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전시회 전시에서는 조아키노 토마의 작품 세계에 특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작가의 이름으로 구성된 섹션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는 음울한 국내 공간을 주요 회화 소재로 삼았으며, 어머니, 할머니, 병든 아이, 청소년기 여성 고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토마는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참여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강한 명암 대비와 극적인 구도를 통해 “실존적 불안(existential anxiety)”을 섬세하게 포착해냈습니다. 또한 빛의 효과와 그 변화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베수비오 산기슭에 모여 자연 풍경에 드리우는 빛을 연구하던 레시나 학파(Scuola di Resina)의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습니다.
3
조아키노 토마 (갈라티나, 1836 - 나폴리, 1891)
조아키노 토마는 19세기 이탈리아 나폴리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참여하신 지식인이었습니다. 역사의 사건과 서민의 일상을 주제로 한 회화들을 통해 사실성과 서정성을 아우르는 독자적인 화풍을 확립했습니다. 어린 시절 여섯 살에 부모님을 모두 잃고, 곧이어 양어머니와 고아원을 전전하는 불우한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은 훗날 작가님의 작품 세계 깊숙이 스며들어 종교 공간, 고아원, 병든 자 등 서정적이고 내밀한 주제를 자주 형상화했습니다. 고관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시면서도 화가가 되기를 꿈꾸고, 때때로 러블라 건너기나 공장 정식회의 조수로 임시로 일한 경험도 쌓았다고 합니다.
조아키노 토마 갈라티나, Gioacchino Toma Galatina
1836 - 나폴리, 1891 (1836 - Naples, 1891)
자화상 / Self-portrait around 1880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47.5 × 39 cm
아래 두 작품 중 위에 있는 작품은 쌍둥이로 작가의 진짜 아들들을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이중 한 아아가 병으로 사망했다고 하는데요. 그 아이가 죽어가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아래 그림이라고합니다.
19세기 초의 풍경화는 18세기 양식을 계승한 것이었다. 18세기에는 풍경화 장르가 더욱 널리 확산되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인간의 유산과 과거의 위대한 흔적이 더해진 장소를 찾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장소들은 유럽 상류층이 떠나는 문화 탐방 여행, 즉 ‘그랜드 투어(Grand Tour)’의 주요 목적지였고, 그에 따라 당대의 걸출한 풍경화가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특히 나폴리 만을 따라 이어지는 장대한 풍경 – 케이프 미세노(Cape Miseno)에서 판타 캄파넬라(Punta Campanella), 바이아(Baia)와 에르클라네움(Herculaneum), 폼페이(Pompeii), 플레그레의 평야(Campi Flegrei), 베수비오 산(Vesuvius), 이스키아(Ischia), 카프리 섬(Capri)에 이르는 자연의 향연 – 은 미와 학문을 탐구하는 이들이 모여드는 감성과 지성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이처럼 자연과 고대 유적이 어우러진 나폴리 만 일대는 야외에서 직접 풍경을 그리는 ‘앙플레네르(en plein air)’ 기법이 확산되는 네덜도 이장적인 환경이었다. 이 기법은 19세기 전반의 풍경화에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왔으며, 그로 인해 화면에는 생생한 대기감과 밝은 색채, 미스톤한 햇빛 효과 등의 자연스러움이 표현되었다.
결국 예술이라는 것이 좋은 환경과 자본이 결합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그리고 이번 마이아트뮤지엄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전시회를 추석 연휴 가볼만한 곳 전시회로 추천하는 이유
믿어주세요, 저는 그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수없이 그것을 그려왔으니까요. 공기와 하늘의 모든 비밀, 그 속 깊은 본질까지도요.
believe me, I know the atmosphere well; and I have painted it many times. I know all the secrets of the air and the sky in their intimate nature
주세페 데 니티스 Giuseppe De Nittis
4-1. 지중해
포실리포의 화가들은 현실에 기반하여 광활한 지중해의 풍경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힘에 이끌렸다. 그들은 이를 통해 아름다움과 위험, 불확실성이 공존하는 숭고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태도는 해변의 밧줄공이나 바닷가의 아이들과 같은 일상적 장면을 그린 작품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19th - 20th century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48 × 66 cm
빈첸초 카프릴레는 레시나 학파와 나폴리 자연주의 화풍의 영향을 받았으며, 나폴리·카프리·아말피 해안을 배경으로 한 일상적 장면과 해안 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며 국내외 여러 전시에서 호평을 받았다. 〈해변에서〉는 바닷가 일상에 대한 그의 애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해변에 어린이 등을 보인 채 모래 위에 앉아 있고 밝은 옷차림의 남성이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정적인 풍경에 유머와 생기를 더한다.
빈첸초 카프릴레나폴리 해변에서는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전시회 대표 작품 중 하나...
베니아미노 데 프란체스코 바를레타, 1815 - 디나르, 1908 Beniamino De Francesco, Barletta, 1815 - Dinard, 1908
오트사부아의 전원주택 / Country cottage in Haute-Savoie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67 × 85 cm
마르코 데 그레고리오, 레시나, 1829 - 나폴리, 1876 Marco De Gregorio. Resina, 1829 - Naples, 1876
카사칼렌다의 풍경, View of Casacalenda, around 1867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67 × 84 cm
마르코 데 그레고리오는 젊은 시절 공화주의자 및 급진주의자들과 뜻을 함께하며, 가리발디 부대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전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통일 이후에는 친구 페데리코 로사노와 함께 레시나 학파를 창립했다. 이 작품은 한적한 시골 마을인 카사칼렌다의 중심 거리를 담고 있다. 작가는 간결한 건축 형태와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공간의 구성에 집중하였으며, 이는 레시나 학파 미학과 맞닿아 있다.
올 여름과 하반기 조금은 낭만적이고 고전적인 작품이 생각난다면 추천드리는 전시회입니다. 최근 너무 현대미술과 사진 전시에만 노출된 것 같네요.
이번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전시회는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오늘은 1장과 2장 작품소개입니다.
섹션 1. 그녀들을 마주하다.
19세기 회화 속 여성의 형상은 시대적변화와 합께 점차 다채로워 졌습니다. 귀족과 서민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 중산층의 부 상과 새로운 생활양식은 여성에 대한 인식과 그 표현 방식에 큰변 화를 가져왔는데요. 이번 첫 섹선에서는 다양한 계층과 역할 속 여성의 형상이 담긴 작품 들을 선보입니다. 가정을 이끄는 보호자로서의 모습, 사교계의주 인공으로서의 세련미, 그리고 문학과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낭만 적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화폭 속여성은 시대의 감수성과 미적기 준을 고스란히 반영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이 섹선을 통해 관람객 여러분께서는 19세기를 살아간 여성의다 양한 모습과, 그들을 바라보는당대의 시선을 섬세하게 포착한 회 화의 흐름을 함께 조망해 보실 수 있습니다.
1-1. ARISTOCRATIC LADIES : 귀족 여성
궁정과 상류층 여성의 안락한 삶을 상징하던 귀족 여성의 이미지는 19세기에 이르러 사회 변화와 삶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새로운 여성상으로 점차 대체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번 섹션에서는 왕비의 기념 초상부터 유럽의 주요 살롱에서 주목 받았던 여성의 초상을 통해 화려함과 그 변화상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주세페 나바라 Giuseppe Navarra
시칠리아, 18세기 말 - 나폴리, 19세기 초 활동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 사보이아의 초상
Portrait of Maria Christina of Savoy around 1835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canvas /78 × 65 cm
주세페 나바라는 시칠리아 출신의 화가로, 부르봉 왕실 궁정에서 활동하며 신고전주의 양식의 초상화를 다수 제작했다고 합니다. 본 초상화는 1832년부터 양시칠리아 왕국의 왕비였던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 사보이아(1812-1836)를 묘사한 작품으로, 그녀의 검소한 성품과 달리 화려한 복식과 장신구로 치장된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인데요. 페르니에로와 다이아몬드 왕관, 에그렛 장식과 레이스 베일, 정교한 주얼리는 1830년대 귀족 복식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프란츠 폰 렌바흐 Franz von Lenbach
슈로벤하우젠, 바이에른, 1836 - 뮌헨, 1904
마리아 술리예의 초상
Portrait of Maria Soulier
1887 / 종이에 파스텔 / Pastel on paper / 68 × 54 cm
상당히 매력적인 귀족, 아래 그림의 주인공과 같은?
시작부터 너무나도 매력적인 작품들로 시작하는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 나폴리를 거닐다 전시회
테레제 슈바르체는 암스테르담 출신의 네덜란드 여성 화가로, 마리 루덴 판 스톤텐뷔르흐(결혼 후 술리에 부인)의 모습을 묘사한 두 번째 초상화라고합니다.. 벨벳 녹색 배경과 장밋빛 피부, 드레스의 네크라인은 그녀의 단정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밝고 투명한 눈빛과 진주 귀걸이의 광채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본 초상은 슈바르체가 1880~90년대 초반에 남긴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2. WOMEN OF THE COMMON PEOPLE : 서민 여성
이번 장에서는 서민 여성을 주제로 한 회화의 다양한 양상을 만나볼 수 있는 섹션입니다.이들은 때로는 단정하고 이상화된 농민의 모습으로, 때로는 도시 여성처럼 기장한 의상스러운 인물로 묘사된다. WOMEN OF THE COMMON PEOPLE 서민 여성 이번 장에서는 서민 여성을 주제로 한 회화의 다양한 양상을 소개한다. 이들은 때로는 단정하고 이상화된 농민의 모습으로, 때로는 도시 여성처럼 기장한 의상스러운 인물로 묘사되는데요. 앞의 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네요.
제인 벤함 헤이 Jane Benham Hay
런던, 1829 - 브뤼셀, 1904 농민여성
A peasant woman
1872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canvas
제인 벤함 헤이는 라파엘전파 성향의 영국 출신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본 작품은 중남부 이탈리아 민속 의상을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젊은 여성을 묘사하고있다. 그림 속 여성의 강렬한 눈빛은 여성을 주체적 존재로 표현하고자 한 작가의 의지가 드러난다.
엎에서 만나본 귀족여성의 그림과 다른 차이점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복장이나 피부 이런 것 말고 하나가 있는데요.
놀랍게도 일반 서민들의 작품에서는 공통적으로 거북목 포즈를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슨트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로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네요.
보통 목동은 남성을 생각했는데,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 '이탈리아 카포디몬테 미술관 컬렉션' 에서는 서민 여성을 모델로한 많은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1-3. IDEAL AND LITERARY MODELS : 이상과 문학의 여성상
19세기 회화 중 일부는 문학 작품의 서사를 직접 시각화하였고, 다른 일부는 시대상을 배경으로 문학적 정서를 담아냈다고 하네요. (편지는 연인의 편지를 손에 쥔 채 멀리하는 시녀를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이탈리아 통일이라는 시대의 이상을 반영합니다.) (기도하는 수녀의 모습)은 황홀경과 영적 고양을, (공포는 서로를 껴안은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으로 연약함과 불안을 표현하였습니다.
안토니오 레토 : Antonino Leto
몬레알레, 1844 - 카프리, 1913
우아한 산책
The gallant stroll
1878 - 1880 / 판넬에 유채 / Oil on panel / 40 × 30 cm
빈첸초 밀리아로 Vincenzo Migliaro
나폴리, 1858 - 1938
여인과 아이가 있는 카프리 풍경
Capri landscape with woman and child
around 1905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canvas / 58 × 39 cm
빈첸초 밀리아로는 카프리 섬의 풍경과 일상을 주로 그린 인상주의 화가이다. 본 작품은 밀리아로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아이를 품은 여인의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카프리 섬의 모습을 보여준다.
728x90
살바토레 포스틸리오네 Salvatore Postiglione
나폴리, 1861 - 1906
기도하는 수녀의 모습
Figure of a nun in prayer
1886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canvas / 78 × 91 cm
사실적이고 세부 묘사에 충실한 화풍으로 초상화와 역사화에 능했던 살바토레 포스틸리오네는 감성과 신비, 영성을 바탕으로 한 주제를 선호했는데, 작품에도 본인의 신앙에 대한 진심을 표현하곤 했다고 한다.
기도하는 수녀의 모습과 액자 테두리의 문양을 보면 액자에도 십자가와 멸류관으로 장식되어 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액자의 문양이 그림 본문과 연결되어 십자가가 그림속 벽지와 이어지고 있다는...
1-4. A TASTE OF THE EAST : 동방의 매력
이탈리아의 오리엔탈리스트 및 네오폼페이안 화가들은 프랑스와 영국의 영향을 받아 고전 속 이야기를 여성의 형상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 이번 장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여성을 대범하고 매혹적으로 묘사하여, 낭만주의가 이상화한 여성상과는 상반된 감성을 보여주지만 서양의 입장에서 본 아시아와 아랍의 이미지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따는 이야기...
빈첸초 부시올라노 Vincenzo Busciolano
나폴리, 1851 - 1926
가엾은 사포
A poor Sappho
1876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canvas / 73 × 103 cm
빈첸초 부시올라노는 스승 도메니코 모렐리의 영향을 받아, 고전적 서사를 오리엔탈리즘적 분위기와 양식으로 풀어낸 작가다. <가엾은 사포>는 고대 그리스의 여류 시인 사포를 중심으로 한 신화를 주제로 하며, 사포가 절벽에서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이른 비극적인 순간을 재현했다고 하는데요.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 나폴리를 거닐다 전시회 관람전에 잠깐 사포 이야기 읽어보시고 관람하시는 것 추천 드립니다.
페데리코 말다렐리 Federico Maldarelli
나폴리, 1826 - 1893
귀걸이를 달아보는 소녀
A young girl trying on an earring
1863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canvas / 98 × 85 cm
페데리코 말다렐리는 부르봉 궁정 화가였던 아버지에게서 미술을 접하고, 나폴리 화파의 영향을 받아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를 아우르는 화풍을 확립했다. <귀걸이를 달아보는 소녀>는 젊은 여성이 귀걸이를 착용해보는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으로, 은근한 허영심과 우아함을 함께 암시한다고 합니다.
구스타보 나차로네 Gustavo Nacciarone
나폴리, 1831 - 1929
하렘의 어느 구석이든 이와 같을 수 있다
Every song of the harem may be like this
1878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canvas / 80 × 60 cm
이 작품은 사실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을 받은 구스타보 나차로네의 회화 양식을 잘 보여준다. 조명은 화면 전체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하며, 긴 흑발과 붉은 산호 목걸이, 흰색 베일이 어우러진 여인은 부드러운 베개에 몸을 기댄 채 나른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안드레아 페트로니 Andrea Petroni
베노사, 1863 - 치비타 카스텔라나, 1943
여인상 / 원해요!
Figure of a woman / I would like!
around 1888 / 캔버스에 파스텔 / Pastel on canvas / 98 × 60 cm
나폴리에서 활동한 안드레아 페트로니는 사실주의와 상징주의의 사이를 넘나들며, 아르누보 양식의 영향도 받은 작가다. <여인상 / 원해요!>는 오리엔탈리즘적 분위기 속, 넓은 흰 쿠션 위에 나른하게 누운 여인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진행된 보존처리를 통해, 이 작품이 틀을 없이 캔버스에 파스텔과 안료를 혼합해 제작되었음이 확인되었으며, 실험적 기법을 시도한 습작이었거나 작가의 작업실에 머무를 개인적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5. THE NEW SOCIETY : 신흥 사회
품위와 경제적 안정이 중시되던 시대, 중산층 여성들은 평온하고 여유로운 이미지로 그려진다. 여성들은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상류층 여성의 외형과 태도를 따라하기도 하며, 상류 사회에 대한 동경과 편입 욕망을 드러낸다.
오늘 소개하는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 '이탈리아 카포디몬테 미술관 컬렉션' 전시회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들이 있는 공간
루이지 브란카치오 Luigi Brancaccio
나폴리, 활동 기록: 1881 - 1929
이른 허영심
Early vanity
1884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canvas / 100 × 60 cm
구글리엘모 차르디 Guglielmo Ciardi
베네치아, 1842 - 1917
햇살 한 줄기 (공원 산책)
A ray of sunshine (the walk in the park)
around 1881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canvas / 77 × 100 cm
에도아르도 토파노 1920 Edoardo Tofano
나폴리, 1838 - 로마,
죽은 새
Dead bird around
1890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canvas / 59 × 40 cm
유럽 여러 도시에서 활동하며 여성 초상화와 수채화로 명성을 얻은 에도아르도 토파노는, 젊은 여성이 작은 참새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 죽은 새와 여성 곁에 놓인 유골 항아리는 그녀의 상실감을 암시한다. 이 장면은 로마 시인 카툴루스의 《제3시 – 참새의 죽음》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으로, 참새는 사랑과 애도의 감정을 전하는 매개체이자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친밀함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 시편은 19세기 말 이탈리아 문학에서도 반복적으로 인용되며 상징적 모티프로 재해석되었다.
조반니 볼디니 Giovanni Boldini
페라라, 1842 – 파리, 1931
공원 산책
Walk in the park
around 1878 / Signed bottom right: Boldini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canvas / 55 × 44 cm
빈첸초 몬테푸스코 Vincenzo Montefusco
카바 데 티레니, 1852 - 로마, 1912
부채를 든 숙녀의 초상
Portrait of lady with fan
1877 / 종이에 수채 / Watercolour on paper / 35.4 × 18.5 cm
장르 회화와 프랑스풍 유행 회화에 주력했던 빈첸초 몬테푸스코는 절제된 구도와 장식성을 특징으로 하는 화풍을 선보였다. 본 작품에서도 흰색 프릴이 장식된 검은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인이 서 있으며, 손에 든 넓은 중국풍 부채는 화면에 은은한 동양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배경은 생략되었지만, 드레스의 주름과 인물의 그림자, 바닥과 벽의 색조 차이를 통해 간결한 공간감이 형성된다.
안드레아 페트로니 Andrea Petroni
베노사, 1863 - 치비타 카스텔라나, 1943
나의 모델
My model / around 1890 / 캔버스에 파스텔 / Pastel on canvas / 215 × 93 cm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인데, 이 작품속에도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작품속 벽을 보면 액자가 없는 판넬 그림이 걸려 있는데, 이런 공간은 작가의 사적인 공간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작업실이 아닌...
이렇게 전시되어 있으니 느낌이 또 다르다.
안토니오 만치니 Antonio Mancini
로마, 1852 - 1930
반응형
부채를 든 여인의 초상
Portrait of woman with fan
1922 /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 87 × 77 cm
<부채를 든 여인의 초상>은 안토니오 만치니의 후기 작품으로, 작가가 초상화에 집중하던 시기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나폴리를 대표하는 화가로 활동하며, 이전에는 주로 서민층을 두터운 질감과 정교한 터치로 묘사해왔다. 이 작품에서는 보다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붓질이 인물의 얼굴과 의상, 부채에 표현된다.
Section 2. INTERIORS
2장. 각자의 방, 각자의 세계
19세기 회화에서 실내는 단순한 공간의 재현을 넘어, 급변하는사 회의 단면을 담아내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했습니다.이시기 유 럽 사회는 물질적 조건쁜 아니라 인간과 환경, 세대와 성별,계 총 간의 관계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으며, 이러 한 변화는 일상의 공간에도 깊은 영항을 미쳤습니다. 새들게 형성된 생활양식과 가치관은 회화 속 실내 풍경에 고스란 히 반영되었고, 당대 화가들은 실내라는 한정된 공간을 통해 동시 대 가정의 모습은 물론, 그안에 내재한 사회적 관습, 개인 간의 관 계, 가족 내의 역동성까지도 섬세하게 포착해냈습니다.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 나폴리를 거닐다 전시회 분위기는 이러한...
2-1 귀족의 실내 & 중산층의 실내
ARISTOCRATIC INTERIORS
19세기 초 유럽 귀족 사회의 풍습을 담은 작품에서는, 음악이나 자수에 몰두하는 소녀들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교육과 예법, 이념과 이상적 인간상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기법은 역사나 문화 속 인물들을 이상화해 극적으로 묘사한 장면들에서도 드러나며, 그를 통해 당시 사회가 추구한 인간상의 특성이 구체화된다.
