왜 소지지를 먹는지는...
미역국와 스프, 죽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강릉 세인트존스 호텔 조식 베트남쌀국수
국수류는 이 베트남 쌀국수가 있는데요. 어떤 분 후기에 매우 맛있다고 평이 되어있는제, 저는 쏘쏘. 그냥 뜨끈한 쌀국수 국물이 좋았습니다.
딸아이의 첫 세팅, 불고기도 있었는데 맛있었습니다.
| 빵과 간단한 조식
한 켠에 다양한 빵과 잼들, 그리고 시리얼과 우유, 오거트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출장가면 항상 하나씩 들고 방으로 갔던 생각이 나는 요거트...
흰밥과 김, 김치, 젓갈, 메츄리알과 나물 등의 한식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견과류와 몇 가지...
샐러드는 브로컬리, 치킨샐러드, 연어 샐러드 등이 준비되어 있고요.
역시나 바로 서빙될 때 가지 않으면 치킨과 연어는 찾아보기 힘든 것은 모든 호텔 조식뷔페의 공통점
| 강릉 세인트 존스 호텔 음료 및 과일
마지막으로 조식 음료 및 과일소개입니다.
커피머신 두 대 있고요. 커피맛은 쏘소
오랜지, 포도, 사과 주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별도 얼음도 마련되어 있는데. 뷔페 시간이 끝나가니 얼음은 없네요.
세인트존스호텔 조식 뷔페 과일은 자몽, 파인애플, 포도, 사과 4종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세인트존스 호텔 조식 총평
음식은 모두 맛있고 깔끔하게 잘 구성되어 있음
가격은 호텔 생각하면 무난한 수준
특히 반려견과 함께 여행하는 경우 같이 식사가 가능하다는 부분은 이번 강원도 여행에서 큰 매력
트라택 에어펌프 칼로컷 스텝퍼 제품구성은 스탭퍼 본체와 튜뱅밴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설명서...
| 안정적인 제품 크기와 발판
무엇보다도 트라택 스텝퍼 장점은 사이즈 입니다. 길이 57cm, 너비 48,5cm로 일반적인 가정용 헬스기구인 스탭퍼 보다는 1.5배 정도 큰 사이즈를 보여줍니다.
무엇보다고 스텝퍼 발판이 넓고 깁니다. 사진속 종이가 A4용지로 길이는 297mm 입니다. 다른 가정용 스텝퍼의 경우 신발 사이즈 285mm인 제가 올라가면 상당히 불편하고 불안정한 사용감을 보여주는데요.
오늘 리뷰하는 트라택 스텝퍼는 이 부분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사용감을 보여주는 제품입니다.
| 문제 1 : 엄청난 소음
해당 제품명은 트라택 에어펌프 칼로컷 스텝퍼입니다. 제품이름에서도 알겠지만 에어펌프 방식으로 운동할 수 있게 되어있는 제품인데요. 소음이 엄청납니다. 강도를 조정하는 것과 상관없이 낮은 강도에서도 스탭퍼를 사용하면 바람 빠지고 들어오는 소리가 엄청납니다.
우선 조용한 곳에서는 사용 불가능 합니다.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사용하는 것도 힘듭니다. TV 볼륨을 엄청나게 크게 하지 않는다면... 다른 가족 눈치가 보이네요.
트라택 에어펌프 칼로컷 스텝퍼 소음은 아래 영상에서 확인해 보세요.
10만원 미만의 일반적인 가정용 유압식 스텝퍼 소음에 비하면 엄청난 소리가 들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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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 2 : 제품 불량
트라택 에어펌프 칼로컷 스텝퍼는 우측 발판 상단에 건전지로 작동하는 디지털 계기판이 있습니다.
구매시 건전지가 삽입되어 있고, 버튼만 누르면 바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이후 배터리 수명이다하면 아래 트라택 스텝퍼 설명서와 같이 디지털 계기판을 열고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는데요.
사진과 같이 기판이 본체에 걸려서 계기판이 빠지지 않습니다. 별별 시도를 다해봤지만 더이상 힘을 주면 파손될 것 같아 꺼내지 못하겠네요. 이문제가 저만 근런가 했더니 쿠팡 트라택 에어펌프 칼로컷 스텝퍼 판매페이지 사용후기를 보니 저와 같은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구매자의 글이 종종 보입니다.
| 결국 트라택 스텝퍼 환불
다른 구매자 후기를 보니 동일 문제로 교환 받았으나 동일한 문제가 또 발생했다는 글을 보고 교환 아닌 환불 진행했습니다. 만약 제품 확인하지 않고 일정기간 사용 후 배터리를 교체한다면 교환도 안되고 맨붕왔을 것 같습니다.
이번 행사는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 3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사전등록으로 별도 입장요금 없이 관람 및 참여가 가능했고요. 해당 행사는 입장수익 보다는 참여 업체 입점비가 주요 BM이어서... 입구에서 휴대폰에서 티켓 확인하고 입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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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 3홀 주차장
해당 전시장에서 가장 가까운 킨텍스 주차장은 게이트2입니다. 진입하셔서 왼쪽에는 주차장이, 오른쪽에는 킨텍스 행사장이 위치해 있습니다. 펫페어가 열리는 코엑스몰이나 세텍에 비해 주차장 규모나 주차공간은 상대적으로 매우 여유있습니다. 특히 세텍의 악명? 높은 주차장에 비하면 일산 킨텍스 주차장은 천국...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 3홀 근처 주차공간에 주차하고 강아지와 함께 펫패어 일산 행사가 열리고 있는 3홀로 입장합니다.
이번 마이팻페어 행사소개 먼저하고 글 하단에서 일산 킨텍스 주차요금 및 할인정보 공유합니다.
아무래도 여러 행사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보니 이번 마이펫페어가 열리고 있는 3홀에만 강아지가 걸어서 출입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레드카펫으로 이동가능한 길이 안내되어 있고요. 행사가 열리는 시기에는 일산 킨텍스 강아지 동반 식당도 생기고 홍보도 하고 있네요. 일산킨텍스 맛집 중 하나인 본우리반상도 반려견 동반 가능하다고 홍보하네요.
| 관람객 대비 동선 처리는 아쉬운
이번 일산마이펫페어 방문객이 많아서 그런지 행사장은 매우 혼잡했습니다. 좁은 통로에 개모차와 사람들이 뒤섞이다 보니 관람객 편의성은 영 꽝이었네요. 더구나 이번 마이펫페어 행사는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 3홀 공간의 2/3정도만 사용하고 있어 조금 더 여유있는 공간배치가 가능해 보였네요.
이외에도 다양한 입점업체와 강아지 빨리달리기와 미로찾기 이벤트는 매번 반복되는 이벤트입니다.
행사장에는 관람객이 쉴 수 있는 카페도 마련되어 있는데요. 관람객 대비 휴게 공간은 다소 부족해 보였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계속 앉아있기게 눈치보이는...
공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다음 일산 마이펫페어 행사는 이런 부분이 개선되었으면 합니다.
일산 킨텍스 주차장 및 주차요금 할인 정보
일산 킨텍스 주차장 이용후 출차전에 사전 무인정산기 이용을 추천 드립니다. 정산 후 30분 이내에만 출차하면 추가 주차요금이 부과되지 않습니다.
일산 킨텍스 주차요금은 승용차 기준으로 기본 20분 : 1,200원 추가 10분당 : 600원 이 부과되며 일일요금은 18,000원 입니다. 한 시간에 3,600원 주차요금이 부과 됩니다. 5시간 초과시에는 최대요금 18,000원이 부과됩니다.
입차 후 20분 이내에 출차시 주차요금은 부과되지 않습니다.
저는 2시간 30분 분으로 환산하면 150분 주차했고요. 15x600원 = 9,000원 일산 킨텍스 주차요금이 부과되었습니다.
| 인산 킨텍스 주차요금 할인
국가유공자 차량, 장애인 차량, 경차 저공해 차량 (제1종, 제2종)은 50% 주차요금 할인됩니다.
저는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50% 할인받아 4,500원에 주차정산 했습니다. 신용카드 및 삼성페이 정산 가능. 킨텍스 주차요금 애플페이는 지원하지 않습니다.
핑구는 1990년대에 방영된 스위스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주인공인 핑구는 귀여운 펭귄 캐릭터입니다. 핑구는 주로 그의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다양한 모험을 겪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겪는 소소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잠실 팝업스토어 입구에는 주인공인 핑구와 동생인 핑가 대형인형이 위치한 포토존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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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구 팝업스토어 MD List
이번 잠실 롯데백화점 핑구팝업스토어에는 50여점의 핑구관련 캐릭터 상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번 MD 리스트는 리뷰하면사 하나하나 설명 드릴께요.
| 핑구 포토부스
팝업스토어 입구에는 핑구 스킨으로 네컷사진 촬영이 가능한 포토부스가 3곳 마련되어 있습니다. 가격은 5,000원인데요. 대기줄이 길지는 않고요. 길어봐야 10분 전후네요. 제가 핑구 인형 구입하고 나가려는 시간에는 핑구 포토부스 대기줄도 없었네요.
본격적인 핑구 MD 상품소개 합니다.
핑구 카드스티커 6종은 각각 5,000원, 핑구 스터커세트는 각각 3,000원 가격입니다.
큰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는 핑구 캐릭터 상품입니다.
| 일부 제품 가격은 다소...
핑구 캐릭터 이용한 디지털 제품들도 판매하고 있는데요. 핑구 캐릭터 보조배터리 가격이 23,000원, 차량용 충전 거치대 가격은 49,000원 이네요. 캐릭터 상품 가격이 높다고 하지만 이건 좀...
핑구 유리잔세트, 핑구 텀블러 등도 만나볼 수 있고요. 아래 스테인리스컵 가격은 17,800원, 핑구 시리얼컵 가격은 9,900원 입니다. 이런 컵 가격은 랍리적인 듯..
핑구와 핑가 가방고리 인형도 있습니다. 핑가는 6,000원, 핑구는 9,000원
| 잠실 핑구 팝업스토어 신규 추가상품 출시
핑구 파우치 - 핑구 미니가방 - 핑구 가방 3종이 이번 핑구 팝업스토어 잠실 롯데백화점에서 어제부터 새로 선보이고있습니다. 핑구 파우치 가격은 15,000원
핑구 미니백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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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구 바디필로우와 얼굴쿠션은 가장 인기 있는 핑구 캐릭터 상품 중 하나...
핑구 탁상시계는 파란색 핑구와 분홍색 핑가 두 종류가 있는데요. 가격은 각각 29,000원 입니다.
이번 잠실 롯데백화점 핑구 팝업스토어에서는 이 외에도 다양한 핑구 캐릭터상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핑구 팝업스토어 이벤트 프로모션
- 엽서북 구매시 느린 우체통 체험 가능 - 5만원 이상 구매 시 랜덤 띠부씰 1종 증정 (재고 소진시 종료) - 10만원 이상 구매 시 랜덤 포토카드 1종 증정 - 20만원 이상 구매 시 미스터리 기프트 증정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열리고 있는 올겨울 대규모 전시회 중 하나인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 관람후기 입니다. 반고흐전 슈퍼얼리버드 티켓팅을 하고도 그동안 방문하지 못했다가 이제야 전시회 다녀 왔네요.
| 기대가 컸나? 실망이 큰 전시회...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 후기먼저 말하자면 '대실망'인데요. 이유와 함께, 티켓할인, 도슨트, 오디오가이드, 주차, 주차할인정보, 포토존, 아트샵 공유합니다.
겨울방학을 맞이해서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규모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전시회, 미셸 앙리 : 위대한 컬러리스트 연장공연, 퓰리처상 사진전 등등 한 전시회만 감상하고 집으로 가기 아쉬운 시즌입니다. 이중에서도 탑오브 탑은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열리고 있는 반고흐 전시회인데요.
작품과 명성에 비해 수준 떨어지는 전시공간에 실망 했답니다. 오히려 카바라조 전시회 구성이나 운영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는 생각이.
이번 반고흐 전시회 입장료는 성인(만19-64세) 24,000원 / 청소년(만13-만18세) 18,000원 / 어린이(36개월 이상-만12세) 18,000원 입니다. 저는 작년에 슈퍼얼리버드 티켓팅을 통해 35%할인된 15,600원에 예매하고 방문 했습니다.
현재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 티켓할인 프로모션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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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화가 반 고흐 티켓팅 및 웨이팅
전시회 관람을 위해서는 티켓팅 > 입장예약 > 입장대기 3단계를 진행해야 합니다. 일행이 있으시다면 해당 과정을 분산해서 진행하시면 조금 더 빠르게 입장할 수 있습니다.
(1) 티켓 발권
별도의 지류 초대권이 없다면, 현장구매나 예약모두 이번 빈센트 반 고흐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티켓구매 또는 발권하셔야 합니다. 티켓 발권 대기에는 약 10분정도 걸렸습니다.
저희는 일요일 오전 11시 조금 넘어서 방문 했는데요. 생각보다는 관람을 기다리는 대기줄이 길지는 않네요. (이미 전시회 오픈 두 달 가까이 되어가니, 다소 열기가 주춤한 것 같습니다.)
(2) 대기번호 등록
티켓팅이 끝나면 태블릿에서 대기번호를 등록해야 합니다.
예전 전시회는 티켓팅하고 바로 전시회 입장을 위히 줄서기를 해야 했는데요. 앱을 이용해 식당 예약하듯이 대기번호를 받고 주변에서 기다리다가 입장 알림이 카카오톡으로 울리면 입장하는 편한 방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 일행과 함께 방문하셨다면, 한 분은 티켓팅을 다른 한 분은 바로 이곳에서 대기번호 등록 하시면, 전시장 입장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3) 입장대기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입장가능을 알리는 카카오알림톡이 오는데요. 저는 등록 후 6분만에 입장알림이 왔습니다. 주차부터 발권, 입장까지 거의 대기시간 없이 순식간에...
| 포토존도 없다!
이정도 규모의 전시회면 방문객끼리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이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번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 공간에는 포토존이라고 부를만한 공간은 없습니다. 바로 윗층에서 열리고 있는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전시회와 비교되네요.
| 도슨트 & 오디오가이드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 도슨트는 운영되지 않고요.
오디오 가이드는 큐피커 앱을 통해 3,000원 유료로 이용이 가능합니다만, 작품 15개 정도 설명이 들어 있네요. 이번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오디오가이드도 다른 전시회 오디오 가이드에 비해 부실하다는 생각입니다.
| 전시장 사진촬영 불가
이번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 사진촬영 금지입니다. 실내 어떤 공간에서도...
그래서 방해 받지 않고 쾌적하게 작품 감상 했나고요? 전혀 아니올씨다~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 전시장 불만
| 작품 소개는 많이 부실함...
