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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취미 전시 공연 요리

종로 전시회 | 세화미술관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시 추천 후기

by a4b4 2026.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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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세화미술관에서 게오르그 바젤리츠(1938-2026)의 60여 년 작업을 돌아보는 회고전이 열리고 있어요.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전시인데요.

 바젤리츠는 20세기 후반 독일 미술의 새 얼굴을 만든 핵심 인물인데, 2차 세계대전과 분단의 기억을 캔버스에 새기면서 파편화된 신체와 거꾸로 뒤집힌 형상이라는 자기만의 언어를 만든 작가입니다. 작품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강렬하고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작품속 이야기를 보면 사랑과 슬픔이 같이하는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했네요.

 

|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시회 개요

먼저 전시회관련 간략한 정보 요약해요

  • 전시명 : 게오르그 바젤리츠
  • 기간 : 2026. 8. 13. - 12. 27.11:00-19:00 (휴관: 매주 월요일)
  • 주차 : 전시관람객 2시간 무료주차로 발권시 차량번호 이야기하면 되요
  • 관람료 : 일반 15,000원, 중·고·대학(원)생 10,000원, 만 65세 이상 7,500원 

| 전시서문 :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치열한 매체 실험으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한 작가라고 해요. 미술사는 물론 자기 옛 작품까지 다시 해석하며 모티프를 끝없이 바꿔 나갔고요. 전시는 60~80년대 초기작에서 시작해 평생의 동반자 엘케의 초상, 2000년대 '리믹스' 연작, 파편화된 신체와 독수리를 지나 마지막 공간의 '골드 페인팅'으로 이어지는데, 작가가 떠나기 직전까지 몰두한 작업이래요. 거꾸로 선 그림 너머의 삶과 예술을 천천히 느껴 보면 좋겠더라고요.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세화미술관 모습이에요. 전시회는 2층과 3층에서 열리고 있어요. 작품 하나하나 메시지가 강하고 작품이 강렬해서 관람에는 최소한 2시간 이상은 생각해야 해요.

 

바젤리츠의 그림은

독일 현대사에 대한 비판 의식과 회화의 자율성 사이에서 출발해요. 그는 동독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처럼 그림을 이념의 도구로 쓰는 것도, 서독 추상미술이 전쟁의 상처를 외면하는 것도 싫어했대요. 그래서 둘 다와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형식을 찾았죠. 자율성과 비판 의식을 함께 담고 싶었던 거예요. 그 출발점이 1960년대 중반 '절편 회화'예요. 《나뉜 소 두 마리 I》처럼 화면을 나누고 형상을 잘라서, 분열된 역사와 불안한 현실을 떠올리게 해요. 이후 거꾸로 그리기로 나아가는데, 그에게 분절과 역전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구상과 추상, 역사와 물감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대요.

 

나뉜 소 두 마리 I, 1966

 

손가락 그림 – 날개, 1972–1973

독수리를 파편화된 '날개'로 단순하게 표현한 작품이에요. 붓 대신 손가락으로 물감을 발라서 거친 자국과 검정·파랑·노랑 색이 강렬해요. 1972년부터 손가락 그림을 시작했는데, 독일의 권력을 상징하던 독수리가 전후 폐허를 겪은 작가 손에서 조각난 날개로 작아진 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독수리 머리, 1986

 

네덜란드 여자, 1979–1980

평생의 동반자 엘케를 그린 작품으로, 한겨울 네덜란드 여행에서 시작됐대요. '푸른 머리 엘케'라고도 불리는데, 붉은 코와 두툼한 옷차림이 이야기를 상상하게 해요. 거친 붓질 속에 배경과 인물이 섞이는 게 딱 바젤리츠다워요. 형상과 그림이 하나로 녹아드는 느낌이에요.

 

붉은 엘케 – 병(11번째 그룹), 1978

 

 

옛날에, 1992

 

 

보색적이고 갈색기가 있는, 2012

 

빨강, 주황, 노랑의 반대, 2012

 

여성 누드 – 누워 있는, 1977

 

 

이어서 다음 공간으로 들어오는데요.

마치 꺼꾸로 걸린 거대한 그림들을 보면 숨이 탁 막히는 것 같아요. 압도된다고 할까요.

