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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취미 전시 공연 요리

현대카드 웨인 티보 전 관람 후기 @ 동대문디자인 플라자 전시회

by a4b4 2026.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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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디저트와 일상의 풍경을 독특한 색채와 두터운 질감으로 재해석한 작가인 웨인티보 전시회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뮤지엄에서 열리고 있어 다녀온 후기에요.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31 웨인 티보 전 'The Order of Things'

  • 전시기간 : 2026년 9월 19일(토) ~ 2027년 2월 21일(일)
  • 전시장소 :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뮤지엄 전시 1관(지하 2층)]
  •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8시 (오후 7시 입장 마감)
  • 주차 : 2시간 무료

웨인 티보 Wayne Thiebaud (1920–2021)는

현대 미국 미술을 대표하는 가장 독창적인 거장 중 한 명이에요. 1960년대 팝아트와 자주 묶였지만, 정작 그는 회화의 깊은 전통 위에서 자기만의 길을 걸었대요.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한 동시대 작가들과 달리 손으로 그리는 과정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고요. 케이크 한 조각, 식료품 진열대, 아찔하게 가파른 도시의 거리, 홀로 있는 인물 같은 일상의 단면을 빛과 색, 형태로 풀어냈어요.

먹음직스러운 그림 뒤에는 원, 원뿔, 삼각형, 사각형 같은 기본 도형이 리듬감 있게 반복되는 '사물의 질서'가 숨어 있는데, 미묘한 그림자와 번지는 색 덕분에 전혀 딱딱하지 않아요. 이번 전시는 정물화부터 인물화, 캘리포니아 풍경화, 《딜라이츠》 판화 연작까지 70여 년의 작업을 한자리에서 보여줘요.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었어요.

 

 

이번 웨인티보전에서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요?

음식을 먹는 인물들 (간단한 간식) (1963)

웨인티보 초기 작품

1960년대 초 미국 전역에서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 티보는 10년 넘게 상업 디자인, 만화, 무대 디자인, 미술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실력을 쌓았대요. 40~50년대 그림엔 추상표현주의와 빌럼 데 쿠닝 같은 스승들의 붓질이 짙게 묻어나요. 《자화상》(1947), 《시가 진열대》(1955)에서는 두꺼운 질감과 흙빛 색채, 평평한 구성을 실험했고요.

이때부터 이미 상점 진열대와 구조적인 배치에 관심이 많았어요. 《길거리 음식》(1959), 《감자 튀김》(1961)은 물감을 두껍게 올리는 임파스토와 대중식당의 소박한 기하학적 형태가 만난 작품으로,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대요. 흔한 사물을 텅 빈 배경 위에 하나씩 놓으면 물감 자체가 무게감을 갖는다는 걸 이때 발견한 거죠.

“나는 나 자신을 초보자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바로 거기에 모든 즐거움이 있다. 그저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을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잠자는 인물 (1959)

길거리 음식 (1959)

자화상 (1947)

시가 진열대 (1955)

감자 튀김 (1961)

1950년대 후반 티보는 상점 진열대를 그리다가 그 안의 음식에 주목하게 됐고, 광고 디자인에서 배운 기하학적 구성과 인공조명에 대한 관심을 그림에 담았어요. 종이 접시 위 감자튀김은 특별한 이야기보다 그 시대의 일상을 보여주는 소재였고요. 넓은 붓질과 단순한 색면은 사물을 정확히 그리기보다 색과 형태, 공간의 관계를 실험한 결과예요. 이 무렵 원과 삼각형 같은 기본 형태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이후 파이와 케이크로 이어지는 자신만의 음식 정물화가 여기서부터 출발했어요.

 

테니스 선수 (자화상) (1985)

 

티보는 평생 '예술은 예술에서 나온다'고 믿었대요. 디에고 벨라스케스, 장 시메옹 샤르댕, 폴 세잔 같은 거장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미술관 소장품을 '예술적 기준의 원천'으로 삼았고요.

《베티 진 티보와 책》(1965-1969)에선 아내가 거장들의 드로잉이 실린 책 앞에 앉아 있고, 《35센트짜리 걸작들》(1970/1972)에선 철제 진열대 위 저렴한 미술 엽서가 명작을 누구나 살 수 있는 상품으로 바꿔 놓아요. 미술사학자든 수집가든, 그림을 바라보는 행위 자체를 그려서 회화가 지금도 이어지는 살아 있는 전통이라는 걸 보여주는 방이에요.