MIDDLE CLASS INTERIORS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된 19세기에는 중산층이 급속히 성장하며, 이들의 이상과 생활양식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화가들은 연회, 식사, 여가 등지에 펼쳐지는 이들의 일상을 회화에 담아냈다. 이러한 작품은 중산층이 지향하던 삶의 이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이면에 자리한 허례허식을 은근히 풍자하기도 한다.
알렉상드르 장 뒤부아 드라오네Alexandre Jean Dubois-Drahonet
파리, 1791 - 베르사유, 1834
루이사 디 샤르트르 공주, 샤르트르 공작, 마리아 디 발루아 공주 Princess Louise of Chartres, The Duke of Chartres, Princess Marie of Valois
종이에 유채 Oil on paper / 92 × 135 cm
팡티에브르 공작, 몽팡시에 공작, 오말 공작
The Duke of Penthièvre, The Duke of Montpensier, The Duke of Aumale
종이에 유채 Oil on paper / 92 × 135 cm / DIVINE INTERIORS
2-2. 신화를 닮은 공간
19세기 전반, 고대 미술과 고전 신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시기, 젠나로 말다렐리는 폼페이에서 발견된 벽화에서 영감을 받아 나폴리 왕궁 천장화에 큐피드와 프시케의 이야기를 구현하였다.
비너스에게 스틱스 강물을 바치는 프시케 / Venus receiving water from the River Styx
프시케를 올림푸스로 데려가는 머큐리 / Mercury carrying Psyche to Mount Olympus
머큐리가 프시케를 신들에게 소개하다 / Mercury presents Psyche to Jupiter
제나로 말다렐리는 1820년대부터 나폴리 화단에서 활약한 화가다. 왕립 미술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부르봉 왕가가 주최한 전시회와 왕립박물관 도서의 삽화 작업에도 참여했으며,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출토 벽화에 영감을 받은 장식화들을 다수 제작했다. 본 습작들은 1837년 나폴리 왕궁 화재 이후, 연회장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말다렐리가 천장화를 제작하기에 앞서 그린 것으로, 1840년 페르디난도 2세가 직접 매입한 뒤 현재까지 카포디몬테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의 주제는 아폴레이우스의 『변신』에 등장하는 ‘큐피드와 프시케’ 이야기로, 신화적 서사를 고전 양식으로 재해석한 19세기 장식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마리아 데 루카 Maria De Luca
활동기: 1866 - 1873
로 스파뇰레토 - 열정과 예술
Lo Spagnoletto - Ambition and Art
1867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canvas / 66 × 44 cm
아틸리오 팔리아라 Attilio Pagliara
1851 - 1889년 사이 나폴리에서 활동
비앙카 카펠로와 프란체스코 데 메디치
Bianca Cappello and Francesco de’ Medici
1867 /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 78 × 102 cm
아틸리오 팔리아라는 극적인 장면과 감정 표현에 능한 작가다. <비앙카 카펠로와 프란체스코 데 메디치>는 르네상스 시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비밀스러운 관계 끝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화려하게 꾸며진 실내에서 조용히 교감하는 두 인물을, 부드러운 조명 속에 멜랑콜리한 분위기로 그려진다. 사건의 재현보다는 두 사람의 유대에 집중한 이 작품은 정교한 복식과 세밀한 공간 묘사를 통해 낭만주의 역사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아이러니 하게도 불륜 관계인 두 사람의 배우자들은 사망했다고 한다. 특히 비앙카의 남편은 독살당했다는 썰이 썰이 아니락 ㅗ하고, 이후 프란체스코 데 메디치가 죽고 바로 비앙카 카펠로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세페 데 니티스 Giuseppe De Nittis
바를레타, 1846 - 생제르맹앙레, 1884
주교의 오찬
The bishop’s lunch
1861 / 판넬에 유채 Oil on panel / 47 × 115 cm
주세페 데 니티스는 나폴리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한 후 레시나 학파에 합류해 화풍을 연마했으며, 파리로 이주한 뒤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다. 1874년에는 제1회 인상주의 전시에도 참여했다. <주교의 오찬>은 데 니티스가 열일곱 살에 완성한 초기작으로, 사실적인 공간 감각과 섬세한 관찰력을 보여준다.
리오넬로 발레스트리에리 Lionello Balestrieri
체토나, 1872 - 나폴리, 1958
《베토벤》을 위한 습작
Sketch for Beethoven
1900 /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 46 × 92 cm
리오넬로 발레스트리에리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대표작 《베토벤》으로 잘 알려진 화가이다. 본 작품은 그 대표작을 위한 습작이다. 작품은 작가가 체류하던 파리에서의 기억을 반영하고 있다. 화면 중앙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인물은, 몽마르트르의 다락방에서 함께 생활했던 문인 주세페 바니콜라이며, 배경 역시 그들이 실제로 거주했던 공간으로 추정된다. 전면에 앉아 있는 인물은 작가 자신이며, 곁에 앉은 여성은 정면을 응시하며 관람자에게 시선을 보내는 듯하다.
2-3. INTERIORS OF ORDINARY HOMES
서민의 실내
19세기 회화는 종교나 신화를 다루던 전통적 주제에서 벗어나, 가정의 일상과 사람들의 삶, 그리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점차 반영해 나갔다.
빈첸초 아바티 Vincenzo Abbati
나폴리, 1803 - 1866
아래 작품은 기획사 사장님이 이번 전시회에서 가징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부엌 내부
Kitchen interior
1827 /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 120 × 105 cm
빈첸초 아바티는 나폴리 왕립미술학교에서 수학하며, 무대 디자이너이자 실내 화가였던 루이 니콜라 르말슬에게서 극적인 공간 연출 기법을 익혔다. <부엌 내부>는 대형 주방의 구조와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포착한 아바티의 대표작이다. 측면 창으로 스며드는 자연광은 사물의 형태와 질감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질서 정연하게 놓인 냄비와 식기, 조리 도구들을 세밀한 묘사와 재질 표현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졌다.
안토니오 만치니 Antonio Mancini
로마, 1852 – 1930
아픈 소년 Sick boy
1874 - 75 / 패널에 유채Oil on panel /11 × 17 cm
오늘은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 '이탈리아 카포디몬테 미술관 컬렉션' 관람후기 1부 였습니다. 다음섹션 보다는 인물 보다는 나폴리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작품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8월 1일부터 강남구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 나폴리를 거닐다' 전시회 관람후기 입니다.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린 전시회는 거의 다 관람할 정도로 제가 최애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데요. 지난 '새벽부터 황혼까지 국립스웨덴미술관 특별전' 등 다소 우리에게는 낮선 미술관과 작가들의 작품을 주기적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
이번 마이아트뮤지엄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전시회는 나폴리의 정서와 풍경이 19세기 회화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조망할 수 있는 전시회입니다.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국립 나폴리 카포디몬테 미술관과 협력하여, 그들이 소장한 19세기 회화 컬렉션을 통해 이탈리아 남부가 겪은 사회의 변화와 그 시대의 삶을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현대미술에 너무나 많이 노출되어 피로도가 쌓여 있었는데, 이번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 나폴리를 거닐다 전시회는 19세기 나폴리는 군주제에서 이탈리아 통일(1861년)로 이어지는 역사적 격동의 시대 속에서 이 시기의 작가들은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를 거쳐, 서민과 하층민 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는 베리즈모(Verismo)까지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시도했다. 특히 베리즈모는 프랑스 사실주의와 유사하면서도, 이탈리아 남부 특유의 사회 구조와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냈는데요. 귀족을 위한 작품부터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까지...
19세기 아름다운 미술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오리엔탈리즘과 신고전주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이탈리아 미술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작품속에 담겨진 이야기와 함께하면 이번 전시회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번 마이아트 뮤지엄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 나폴리를 거닐다 전시회 대표작품인 '해변에서'
작품의 양은 다소 아쉬운
마이아트 뮤지엄 전시회에 종종 방문해소신 분들은 아래 두 장의 사진에서 보여주는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아실 것입니다. 보통 전시회 특별 섹션이나 하나의 주제를 모아 전시하는 공간인데요. 작품으로 채우지 못했네요.
728x90
이 넗은 공간에 전시된 작품은 74점입니다. 대작은 없고요.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이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소장품이 많다고 했는데, 이 부분은 다소 아쉬운 점입니다.
도슨트 만족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전시회 도슨트는 평일 3회 운영됩니다. 11시 14시 16시 운영되는데요. 저는 화요일 오전 11시 도슨트에 참여했는데 정우철 도슨트분을 만나볼 수 있었네요.
특히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에 전시된 작품들과 작가들은 저에게는 상당히 낮설고 검색에도 잘 나오지 않는 작가들과 작품들이 많았는데요. 이번 도슨트를 통해 상당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가능하시다면 시간내서 도슨트 꼭 참석하세요.
평일 오전이었는데요.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전시회 도슨트에 참석한 인원은 100여명 정도로 보이고요. 도슨트는 딱 50분 진행되었습니다.
오디오가이드 불만
만약 도슨트 시간에 맞추기 어렵다면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컬렉션 오디오가이드가 H.Point 앱에서 제공됩니다. 다만 오디오가이드 이용요금은 4,000원 입니다. 이어폰 꼭 챙기시고요. 이제는 전시회 오디오 가이드는 서비스가 아닌 하나의 수익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네요.
이번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에 아쉬운 부분 하나입니다.
왼쪽과 같이 대부분의 작품에는 자세한 캡션이 부착되어 있는데요. 오른쪼과 같이 오디오가이드에서 제공되는 작품의 상당수는 작품과 작가명 정도만 표기되고 작품에 대한 설명은 누락되어 있더라는...
만약 도슨트 시간 못 맞췄다면 오디오가이드 구입해야 했네요. 메인 작품들에 설명이 없으니...
티켓팅 할인
현재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 나폴리를 거닐다 티켓 할인은 없습니다. 전시회 시작 일주일도 안 되었고 현재는 정상가에만 관람이 가능합니다.
저는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컬렉션 얼리버드 티켓팅을 통해서 40% 할인된 가격은 15,000원에 관람했네요.
현재 정상요금은 성인 25,000원, 청소는 18,000원 입니다.
지금은 네이버 공연전시 카페 등에서 프로모션, 이벤트를 통해 무료티켓도 노려볼 수 있습니다.
작품구성 및 최소 관람시간 100분
이번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 나폴리를 거닐다 전시회는 국내 최초로 기획된 전시회로 작품수는 많지 않지만 각각의 작품에 대해 많은 감상포인트와 스토리가 있습니다.
총 4장과 멀티미디어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전시의 40%는 1장 공간에 집중된 것 같네요.
저는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컬렉션 전시회 오픈시간인 10시에 입장해서 55분 정도 선 감상하고 11시 부터 시작된 도스트 참여 했습니다. 총 2시간 정도 시간이 소요 되었는데요.
만약 뒷 일정이 없었으면 한 시간 정도 다시 감상하고 싶었습니다.
제 기준으로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 나폴리를 거닐다 전시회 관람시간은 2시간, 도스트 포함한다면 3시간 생각하세요.
전시장 뒷 부분에는 이런 낭만주의 느낌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반응형
멀티미디어 포토 연력
마지막 공간은 멀티미디어존과 당시의 사진, 연표등이 전시되어 있네요.
작품이 배경이 상상이 아닌 리얼 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 느낌 그대로...
아트샵 도록
이번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아트샵은 쏘쏘합니다.
항상 전시회 아트샵에서 볼 수 있는 상품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네요.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도록 가격은 49,000원에 배송비 별도, 대용은 상당히 상세하게 제작 되었네요.
아트샵은 대표 작품들로 제작되었는데 가격은 1~2만원 정도로 부담없는 가격이지만 특색있고 매력적인 상품은 저에게는 없었네요.
포토존 실외
이번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 나폴리를 거닐다 전시회는 실외외 실내에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실외에서는 이곳이 포인트
마이아트뮤지엄 로비에서는 이곳이 포토존 포인트 입니다.
예전 포토존 보다는 다소 부실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의 느낌인지...
포토존 실내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전시회는 스마트폰으로 플래시 없이 사진촬영 가능합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별도의 포토존이 실내에 마련되어 있지 않네요.
다만 해당공간의 오리앤탈리즘 작품들과...
그리고 이 작품 옆에서 사진 잘 나올 것 같네요.
가운데 사진은 안드레아 페트로니의 나의 모델 이라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에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부분은 다음 포스팅에서
그리고 이번 전시회 마지막 공간인 노란 방이 포토존입니다.
이전의 각각의 전시공간은 상당히 어둡고 현재도 조명을 조절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곳은 색도 산뜻하고 조명도 밝고 작품도 풍경 중심으로 추억의 사진 남기기 좋습니다.
오늘은 8월 1일 오픈한 마이아트 뮤지엄 전시회 후기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한 작품소개 진행합니다.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 나폴리를 거닐다
19th Century Collection from the Capodimonte Museu 전시기간 2025.8.1 - 11.30 (10.6 추석 당일만 휴관 / 연중무휴) 관람시간 월-일 10:00 - 19:40 (입장마감 19:00) 장소 마이아트뮤지엄
이번에는 무하전시회 3장과 4장에서 전시되는 작품들 소개입니다. 1~2장에서는 아름다운 아르누보풍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면 오늘 소개하는 작품들은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무하의 아름다운 그림만은 아닙니다..
제3부 "무하 오디세이 "에서는
1900년 파리 만국박 람회를 기점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활동 범위를 파리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고향 체코로 확장하는 과정을 조명합니다. 프리메이슨 회원으로서 무하가 탐구했던 영적 이상과 민족주의자로서 체코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려 했던 그의 철학을 탐구한다. 또한 무하가 미국에서 시카고의 찰스 리처드 크레인을 통해 후원을 언어 슬라브 서사시를 준비하게 되는 과정도 다룹니다.
제4부"슬라브의 화가"에서는
고향 체코로 돌아온 무하가 조국과 슬라브 민족을 위한 작품에 몰두한 시기를 다루는데요. 그의 일 생프로잭트인 슬라브 서사시는 민축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체코의 문화 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이 섹선서는민 족주의와 인류애를 결합한 무하의 철화적 메시지를 탐구합니다. 체코 독립 이후 예술가로서의 감동과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에서 드러난 이상주의적 비전도 소개됩니다.
Section.3 : 무하 오디세이 Mucha's Odyssey
무하는 상업 디자이너로서 부와명예를 얻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철학과 디자인을 전파하는 예술 활동도 지속하고자 했습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그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관을 장식하며 슬라브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고자 했습니다. 또한, 자신만의 해석을 담은 주기도문 삽화집 <르 파테>를 출판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파하려 했으며, 장식자료집을 출간하여 아르누보의 원리를체계화하고 널리 보급했습니다. 그는 보석 디자이너 조르주 푸케와 협업하며 주얼리 디자인에도 도전했습니다. 이처럼 무하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틀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더욱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유명세로 인해 반복적으로 들어오는 상업적 의뢰 속에서 점차 지쳐갔습니다. 결국 1904년, 그는 진정으로 하고 싶은 예술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이후 다섯 차례 미국을 오가며 활동을 확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강력한 후원자 찰스 리처드크레인을 만나 그의 지원을 받으며, 슬라브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담은 대작 '슬라브 서사시' 프로젝트가 구체화되기 시작합니다. 3장에서는 무하가 시도한 다양한 예술적 여정과, 파리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수있습니다.
주얼리 디자인 & 코르사주 브로치
가끔씩 열리는 소규모의 무하 전시회나 보석전시회에서도 무하의 주얼리 디자인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이번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기대하고 방문했지만 다양한 알폰스무하 주얼리 디자인을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참고로 지난 롯데뮤지엄에서 열린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 전시회에 소개된 무하의 코르사쥬 장식품
이 시리즈는 무하가 조르주 푸케의 부티크 푸케 매장 디자인을 맡았을 때 제작된 작품입니다. 그는 늘 그렇듯, 네가지 다채로운 보석을 네 명의 아름답고 젊은 여성으로 형상화했습니다. 각보석의 색감은 여성의 드레스, 주변 장식물, 그리고 전경의 꽃에 반영되어, 마치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듯한 다채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무하는 자신의 화풍을 더욱 성숙하게 다듬어가면서, 초기 작품에서 보였던 과도한 아르누보 스타일의 화려한 곡선과 장식을 점차 절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들의 뒤로 모자이크처럼 빛나는 둥근 후광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정교한 틀과 장식적인 곡선은 사라졌습니다. 또한, 무하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었던 풍성하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역시 이전보다 휠씬 단정하고 차분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네 개의 보석중 에메랄드
오트체나쉬
"오트체나쉬"는 체코어로 "주기도문"을 의미하며, 알폰스 무하가 1899년 말 파리에서 출판한 삽화 서적 "르 파테"의 체코어판입니다. 이 책은 곳곳에 프리메이슨의 상징들이 배치된 것이 특징이며, 표지와 삽화에는 삼각형, 별, 눈 모티프등이 등장하여 당시 신비주의와 결합된 프리메이슨적 사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존 가톨릭 도상을 탈피한 무하만의 독창적인 상징체계가 가장 두드러집니다. 전통적인 기독교 미술에서는 그리스도나 십자가의 형상이 중심이었지만, 무하는 이를 의도적으로 배제했습니다. 대신, 영적 개념을 여성의 형상으로 표현했으며, 작품 속 여성들은 자애로움, 순수함,희망 등의 덕목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는 기도문이 전달하는 사랑과 진리의 이상을 대변합니다. 프랑스어판 해설에서는 하느님을 여성으로 지칭하기도 했는데,
이는 신을 어머니 같은 존재로 묘사한 것으로, 당시 기독교 신학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해석이었습니다. 반면, 체코어판인 "오트체나쉬"는 동일한 구성과 삽화들 사용했으나, 해설을 보다 전통적인 가톨릭 신양에 맞게 조정했습니다. 무하는 이러한 조정을 통해 작품의 상징성과 예술성을 유지하면서도 체코 독자들에게 보다 친숙한 해석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 무하 원화전 제3 전시공간 모습
지나가는 바람은 젊음을 가져간다
작품 보다도 작품의 제목이 너무나도 매력적인...
이 그림은 원래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의 <인류의 전당>을 위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이 전시는 저명한 예술가들과 후원자들이 참여한 야심 찬 기획이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라는 주제가 박람회 주최 측에서 기대했던 상업적 효과를 얻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획이 무산되자, 무하는 완성한 그림을 인쇄소에 가져갔고, 샹프누와는 디자인을 수정하지 않은 채 부채 장식용으로 판매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몇몇 사본에는 부채 손잡이와 함께 "지나가는 바람은 젊음을 가져간다"*라는 문구가 추가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무하는 여성과 신비로운 존재를 결합했습니다.한 여성은 꽃잎을 흩뿌리며 저무는 해를 상징하고, 그녀의 뒤에 떠 있는 신비로운 존재는 그 꽃잎을 흩날리는 바람을 상징합니다. 이는 시간의 흐름을 시적으로 표현한 장면입니다. 이 작품의 사본은 모두 일부분이 수작업으로 채색되어 있으며, 부드러운 색감과 섬세한 표현이 더욱 돋보이는특징을 가집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00년 만국박람회에서황실이 직접 운영하는 구역의 벽화를장식하기 위해 자국민인 무하에게 작업을 의뢰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는 무하의 고향인 모라비아가 아닌, 이웃 지역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기념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제국의 남쪽에 위치한 솔라브 민족 지역으로, 훗날 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728x90
무하는벽 장식 디자인과 함께, 슬라브 민족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이 쟁반에 커피틀 들고 있는 매력적인 삽화를 제작했습니다. 이 그림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관의 식당 홍보물과 식당 메뉴 표지, 엽서 인쇄물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습니다. 이 삽화는 박람회를 방문한 참관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판매된 것으로 보입니다.
무하의 장식자료집과 인체 장식집.
무하 스타일의 기반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을 보낸 공간입니다.
