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구로공단, 구로아리랑이라는 이미지에서 최근 첨단 IT 기업들이 입주하고 발전하는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 입니다. 구로디지털단지역이 아닌 구로공단 역을 기억하시는 분들에게는
| G밸리산업박물관 위치
지밸리산업박물관은 구로디지털단지역 지타워 3층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넷마블과 코웨이 본사가 있지만 2층에는 ㅋㅋ다방과 넷마블 박물관, 코웨이 처험공간이 마련되어 있네요.
| 지밸리산업박물과 휴무일과 운영시간
G밸리산업박물관 휴무일은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 입니다. 운영시간은 화요일~토요일 10시 ~ 18시까지 운영됩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주차는 지타워 주차장을 이용하면 되지만 별도 주차요금 할인은 없습니다.
전시장은 크게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람시간은 한 시간 내외입니다.
ZONE.01 1968,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 속으로
G밸리의 시작이자 구로공단으로 불리는 한국수출산업공단이 만들어진 다음 해, 1968년 한국 수출 무역의 성과를 알리는 한국무역박람회가 개최되며 구로공단이 성장하는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이미 당시 이 역사와 함께하신 분들은 어디서 무엇 하시는지...
ZONE.02 구로에 모이다
산업시설과 시설 노동자들을 위해 지원 시설을 집약한 산업단지인 구로공단은 공업 생산품을 수출하여 한국 경제 성장의 주된 기반이 된다.
지면에서 본 구로공단
과거의 자원과 시설을 모아 둔 구로공단은 단지 여러 공장이 모여있는 지구계획이었지만 오늘날 기업간 협력과 네트워킹이 강조되는 공간인 G밸리 클러스터로 변모한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로공단 시작의 날
한국수출산업단지, 즉 구로공단은 정부의 경제개발 의지와 기업의 도전정신과 노동자들의 헌신이 결합된 한국경제 성장의 시작점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의 여러 흔적들을 만나볼 수 있지만 공감하기는 다소 어려웠네요.
G밸리산업박물관 해당공간 까지는 우리의 부모님이 정말로 몸을 갈아서 만들었던 공단의 눈물나는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ZONE.03 구로공단에서 G밸리로
구로공단은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노동의 빛과 그림자가 뒤섞여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와 작용 및 영향이 쌓여가고 있다. - 안치용 외, 『구로공단에서 G밸리로』, 한스미디어
03-01 손으로 반, 기계로 반 1965~ 1980
한국수출산업단지는 수도권 지역의 유리한 입지와 정부의 다양한 지원을 받아 가발, 섬유, 봉제, 완구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을 기반으로 1971년 10억 달러의 수출을 달성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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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 불이 꺼지지 않는 공장 1981~1990
한국수출산업단지는 수도권 지역의 유리한 입지와 정부의 다양한 지원을 받아 가발, 섬유, 봉제, 완구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을 기반으로 1971년 10억 달러의 수출을 달성했지만...
빨간꽃 노란꽃 미싱은...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이룬 어찌보면 정말로 슬픈 우리의 역사...
대한광학 코비카 카메라... 여기에서 만나다니...
코비카 카메라는 1976년 ㈜대한광학에서
국내 기술로 개발한 대한민국 최초의 자체 브랜드 필름카메라입니다. ‘코비카(KOBICA)’라는 이름은 KOrea, BInocular, CAmera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으며, 쌍안경과 현미경 등 정밀 광학기기를 주로 생산하던 대한광학이 정부의 지원 아래 일본, 독일, 캐나다 등 여러 나라의 기술을 합작해 완성했습니다. 대표 모델인 코비카 35 BC는 35mm 필름을 사용하는 완전 수동식 목측식 카메라로, 사용자가 직접 거리와 조리개를 조절해 촬영해야 하며, 플래시 기능도 탑재되어 있습니다. 코비카 카메라는 당시 외제 카메라에 비해 성능은 다소 부족했으나, 국산 기술로 만든 첫 카메라라는 점에서 산업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03-03 구로지역 20만 노동자여!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은 개인이 처한 현실과 사회적 울분을 연대의 힘으로 풀어가며 그들의 권리의식을 쌓아 구로동맹파업으로 표출한 이야기
월급봉투, 우리 아이는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이문열 구로아리랑, 세상살이 공장살이...
80년대 당시 노동자들의 삶과 현실, 그리고 사회적 편견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다양한 책들...
추억의 다이얼 전화기와 버튼식 전화기 등,,,
요즘 아이들은 이 전화기 작동할 수 있을까요?
백통 전화기, 흑통전화기의 의미를 알 수 있을지...
아주 어린 시절 집이나 친구집, 친척집에서 볼 수 있던 아주 비쌌던 가전제품들...
