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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취미 전시 공연 요리

페리지갤러리 서해영 개인전 '순수 조각' 관람 후기

by a4b4 2026.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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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지갤러리 서해영 개인전 '순수 조각'

예술의 전당 전시회 보러 왔는데, 근처 페리지갤러리에 들렀어요. 이번 전시는 PERIGEE ARTIST #41, 서해영 작가의 《순수 조각 To Sculpt, Purely》예요. 10월 7일에 막 오픈한 따끈따끈한 무료 전시회에요.

 

📍 전시 정보

· 전시기간 : 2026. 10. 7.(수) ~ 11. 21.(토)
· 장소 : 페리지갤러리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18, KH바텍 사옥)
· 운영시간 : 월~토 10:30~18:00 (12:00~13:00 브레이크타임), 일요일 휴관
· 관람료 : 무료

 

KH바텍 건물 회전문 옆에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갤러리 입구가 나와요. 입구에 전시 포스터랑 리플렛이 놓여 있는데 꼭 하나 챙기세요! 뒷면에 작품 배치도가 있어서 보물찾기 하듯이 작품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거든요.

 

전시장에 딱 들어서면 생각보다 텅 비어 보여서 처음엔 '어? 작품이 어디 있지?' 했어요 ㅋㅋ 근데 이게 이번 전시의 묘미더라고요. 커다란 〈산〉, 〈바다〉, 〈안개〉 사이사이 바닥이랑 벽 곳곳에 손바닥만 한 브론즈 조각 〈사물들〉 연작이 숨어 있어요.

작가 노트를 읽어보니 이번 전시는 '나는 어떻게 만드는 사람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전시래요. 그동안 '과정-중심의 조각'을 해왔던 작가가, 이번에는 의미를 거창하게 붙이기보다 지금 내 삶에서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을 흙으로 '그냥' 만들어 보기로 했다고 해요. 그 첫 대상이 산, 두 번째가 바다,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안개예요.

 

 

A-1 〈사물들 - 사과〉 브론즈,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 2026

입구 쪽 낮은 단 위에 사과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어요.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자리라 꼭 찾아보세요!

작가의 7월 장마 시작 무렵 일기에 작업실에 두었던 '못생긴 사과'를 흙으로 만들어 봤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먹기엔 좀 그렇고 버리기엔 아까운, 주름지면서 볼륨이 꺼져가는 사과를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손으로 더 만져보고 느껴보려 했대요. 가까이서 보면 쭈글쭈글한 주름이랑 꼭지 쪽 움푹한 부분까지 살아 있어서 묘하게 정이 가요 ㅎㅎ

 

 

 

A-2 〈사물들 - 과일 비슷한 것〉 브론즈,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 2026

작품 제목부터 너무 귀엽지 않나요? ㅋㅋ 쩍쩍 갈라진 표면이 무화과 같기도 하고 석류 같기도 하고… 딱 이름 그대로 '과일 비슷한 것'이에요. 정답을 정해두지 않은 이 느슨함이 이번 전시랑 참 잘 어울린다 싶었어요.

 

 

B 〈산〉 석고, 157(w)×25(d)×24(h)cm, 2026

전시장 왼쪽에 길게 누워 있는 하얀 석고 덩어리가 바로 〈산〉이에요. 작가가 새 작업실을 구할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발코니에서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는 점이었대요. 어떤 날은 아주 멀리 있는 것 같다가도 어떤 날은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 같은 그 산을 매일 바라보면서 만든 작품이에요.

 

재밌는 건, 산의 앞면은 보이는 대로 만들 수 있지만 뒷면이나 골짜기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앞과 뒤가 구분되는 부조처럼 표현했대요. 발코니에서 자라는 머루포도 넝쿨이 점점 산을 가려서 섭섭하기도 했다는 일기도 있는데, 그 이야기를 알고 보니 산 뒤로 드리운 그림자까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A-3 〈사물들 - 은행잎〉 브론즈,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 2026

하얀 벽에 점 하나처럼 보이는 거, 보이시나요? 저게 은행잎이에요 ㅎㅎ 저도 배치도 보고 한참 두리번거리다 찾았어요.

가까이 다가가면 살짝 말려 들어간 은행잎 모양이 그대로예요. 가을을 지나오며 작가 곁에 있던 사물들이라는데, 딱 요즘 길에서 보는 은행잎이라 더 반가웠어요.

 

A-4 〈사물들 - 양말〉 브론즈,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 2026

그리고 바닥에 구겨진 채 놓인 건 양말이에요. 벗어서 아무렇게나 던져둔 양말이 브론즈가 되니 이렇게 근사해질 수가… 집에 굴러다니는 제 양말들도 다시 보게 됐어요 ㅋㅋ

 

 

C 〈안개〉 아크릴 모델링 페이스트, 나무판넬, 가변크기, 2026

전시장 한가운데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판넬들이 〈안개〉예요. 산과 바다 사이에 놓여 있어서, 판넬 사이를 걸어가다 보면 저쪽이 가려졌다가 보였다가 해요.