슬라비아
포스터속 전형적인 슬라브인'의 모델은 의외로 미국인이었습니다. 이 포스터는 무하가 미국에 거주하던 시기에 의뢰받은 작품으로,후에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 슬라브 서사시를 후원한 백만장자 친구찰스 리처드 크레인의 딸 조제핀 크레인브래들리를 참고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슬라비아는 손에 화합의 상징을 들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왕좌에 앉아 있습니다.
팔걸이에는 평화의 비둘기 두마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릎 위에 검을 올려둔 모습은 슬라브 민족이 본래 평화를 사랑하지만, 공격을 받으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이 작품은 무하와 크레인이 특히 아꼈던 그림 중하나로, 1920년에 체코 100코루나 지폐에 사용되었으며, 1931년에는 슬라비아 은행의 요청으로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되었습니다.
Section.4 슬라브의 화가
Painter of the Slavs
1910년,알폰스 무하는 오랜 해외 생활을 끝내고 고향 체코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에서 찰스 리처드 크레인의 후원을 약속받아 '슬라브 서사시'라는 대작을 구상했지만, 그의 귀환이 그 프로젝트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체코의 문화와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힘쓰며, 공공 프로젝트와 국가적인 기념 작업들을 진행했습니다. 슬라브 민족의 단결과 독립을 위한 포스터를 제작했으며, 체코슬로바키아 독립을 기념하여 국가 지폐와 우표 디자인, 성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도면 제작 등을 맡으며 신생국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1939년, 나치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면서 무하는 독일 당국의 감시 대상이 되었습니다. 체코 민족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그는 나치 정권이 주시하는 대상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고,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 풀려났습니다. 당시 80세였던 그는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졌고, 결국 같은 해 7월 4일, 프라하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체코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예술가가 겪어야 했던 운명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4장에서는 무하가 민족의 정체성과 독립을 위해 남긴 작품들을 선보이며, 그가 추구했던 이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반을 살아간 예술인들의 비극 또한 무하도 비켜가지는 못했네요.
히아신스 공주
알폰스 무하 전시회에서 빠지지 않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무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상업 예술에서 은퇴하고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린 포스터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이 발레 팬터마임 공연은 동화 히아신스 공주틀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무하는 공연의스타 배우이자 이 그림의 모델이 된 안둘라 세들라코바를 통해 포스터 제작을 수락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들라코바는당시 프라하에서 유명한 무대 배우였으며,몇 년후 체코 영화계가 막 시작될 무렵,첫 스타로 자리 잡은 배우이기도 합니다. 포스터 속어린 공주는 매력적이고 사색에 잠긴 듯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고급스러운 옷감으로 만든 드레스와 무하가 자주 디자인했던 독특한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으며, 배경에는 무하 작품에서 늘 볼 수있는 둥근 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포스터의 레터링 역시 무하 특유의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 보헤미아 국가 연합 복권 포스터 시안
현장에서 작품을 보면 사진보다 훨 강한...
참고로 이번 마이아트뮤지엄 알폰스 무하 원화전에는 노루페인트가 후원하고 있습니다. 요즘 전시회를 보면 노루페이트의 지원이 상당히 많은데요. 페인트 사용할 일 없지만 호감도는 급상승...
무하 전시회 브루클린 미술관
미국 산업계의 거물 찰스 리처드 크레인은 1909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당시 무하가 꿈꾸던 슬라브 역사를 재현하는 작품을후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무하는 또 다른 후원자인 체코 귀족이 제공한 성에서 머무르며, 20개의 거대한 유화 작품으로 구성된 이 연작을 위해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생계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 프로젝트는예상보다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겨우 5점의 대형 캔버스만이 완성된 상태였습니다. 무하는 이 시기에 작품을 일부 공개하기로 결정하고,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이 전시회를 알리기 위해 제작된 포스터에는 광대뼈가 도드라진 소녀가 등장하는데, 그녀는 슬라브 민족이 수 세기 동안 타국의 폭정 아래서견온 고통의 역사를 상징하는 가시관을 들고 있습니다. 전시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뉴욕에서만 60만 명이 관람할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후 무하는 꾸준히 작업을 이어갔고, 1928년 마침내 20점의 대작을 완성했습니다.
러시아 복구
라틴어로 된 문구에는 "러시아는 회복해야만 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냉혹하고 침울한 분위기는 굶주린 사람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훗날 소련과 러시아가 선전했던 승리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사실상 4년 동안 산발적인 내전을초래한 대재앙이었습니다. 많은 농민들이 토지를 빼앗겼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식량 생산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1921년까지 최소 800만 명의 농민이 굶어 죽었습니다.
반응형
공산당은 초기부터 모든 언론을 강하게 검열했기 때문에, 이 끔찍한 사건이 서방에 알려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국, 모든 농민이 금주립으로 전멸할 위기에 처하자 레닌은 뒤늦게 외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반응은 즉각적이고 뜨거웠습니다. 문명화된 국가들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수백 톤의 식량과 구호 물품을 보내며 자원봉사자들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늘 대의를 위해 힘쓰던 무하 역시 이번에도 기부를 위한 탄원을 위해 자신의 그림을 제공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무하의 그림들과 다르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작품 보다는 상당히 강한 그리고 우울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시대가 이런 작품들을 만들게 한...
1918-1928
디포리스트 포노필름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 알폰스 무하 원화전 메인 포토존입니다.
다른 포토존은 전시장 로비에 있었다면 이곳은 전시장 안에 위치한 포토존입니다.
|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 Cathedral)은 체코 프라하에 위치한 대표적인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그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특히 아름답고 예술적인 가치가 높습니다. 그중에서도 체코의 유명한 아르 누보(Art Nouveau) 화가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가 디자인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특히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창의 축소판을 이번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요.
알폰스 무하는 1931년에 성당의 북쪽 측랑에 위치한 창을 디자인하였습니다. 이 창은 체코의 수호성인 성 바츨라프(St. Wenceslas)와 그의 할머니 성 루드밀라(St. Ludmila)를 중심으로, 슬라브 민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한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의 삶의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체코 은행 슬라비아(Slavia)의 후원으로 제작되어, 창 하단에는 슬라비아 여신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무하의 아르 누보 스타일이 고딕 양식의 성당과 조화를 이루며, 강렬한 색채와 섬세한 선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특히, 무하의 대표작인 "슬라브 서사시(The Slav Epic)"와 유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도안들... 정말로 무하 스타일 답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나가 화가 중에서는 이런 다양한 역영에서 모두 활동한 작가가 없을까?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 알폰스 무하 원화전 마지막 공간입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국제 인쇄 전시회
무하가 마지막으로 작업한 포스터는 1935년 5월에 열린 시각장애인을 위한 국제 인쇄전시회 광고입니다. 포스터의 삽화는 사실 2년 전에 체코의 시각 장애인을 위한 신문을 위해 제작한 그림으로도 쓰였으며, 이는 많은 기부를 한 이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전달된 감사패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감사패에는 "감사합니다, 시각장애인으로부터"라는 문구가 함께 인쇄되었습니다.
반응형
그림에는 여리고 진중한 모습의 시각장애인 소녀가 나뭇가지와 앞에 둘러싸인채 무륜 위의 점자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화려한 장식이나 낭만적인 요소 없이, 무채색의 의상과 머리카락을 통해그녀가 속한 세계의 어둠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 체코슬로바키아 디자인
알폰스 무하가 단순한 유명 화가를 넘어 체코의 국민화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만나불 수 있는 공간
| 코루나 지폐와 우표
1919년 7월 5일, 알폰스 무하가 디자인한 100코루나 지폐가 발행되었습니다. 이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식 지폐로, 촉박한 일정속에서 제작이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국내에는 적절한 인쇄 시설이 없어 초기 지피는 미국 뉴욕에서 인쇄되어 들여왔으며,이후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체코슬로바키아 자체 인쇄 설비가구축되어 국내에서 지폐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하가 디자인한 지폐에는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다양한 요소들이 반영되었습니다.
100코루나 지폐의 앞면에는 젊은 여성의 초상이 우아한 원형 테두리 안에 그려졌는데,이는 슬라브 민족을 의인화한 '슬라비아(Slavia)'입니다. 50코루나 지페의 뒷면에는 남성과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는 근로자와 농민을 대표하는 인물로 해석되며, 두 인물 뒤에는 곡식 단과 돕니바퀴가 배치되어 있어 농업과 공업의 조화로운 발전이라는 이상을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10코루나 지폐에는 무하가 자신의 딸을 모델로 삼아 그린 초상이 등장하며, 100코루나 지폐의 슬라비아 역시 그의 후원자였던 리처드 크레인의 딸을 모델로 삼은 그림입니다. 무하가 디자인한 지폐는 1930년대 초반까지 통용되었으며, 이후 점진적으로 새로운 지폐로 대체되었습니다.
슬라브 서사시(The Slav Epic)는
체코의 대표적인 아르 누보 화가 **알폰스 무하(Alfons Mucha)**가 1910년부터 1928년까지 18년에 걸쳐 완성한 20점의 대형 유화 연작입니다. 이 작품은 슬라브 민족의 신화적 기원부터 중세의 종교적 투쟁, 근대의 민족적 고난과 각성에 이르기까지, 슬라브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장대한 서사로 그려낸 걸작입니다.
무하는 체코뿐 아니라 폴란드, 러시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 모든 슬라브 계열 국가들의 문화적 뿌리와 공통된 정체성을 탐구하며, 각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과 사건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의 포교, 얀 후스의 종교개혁, 슬라브 농민들의 고난, 민족의 부흥을 그린 장면들이 있으며, 이는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민족의 영혼과 희망을 그려낸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슬라브 서사시》는 미국의 사업가 찰스 R. 크레인의 후원을 받아 제작되었고, 무하는 이를 체코 국민에게 기증하고 프라하에 전용 전시관을 짓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작품은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전시되지 못했고, 현재는 체코 남부의 모라브스키 크루몰로프에 임시로 전시되어 있으며, 프라하로의 회귀 여부는 아직 논의 중입니다.
이 서사시는 무하의 대표작이자, 슬라브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 유산을 시각적으로 집대성한 유일무이한 역사적 예술 유산으로 평가받습니다.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 알폰스 무하 원화전 마지막은 알폰스 무하와 가족들의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번 알폰스 무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마이아트 뮤지엄에 대한 기본 정보는 아래 지난 포스팅 참고하세요
아르누보를 이야기하면 빠질 수 없는 알폰스 무하 전시회가 삼성동 마이아트갤러리에서 7월 13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알폰스무하 원화전 도슨트 및 오디오가이드, 아트샵 관람팁 포스팅 (링크는 본문 하단에)에 이어 오늘은 전시장의 작품소개 진행합니다. 이번 전시회는 주로 회화 중심의 다른 무하 전시회와는 다르게 상업적인 제품들도 전시되어 작가를 더 넓게 이해하는 시간이 될 것힙니다.
이번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 무하 원화전은 프롤로그와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오늘은 1~2섹션 감상후기 입니다.
프롤로그
| 알폰스 무하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1860–1939)는 체코 출신의 화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19세기 말 유럽을 풍미한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대표적인 예술가입니다. 그는 유려한 곡선과 화려한 장식, 이상화된 여성 이미지로 독창적인 스타일을 확립하며, 상업 그래픽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허문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무하는 파리에서 활동하던 중, 1894년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를 위한 연극 포스터 《지스몽다(Gismonda)》를 제작하면서 단숨에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후 그는 그녀와 6년간 독점 계약을 맺고, 《메데아(Médée)》, 《로렌자치오》 등 다양한 포스터 작업을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대중에게 각인시켰습니다. 그의 포스터는 유기적인 식물 모티프와 풍성한 머리카락, 부드러운 선 등으로 구성되어 ‘무하 스타일(Mucha Style)’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상업 분야에서도 그는 담배, 향수, 샴페인, 초콜릿 등의 광고 포스터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켰으며, 일상의 물건들까지 아름답게 만들어 ‘생활 속 예술’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무하의 예술은 단순한 장식성을 넘어 대중과 소통하며, 당시 예술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무하의 예술 인생 후반부는 민족 정체성과 역사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습니다. 1910년 체코로 귀환한 그는 20점으로 구성된 대작 《슬라브 서사시(Slav Epic)》를 18년간에 걸쳐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슬라브 민족의 역사와 신화를 대형 회화로 그려낸 것으로, 체코 민족주의 미술의 정수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이를 체코 국민에게 바치며, 예술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1939년, 나치 독일의 체코 침공 직후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무하는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예술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프라하에 위치한 ‘무하 박물관(Mucha Museum)’을 비롯해 전 세계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은 꾸준히 전시되고 있습니다. 알폰스 무하는 시대를 초월한 미의식을 통해 대중과 예술, 민족과 정체성을 잇는 다리를 놓은 예술가로 남아 있습니다.
노루 페인트는 여러 미술 전시회와 작가를 후원하고 있는데요. 이번 알폰스 무하 전시회에도 협찬을 진행했네요. 저도 노루페인트 이벤트에 당첨되어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 아르누보
이번 알폰스 무하 전시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르누보' 미술사조를 이해해야 하는데요. 아르누보(Art Nouveau)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유럽 전역에서 유행한 예술 사조로,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을 지닌 만큼 기존의 전통적 양식에서 벗어나 자연의 유기적인 곡선과 형태를 예술 전반에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이 양식은 회화, 건축, 가구, 그래픽 디자인, 유리공예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식물의 줄기나 덩굴, 물결과 같은 곡선을 주요 조형 언어로 사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아르누보는 여성의 이상화된 모습을 즐겨 다루었으며, 긴 머리카락과 우아한 옷자락을 휘날리는 여성상은 당시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모티프로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단순한 장식적 요소를 넘어서 구조와 장식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디자인이 많았고, 실용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추구하며 일상 속에서 예술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대표적인 아르누보 작가로는 체코의 알폰스 무하가 있으며, 그는 광고 포스터뿐만 아니라 체코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에 아르누보 스타일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해 그 예술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파리 지하철 입구 디자인으로 유명한 헥토르 기마르, 오스트리아의 구스타프 클림트 등도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결국 아르누보는 산업화 시대의 기계적인 미감에 대한 반작용이자, 예술을 삶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총체적 디자인 운동이자 철학이었습니다. 이번 전시회의 타이틀이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 무하 원화전'인데요. 왜 무하가 '아르누보의 꽃'으로 불리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프롤로그 공간에서는 무하의 작품과 함께 왜 우리가 사랑하는 알폰스 무하가 탄생했는지 설명하는 공간입니다.
무하가 그린 동거인 고갱
전시장 첫 공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고갱을 그린 작품으로 시작합니다.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1893년에 고갱은 무하의 스튜디오를 같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동 시대에 전혀 다른 화풍으로 각자 최고의 경지에까지 올라갔다는 것이 너무나도 놀랍네요.
그리고 바로 옆에는 무하가 삽화 작업을 한 책들과 내지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할머니의 이야기
할머니의 이야기는 독일 스칸다니비아 등의 전래동화가 담겨 있는데, 이 책의 삽화를 작업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무하의 작품과는 다소 다르지만, 작품 디테일이 상당히 인상 깊습니다.
이번 알폰스 무하 전시회 프롤로그 공간의 모습...
| 자스몽다 - 사라 베르나르
무하를 이야기하자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 연극계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1844~1923)가 빠질 수 없는데요. 알퐁스 무하(Alphonse Mucha)와의 협업으로 무하는 그녀의 포스터를 그리며 알폰스 무하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이번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무하 전시회에서도 관련 작품은 여러점 만나볼 수 있습니다.
Section.1
뮤즈가 건넨 붓, 화가가 그린전설 The Muse's Gifted Brush, The Artist's Painted Legend
1894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파리, 무명의 삽화가였던 알폰스 무하는 운명적인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당시 사라 베르나르는 연극 <지스몽다>의 포스터가 필요했지만, 마감 기한이 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기존 포스터 제작자들이 모두 크리스마스 휴가로 자리를 비운 탓에, 극장 측은 인쇄소에 남아 있던 무하에게 작업을 의뢰했습니다. 무하는 며칠 동안 밤낮없이 작업에 몰두했고, 1895년 1월 1일, 그의 포스터가 파리 전역에 붙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존 포스터와 달리 실물 크기의 세로형 디자인과 섬세한 장식이 돋보였으며, 이에 감탄한 사라는 무하와 6년간의 독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무하는 사라의 주요 공연 포스터를 제작하며, 연극 포스터를 예술의한 장르로 승격시켰습니다. 그의 포스터 속사라는 단순한 배우가 아닌 신화적인 존재로 묘사되었습니다. 이 독창적인 스타일은 무하 스타일'로 불리며 유럽 전역에서 찬사를 받습니다. 무하는 연극 포스터뿐만 아니라, 사라를 위한 연극 프로그램, 무대 장식, 의상 디자인까지 맡으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학장했습니다. 사라와의 만남은 단순한 상업적 협업이 아니라, 배우와 화가가 함께 만들어낸 예술적 연대였습니다. 1장에서는 무하가 연극 포스터를 통해 확립한 독창적인 스타일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지스몽다
무하는이 포스터로 유명해지며 상업 석판 인쇄 업계에 새로운 화풍을 퍼뜨렸습니다. 종교적 의미가 깊은 이 연극의 3막에 성지주일 행렬 장면이 나오는데, 무하는 이때 화려한 의상과 커다란 잎사귀를 들고 있는 배우를 매우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포스터의 크기 덕에 배우가 입고 있는 가운의 길이가 체감되며,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 장식은 극이 성경을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을 암시합니다. 사라의 경건한 표정은 신앙을 나타내고, 동시에 포스터의 부드러운 파스텔 색감은 그 안의 상업성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며조용히 속삭이고 있습니다. 포스터는 기존에 유행하던 화풍과 크게 달랐으며, 파리는 이에 주목했습니다. 사라 베르나르는 매우 감동하여 이후 무하의 멘토를 자처했고, 무하는 향후 몇 년간 파리 사교계의 유명인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에 아르누보 화풍은 무하의 동의어나 마찬가지였고, 그의 구도와 장식적인 화풍은 미술 수업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가 됩니다. 단 하나의 포스터가 이처럼 그 창작자와 그 시대에 지대한 영항을 끼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
사마리아 여인은 성경을 바탕으로 한 연극입니다. 베르나르는 고대팔레스타인의 평범한 시골 농민으로 등장하며, 기독교로 개종한 후자신의 부족을 새로운 신앙으로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이 연극의 첫 공연은 1897년 부활절 시기에 맞춰 예정되었습니다. 무하의 그림에서사라는 3막에서 입는 의상을 하고 거대한 암포라를 들고 있습니다. 앤티크풍 글자와 배우 뒤의 둥근 모자이크 배경 속히브리어 문자는 극의 소재와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알폰스 무하 전설의 시작을 만들어준 인물 '라라 베르나르'
고난의 예수마저 너무나도 아릅답게 표현된...
햄릿
햄릿 포스터는 무하가 사라 베르나르들 위해 제작한 마지막 연극 포스터입니다. 사라 베르나르는 남성 배역도 자주 연기했으며, 이 포스터는 그녀가 연기한 햄릿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하단에는 오필리아의 죽음과 엘시노어 성의 야경이 배치되어 전체적인 디자인을 완성합니다. 이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당시 프랑스 문화에 맞게 각색한 작품으로, 1800년대 초 처음 공연될 당시 사라는 오필리아를 연기했으나, 이후 재공연에서는 언제나 주인공인 햄릿을 말았습니다. 이 포스터는 그녀의 극장에서 열릴 1899년 5월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이 포스터또한 사라 베르나르의 미국 순회 공연 홍보에 사용되었으며, 1905년부터 1911년에 걸쳐 엽서, 책자, 포스터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었습니다.
유디트
작품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유디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유디트는 유대인의 도시 베돌리아를 침략한 아시리아의 장군 흘로페르네스를 자신의 지략으로 무너뜨린 전설적인 여성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아름다움을 무기로 적진에 잠입해 홀로 페르네스의 관심을 사로잡고, 그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척하면서 그를 암살합니다. 결국,홀로페르네스를 잃은 아시리아 군대는 사기를 있고 후퇴하게 됩니다.