전시회는 빈센트 반고흐 생예별로 작품 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뒤로 갈수록 우리에게 익숙한 고흐의 화풍과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우선 가장 아쉬운 부분은 작품 제목과 연도 등의 아주 기본적인 캡션을 제외하고는 작품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제공되지 않습니다. 정말로 당황할 정도로...
| 전시장 구성도 관객 배려가 빵점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은 예술의 전당 전시실에서 가장 큰 면적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보통 해당 시기에 가장 핫 한 전시회가 열리는데요. 이번 전시회 공간 배치는 관객의 동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작품수가 100 작품이 되지 않고 이중 드로잉을 제외한 작품은 절반정도로 아는데요. 이 넓은 공간에 칸막이를 많이 만들고 작품은 다닥다닥 붙여서 전시되어 있네요. 그러다보니 고흐의 자화상 같은 대표 작품에 대기가 걸리면서 섹션 전체에 긴 대기가 생기는 문제가 보이네요. 두 번째 공간인 '파리시기' 에 고흐의 자화상이 있는데요. 작품 4번째 전시되어 있지만 대기만 20분 넘게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뒤에서 감상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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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전시회에서 작가의 대표 작품의 경우 별도의 공간을 만들거나, 다른 작품과 간격을 조정하는 등의 관람객 동선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빵점을 주고 싶네요.
| 포토존, 멀티미디어 공간 등...
요즘 미술 전시회의 경우 작가의 작품 전시는 물론,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은 전시장에서도 일부 공간에서는 사진 촬영을 허가하거나 포토존을 운영하는데요. 이런 부분은 전혀 없네요.
또한 전시장 중간이나 끝부분에는 작가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멀티미디어 공간이 마현되어 있는것도 요즘 전시회 기본 중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구성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 아트샵 및 도록
무언가 독특한 것이 있다기 보다는 고흐의 작품 자체가 많은 매력을 보입니다.
또한 이번 전시회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념품도 만나볼 수 있네요.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도록은 50,000원에 판매되고 있는데요. 빈센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번 전시회 도록 보다는 건너편 아트샵에 있는 37,800원 책을 더 추천 드립니다.
인형이나 양말, 마그넷도 있고요.
스카프와 우산, 파우치는 매력 있음...
이 외에도 이번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 아트샵에는 일반적인 미술전시회 아트샵에서 만나볼 수 있는 노트, 메모지, 틴케이스, 파일 등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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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직조러그는 끝까지 구입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집에서 쓸모가 없었음...
|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주차장 및 주차요금 할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접근성을 고려하면 바로 비타민스테이션 주차장에 주차 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요. 여유있는 공간은 아니어서 운이 필요한 공간입니다. 이번 방문에는 바로 자리가 있어 편하게 주차하고 이동 했네요.
예술의 전당 주차요금은 평일에 비해 주말에는 50% 할증된 주차요금이 부과됩니다. 주말기준 일반요금은 10분에 1,500원 - 한 시간에 9,000원, 전시관객은 주차정산 기계에 전시회 입장권 바코드를 스캔받으면 6,000원에 3시간 주차가 가능합니다.
다만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량 등 친환경 차량의 경우 예술의전당 주차요금 중복주차는 지원되지 않고요. 본인에게 유리한 조건을 선택해야합니다. 주차 80분 미만 까지는 친환경차 주차요금 할인이 유리하고요. 80분~3시간 까지는 관람티켓 할인이 더 유리합니다.
오늘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 관람후기 였습니다.
반 고흐의 원화를 처음으로 만나고, 그의 자화상을 보는데에 의미를 둔다면 볼만한 전시회가 되겠지만, 저에게는 추천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있는 전시회로 기억 됩니다.
방문일은 2025년 1월 1일 설날 맞이해서 사전 예약하고 방문 했습니다. 아라리 주차 및 예약, 메뉴, 가격 맛, 가족들 만족도 후기 진행합니다.
당근 내돈내산 / 내돈내먹 후기!!!
| 아라리 위치 및 주차
잠실 한정식 맛집 아라리는 올림픽 파크텔 지하 1층에 위치해 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방문하신다면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2번 출구에서 약 600미터 10분 정도 도보이동 하셔야 합니다. 올림픽파크텔 앞에 정차하는 버스들도 있습니다만 차량으로 방문하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아리리 주차장은 잠실에서 천호방향으로 가다가 올림픽 파크텔 앞에서 진입 후 좌측 주차장을 이용하면 됩니다. 올림픽 파크텔 주차요금은 10분에 500원 한 시간에 6천원 주차요금이 부과되만, 아라리 한정식에서 식사하면 올림픽파크텔 주차요금은 무료입니다.
주차 후 올림픽파크텔 건물로 들어오시면 되고요.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셔서 지하 1층으로 내려오시면 됩니다. 아래 사진이 올림픽공원 한정식 맛집인 아라리 입구입니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 부터 21시까지 운영되며, 아라리 라스트오더는 20시까지 입니다. 아라리 휴일은 없는데요. 설이나 추석 휴일은 별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1월 1일에는 정상영업 하셨네요.)
잠실 한정식 맛집 아라리 한정식 실내입니다. 한쪽에는 테이블룸이, 다른 한쪽에는 테이블세팅이 되어 있는데요. 예약이 늦어서 그런저 룸으로 배정 받지는 못했네요. 그래도 각각 테이블이 분리되어 있어 다른 방문객 방해받지 않고 편안하게 식사힐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방문하신다면 일찍 예약하시고 룸으로 배정해 달라 하세요.
| 한정식 아라리 메뉴 및 가격
메뉴는 코스 한정식과 단품요리가 준비되어 있는데요. 가격은 28,000원 부터 68,000원 까지 10,000원 단위로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평일에는 산정식 28,000원에 간단한 한정식을 맛볼 수 있는데요.
주말 기준 보통 아라리 메뉴에서는 38,000원 해정식이나 48,000원 진정식을 많이 드시는 것 같아요. 두 차이는 불고기가 나오냐, 떡갈비가 나오냐, 고등어나 조기구이 vs 보리굴비가 나오는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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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떡갈비 보다는 불고기 선호하는 일행이 많았고, 생선으로 회와 우럭탕수도 나와
저희는 가장 저렴한 가격인 해정식 (38,000원) 5인분 주문합니다.
갈비찜, 전복구이, 석갈비, 장어구이 등이 나오는아라리 특선 메뉴도 있는데요. 아마도 상견례 등 격식?을 챙겨야 하는 모임등에는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단품메뉴도 맛볼 수 있습니다. 저희도 낙지볶음을 추가로 주문할까 고민하다가 우선 한정식만 먼저 먹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는데요. 이 선택이 탁월한선택 이었네요.
송파 올림픽 파크텔 맛집 아라리 한정식 해정식 메뉴 소개하고 총평 진행합니다.
사진속 한정식은 2인분 기준으로 세팅되었습니다.
01. 에피타이저 : 계절죽과 물김치
에피타이저로 나온 계절죽은 녹두죽이 물김치와 함께 나왔습니다. 우선 맛은 쏘쏘...
02. 회와 야채요리
야채 샐러드와 삼색탕평채, 새우 냉채, 활어회, 토마토와 낫토가 먼저 나옵니다.
활어회는 광어회와 우럭회가 각 한점씩 나왔는데요. 우럭이 아닌 광어회만 나온 것 같기도 합니다. 회는 두툼하게 식감 좋게 나왔습니다. 보통 이렇게 회가 나올때는 광어 & 연어, 우럭 & 도미 조합이 많은데...
토마토와 낫토는 껍질을 벗기 토마토에 상큼한 맛의 낫토소스가 올려진 메뉴입니다. 가위로 먹기 편하게 잘라 주시는데요. 이름과는 다르게 달콤 상큼한 맛을 보입니다. 유자? 소스맛이 더 강한... 입맛 돋구기 좋은...
고소한 흑임자 소스가 올려진 야채 샐러드는 맛있게 잘 먹었고요. 한 번 다시 리필해서 먹었습니다.
삼색탕평채와 새우냉채
두 메뉴 모두 맛있게 잘 먹었는데요. 새우냉채는 와사비의 콕 쏘는 맛이 좋네요. 일행중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잠실 한정식 맛집 아라리 테이블에는 여분의 접시와 그릇이 여유있게 세팅되어 있어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었네요
03. 우럭 탕수
잠시 후 우럭탕수와 계절야채전, 흑임자 두부가 나왔네요.
고소한 맛의 계절야채전과 두분은 따뜻하게 나와 겨울철에 먹기에는 더욱 좋았네요.
새싹이 올려진 흑임자 두부는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참 좋았습니다.
아라리 한정식 우럭탕수는 우선 큼직한 크기의 우럭에 놀랐고요. 통통한 살과 달콤한 소스에 만족 했습니다.
아라리 한정식 코스요리에서 우럭탕수를 먹다 보니 배가 슬슬 불러오기 시작합니다. 정말로 살이 통통한 우럭 한 마리가 튀겨 나왔네요.
04. 식사
마지막 코스입니다.
불고기와 영양 돌솥밥, 된장찌개, 5가지 반찬과 조지구이, 궁중잡채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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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좋아하는 잡채, 만약 잡채가 앞부분에 나왔다면 리필했을 음식인데, 이미 배들이 불러서 맛만 봅니다.
오늘 아라리 한정식 코스메뉴에서 가장 실망한 메뉴인 불고기입니다.
불고기가 테이블 위로 올라오는데요. 촉촉한 불고기가 아닌 말라버린 불고기가 나왔네요. 불고기는 잠실 한정식 맛집 아라리 코스에서 가장 아쉬운...
영양돌솥밥은 밥 덜어내고 누릉지 만들어 먹으면 좋고요. 밥은 찰지고 맛있게 잘 되었네요.
같이 나오는 된장찌개도 짜지 않으면서도 맛있게 잘 나왔네요.
메뉴에는 고등어조림으로 나왔지만 오늘은 작은 굴비찜이 나왔습니다.
한정식 메뉴이지만 기름진 음식이 나와서 매콤한 고등어조림을 기대했는데... 그래도 굴비찜도 밥과 함께 맛있게 잘 먹었답니다.
이번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 전시회는 사진촬영 가능하지만, 동영상 촬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도슨트나 오디오가이드는 없지만, QR코드 인식통한 모바일 리플렛으로 작품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확인이 가능합니다.
| 4개의 섹션, 300여 작품
이번 전시회는 4개의 섹션으로 국가지정문화유산 20건 포함 300여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시회 관람에 필요한 시간은 최소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됩니다. 제가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회' 예약이 있어 딱 한 시간만 관람했는데, 뒷부분 작품 감상에 시간이 다소 부족했네요.
전시장 입구에는 한 점의 고려청자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청자 어룡모양 주자 (靑磁魚龍形注子)
- 국보 (National Treasure)
- 높이 (Height) : 24.4cm
- 시기 : 고려 12세기
물고기와 용이 결합된 상상의 동물 어룡魚龍을 형상화한 주자입니다. 꼬리를 치켜 올려 전체적으로 U자 형태이며 몸체는 부풀어 터질 듯합니다. 눈동자와 이빨에는 안료를 찍어 생동감을 더했습니다. 신령스러운 존재로 인식된 ‘어룡’이라는 소재와 주자에 표현된 화려한 조형성과 위엄은 왕실과 상류층의 권위를 보여줍니다.
| 제1부 그릇에 형상을 더하여
Part 1 Giving Figural Form to Pottery
흙으로 특정한 형상을 빛는 상형 행위는 역사가 오래되어 이미 신석기시대에 토기 들과 함께 사람이나 동물을 투박한 솜씨로 빚어낸 토우가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무엇인가를 본떠 만든 토제품의 이른 사례 로는 3~6세기 신라와 가야 무덤에서 발견된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가 눈에 됩니다. 주로 부장품으로 만들어진 이러한 토기에 표현된 다양한 형상은 죽은 이를 위한 바람 이나 장송 의례와 관련된 의미를 담고 있습 니다.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가 내세의 그릇이라면 고려 상형청자는 실생활에서 사용한 현세의 그릇입니다. 이 상형 토기와 토우장식 토기를 만드는 데 사용된 다양한 기법이 훗날 고려 상형청자 제작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말 탄 사람모양 뿔잔 (騎馬人物形角杯)
- 국보 (National Treasure)
- 높이 (Height) : 23.2cm
- 시기 : 가야 5세기
- 소장처 : 국립경주박물관
말을 타고 있는 무사를 형상화하였습니다. 무사, 말을 감싼 비늘갑옷, 말 엉덩이 위의 뿔잔 등을 서로 붙여 완성하였습니다.
고려 상형청자 중에도 이와 같이 각 부분을 따로 만들어 결합한 예가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제작기법은 서로 통합니다. 고려 상형청자 제작의 배경으로 그 전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토기의 조형적 전통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새모양 토기 (鳥形土器)
- 시기 : 신라 3~5세기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삼국시대 상형토기 중 이른 시기의 새모양 토기입니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변진조弁辰條에 “큰 새의 깃털로 죽은 이가 날아오를 수 있도록 했다”라는 내용이 있어 무덤에 새모양 토기를 묻은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3세기 후반 경주 지역의 덧널무덤에서 나온 새모양 토기는 액체를 넣고 따르는 구멍이 있어 제사용기로 추정됩니다. 큰 볏이 달리고 부리가 넓은 새모양이 유행하였고, 부엉이모양 토기도 있었습니다.
| 제 2부 제작에서 향유까지
고려는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한 중국의 청자 제작기술을 받아들여 수준 높은 청자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1~12세기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주변 국가로부터 다양한 문화적 영향과 자극을 받았습니다. 고려 장인들은 외부의 영향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창의적으로 변용하면서 고려 상형청자만의 독자적 세계를 완성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전하는 상형청자도 중요하지만, 가마터에서 출토되는 상형청자 조각들은 장인의 무수한 실험과 도전 과정을 보여줍니다. 바닷길에서 출수된 상형청자는 가마터에서 수도 개경을 비롯한 소비처로 운송되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개경 이외 지역에서 발견된 상형청자는 다양한 사용자를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청자 꽃모양 완 (靑磁花形碗)
- 높이 (Height) : 7.4cm
- 시기 : 고려 12세기
꽃잎 5개로 이루어진 촉규蜀葵모양을 본떴습니다. 나선형으로 꽃잎을 양각하고 중심에는 꽃술대를 조각해 붙였습니다. 꽃잎 안쪽 가장자리에는 촉규 넝쿨무늬가 장식되었습니다. 비슷한 형태가 금속기로도 전해져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푸른색의 유약을 덮어 은은하고 영롱한 미감으로 완성한 것은 상형청자만의 특징입니다.