대한전선 선풍기 D-3590W
1980년 대한전선에서 생산된 선풍기 D-3590W. 상단에 팬이 있고 그 아래 받침대가 있는 형태. 파란색의 팬 4개를 흰색 보호망이 감싸고 있고, 팬 중앙에는 대한전선 로고가 있음
대한전선 주식회사는 1955년 2월에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 종합 전선회사로 조선전선의 후신. 1960년대에 전선 생산의 국산화를 이룸. 1967년 11월 구로구 시흥동에 전선공장을 신설. 1968년 6월에 냉장고, 에어컨, 라디오, 1969년 1월에 텔레비전, 1970년 9월 탁상용 전자계산기를 생산하는 등 1960년대 후반에 가전 분야에 진출. 1983년에 가전사업을 대우그룹에 매각.
금성사 스테레오 라디오 카세트 녹음기 TSR-711
옛날 우리집에 있던 카세트 녹음기 엄청 반가운,..
모델명 TSR-711. 1979년 금성사 라디오 및 앰프 공장이 구로에 준공된 이후 생산된 AM/FM 스테레오라디오/카세트 녹음기. 1985년 미국 모토로라사로부터 AM스테레오 라디오 제조 기술을 도입해 라디오 음악 청취의 질을 한 단계 높인 스테레오 기술이 적용된 라디오. 본체 앞면 양 측면에 스피커가 있고 중앙에 라디오 채널 화면, 채널 조정장, VOLUME, TONE, TAPE SELECT, MODE, FUNCTION 장치가 있음. 그 아래로 카세트 테이프 투입구, TAPE COUNTER, RECORD, PLAY, REW, F.F, STOP/EJECT, PAUSE 장치가 있음.
있는집에서 볼 수 있었다는 자바라 TV, 마마밥솥
03-04 굴뚝 위로 솟은 첨단산업 1991~2020
1990년대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첨단화에 따라 구로공단은 하락세를 보이며 이후 지식 정보의 가치가 중요한 첨단산업 중심의 G밸리로 점차 변화한다.
금성컴퓨터 마이티, 삼성컴퓨터 알라딘, 뉴텍 컴퓨터, 삼보컴퓨터...
세진컴퓨터 세종대왕
19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세진컴퓨터에서 시리즈로 발매한 세종대왕 컴퓨터 세트. 모니터, 본체, 키보드, 마우스 총 4점으로 구성. 모니터의 모델명은 DX-1548, 제조사는 세진컴퓨터주식회사, 제조원은 대선산업주식회사. 본체의 모델명은 SC-세종-126MT, 1996년 4월에 제조됨. 키보드는 세진전자에서 1995년 7월에 제조. 세종대왕 컴퓨터 세트는 세진컴퓨터의 주력 상품 중 하나로서 한국능률협회 컨설팅이 선정한 1998년 올해의 고객 만족 최우수 상품. 1992년 한상수 대표가 컴퓨터 종합 유통업체인 세진컴퓨터랜드를 설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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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서울 잠실에 1호점, 영등포구 당산역 부근에 2호점을 개장함. 1990년대 중반 고급형 PC 자체 브랜드인 세종대왕 컴퓨터 시리즈를 출시하고 '세종대왕은 문맹 없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세진은 컴맹 없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홍보함. 세종대왕 시리즈는 이후 1996년 12월에 TV, 오디오 가전 기능까지 겸비한 세종대왕 프로나 기존의 비디오보드에 비해 4배 이상 빠른 속도로 그래픽 데이터를 처리하는 APG 비디오 카드를 탑재한 세종대왕 98시리즈 등 여러 시리즈로 출시됨. 세진컴퓨터랜드는 무상 수리, 평생 A/S, 무료교육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급속도로 성장함. 무리한 확장으로 인한 위기를 맞아 대우통신에 인수됐으나 1997년 IMF 시기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2000년에 부도처리 됨.
ZONE.04 G밸리 연대기
노동집약적 경공업부터 기술형 제조업 그리고 현대의 첨단 산업까지 구로공단에서 시작하여 G밸리로 변화하는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멀티미디어 공간인데 시간상 패스
| 미디어 라이브러리, 기획전시실
구로디지털단지 G타워 3층 G밸리산업박물관 마지막 공간은 미디어라이브러리와 기획전시실입니다.
멑티미디어 키오스크를 통해 구로공단에서 현재 구로디지털 단지로 변신하는 기간동안의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를 만나볼 수 있고요. 이곳에 전시된 제품들의 자세한 내용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공간은 잘 모름...
| G타워 주차장 및 주차요금
오늘 소개하는 G밸리산업박물관은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지타워 빌딩에 위치해 있습니다. 별도 주차요금할인이나 무료 주차는 지원하지 않습니다.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시면 되고요.