1962년에 결혼한 엘케는

60년 넘게 바젤리츠 그림에 등장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감상적으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낯설게 만들었대요. 엘케의 초상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회화 자체를 실험하는 무대였던 거죠. 1969년 처음 거꾸로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도 엘케였는데, 뒤집힌 그림은 표정보다 붓질과 물감, 색과 선에 먼저 눈이 가게 해요.

 

엘케 초상은 바젤리츠 그림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해요. 80년대엔 거칠고 격렬한 붓질을 받아내는 강렬한 모습이었다면, 노년의 그림에선 어두운 배경에 엑스레이나 유령처럼 창백하게 떠올라요. 젊은 날의 분노가 점점 노년과 소멸에 대한 성찰로 옮겨 간 게 느껴져서 괜히 뭉클했어요. 엘케라는 한 사람을 통해 시간과 삶의 유한함을 이야기하는 방이에요.

 

그 시절의 토착 예술, 2025

말년에 엘케와 자신을 함께 그린 이중 초상화 연작 중 하나예요. 두 사람이 어두운 화면에 유령처럼 누워 있고, 사이의 앙상한 침대는 2019년 엘케가 입원했을 때 그린 작품을 떠올리게 해요. 휠체어를 타고 캔버스 위를 지나간 바퀴 자국까지 남아 있는데, 끝까지 그림을 놓지 않으려던 마음이 느껴져서 한참 서 있었어요. 작가에게 휠체어는 한계가 아니라 또 하나의 붓이었대요.

 

토착민들 이전에 이미 다른 이들이 있었다, 2025

 

무거움. 우수, 2025

그 시절 토착민은 누구였나, 2025

 

처음에는 사랑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공간에서 게오르그 바젤리츠 작품속 이야기를 보면 가슴이 아파오네요.

 

어둡다, 이건, 2019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쓴 전사(transfer) 기법으로 자신과 엘케를 그린 초상화예요. 바닥에 펼친 캔버스에 금색 바니시로 그리고, 마르기 전에 검게 칠한 캔버스를 덮어 찍어 내는 방식이래요. 그래서 좌우가 뒤집히고 번짐이 생기면서 두 사람이 유령처럼 흐릿해져요. 바젤리츠는 이 기법을 '추상으로 가는 다리'라고 불렀대요. 금빛과 검정의 대비가 웅장하면서도 덧없어서 기억과 상실이 함께 떠올랐어요. '어둡다, 이건'이라는 제목도 끝나지 않은 문장처럼 여운이 남고요. 결국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에요.

 

프랑스에서의 엘케 III, 2019

 

프랑스에서의 엘케 II, 2019

반세기 넘게 그려 온 아내 엘케의 초상 연작 중 하나예요. 짙은 바탕에 옅은 피부색만으로 희미하게 그렸는데, 대상을 완벽하게 그리는 건 불가능하고 결국 그리는 사람과 대상이 하나가 된다는 걸 보여준대요. 초상화가 뭔지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흐릿한 몸이 오히려 존재감을 더 크게 느끼게 해요.

 

욕실 딸린 조용한 방, 2021

 

이어서 3층 전시실로 이동해요. 유리로된 계단이 독특하면서도 약간 겁나기도 하네요.

 

 

먼저 조금 더 밝은 느낌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요.

 

성 게오르그의 부츠, 1997

 

승리의 날 – 인디언, 2003

 

바젤리츠의 그림은 한 방향으로 발전하기보다 옛 이미지가 계속 돌아오고 바뀌는 구조에 가까워요. 2000년대부터는 초기작을 다시 불러와 새롭게 해석하는 '리믹스'를 시작했죠. 영웅, 발, 숲 같은 이미지가 색과 붓질을 바꿔 가며 새로운 의미를 얻어요. 1965년 시작한 '영웅' 연작의 영웅들은 승리자가 아니라 폐허 속에 상처 입고 서 있는 패잔병 같아요. 더는 믿을 수 없게 된 독일의 영웅 신화를 비꼬는 거래요. 전쟁 말기와 폐허를 어린 시절 직접 겪은 작가라 더 와닿아요. 손, 발, 머리 같은 조각난 신체도 이후 계속 등장하는데, 특히 발은 땅과 몸, 이동과 버팀을 함께 떠올리게 해요. 숲도 중요한데, 독일 낭만주의에서 이상화된 숲이 그의 그림에선 늙은 병사와 사냥꾼이 떠도는 황폐한 곳으로 바뀌어요. 독일적 상징의 어두운 뒷면을 보여주는 거죠.