청자 주자와 승반 / 청자 귀룡모양 주자
고려 12세기
액체를 담았다가 따르는 기능을 하는 이 주자는 모두 둥근 형태입니다. 왼쪽은 장식이 없는 그릇 본연의 형태이지만 오른쪽 상형청자는 용머리에 거북의 몸체를 결합한 상상의 동물인 귀룡베모양입니다. 기능은 같은 그릇이지만 상형청자가 시각적으로 한층 풍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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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공간에는 상형청자와 함께 청백자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청자 사자모양 향로 (靑磁獅子形香爐)
- 국보 (National Treasure)
- 높이 (Height) : 21.2cm
- 시기 : 고려
사자는 불교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고 산예狻猊라고도 합니다. 고려청자 절정기를 대표하는 비색과 세련된 조형으로 고려 상형청자의 높은 기술력과 뛰어난 조형미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송宋의 사신 서긍徐兢(1091~1153)이 정교하고 빼어나다고 평한 고려 왕실의 ‘산예출향狻猊出香’ 즉, 사자모양 향로가 바로 이 향로와 같은 종류였을 것입니다.
청자 참외모양 병 (靑磁瓜形甁)
- 국보 (National Treasure)
- 높이 (Height) : 22.8cm
- 시기 : 고려 12세기
가장 널리 알려진 고려 왕실의 상형청자로 비색청자의 대표작입니다. 인종仁宗(재위 1122~1146)의 무덤인 장릉長陵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고려는 비색翡色 유약과 날씬한 형태가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금대金代 벽화나 고려불화를 참고할 때 이러한 병은 꽃병으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청백자 물병 및 주차, 병 참외모양 병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국제도시 개경과 상형자기
상형청자가 화려하게 꽃핀 고려의 수도 개경은 외국과 교류가 활발했던 국제도시 였습니다. 중국 송*(960~1279)의 정요, 여요품, 경덕진요 옆에서 만들어진 자기가 수입되어 왕실과 상류층을 중심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고려 상형청자의 탁월함과 독자성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있습니다.고려의 사자모양 향로를 보고 감탄한 내용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고려 상류층에 스며든 향, 차, 술을 즐기는 문화, 문인 취향, 그리고 더 좋은 것을 갖고 감상하려는 고려 사람들의 바람도 상형 청자를 만드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넘어온 자기들... 원형이 유지되고 있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청자 연꽃모양 향로 조각과 향로뚜껑 조각
중국 북송시대 유물로 소개되어 있다.
| 제3부 생명력 넘치는 형상들
상형청자에서는 다양한 동물과 식물의 특징을 잘 포착해 실감 나게 표현한 형상들이 가장 먼저 눈에 됩니다. 이러한 소재를 표현한 방식은 대상이 되는 형태 전체를 본떠 만드는 것과 소재의 특징적 부분을 그릇에 적용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떠한 방식이든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러한 형상은 고려청자만의 비색과 투명한 유약을 더함으로써 한층 더 생명력 넘치는 모습으로 재탄생합니다.
고려 상형청자의 소재는 고려 사람들이 주변에서 실제로 보거나 상상했던형상으로, 크게 동물과 식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때로는 권위와 지위의상징으로, 때로는 항상 곁에 두고 싶은 자연을 대신하는 벗으로 고려 사람들의삶에 자리 잡았습니다
청자 철와 퇴화무늬 두꺼비모양 벼루와 청자 사자모양 향로
고려 12세기 작품으로 두 점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익살스러운 모양이 내 눈길을 끄는...
아래는 청자 사자모양 연적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 전시장 중앙부분에 위치한 공간에 배치된 한 점의 청자가 보입니다.
해당 주자는 리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으로 기억하고 봤던것 같은데요. 이번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 전시회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놀러온 것 같네요.
| 청자 양각·동화 연꽃무늬 조롱박모양 주자 (靑磁陽刻·銅畫蓮花文瓢形注子)
- 국보 (National Treasure)
- 높이 (Height) : 32.5cm
- 시기 : 고려 13세기
아래쪽 몸체와 위쪽 뚜껑은 연꽃모양이고, 그 사이 움푹한 곳에 연꽃 줄기를 들고 있는 동자모양 장식이 있습니다. 손잡이 위의 개구리는 뚜껑에 달린 작은 벌레를 응시하는 듯합니다. 동화銅畫기법으로 그린 붉은 무늬가 청자의 색과 대비되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룹니다. 1257년(고종高宗 44) 사망한 무신정권의 권력자 최항崔沆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여 당시 권력자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다소 급 높은 상형청자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 靑磁透刻七寶文香爐)
- 국보 (National Treasure)
- 높이 (Height) : 15.3cm
2021년 이건희 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작품이라 한다.
고려 상형청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대표작입니다. 공 모양 뚜껑은 칠보무늬를 맞새김하고 원과 원이 겹쳐진 부분은 상감과 퇴화 기법으로 화려함을 더했습니다. 몸체에는 틀로 찍어낸 꽃잎을 붙였습니다. 상형과 함께 음각과 양각, 투각, 퇴화, 상감, 첩화 등 다양한 기법이 조화를 이루어 무르익은 고려 상형청자의 기술과 조형미를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토끼모양의 다리 장식이 생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상상의 동물
상형청자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은 용, 어룡, 커룡, 기린, 사자입니다. 이들은 예부터 상서롭고 신성한 동물로 여겨진 서수입니다. 이러한 형상은 왕실이나 귀족의 권위와 지위를 상징합니다. 상상의 동물은 향로에서 가장 많이 보이며, 연적과 베개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형청자는 왕실 의례와 같이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거나 일상생활에서 상류층의 지위를 돋보이게 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청자 귀룡모양 주자 (靑磁龜龍形注子)
- 국보 (National Treasure)
- 높이 (Height) : 17.3cm
- 시기 : 고려 12세기
물을 담고 따르는 주자입니다. 용의 머리에 거북 몸을 결합한 상상의 동물인 귀룡이 연꽃 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귀룡은 고개를 들고 입을 벌려 포효하는 듯합니다. 세밀하게 음각한 비늘과 뿔, 발톱이 맑고 투명한 비색 유약 아래로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눈과 손잡이에는 철 안료로 점을 찍어 생동감을 더했습니다.
청자 용모양 향로 (靑磁龍形香爐)
- 높이 (Height) : 22.7cm
- 시기 : 고려 12~13세기
상상의 동물인 용은 고려에서 왕실의 권위를 나타냈습니다. 이 향로는 하늘로 솟아오르는 용의 역동적인 모습을 포착하여 향로 뚜껑을 장식하였습니다. 머리를 치켜들고 몸을 비틀어 한쪽 앞발로 보배 구슬을 쥔 자세는 용에 응축된 힘을 잘 보여줍니다. 이 용 형상은 중국 허난성 청량사淸凉寺 여요 汝窯에서 출토된 용 장식 조각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 고려와 북송의 문화교류를 알려줍니다.
청자 베개인데, 작품 소개가 기억나지 않는다.
품안의 자연
앞에서는 상상의 동물을 모티프로 제작한 청자가 전시되었다면, 지금부터는 자연속 식물과 동물을 소재로 작업한 고려 상형청자가 선보입니다.
| 청자 석류모양 주자 ( 靑磁石榴形注子)
- 높이 (Height) : 18.3cm
- 시기 : 고려 12~13세기
고려 문인들은 석류를 옥 이슬방울이나 선인仙人의 음료로 부르는 등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 주자는 석류 열매 네 개의 형태를 합쳐서 만들었습니다. 맨 위의 입수구는 석류 꼭지를 크게 벌려 액체를 넣기 쉽게 만들었고, 옆쪽 주구는 석류 잎을 돌돌 만 형태입니다. 열매, 잎, 가지 등 석류의 모든 요소를 집약하여 독보적인 조형성을 창출했습니다.
청자 물고기 연적과 청자 물고기 모양 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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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모양, 호리병모양 등 자연에서 가저온 상형청자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
다소 변색되었더나 파손된 작품들이 여기에 모여 있고...
여기는 국립중앙박물관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 전시회에서 조금 더 고급진 청자들이..
| 청자 죽순모양 주자 (靑磁竹筍形注子)
- 보물 (Treasure)
- 시기 : 고려 12세기
주자에 죽순의 요소를 덧씌우듯 결합하였습니다. 액체를 넣고 따르는 기능을 고려하여 아래쪽을 풍만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자에 담긴 액체를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 주자의 바닥을 보온용 그릇인 승반 위에 올린 예도 있습니다. 한편, 죽순모양 주자의 은은한 푸른빛 유색은 죽순을 푸른 옥에 비유했던 문인 이곡李穀(1298~1351) 쓴 시,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능성과 형태미를 모두 충족시킨 이 주자들은 고려 상형청자가 도달한 높은 수준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제4부 신앙으로 화장된 세상
Part 4 Into the Other World 고려시대에 청사는 실용과 예술의 범주를 넘어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거나 신앙적 바람을 표현하는 영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러한 화장성은 표현 매체로서 청자가 지닌 위력과 고려 사람들의 창의성을 잘 보여줍니다. 도교와 불교는 고려 사람들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이들의 삶에서 청자가 애호되었고 청자 제작 기술이 뛰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려 사람들의 종교 문화에 청자가 포함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교와 불교 의례에 사용되는 기물이 청자로 만들어졌고, 종교적 소재를 담은 청자 그릇도 제작되었습니다. 니아가 기존에 주로 다른 재료로 만들던 불상도 청자 기술을 적용해 만들었습니다. 종교적 용도로 만틀어진 싱형청자는 공예와는 또 다른 차원의 시각적 경험과 의미를 줍니다
청자 나한상 조각들
전북 고창 절터에서 출토된 작품들이라고 하는데. 뭔형이 너무나도 궁금하다.
청자 사람모양 주자 ( 靑磁人物形注子)
- 국보 (National Treasure)
- 높이 (Height) : 28cm
- 시기 : 고려 13세기
도교의 인물이 새를 타고 무언가를 바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주자입니다. 이 인물이 손에 든 그릇 구멍에 액체를 넣고 앞쪽의 새 입으로 따르는 구조입니다. 새는 풍선처럼 부푼 몸과 머리 위의 볏 그리고 긴 꼬리가 특징입니다. 이 새를 봉황鳳凰 또는 난鸞새로 보기도 합니다.
청자 나한상 (靑磁羅漢像)
- 높이 (Height) : 22.3cm
- 시기 : 고려 13세기
바위 위에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비스듬히 앉아 있는 나한상입니다. 팔을 옷소매에 집어넣고 경상經床에 기댄 자세를 하였습니다. 주름진 얼굴에 진지한 표정, 정면을 응시하는 눈매에서 수행자의 면모가 느껴집니다. 이 상의 출토지가 강화도인 점으로 미루어, 고려 조정이 몽골의 침략에 맞서 강화로 수도를 옮겼던 1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보살, 나한, 여래상 등 불교와 도교의 청자들...
보살, 나한상 등 청자 불상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절이나 암자를 개보수하면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원형이 보전되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 소개하는 국립중앙박물관 겨울 전시회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 는 내년인 2025년 3월 3일까지 선보일 예정입니다.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 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이번 전시회 관람시간은 최소 2시간 이상 고려하셔야 합니다. 우선 관람객이 많아서 주요 작품에는 대기가 필요하고요. 좋아하는 작품들이 많다 보니 저는 2시간30분 정도 소요 되었네요.
[프롤로그] 비엔나에 분 자유의 바람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는 비엔나를 유럽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도시 확장 계획을 단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비엔나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꼽히는 유명한 건축물들이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과거 예술 양식의 모방과 재현에 그쳤습니다. 기대와 실망 속에 논란의 중심이 된 대도시 비엔나에는 각종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였고, 토론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이때 새로 지어진 건물에 벽화를 그리면서 크게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전통 양식을 그대로 따르는 일은 클림트의 뜻과 맞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예술의 길을 탐구했고,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특별한 예술 운동을 시작합니다. 클림트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던 예술가들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클림트와 동료들이 만든 비엔나 분리파의 활동으로 이제 비엔나에 ‘자유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제49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
에곤 실레 (1890–1918) / 1918년, 종이에 석판화 / 개인 소장
비엔나 분리파는 '시대에는 시대에 맞는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을 모토로 1897년 창립되었습니다. 초대 회장에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선출됐어요. 당시 비엔나 예술가들이 가장 믿고 따랐던 클림트는 많은 전시회를 열면서 그들이 추구한 '새로운 예술'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1902년에는 베토벤에 경의를 표하는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비엔나 분리파는 전통을 깬 혁신의 상징이었던 베토벤을 존경했습니다.18세기 음악적 형식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던 때, 베토벤은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 감정을 부각시키는 새로운 음악적 구성을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전시회의 포스터는 알프레드 롤러가 그렸습니다. 그는 포스터 역시 하나의 예술 분야로, 관심 없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집중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포스터에는 수수께끼 같은 상징이 많습니다. 빛나는 물체를 들고 몸을 굽힌 여성은 어둠에서 빛으로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마치 비엔나의 새로운 빛이 되고 싶었던 비엔나 분리파의 꿈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
흔히 구스타프 클림트를 ‘황금의 화가’라고 알고 있지만, 예술가로서 그를 설명하는 한 단어를 꼽는다면 그건 바로 ‘혁신’입니다. 초기에 클림트는 주로 전통 양식으로 작업했고, 황제로부터 상도 받으며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곧 인간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 주제에 주목했고, 유럽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인상주의, **상징주의 그리고 비엔나의 방식으로 수용한 ***아르누보 등 다양한 예술 운동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클림트는 외국 작품을 소개하고 활발한 전시 활동을 하면서 오스트리아 예술을 모더니즘의 시대로 이끌었습니다. 클림트는 오스트리아의 젊은 예술가들이 실험적인 예술을 할 수 있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혁신’을 향한 그의 열망은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시장 모습과 클림트의 사진, 정말로 옛날에 클림트 도록에서 이 사진을 보고 클림트에 대한 환상이 깨진적이 있었다는... 조금은 그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상상하고 있었던 시절...
국립극장의 계단 벽화를 위한 습작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1886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수도 비엔나를 대도시로 탈바꿈시킨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비엔나를 둘러싼 성벽이 철거된 자리에 생긴 커다란 대로에 오스트리아의 정치경제, 문화, 예술을 위한 수많은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비엔나로 여행을 간다면 방문해야 하는 대표적인 명소들이죠. 구스타프 클림트는 바로 이 시기, 새로 만들어진 건물을 장식하기 위한 예술가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 작품은 클림트가 국립극장의 실내 장식을 위해 그린 습작입니다. 바로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연회 장면인데요, 중앙에는 디오니소스의 조각상이 있고, 양쪽으로는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여인들이 있습니다.
왼쪽 여인은 디오니소스를 상징하는 지팡이를 들었고, 오른쪽 여인은 월계수 관을 들고 있습니다. 디오니소스 연회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돈 연극의 기원으로 생각되었기에, 클림트는 국립극장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이 주제를 선택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초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나 지역의 소녀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1883년경 패널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작품에 제작 시기가 쓰여 있지 않지만, 구스타프 클림트가 학생이던 시절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체코 모라비아에 있는 하나 지역에서 온 소녀를 그렸다. 소녀는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있는데, 이는 하나 지역 풍습을 따른 것이다. 옷과 배경을 모두 옅은 회색으로 칠해 사실적으로 묘사한 얼굴이 더욱 두드러진다. 살짝 옆을 보는 소녀의 눈길은 그녀가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노인의 옆모습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1896년경 카드보드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트라운 백작’이라는 제목으로도 전해지는 까닭에 주문받은 초상화라는 인상을 주지만, 그림 속 인물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옆얼굴만 보여 주는 구도 역시 평범하게 주문받아 제작한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클림트는 얼굴의 특징을 명확하게 드러내면서도 윤곽선을 부드럽게 처리했다. 배경을 단색으로 칠해서 노인의 옆얼굴에 더욱 눈길이 머문다. 클림트가 인물화에서 새로운 구도와 효과를 실험했음을 알 수 있다.