7월 장마철 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안개가 끼니 매일 보던 산이 보이지 않는데, 산은 분명 저기 있을 텐데도 내가 봤던 산이 진짜 있었던 건지 의심하게 된다고요. 그리고 안개는 보지 못하고 산만 보려고 했던 자신을 깨달았대요. 강릉 바다를 보러 대관령 터널을 지날 때 앞이 하나도 안 보이던 안개도 이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하고요.

작가에게 조각은 '나와 내가 바라보는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무엇'이라는데, 이 〈안개〉 앞에 서 있으니 그 말이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제일 오래 머문 작품이에요.

 

 

A-5 〈사물들 - 나무조각〉 / A-6 〈사물들 - 포도〉 브론즈,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 2026

안개 판넬 끝자락 바닥에는 나무조각이랑 포도가 나란히 놓여 있어요. 이 포도가 바로 발코니에서 산을 가리던 그 머루포도 아닐까 싶어서 혼자 괜히 반가웠어요 ㅎㅎ 알알이 붙은 포도송이가 손톱만 한데도 디테일이 살아 있어요.

 

 

A-7 〈사물들 - 종이컵〉 브론즈,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 2026

찌그러진 종이컵도 있어요! 작업하다 커피 마시고 꾹 눌러둔 컵이었을까요? 가장 하찮은 일회용품이 가장 오래 남는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게 재밌었어요.

 

 

A-8 〈사물들 - 나뭇가지〉 / A-9 〈사물들 - 조개껍질〉 브론즈,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 2026

벽에 기대 세워둔 가느다란 나뭇가지와 그 발치의 조개껍질. 조개껍질은 바다 작업하러 강릉 갔을 때 주워 온 걸까 상상해 보게 되더라고요. 너무 작아서 놓치기 쉬우니 전시장 안쪽 벽 아래를 꼭 살펴보세요.

 

 

D 〈바다〉 알루미늄, 215(w)×23(d)×40(h)cm, 2026

전시장 오른쪽, 〈산〉과 마주 보는 자리에 놓인 은빛 덩어리가 〈바다〉예요. 요즘 강의 때문에 자주 가게 된 강릉 바다를 만들었대요. 바다 사진을 보며 작업실에서 만들 수도 있었지만, 여름 휴가철 땡볕 아래에서 도구와 재료를 차에 가득 싣고 직접 바다 앞에서 만들었다고 해요.

 

처음엔 수평선으로 멀어지는 바다를 묘사하려다가, 막상 바다를 보니 그 넓은 바다를 조각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대요. 그래서 내가 이곳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 그 느낌을 담았다고요. 옆에서 보면 파도가 일렁이는 결이 그대로 느껴지고, 조명에 따라 반짝이는 게 진짜 물결 같아요.

 

 

A-10 〈사물들 - 능소화〉 브론즈,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 2026

〈바다〉 바로 옆 바닥에는 능소화 한 송이가 떨어져 있어요. 여름에 피었다가 송이째 툭 떨어지는 능소화 모습 그대로라 괜히 마음이 몽글해졌어요. 이렇게 사과부터 능소화까지 열 개의 〈사물들〉을 다 찾으면 미션 클리어! ㅎㅎ

 

 

전시를 보고 나서

리플렛 안쪽에는 페리지갤러리 신승오 디렉터의 글 〈조각이 가닿는 자리〉가 실려 있어요. 작가가 산과 바다, 안개, 그리고 작은 사물들 사이의 멀고 가까움, 크고 작음, 앞과 뒤 같은 관계를 전시장에 펼쳐 놓았고, 관객이 각자의 시선으로 그 사이를 이어 가며 하나의 별자리를 완성하게 된다는 내용인데요. 다 보고 나서 읽으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어요.

서해영 작가(b.1983)는 여성이자 조각가로서 자신의 구체적인 조건과 경험을 반영한 '과정-중심의 조각'을 꾸준히 해온 작가예요. 《산에서 조각하기》, 《여성조각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 《조각가를 위한 생츄어리1-바위옮기기》, 《역기념비 프로젝트: 새들을 위한 기념비》 같은 작업들을 해왔다고 해요.

 

작가 노트 마지막에 이제는 자기가 만든 파편들을 다시 바라보고, 다시 느끼고, 아껴주고 싶다는 문장이 있었는데 그게 오래 남더라고요. 매일 지나치던 사과 하나, 은행잎 하나도 이렇게 오래 들여다보면 다르게 보이잖아요. 바쁘게 살다 보면 눈앞에 있는 것들을 제대로 못 보고 지나칠 때가 많은데, 전시장을 나오면서 저도 제 주변을 좀 더 천천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규모가 아담해서 30분~1시간이면 충분히 볼 수 있고, 무료라 부담 없이 들르기 좋아요. 고속터미널이나 반포 쪽 가실 일 있으면 11월 21일 전에 꼭 한번 들러보세요 😊

페리지홀앤갤러리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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