 

쉬제 포퓔레 콩트레르, 2007

'리믹스' 연작의 대표작으로, 1998년 작품에 나왔던 마르셀 뒤샹과 하녀를 다시 불러왔어요. 포개진 두 사람을 빨강·초록 점무늬 속에 넣어서 미술사 이야기에 야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느낌까지 담았대요. 색감이 화려해서 눈길이 확 가요. 과거 이미지를 지금의 눈으로 다시 읽으려던 시기의 작품이래요.

 

도약(리믹스), 2007

 

 

세 줄 외투(리믹스), 2007

2007년 '리믹스' 연작이에요. 가운데 거대한 인물은 히틀러의 콧수염을 떠올리게 하는데, 몸에 비해 머리가 너무 작아서 위압감이 싹 사라져요. 예전에도 독재자를 우스꽝스럽게 그려 논란이 됐었다는데, 여기서도 형상을 서서히 해체하며 전쟁의 상처를 은유적으로 보여줘요. 안정된 몸 대신 흩어지는 형상이라 보는 내내 묘한 불편함이 남았어요. 그게 작가의 의도였겠죠.

 

무제(반란자), 2006

 

 

 

삶의 이름으로 I(흐멜니츠키), 1998

어린 시절 동독에서 본 사회주의 선전 미술을 자기 식으로 다시 그린 '러시안 페인팅' 연작의 초기작이에요. 그림을 뒤집고 가볍고 투명한 붓질로 바꿔서, 선전 이미지 속 이상이 얼마나 허구였는지 되묻고 있어요. 그 뒤에 숨은 역사의 상처까지요.

 

에켈리, 2004

뭉크가 말년을 보낸 집 '에켈리'에서 1943년에 찍은 사진에서 시작된 작품이에요. 바젤리츠가 사진 속 뭉크 자세를 직접 해 본 뒤 하반신과 신발만 남겼대요. 구두 아래로 뒤집힌 숲이 펼쳐지는데, 선배 화가에 대한 존경이 이렇게 과감한 실험이 됐다는 게 재밌어요.

페이스 피스, 2004

 

눈 없는 겨울도, 2005

2005년 작품으로, 작가가 평생 그린 숲 모티프와 형식 실험이 꽉 담겨 있어요. 검은 하늘의 노란 물감, 해골처럼 하얗게 바랜 나무, 땅 위의 선홍빛 붓질이 익숙한 풍경을 기묘하게 바꿔 놓아요. 숲은 독일 낭만주의의 이상이자 전쟁의 폐허라는 두 얼굴을 가졌대요. 어릴 적 상상력의 원천이자 작가가 사랑한 재료, 나무와도 닿아 있고요. '리믹스'로 넘어가던 전환기의 작품이라 더 의미 있어요.

 

무는 놈, 2016

 

그리고 묵직하고 거대한 조각 한 점이 전시장 중앙에 매달려 있어요.

 

 

제로 모빌, 2014

나무를 거칠게 깎아 구리로 떠서 공중에 매단 조각이에요. 갈비뼈 같은 축 양쪽에 두개골이 달려 있어서 삶의 덧없음을 말하는 바니타스가 떠올라요. 아프리카 원시 조각에서 영감을 받았다는데, 그을린 나무 같은 검은 조각이 허공에 떠 있으니 묘하게 긴장감이 느껴졌어요. 무거운 금속인데 가볍게 떠 있는 것 같아요.

 

 

 

 

 

헴벨, 2004

 

런던에는 볼 게 없었다, 2011

2011년 '런던에서' 연작 중 하나예요. 팔꿈치를 들어 올린 인물 자세가 아우어바흐와 에곤 실레를 떠올리게 하는데, 선배 화가들의 언어를 자기 식으로 바꾼 거래요. 캔버스를 바닥에 펼치고 직관대로 그렸다고 해요. 상반신이나 하반신만 남기고 나머지를 비워 둬서, 붓질이 훨씬 자유롭고 색도 가벼워진 게 느껴져요.