모자를 쓴 여인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1897/98년 캔버스에 유화 클림트재단
작품 속 여성은 당시 비엔나에 유행하던 패션과 장신구를 보여 준다. 목을 감싼 칼라와 챙이 넓은 모자를 모두 검은색으로 칠해 여인의 얼굴이 더욱 돋보인다. 19세기 말 유럽에서는 불편한 코르셋이나 지나친 장식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편안한 의복을 강조하는 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비엔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디자이너였던 에밀리 플뢰게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예술적 동반자로서 깊은 관계를 유지했고, 그녀의 패션은 클림트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수풀 속 여인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1898년경 캔버스에 유화 클림트재단
세련된 모자를 쓰고 풍성한 소매가 돋보이는 블라우스를 입은 초상화 속 여인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두터운 물감으로 그려낸 수풀과 여인의 블라우스 소매는 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질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구스타프 클림트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예술을 오스트리아에 소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과정에서 프랑스의 인상주의와 같은 화풍이 오스트리아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클림트도 초기에는 전통적인 화풍으로 그렸지만, 점점 인물화에서 여러 가지 구도나 표현법을 실험했습니다. 1890년대 후반에는비엔나 중.상류층 여성들의 초상화가로 자리 잡으면서, 이 작품처럼 완성도 높은 인상주의 화풍의 인물화틀 그렸습니다.
이번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전시회 대표작품이기도 한데요. 작품 사이즈도 A4 용지정도 크리로 작고, 제가 기대한 것보다는 다소 소박한 크림트의 인물화 입니다.
클림트를 기대하고 방문했다면 실망할 전시회
뒤에도 클림트의 그림은 계속되지만 기대했던 황금빛의 클림트 그림은 이번 전시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번 전시회 제목인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뒤에 클림트는 빠져야.
1부. 비엔나 분리파, 변화의 시작
19세기 말 비엔나에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변화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예술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습니다. 보수적인 기득권과 맞서는 젊은 예술가들의 구심점이 된 구스타프 클림트는 동료들과 함께 비엔나 분리파를 결성하여 과거의 관습과 예술 양식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했습니다.
비엔나 분리파의 초대 회장이 된 클림트는 활발하게 전시를 열어 작품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교류의 장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회화뿐 아니라 공예, 삽화, 책 표지와 우표 디자인 등 일상의 여러 분야로 예술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그들의 예술 철학과 외국의 예술 동향을 알리는 잡지인 『베르 사크룸(성스러운 봄)』도 발행했습니다. 여러 예술 장르를 합쳐 하나로 완성된 아름다움을 구현한다는 ‘총체예술’의 개념은 비엔나 분리파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영원하지 않았던 클림트의 분리파
비엔나 분리파는 크게 두 개의 단체가 결합된 형태였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를 중심으로 한 ‘7인회’와 더 전통적인 양식을 고수했던 ‘하겐 클럽’입니다. 두 단체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졌기에 분열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습니다. 1905년 비엔나 분리파 회원들의 작품 판매처로 7인회와 친분이 있는 갤러리를 활용하는 방안을 두고 형평에 어긋난다며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요인은 풍경화를 주로 그리며 순수미술을 중요시한 하겐 클럽과 예술과 공예의 통합을 지향한 7인회의 서로 다른 성향으로 인한 충돌이었습니다. 비엔나 분리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은 결국 분열로 이어졌고, 클림트와 콜로만 모저, 요제프 호프만을 비롯한 예술가들은 비엔나 분리파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비엔나 분리파는 이후에도 존속하며 젊은 예술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습니다.
제14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
알프레드 롤러 (1864–1935) 1902년 종이에 다색 석판화 레오폴트미술관
비엔나 분리파는 '시대에는 시대에 맞는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을 모토로 1897년 창립되었습니다. 초대 회장에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선출됐어요. 당시 비엔나 예술가들이 가장 믿고 따랐던 클림트는 많은 전시회를 열면서 그들이 추구한 '새로운 예술'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1902년에는 베토벤에 경의를 표하는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비엔나 분리파는 전통을 깬 혁신의 상징이었던 베토벤을 존경했습니다.18세기 음악적 형식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던 때, 베토벤은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 감정을 부각시키는 새로운 음악적 구성을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전시회의 포스터는 알프레드 롤러가 그렸습니다. 그는 포스터 역시 하나의 예술 분야로, 관심 없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집중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포스터에는 수수께끼 같은 상징이 많습니다. 빛나는 물체를 들고 몸을 굽힌 여성은 어둠에서 빛으로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1908년 비엔나 예술전람회 포스터
루돌프 칼바흐 (1883–1932) 1908년 종이에 다색 석판화 레오폴트미술관
비엔나 분리파 안에는 구스타프 클림트처럼 다양한 예술장르를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회화와 같은 순수미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결국 1905년 클림트와 뜻을 함께한 예술가들이 비엔나 분리파를 탈퇴했습니다. 클림트가 비엔나 분리파에 속했던 시기를 '빛나는 7년'이라고 부릅니다. 무려 23번의 전시회를 열면서 유럽의 예술가들과 왕성하게 교류를 했고,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변혁의 움직임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클림트는 비엔나 분리파를 탈퇴한 후 '클림트 그룹'을 만들어 더 급진적인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전시회 포스터는 클림트 그룹이 개최한 '비엔나 예술전람회'입니다.이 전시에서 만나게 될 '꿈꾸는 예술가들'이 총출동했습니다. 콜로만 모저와 요제프 호프만은 디자인과 장식 예술 분야를 담당했고, 에곤 실레와 오스카 코코슈카와 같은 젊은 예술가들도 출품했습니다 이 전시는 오스트리아 예술계가 모더니즘으로 전환하는 시작점으로 평가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좀 더 자유롭게 자신만의 예술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겠죠?
제40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
에른스트 에크 (1879–1941) 1912년 종이에 석판화 레오폴트미술관
비엔나 분리파는 클림트와 동료들이 떠난 뒤에도 활동을 이어갔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열어 다양한 예술가의 작품을 오스트리아에 소개했다. 또한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다. 제40회 전시회에서는 포스터라는 장르가 독립된 예술 분야임을 강조했다. 비엔나 분리파는 서체와 그래픽 디자인이 조화를 이룬 다양한 포스터를 전시했다. 에른스트 에크는 흰색과 검은색만으로 강렬하고 순수한 디자인의 포스터를 만들었다.
제14회 전시회장에서 촬영한 비엔나 분리파 회원들
모리츠 네어 (1859–1945) 1902년 사진 비엔나 이마그노 사진 기록 보관소 (크리스티안 브란트슈테터 수집)
혁신의 상징, 베토벤을 위한 전시회
비엔나 분리파는 1902년 ‘베토벤에 대한 경의’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비엔나 분리파 전시관인 *제체시온의 중앙 전시실에는 독일 조각가 막스 클링거의 <베토벤> 조각상이 놓였습니다. 베토벤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곳곳에 전시되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중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일부를 인간의 고통과 투쟁,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여정으로 묘사한 <베토벤 프리즈>를 전시실의 세 벽면에 그렸습니다.
전시회 개막식에는 비엔나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지휘 아래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일부가 울려 퍼졌습니다. 이 전시회의 전체 디자인은 비엔나 분리파의 요제프 호프만이 맡았습니다. 새롭고 대담한 전시회였다는 좋은 평가도 있었지만, 급진적인 시도를 어려워하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엔나 분리파는 이 전시회에 회화, 조각, 음악, 디자인 등 전시의 모든 요소가 하나로 어우러져 특별한 감상을 선사하는 ‘총체예술’의 이상을 구현했습니다.
비엔나 분리파가 만든 잡지
비엔나 분리파는 미술과 문학을 아우르는 『베르 사크룸(성스러운 봄)』이라는 잡지를 발간했습니다. 이 잡지는 1898년부터 1903년까지 간행되면서 외국의 예술 동향을 알리고 새로운 예술을 보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이 잡지는 비엔나 분리파의 초기 역사를 가장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예술가들이 돌아가며 디자인을 담당한 까닭에 누가 맡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양식의 잡지가 발간되었습니다. 이 또한 특정 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예술을 지향했던 비엔나 분리파만의 특징이었습니다. 『성스러운 봄』은 단순한 잡지가 아니라 문학과 그림, 표지 디자인을 결합하여 비엔나 분리파가 추구했던 ‘총체예술’을 구현한 또 하나의 매체였습니다.
성스러운 봄 1호
1898년 1월 발간 오스트리아 예술가연합 활판 인쇄 레오폴트미술관
비엔나 분리파는 6년 동안 '성스러운 봄'이라는 잡지를 발간했어요. 이 잡지는 유럽 예술의 동향을 파악하고 그들이 보여주려고 한 새로운 예술이 무엇인지 알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정사각형 판형으로 만들어진 '성스러운 봄'의 첫 번째 호입니다. 표지를 보시면 나무의 뿌리가 화분을 뚫고 자라나 있고, 풍성한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린 세개의 문장이 있습니다. 이는 예술의 중요한 요소인 건축회화, 조각을 상징합니다. 마치 새롭게 뿌리내리는 비엔나 분리파와 성스러운 봄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성스러운 봄'은 매번 다른 예술가가 편집장이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나올 때마다 각자의 색을 담은 제각각의 디자인이 돋보입니다. 라틴어로 쓰인 잡지 제목 '베르사크룸'은 '성스러운 봄'이라는 의미로, 비엔나 분리파가 전통에서 벗어나 새롭게 출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스러운봄 5/6, 9월, 10월호
오스트리아 황제 즉위 60주년 기념우표를 위한 디자인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기마상, 60헬러 콜로만 모저 (1868–1918)
1908년 카드보드에 연필(23), 종이에 연필(24-26), 불투명 수채 오스트리아 포스트 AG
콜로만 모저는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재위 1848-1916)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를 디자인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1898년 열린 제1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의 개막식에 참석했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고 비엔나가 유럽 예술의 중심지임을 강조하기 위해 비엔나 분리파를 지지했다. 모저는 기하학적인 무늬로 우표의 테두리를 각각 다르게 디자인했다. 예술이 삶의 모든 부분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모저의 예술적 지향을 잘 보여 주는 작업이다.
벨베데레 궁전
카를 몰 (1861–1945) 1909년경 종이에 다색 목판화 레오폴트미술관
19세기 후반 비엔나에서는 목판화 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비엔나 분리파의 창립 회원이었던 카를 몰 역시 비엔나 풍경을 담은 판화를 많이 만들었다. 이 판화는 벨베데레 궁전 정원의 겨울 풍경을 담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조각상에서 쭉 뻗은 정원 길을 따라 벨베데레 궁전으로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몰은 빛의 반사와 섬세한 색감을 세련되게 활용하여 겨울 분위기를 표현했다.
2부 새로운 시각, 달라진 오스트리아의 풍경
비엔나 분리파의 대다수 회원은 유럽으로, 일부는 아시아 지역까지 여행하며 새로운 예술을 접하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전시회를 열어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 어떤 예술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영향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오스트리아를 그린 풍경화가 나타났습니다.
전통 양식을 따르던 보수적인 아카데미는 예술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탐탁치 않아 했고, 당시 유럽에 퍼져 나갔던 예술적 자극에 대한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비엔나 분리파는 새로운 시도와 자극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모방이 아닌 그들만의 독창적인 양식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들의 예술 철학과 도전은 이후 비엔나 예술계가 모더니즘으로 나아가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큰 포플러 나무 11 (다가오는 폭풍)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1902/03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비엔나 분리파를 이끈 구스타프 클림트는 예술가들이 유럽의 다양한 미술을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오스트리아 밖으로 나가서 보고 배우라고 지시했습니다. 또한 유럽의 예술가들을 초청해 전시회를 열어 소통의 장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유럽에서 유행하던 인상주의나 상징주의가 비엔나에 알려졌고, 오스트리아의 예술가들은 이전과 다른 풍경화들을 그리게 됩니다..
클림트의 풍경화에서 거대한 포플러나무는 작품의 오른편을 가득 채우고 있죠. 나무를 잘 보시면 여러 가지 색 물감을 찍어서 반짝이는 효과를 냈습니다.어떤 평론가는 이것을 '마치 송어의 비늘 같다'고 말했어요. 멀리 펼쳐진 들판 너머로 하늘이 크게 그려져 있는데, 바람이 소용돌이치듯이 불고 먹구름이 져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쏟아질 것 같네요. 하늘을 극적이고 생생하게 그렸던 화가가 한 명 떠오르지 않나요? 바로 빈센트 반 고흐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클림트도 유럽에서 유행했던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당시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정사각형 화폭을 선택한 것도 참 클림트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숫가의 남녀
에른스트 슈퇴어 (1860–1917) 1897/1903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그림 속 남녀는 호숫가 난간에 기댄 채 서로의 시선을 피해 먼 곳을 바라 보고 있다. 비엔나 분리파의 창립 회원인 에른스트 슈퇴어는 이 작품에서 여러 빛깔의 색들을 섞지 않고 점을 찍어서 표현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화면을 가득 채운 파란색과 연보라색 점들이 왠지 우울하고 쓸쓸한 감정을 자아낸다. 슈퇴어는 주로 희미한 저녁 빛을 표현해 서정적인 장면을 연출했고,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을 담아내고자 했다.
넓게 펼쳐진 들판과 언덕을 표현한 이 그림은 레오폴트 블라우엔슈타이너의 초기 작품이다. 높이 쌓아 올린 옥수수 짚을 여러 곳에 배치해 화면을 구성했고, 가까운 곳과 먼 곳의 풍경을 조화롭게 표현했다. 당시 흔했던 황토색 옥수수 짚을 소재로 수확 이후 여름날 풍경을 묘사했다. 일본 목판화와 인상주의 회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구도와 색을 실험적으로 사용하고 그 결과를 작품에 충실히 반영했다.
피아노를 치는 레오폴트 치하체크
에곤 실레 (1890–1918) 1907년 캔버스에 유화 개인 소장
에곤 실레는 열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매독으로 죽자 삼촌인 레오폴트 치하체크의 보호를 받으며 자랐다. 이 작품은 실레의 삼촌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그렸다. 실레는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는 밝은 부분과 그림자가 있는 어두운 부분을 구분하여 명암의 대비를 살렸다.
가로로 긴 화폭 역시 극적인 구도를 만들어 준다. 붓질의 방향이 모두 빛이 들어오는 오른쪽 아래를 향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치는 손으로 눈길이 간다. 실레는 삼촌의 손을 번지도록 표현하여 피아노를 치는 율동감을 살렸다.