G타워 주차장 진출입 난이도는 어렵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여유있게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입출차가 같이 있으면 조금 긴장 하셔야.
오늘은 청와대 관람 주차장 주차팁 공유했는데요. 주말 기준으로는 운에 맡기며 주변 주차장을 빙빙 돌기 보다는 차가 많다! 라고 생각하시면 국립현대미술관 주차장에 추차 하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이후 조금 올라가셔서 춘추관으로 입장하시고 정문으로 나오셔서 셔틀버스 타시면 됩니다.
사유의 방으로 들어가는 길 벽면에는 멀티미디어 아트가 상영되고 있는데요. 저는 잘 이애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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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 장줄리앙 푸스, 2021
디지털 비디오, 3430 x 1200 픽셀, 5분, 흑백, 사운드
끝없는 물질의 순환과 우주의 확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고체, 액체, 기체의 각기 다른 상태로 존재하는 물질을 미세한 크기에서 거대한 크기로 변화시켜 보여주며 관람자로 하여금 사물의 너머를 보도록 연출하였습니다.
| 사유의 방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소개합니다.
| 반가사유상 뜻, 결가부좌 結跏趺坐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가볍게 얹고 오른손을 살짝 뺨에 댄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이라는 명칭은 상 像의 자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반가 半跏’는 양쪽 발을 각각 다른 쪽 다리에 엇갈리게 얹어 앉는 ‘결가부좌 結跏趺坐’에서 한쪽 다리를 내려뜨린 자세입니다.
‘사유 思惟’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상태를 나타냅니다. ‘반가의 자세로 한 손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불상’을 반가사유상이라고 합니다.
석가모니는 태자 시절부터 인간의 생로병사를 깊이 고뇌했고,
출가를 결심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도 깊은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반가사유상은 이처럼 깊은 생각에 빠진 석가모니의 모습이면서, 깨달음을 잠시 미루고 있는 수행자와 보살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반가의 자세는 멈춤과 나아감을 거듭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움직임 가운데 있습니다. 한쪽 다리를 내려 가부좌를 풀려는 것인지, 다리를 올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갈 것인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반가의 자세는 수행과 번민이 맞닿거나 엇갈리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살짝 다문 입가에 잔잔히 번진 ‘미소’는 깊은 생각 끝에 도달하는 영원한 깨달음의 찰나를 그려 보게 합니다. 이 찰나의 미소에 우리의 수많은 번민과 생각이 녹아들어 있다고 합니다.
가.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7세기 전반
높이 90.8cm, 무게 112.2kg,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3312
크기도 크기지만 무게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 중에서 저에게는 더 익숙한...
과거에는 국보 83로 명명 되었지만 국보에 순서는 없다는 취지에서 이제 연번은 없습니다.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전시실 우측 반가사유상은
단순하고 절제된 양식을 보여 줍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반신, 세 개의 반원으로 이루어진 보관 寶冠의 형태와 두 줄의 원형 목걸이는 간결함을 더합니다. 반면, 무릎 아래의 옷 주름은 물결치듯 율동감 있게 표현되어 입체적으로 흘러내리며 역동성을 보여 줍니다. 양손의 손가락들에선 섬세함이 느껴지고, 힘주어 구부리고 있는 발가락에는 긴장감이 넘쳐흐르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곳 사유의방에 전시된 두 점의 반가사유상 중에서 조금 더 애착가는 작품이 바로 이 반가사유상입니다.
뒷태까지 너무나도 아름다워라~
이 반가사유상은 1912년 이왕가 李王家박물관이 일본인 고미술상 가지야마 요시히데 梶山 義英에게 2,600원이라는 큰돈을 주고 구입한 것으로 알려 있습니다. 당시 2,600원 이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이라고 하네요.
두 점의 반가사유상에는
삼국시대의 최첨단 주조 기술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주조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수직과 수평의 철심으로 불상의 머리에서부터 대좌까지 뼈대를 세운 뒤에 점토를 덮어 형상을 만들고 밀랍을 입혀 반가사유상 형태를 조각한 다음, 다시 흙을 씌워 거푸집(외형)을 만듭니다.
거푸집에 뜨거운 열을 가하면 내부의 밀랍이 녹아 반가사유상 모양의 틈이 생기는데 여기에 청동물을 부어 굳힌 다음 거푸집을 벗기면 반가사유상이 완성된다고 합니다.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금속가공 기술이라 하네요
나.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높이 81.5cm, 무게 37.6kg,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본관 2789
이 반가사유상은 과거 국보 78호 였네요.