 

화랑에서의 작품 소개 (2003/2005/2006/2009)

35센트짜리 걸작들 (1970/1972)

노(老) 수집가 (2003/2009)

미술사학자 (1971/1994)

 

베티 진 티보와 책 (1965-1969)

이 그림은 티보가 아내 베티 진을 그린 초상화예요. 음식 정물화 이후 인물화로 넘어가던 시기, 가족을 모델로 그린 작품이죠. 그녀 앞에 놓인 책에는 드가와 쇠라의 작품 스케치가 담겨 있는데, 티보가 기억에 의존해 그려 넣은 거예요. 책이 좀 멀리 있어서 베티 진은 책을 읽기보다는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고요. 거의 비어 있는 배경 덕분에 우리는 그녀의 표정과 시선, 책 속 그림에 더 집중하게 돼요. 재미있게도 이 책은 빈 공간을 채우려고 나중에 덧그린 거라, 한 사람의 초상과 미술사가 한 화면에서 만나는 셈이에요.

 

티보가 그린 대중식당의 음식과 디저트 진열대는 그야말로 눈으로 즐기는 만찬이에요. 삼각형 파이, 크림 바른 케이크, 사탕과 아이스크림, 얇게 썬 햄을 보고 있으면 괜히 입맛이 돌더라고요. 그는 물감 자체가 대상처럼 물질감을 갖게 하는 방식을 '액추얼리즘'이라고 불렀는데, 버터처럼 두껍게 올린 유화 물감이 진짜 크림이나 마요네즈처럼 보여요.

그런데 풍요로운 그림 속에 묘한 정적도 흘러요. 티보는 “나를 사로잡는 것은 바로 배제하는 측면이다. 그 안에는 많은 갈망이 있다.”라고 했대요. 혼자 먹는 사람을 위해 차린 음식들이 서로 깔끔하게 떨어진 채, 멈춘 시간 속에 봉인된 것 같아요.

 

접시 위의 생선 (1964-1980)

 

 

샐러드, 샌드위치와 디저트 (1962)

티보는 파이나 케이크처럼 일상적인 음식을 즐겨 그렸는데, 이 작품엔 1950~60년대 미국의 음식 문화와 개인적 기억이 담겨 있어요. 반복해서 등장하는 음식이 미국의 과잉 소비를 풍자한 거라는 해석도 있었지만, 정작 티보는 그건 자기 의도가 아니라 그 시절 일상의 친숙한 기억일 뿐이라고 했대요. 그림 속 음식은 극적인 그림자를 드리우며 흘러내릴 듯 그려졌고, 진열대는 세잔 정물화처럼 기울어 보이면서도 뒤로 갈수록 그릇이 확 작아져서 과장된 원근감을 만들어요. 그래서 평범한 진열대가 왠지 낯설고 깊은 공간처럼 느껴지는 거죠.

 

 

닭다리 정식 (2011)

한 사람을 위한 식사가 가지런히 차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식탁 위 물건들이 가까이 있어도 서로 닿지 않고 거리를 두고 있어요. 나이프와 포크, 소금통과 후추통 같은 짝도 예외 없이 각자 자리를 지키고 있죠. 티보는 흰색 물감을 두껍게 올리는 임파스토 기법으로 이 거리감을 더 강조했고요. 그래서 음식의 맛보다 사물 하나하나의 존재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이게 바로 분리와 고립을 담은 티보만의 방식이에요.

 

세 개의 아이스크림 콘 (1964)

티보는 아이스크림 콘 세 개를 나란히 놓고, 색과 그림자로 평범한 소재를 강렬하게 그렸어요. 콘의 삼각형과 둥근 아이스크림 모양은 그가 즐겨 쓰던 단순한 형태의 연장선이고요. 특히 눈에 띄는 건 그림자인데, 검정이나 회색이 아니라 파랑이나 보라 같은 선명한 색으로 표현했어요. 그래서 그림자가 단순한 명암이 아니라 색채의 일부가 되고, 빛과 공간감까지 생생하게 살아나요.