728x90
사라 베르나르는 이러한 강인한 여성 영웅들의 이야기에 늘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전에도 성서 속 여성 영웅을 다룬 작품을 선택해 공연한 적이 많았는데, <지스몽다>는 첫 공연 후 100회 넘게 상연되었고, <사마리아여인> 또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고, 그녀의 본명 또한 유디트'였습니다. 이러한 개인적 배경역시 그녀가 이 작품을 고려하는 데 영항을 주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라 베르나르는 결국 이 연극을 무대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작품을 진지하게 검토했고, 무하에게 의상 디자인을 의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Section.2
아르누보의꽃
The Flower of ArtNouveau
1895년, <지스몽다>포스터로 명성을 얻은 무하는 연극계를 넘어 상업 예술로 활동을 확장했습니다. 19세기 말 유럽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대중 소비문화가 급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기업들은 제품 홍보에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무하의 포스터는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새로운 광고 시대를 열었습니다. 무하는 포스터를 단순한 광고물이 아닌 독립적인 예술 장르로 변화시켰습니다. 그의 포스터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감성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으며, 식품, 음료, 출판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었습니다. 곡선적인 장식과 자연 모티프, 신비로운 여성상을 결합한 '무하 스타일'은 제품의 품격을 한층 더 끝어울렸습니다.
무하는 광고 포스터뿐만 아니라, 장식 패널 작업도 진행하며예술의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장식 패널은 인쇄 판화 형식으로 제작되어 가정과 공공장소에서도 쉽게 활용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술은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다 널리 향유될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의 포스터는 19세기 말 파리의 거리틀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으며, 일부 예술애호가들은 이틀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무하의 광고 포스터는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라, 예술과 소비문화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시각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2장에서는 아르누보 시대를 대표하는 무하의 상업 예술과 그 시대 파리 길거리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잉카의 와인
육감적인 여신이 코카로 만든 비밀스러운 음료를 내밀고 있고, 구릿빛 피부의 나이든 인디언 족장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이 강렬한 그림은 특이한 음료를 광고하기 위해 제작된 것입니다. 원래 잉카 족의 코카'라는 이름을가진 이 음료는, 회복 중인 환자에게 좋다는 애매한 설명과 함께 약국에서 판매되었습니다. 초기 기록을 보면, 이 포스터를 음료의 원래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코카 추출물의 중독성 덕분에 꽤 잘 팔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무하는 참고할 만한 잉카족 모델을 찾지 못해, 보다 현실적인 묘사를 위해 박물관에서 사진 자료를 찾아 활용했습니다. 화가로서는 좋은 선택이었지만, 지역적인 오류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림 속 인물은 잉카 족이 아니라 마야 문명의 인물입니다. 무하가 참고한 자료가 멕시코 동부 유카탄반도에서 발견된 비석 조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만능 치료제를 구매한 고객 중에서 이를 문제 삼은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모엣 샹동 그림들
무하는 상업적인 포스터, 메뉴판, 엽서, 문구용 삽화 등 상업적인 부분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다고 하는데요. 해당 작품은 어디에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모엣샹동 케이스 입니다.
보관 상태가 너무나도 좋은데요.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무하 전시회 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은 이런 알폰스 무하가 디자인한 제품들을 너무 좁은 공간에 배치해서 감상하기 다소 불편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또한 설명이 다소 부족한 느낌이...
무하의 술광고는 계속 이어집니다.
트라피스텐
매력적인 여성의 뒤로 고전적인 아르누보 풍의 둥근 배경이 보입니다. 무하의 연극 포스터와 흡사한 이 작품은 언뜻 보면 사라 베르나르의 홍보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성이 홍보하는 것은 파리의 한 주류회사가 만든 리큐어로, 트라피스트회 수도승들이 개발한 조리법을 따른다고 합니다.
트라피스트회는 17세기에 설립된 종교 단체로, 노르망디 트랍 대수도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성의 헤어스타일은 무하의 다른 그림과 달리 구불거리지 않습니다. 대신 그녀의 곧은 머리카락은 관람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의병으로 이급니다. 여성이 들고 있는 꽃은 음료의 제조에 사용되는 다양한 허브를 상징합니다. 수직적인 구도, 장식이 없는하단, 그리고 모든 요소의 완벽한 조화는 <지스몽다>포스터를 연상시킵니다.
다음 공간은 정말로 아름다운 무하의 작품들이 모여있는 공간...
사계
네 명의 요정 그림은 무하가 처음으로 장식 패널에 도전한 작품이었습니다. 1896년 카탈로그에 따르면, 서정적인 <봄>, 나른한 <여름>, 풍성한 <가을>, 그리고 추위에 떠는 <겨울>을 단돈 40프랑에 구매할 수 있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작품이 이번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무하 원화전 티켓 등에 사용된 대표작인 여름입니다만...
새틴 천에 인쇄되거나, 네 장을 한 장에 작게 인쇄하여 무하가 특별히 만든 장식용 들과 함께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1898년에 극 사계를 활용한 달력이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02년에는 마차업계 박람회에서 <여름>이 홍보용으로 사용되는 등, 상업적으로도 활발하게 활용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무하의 대표작 중 하나로,여성스러운 매력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세심한 손길로 그려져 섬세한 파스텔 색감 속에서 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알폰스 무하 사계 연작중에서는 아래 겨울 작품이 가장 좋네요
| 장식패널
알폰스 무하 전시회에 처음 오셨다면, 너무나도 광범위한 무하의 작업 영역에 감탄받으실 수 있는 공간입니다.
"샤를 로리유사(Ch. Lorilleux & Cie)"는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인쇄용 잉크 제조업체로,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의 상업 예술 초기 작품 중 하나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893년, 무하는 샤를 로리유사를 위해 12장의 일러스트로 구성된 달력 형식의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각 그림은 한 달을 상징하며, 무하 특유의 아르누보 스타일로 여성과 자연을 조화롭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무하가 상업적 목적을 위해 제작한 최초의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샤를 로리유사는 단순한 잉크 제조업체를 넘어, 무하와 같은 예술가들과 협업하여 상업 예술의 발전에 기여한 기업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들의 협업은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허물며, 대중에게 예술을 보다 친숙하게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파리스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은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은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와 바다의 요정 테티스의 결혼식에서 시작됩니다. 모든 신들이 초대받았지만,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제외되었습니다. 화가 난 에리스는 연회장에 황금 사과를 던지고 떠났는데,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 사과를 두고 세 여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서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주장하며 다투었습니다. 제우스는 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겼습니다
아침
역시 나는 밤이 제일 좋더라~
샹프누와/백일몽
무하의 가장 사랑받는 작품중하나로,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차분히 앉아 인쇄소의 샘플 책자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1898년 상프누와에서 실내용 홍보 안내문으로 사용되었으며, 달력이 함께 놓여 있거나 원래 달력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달력 여부와 상관없이 작품 자체가 큰 인기를끌었고, 문구 없이 제작된 특별판도 판매되었습니다. 당시 이 그림은 프랑스어로 "몽상"을 의미하는 '헤브리'(Reverie)'로 불렸으며, 현재도 같은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샹프누아는 이 그림을 여러 상업 회사에 제공했고,각회사는 상단에 자사의 문구를 삽입해 인쇄하기도 했습니다. 무하가 그린 여성답게 우아한 분위기를풍기지만, 머리카락은 다른 작품들보다 휠씬 단정하게 묘사되었습니다. 하지만 머리와 원형 배경을 장식하는 꽃을 보면, 무하 특유의 화품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황도 12궁
본래 달력용으로 제작된 이 그림은 상프누와 인쇄소와 문화 예술 잡지 <라플팀> 에서 판매했으며,무하의 가장 유명한 삽화이자 실내용 장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한 샹프누와사의 고객들이 다양한 홍보용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미술 작품으로 판매된 버전에서는두 아기 천사가 차지하고 있던 공간에, 달력용 버전에서는 12개의 세로 칸을 넣어 한 해의 12달을 표시했습니다. 1897년부터 1901년까지 제작된 달력에는 위쪽에 각기 다른 고객의 이름이 삽입되기도 했으며, 영국의 고객들은 이 그림을 목욕용 거품 비누나 입 냄새 제거제 홍보몰로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무하는 보석 디자인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그림 속에 여성이 쓰고있는화려한 티아라와 목걸이에서 그 관심이 잘 드러납니다. 무하의 대표적인 구도 중하나인 원형 배경이 이 작품에서도 눈에 띄며, 달력이라는 용도에 맞게 황도 12궁의 상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잔틴 양식의 두상, 갈색머리, 금발 머리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무하 전시회에서 처음 보는 무하의 청동 도자 작품입니다만, 이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는 부분은 너무나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이곳은 지난 알폰스 무하 전시회에서도 만났었던 작품들이 많네요.
르페브르 위틸의 샴페인 비스킷
제과사르페브르 위틸을 위해 작업한 초기 그림 중하나로, 우아한 배경 속에서 매력적인 연회 장면이 펼쳐집니다. 상류 사회에서는 이 회사의 비스킷을 선호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합니다. 회사의 이니설은 눈에 띄지 않게 배치되었으며,원쪽위 벽의 장식, 금발여성 옆에 놓인 쿠션, 그리고 그녀의 무물에 놓인 손수건에서도 이니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응형
르페브르 위틸은 포스터를 별도로 판매하지 않았기때문에,회사의 삽화는 매우 희귀하다. 이 작은 삽화는 벽에 걸리는포스터가 아니라, 계산대에 놓거나 창문에 걸어 눈에 띄게하기 위한 용도로 제작되었습니다. 삽화는 판지에 고정된 후 구멍을 뚫어 쉽게 고정하거나 걸어둘 수 있도록 제작되었습니다.
이 아르누보 스타일의 장식장 안에는 무하가 디자인한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역시나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무하 원화전에서 이에 대한 설명이 전무한 부분은 상당히 아쉽네요. 좀더 감상하기 편하게 공간이 할애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biscuits
비스켓 상자가 맞을까요?
아래는 향수로 보입니다만...
이 상품은 아마도 차가 담긴 케이스로 생각되는데요, 설명이 없으니 답답답
아래도 비스켓 박스로 생각되는데요. 아니면 말고...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무하 전시회, 다음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뤼송
프랑스남서부에 위치한 뤼송휴양지로 향하는 기차 노선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이 포스터는 무하의 초기 상업 작품 중하나이자, 보기 드물게 여성 모델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림 속말을 탄 남성이 카지노와 기둥이 줄지어 선 회랑식 목욕탕으로 관람자의 시선을 이급니다. 포스터 속 건물 묘사는 무하가 직접 작업한 것이 아니며, 건축 도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은 무하의 서명이 빠져 있어 여러 차례 다른 예술가의 작품으로 오해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카탈로그 원본과 무하의 개인 소장품에서 이 작품의 초안이 발견되면서, 결국 무하의 작품임이 확실해졌습니다.
욥
담배광고가 이래도 되는 것일까요? 지금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페르펙타 자전거
무하는 머리카락 표현에 대한 제약이 없을 때, 과감하게 모든 억압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자전거 홍보 포스터는 그의 스타일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완벽한 작업이었습니다. 자전거 광고에서 강렬한 역동성은 필수적입니다. 여성의 머리카락이 마치 자전거 위에서 날아오를 듯이 휘몰아치는 장면은, 이 포스터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완벽하게 어우러집니다. 바로 그 역동성 자체가 홍보하는 상품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림 속에는자전거의 앞바퀴와 손잡이가 살짝 보이지만, 브랜드나 제품을 강조하기보다는 자전거 타기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페르펙타는 프랑스에서 판매된 영국 브랜드의 자전거로,이 포스터는 유럽 전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무하가 영국 고객을 위해 작업한 몇 안 되는사례 중하나이기도 합니다.
네슬레의 영유아 식품
1890년대만 해도 이유식은 주로 모유에 오트밀을 섞어 직접 만들어 먹이는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포스터 속 어머니가 들고 있는 시판 이유식은 당시에는 생소한 제품이었던 반면, 아기가 타고 있는 나무 요람은 이미 구식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시대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어머니와 아기의 모습은 따뜻하고 매력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상단 모서리에는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 새가 배치되어 모성과 영양이라는주제를 더욱강조하고 있습니다.
1866-1905: The pioneer years
네슬레의 역사는 1866년 앵글로-스위스 연유 회사가 유럽 최초 연유 공장을 스위스에 설립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1867년에는 앙리 네슬레가 획기적인 영아식을 개발했으며, 1905년 앵글로-스위스와 합 병을 통해 현재의 네슬레 그룹이 탄생되었습니다.
작품의 시점을 보면 제품 출시 후 약30년 후 무하와 만나게 되었네요.
2025
다음 공간은 무하의 가장 큰 작품과 함께 포토존으로 가장 좋은 공간 중 하나입니다.
아래 사진은 5년 전인 마이아트 뮤지엄 개관 전시회 무하전에서 찍은 사진인데요. 역시나 이 자리에는 이 작품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2019
웨스트 엔드 리뷰
영국 런던의 문학잡지중 하나인 '웨스트엔드 리뷰'의 표지로 사용된 작품입니다. 세로 3미터 가로 2미터가 넘는 사이즈의 작품으로 9장의 종이를 붙여서 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석판화로 어떻게 이런 대작을 남길 수 있었는지... 무하의 열정에...
대중 미술 협회
대중 미술 협회는 영사기'를 통해 대중에게 예술을 전파하고자 한 단체로, 무하의 관심을 끝었던 활동 중 하나였습니다. 무하는 예술이 부유송뿐만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대중에게 슬라이드를 통해 여러 작품을 상영하고 소개하는 이 협회의 목적은 그에게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당시 영상기술이 존재하긴 했지만, 금방 사라질 유행으로 여겨졌으며 이러한 목적에 적합한 매체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협회는 포스터가 완성되었을 당시 회원 수가 7,000명에 달했었고 영사기 상영뿐만 아니라 무명의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구매하여 후원합으로써 예술가들을 위한 시장이 성장하길 바랐습니다. 포스터 속 젊은예술가는 기이하게 휘날리는 머리카락의 뮤즈를 바라보며 영감을받고 있습니다. 이는 무하가 평소 즐겨 그리던 현실적인 인물과 신화적인 인물의 대비를 보여주는 예시로, 뮤즈는 협회의활동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장식자료집
무하는 1902년에 그가 익혀온 미술적 지식을 담아 장식자료집을 출간 했다고 하는데,...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무하 스타일'이라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알폰스무하 대규모 전시회입니다. 특히 저에게는 제가 좋아하는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 2019년 개관전시회가 알폰스 무하전 이었고, 이후 5년 만에 다시 전시회를 만나게 되어 매우 기대되는 전시회가 되었네요.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 무하 원화전 전시회는 2025년 3월 20일 ~ 7월 13일 까지 열릴 예정입니다. 별도 휴무일 없음 관람시간은 월-일 10:00 - 19:40 (입장마감 19:00) 이지만, 전시장 사정에 따라 오픈 및 종료시간이 변경되기도 합니다.
이번달에도 미술관 사전으로 18시에 전시회가 단축운영된 경우도 있는데요. 마이아트 뮤지엄 방문시 홈페이지를 통해 휴무일 및 운영시간 확인하세요.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웨이팅은 없습니다. 평일 주말 모두 단체 관람객만 없으면 긴 웨이팅 없이 입장 가능합니다.
| 평일 정규 도슨트 3회 / 주말도슨트 없음
마이아트 뮤지엄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시회 도슨트는 주말에는 운영하지 않습니다. 평일오전 11시 오후 2시와 4시총 3회 진행되며, 정우철, 이지안, 한지원 도슨트분들께서 진행하십니다. 도슨트 일정도 마이아트뮤지엄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 H.Point 무하 오디오가이드 4천원 : 이어폰 챙기기
도슨트 시간에 맞추시기 어렵다면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오디오가이드를 HPoint 앱에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무료이용이 아닌 유료 서비스로 제공됩니다. 무하 전시회 오디오가이드 가격은 4,000원으로 역시나 최근 고물가 추세에 맞춰 오디오가이드 이용요금도 높아지고 있네요. 올해 초만해도 다른 전시회들 오디오가이드 요금이 3,000원 정도 했는데.
1분 전후의 오디오 파일 30클립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오디오가이드에서 작품 소개 클립은 약 25개 입니다.
| 사진촬영 가능 (카메라 X)
이번 마이아트뮤지엄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사진촬영 가능합니다. DSLR 카메라 사용은 제한되며 플래쉬 없는 스마트폰 카메라 이용한 작품촬영만 허용됩니다. 삼각대등 촬영 보조도구도 사용제한 됩니다. 나머지 마이아트뮤지엄 이용조건은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제한 됩니다.
4개의 섹션 구성
이번 알폰스 무하 원화전은 총 4개의 섹션과 아트샵, 포토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그의 오리지널 포스터,판 화, 유화, 드로잉 등 20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마이아트뮤지엄 개관전시로 였렸던 2019년 무하 전시회에서는 작품 대부분이 회화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디자인이 적용된 상품과 화폐등도 (조금) 전시되어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작품 다양성을 확보했네요.
티켓팅하고 거대한 문으로 전시관을 들어가면 먼저 프롤로그가 진행됩니다.
| 프롤로그
알폰스 무하는 1885년, 25세의 나이에 뮌헨 미술 아카데미에 입가하며 정규 미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1887년에는 파리로 떠나 아카데미 줄리앙과 콜라로시 아카데미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보다 개방적인 환경에서 예술적 탐구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1889년, 후원자의 지원이 끊기면서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고, 생계를 위해 삽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당시 출판 시장이 성장하면서 그의 뛰어난 드로잉 실력은 주목받았으며,삽화 작업을하며 다양한 기법을 익히고 경험을 쌍아갔습니다.
하지만 무하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삽화 작업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랑드 쇼미에르 거리의 크레메리에 거주하며, 제임스 맥닐 휘슬러, 폴 세뤼지에, 폴 고갱 등과 교류하며 예술적 시야를 넓혀갔습니다.이시기를 거치며 구하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예술적 기반을 다졌으며, 이후 아르누보의 상징이 되는 "무하 스타일"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프톨로그에 전시된 작품들은 그의 성장 과정과 예술적 탐구를 보여주며, 파리에서 명성을 얻기 전의 여정을 조명합니다.
728x90
| 제 1부
뮤즈가 건넨붓, 화가가 그린전설 : The Muse's Gifted Brush, The Artist's Painted Legend
알폰스 무하의 이름을 전 세 계에 알린 포스터 '지스몽다'를 중심으로 그를 유명인의 반열로 올리고 파트너가 된 사라베르나르와의 만남이 그 의 경력에 미친 영항을 살펴보는 섹션입니다. 이 섹션에서는 지스몽다를 필두로 무하가 그린 연극 포스터들을 통해 그의 초기 성공과 예술적 정체성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 제 2부
아르누보의꽃 : The Flower of ArtNouveau
무하는 지스몽다의 대성공 이후 무하가 광고 포스터를 통해 도시 거리를 '야외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는 장식 패널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포스터를 디자인하며 예술을 소수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대중적으로 접근 가능한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이 섹선은 무하가 대중예술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혁신적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또한 이번 섹션에서는 무하의 회화뿐 아니라 도자, 제품등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 제 3 부
무하 오디세이 : Mucha's Odyssey
무하는 1900년 파리 만국박 람회를 기점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활동 범위를 파리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고향 체코로 확장하는 과정음 조명합니다. 프리메이슨 회원으로서 무하가 탐구했던 영적 이상과 민족주의자로서 체코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려 했던 그의 철학을 탐구하는데요. 기존 무하스타일의 작품과는 다른 다소 강한 이미지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또한 무하가 미국에서 시카고의 찰스 리처드 크레인을 통해 후원을 언어 슬라브 서사시를 준비하게 되는과정도 다룹니다.
| 제 4 부
슬라브의 화가 : Painter of the Slavs
고향 체코로 돌아온 무 하가 조국과 슬라브 민족을 위한 작품에 몰두한 시기를 다루는데요. 무하의 일생프로젝트인 슬라브 서사시는 민축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체코의 문화 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이번 섹션에서는 무하의 민족주의와 인류애를 결합한 무하의 철화적 메시지를 탐구하는 공간입니다. 체코 독립 이후 예술가로서의 감동과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에서 드러난 이상주 의적 비전도 소개됩니다.
| 2019 무하 전시회 vs 2025 무하 전시회
5년전에 마이아트뮤지엄에서 무하 전시회를 감상하셨다면, 이번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전시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실 수 있는데요.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작은 19년이 더 많았던 것 같네요. 그리고 무하의 작품 30% 정도는 지난 전시화와 중복되는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이번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포토존은 로비와 전시장 내부에 준비되어 있고요. 이외에도 포토부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 무하 포토부스
마이아트 뮤지엄 지하 1층에는 포토이즘 포토그레이 인생네컷 같은 포토부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포토부스 가격은 1+1 기준 작은 사이즈는 5,000원, 큰 사잊 사진은 7,000원 입니다. 관련 프로모션도 있네요.