전시장 좌측에 위치한 반가사유상은 6세기 후반에 제작된 작품입니다.
날카로운 콧대와 또렷한 눈매, 그리고 화려한 장신구와 정제된 옷 주름 등이 특징으로 꼽히며, 양옆으로 휘날리는 어깨 위의 날개옷은 생동감을 주고, 옷 사이로 살짝 드러난 목걸이와 팔 장식은 화려함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부분이 두 점의 반가사유상의 극명한 차이가 아닐까요?
같은 해인 1912년에 조선총독부가 사업가이자 골동품 수집가인 후치가미 사다스케 淵上貞助에게 4,000원을 보상해 주며 구입했고,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입수하였습니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1945년 국립박물관이 인수하였고, 이왕가박물관(덕수궁미술관) 소장품은 1969년 국립박물관에 통합되었습니다.
반가사유상을 보존하고 있던 사찰과 만든 곳을 짐작하게 해주는 단서들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며, 옛 사람들의 말을 통해 전해질 뿐입니다. 보관 상태, 장신구, 옷 주름 등의 모양으로 살펴볼 때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반가사유상(전시실 오른쪽)은 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만 하네요.
| 사유의 방 구성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방 전시장에 들어오시면 상당히 고급스럽고 안정적인 실내 분위기를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이 공간은 건축가 최욱(원오원 아키텍스 대표)이 디자인하였다고 하네요.
건축가는 반가사유상의 에너지와 공간이 일체화된 느낌으로 전시를 경험할 수 있도록 관람객과의 거리를 고려하여 소극장 규모로 전시실을 설계하였습니다. 관람객은 어둠을 통과하는 진입로, 미세하게 기울어진 벽과 바닥, 반짝이는 천정 등 추상적이고 고요한 전시 공간에서 반가사유상을 집중적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 반가사유상 굿즈 아트샵
반가사유상 문화상품은 박물관 내 문화상품점과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온라인상품점(museumshop.or.kr)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관람후기 마지막 포스팅입니다.
이번 전시회는 총 3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섹션인 조선 전기 불교미술을 다룬 '금金,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 소개입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섹션 + 마지막 특별섹션인 훈민정음 소개입니다.
섹션 3: 금金,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
조선의 건국되면서 유교의 시대가 시작된 뒤에도 불교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교는 공적 영역에서 경제적·사회적 위치가 제한되었지만, 이념과 명분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또한 변함없이 삶의 고통과 죽음의 슬픔을 위로하는 신앙으로 존재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왕실 가족과 사대부는 물론, 일반 백성까지 화려한 불교미술의 조성과 불교 행사에 끊임없이 열중했습니다. 빛나는 금빛 부처를 만드는 마음은 유교의 사회가 시작되어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는 않는 금처럼, 변치 않는 마음을 담은 조선 전기의 불교미술이 소개됩니다.
조선 전기 미술 전시회 대전 금金,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 섹션에서는 총 3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첫 주제는 바로..
01. 조선 부처, 유교의 시대를 가로지르다
조선 초에는 왕실 가족이 불교미술의 조성을 주도했습니다. 왕과 왕비, 대군과 종친들은 사찰을 짓고 불상과 불화를 만들었으며 경전을 간행했습니다. 왕실에서는 가장 뛰어난 장인을 고용하고 가장 좋은 재료를 들여 최고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세상을 떠난 가족을 추모하고 산 자를 위해 복을 비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조선의 불교미술은 최고의 정성과 간절한 바람을 담고 유교의 시대를 가로질러 갔습니다.
조선시대를 배우면 가장 먼저 듣는 단어중 하나가 '억불숭유' 정책인데요. 고려시대부터 계속된 불교문화가 한 번에 사라지기는 불가능 했겠죠. 조선시대에도 불교 예술은 계속됩니다.