 

더블 스쿱 아이스크림 (2013-2015)

 

무제 (식료품) (2016/2018)

음식이 담긴 그릇들 (1992/2000/2005)

둥글게 놓인 디저트 (1992-1994)

 

티보 작품을 관통하는 질문 중 하나가 질서와 무질서의 관계래요. 디저트와 페이스트리, 탄산음료 병, 사무용품을 가지런한 줄과 격자, 원형으로 배열한 모습은 대량생산과 규격화된 진열을 떠올리게 해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완전히 똑같은 건 하나도 없어요.

접시 하나를 줄에서 살짝 비켜 놓거나, 장식 모양을 바꾸거나, 그림자 방향을 뒤집는 식으로 변주를 주거든요. 《흩어진 파스텔》(1972)에선 아예 격자를 허물고 색색의 분필을 화면 곳곳에 흩뿌렸고요. 정해진 질서에서 살짝 벗어나는 순간 오히려 조화가 가장 강해진다는 걸 보여주는 섹션이에요.

 

줄지어 놓인 신발 (1975)

신발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놓여 있는데, 짝 없이 저마다 홀로 놓여 있어서 한 화면에 모여 있어도 서로 독립적으로 보여요. 티보는 이걸 '외로운 함께 있음'이라고 표현했대요. 규칙적인 배열이 질서를 주지만, 신발들끼리는 서로 관계를 맺지 않은 채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죠. 크고 빠른 붓질로 표현된 그림자와 질감 덕분에 평면인데도 실제 사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고요. 평범한 사물로 함께 있음과 고독을 동시에 담아낸 작품이에요.

 

세 개의 사과 젤리 (1964)

 

 

장난감 (1971)

페퍼민트 캔디 진열대 (1963)

무제 (여섯 병의 탄산음료) (1985년경)

줄지은 진열 (1989)

“예술은 아침 신문처럼 배달되는 것이 아니다. 올림포스산에서 훔쳐 와야 한다.”

흩어진 파스텔 (1972)

티보는 서로 다른 크기와 색깔의 파스텔을 화면 곳곳에 자유롭게 흩어 놓았어요. 무작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파스텔 사이 거리와 빈 공간, 색의 관계가 세심하게 조절되어 있어서 나름의 리듬이 느껴지죠. 재밌는 건 '파스텔을 파스텔로 그렸다'는 점이에요. 선명한 색과 강한 빛, 짙은 그림자가 파스텔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드러내고, 빈 공간은 색을 돋보이게 하는 무대 역할을 해요. 여러 방향으로 흩어진 파스텔이 화면 밖으로도 이어질 듯해서, 평범한 사물 묘사를 넘어 하나의 추상적인 그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무제 (담배 세 개비와 시가 하나) (1973)

 

 

1960년대 중반부터 티보는 정물화에 쓰던 엄격한 방식을 인물화에도 그대로 적용했어요. 사진 스튜디오나 TV 무대처럼 새하얀 배경 앞에 인물을 두고, 이야기나 감정 표현은 거의 덜어냈대요.

《앉아 있는 다섯 인물》(1965), 《초록 드레스》(1966), 《학생》(1968)을 보면 그가 말한 '외로운 함께 있음'이 딱 느껴져요. 나란히 앉아 있어도 서로 소통하지 않고, 각자 바깥이나 자기 안을 바라보고 있거든요. 에드워드 호퍼가 떠오르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현대인의 고독이 짙게 전해졌어요.

 

로브를 입은 여인과 편지 (1976/1982/2003/2013)

로브를 입은 인물이 혼자 있으면서도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에 놓인 모습을 처음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인물은 홀로 앉아 있지만 완전히 고립된 느낌은 아니고, 관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해요. 화면 앞의 좁은 단은 르네상스 초상화처럼 인물과 관람자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요. 전경의 봉투는 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인물은 편지 대신 정면을 바라봐요. 어두운 로브 위로 화려한 색채가 더해지고, 단 주변엔 그림자 대신 강렬한 색띠가 나타나면서 평범한 장면이 개성 있는 이미지로 바뀌어요.

 

드레싱 룸의 인물 (1975/1994)

앉아 있는 다섯 인물 (1965)

다섯 사람이 함께 있지만 대화도, 눈빛 교환도 없어요. 가까이 앉아 있으면서도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있어서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죠. 우아한 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모습이 격식 있는 파티 같지만, 분위기는 무겁고 조용해요. 특히 신기한 건 의자엔 그림자가 있는데 사람에게는 그림자가 없어서, 마치 유령처럼 느껴진다는 점이에요. 서로 다른 곳을 보며 만들어내는 이 심리적 거리는,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는 외로움과 단절을 떠올리게 해요.