 

리모네, 2020

 

 

바젤리츠 그림에서 거꾸로 된 형상은 단순히 위아래를 바꾼 게 아니에요. 하늘로 오르는 질서를 거부하고 세상을 땅의 눈높이에서 다시 보게 하는 거래요. 그에게 땅은 몸과 물질, 상처와 죽음이 있는 곳이었고요. 떨어지는 손과 발도 같은 이야기예요. 독일에서 권력의 상징이던 독수리도 그의 그림에선 날아오르기보다 떨어지는 모습이에요. 영웅적인 권위를 흔들고, '다른 세계'로 가는 길이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나중에 구두가 발견되었다, 2023

붓 대신 팔레트 나이프로 그린, 뒤집힌 채 떠다니는 새의 모습이에요. 바젤리츠는 어릴 때 사진작가 헬무트 드렉슬러와 야생동물을 관찰했고, 1953년 처음 독수리를 그린 뒤 50년 넘게 변주해 왔대요. 이 작품에선 권력의 상징이라는 무게를 벗어던진 느낌이에요. 제목은 시인 파울 첼란이 나치 전력이 있던 하이데거를 찾아가 사과를 기대했다가 상처만 안고 돌아서며 구두 한 짝을 남겼다는 일화에서 왔어요. 그런데 그림이 그 이야기를 그대로 설명하진 않아서, 보는 사람마다 여러 의미를 떠올리게 돼요. 일부러 어긋나게 둔 거라니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무제, 2025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시 마지막 공간이에요. 

정말로 숨막히게 작품을 봤고, 이번 공간은 어떨지...

 

보통 몸의 중심은 머리나 가슴이고 손발은 도구처럼 여겨지는데, 바젤리츠는 이걸 뒤집어서 손과 발에 집중했어요. 그의 그림에서 손발은 세상을 만지고 딛고 버티는 곳이지만, 온전한 몸으로 합쳐지지 않고 떨어지고 뒤집힌 조각으로 나타나요. 그래서 그의 그림은 완벽한 인체가 아니라 세상과 부딪히는 몸의 불안하고 여린 상태를 보여줘요. 말년의 '골드 페인팅'에선 이런 생각이 훨씬 고요해져요. 금빛 바탕 위에 가느다란 선으로 그린 자신과 엘케가 곧 사라질 듯 희미하게 떠 있어요. 예전처럼 격렬한 붓질로 화면을 채우지 않아서 더 조용하게 다가와요. 금은 영원과 신성을 뜻하지만, 그 위의 인물들은 노년과 죽음, 사라져 가는 몸을 보여줘서 장엄하면서도 참 애틋했어요. 장엄한 빛과 연약한 몸 사이의 긴장이 이 방의 분위기를 만들어요.

 

빌럼의 다리, 2020

《키르히너의 손》과 《빌럼의 다리》는 바젤리츠가 존경한 키르히너와 빌럼 더 코닝에게 바치는 작품이래요. 세상과 관계 맺는 '손'과 땅에 뿌리내리는 '발'로, 초월보다 현실에 닿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느껴져요. 금빛 조각이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서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키르히너의 손, 2019

 

 

그보다 더, 2026

2026년에 그린 최근작으로, 작가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작업의 핵심 이미지'라고 한 '골드 페인팅' 연작이에요. 금빛 바탕에 가느다란 선으로 인물이 떠오르고, 위쪽에 팔레트 나이프로 올린 파란 물감이 강렬해요. 말년의 화가가 자신의 부서질 듯한 몸을 그대로 담은 것 같아서, 아름다우면서도 위태로워서 마음이 오래 머물렀어요.

 

비가 많이 왔다, 2026

 

 

오늘소개한 세화미술관 게오르그 바젤리츠 회고전은 최근 본 전시회 중에서 저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전시회 였어요. 종로 전시회 고려 하신다면 꼭 추천드리고요. 저도 시간되면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전시회로 기억되네요.

세화미술관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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