조선 전기 미술 전시회 대전 : 불교미술에서는 불상과 불화, 서적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심곡사 탑에서 발견된 부처와 불감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과 금동불상군 深谷寺 七層石塔 出土 金銅佛龕·金銅佛像群
조선 전기 금동 익산 심곡사 보물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기단에서 발견된 부처와 불감입니다. 상자 모양의 불감 안에 7구의 부처와 보살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7구 중 크기가 큰 아미타부처와 관음보살, 지장보살의 삼존상은 원·명 티베트계 불교미술의 영향으로 날씬한 신체를 드러내고 화려한 장신구를 걸쳤습니다. 4구의 작은 상은 대좌가 없고 부처는 양 어깨를 가리는 옷을 입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이처럼 탑 안에 부처와 불감을 넣는 신앙이 유행했습니다
왕실 가족이 금산사 탑을 수리하고 모신 사리장엄
금산사 오층석탑 출토 사리장엄 金山寺 五層石塔 出土 舍利莊嚴
조선 1492년 봉안 금동 금산사 성보박물관
세조의 아들인 덕원군과 만 명이 넘는 신도들이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을 수리하고 넣은 부처와 보살, 사리함 등과 중창 기록입니다. 금산사는 1460년 세조의 시주로 중창이 시작되어 왕실의 지원을 받은 사찰이었습니다. 금산사 탑을 해체할 때에 향기가 나고 장륙상丈六像이 땀을 흘리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왕실 후원 불사에는 이러한 기적이 자주 기록되어 불사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석가탄생도 釋迦誕生圖
석가모니 부처의 탄생
조선 15세기 비단에 색, 금니 혼가쿠지
그림속에서 석가모니를 찾아 보세요. 이런 불화 너무나 좋다는... 불교신자도 아닌데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
석가모니 부처의 일생을 그린 여러 폭의 그림 중 하나입니다. 석가모니가 카필라 왕국의 왕자로 태어날 때의 여러 이야기를 한 화면에 그렸습니다. 그림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는 모습을 그렸고, 시간적으로 전후에 해당하는 장면들을 배치했습니다. 이 그림에 나오는 장면은 조선 전기 왕실에서 지은 부처의 일대기인 '석보상절'에 실린 변상도와 매우 비슷하여, 왕실에서 만든 그림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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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미술 대전 불교미술 공간은 불교를 조금 알고 감상한다면 더 매력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석가출가도 釋迦出家圖
석가모니 부처의 출가
조선 15세기 비단에 색, 금니 쾰른동아시아미술관
석가모니 부처의 일생을 그린 여러 폭의 그림 중 출가 장면을 그렸습니다. 그림 오른쪽에 그려진 큰 궁궐 건물 안에는 석가모니가 떠난 것을 알아차리고 슬퍼하는 태자비와 시녀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화면 위 왼쪽에는 집을 나서 스스로 머리를 깎는 석가모니의 모습을 그렸고, 화면 아래쪽에는 슬퍼하는 아버지 정반왕과 빈 말을 붙들고 우는 태자비를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조선 전기 왕실에서 지은 부처의 일대기인 『석보상절』 등에 나오는 구절을 충실히 나타냈습니다.
영산회상도 靈山會上圖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 부처
조선 16세기 비단에 금니 호놀룰루아카데미미술관
갈색 비단 바탕에 금선으로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 인도의 영취산에서 『묘법연화경』을 설법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강조되고 『묘법연화경』 신앙이 유행하면서 설법도가 많이 그려졌습니다. 그림 아래쪽에는 부처의 설법을 듣는 인물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설법을 들으며 꿇어앉은 보살이나 승려의 뒷모습은 조선 15세기의 경전 변상도에서부터 등장해 조선 후기까지 유행합니다.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조선초기 불상들이 소개됩니다. 첫 섹션에서는 금동 불상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금강산에서 발견된 관음보살
금동관음보살좌상 金銅觀音菩薩坐像
여말선초 금동 높이 18.6 본관11724 보물
이번 새나라새미술 전시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불상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아트샵에서도 모형을 구입할 수 있네요.
연꽃 모양의 대좌 위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입니다. 화불이 있는 보관을 쓰고 큰 귀걸이와 목걸이, 무릎까지 드리워진 장신구를 걸쳤습니다. 허리가 잘록하고 곧은 자세와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은 고려 말 원 티베트계 불교미술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이 보살은 금강산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합니다. 금강산은 고려시대부터 불교 성지로 여겨졌고, 불상을 금강산의 암벽에 봉안하는 신앙이 조선 초까지 유행했습니다.
무량사 탑에서 발견된 부처와 보살
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금동삼존불좌상 無量寺 五層石塔 出土 金銅三尊佛坐像
조선 15세기 금동 불교중앙박물관 보물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향완 청곡사 청동은입사향완 靑谷寺 靑銅銀入絲香爐
인수대비가 만든 수종사 동종 수종사 동종 水鐘寺 銅鐘
왕실이 후원한 유점사에서 만든 종 유점사 동종 楡岾寺 銅鍾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만들어 수종사에 모신 종입니다. 인수대비는 아들이 왕이 되기 전, 수빈 한씨였던 시절에 남편인 의경세자가 세상을 떠난 후 궁궐을 나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종은 당시에 만든 것으로, 왕실 여성들이 궁궐을 나와 머물렀던 사찰인 정업원淨業院 주지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이 종은 어깨에 문양대를 세우고 연꽃 모양 당좌를 표현하는 등 고려 종 양식을 이어받았습니다.