 

학생 (1968)

초록 드레스 (1966)

 

연설하는 사람 (2003/2008)

두 개의 웨딩 케이크 (2015)

거의 똑같이 생긴 웨딩 케이크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장식에 미세한 차이를 줘서 리듬감과 긴장감을 만든 작품이에요. 닮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작은 차이가 더 눈에 들어오죠. 특히 눈에 띄는 건 물감의 질감인데, 진짜 크림을 휘저은 듯한 붓질이라 그림이 아니라 물감으로 케이크를 만든 것처럼 보여요. 티보에게 대칭은 완벽한 균형보다는 반복 속 작은 어긋남을 즐기는 방식이었던 거죠.

 

티보에게 대칭은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 아니라 균형과 긴장감을 살펴보는 방법이었대요. 그는 사물과 인물을 짝지어 놓는 걸 즐겼는데, 《두 개의 하트 케이크》(1994)와 《두 개의 웨딩 케이크》(2015)처럼 거의 똑같은 케이크 두 개를 나란히 두고 색과 붓질, 각도를 조금씩 달리해서 생동감을 줬어요. 신발, 담배 같은 일상 물건이나, 롱비치 해변 산책로의 기억이 담긴 핀볼 기계·자판기·슬롯머신 그림에서도 이 방식이 반복돼요. 《5센트 핀볼 게임》(1962-1963)은 곧게 선 몸체와 가느다란 다리가 꼭 사람 같아서 귀여웠어요.

 

연기 나는 시가 (1974)

하얀 구두 (1995)

무제 (두 개의 케이크) (1988)

바비큐 치킨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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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센트 핀볼 게임 (1962-1963)

두 개의 하트 케이크 (1994)

검은 신발 (2018)

 

밝은 색과 익숙한 소재 이면에는 어딘가 불편한 구석도 있어요. 바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언캐니(uncanny)'의 영역이에요. 프로이트 말처럼 원래 친숙하던 게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상태인데, 티보는 일상의 맥락에서 떼어낸 대상을 단순한 배경 앞에 홀로 세워서 이 감각을 끌어내요. 《봉제 장난감》(2004)의 인형들은 박제처럼 놓여 있다가도 놀랄 만큼 생생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보고, 《유쾌한 아이스크림 콘》(2000)은 광대 얼굴을 하고 웃고 있어요. 살아 있는 건지 아닌지 쉽게 판단이 안 서서, 한참을 머뭇거리며 보게 되더라고요.

 

봉제 장난감 (2004)

봉제 인형들이 대칭을 이루는 네 칸 선반에 정리돼 있는데, 한쪽엔 잠든 동물 인형, 다른 칸엔 인형들이 뒤섞여 쌓여 있어요. 특히 원숭이 인형 다섯 개는 혀를 내밀고 서로 대화하는 듯한 모습이라 단순한 장난감 같지 않고 각자의 이야기가 있는 존재처럼 느껴져요. 이건 티보가 관심 가졌던 '낯섦'이라는 감각과 관련 있는데, 생명 없는 인형이 사람이나 동물을 닮으면 순간적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익숙함과 낯섦이 뒤섞이는 이 지점을 이용해서, 규칙적인 진열장에 미묘한 긴장감을 더한 작품이에요.

 

미키 마우스 (1988)

 

유쾌한 아이스크림 콘 (2000)

 

범람 (2006/2013)

저수지와 과수원 (2001)

도시 전경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풍경을 세 개의 캔버스로 나눠 그린 세폭화로, 티보가 남긴 유일한 세폭화예요. 하늘로 솟아오르는 거리와 건물의 수직 구성이 도시의 역동감을 살리고요. 재밌는 건 도로변 덤불 속엔 컵케이크 모양이, 중앙분리대엔 넥타이가 숨어 있다는 점인데, 이런 익살스러운 요소가 티보 특유의 유머를 보여줘요. 강렬한 색과 과장된 원근법 덕분에 익숙한 도시가 생동감 있고 독특하게 다가와요.