실비아 콜러 (화가의 딸)
브론치아 콜러-피넬 (1863–1934) 1926년 캔버스에 유화 개인 소장
브론치아 콜러-피넬은 구스타프 클림트, 요제프 호프만 등 비엔나 분리파 예술가들과 매우 가깝게 교류했다. 그녀의 집은 비엔나의 화가, 과학자, 음악가, 철학자들이 모여 교류하는 장소였다. 그녀는 특히 인물화와 정물화에서 독특한 색채와 구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화가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에곤 실레를 비롯한 젊은 예술가들의 후원자 역할을 했다. 브론치아의 딸 실비아는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으며, 사랑과 헌신의 상징인 분홍 카네이션을 들고 있다.
교류와 후원, 비엔나의 카페 문화
카페는 화가, 소설가, 음악가, 건축가, 정치인 등 주요 인사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주고받는 장소였습니다. 카페 문화는 당시 비엔나 예술계의 중심이었으며, 예술의 장르를 넘나들며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시기 비엔나 예술가들은 활발한 예술 후원에 힘입어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 나갔습니다. 카페는 후원자와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탐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재력가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예술가들은 감사의 의미로 후원자의 드로잉 작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굽은 목재로 만든 의자, 255번
카페 뮤지엄을 위한 디자인 디자인: 아돌프 로스 (1870–1933) 제작: 야코프 & 요제프 콘 1898년경
굽은 목재, 너도밤나무에 검붉은 칠, 나무로 엮은 좌석 레오폴트미술관
여러분은 카페에 가면 무엇을 하시나요? 공부나 일을 위해 혹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가시나요? 19세기 말 비엔나에서는 이런 카페 문화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예술, 철학, 문학, 음악의 중심지 비엔나에서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모였던 가장 중요한 장소가 바로 카페였어요. 그 중에서도 최고의 명소로 꼽히는 곳이 바로 카페 뮤지엄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계시는 의자는 1899년 카페 뮤지엄이 문을 열었을 때 놓여 있었던 것이에요. 이때 만들어진 카페 의자는 단순한 디자인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이 의자를 디자인한 아돌프 로스는 장식이 없는 단순한 디자인으로 기능성을 살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카페 뮤지엄이 문을 열었을 때는 엄청난 논란이 있었다고 해요. 화려한 장식을 기대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의 디자인이 너무 무미건조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아돌프 로스의 실용성과 기능성을 강조한 디자인은 이후 모더니즘 건축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드로잉 작가로, 코코슈카는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사용했으며, 수많은 전시회와 작품을 통해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가 남긴 예술적 유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파울 셰어바르트
작품집 『사람의 얼굴』에 수록 오스카 코코슈카 (1886–1980) 1916년
출판사: 데어 슈투름, 베를린 종이에 석판화 레오폴트미술관
오스카 코코슈카가 그린 독일의 소설가이자 건축 이론가 파울 셰어바르트의 초상화다. 그는 표현주의 잡지 『데어 슈투름』에 많은 글을 기고했다. 특히 건축에 유리를 사용하여 인간의 삶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유리 건축 이론’을 제시해 주목받았다. 코코슈카는 다양한 굵기로 선의 강약을 조절하여 셰어바르트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헤르바르트 발덴
작품집 『사람의 얼굴』에 수록 오스카 코코슈카 (1886–1980) 1916년
출판사: 데어 슈투름, 베를린 종이에 석판화 레오폴트미술관
오스카 코코슈카가 그린 독일의 미술 비평가 헤르바르트 발덴의 초상화다. 발덴은 표현주의와 같은 새로운 예술의 흐름을 지지했다. 그는 베를린에 출판사와 갤러리를 열어 새로운 예술 운동을 지원하고 이를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발덴이 1910년 창간한 잡지 『데어 슈투름(Der Sturm)』은 표현주의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중요한 출판물이었다. 오스카 코코슈카 역시 이 잡지에 여러 점의 삽화를 그렸다.
콜로만 모저
콜로만 모저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함께 비엔나 분리파를 만든 예술가입니다. 그는 비엔나 분리파에서 조각, 유리 등 다양한 방면의 디자이너로 활동했습니다. 또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설립을 주도하며 가구, 벽지, 도자, 직물,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모저의 디자인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부드러운 곡선과 자연스러움이 특징입니다. 또한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양식으로 세련되고 현대적인 디자인을 추구했습니다. 디자인 공방을 떠난 이후로는 빛과 색을 연구한 회화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했던 콜로만 모저는 비엔나 예술을 모더니즘으로 이끈 만능 예술가였습니다.
산맥
콜로만 모저 (1868–1918) 1913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이 그림을 그린 콜로만 모저는 이번 전시에서 주목하는 6명의 꿈꾸는 예술가들'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비엔나 분리파로 활동하면서 많은 전시회를 디자인하고 기획했어요.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설립을 주도하면서는 공예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죠. 공방을 나온 이후에는 회화 작업도 남겼으니, 그야말로 장르의 경계 없이 만능으로 활동했던 예술가네요
콜로만 모저는 지금 보고 계시는 것과 같은 풍경화를 많이 그렸는데요,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여러 산을 그렸지만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어요. 노랗게 표현돈 하늘 아래로 몇 개의 선을 그려서 산맥을 구분하고, 열은 따란색과 어두운 색을 대비시켜서 구분했어요. 이런 단순한 구성과 색 대비는 일본 목판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우키요에 라고 부르는 일본 목판화가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간결하고 단순한 구성이 선명하고 풍부한 색감은 전통적인 원근법과 사실적 표현어 익숙했던 유럽 사람들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일본 미술이 비엔나에서 새로운 표현을 탐구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빛과 색의 마법, 모저의 꽃 그림
마리골드 콜로만 모저 (1868–1918) 1909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설립을 이끈 콜로만 모저는 다양한 재질의 공예품을 만들고 그래픽 디자이너로도 활동했다. 수공예와 장인 정신을 내걸었던 공방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자, 경영 방식에 대한 의견 충돌이 생겼고 결국 모저는 1907년 디자인 공방을 떠났다. 그 뒤로 모저는 회화를 자신의 예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특히 하루 또는 계절에 따라 빛과 색이 달라지는 장면을 담은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이후에는 강렬한 색채를 띠는 정물과 꽃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동굴 속의 비너스
콜로만 모저 (1868–1918) 1914년경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동굴의 둥근 공간에서 비너스가 베일을 쓰고 나오는 장면을 그렸다. 비너스의 몸은 밝은 부분에서는 노란색을, 어두운 부분에서는 옅은 보라색을 띤다. 모저는 비너스뿐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베일, 바위, 꽃다발 등에 흔히 쓰지 않는 색을 혼합해 사용했다. 그는 독특한 색채 대비와 상징으로 고전적 주제인 그리스·로마 신화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1914년 무렵 모저 화풍의 변화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하겐 클럽과 알빈 에거-리엔츠
비엔나 분리파의 예술가들 중 일부는 하겐 클럽에 속했습니다. 이들은 풍경화를 주로 그렸고 공예보다 회화와 같은 순수 미술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사실적으로 자연을 묘사하면서도 차분하고 정돈된 분위기로 오스트리아의 풍경이나 풍속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알빈 에거-리엔츠는 1900년까지 하겐 클럽에 소속된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농민, 노동자 등 서민의 삶을 담은 풍경을 많이 그렸습니다. 극단적으로 감정을 표출했던 표현주의 작가들과 달리 무게감 있고 따뜻한 정서로 오스트리아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깊은 숲 (<아베>를 위한 습작)
알빈 에거-리엔츠 (1868–1926) 1895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희미한 빛이 어린 울창한 숲속에 침엽수가 높이 뻗어 있다. 햇빛이 스며들고는 있지만 땅에 닿지 못하기에 차가움이 느껴진다. 빠르고 자유로운 붓질로 나무 아래 우거진 덤불을 표현했다.
작가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뾰족하게 갈라진 나뭇가지다. 앞쪽에는 밝은 색을, 뒤쪽으로 갈수록 어두운 색을 두껍게 칠해 깊이감을 주면서 햇빛이 스며드는 느낌을 나타냈다. 이 작품은 1809년 베르기젤 전투 이후 티롤 민병대가 기도하는 장면을 묘사한 <베르기젤 전투 이후의 아베 마리아>의 배경을 위한 습작이다.
이상하게 이 그림도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전시회장에서 마음을 흔들었던 작품 중 하나.
점심 식사 (<수프> 두 번째 그림)
알빈 에거-리엔츠 (1868–1926) 1910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비엔나 분리파의 한 축을 이루었던 그룹은 회화나드로잉이 공예보다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 하겐 클럽사람들이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탈퇴한 후에도, 이들은 계속 전시회를 열고 활동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생활상이나 풍경을 차분하고 따뜻한정서로 다뤘던 알빈 에거-리엔츠라는 화가가 그러한 부류에속합니다.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분위기는 침착하고 평온하며, 사람들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듯합니다.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어 따뜻한 분위기가 전해집니다.에거-리엔츠는 농부들의 일상을 무게감 있게 그렸는데요, 같은 주제로만 무려 25점이나 되는 그림을 남겼다고 합니요. 그만큼 이런 주제에 대해서 깊이 탐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실에서 2실로 2부에서 3부로
전시장 중간에 있는 공간에서는 이번 전시회관련 멀티미지디어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과 에곤실레 작품을 대형 현수막으로 출력한 포토월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3부. 일상을 예술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탄생
구스타프 클림트와 그의 동료들은 공예도 예술과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하며, 일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예술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에서는 회화, 공예, 조각, 포스터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였고, 예술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대중에게 알렸습니다. 1903년 콜로만 모저와 요제프 호프만은 일상의 물건도 예술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을 설립했습니다.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초기 디자인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한 장식 미술과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곡선 형태가 두드러졌습니다. 그러나 곧 기능성과 미학의 조화를 강조한 영국 *예술공예운동의 영향으로 기하학적 단순함을 중시하는 디자인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들의 철학은 이후 기능주의를 추구하며 설립된 예술학교 **바우하우스를 비롯해 여러 방면의 디자이너와 건축가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설립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출판된 이 책의 제목은 ‘비엔나 디자인 공방 1903-1928’이다. 공방과 관련된 많은 사진 자료를 포함하고 있으며, 글은 여러 가지 언어로 쓰여졌다. 이 책의 제작에는 세 명의 예술가가 참여했는데 그 중 마틸데 플뢰글의 경우 책에 수록될 사진 자료와 글을 선정했고 전반적인 디자인을 담당했다. 책에는 비엔나 디자인 공방에서 활동한 주요 예술가들의 작품과 함께 공방의 역사와 성과를 담았다.
연하장 엽서
디자인: 마리아 리카르츠-슈트라우스 (1893–1971) 제작: 비엔나 디자인 공방
연대 모름 카드보드에 다색 석판화 레오폴트미술관
비엔나 디자인 공방에서는 새해, 부활절,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을 위한 엽서도 디자인을 했습니다. 여기, 붉은 옷을 입은 광대가 꽃다발에 둘러싸인 돼지를 들고 있는 장면이 보이시나요? 우리나라에서도 돼지꿈을 꾸면 그날은 복권을 사야한다는 말이 있죠.
전통적으로 돼지는 복을 상징하는데요,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도 돼지는 행운을 나타내는 동물이라고 해요. 특히 새해 연하장에 시용될 때는 풍요로움과 부유함을 나타내는 동물로 쓰여서, 새해에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 엽서 위에 쓰인 것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문구입니다. 그러니까 이 엽서는 새해 연하장이에요. 광대는 새해를 갖이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어요.
하얀색 바탕에 동글동글한 장식이 들어간 주황색 줄무늬 디자인이 너무 매력적이에요. 총 16점으로 이루어진 이 도자기 식기 세트는 여러 예술가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선 식기 세트의 모양은 콜로만 모저가 디자인을 했고, 주황색 장식은 콜로만 모저의 제자였던 유타 지카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도자기 제작은 도자기 공방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비엔나 도자기 제작소'에서 만들었습니다.
1부에서 설명했던 '총체예술`기억하시나요? 베토벤 전시회처럼 회화, 조각, 음악, 디자인 등 예술의 여러 요소들이 어우러져 관람객에게 특별한 감상을 선사한다는 개념인데요, 일상과 예술을 통합하고, 이를 위해 모든 예술가들이 힘을 합치는 것, 이것은 비엔나 디자인 공방이 추구했던 '총체예술'의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06년 도예가이자 조각가인 미하엘 포볼니는 그래픽 디자이너 베르톨트 뢰플러와 함께 ‘비엔나 도예 공방’을 설립했다. 이들은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미학과 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함께 협력하기도 했다. 정수리 부분을 깎은 수도승 특유의 머리와 깡마른 얼굴, 움푹 들어간 눈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머리와 얼굴을 감싼 검은색 두건이 얼굴을 돋보이게 한다. 포볼니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표현하고자 했다. 수도승은 언젠가 맞이할 죽음을 생각하며 깊은 상념에 잠긴 듯하다.
손가방
디자인: 마리아 리카르츠-슈트라우스(1893–1971) 제작: 비엔나 디자인 공방 1929년 천 에른스트 플로일
비엔나 디자인 공방에서 활동한 마리아 리카르츠슈트라우스는 섬유, 금속, 도자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이너로 두각을 드러냈다. 리카르츠-슈트라우스는 독특한 기하학적 무늬와 밝고 대조적인 색채의 조합으로 장식미술과 일상 용품을 결합했고, 1920년대 비엔나 디자인 공방을 이끌었다. 이 가방은 일상생활에서 가볍게 들기 좋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다양한 색의 동그라미 장식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형태로 표현했다.
가죽 공방의 성과, 세련된 디자인
디자인: 마리아 리카르츠-슈트라우스(1893–1971) 마틸데 플뢰글 (1893–1958)
제작: 비엔나 디자인 공방 1929년 염색한 가죽 에른스트 플로일
1912년 디자이너 마리아 리카르츠-슈트라우스는 열아홉 살 이른 나이로 비엔나 디자인 공방에서 첫 작품을 만들었다. 1920년대에는 꽃 등 식물무늬를 활용해 직물을 만들던 당대 예술가들과 달리 기하학적 구성과 대담한 색채로 눈에 띄는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크리스털 식기 세트, 메테오르 100번
네 개의 와인잔 디자인: 콜로만 모저 (1868–1918)
제작: 마이어스 네페 (바칼로비츠 & 죄네 의뢰) 1899년 주조 유리 레오폴트미술관
콜로만 모저는 일상과 예술을 통합하는 철학을 실천한 디자이너였다. 모저는 다양한 모양과 색을 활용한 유리 공예품을 섬세하게 디자인했다. 이 작품들 역시 모저가 디자인하고, ‘바칼로비츠 & 죄네’ 회사가 보헤미아의 유리 공방 ‘마이어스 네페’에 제작을 의뢰해 만들었다. 기하학적 무늬를 잘 살린 모저 특유의 디자인을 보여 준다. 특히 유리를 성형할 때 만든 동그란 무늬가 마치 물 밖으로 떠오르는 공기 방울을 보는 듯한 생동감을 준다.