사대부가 발원한 건칠 관음보살
기림사 건칠관음보살반가상 祇林寺 乾漆觀音菩薩半跏像
조선 1501년 건칠 경주 기림사 보물
기존에 보던 불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강한 느낌의 불상입니다.
한쪽 다리를 내리고 편안하게 앉은 관음보살입니다. 흙으로 만든 상 위에 삼베를 겹겹이 씌우고 옻을 발라 단단하게 만든 뒤 속을 비우는 건칠 기법으로 만들었습니다. 건칠상은 재료인 옻이 귀하고 제작이 까다로워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의 예가 여러 구 남아 있습니다. 이 상은 태내군수太內郡守를 지냈던 이원림李園林이 발원했습니다. 관직에 올랐던 인물이 발원하여 조성한 뛰어난 상으로 주목됩니다.
15세기의 뛰어난 조각 수준을 보여주는 부처
조계사 목조여래좌상 曹溪寺 木造如來坐像
조선 15세기 나무 서울 조계사 보물
조선 전기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부처이며, 15세기 조선에 새롭게 들어온 명 티베트계 불교미술 양식을 보여줍니다. 신체와 이목구비가 균형잡혔고, 자연스러운 옷주름이 뛰어난 조각 수준을 보여줍니다. 전라남도 영암 도갑사에 봉안되었다가 1938년 현재의 조계사로 옮겨져 봉안되었습니다. 도갑사는 15세기 후반 왕실의 후원을 받아 대대적인 중창을 한 일이 있는데, 이 불상은 그 때 왕실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무에 금칠을 해서인지 이곳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다른 금동불상과는 확연하게 다른 발색을 보여줍니다.
02. 부처의 말씀을 전할 것이니
조선에서 출판문화가 발전하면서 불교 교리를 담은 경전도 활발히 간행되었습니다. 15세기에는 왕실과 관청에서 불교 경전을 간행했습니다. 한문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해 새로 만든 문자인 한글로 경전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왕실에서 펴낸 경전은 전국으로 퍼져 나가 16세기 전국의 사찰에서 다시 간행되었습니다. 사찰에서는 기도와 학습, 불교 의식 등 사찰에 실제로 필요한 경전을 펴냈습니다.
금강경, 고려대장경, 부모은중경, 묘법연화경 등 이번 조선 전기 미술 전시회 대전 금金,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 섹션에서는 다양한 불교관련 책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만, 책하고는 친하지 않아서... 간략하게 소개를...
세종이 왕후의 명복을 빌며 한글로 지은 불교 노랫말
월인천강지곡 권상 月印千江之曲 卷上
세종世宗(재위 1418~1450) 어제구결 조선 1447년 종이에 금속활자 인쇄 한국학중앙연구원(미래엔 기탁) 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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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비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명복을 빌기 위해 한글로 지은 불교 노랫말입니다. 소헌왕후에게 부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쓰였습니다. 전체 노랫말이 모두 전해지지는 않지만 원래는 600곡 정도 실려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새로 만들어진 문자인 한글로 왕이 직접 지어 금속활자로 찍어냈습니다.
성달생이 글씨를 쓴 묘법연화경
묘법연화경 권5-7 妙法蓮華經 卷5-7
조선 1405년 종이에 목판 인쇄 신수15340 보물
조선 초의 무신 성달생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글씨를 써서 안심사에서 펴낸 『묘법연화경』입니다. 책의 앞머리에는 가로로 긴 변상도가 있는데, 고려시대의 그림을 다시 새겨서 찍어낸 것입니다. 안심사에서는 이 책 외에도 여러 번 『묘법연화경』을 간행했고, 전국의 사찰에서 다시 찍어내며 널리 퍼졌습니다.
03. 모두의 손에서 모두의 마음으로
불교는 16세기에 정책적으로 소외되었지만 지방 사찰은 신앙의 중심지로 세력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사찰에서 불교미술을 조성하거나 의식을 베풀 때에는 신분이 높고 낮은 수많은 사람이 참여했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불교미술을 조성하게 되면서 값비싼 재료보다 나무, 흙과 같이 구하기 쉬운 재료가 선호되었습니다. 사찰마다 불교 의식을 자주 행하면서 의식에 필요한 불화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조선 전기 미술 전시회 대전 이번 작품들은 목조불상입니다.
수백년의 시간을 지났는데, 목조 작품이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다는 부분이 놀랍네요.