일반 포토부스와 동일하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스킨이 그렇게 매력았지는 않네요.
무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삼성동 섬유센터 1층 주변에도 무하의 작품이 인쇄된 대형 현수막이 있어 이를 배경으로 사진찍기 좋고요.
| 로비 포토월
이번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마이아트뮤지엄 1층 로비에는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포토월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오셨으면 사진찍기 최적의 장소입니다. 조명까지 고려하면... 이곳은 전시회 관람여부와 상관없이 이용이 가능합니다.
아쉬운 부분은 2019년 무하 전시회 포토존은 소품과 테이블 등도 준비되어 상당히 정성스럽게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번 포토월은 그냥 그냥 쏘쏘...
| 전시장 입구 포토존
티켓팅하고 들어오면 바로 거대한 문이 보이는데요. Alphonse Mucha 글씨가 양각된 거대한 문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어보세요.
| 웨스트 엔드 리뷰 - 무하의 가장 큰 작품
가로 2.1미터 세로 3미터가 넘는 알폰스 무하의 가장 큰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전시된 공간도 이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찍기 좋게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 공간도 역이 이번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시회 포토존 중 하나입니다.
| 성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 Cathedral)은 체코 프라하에 위치한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성당으로, 그 내부를 장식하는 다채로운 스테인드글라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체코의 국민 화가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가 디자인한 창은 예술성과 역사적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이곳을 배경으로 이번 전시회 추억사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차장 & 아트샵
| 마이아트뮤지엄 주차장, 주차요금
주차장은 마이아트뮤지엄이 있는 강남구 삼성동 섬유센터빌딩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테헤란로 기준으로 건물을 지나 바로 우회전 후 직진하시면 주차장 입구가 보입니다.
주차장은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시면 되는데요. 평일에는 빌딩 입점직원 차량과 방문자 차량으로 만차, 주말에는 웨딩홀 방문객으로 시간이 겹치면 역시나 주차장 만차인데요. 이 또한 운에 따르는... 다만 이곳 웨딩홀이 법적 이슈가 있어서 주말 주차장 다소 한가합니다.
마이아트뮤지엄 주차요금은 최초 30분 3,000원 이후 10분당 1,000원 주차요금 발생합니다. 3시간 이용시 주차요금 9,000원 인데요.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주차요금 할인을 위해서는 티켓부스에서 3,000원에 2시간 무료 주차권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뭐 2시간 기준으로 50% 할인된 가격인데. 이번 무하 전시회 주차부터 관람 출차까지 2시간은 부족합니다. 최소 3시간은 생각하셔야.
지난 14일 부터 최애 미술관 중 하나인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관람후기 입니다. 물론 초대권 아닌 내돈 내산으로 가족관람 후기입니다. 지금까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진행된 전시회 대부분 관람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번 전시회는 상대적인 만족도가 떨어지는 전시회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전시회 정보
- 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Toulouse-Lautrec : The Star of Montmartre - 2024년 9월 14일 - 2025년 3월 3일 / 월-일 10:00 - 19:40 (입장마감 19:00)
- 삼성동 마이아트 뮤지엄
관람요금 및 할인, 주차요금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전시회 관람요금은 성인 20,000원, 청소년 16,000원 입니다.
저는 얼리버드 티켓을 통해 40% 할인된 가격에 관람하고 왔네요. 성인 12,000원에 관람하고 왔습니다. 청소년 예약의 경우 현장에서 학생증 확인 하시네요. 꼭 지참해서 방문하세요.
글 작성 기준으로 통신사나 카드사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전시회 할인은 없는 것 같네요.
마이아트뮤지엄 주차장은 10분에 1,000원 주차요금이 발생합니다. 티켓팅시 3,000원에 2시간 주차가능한 주차 할인권 구입하시면 저렴한 가격에 주차 및 전시회 관람이 가능합니다.
도슨트 및 오디오 가이드
현장 도슨트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도슨트는 월요일 부터 금요일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4시 하루 3번 진행됩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에는 도슨트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문화가 있는 날만이라도 저녁 도슨트와 야간 운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
오디오 가이드 유료
이번 툴루즈 로트렉 전시회는 앱으로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됩니다. 큐피커와 H.Point 앱에서 동시에 제공되며, 총 26개의 오디오가이드 파일이 제공됩니다. 아마도 작품 설명은 20개 내외...
이번 오디오가이드 가격은 4,000원 입니다. 오디오 가이드도 무료 또는 1~2,000원에서 시작하더니 슬금 슬금 가격이 4,000원 까지 인상 되었네요.
포토존
마이아트 뮤지엄 로비에는 사진과 같이 그의 작품과 물랭루즈 사진을 활용한 포토존이 곳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전에 방문하시고, 관람객이 없다면 우선 포토존에서 추억 사진 남기시고 관람해 주세요. 점심시간 가까울 수록, 오후가 되면 이곳도 사람이 많아 여유있게 사진촬영 어렵습니다.
아트샵
이번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전시회가 끝나면 바로 아트샵으로 이어집니다.
로트렉의 작품이 워낙 이러한 소품들과 잘 어울리는 타입이어서 다양한 기념품으로 제작되어 유혹하고 있네요.
한정판 양장본 도록 가격은 49,000원. 이제는 도록 한 권 구입하기도 상당히 망설여 집니다.
어느 미술 전시회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흔한 기념품들과...
다른 전시회에서는 만나보기 힘든 독특한 기념품이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전시회 아트샵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시회 구성 및 관람 시간
이번 전시회는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예술 경향을 흡수하고 응용했던 로트렉 의 실험정신, 그리고 그의 인간애적인 시선이 담긴 작품들로 구성 된 1부와 2부, 말기의 작품들을 다루는 3부, 그리고 로트렉과 같은 시대를 풍미하며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의 황금기를 이끈 13 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728x90
4개의 섹션 중간중간에 작은 주제의 전시 공간도 마련되어 있는데요.
본 전시공간 보다도 이런 공간들에 구성되어 있는 작품들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네요.
제4부는 상당해 매력적인...
사실 이번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전시회는 약간 실망입니다. 4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로트렉전 전시회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생각되는데요. 이러한 아쉬움이 마지막 전시공간에서 많은 부분 해소 되었네요.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네요.
전시회장으로 입장 합니다.
마이아트뮤지엄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 미술의 거장,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탄생 160주년을 기념하여 <툴루즈 로트렉:몽마르트의 별>전시를 2024년 9월 14일부터 2025년 3월 3일까지 개최한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은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의 미술가로 ‘벨 에포크’ 시대 파리 밤문화를 특유의 매혹적이며 도발적인 필체로 표현한 그의 석판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화가, 판화가, 삽화가로 활동한 그는 특정 유파에 속하지 않고 당대 아방가르드 예술의 중심지였던 몽마르트에서 새로운 예술의 다양성을 흡수하고 독창적인 조형성을 개척했으며, 현대 그래픽 포스터의 선구자로 세계 미술사의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손 꼽힌다.
이번 전시는 로트렉의 심리적 결핍과 비운의 생애를 강조해온 이전의 경향을 벗어나 그의 예술을 새로운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신체적 장애를 크게 개의치 않고 사람들과 교류를 즐긴 그의 호방함, 어떠한 유파에도 속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새로운 예술을 받아들인 그의 보헤미안적 실험정신, 특히 화려함과 저급함 이면의 인간미를 관찰했던 그의 휴머니즘을 강조하고자 한다.
세기말 역동성과 휴머니즘이 맞물려 빚어낸 툴루즈-로트렉 예술의 비범함을 탐구하는 본 전시는 그가 몽마르트에서 탄생시킨 불후의 매혹적인 작품과 로트렉과 함께 동시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 황금기를 이끈 쥘 세레, 테오필-알렉상드르 슈타인렌, 알폰스 무하를 포함한 13명의 작품을 망라하는 159개의 석판화 명작을 선보인다.
로트렉에 대한 추가적인 이야기는 지난 2020년에 열린 '툴루즈 로트렉 : 물랭루즈의 작은거인' 전시회 후기 참고하세요.
19세기 말 프랑스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문화예술의 융성으로 아 름다운 시대, 즉 '벨 에포크'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파리의 몽마르 트는 본래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었지만, 이곳에 유 흥 문화가 성행하면서 점차 더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다양 한 예술 경향이 오가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880년대 중반, 로트렉은 몽마르트에 정착하고 작업실을 마련하 여 카바레의 무용수와 가수 등 유명 인사들을 그리기 시작했습니 다. 그리고 1891년에 카바레 '물랑 루즈'를 홍보하는 첫 석판화 포 스터 <물랑 루즈: 라 굴뤼> 를 선보이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귀족 신분을 벗어나 스스로 보헤미안이 되었던 로트렉은 특정 유 파에 속하지 않은 채 다양한 경향을 받아들이며 예술적 실험을 지 속했습니다. 그의 첫 번째 포스터 <물랑 루즈: 라 굴뤼> 의 스케치 석판화를 포함하여 다양한 초기 작품들로 구성된 제1부에서는 일본 판화에 영향을 받은 구성, 섬세한 관찰을 토대로 한 묘 사, 그리고 로트렉만의 실험적인 기법들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저녁의 라 굴뤼
물랑루즈의 영국인 신사
물랑 루즈에서, 라 굴뤼와 여동생
이 작품은 라 굴뤼로 알려진 카바레의 스타 루이스 베버와 여동 생 잔느 베버가 함께 물랑 루즈에 들어선 모습을 보여줍니다. 위로 높이 올린 헤어스타일이 트레이드마크인 라 굴뤼는 등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고 여동생과 팔짱을 낀 채 카바레에 모인 남성 들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잔느 베버는 찡그린 표정에 무뚝뚝한 인상을 주는데, 이는 로트렉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그리 기보다는 특징적인 부분을 살리고, 사실적으로 그리기보다는 과장하여 묘사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라 굴뤼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 의 남성들과 잔느 베버의 오른쪽 인물이 갑작스럽게 잘려 있는 모습은 크로핑 기법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인 아브릴
이 작품은 로트렉이 절친한 친구이자 뮤즈였던 캉캉 무용수 제 인 아브릴을 그린 포스터로, 샹젤리제에 새로 오픈한 카페 콩세르 인 자르댕 드 파리' 무대에 오른 당시 그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독무로 유명했던 아브릴은 1890년에 물랑 루즈에서 데뷔했고, 이 작품이 제작된 1893년경에는 카바레 디방 자포네와 자르 댕 드 파리에 출연 중이었습니다.
일본 목판화의 표현 방식을 차용 한 로트렉은 무대의 마룻바닥을 활용한 대각선 구도로 무대 전경 을 클로즈업하여 중심인물에 주목하게 했으며, 전경의 콘트라베이스를 잡은 손을 중심으로 프레임을 구성하는 독특한 방식을 보여 주었습니다
제인 아브릴
바빌론 달레마뉴 석판화 판들...
당시 유명한 샹숑가수이자 작곡가인 아리스티드 브뤼앙을 모델로 제작된 포스터, 브뤼앙과 로트렉의 인연과 그를 아이콘화 해 포스터에 표현하는 로트렉의 능력
로틀렉의 이야기를 하지면 해당 작품이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찾이하는데요. 이번 전시회에서는 큰 비중없이 넘어간 것 같아 아쉬운 부분도있습니다.
아리스티드 브뤼앙, 카바레에서. 1893 앙바사되르 카바레의 아리스티드 브뤼앙. 1892
쾌락의 여왕
이 작품은 프랑스의 문필가 빅토르 조제의 소설 사회적 동물 시리즈 중 하나인 [쾌락의 여왕J 의 출판을 홍보하기 위 해 제작된 포스터입니다. 로트렉은 은행가 남작과 매춘부 사이 의 관계를 다루는 소설 속 한 장면을 매춘부 여성이 뚱뚱하고 탐욕 스러운 부르주아 남성에게 입맞추는 모습으로 전면에 드러내어 파리 생활을 신랄하게 묘사했습니다.
조제의 소설과 로트렉의 작품으로 인해 실제로 스캔들에 휘말린 로스차일드 은행가의 남작 알 퐁스 드 로스차일드는 출판을 금지시키려 하고, 파리 전역에 부착 된 포스터를 떼어버리는 데 모자라, 부착되지 않았던 포스터까 지 사들여 처분하기도 했습니다.
쾌락의 여왕
코디유
이 작품은 당시 유명한 가수이자 코미디언이었던 알베르 코디유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코디유는 육중한 체격에도 불 구하고, 연미복의 뒷부분이 휘날릴 정도로 무대 위를 가볍게 뛰어 다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프레임에서 벗어나 있는 손 과 발은 그의 움직임이 얼마나 역동적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른쪽 아래에는 몸집이 큰 코디유와 대조적으로 광대뼈가 도드라 질 만큼 마른 인물이 프롬프터 박스안에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습 니다.
가끔씩 물랭루즈에서 벗어난 로트렉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 다소 그의 작품과는 다른 강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단두대 앞에 서서
마이아트 뮤지엄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전시회 첫 공간은 그린존인데요. 계속 전시회는 이어 집니다.
레스토랑 오리지널 표지
사진가 폴 세스코
40대에
당신의 입
두 번째 공간으로 넘어가기 전에 붉은색 커튼 안쪽에 붉은 벽으로 구성된 공간이 보입니다.
카페 콩세르
카페 콩세르는 음식과 술을 곁들이며 라이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카바레와 같이 19세기 말 파리의 인기 있는 유흥 시 설 중 하나였습니다. 밤 문화를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 을 수 있었기 때문에, 카페 콩세르는 로트렉을 비롯한 당대 화가들에게는 예술적 영감의 장소였습니다.
728x90
이 공간은 프랑스의 화가 앙 리 가브리엘 이벨스와 로트렉의 작품을 한데 엮은 판화집 <카 페 콩세르> 연작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품집 안에는 두 예술가 가 그린 열한 점의 판화가 총 스물 두 점 담겨 있습니다. 은은하 게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카바레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를 감상 해보며 세기말 파리의 화려한 밤 문화를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진을 확대하시면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전시회 작품의 상세한 설명과 제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그 만의 얼굴 특징이 있다.
2부 휴머니스트
파리에서 새로운 반향을 일으킨 로트렉은 살롱 데 상 갤러리와 의 인연으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특히 1896년 살롱 데 상에서 선보인 <엘르> 는 로트렉이 사창가에서 지내며 매춘부의 소박 한 일상을 특유의 관찰력과 인간애로 담아낸 작품으로, 판화 집 중 걸작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매춘부와 같은 하층민들을 그렸지만, 같은 대상을 표현할지라도 로트렉의 시선은 그들의 특징과 숨겨진 애환 에 향해 있었습니다. 풍경보다는 인물을 그리는 데 전념하고, 일본 판화로부터 영감을 받은 기법들도 인물의 개성을 극대화하 는 데 활용하는 등 로트렉의 인간 중심 회화는 그의 창작 생애 전반 에 걸쳐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지속적으로 여성 배우와 가수를 묘사하는 데 관심을 보인 로트렉 은 인물의 통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보다는, 자신만의 표현방식 을 활용하여 그들이 가진 매력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엘르
이 작품은 로트렉이 1892년에서 1895년 사이에 종종 파리 사창 가에서 지내며 매춘부의 모습을 관찰하여 그린 판화집입니다. 표지와 표제 삽화를 포함하여 총 열두 점의 석판화로 구성된 <엘르> 는 목판화로 제작된 일본 춘화집과 유사한 구성을 보여주지만, 노골적인 성행위를 묘사한 일본 춘화집과 달리, 로트렉은 자신 이 직접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경험했던 매춘부의 일상을 친밀하 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여성, 머리를 빗는 여성, 세수하거나 거울을 보는 여성 등 오늘날에 로틱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 사소한 장면들은 당시에는 부도덕 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로트렉은 그들에 대해 특정 한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사적이고 평범한 일상을 보여줌으로 써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이 느끼는 고립감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코르셋을 입는 여인, 엘르 연작
이런 작품에서는 드가의 느낌이 살짝 나기도 하네요.
확실히 로트렉은 우리와는 다른 세상을 보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더라는...
세수하는 여인 - 화장실
쟁만을 들고 있는 여인 - 아침식사
잠자는 여인 - 기상
마르셀 렌더의 흉상
이 작품은 프랑스의 배우이자 가수였던 마르셀 렌더를 그린 초상 화로, 1895년 테아트르 데 바리에테의 오페레타인 '실페리 크'의 의상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1893년부터 2 년여 동안 로트렉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특히 렌더가 관객에게 등을 돌린 채 춤추는 모습을 사랑했는데, 항상 맨 앞의 같은 자리에 앉아 그녀의 공연과 아름다운 모습 을 감상했습니다. <마르셀 렌더의 흉상> 은 일본 목판화가 키타 가와 우타마로의 미인도와 종종 비교되기도 했으며, 로트렉이 그 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서있는 마드모아젤 렌더
메이 벨포르 연작
이 작품도 로트렉의 연기에서는 상당히 비중있는 작품 중 하나...
그랜드 로지
이 작품에서 오른쪽에 있는 여인은 몽마르트의 레즈비언 바인 르 하네통을 운영하는 아르망드 브라지에이며, 왼쪽에 있는 여 인은 폴리 베르제르 바의 무용수 에밀리엔느 달랑송입니다. 공연을 관람하는 친구나 지인을 몰래 그리곤 했던 로트렉은 두 여인 이 함께 극장의 특별석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두툼한 체격에 밝은 옷을 입은 브라지에와 작은 체격에 어 두운 망토를 걸친 달랑송 두 사람의 대비되는 모습은 그들의 성향 의 차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들 뒤로는 유대인 은행가 로 스차일드가의 마부가 공연에 무심한 채 졸고 있습니다.
콘서트에서
이 작품은 로트렉의 석판화 중에서도 아연판으로 제작된 유일한 작품으로, 소량만 인쇄되었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높은 것으로 꼽힙니다. 고급스러운 의상을 차려입은 부부는 로트렉의 사촌 가브리엘 타피에 드 셀레이랑과 무용수이자 배우였던 에밀리엔 느 달랑송입니다.
벨 에포크 시기 패션을 보여주는 두 사람의 고급 스러운 의상은 연극과 같은 오락 문화를 향유하는 상류층의 화려 한 삶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후 미국의 석판 인쇄 회사인 올트 앤 와이보그사의 의뢰로 작품 상단에 회사명을 추가한 에디션이 제작되었는데, 이를 통해 당시 로트렉의 국제적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삽화가 아돌프 윌레트가 창간한 동명의 월간지를 홍보하는 포스터입니다. 작품 속 장면은 잡지명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으며, 중앙의 광포한 소는 누군가에게는 공포감을, 누군 가에게는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표현되었습니다.