 

블루리지산맥 (2010)

티보는 1960년대 중반부터 50년 넘게 산을 그렸어요. 2000년대 이후에는 실제 본 풍경보다 어릴 때 기억과 미국 서부의 풍경을 자기 방식대로 풀어냈고요. 그가 그린 산은 실제와 좀 달라서, 거대한 바위와 가파른 경사를 가까이 끌어당기고 규모와 깊이를 과장해요. 강렬한 주황, 보라, 푸른색과 두꺼운 붓질 덕분에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보이죠. 후기엔 산의 형태가 점점 단순한 색면으로 변해서 풍경과 추상 사이 어딘가에 자리하게 돼요.

 

산길 (2010/2011/2012/2013/2018/2019)

라구나 언덕 (2003/2010/2012/2018)

1970년대부터 티보는 풍경화를 추상에 가까울 만큼 밀어붙였대요. 전통적인 수평 구도를 벗어나 공중에서 내려다본 시선, 망원렌즈로 당긴 듯한 시점, 극단적인 원근법을 한 화면에 섞었거든요. 세폭화 《도시 전경》에선 샌프란시스코의 가파른 언덕과 교차로가 선명한 푸른 그림자와 함께 롤러코스터처럼 펼쳐지고, 새크라멘토강 삼각주 그림에선 들판과 댐, 운하가 평평한 색면으로 어우러져요. 반대로 거대한 산 그림에선 높은 절벽이 사람을 작게 만들면서 미국 서부 자연의 웅장함이 확 느껴졌어요.

 

24번가 사거리 습작 (1978)

도시 고속도로 (1979)

사무실과 쇼핑몰 (2005/2021)

어두운 도시 (1999)

 

젊은 시절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인명구조원으로 일했던 티보에게 바닷가는 평생 특별한 곳이었대요. 수십 년 동안 해변을 그렸는데, 해안선은 사람들이 쉬는 공간과 넓은 태평양이 만나는 경계로 표현돼요. 《비키니 입은 인물》(1966), 《무릎 꿇은 두 인물》(1966)에선 일광욕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조각 같은 정물처럼 그렸고, 《삼각 해변》(2003/2005/2019), 《바닷가 리조트》(2007)에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황금빛 모래와 청록색 바다 위에 작은 인물과 파라솔, 줄무늬 수건을 리듬감 있게 흩뿌렸어요.

무릎 꿇은 두 인물 (1966)

베티 진 (1965년경)

비키니 입은 인물 (1966)

팜 로드 (1965)

삼각 해변 (2003/2005/2019)

 

바닷가 리조트 (2007)

티보가 오랫동안 탐구한 질서와 대칭을 해변이라는 익숙한 풍경에 담은 작품이에요. 해변은 그냥 쉬는 공간이 아니라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경계로 표현되고, 사람들과 물건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흩어져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듯해요. 자세히 보면 형태가 또렷하지 않고 물감의 흔적과 뒤섞여 서서히 녹아내리는 느낌을 주는데, 그래서 익숙한데도 묘하게 낯설게 느껴져요. 수평선이 바다와 하늘을 가르면서도 화면 전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요.

 

달빛 (2005/2014/2015)

 

말년의 광대 연작은 1930년대 롱비치에서 서커스를 보러 다니던 어린 시절 기억에서 시작됐대요. 티보에게 광대는 매력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존재였어요. 사람들을 웃기려고 힘든 기술을 끝없이 연마하는 모습에 유머와 연약함이 함께 담겨 있으니까요.

특히 《백 살 광대》(2020)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그린 작품으로, 그의 마지막 자화상으로 여겨진대요. 흰 화장을 한 나이 든 광대를 통해 자기 삶과 예술을 조용히 돌아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뭉클했어요.

백 살 광대 (2020)

 

1964년 티보는 버클리의 크라운 포인트 프레스에서 판화가 캐선 브라운과 함께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17점으로 된 《딜라이츠》 연작을 만들었어요. 구리판에 직접 선을 새기면서 즐겨 그리던 음식과 소비재를 판화로 옮겼대요.

레몬 머랭 파이, 두 겹 아이스크림 콘, 막대 사탕, 클럽 샌드위치, 껌 자판기 같은 미국의 일상이 가득하고요. 색 없이 선과 명암만으로 빛과 입체감, 질감을 살려서 티보의 소묘 실력이 더 돋보여요. 이 작업을 계기로 그는 이후 수십 년간 판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탐구했대요.

 

 

전시회 즐겁게 봤어요.

다만 작품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어서 이 부분은 다소 아쉽네요. 유료 오디오가이드도 제 기준으로는 부실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울 중구 을지로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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