나무에 흙을 씌워 만든 관음보살과 지장보살
소조관음보살입상 塑造觀音菩薩立像 소조지장보살입상 塑造地藏菩薩立像
조선 전기 나무, 흙 덕수2209, 덕수1780
한 쌍으로 만들어진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입니다. 조각난 나무를 못으로 연결하여 상을 만들고 전체적으로 흙을 얇게 씌웠습니다. 얼굴과 턱, 온몸에 걸친 옷주름처럼 섬세한 표현이 필요한 곳에 흙을 덮어 조각한 후 삼베를 씌우고 옻칠을 더했습니다. 나무의 단단함과 흙의 섬세함을 모두 이용한 방법입니다. 보살은 얼굴이 장방형에 하반신이 긴 비율을 보입니다. 이는 가슴 앞에서 세 줄로 나뉜 장신구와 다리 앞에서 주름진 옷주름 표현과 함께 15세기 보살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원래 아미타부처를 중심으로 삼존상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무에 흙을 씌워 만든 관음보살
목조관음보살좌상 木彫觀音菩薩坐像
조선 전기 나무, 흙 국립경주박물관 접수411
한쪽 무릎을 세우고 편안하게 앉은 관음보살입니다. 이 윤왕좌輪王坐 자세는 고려시대 이후 수월관음보살의 전형적인 자세였으며, 조선 전기에도 여전히 이어졌습니다. 보살의 몸체는 여러 조각의 나무를 못으로 조립하고 바닥에 흘러내린 옷자락은 흙으로 섬세한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보관과 양팔 장식은 금속으로 만들고 색색의 보석을 박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보살의 둥근 얼굴과 좁은 어깨, 편평한 가슴 등에서 조선 전기의 특징이 엿보입니다.
이번에는 무서운 불화들이 소개됩니다. 죄 짓지 않고 살아야 극락왕생 한다는...
감로를 베풀어 아귀를 구하는 그림
감로도 甘露圖
조선 16세기 삼베에 색 증7551
굶주린 영혼을 먹이고 위로하는 불교 의식에 걸었던 그림입니다. 굶주린 아귀가 그림 가운데 그려져 있으며,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가족, 춤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승려들, 의식 공간에 내려오는 부처와 보살이 그려졌습니다. 의식의 목적과 절차, 내용을 그림으로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일반 신도들을 위한 의식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측하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조선 전기부터 많이 그려지기 시작해 조선의 독특한 의식용 그림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 부처 석가여래설법도 釋迦如來說法圖
지장보살과 10명의 왕 지장시왕도 地藏十王圖
에필로그 조선의 빛, 훈민정음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마지막 공간입니다. 에필로그 공간으로 훈민정음이 소개되는데요.
해가 떠올라 세상을 비춥니다. 새 나라 조선의 문화도 해와 달처럼 빛났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유교적 이상을 바탕으로 옛 문물을 연구하여 새로운 문화와 미술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은 이전 시대와도, 주변 어느 나라와도 다른 조선만의 고유한 세계였습니다. 이 시대의 혁신과 창조성은 훈민정음을 만들어냈습니다. 듣는 대로 쓰고, 말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문자였습니다. 자음과 모음이 어울려 하나의 소리를 이루고, 그 소리가 다시 세상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자기나 불상을 만드는 장인들도 쉽게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교적 이상을 좇던 사대부는 한편으로 이 문자를 만드는 주역이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훈민정음으로 번역되어 모두가 소리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새 시대의 찬란함 속에서 만들어진 훈민정음은 오늘날에도 빛처럼 우리 삶 구석구석을 비춥니다. 빛이 어디에나 닿고, 누구에게나 스며드는 것처럼, 조선 전기와 우리도 500여 년의 시간을 건너 연결됩니다. 앞으로의 우리와도 여전히 그러할 것입니다.
해당공간에서는 영상으로 한글의 원리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번 조선 전기 미술 대전은 국내는 몰론 해외의 박물관과 사찰에서 보관중인 우리의 문화재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번 전시회가 끝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작품들이 많이 있으니 꼭 시간내서 방문하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이번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관람팁 및 예매, 도슨트, 아트샵 등 정보는 지난 포스팅 참고하세요.
잠실 롯데월드몰 넥스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FOOL (풀) x YIROK (이록) 2인전 관람후기 입니다. Fool 작각은 이곳 넥스트 뮤지엄에서 몇 번 전시회가 진행된 것으로 기억되고요. 이록 작가는 이번에 처음 만나는 작가 입니다.
잠실 롯데월드몰 2층 넥스트뮤지엄 전시회 RE-BEING 은 ‘존재를 다시 쓴다’ 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두 작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조’를 탐구하며, 전시 공간의 작품들은 익숙한 질서에 균열을 내고, 그 틈 속에서 존재를 다시 구성합니다.
| FOOL x YIROK 2인전 <RE-BEING>
2025.06.18-2025.07.20 (10:30 - 22:00)
넥스트뮤지엄갤러리. 잠실 롯데월드몰 2층
이번 전시회는 입장료는 무료이며, 별도 주차지원은 되지 않습니다. (롯데월드몰 유료 주차 가능)
두 작가중 먼저 이록 작가 먼저 소개합니다.