황소에 쫓겨 도망치는 맨 앞의 남성은 프랑스의 정치인 르네 베랑제이며, 뒤에서 이를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인물들은 공연자, 예술가, 노동자들로 빗대어집니다. 그리고 가장 멀리서는 경찰이 힘겹 게 그들을 뒤쫓고 있습니다. '성난 소'라는 말은 '먹을 것이 없는 궁 핍한 생활'을 의미하는 관용어에서 유래했으며, 로트렉은 이를 배고품에 화가 난 예술가들의 행진으로 비유하며 그 속에 내재된 정 신을 우화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성난소
이번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전시회 2부 공간은 가장 로트렉 다운 작품들 소개가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에게 잘 아려지고 큰 규모의 작품은 많이 없지만, 잘 정리된 그의 작품들...
라 레뷔 블랑쉬
4명의 파리의 유명 댄서를 홍보하는 포스터, 그가 가장 사랑한 무용수인 제인 아브릴의 위치 및 구도, 포즈를 이해하면 더욱 재미있는 작품
에글란팅 무용단
로얄 거리의 아이리시 아메리칸 바
저택의 여인 혹은 종소리...
이 작품은 이번 전시회에서 큰 비중있는 작품은 아닌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시선을 끌었던 로트렉의 작품 중 하나. 현재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뭉크의 작품들이 생각나는...
저택의 여인 혹은 종소리
3부 몽마르트의 별
로트렉에게 몽마르트는 예술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곳 이었던 동시에 그를 매춘과 음주로 취약하게 만든 곳이기도 했습 니다. 알코올 중독과 잦은 매춘으로 병원에 드나들며 1899년에 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지만,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서 포스터 부문의 심사위원을 맡거나 여러 전람회에 작품을 출품 하면서 예술과 삶에 대한 불꽃이 소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728x90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로트렉은 1901년 9월 9일, 자 신의 영원한 지지자였던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프랑스 지롱드 에서 3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화려한 몽마르트의 별들 이 지닌 슬픔과 유머를 세상에 직접 뛰어들며 표현했던 로트렉 은 이제 근현대 미술사의 별이 되어 오늘날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 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인간사의 뒤안길을 관찰하며 인간의 가 장 인간다운 순간을 그리는 데 전념한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통 전시회에서 가장 크거나 중요한 대작들이 전시되는 공간인데, 이번에는 다소 소박한 로트렉의 연작들이 전시된 공간으로 활용 되었네요. 제3부에서는 로트렉의 원대한 실험정신과 인본주의적 통찰력 이 빛어낸 그의 창작 생애 후반기 석판화 작품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베트 길베르 표지와 작품들
3번째 이베트 길베르 - 링거 롱거 루
그냥 느낌이 좋아...
이베트 길베르
이 작품은 세기말 카페 콩세르의 아이콘이자 로트렉의 오랜 뮤즈중한 명이었던 프랑스의 배우 이베트 길베르를 그린 판화집입니다. 붉게 물든 머리와 창백한 피부, 몸매가 드러나는 의상 등 그 녀는 여타 카바레 스타들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고수했습니 다. 특히 팔꿈치까지 오는 검은색 장갑은 로트렉의 작품 속 이베 트 길베르를 상징하는 요소였습니다. 그녀의 얼굴과 표정을 묘사 하는 데 집중한 이 판화집은 마치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그대 로 포착한 듯한 현장감 있는 묘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표지를 제외한 세 점의 작품 제목은 모두 그녀가 실제로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앨범, 써커스에서
서커스에서
이 작품은 1899년 로트렉이 말년에 머물렀던 병원 안에서 그린 작 품들을 묶은 판화집입니다. 그는 병원에서 어릴적 아버지와 함 께 관람하곤 했던 서커스를 떠올리며 기억을 토대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직접 보고 그린 것이 아님에도 인물의 동작과 동물의 형 태 묘사가 정확한데, 이는 어린 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승마화가 르 네 프랭스토의 가르침으로부터 받은 영향이었습니다. 판화집은 로트렉이 세상을 떠난 뒤 1905년에 그의 친구 모리스 주아양에 의 해 출판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번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전시에서는 총 39점 의 석판화 중 22점을 감상해 보실 수 있습니다.
공중곡예 : 서커스에서 연작
무대입장 : 서커스에서 연작
제인 아브릴
이 작품은 로트렉이 그녀의 모습을 그린 마지막 작품입니다. 로트렉의 오랜 친구였던 제인 아브릴은 그에게 마지막으로 작품을 의뢰했고, 로트렉은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그녀의 사진 한 장을 토대로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로트렉이 그려 온 아브릴은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을 보이는 한편, 항상 다소 우울한 표정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이는 매춘부였던 어머니의 학대로 인한 아픔과 틱장 애와 유사한 무도병을 앓는 등의 슬픔을 안고 있는 내면이 반영 된 것입니다. 병마나 고통을 겪는 비주류의 삶에 대해 인간애를 가지고 있었던 로트렉은 그녀가 아름다운 춤으로 고통을 해방시키 는 모습에 이끌렸고, 인물에 대한 애정을 작품에도 잘 녹여내었습 니다.
학생들의 무도회에서
이번 마이아트뮤지엄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전시회의 마지막 공간이자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이 4부 공간으로 이동 합니다.
4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
벨 에포크 시대에 융성한 산업 분야는 더 많은 예술가들이 광고 포 스터를 비롯한 상업 미술에 도전할 수 있게 했습니다. 프랑스는 16 세기로의 전환기에 서체 위주의 포스터를 도입했지만, 이미지와 서체가 어우러진 오늘날의 포스터 형식은 19세기가 되어서 야 보편화되었습니다.
1815년에 석판화가 프랑스에 도입되고 1830년대 후반에 다색 석판술이 전파된 이후, 석판화 포스터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 했습니다. 특히 파리에 화려한 색채의 대형 포스터를 가장 먼저 선 보인 질 세레는 포스터 매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며 로트렉 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로트렉과 같은 시대를 풍미하며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의 전성기를 이끈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마지막 제 4부에서는 질 세레와 알폰 스 무하를 비롯해 로트렉의 예술과 유사성을 보이면서도 고유의 미감이 드러나는 열세 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 습니다.
쥘 세레-물랑 루즈 무도회
프랑스의 석판화가 쥘 세레는 1850년대 말 컬러 포스터의 대량생 산에 초석을 다진 예술가로, 포스터 예술의 황금시대 동안 여러 화가들에게 귀감이 되어주었습니다. 석판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 으로 포스터를 제작한 세레는 1866년 자신의 공방을 설립하 여 파리의 극장, 카바레 등의 광고 포스터를 제작했습니다.
이 작 품은 물랑 루즈 개업 당시에 제작한 홍보 포스터입니다. 세레는 물 랑 루즈의 대표 샤를 지들러가 카바레 홍보를 위해 당나귀를 타 는 소녀들을 데려가 선보였다는 실제 일화를 작품 속에 유희적으 로 묘사하였습니다.
자르댕 드 파리
쥘 세레(Jules Chéret, 1836–1932)는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현대 포스터 예술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는 화려하고 생동감 있는 포스터 디자인으로 유명하며, 19세기 후반의 파리에서 활약했습니다. 쥘 세레는 특히 리토그래피 기법을 통해 다채로운 색상과 역동적인 구도를 활용한 대중 예술을 창조했습니다.
728x90
그의 포스터 작품은 주로 공연 예술, 오락 산업 그리고 상업 광고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었으며, 당시 파리의 카바레, 극장, 무도회장 등을 홍보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쥘 세레는 여성상을 경쾌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그렸으며, 이를 통해 밝고 활기찬 이미지를 전달했습니다. 그의 스타일은 프랑스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를 대표하는 시각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물랭 루즈", **"폴리 베르제르"**와 같은 공연 포스터들이 있으며, 이 포스터들은 단순한 상업 광고의 경계를 넘어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페라 무대 뒤
로트렉의 작품과 비슷 한 것 같지만 확실히 다름...
앙리 가브리엘 이벨스(Henri-Gabriel Ibels, 1867–1936)는
프랑스의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판화가이자 극작가로, 나비파(Nabis) 예술 운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인물입니다. 이벨은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포스터 아트와 삽화, 리토그래피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사회적 주제를 다루며, 풍자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이 특징입니다.
이벨은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데 관심이 많았으며, 극장 포스터와 신문, 잡지의 삽화 작업을 통해 대중과 소통했습니다. 그는 주로 캬바레 공연이나 극장과 같은 주제를 작품으로 표현했으며, 친구였던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과 함께 포스터 아트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이 작품은 파리의 엘리제 몽마르트 뮤직홀에 조성된 극장 이자 카페 콩세르였던 트리아농에서 공연하는 인물을 묘사하고 있 습니다. 제인 드베리라는 이름의 여인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포스터의 문구를 통해 가수임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손을 들어 말 을 건네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 인물과 전체적인 표현은 단순해 보 이지만, 미화되지 않은 얼굴 묘사와 미묘한 음영 표현이 두드러집 니다.
앙리 가브리엘 이벨스 -트리아농 콩세르 제인 드베 리
프레데릭-오귀스트 카잘(Frédéric-Auguste Cazals, 1865–1941)은
프랑스의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로, 주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과의 친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카잘은 툴루즈 로트렉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로, 둘은 당시 파리의 몽마르트르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그는 로트렉의 삶과 예술을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의 삽화와 초상화 작업을 통해 당시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생활을 표현했습니다.
카잘은 삽화가로서 다양한 문학 작품의 삽화를 그렸고, 주로 프랑스의 상징주의 문학과 관련된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또한, 그는 파리의 카바레와 카페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의 교류 속에서 몽마르트르의 예술적 분위기를 담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프레데릭 오귀스트 카잘 -제7회 살롱 데 상 전시회
카잘의 스타일은 섬세하면서도 직관적인 선을 사용하여 인물의 감정을 잘 드러내며, 그의 작품은 주로 인물화, 초상화, 그리고 풍경화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는 툴루즈 로트렉을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이 작품들은 당시 예술가 사회의 활기와 독특한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제7회 살롱 데 상 전시회를 홍보하는 포스터로 제 작되었으며, 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는 두 인물을 묘사하고 있습 니다. 빨간 머플러를 두르고 있는 전경의 인물은 그의 친구이자 시 인이었던 베를렌이며, 뒤의 모자를 쓴 신사는 '상징주의 선 언'을 발표하였던 장 모레아스입니다.
아르센 에비니에(Arsène-Henry-Bénoni Étienne Vienne)**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프랑스의 화가이자 판화가입니다. 그는 특히 에칭(판화를 만드는 기법 중 하나)과 동판화로 유명하며, 주로 도시 풍경과 자연을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에비니에의 작품은 당시 프랑스의 풍경과 일상적인 장면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며, 세밀한 선과 그림자 표현을 통해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는 파리와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뿐만 아니라 자연의 풍경, 특히 숲과 강, 시골 마을을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비록 에비니에에 대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지만, 그의 판화는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당시 유럽의 상류층과 예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살롱 데 상
폴 베르통(Paul Berthon, 1872–1909)**은
프랑스의 화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아르 누보(Art Nouveau) 스타일의 포스터와 삽화로 유명합니다. 베르통은 주로 리토그래피(석판화) 기법을 사용하여 섬세하고 우아한 디자인을 창조했으며, 자연 요소와 여성 인물을 강조하는 독특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눈덩이 ./ 에글랑틴
베르통의 작품은 당시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기의 미적 감각을 반영하며, 부드럽고 유기적인 선과 복잡한 장식 요소들이 특징입니다. 그는 주로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한 포스터를 제작했으며, 이는 쥘 세레(Jules Chéret)와 같은 동시대의 다른 포스터 아티스트들과 유사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문학 작품, 공연, 전시회 등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있으며, 예술성과 상업성을 결합한 아르 누보 디자인의 대표적인 예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베르통의 작품들은 대담한 색상, 장식적인 배경, 우아한 여성상 등이 특징적이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작품 느낌이 좋아, 그림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귀스타브 마리 - 에드몽 사고, 여성들을 위한 새해 선물
귀스타브 마리는 프랑스의 삽화가이자 포스터 디자이너로, 유머러 스한 표현과 감각적인 구성을 보여준 예술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미술품 상인이었던 에드몽 사고가 자신의 인쇄소 와 당해 출간한 책을 홍보하기 위해 의뢰한 포스터입니다.
왼쪽에는 그의 인쇄소를 홍보하는 문구와 함께 도면을 제작하는 여인을, 오른쪽에는 그가 출판한 샤를 모리스의 저서 [파리 연감J 을 읽고 있는 여인을 그린 두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단에 적힌 '여성들을 위한 새해 선물'이라는 문구를 통해 여 성 독자를 대상으로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무용 수 로이 풀러의 공연 살로메의 비극을 홍보하는 포스터로, 팜므파탈의 전형인 살로메의 매력을 높은 채도의 선명한 색상과 보 색 대비를 통해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드 푀르 는 긴 드레스의 치맛자락을 활용한 풀러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강 조하기 위해 어두운 배경 속에 다채로운 색감을 입혀 묘사하였습니다.
르주 드 푀르 -로이 풀러
조르주 드 푀르(Georges de Feure, 1868–1943)**는
프랑스의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아르 누보(Art Nouveau) 운동의 주요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포스터 아트, 가구 디자인, 그리고 도자기와 유리 예술로 유명합니다. 그의 작업은 상징주의와 아르 누보 스타일의 독특한 혼합을 보여줍니다.
조르주 드 푀르의 예술은 주로 여성의 우아함과 신비로움을 주제로 했으며, 여성 인물을 감각적이고 이상화된 모습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유기적인 곡선, 부드러운 색상, 그리고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장식적인 요소들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특히 리토그래피와 포스터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극장 포스터와 같은 상업 예술에서도 예술적 깊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전시회에서 유일하게 별도 공간을 가지고 있는 작가...
알폰스 무하 -살롱 데상
알폰스 무하는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체코 출신의 화가이자 장 식 미술가입니다. 이 작품은 로트렉과 마찬가지로 잡지사 '라 플 륌'이 주관한 살롱 데 상 전시로 전성기를 보낸 무하가 전시 참여 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편집장 레옹 데샹에게 선물한 포스터입니 다. 독특한 점은 <살롱 데 상> 이 미완성 상태로 인쇄되었다는 점 인데, 이는 무하의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보고 크게 감탄한 데샹 이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쇄를 감행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알 려져 있습니다. 본 작품은 무하가 [라 플림 에 선보인 첫 작품이 기도 합니다.
사실 무하의 작품을 이 몇 점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무하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지금 로트렉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는 마이아트 뮤지엄 개관 기념전 참고하세요
프랑스의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주로 포스터 아트와 판화 작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활동했으며, 그의 작품은 당시의 상업 예술과 일상 생활을 다루는 데 집중되었습니다.
코틀로프는 리토그래피 기법을 사용하여 풍경화, 도시 풍경, 그리고 당대의 사회적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의 포스터는 캬바레, 극장 공연, 그리고 상업 광고를 홍보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대중 예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당시의 문화적, 사회적 분위기를 잘 반영하며, 세밀한 묘사와 감각적인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코틀로프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프랑스의 시각적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앙리 프리바 리브몽 -압생트 로메트
앙리 프리바-리브몽은 벨기에의 상징주의 화가이자 아르누보 장식 미술가입니다. 이 작품은 녹색 요정'이라고도 불리는 압생트를 홍 보하는 포스터입니다. 압생트 잔을 높이 들고 있는 여인의 도상은 술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며 당시 압생트의 인기를 실감 하게 합니다.
728x90
여인의 흡날리는 머리카락과 장식적인 서체, 식물 문 양에서 나타나는 유려한 곡선은 아르누보 양식의 특징이 라 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여성의 이미지를 간결하면서도 은은하 게 드러난 음영을 통해 아름답게 그려낸 프리바-리브몽은 '벨기 에 포스터 예술가들 사이의 독보적인 거장'이라 평가되기도 했습 니다.
여기까지가 '툴루즈 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전시회 마지막 작품이 끝났습니다.
연표와 영상, 그리고 몇 가지 정보
빽빽한 연표와 이번 전시회에서 만났던 작품들...
1952년 영화 물랑 루즈에서 로트렉의 작품이 인쇄되고 거리에 걸리는 장면...
4분 조금넘는 시간의 영상...
당시 파리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주요 사조에 대한 설명...
일본 목판화와 자포니즘이 언급되면, 그게 너무나 부럽더라...
지금까지 마아이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툴르즈 로트렉 전시회 관람후기 였습니다.
로트렉이 좋아 방문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는 전시회일 수 있는데요.
당시 로트렉과 함께한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회도 매력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믿고 관람하는 최애 미술관 중 하나인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지난주인 3월 21일 오픈했습니다. 저도 이번 주말에 전시회 다녀 왔는데요. 저에게는 다소 낮선 북유럽 지역 근대 미술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 리뷰 순서는...
오늘 리뷰는 장소 및 주차, 요금할인, 도슨트, 오디오가이드 등의 전시회 정보를 먼저 리뷰하고, 이어서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회 전시회 감상후기 > 마지막으로 아트샵 소개 순서로 진행합니다.
| 전시정보 및 주차, 주차요금 할인
이번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회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섬유센터빌딩 B1층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 전시기간 : 2024. 3. 21(목) ~ 2024. 8. 25(일) - 관람시간 : 오전 10:00 ~ 오후 7:40 / 연중무휴
- 주차할인 : 2시간 3,000원에 주차할인 / 이후 10분 당 1,000원 (무료주차 없음)
저는 토요일 오전에 방문 했는데요. 해당 시간에도 관람객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기번호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줄 서서 관람해야 할 정도는 되네요.
728x90
| 관람 요금 및 티켓 할인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관람요금은 성인 20,000원, 청소는 16,000원 입니다. 저는 전시회 오픈전 얼리버드 티켓팅을 통해 40% 할인된 12,000원에 관람하고 홨습니다. 아직 전시회 초반이어서 그런지 통신사 할인 등의 티켓할인 프로모션은 없네요.
| 도슨트 (주중) / 오디오가이드 (4,000원)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도슨트는 정우철, 이지안, 한지원 도스트님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펼일인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1시 오후 2시와 4시 하루 세 번 진행됩니다. 아쉽게도 주말 도슨트는 없네요.
다만, 현대백화점 H.Point 앱에서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됩니다. 다만 유료인 4,000원에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작품에 캡션이 충실해서 감상에 큰 어려움은 없지만 그래도 오디오 가이드로 감상하는 것이 더 좋네요. (약 80여점 중 20여점이 오디오가이드로 제공됩니다.)
| 마이아트뮤지엄 물품보관함
짐이 많으면 전시장 옆에 있는 물품보관함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최초 2시간 1,000원이며 이후 30분당 500원씩 추가됩니다.
| From Dawn to Dusk: - 총 4개의 섹션, 100분 전후 관람시간...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본격적으로 소개합니다.