비엔나 디자인 공방에서 만든 다양한 작품들로 가득한 공간에 오셨습니다. 1903년 설립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은 일상적인 용품도 예술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전시된 공예품들은 당시 일상에서 쓰이던 것들입니다.요즘 만들어진 것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로 참 예쁘고 멋지죠? 몇 개는 집에 갖다 놓고 싶을 정도인데요?
콜로만 모저는 비엔나 디자인 공방 설립을 주도하면서 디자이너로서 영역을 넓히기 시작합니다. 특히 공방은 디자이너, 제작사 그리고 판매사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모저는 공 모양의 꽃병에 강렬한 색채로 식물무늬|에서 영감을 받은 독특한 디자인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디자인은 비엔나에서 활동하던 도자기 및 유리 공방에서 꽃병으로 제작됐고,'바칼로비츠와 쇠네' 회사에서 판매했습니다. 이렇게 예술가와 제작사 간의 분업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수준 높은 공예품들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요제프 호프만
요제프 호프만은 기능주의 미학을 강조한 오스트리아 건축가 오토 바그너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비엔나 분리파에서 개최한 많은 전시회를 디자인했는데, 초기에는 장식 미술에 바탕을 둔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영국 예술공예운동이 추구하는 간결하고 단순한 디자인에 매료되었고, ‘정사각 호프만’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기하학적인 디자인에 빠져듭니다.
요제프 호프만은 일상생활 속 물건에 예술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비엔나 디자인 공방에서 공간의 모든 요소를 일정한 디자인으로 통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특히 창문, 문, 가구, 식기 세트 등을 모두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디자인했습니다. 이는 모든 요소를 통합하여 최상의 디자인 효과를 내고자 했던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총체예술’이었습니다.
안락의자 721번
비엔나 전신국을 위한 디자인 디자인: 오토 바그너 (1841–1918) 제작: 야코프 & 요제프 콘 1902년경
굽은 목재, 너도밤나무에 칠, 합판 레오폴트미술관
오스트리아의 건축가이자 이론가로 유명한 오토 바그너가 디자인한 의자입니다. 오토 바그너는 기능적이고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움까지 담을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했습니다.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설립자 콜로만 모저외 요제프 호프만 역시 오토 바그너의 제자였습니다. 이들은 스승의 철학을 따라 장식적이면서도 기능성 좋은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이 의자는 오토 바그너가 비엔나의 전신국 사무실을 위해 디자인한 것입니다. 팔걸이와 등받이를 하나의 나무로 만든게 보이시나요? 나무에 수증기를 쐬어 부드럽게 만든 후 원하는 모양으로 구부려 곡선을 표현한 것입니다
꽃장식 테이블, M436번
디자인: 요제프 호프만 (1870–1956) 제작: 비엔나 디자인 공방 1905년경 철판에 아연 도금 후 칠 레오폴트미술관
하양고 깔끔한 꽃장식 테이블을 디자인한 사람은 비엔니 디자인 공방의 설립을 주도한 요제프 호프만입니다 요제프 호프만은 구스타프 클림트와 함께 비엔나 분리파를 창립했고,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이 있는 디자인을 추구했습니다.
이 테이블이 어떤 무늬로 가득 차 있는지 보이시나요? 바로 정사각형입니다. 요제프 호프만은 '정사각 호프만'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정사각형이 가장 완전한 형태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서 있는 바닥, 주변의 여러 작품들에서도 정사각형이 많이 보이실 거에요 요제프 호프만은 아름다움과 기능이 조화로운 수공예의 가치를 강조한 영국의 예술공예운동에 영향을 받아 정사각형에 매료되었습니다. 기하학적으로 단순한 구성 속에 아름다움을 표현한 호프만의 디자인은 이후 많은 디자이너와 건축가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많은 금속 공예품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다시 유행한 고전적인 공예 제작 방식을 따랐다. 바로 금속을 고온에서 녹이지 않고 실온에서 물리적인 힘을 가해 성형하거나 가공하는 방식인데, 재료 본연의 성질은 유지하면서도 모양을 변형할 수 있었다. 이 바구니 역시 실온에서 가공한 뒤 표면에 구멍을 뚫어 만든 것으로, 복잡하고 섬세한 기하학적 장식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4부 강렬한 감정, 표현주의의 개척자들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교육 방식에 불만이 많았던 에곤 실레는 1907년 구스타프 클림트를 만난 뒤로 예술 인생에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클림트는 실레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았고, 그를 주변에 소개하고 후원을 받게 함으로써 독립적인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1909년 아카데미를 그만둔 실레는 동료들을 모아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신예술가그룹’을 결성했습니다. 개인의 감정을 색채와 형태로 표현하는 방법을 탐구한 신예술가그룹 화가들은 비엔나 예술계를 모더니즘으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자유롭게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개척하며 비엔나 예술계에 세대교체의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과장된 꽃과 장식적 배경
에곤 실레 (1890–1918) 1908년 캔버스에 유화, 금색과 은색 안료 레오폴트미술관
에곤 실레가 구스타프 클림트를 처음 만났던 1907년, 실레는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의 학생이었습니다. 클림트는 단번에 에곤 실레의 재능을 알아보았죠. 그가 많은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게 하고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게 소개해주었습니다.
그야말로 스승이자 멘토와 같은 존재가 된 것이죠. 마침 에곤실레는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아카데미의 교육 방식에 지쳐 있었습니다. 결국 에곤 실레는 1909년 아카데미를 그만두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 예술가들을 모아서 신예술가그룹'을 만들었어요. 신예술가그룹은 비록 짧은 기간 활동했지만, 인물의 감정을 미술로 나타내는표현주의적 경향을 보여주면서, 비엔나 예술계에 세다 교체를 알렸습니다.
이것은 10년 전, 구스타프 클림트가 비엔나 분리파를 만들었을 때를 상기시켜 주네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평행 이론일까요? 주황색 꽃으로 장식된 보라색 식물은 정사각형의 화폭에 그려졌습니다. 식물의 배경은 금색과 은색 안료로 장식되어있어 화려합니다. 클림트의 영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에곤 실레의 화풍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화
1910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구스타프 클림트는 에곤 실레가 자신만의 예술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스승이었다. 당시 클림트와 실레의 특별한 관계를 눈여겨본 사람들은 실레에게 ‘은색의 클림트’, ‘충실한 추종자’와 같은 별명을 붙여 주기도 했다. 섬세하게 그려진 하얀색 국화는 비엔나 분리파가 지향한 장식 미술의 영향을 보여 준다. 공간감 없는 검은색 배경과 대조를 이루는 국화의 구성에서 19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한 자포니즘과 일본 목판화의 특징이 엿보인다.
소년과 큐피드
안톤 콜리히 (1886–1950) 1911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한 소년이 벽에 기대 서 있습니다. 사실 소년이라고 하기엔 어른에 가까운 건장한 신체와 큰 발을 가지고 있는데요. 어딘가 부끄럽고 어색한 모습입니다. 소년의 옆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사랑의 신으로 나오는 큐피드가 긴 창을 들고 있습니다. 즉, 육체적 변화를 겪으며 사랑을 알게되는, 그야말로 성장 중인 소년을 표현했네요 이 작품을 그린 안톤 콜리히는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서 에곤 실레와 만났고, 신예술가그룹으로 활동했습니다.
콜리히와 신예술가그룹 예술가들은 1911년 작품을 출품했고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겐 클럽은 젊은 예술가들이 새롭게 추구하기 시작한 표현주의적 경향을 지지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여성의 초상
알베르트 파리스 귀터슬로 (1887–1973) 1914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머리가 헝클어진 여인이 무심한 듯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흰 블라우스에 값비싼 진주 목걸이를 한 이 여인은 부유한 후원자로 추정된다. 인물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며 감정을 담아냈다. 이 작품을 그린 알베르트 파리스 귀터슬로는 배우이자 극작가였지만, 1910년대 초반 파리에서 미술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야수파를 비롯한 최신 예술 동향을 접한 뒤로 화가로 전향했다. 귀터슬로는 신예술가 그룹에서 에곤 실레, 안톤 파이슈타우어 같은 예술가들과 함께 활동했다.
푸른 옷을 입은 소녀
로빈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1890–1969) 1913/14년경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한 소녀가 허름한 벽 앞에 앉아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양팔을 맞잡은 자세는 고민에 빠져 있는 소녀의 복잡한 심경을 보여줍니다. 어두운 표정과 눈 주변이 붉어져 있는 것을 보니, 금방이라도 운 것 같습니다. 가만히 그림을 보고 있으니, 소녀의 슬픈 마음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을 그린 로빈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에곤 실레와 함께 신예술가그룹을 만드는 데 함께했습니다. 이렇게 인물의 감정을 차갑게 가라앉은 색채로 그린 것은 20세기 초 나타난 표현주의적 경향입니다. 함께 전시된 신예술가그룹 작가들의 작품을 한번 둘러보세요. 인물화를 그릴 때 그 인물의 감정을 표현해내고자 했습니다.
조용한 여성 (화가 어머니의 초상)
안톤 콜리히 (1886–1950) 1909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안톤 콜리히는 1911년 친분이 있던 예술가 단체 하겐 클럽의 전시장에서 열린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 아홉 점을 출품했다. 하겐 클럽은 젊은 예술가들이 새롭게 추구하던 표현주의 예술을 지지하고 그들의 혁신적인 작품을 전시했다. 이 전시회로 신예술가 그룹은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콜리히가 당시 출품했던 아홉 점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어머니의 초상화다. 어두운 옷을 입은 화가 어머니의 모습이 밝게 빛나는 배경에서 돋보이며 실루엣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조명이 가끔씩 작품 감상을 방해한다. 얼굴 자세히 감상 하세요.
오스카 코코슈카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표현주의 경향의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던 오스카 코코슈카는 1900년대 비엔나 예술가들의 초상화가이자 작가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클림트의 초청으로 참여한 ‘비엔나 예술 전람회’(1908)에서 코코슈카는 ‘야수 중의 야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거칠고 과감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코코슈카는 인물화에서 단순한 외형 묘사를 넘어 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과감하게 표현했습니다. 특히 폭발하는 듯한 색채와 왜곡된 형태로 1차 세계대전으로 불안해진 인간의 심리를 묘사했습니다. 미술뿐 아니라 연극, 문학 등 장르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실험으로 대중의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오늘날 그는 오스트리아 표현주의를 이끈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소녀
오스카 코코슈카 (1886–1980) 1905/06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오스카 코코슈카가 비엔나 예술공예학교의 학생 시절 그린 작품으로 추정된다. 옷을 입지 않은 어린 소녀가 벽에 기대어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다양한 갈색을 조화롭게 사용했으며, 코코슈카 특유의 표현주의 화풍이 드러나기 이전 전통 화법을 보여 준다.
목화솜 따는 소녀
1908년 비엔나 예술전람회 포스터 오스카 코코슈카 (1886–1980) 1908년 종이에 다색 석판화 레오폴트미술관
오스카 코코슈카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요제프 호프만의 제안으로 1908년 비엔나 예술전람회의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직선적이고 단순한 윤곽선, 음영이 없는 색면의 사용, 두꺼운 서체 등은 비엔나 분리파가 만든 포스터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 준다. 이 포스터는 루돌프 칼바흐가 디자인한 1908년 비엔나 예술전람회의 또 다른 포스터와 매우 비슷한 양식이다. 코코슈카와 칼바흐는 비슷한 시기에 비엔나 예술공예학교에서 공부했으므로 동료로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피에타
연극 <살인자, 여성들의 희망>을 위한 포스터 오스카 코코슈카 (1886–1980) 1909년 종이에 다색 석판화 레오폴트미술관
공포영화와 같은 이 충격적인 그림은 오스카 코코슈카가 직접 극본을 쓴 연극'살인자, 여성들의 희망'의 홍보 포스터입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이런 포스터를 그린 걸까요? 이 연극은 남자와 여자의 파괴적인 사랑과 갈등을 주제로 합니다. 강렬하고 파괴적으로 과장된 포스터는 남녀 관계의 고통스러움과 혼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오스카 코코슈카는 이번 전시가 주목하는 '6명의 꿈꾸는 계술가들'중 네 번째로 만나볼 인물입니다. 그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교류하며 비엔나 디자인 공방에서 작업하기도 했지만, 곧 자신의 색깔을 찾아 표현주의적 경향을 드러내는 작품을 하게 됩니다. 코코슈카는 클림트의 초청으로 1908년 비엔나 예술전람회에서 데뷔했고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내면의 심리를 파고드는 독특한 표현법이 돋보이는 인물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극 문학 등 장르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실험으로 오스트리아 표현주의의 지평을 넓힌 개척자였습니다
"얼굴 인식" 강연을 위한 포스터
오스카 코코슈카 (1886–1980) 1911년 종이에 다색 석판화 레오폴트미술관
방금 전에 보신 파괴적인 사랑과 갈등을 그린 연극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예상하셨겠지만 정말 끔찍했습니다. 급기야 오스카 코코슈카에게는 '문제아'라는 별명도 붙었어요. 그리고 몇 년 후 코코슈카는 강연에서 얼굴이 단순히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영혼을 담아내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어요. 전통적인 초상화는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만 코슈카는 변화무쌍한 감정과 영혼을 포착해 그려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 작품은 그 강연의 홍보 포스터입니다. 이런 코코슈카의 생각은 강연을 듣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불쾌감을 주었습니다. 영혼을 그림으로 그린다니, 심령술사가 할 법한 이야기로 들렸던 것 같아요. 포스터의 남자는 코코슈카 자신을 그린 것입니다. 얼굴로 영혼을 그려낸다고 했으니, 한번 볼까요? 자글자글한 주름과 움뚝 팬 눈으로 그려진 코코슈카의 얼굴은 고통 받는 영혼 그 자체 같네요. 코코슈카는 자신이 비엔나 예술계에서 느낀 고립감을 이렇게 자화상으로 표현했습니다.
양쪽에서 본 화가의 자화상
취리히 볼프스베르크에서 열린 코코슈카 전시회를 위한 포스터
오스카 코코슈카 (1886–1980) 1923년 종이에 다색 석판화 레오폴트미술관
오스카 코코슈카는 1923년 가을, 취리히의 갤러리 볼프스베르크에서 열린 자신의 단독 전시회 포스터로 같은 해에 그린 자화상을 활용했다. 왼손에 붓을 들고 관람자를 쳐다보는 그림 속 인물은 예술가이자 개인전을 개최하는 주인공인 코코슈카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이 개인전은 코코슈카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넘어 국제적인 예술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코코슈카 작품느낌 너무 좋다.