YIROK (이록)
이록의 작업은 자아를 끊임없이 묻는 실험이다. 그는 자신을 그리지만, 그것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정체성의 해체와 재구성이다.. 때로는 광대가 되고, 성별 을 넘나들며, 하나의 형상 안에 여러 자아를 중첩시킨다. 이록에게 그림을 그린 다는 것은 곧 자신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보고 확장하는 과정이다. 그의 형상은 자기를 닮았지만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 유사성과 차이는 자 아의 경계를 탐색하는 도구로, ‘나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을 작업 전체에 관 통시킨다.
그림 속에서 그는 자아의 외연을 밀고 당기며, 더 이상 자신일 수 없 는 지점까지 나아가 본질을 시험한다. 이록은 회화적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자아의 핍진성을 유지하려 한다. 바탕과 자아, 기억과 경험이 맞물리는 경계에서 그는 스스로를 다시 확인하며, 그 과정 을 통해 자아의 본질에 닿으려는 사유를 펼친다. 그의 작업은 자아를 향한 집요 한 탐색이자, 그 경계 위에서 이루어지는 조형적 실험이다.
728x90
구슬 속 오로라 61 x 50cm, Oil on canvas, 2025
Last Dance 91 x 72.7cm, Oil on canvas, 2025
| 페르낭 레제 (FERNAND LÉGER)
넥스트뮤지엄갤러리 FOOL x YIROK 2인전 'RE-BEING'에서 이록 작가의 작품을 보면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 (FERNAND LÉGER)의 작품이 생각납니다. 레제는 입체파 화가로 오늘 소개하는 이록 작가의 작품스타일과 닮은 부분들이 많이 있는데요.
깃털 부스러기 91 x 72.7cm, Oil on canvas, 2025
이번 넥스트뮤지엄갤러리 FOOL x YIROK 2인전 'RE-BEING' 전시회에서 한 점을 겟 할 수 있다면 저는 이 작품...
이록은 색의 물질성과 선의 이탈, 그리고 공간의 뒤틀림을 반복적으로 탐구하며, 추상적 표현을 통해 자신의 연민과 내면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그는 물감이라는 재료에 집착하듯 집중하며, 색을 매개로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와 회화적 행위의 의미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작가로서 이록은 회화가 인간의 내면과 본질적인 사고, 그리고 연민의 지점을 드러내는 매체임을 강조합니다.
Espresso is my day 73 x 61cm, Oil on canvas, 2025
알리움 65 x 53cm, Oil on canvas, 2025
YIROK (이록) 작가의 작품에서는 여성과 새가 많이 등장하는데요. 이와 관련된 절대적인 의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작품의 제목과 표현된 작품의 색상과 채도에 따라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고 있는 부분이 매력적이네요.
굴절(refraction) 116.7 x 91cm, Oil on canvas, 2025
날개소유 73 x 61cm, Oil on canvas,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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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L은
예명을 넘어 사회 시스템에 저항하는 선언적 존재다. 그는 “FOOL changes the world”를 외치며, 회화를 통해 체념하지 않 고 저항하는 주체로 자리한다. 기존 재료 대신 직접 조합한 도료로 물질 성과 시간성을 재구성하며, 회화를 조형 행위이자 창작의 노동, 물리적 저항의 형태로 실천한다. 그의 화면은 기억과 감정을 기호화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극장 같은 공 간이다. 정해진 서사 대신 관객의 해석으로 완성되는 유동적 이야기로, 꿈과 현실, 허구와 사실이 교차하는 심리적 공간을 연다.
FOOL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해석이자, 그 안의 개인적 감정과 기억을 미학적으로 재구성하는 시도다. 그는 스스로 만들어낸 재료와 언어로 회화를 다시 쓰고, 이를 통해 관객에게 자신의 위치와 목소리를 묻는다. FOOL은 ‘바보’가 되어 시스템 밖으로 벗어나려는 의지를 작품으로 선언 한다. 재현과 추상, 체념과 돌파를 넘나드는 그의 태도는 동시대 회화에 새로운 감각의 층위를 제안하며, 예술이 구조에 낼 수 있는 균열을 사유 하게 만든다.
Loneliness 116.8 x 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5
Wall 116.8 x 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5
Fool’s dream 10 116.8 x 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5
Check mate 116.8 x 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4
작년 7월 동일한 장소인 넥스트뮤지엄에서 열렸던 Fool 작가의 '선택의 기로' 전시회 포스팅 방문하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