이번 전시는 스웨덴과 대한민국의 수교 65주년을 기념하여 스웨덴국립미술관과 마이아트뮤지엄이 협업한 전시로, 스웨덴과 덴마크,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명작 79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의 전환기, 북유럽 국가에서 발전한 예술과 북유럽 특유의 화풍이 정립된 배경을 조명하는 이번 전시 는 당대 젊은 예술가들이 프랑스 등 이국에서 체득한 새로운 화풍을 바탕으로 자국의 모티프와 정체성을 모색해 나가는 여정을 네 개의 섹션을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예술적 혁신이 동트는 새벽에서부터 성숙기를 맞이한 황혼 무렵, 민족 낭만주의가 무르익을 때까지 북유럽 미술의 흐름을 찬찬히 감상해 보시며, 예술가들의 여정과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전시회로 저에게는 상당히 낮선 북유럽 미술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 1 섹션 : 혁신의 새벽, 스칸디나비아 예술의 새로운 빛
19세기말, 북유럽 예술가들은 스톡홀름 왕립 미술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인 예술계에 반기를 품고 당대 국제적인 예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프랑스 현대 미에 영향을 받은 많은 스웨덴 예술가들은 야외에서 직접 빛을 관찰하고 그리는 외광 회화를 수용하는 한편, 자국의 일상과 노동의 장면을 주제로 그리면서 진정한 북유럽의 현실과 풍경을 묘사하려 했습니다. 또한, 덴마크 북부 유틀랜드에 위치한 작은 어촌 마을인 스카겐에 종종 머무르며 그곳의 정경과 지역민을 외광화풍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로부터 북유럽 화풍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728x90
스웨덴 예술의 개혁은 1885년에 결성된 '반대파'를 통해 구체화되었습니다. 이를 주도한 에른스트 요셉손과 84명의 예술가 들은 프랑스에서 공부한 화가들의 신작을 <반대파 전시> 에서 선보이며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대해 미술 교육과 예술가 지 원을 개혁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 장에서는 반대파를 구성하는 핵심 인물들의 작품을 포함하여 프랑스 예술에 영향을 받아 재해석한 북유럽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칼 프레드릭 힐, 몽티니 쉬르 루앙의 가파른 오르막 1870
칼 프레드릭 힐은 풍경화와 드로잉으로 잘 알려진 스웨덴의 화가입니다. 프랑스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힐은 도시보다는 자연경관을 그렸고, 자갈 채석장이나 채굴장을 주로 그렸습니다. '완벽한 예술'을 표현하려 했던 그는 1876년 몽티니 쉬르 루앙에서 여름을 보내던 중 한 편지에 *예술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진실된 마음이다"라고 썼고, 그곳에서 발견한 계단과 같은 새로운 모티프를 작품에 담았습니다. 이 작품은 하루 중 햇살이 가장 강한 시간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 석조건물이 보이는 거리는 텅 빈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어두운 색 옷과 빨간 두건을 두른 인물 형상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 프리츠 타울로, 노르웨이의 예렌 해안가에서, 1879
프리츠 타울로는 1880년대 노르웨이 미술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프랑스에서 머무르는 동안 외광 회화에 많은 영 향을 받았고, 그곳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자국으로 돌아온 타울로가 노르웨이 남서해안의 예렌에 방 문한 후 이듬해 제작한 작품입니다. 당시 예술가들에게 예렌은 시골 풍경과 해안 풍경에 많은 영감을 주었던 장소였습니다. 타 울로는 예렌의 울퉁불퉁한 해안선을 세심하게 포착하였고, 형태의 묘사보다는 작품의 주제를 선정하는 데 더욱 중점을 두었습 니다. 갈매기들이 앉아 있는 전신주는 당대의 시대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회 전시장은 이런 분위기 입니다. 플래쉬 없는 사진촬영은 제한이 없으며, 동영상 촬영은 불가입니다..
| 한스 프레드릭 구데, 샌드빅의 피오르, 1879
낭만주의 화가이자 노르웨이의 대표 화가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 휴고 삼손, 꽃따기, 1882
휴고 삼손은 인물화와 풍속화로 잘 알려져 있는 스웨덴의 화가입니다. 외광 회화를 포함한 당대 프랑스 미술에 많은 영향을 받 은 삼손은 스웨덴 화가들 중 가장 프랑스 화풍의 특성이 많이 나타나는 작품을 그린 화가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북부 피카르 디 지역에 머무르는 동안 그린 이 작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밝고 생동감 있는 색채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들판'이라는 배경 은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로부터 다루어지면서 프랑스 자연주의 미술의 중심 소재가 되었습니다. 발강게 상기되어 있 는 얼굴의 소녀는 소매를 걷어올리고 한참 꽃을 따다 쉬고 있는 모습입니다. 짙은 눈두덩이에는 고단함이 다소 배어있으며, 시 선은 생활고로 인한 삶의 무게, 그리고 더 넓은 시야를 향한 열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휴고 삼손의 다른 작품인 '어떤 소녀의 초상화'
| 칼 스콘베르그, 베니스 대운하. 1882
칼 스콘베르그는 프랑스 인상주의와 외광 회화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스웨덴의 화가입니다. 그는 프랑스 미술에 대한 열정 뿐만 아니라, '회색 화파'라고도 불린 네덜란드 '헤이그 화파'에도 영향을 받으며 여타 풍경화와 구별되는 색채로 스웨덴 풍경 화에 신선함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영향이 잘 드러나는 작품 <베니스 대운하> 는 건강이 악화된 스콘베르그가 회복 을 위해 이탈리아로 이주한 시기에 그려졌습니다. 구름 낀 흐린 날, 우산을 쓴 사람들과 물기 있는 땅에 비친 그림자가 대담 한 붓 터치로 표현되어 있으며, 촉촉하게 젖은 지면의 돌은 분위기를 시적으로 만들어줍니다.
728x90
| 브루노 릴리에포르스의 작품들...
브루노 릴리에포르스는 야생동물을 섬세하게 관찰하여 작품에 담은 스웨덴의 화가입니다. 이번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회'에서는 브루노 릴리에포르스의 작품 다수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 브루노 릴리에포르스, 어치들. 1886
브루노 릴리에포르스는 야생동물을 섬세하게 관찰하여 작품에 담은 스웨덴의 화가입니다. 새가 뛰어오르기 직전 찰나의 순간 을 절묘하게 포착한 작품 <어치들> 은 드라마틱한 상황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마치 새에 초점을 맞추고 찍은 사진처럼, 배경 은 다소 시선이 확산되고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새가 앉아 있는 아름답고 장식적인 나뭇가지는 작품 왼쪽에 배치되 어 비대칭적인 구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나뭇가지가 세밀하게 묘사된 전경과 어렴풋이 보이는 숲 속 배경 사이의 강 한 대비는 얼어붙은 순간의 긴장된 분위기를 한 층 더합니다.
1섹션은 기존 낭만주의 작품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하겠네요. 북유럽만의 무언가 개성 있는 작품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 악셀융스테드, 스위스의 채석장에서. 1886.
프랑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의 영향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생활을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회 .그린 스웨덴의 화가입니다. 사실적인 표현과 다소 불안정한 구도가 상당히 강렬하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이번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회에서 상당히 마음에 드는 작품중 하나입니다.
| 요한 프레드릭 크루텐, 린셰핑의 정원에서. 1887~1888
요한 프레드릭 크루텐은 스웨덴의 모습을 사실주의와 이상주의로 담아낸 화가입니다. 드로잉과 인물화, 조경을 공부한 크루텐은 짧은 기간 동안 프랑스에 머물렀고, 스웨덴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고향 린셰핑에서 정원 풍경과 지역 주민들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1880년대 프랑스 미술에 영향을 받은 이 작품은 그의 초기작 중 하나로, 린셰핑의 정원에 있는 젊은 의사와 그의 가족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크루텐은 상세한 묘사를 바탕으로 정원의 모습을 세심하게 구현하며 장면의 분위기를 아름답게 연출하였습니다.
전시장 중간에 북유럽 회화를 이해하는 3가지 키워드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 외장 회화
외관(外) 회화는 야외에서 직접 빛을 관찰하며 풍경을 담아낸 그림을 말한다. 휴대용 캔버스와 이젤의 발명뿐만 아니라, 1841년 접을 수 있는 튜브물감의 발명으로 많은 예술가들은 작업실 밖으로 나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당대 프랑스에서는 외광 회화가 바르비종 화파를 시작으로 자연주의와 인상주의까지 이미 정착되어 있었던 데 반해, 북유럽에서 외광회화는 뒤늦게 조명받았다. 파리로 떠난 많은 스칸디나비아 예술가들이 외광회화에 영감을 받았다. 그들은 더 가볍고 밝은 색감을 사용하여 분위기와 빛의 효과를 묘사하는데 매진하였다.
| 스카겐 예술가 집단
1870년대에 스칸디나비아 예술가들은 덴마크 북부 유틀랜드에 위치한 스카겐으로 향했다. 최초로 스카겐에 방문한 예술가들은 저지대의 모래 풍경에 쏟아지는 강한 빛과 작은 마을에 사는 주민들에게 매료되었다. 스카겐은 1907년까지 항구가 없었고, 마을로 가는 철도 노선도 1890 1년이 되어서야 완공되었기 때문에 가기 어려운 곳이었지만, 많은 북유럽 예술가들에게 이곳은 프랑스에서 연구했던 외광화풍을 적용할 만한 풍부한 모티프를 가진 장소였다. 그들은 1880년대에 예술가 공동체를 형성하여 브뢰눔스 호텔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고, 스카겐의 풍경을 그렸다.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예술가들이 스카겐을 찾았고, 그곳에서 창작된 작품들은 북유럽 빛이라고 불리며 북유럽 특유의 회화로 여겨졌다.
| 반대파
반대파는 에른스트 요셉손의 지도하에 1885년 3월 27일 파리, 런던, 뒤셀도르프, 스톡홀름 등 여러 지역에 있던 84명의 스웨덴 예술가들이 결성한 예술가 단체이다. 그들은 미술 교육과 전시 활동,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을 현대화하고 개혁할 것을 요구하며 스웨덴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성명서를 제출하였다. 자신들의 요구가 아카데미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반대파는 이듬해 1886년 8월 예테보리의 크리스티아니아호텔에서 회의를 열고 '예술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예술가협회는 스톡홀름과 파리에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사회를 두었고 국가는 예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1887)라고 쓴 작은 책자를 제작하였는데, 이는 그들에게 강령으로 작용했다. 협회 예술가들은 1887년과 1888년에 예테보리와 스톡홀름에서 전시를 개최하고 미술 학교를 운영하기도 하였으며, 이후에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국가의 지원 없이 스웨덴 예술이 출품될 수 있도록 솔선수범하였다.
앤더스 소른, 코클랭 카데, 1889, Oil on canvas, 116.5 × 81.5 cm
| 앤더슨 소른, 코클랭 카데. 1889.
스웨덴의 화가인 앤더슨 소른은 스웨덴의 사실주의 화가, 조각가입니다. 소른은 물을 그린 그림, 누드화, 초상화로 유명하다. 인상주의 미술의 요소와 자연주의와 밝고 선명한 색조들의 결합은 그의 양식적 특징입니다.
제 2 섹션 : 자유의 정오, 북유럽 여성 화가들의 활약
북유럽 예술의 혁신적인 변화는 여성 화가들에게도 일어났습니다. 프랑스로 떠난 그들은 더 많은 미술 교육을 받고, 전시의 기회를 가지며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스웨덴 여성 화가들은 그 경험을 개인적 성취에만 머물지 않고, 자국의 소녀들도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수업을 제공함으로써 모국의 예술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에서도 현대화로의 움직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보수성이 존재하고 있었던 당대 스웨덴 예술계의 비평가들로부터 지나치게 현대적이라 저평가되기도 했지만, 한나 파울리는 작품 <아침식사 시간> 에서 아카데미 회화의 엄격한 원리보다는 야외 태양빛 표현과 함께 가정적인 분위기를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728x90
또한,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는 여성 화가들도 결혼 후 커리어를 포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안나 보베르크는 결혼 후에도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확장하며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갔던 대표적인 화가였습니다. 이 장에서는 당대 북유럽 여성 화가들의 자유와 시대정신이 반영된 작품과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속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담긴 회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성작가들이 그린 여성들의 초상화
| 한나 파울리의 작품들...
| 한나 파울리, 아침식사 시간. 1887.
한나 파울리는 파리 유학 시절 동시대 스웨덴 화가들이 모여 있었던 그뢰즈 쉬르 루앙에서 게오르그 파울리를 만나 1887년 에 결혼했습니다. 같은 해 제작된 이 작품은 풍경화, 정물화, 초상화를 혼합한 듯한 색다른 구도 안에서 야외의 아침식사 시간 을 묘사합니다. 정원의 나뭇잎 사이로 드리워진 빛이 식탁 위 정물에 어룽거리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한 테이블은 가족 혹 은 가정생활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에 대해 당시 스웨덴의 비평가는 그녀의 기술이 너무나 현대적이라 평가했고, 식탁보에 드 리운 빛 표현에 대해 "붓으로 닦아낸" 흔적이라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 안나 보베르크, 산악, 노르웨이에서의 습작. 1900.
안나 보베르크는 회화뿐만 아니라, 도예와 섬유미술, 무대디자인, 그리고 문학가로도 활동했던 스웨덴의 화가입니다. 보베르 크는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동안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접했지만, 당시 주류 미술 경향이나 아카데미 경향을 따르지는 않 았습니다. 건축가와 결혼한 후 함께 여행을 다니며 자신의 분야를 만들어갔던 그녀는 노르웨이의 로포텐 제도에 방문한 뒤 로 노르웨이 북부 지방을 자신의 중심 소재로 삼았습니다. 극지 연구 분야는 남성이 주류였던 시대였지만, 보베르크는 스스로 를 극지 탐험가이자 북극 화가로 칭하며 그곳의 다양한 풍경을 포착하였습니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상당히 독특한 기법과 색표현에 매료되었던 작품 중 하나
이번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회 베스트 작품 중 하나
제 3섹션 : 거대한 황혼, 북유럽 상징주의와 민족 낭만주의
1890년대 북유럽 예술가들은 프랑스 상징주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확한 형태와 자연과학에 따른 표현보다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였고, 감상자에게 전달될 분위기와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가장 두드러지는 회화는 황혼을 모티프로 한 대형 작품이었는데, 인물이 사라진 고요하고 고립된 분위기가 강조되는 이러한 작품들은 전형적인 북유럽 감성으로 간주되었습니다.
728x90
또한 신비롭고 단순화된 스타일과 대담한 색채를 살린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은 많은 스웨덴 화가들 은 북유럽 특유의 정서와 특질을 작품에 담고자 했습니다. 이 경향은 1890년대 초중반, 세 명의 예술가 리카르드 베르그, 닐스 크뤼게르, 칼 노르드스트룀이 형성한 '바르베리 화파'를 통해 구체화되었습니다. 농업 등을 비롯해 오랜 세대를 거쳐 이어진 지역의 역사적 산물들을 스웨덴 고유의 모티프로 담아낸 이 시기 작품들은 당대부터 지금까지 스웨덴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현재 전형적인 북유럽 미술로 간주되는 양식의 토대를 마련한 민족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 프린스 어젠, 스톡홀름의 벡홀멘에 있는 증기선.1894.
프린스 어젠은 스웨덴 국왕 오스카 2세의 막내아들이자, 웅장하고 상징적인 풍경화를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풍경화를 그리는 데 전념했던 어젠은 스톡홀름의 여러 지역을 야외에서 관찰하며 외광 화풍으로 그리곤 하였는데, 눈이 내린 벡홀멘의 전경을 그린 이 작품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인상주의 화풍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 멀리 보이는 증기선과 연기, 그리고 그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경관을 대담한 붓 터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눈과 푸른빛을 띠는 색감은 청명한 겨울 풍경을 강조합니다.
닐스 크뤼게르, 할란드의 봄, 1894, Oil on wood, 45 × 37 cm
| 닐스 크뤼게르, 할란드의 봄. 화가가 제작한 액자에 회화 세 점. 1894
닐스 크뤼게르는 스웨덴의 화가로, 시골 풍경을 주로 그렸습니다. 1894년에 제작된 <할란드의 봄> 은 쟁기로 갈아놓은 오밀 조밀한 토양의 질감이 돋보이는 목초지 풍경 위에 과감히 표현된 윤곽선이 눈에 띄는 작품입니다. 유화로 그려진 풍경 위에 잉 크로 윤곽선을 강조하는 독특한 기법을 도입한 화가는 당대 크뤼게르가 유일했습니다. 이는 강하고 뚜렷한 윤곽선을 사용했 던 폴 고갱의 영향으로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평면성 또한 강조되고 있습니다
닐스 크뤼게 작품도 이번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회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 중 하나. 마치 고갱의 그림을 보는 것 같지만 그 만의 작품이 느껴지는...
| 브루노 릴리에포르스, 솜털오리들
1890년 브루노 릴리에포르스의 화풍은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자연주의의 상세한 묘사 대신 넓은 붓질로 채색하 는 이 새로운 기법은 특히 물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넓은 붓질은 부드러우면서도 리듬감이 느껴지고, 강한 파도 의 움직임을 잘 드러내어 줍니다. 먼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파도의 움직임은 오리에게 운동감을 더해주고, 해가 지고 있는 분홍 빛의 하늘은 깊고 짙은 해수면의 모습을 더욱 강조합니다.
| 칼 노르드스트룀, 폭풍 구름. 1893.
칼 노르드스트룀은 스웨덴의 풍경화가로, 프랑스 화가인 폴 고갱에게 영감을 받아 스웨덴 예술에 새로운 국가적 양식의 토대 를 마련하였습니다. 1890년대에 고향인 셰른으로 돌아갔다가 바르베리 남쪽의 휴양도시에 머무르며 리카르드 베르그, 닐 스 크뤼게르와 함께 새로운 화풍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작품 역시 새로운 회화 양식을 도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노르드스트 룀은 밑 작업을 하지 않은 거친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는데, 이러한 방식은 고갱의 회화로부터 받은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오토 헤셀봄, 여름밤을 위한 습작. 1900
오토 헤셀봄은 북유럽의 황혼 빛을 묘사하며 스웨덴의 정체성을 표현한 화가입니다. 40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경력을 쌍 기 시작한 헤셀봄은 종종 고향의 해질녁 풍경을 묘사했는데, <여름밤을 위한 습작> 역시 그러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정적 인 화면을 채우는 따뜻한 색감이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나무들 사이로 드리워진 그림자는 달빛에 반사된 은은한 물결 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고요한 장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고향 달스란드의 풍경을 그린 것이지만, 지역적 차 원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받아들여졌으며, 스웨덴의 빛으로 여겨졌습니다.
|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 래드비 타일 공장. 1892.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은 덴마크 미술계를 선도한 화가들 중 한 명이자 상징주의와 사회적 사실주의를 개척한 화가입니다. 초 기에는 주로 농부, 노동자, 소외된 사람들의 삶, 시골 생활의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을 제작하였고, 이 작품과 같이 노동자들 이 일하는 장소 자체를 풍경화로 담기도 했습니다. 1840년 이후 덴마크에서는 벽돌 타일로 지붕을 짓는 방식이 보편화되면 서 기와를 많이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농촌 한가운데 공장을 배치한 <래드비 타일 공장> 은 당시 산업화가 자리 잡은 시골 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 전시회 마지막 공간...
마이아트뮤지엄에서 만나볼 수 있는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회의 마지막 섹션으로 이동합니다. 파란 방에서 노란 방으로...
제 4 섹션 : 아늑한 빛, 북유럽 가정과 실내 풍경
19세기 말 실내는 인기 있는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은 촛불에 비친 동료를 그리기도 하고, 실내 풍경과 초상 화, 사교 장면도 자주 묘사했습니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당대 북유럽의 민족 낭만주의 사상과 함께 농민의 소박한 삶과 지역의 특수성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집'이라는 모티프가 중요해지면서 실내 모티프의 인기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728x90
또한 이 시기에 아동의 표현이 두드러지는 작품도 많았는데, 이는 18세기 장 자크 루소에 이어 아동의 권리와 아동 중심 교 육을 강조한 사상가 엘렌 케이로부터의 영향이었습니다. 많은 작품 속에서 아동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로 묘사되었습니다. 이 장에서는 당대 사회문화적 흐름을 따른 작품들과 북유럽 화가들의 다양한 실내 표현법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베르타 베그만, 정원에 있는 젊은 어머니와 아이, 1883, Oil on canvas, 135 × 87 cm
| 베르타 베그만, 정원에 있는 젊은 어머니와 아이. 1883.
베르타 베그만은 스위스 혈통의 덴마크 초상화가입니다. <정원에 있는 젊은 어머니와 아이> 는 따뜻한 햇별을 쬐며 환하 게 웃고 있는 여성과 아이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왼손으로 어머니의 옷자락을, 오른손으로는 어머니의 손을 맞잡고 있 습니다. 사실적인 묘사가 살아있는 나무와 자연의 디테일은 아득히 사라지는 듯한 정원의 원근감과 함께 어머니와 아이에 게 생동감을 줍니다.
| 칼 빌헬름손, 화가의 여동생. 1899.