헤르만 슈바르츠발트 II
오스카 코코슈카 (1886–1980) 1916년 캔버스에 유화 브로에르 자선 재단
이 작품의 주인공 헤르만 슈바르츠발트는 아내와 함꼐 오스트리아의 젊은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들 부부의 아파트는 비엔나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디자인했고, 오스카 코코슈카나 에곤 실레 등 표현주의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모이는 장소였습니다. 이들을 재정적으로도 후원하고 작품을 발표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스카 코코슈카는 헤르만의 초상화를 2번 그렸습니다.이 작품을 보시면 헤르만이 입은 옷과 뒷배경이 거의 비슷한 색으로 그려져 헤르만의 얼굴과 손에 시선이 집중됩니다. 얼굴의 주름과 혈관, 과장된 손가락과 손의 크기는 헤르만의 성격과 내면을 표현하고자 한 코코슈카의 독특한 기법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헤르만의 성격이 어때 보이시나요?
빅토어 리터 폰 바우어
오스카 코코슈카 (1886–1980) 1914년 캔버스에 유화 브로에르 자선 재단
1914년 무렵 오스카 코코슈카는 넓은 붓을 이용해 물감을 두껍고 대담하게 칠했다. 이 작품에서는 어두운 녹청색 배경에 짙은 녹색 양복을 입고 있어 그림 속 주인공의 얼굴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코코슈카는 날카로운 선으로 얼굴 표정을 그렸으며, 얼굴과 마찬가지로 손도 돋보이게 표현했다. 산업가이자 예술 후원자였던 폰 바우어는 혁신적인 건축가 아돌프 로스와 친분이 있었다. 당시 코코슈카의 후견인이던 로스가 자연스럽게 폰 바우어에게 코코슈카를 소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화상
막스 오펜하이머 (1885–1954) 1911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비슷한 색감의 뒷배경으로 얼굴과 손을 강조한 것은 앞서 보았던 코코슈카의 인물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작품은 막스 오펜하이머의 자화상입니다.오펜하이머와 코코슈카는 비슷한 시기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으며, 동료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림 속 오펜하이머는 미간을 찡그린 의심 많은 눈빛으로 우리의 시선을 살짝 피하고 있네요. 길게 왜곡되고 칼라비틀어진 것 같은 오펜하이머의 손은 마치 고통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자화상은 오펜하이머가 주요 전시회에 모두 출품했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오펜하이머는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독일과 스위스에서도 활동하며 인물화로 새로운 예술적 경향을 탐구했습니다
이번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전시회 2관에는 사진과 같이 앉아서 휴식과 함께 작품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저는 대략 여기까지 한 시간 반이 조금 덜 걸렸는데요.
휴식하면서 다음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에너지를 모아보는 것도...
리하르트 게르스틀
리하르트 게르스틀은 에곤 실레나 오스카 코코슈카보다 훨씬 앞서서 표현주의의 길을 개척한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웠지만 전통적인 화법을 거의 구사하지 않았고, 거칠고 자유로운 붓놀림과 과감한 색채로 인물을 표현했습니다. 독자적으로 활동한 게르스틀은 시대에 앞선 예술 양식을 선보였습니다. 게르스틀은 20세기 초 현대 음악의 창시자인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깊이 교류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음악가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예술적 실험과 도전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게르스틀이 후기에 그린 초상화들은 세부 묘사 없이 인물의 형태만 남긴 추상화에 가까웠습니다. 그의 실험적인 작품들은 당시에는 예술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새롭고 독창적인 화법으로 오스트리아 표현주의의 문을 연 선구자였습니다.
스마라그다 베르크
리하르트 게르스틀 (1883–1908) 1906/07년 캔버스에 유화 개인 소장
섞지 않고 점을 찍어 표현하는 점묘법을 활용했는데, 도란색과 보라색이 주로 사용됐습니다. 게르스틀이 그린 이 여인은 피아니스트 스마라그다 베르크로, 20세기 초 표현주의 음악가로 유명한 알반 베르크의 여동생입니다.
알반 베르크는 리하르트 게르스틀과 함께 어울렸던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친구들 중 하나입니다. 아르놀트쇤베르크는 12음기법이라는 새로운 작곡 방식을 만드는 등현대 음악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게르스틀은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던 음악가들과어울리며 예술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잔잔한 인물화는 게르스틀의 초기 양식을 보여줍니다
반신 누드의 자화상
리하르트 게르스틀 (1883–1908) 1902/04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침착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남자의 머리 주변은 밝은 색으로 그려져 마치 후광이 빛나는 것 같습니다. 손과 같은 신체의 다른 부분은 비교적 간단하게 그려졌지만, 얼굴만큼은 깊은 인상을 남길 만큼 강렬합니다. 남자의 시선은 우리를 향하는 것 같지만, 우리 너머의 더 먼 곳을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림 속 이 남자는 리하르트 게르스틀입니다. 그는 현재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표현주의자이지만,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에곤 실레나 오스카 코코슈카보다 앞섭니다 그는 1908년, 25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게르스틀은 비엔나 분리파와 같은 단체에 속하지 않았지만 거칠고 자유로운 붓놀림과 과감한 색채로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찾아나갔습니다. 그의 후기작들은 세부 묘사 없이 형상만을 남겨 추상화에 가까웠을 정도였습니다.
게르스틀은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시대를 앞서 오스트리아 표현주의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고 평가됩니다
5부. 선의 파격, 젊은 천재 화가의 예술 세계
20세의 어린 나이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확립한 에곤 실레는 1900년 비엔나의 표현주의 선구자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그의 예술 인생은 짧았지만 인간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독창성은 모더니즘 예술의 선구적인 시도로 평가됩니다. 특히 에곤 실레는 자아 정체성, 고독, 욕망 등 심리적이고 실존적인 주제를 자신만의 선과 색으로 담아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 혼자라는 두려움과 고독감, 한없이 불안한 마음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내면의 고통과 갈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에 표현했습니다. 이제 누구보다 솔직하게 인간을 탐구하고 그려냈던 예술가, 에곤 실레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번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전시회의 가장 대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아마도 유일하게 긴 줄을 서야만 작품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에곤 실레 (1890–1918) 1912년 패널에 유화 물감과 불투명한 물감 레오폴트미술관
6명의 꿈꾸는 예술가들' 중 마지막으로 만나볼 인물은 바로 에곤 실레입니다. 그는 '인간'에 대해 가장 솔직하게 접근한 예술가입니다. 에곤 실레는 죽음에 대한 공포,고독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과 같은 인간의 감정을 자신만의 선과 색으로 표현했는데요, 이제부터 그가 그려낸 작품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에곤 실레는 20세기 초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그 어떤 화가보다도 자신의 얼굴과 몸, 그리고 성격에 대해 깊이 탐구했습니다. 그가 남긴 100점이 넘는 자화상과 4천점이 넘는 밑그림에서 그가 얼마나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자화상에서 그는 깔끔한 흰색을 배경으로 검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실레의 옆에는 꽈리 열매가 강렬한 붉은 색으로 그려져 좌우의 균형과 조화로움을 유지합니다. 에곤 실레는 어깨를 비틀고 우리는 살짝 내려다보고 있네요. 그의 전성기에 그려진 만큼, 예술가로서의 자신감이 눈빛으로 드러납니다. 끊어질 듯 섬세하게 이어지는 선의 표현은 그만의 독창적인 특징입니다. 그의 예민한 성격과 예술가로서의 완벽주의도 잘 드러납니다
소녀의 초상
에곤 실레 (1890–1918) 1906년 종이에 검은 분필과 목탄 레오폴트미술관
1906년, 열여섯 살의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최고의 미술 학교인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러나 엄격하고 보수적인 체제와 교수법에 반발해 1909년 아카데미를 그만둔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던 해에 그린 이 작품은 그가 드로잉에 얼마나 뛰어난 재능이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긴 머리를 한 자화상
에곤 실레 (1890–1918) 1907년 캔버스에 유화 E. 와 H. H. 컬렉션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는 에곤 실레의 자화상이다. 강한 빛을 받아 밝게 표현된 왼쪽 얼굴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빛은 실레의 이마, 뺨, 턱으로 쏟아지며 얼굴의 특징을 매우 섬세하고 정확하게 드러낸다. 다양한 채도의 갈색과 보라색으로 칠해진 머리카락은 개성 있고 생동감이 넘친다. 이 자화상은 실레 자신을 깊이 있게 표현하면서도 내면의 강렬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에곤 실레
철도회사 역장이었던 에곤 실레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랐지만, 실레는 두 살 때부터 색연필과 종이를 잡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실레는 삼촌의 보호를 받으며 자랐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삼촌의 도움으로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교육 방식에 실망했고, 평생 스승으로 믿고 따랐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후원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합니다.
실레는 클림트의 초청으로 참여한 전시회에서 유럽 거장들의 작품 세계를 접했습니다. 초기에는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선보였지만 곧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인물을 표현하는 실레의 독특한 선과 뒤틀린 몸은 곧 그의 화풍으로 자리 잡았고 비엔나 예술계에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인간의 감정과 존재에 대한 고민을 자신만의 선과 색채로 풀어낸 방식은 에곤 실레를 세기 전환기의 가장 독창적인 예술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스스로를 보는 이 II (죽음과 인간)
에곤 실레 (1890–1918) 1911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에곤 실레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 자신을 경영 잃어버리고야 말 것 같은 '정체성의 위기'를 깊이 탐구했습니다. 그는 정말, 불안하고 나약한 사람이었을까요? 그림 속 인물은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 '다른 나'의 유령 같은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은 원래 나눠질 수 없는 자아가 분리되어 불안정한 상태에 있습니다. 창백하게 표현된 유령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유령이 주인공의 어깨를 감싸고 있어, 공포에 떨고 있는 것 같아요. 실레는 어두운 색깔과 날카로운 선으로 주인공이 느끼는 고통과 불안감을 생생하게 표현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아래에서 올라온 매우 크게 그려진 손인데요, 처음에는 주인공의 손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이 손은 주인공의 것도, 유령의 것도 아닙니다. 게곤 실레에게 손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술가에게 손은 가장 기본적인 표현의 도구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더없어서는 안 될 '나 자신, 그 자체'입니다. 정체성의 위기와 죽음을 앞둔 공포, 에곤 실레는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던 걸까요? 죽음으로써 예술가의 삶이 끝나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요?
계시
에곤 실레 (1890–1918) 1911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에곤 실레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거의 남기지 않았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는 편지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어요. 그만큼 애정이 컸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편지의 내용을 읽어 드릴께요. 작품에 담긴 의도를 찬찬히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위대한 인물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이 작품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림은 스스로 빛을 발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의 빛을 평생 소비하며 살아간다. 빛이 모두 소진되면 그들은 더 이상 빛나지 못하게 된다. 뒤돌아선 사람은 위대한 인물에 매혹되었다. 그는 눈을 뜨지 않고도 세상을 보는 위대한 존재들에게 무릎을 끓고 경의를 표하고 있다. 위대한 존재가 발하는 빛은 다양하고 신비로운 색으로 표현됐다. 무릎을 끓은 작은 사람은 크게 빛나는 위대한 존재와 합쳐져 하나가 되고 있다. 이것이 내가 그린 그림 <계시>에 대한 설명이다.
예술가라는 ‘자아 정체성’의 위기
에곤 실레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레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뒤틀린 몸과 해골 같은 얼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선은 인간의 죽음, 예술가라는 정체성이 끝나버리는 순간에 대한 불안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실레는 100여 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을 정도로 자신을 그리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자기 몸을 거울에 비춰 보며 다양한 자세와 구도를 연구했습니다. 실레의 자화상은 자신의 겉모습을 그린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한 도구였으며, 에곤 실레만의 독특한 화법을 보여주는 주제였습니다.
뒤틀린 자세의 누드 자화상
장식이 있는 가운을 입은 누드 자화상
에곤 실레 (1890–1918) 1909년 종이에 연필과 색분필 레오폴트미술관
한쪽으로 몸을 돌려 정확히 관람자를 바라보는 자화상이다. 실레의 작품에서 보이는 독특한 선의 표현은 인물의 연약함과 강렬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몸을 옆으로 돌린 채 어깨 너머로 정면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긴장감이 감돈다. 실레가 걸친 빨간 장식 가운이 팔에서 흘러내려 벗은 몸의 일부만을 가리고 있다. 배경을 비워 인물에게만 집중하게 만든 구도로 인해 실레의 독창적인 화풍과 강렬한 인체 표현이 더욱 돋보인다.
에곤실레를 위한 마지막 공간
이번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회 마지막 공간인 5부 공간은 에곤실레를 위한 공간 입니다. 이번 전시회를 주관하는 레오폴트미술관이 에곤 실레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5부에서 1~4부까지 아쉬웠던 부분이 한 번에 해결됩니다.
남성의 반신 누드 뒷모습
에곤 실레 (1890–1918) 1910년 종이에 검은 분필과 불투명 수채 레오폴트미술관
1910년 무렵 에곤 실레는 누드와 자화상을 중심으로 작업했고 훨씬 성숙한 표현주의 화법을 선보였다. 실레는 자화상을 그릴 때 거울에 자신의 몸을 비춰 가며 자세를 연구했다. 이 반신 누드의 남성 역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빠르고 강한 선으로 그린 남성의 깡마른 몸은 과장된 비례와 비틀린 자세로 실레 특유의 인체 표현을 보여 준다.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으로 옅게 칠해진 몸과 굽은 손의 색감은 과장된 표현을 강조한다.
시인
에곤 실레 (1890–1918) 1911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밑그림 없이 빠른 붓질로 그린 이 작품에서 에곤 실레는 자신을 뒤틀린 자세를 한 시인으로 표현했다. 어색할 정도로 심하게 왼쪽으로 꺾여 있는 실레의 머리는 뒤쪽 흰색 공간에 둘러싸여 있다. 눈썹을 치켜뜬 의심에 찬 눈초리는 옆을 향하고 있다. 창백해 보이는 몸에 검은색 윗옷만을 걸친 실레는 어두운 배경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오른쪽 손목을 살짝 잡고 있는 왼손 아래로, 배꼽과 성기를 붉은색으로 그렸다.
어머니와 아이, 모성에 대한 갈망
1904년 새해 전날, 그의 아버지가 매독으로 사망한 후, 당시 14세였던 에곤 실레는 가정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실레의 어머니는 그가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정착하기를 바랐지만, 실레는 예술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레는 어머니와 많은 갈등을 겪었고, 따뜻한 정서적 교감을 경험하지 못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실레는 어머니와 복잡한 관계를 형성했고, 동시에 여동생 게르트루드와의 친밀한 관계로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실레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와의 불안정한 관계와 죽음이라는 주제를 결합한 것입니다. 죽음은 실레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자화상
에곤 실레 (1890–1918) 재작업: 프리츠 보트루바 (1907–1975)
디자인: 1917년경, 재제작: 1965년 인조석 레오폴트미술관
에곤 실레가 자기 얼굴을 조각한 매우 독특하고 유일한 자화상이다.
실레는 숱이 많은 머리를 뒤로 빗어 넘겼고, 고개를 살짝 들어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하다. 조각에 관심이 많았던 실레는 오귀스트 로댕 같은 조각가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1917년 처음 만든 이 자화상 조각에 대한 실레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이 작품은 1965년 주조한 일곱 점의 청동 조각 가운데 하나다.
어머니와 두 아이
에곤 실레 (1890–1918) 1915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에곤 실레의 부모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15살 때 사망했고, 어머니는 미술을 배우고 싶은 실레를 이해해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에게 따뜻한 애정을 느껴보지 못한 실레는 불안한 관계에 있는 어머니와 아이를 그린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피에타'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온몸을 녹색 천으로 감싼 어머니가 두 아이를 안고 있어, 에곤 실레가 '피에타'의 구도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외 아들의 얼굴은 죽은 듯 해골처럼 창백하게 그려졌고, 원작의 피에타'의 구도에 존재하지 않는 어린 아이가 공중에 떠 있습니다.이 어린 아이는 색색의 줄무늬 옷을 입고 죽은 듯한 어머니와 다른 아이를 절망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잘 지내고 싶었던 에곤 실레의 복잡한 감정들이 작품 곳곳에 표현돼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아이
에곤 실레 (1890–1918) 1912년 패널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작은 크기의 화폭에 그려진 이 작품은 성화인 성모자상을 연상시킨다. 공간을 알아볼 수 없는 어두운 배경 앞에 어머니와 아이가 두꺼운 붓질로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의 머리는 서로 이어져 있는 듯하다.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점잖은 표정으로 아이를 보고 있으나, 아이는 반짝이는 눈을 크게 뜨고 관람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아이의 손은 어머니와 아이의 불안정한 관계를 상징한다.
애도하는 여성
에곤 실레 (1890–1918) 1912년 패널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어두운 천으로 머리를 감싼 여인의 얼굴과 창백한 피부는 마치 해골을 연상시킨다. 여인의 머리 뒤로 또 다른 인물의 얼굴이 살짝 드러난다. 눈썹을 치켜뜨고 입을 꼭 다문 채 관람자를 바라보는 또 다른 인물은 실레가 자신을 표현하던 방식과 비슷하다. 실레는 인물화에서 종종 두 개의 얼굴이나 다른 신체 부위를 사용해 인물 내면의 갈등, 분열된 정체성과 같은 어두운 감정을 드러냈다. 이러한 표현은 인간 심리를 깊이 탐구한 실레가 이중적인 감정이나 복잡한 내면을 다루던 방법이었다.
천을 두른 여성의 뒷모습
<개종 II>의 부분 에곤 실레 (1890–1918) 1913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이 작품의 원작인 <개종 Ⅱ>에는 가운데서 설교하는 인물을 열두 사람이 둘러싸고 있는 장면이 그려졌지만, 현재는 사라져 일부분만 남아 있다. 종교적 상징을 담은 <개종 II>는 인간 내면의 변화를 주제로 하여 영적 각성이나 내적 갈등을 표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어깨에 천을 두른 여성의 비틀거리는 듯한 뒷모습에서 고독과 불안함이 느껴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나무 (겨울나무)
에곤 실레 (1890–1918) 1912년 캔버스에 연필과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바람에 휩쓸린 앙상한 나무가 하늘로 뻗어 있습니다. 꼭 나뭇가지가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잘 보면 나무의 기둥부분이 하늘과 같은 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마치 기둥을 잃은 나뭇가지가 바람이 몰아치는 하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합니다.고립된 외로움과 동시에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강렬한 생명력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작품이 전시회에 출품됐을 때, 한 미술사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의 죽어가는 자연이 가지는 특별한 분위기의 마법과 같다. 에곤 실레는 잎이 없는 앙상한 나못가지로 생명을 그렸다' 이렇듯 에곤 실레는 풍경화 속 자연을 인간이 느꼈을 법한 감정을 넣어 의인화하여 표현했습니다. 자서전과 같은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상실과 고립을 그린 검은 풍경화
에곤 실레는 마치 사람을 그리듯 도시와 자연 풍경에 감정을 담아냈습니다. 풍경은 예술가의 내면 심리와 감정을 나타내는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기묘하게 뒤틀리고 어두운 도시나 강변 풍경을 그린 작품들에서 우리는 실레의 고뇌와 시대적 불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실레는 인간의 상실감과 고립, 정서적 불안감을 검은 풍경화로 그렸습니다. 특히 자신이 보았던 모습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자유롭게 다시 조합하여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냈습니다.
블타바강 가의 크루마우 (작은 마을 IV)
에곤 실레 (1890–1918) 1914년 캔버스에 유화, 검은 분필 레오폴트미술관
에곤 실레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시선으로 크루마우의 슐로스베르크 언덕 건너편 마을 풍경을 그렸다. 마을 집들을 노란색, 흰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으로 표현했는데, 실레가 상상하여 그린 것이다.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그린 건물들에서는 깊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강물과 지붕은 대체로 어두워 실레가 도시 풍경에서 반복적으로 보여 준 고독과 소외감이 묻어난다.
작은마을 III
에곤 실레 (1890–1918) 1913년 캔버스에 유화, 연필 레오폴트미술관
색색의 집들이 빼곡하게 늘어선 곳 아래로 강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강물과 길, 집의 지붕이 모두 어두운 색으로 그려져 전반적으로 암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에곤 실레는 기묘하게 뒤틀린 검은 도시 속에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담아냈습니다. 그는 창의적이지 못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안에서 고립된 자신이 느낀 불안감을 검은 도시 풍경화로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인 남부 보헤미아 지역의 중세 마을을 그린 것입니다. 실레는 이 지역에 살면서 여러 점의 도시 풍경화를 그렸지만, 마을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여러 곳에서 본 도시의 모습을 자유롭게 재조합하여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도시에서 머물며 느낀 소외감을 생명력을 잃은 죽은 도시처럼 검은색으로 그려낸 실레만의 표현법이 돋보입니다.
클림트와 실레의 누드 드로잉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는 각각 4,000장에 달하는 드로잉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중 많은 부분이 누드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누드를 표현한 방식과 목적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클림트는 누드 드로잉에서 여성의 몸에 담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습니다.
그의 드로잉은 섬세한 선과 세밀한 묘사가 특징인데 부드러운 곡선으로 여성의 매력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실레의 드로잉은 현실적이고 과감합니다. 그는 왜곡된 인체와 뒤틀린 자세를 날카로운 선으로 표현해 인간의 고독과 불안, 그 속에서 움트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이런 도발적인 드로잉은 곧 실레 그림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번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회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공간 중 하나...
오른쪽에서 본 여성의 상반신 누드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1916년경 일본 종이에 연필 레오폴트미술관
4천장에 달하는 드로잉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 많은 작품이 누드일 정도였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지그문트 프로이트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흔히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의 중심어 성적 욕망이 있고, 이로 인해 정신적 갈등이 일어난다고 분석했습니다. 클림트와 실레는 인간의 본능을 예술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에로티시즘에 대한 접근 방식은 서로 달랐습니다. 클림트의 드로잉을 보시면, 독특한 코, 도톰한 아랫입술 우울한 분위기의 눈 등 섬세한 얼굴 표현이 돋보입니다. 클림트는 여성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그려냈습니다. 그는 여성의 매력을 표현하면서도 장식적인 요소와 결합하여 아름답고 환상적인 작품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죠. 클림트가 보여주는 드로잉은 섬세하면서 절제된 표현이 특징입니다
왼쪽에서 본, 다리를 올리고 있는 여성의 반신 누드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1917년 일본 종이에 인도 잉크 레오폴트미술관
클림트는 여인이 침대에 푹 파묻힌 느낌을 주기 위해 길고 날씬한 비율을 강조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정리된 윤곽선 대신 불규칙하게 겹친 선들을 사용하여 불안한 느낌을 준다. 거칠게 떨리는 선은 익숙하지 않은 펜과 잉크로 그렸기 때문이지만, 클림트의 후기 작품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특히 이 작품은 형태를 간략하게 암시하듯 그리면서 그 안에 담긴 감정을 드러낸 클림트 말년의 경향을 잘 보여 준다.
클림트의 누드 스케치를 감상했다면, 반대편 공간은 에곤 실레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같은 듯 전혀 다른...
팔이 올라간 여성의 누드
에곤 실레 (1890–1918) 1910년 종이에 검은 분필 레오폴트미술관
이 그림은 여성의 머리, 팔, 몸통을 본 대로 빠르게 스케치한 듯하지만, 양팔의 평행선이 방해받지 않도록 턱 부분을 생략하는 등 실레가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곳 위주로 그려졌다. 실레의 초기 작품들은 장식적인 표현을 추구했으나, 이 시기에는 몸의 구조에 집중했다. 팔과 몸통의 윤곽선이 해부학적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팔을 들어 올린 몸의 안정적인 구조에 중점을 두고 표현했다.
올라간 속옷을 입고 누워 있는 여성의 누드
에곤 실레 (1890–1918) 1915년 종이에 연필 레오폴트미술관
이 작품에서 실레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와 선으로 인체를 표현했다. 이러한 방식을 시도한 시기는 짧았지만 실레는 독특한 양식을 보여 준다. 이 작품에서는 여인의 말려 올라간 속옷을 아무렇게나 낙서하듯 그렸다. 모델의 머리는 소용돌이 같은 선으로, 얼굴은 반원 등 간략한 선으로 그려 마치 인형을 보는 듯하다.
이 그림을 그리던 1915년 무렵, 실레는 개성 있는 얼굴 대신 개인의 특징을 생략한 기하학적 형태로 인물을 표현했다. 실레의 특징이던 ‘말하는 듯한 눈’도 텅 빈 구멍처럼 묘사했다.
파란 스타킹을 신고 앞으로 몸을 숙인 누드
에곤 실레 (1890–1918) 1912년 종이에 연필과 불투명 수채 레오폴트미술관
이 작품을 보면, 척추와 근육이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마른 여성이 앞으로 몸을 숙이고 있습니다. 몸을 표현한 섬세한 선과 부분적으로 칠해진 색은 이 여성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매우 힘들어 보이지만, 섬세한 구도로 안정적인 자세를 만들어낸 것이 신기하네요. 그만큼 이 여인이 느끼고 있는 고통과 고뇌를 표현하기 위한 실레의 고민이 느껴집니다.
회색 망토를 두르고 무릎을 꿇은 여성 (발리 노이칠)
에곤 실레 (1890–1918) 1912년 종이에 검은 분필, 수채, 불투명 수채 레오폴트미술관
이 여인은 에곤 실레의 연인이었던 발리 노이칠입니다. 그녀는 에곤 실레의 모델이었고 그의 많은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실레의 작품에 나오는 붉은 머리의 여성은 대부분 발리를 모델로 한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수줍은 듯 당찬 얼굴의 발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녀의 얼굴과 회색 가운의 주름이 세밀하게 표현됐고, 특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 발이 강조되어 안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실레와 발리는 생활고를 겪으며 여러 지역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실레는 1914년 정착한 곳에서 만난 중산층 집안의 여성과 결혼을 결심합니다. 결국 발리는 에곤 실레를 떠나게 됩니다
이번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전시회의 마지막 공간입니다.
에곤실레의 작품을 논하기 위해서는 그의 에로티시즘 작품이 빠질 수 없습니다. 그만의 독특한 누드 작품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불안함에서 안정감으로, 달라진 누드
에곤 실레는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지만, 특히 경력 초기에 생활고에 시달리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모델이었던 발리 노이칠과 연인 관계였으며, 그녀는 주변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실레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안정적으로 정착하기를 원했던 실레는 결국 발리와 결별하고, 1915년 이웃으로 만난 중산층 집안의 딸 에디트 하름스를 만나 결혼 했습니다. 에디트는 따뜻하고 헌신적인 성품으로 실레에게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에곤 실레는 누드에서 주로 마르고 긴장된 모습으로 내면의 불안함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후기에 실레가 그린 인물들은 대체로 풍만하고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아내 에디트를 만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실레의 감정이 반영된 걸까요? 인물의 모습은 변화되었지만, 생명력을 강조하고 심리적 주제들을 탐구한 그의 예술 세계는 한결같아 보입니다.
누워 있는 여성
에곤 실레 (1890–1918) 1917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에곤 실레에게 누드는 단순한 육체의 묘사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인 욕망과 고독을 대하는 내면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안정된 정착 생활을 원했던 에곤 실레는 1915년 중산층 가정의 딸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했습니다.
에디트는 따뜻하고 헌신적인 성격이었고, 그것은 오랜 시간 실레가 원했던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예민하고 불안정했던 실레의 예술가적 성향과 달리 유복한 환경과 온화함을 가졌던 에디트의 성격은 실레에게 큰 안정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 여인은 바로 실레의 아내, 에디트입니다. 양팔을 위로 올려 머리를 받친 팔의 자세와 넓게 벌린 다리가 가로로 긴 작품에서 대칭을 이룹니다. 실레는 인간의 성적 욕망을 있는 그대로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실레의 후기 작품에서는 이전의 깡마른 모습과 다른 풍만한 여성의 누드가 그려졌습니다. 결혼 이후 심리적으로 안정된 실레가 임신한 에디트를 보며 느낀 감정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요?
안타깝게도 1918년 유럽을 덮쳤던 스페인 독감으로 아내 에디트는 아들을 임신한 상태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3일 후, 에곤 실레도 세상을 떠납니다
서 있는 세 여성 (부분)
에곤 실레 (1890–1918) 1918년 (미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에곤 실레가 생을 마감하자 미완성으로 남게 된 작품이다. 세 여성은 모두 다른 표정과 자세를 하고 있다. 옆으로 몸을 돌린 가장 왼쪽의 여성은 무언가 이미 체념한 표정이다. 가운데 여성은 눈을 크게 뜨고 침착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이 여성에게 기댄 오른쪽 여성은 긴장을 풀려는 듯 눈을 감고 있다. 이 작품은 실레가 말년에 보였던 새로운 회화 양식을 잘 보여 준다.
에필로그/ 예술에는 자유를
전통의 벽을 넘어 새로운 양식에 도전하며 예술은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해 왔습니다. 그 역사 속에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이끈 선구자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났던 ‘꿈꾸는 예술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비엔나 분리파가 오스트리아 예술에 심은 ‘도전과 실험’이라는 나무는 에곤 실레를 비롯한 젊은 예술가들에게 ‘자유’라는 열매를 선물했습니다.
그들의 도전과 실험은 비엔나 예술을 모더니즘으로 이끌었고, 자유를 꿈꿨던 예술가들은 ‘비엔나 1900년’의 선구자가 됐습니다. 전통의 틀을 깨고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했던 이들의 시대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선사합니다.
오늘 소개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전시회는 얼리버드 티켓팅 이후 너무나 기다리던 전시회 였는데요. 에곤 실레의 다양한 여러 원작들을 만나본 부분은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클림트는 약간 사기당한 느낌이 드네요. 제가 아는 클림트의 작품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작품은 어디에도 없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