칼 빌헬름손은 스웨덴의 화가이자 석판 인쇄공입니다. 프랑스에서 수학한 후, 스웨덴으로 돌아온 그는 주로 고향 보후슬렌 과 예테보리의 어촌 풍경,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그렸습니다. <화가의 여동생> 은 화가의 여동생 안나가 테이블에 앉아 편지 를 쓰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여동생 안나가 입고 있는 드레스, 꽃 등 화면 가득 채워진 노란색은 창문의 레이스 커튼 과 열린 문 사이로 밝게 들어오는 햇빛과 함께 방 전체에 따스함을 전해주고, 목가적인 여름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 엘사 백런드 셀싱, 커피타임
상당히 독특한 작품 이었는데,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
| 책 읿는 여인이 있는 실내 풍경, 빌헬름 함메르쇼이
빌헬름 함메르쇠이는 덴마크의 상징주의 작가로 실내 공간을 그린 작품으로 잘 알려저 있다고 한다.
노란방과 잘 어울리는 작품들...
728x90
비고 요한센, 예술가들의 모임, 1903, Oil on canvas, 148 × 222 cm
| 비고 요한센, 예술가들의 모임, 1903
덴마크 출신의 화가, 작품속 표정들이...
| 앤더슨 소른의 작품들
스웨덴 화가이자 조각가, 작품 느낌이 좋다.
스웨덴의 국민화가 칼 라르손의 작품들...
| 칼 라르손, 로코코를 위한 습작
이 작품은 예술품 수집가 폰투스 퓨슈텐베리가 칼 라르손에게 의뢰한 3점의 그림 중 1점의 습작으로, 르네상스, 로코코, 그리고 당대 미술이라는 총 세 개의 시대를 통틀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라르손은 시골로 여행을 떠나는 신나는 분위기의 인물들을 그렸는데, 작품의 파스텔 톤의 색조와 장식적이고 우아한 구도는 로코코 양식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 칼 라르손, 책을 읽는 리스베스. 1904.
칼 라르손은 프랑스에서 카린 베르구를 만나 결혼하여 1888년 스웨덴의 순드본에 있는 별장을 터전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이 별장에 '릴라 히트나스'라는 이름을 붙여 이상적인 보금자리로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라르손 부부의 네 번째 자녀인 리스베스가 화가의 작업실에 았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라르손 특유의 빛 표현과 파스텔 색감으로 채워진 집안의 가구와 소품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러한 구성은 그의 기발한 표현을 잘 보여줍니다.
칼 라르손, 전원, 1880, Oil on canvas, 70 × 48 cm
| 칼 라르손, 전원. 1880
스웨덴의 국민화가로 잘 알려져 있는 칼 라르손은 1877년에 파리로 떠나 스웨덴 동료 화가들과 교류하며 작업을 이어갔습니 다. 작품 <전원> 은 제작연도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라르손이 동시대 파리의 삶을 묘사한 유일한 작품으로, 그가 프 랑스에 머물렀던 시기 중 1880-82년경에 제작되었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작품 속 여성은 이 시기 라르손이 함께 살았던 여성 인 가브리엘과 닮아 있습니다.
728x90
| 에른스트 요셉손, 엄마와 아이, 화가 알란 외스터린드의 부인과 딸. 1886.
에른스트 요셉손은 초상화와 풍속화를 그린 스웨덴의 화가입니다. 그는 동료 화가이자 친구인 알란 외스터린드의 부인과 딸 의 초상화를 그려주었는데, 전문 모델을 고용할 비용을 아끼기 위해 당대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서로를 그려주거나 서로의 가 족을 그려주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 작품은 외스터린드의 부인인 유제니에게 선사하는 요셉손의 선물이었습니다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회는 끝났습니다.
마지막 공간에서 긴 연표가 정리되어 있고 북유럽의 사건들과 이술사조, 이벤트 등이 정리되어 있는데, 어렵네요.
또한, 스퀘덴국립미술관의 작품들과 실내가 영상으로 제공됩니다. 가보고 싶다.
북유럽 지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 프랑스 지도에 예술가들이 활동하던 지역과 주요 작품의 배경이 된 지역들이 사진과 함께 설명되어 있습니다.
| 아트샵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회장을 나오면 기다리고 있는 아트샵입니다.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도록은 잘 만들었는데 가격은 48,000원, 이번 전시회 대표 작가인 칼 라르손의 책이 더 마음에 드네요. 살까말까 고민을...
아트샵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기념품은 다른 전시회에서도 볼 수 있는 상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그넷이바 배지, 액자등이 있는데, 작품들이 집이나 사무실에 비치하기 좋은 스타일이다 보니, 이미 일부 작품은 품절되었네요. 사람들이 보는 눈이 비슷한 것 같네요.
오늘 소개할 전시회는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관람후기 입니다. 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매력은 아마도 20세기 모던아트부터 현대미술까지 해당기간 주요한 미술사조를 이끌던 작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서 미술자조별로 만나볼 수 있는 부분이 가장 큰 매력으로 생각됩니다.
|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전시정보
Picasso and the 20th century Masters
전시기간 : 2023. 3. 24 - 8. 27 / 10:00 - 20:00 (입장마감 19:00) 장소 : 마이아트뮤지엄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18 섬유센터빌딩 B1층) 성인 : 20,000원, 청소년 16,000원, 어린이 12,000원
| 스마트폰 사진촬영만 가능
이번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에서는 휴대폰 / 스마트폰 사용한 일반적인 사진촬영은 가능합니다.
전문카메라나, 동영상, 셀카봉 등은 사용할 수 없으니 참고하세요.
| 도슨트는 사전예약, 주중 2회
이번 피카소 전시회 도슨트는 인터파크 티켓을 통해 사전에약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한 최차 40명으로 인원제한이 있으며 개별 오디오 송수진기를 사용한다고 안내되어 있습니다.
매주 월-금 2회 진행되며 (10시, 17시) 공휴일 및 5월 11일, 5월 12일 미운영되며 5월 도슨트는 채보미 도슨트와 이지안 도슨트가 수고해 주신다고 합니다.
마이아트뮤지엄은 한·독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전시를 2023년 3월 24일부터 8월 27일까지 개최한다. 루드비히 미술관은 쾰른 최초의 현대 미술관으로 피카소, 달리를 비롯해 팝아트의 거장인 앤디 워홀 등의 다수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세계 세 번째 규모의 피카소 컬렉션과 세계 최고 수준의 팝아트 컬렉션은 미술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과 마이아트뮤지엄의 긴밀한 협업으로 이루어진 특별 전시로서, 20세기 모던아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주요한 예술사조와 거장들의 작품들을 아우르는 컬렉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일 표현주의, 러시안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 추상 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 20세기 격변의 시대에서 태동한 예술운동의 배경과 서양 미술사의 발자취를 그려내고, 이에 영향을 받은 현 세기의 독일 예술도 조망한다. 특히 피카소, 샤갈, 칸딘스키, 워홀, 리히텐슈타인 등 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을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걸출한 컬렉션을 소개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폭 넓은 작품들을 루드비히 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배경과 그 작품들을 독일의 정치적인 탄압과 분단과 통합 과정에서 보존한 시민들의 역할을 한국 관람객들에게 선보인다는 점에서 특별한 전시가 될 것이다
01. 독일 표현주의와 러시안 아방가르드
German Expressionism and Russian Avant-garde
20세기 초 새로운 예술의 표현을 갈구하던 독일의 예술가들은 갤러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급부상했다. 그 가운데 1912년 뭔헨에서 칸딘스키를 중심으로 주창된 독일 표현주의파 예숲운동인 '청기사파'와. 다리파'가 형성되었는데, 두 집단 모두 19세기 사실주의와 인상파 화풍에서 탈피하고자 하였고 대신 거친 붓자국과 원색의 과감한 색채를 통해 인간 본성의 순수하고 원시적인 역동성을 표현하는데 주력했다. 요제프 하우브리히는 나치에 의해 '퇴페미술'이라고 치부되고 역압되었던 이 작품들을 소장했다. 독일 표현주의가 한창 일어나고 있을 때 즈음 거의 같은 시기에 러시아에서는 사회 격변과 함께 러시안 아방가르드로 불리우는 예술적 실천과 이론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는 데 '광선주의, '절대주의'와 같은 회화 양식이 이에 해당한다. 루드비히 부부는 독일을 넘어 당대 다른 정치 체제에 있던 러시아를 포합한 동구권 나라의 작품들도 소장하였으며, 러시안 아방가르드의 거장인 말레비치와 곤차로바의 작품들이 제 1장에 포함된다. 격변 속 혁신적 표현이라는 공통분모를 취하고 있지만, 두 나라의 예술가들은 인습 타파에 대한 접근과 표현법에 있어 서로 다른 관점과 예술적 실천을 보여주었다.
| 프란츠 마르크 : 소들
바실리 칸디스키와 함께 청기사파를 결성한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동물과 풍경에 능했으며, 푸른말, 세계의 염소 등 작품들을 남겼다.
|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
독일에서 활동한 러시아 작가라고 한다. 군인이었는데 미술로 전환, 고흐 고갱 세잔의 영향을 받아 사실주의에서 표현주의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한 대상의 개별적인 특징을 표현한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고 한다.
청기사파 [The Blue Riderl]
청기사(Der Blaue Reiter)' 즉 '푸른 기사'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이 화파는 1909년에 결성된뮌헨신미술가협회(Neue Künstlervereinigung Munchen)에 속해 있던 일단의 화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그룹인데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협회장을 맡아 첫 번째 뮌헨 신미술가 협회전을 개최했다.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역시 청기사파를 이끈장본인이다. 이화파의 이름은 뒤뜰에서 두 화가가 커피를 마시다가 생각해낸 이름이었다. 마르크가 좋아하는 말, 칸딘스키가 좋아하는 기사 모티프에 둘 다 좋아하는 청색을 더해서 즉흥적으로 만들었다.
케테 콜비츠 : 애도 & 빌헬름 렘브루크 : 고개를 돌린 소녀의 토르소
바실리 칸디스크 : 흰 붓자국
특히, 칸딘스키에게 청색이란 물질주의에 대항하는 정신성을 상징했다. 마르크는 커리어 초기 동물을 주요 모티프로 작업했는데, 칸딘스키를 만나면서 색에 상징성을 더욱 뚜렷하게 두었다. 그의 아내 마리아 마르크의 화풍 또한 칸딘스키를 접하면서구조적인 선, 선명한 색채와 역동성을 띠게 되었다.
빌리 바우마이스터 : 파란 조각과 서 있는 형상
독일의 화가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추상화의 개척자. 왕성한 탐구정신을 발휘해 네오플라스티시즘·구성주의·아프리카예술·선사학 등과 관련해 다양한 작풍을 전개했다.
오스카 코코슈카 : 페터 바우만의 초상화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전시회장은 작품 또는 미술사조에 맞추어 전시관 컬러에도 많은 신경을 썼네요.
| 카지미르 말레비치 : 슈프리무스 38번
말레비치는 <슈프리무스 38번>에서 크고 작은직사각형과 삼각형의 집합체를 흰색 배경 위에구성하였다, 말레비치가 주요 색으로 규정하여자주 사용한 흰색, 검은색, 빨간색 외에도 노란색.녹색, 파란색 등 많은 색채가 사용되고 있다. 이작품의 제목인 '슈프리무스(Supremus)'는말레비치가 1915년부터 1922년까지 제작한 자신의절대주의 그림에 붙인 시리즈 명이지만 매겨진번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 나탈리아 곤차로바 : 오렌지 상인
러시아 민속미술에서 영향을 받은 신 원시주의, 미래주의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한다. 스페인 풍속과 여성에 영감을 받아 15점의 연작을 제작했다고 한다. 해당 작품은 이중 한 점이라고...
절대주의 [Suprematism]
절대주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 최대 예술가 중 한 명인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에 의해 시작된 기하학적 추상주의의 한 흐름으로서 원래는 입체주의의 미학에서 파생되었다. 절대주의를 지지한 작가들은 비대상적, 비재현적인 순수한 감각 및 지각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로 화면을 구성했다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에는 조각 작품도 일부 전시되어 있는데. 설명이나 오디오 도슨트가 없었던 부분은 다소 아쉬운 부분...
알렉산더 로드첸코 : 공간 구조 5번 10번
해당 작가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다.
02. 피카소와 동시대 거장들
Picasso and His Environment
페터 루드비히와 이레네 루드비히는 모두 피카소의 작품과 인연이 있다. 페터 루드비히는 1950년 피카소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으며, 이레네 루드비히는 1955년 휠른에서 열린 피카소의 회고전에서 처음으로 그의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피카소는 당대에 입체파라는 력신적인 예술적 접근을 처음으로 보여준 그 시때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는데, 루드비히 커플이 회고전에서 마주하게 된그의 작품은 바로 <아티초크를 든 여인>이었다 이작품에 매료된 후 피카소가연구한 모든 표현법과장르의작품들을찾아헤멜 정도였다. 특히, 피카소의 활동 후반기의 작품에 주목하였는데 다소 확립되지 않은 화풍처럼 보었어도 피카소만의자유롭고 신선한 표현에 매료되어 수집하였다.루드비히 부부는 1944년 90점의 피카소작품율루드비히 미술관에기중했으며, 2001년 에는 774점의 피카소 작품을 추가로 기증했다. 이로 인해. 루드비히 미술관은 피카소의 작품을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가장 많이보유하게 되었다. 또한 이 장에서는 입체파 확립 시기부터 창작 말년까지 아우르는 피카소의 창작 생애 각 단계별로 발전된 작품들 8점을 주축으로 하여 그가 파리에서 활동을 할 당시에 함께활발하게 활동하던 조르주 브라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 동시대 거장들의 작품들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비숫한 시기에마르크 샤갈의 작품역시 소장하게 되는데, 이는 독일이 프랑스 모던아트를 수용하였음을 나타낸다.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 알제리 여인
책으로만 보던 그의 그림을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지하에서 그의 작품을 만났을 때 감동이 다시...
여성의 모습은 뚜렸한 이목구비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코는 틀어지고 양 눈동자도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는 모딜리아니의 작품속에도 피카소의 입체파 사조가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진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 조르주 브라크 : 유리병 레몬 과일 그릇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를 만든 창시자, 야수파의 영향을 받고 이후 피카소를 만나고 브라크 또한 역사적인 입체파를 이끈... 이 작품도 입체파의 연상으로 보이는 몇 가지 표현이 보인다.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제목에 가장 어울리는 공간 바로 피카소의 작품이 전시된 곳입니다.
총 다섯 점의 회화와 세 점의 도자가 전시되어 있는...
| 파블로 피카소 : 유리와 컵
'분석적 입체파' 작품인 <유리와 컵 Verre et tasse>은 조각으로 분할된 화면에 의해 대상이 단편화 되어 있다. 색은 무채색이나 갈색으로 제한되어 전통적인 회화의 재현성이 부정되고 있다.
3-1 분석적 입체파 [Analytical Cubism]
분석적 입체파'는 입체파의 범주에 속하지만 대상의 구상적 표현에서 나아가, 물체를 더욱 추상에 가까운 기하학적 입체 형태로 표현하는 유파이다. 1910년 이후부터 대상의 형체가 점차 세밀하게 확립되고 해체되기 시작하는 경향을 보여 주기 때문에 작품의 주제로 정물을 주로 택했다.
입체파 [Cubism]
1908년,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함께 창시한 입체파는 20세기 초 서구 미술의 전면적 혁신을 가져온 미술운동이다. 폴 세잔의 작품과 아프리카 조각의 연구를 통해 시작된 새로운 조형 언어의 탐구였는데, 색채와 질감을 제한하고 대상을 단면으로 분해한 분석적 입체파에서 콜라주라는 새로운 기법이 구사된 종합적 입체파로 전개되었다.
전후 피카소는 도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한다. 생전 수백점의 도자기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 파블로 피카소 : 만돌린 과일 그릇, 대리석 주먹
서양회화의 전통적인 장르는 인생희 일시적인 부분과 허무함을 의미하는 바니타스 정물화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작품속에서도 형태의 다시점적 요소 등 입체파적 요소가 보이는 작품
| 파블로 피카소 : 아티초크를 든 여인
1936년 스페인 내전 발발부터 1945년의 세계대전종결까지 피카소는 어둠고 불온한 분위기의작품을 많이 그렸다. <아티초크를 든 여인>의여인은 오른손에 중세 타격용 무기 모르겐슈테른을연상시키는 아티초크를 잡았고, 날카로운 손톱이 자란 왼손은 무릎에 두었다. 배경에 가득 찬 회색은전장에 피어나는 연기를 연상케 한다. 본 작품은그의 대표작 <게르니카 Guernica>와 마찬가지로전쟁의 광경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다, 비참한전쟁의 민낯을 암시한다.
03. 초현실주의부터 추상 표현주의까지
20세기 가장 춤요한 예술문통인 조현실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이는 전휴 유럽과 미국에서 생거난 새료윤 회화 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그 새로운 회화블 찾는 에실제 실전 송 하나는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번영한 앰프르벨이다. 앵포르멜은 혼돈의 이미지로 보이지만 전쟁모로황페하된 인간의 삶이 회복될 것임를 암시바고 있다. 앤조르벨의 선구자로는 블스와 장 뒤뷔페기 있마. 블스는 조현실주의 특징과 표현주의적 자유분방람물연결시커 선과 블감 명어리가 유기적으로 뒤엄킨 스타일의 뢰화를 선보였다 장 뷔뷔페는 근대적 합리주의에 의해 버려진삶의 에니지를 재발권하고자 '아르 브뤼(Art Brut) 라는 용 어를 만들어서 어린이나 정신질환자 갈은 비전문가의 그림에 나타나는 특짐린 단순하지만 대담한 표현의 화풍을 살린 회화를 이어 나갔다.
1940년 초, 유럽의 많은 초현심주의 화기를이 전생올 미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교 그들은미국의 주상 표현주의률 부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추삼 표현주의의 대가인 잭슨 폴록은 이런 초현실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 인간의 잠재된 무의식과 무작위적이고 즉품적인 표현으료 관심을 돌렸다. 또한, 이 3장은 전후 독일 추상 화가의 대표적인 인불인 에른스트 빌헬름 나이의 작품과 칼 오토 괴초 그리고 베르나르트 술츠 등 앵프로멜과 추상 표현주의 화품 교 발전시킨 인물들의 작품들도 포함한다.
| 젝슨폴록 : 흑과 백 15번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사 중 한 명, 나도 너무 좋아하는 작가. 호안미로나 앙드레 마송에게 영향 받았다고 한다. 특히 그의 작품은 부로 여러 색상의 물감을 사용해 올오버 스타일, 드리핑 기법으로 작품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 전시된 올오버 스타일 작품은 단색으로 작없된 독특함을 보인다. 또한 작품속에 인간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기도
| 안토니 파티에스 : 분홍 흔적이 있는 흰색 77번
제2차 세계대전후 스페인에서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를 견인한 대표작가. 파리에서 엥포르멜 영향을 받아 모래 등을 잉요 강한 물질성을 보여주는 회화작품을 작업했다고 한다.
| 장 뒤뷔페 : 대초원의 전설
프랑스에서는 열광하는 작가라고 하는데. 심지어 프랑스의 피카소? 예전 소마미술관에서 뒤 뷔페전 기대를 가지고 관람했지만 너무 난해하고 나에게는 잘 맞지 않는 작품...
앵포르멜 [Art Informel]
앵포르멜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회화 운동이다. 형태의 형식적인 구조를 거부하고 무한한 자유와 직관적인 추상성을 지향했는데, 이러한 비이성적인 특성은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그리고 표현주의의 영향까지 받고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이 사조는 예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하였는데, 볼스의 작품처럼 행위적, 서체적 붓 터치를 강조하기도 하고 타피에스의 작품처럼 질감과 촉각의 성질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 한선 의 오토마티즘 산란한 기호, 물감을 뚝뚝 떨어뜨리거나 석회를 바르는 기법 등을 구사한다. 이는 구상 .비구상을 초월하고 모든 정형을 부정하며 공간이나 질감에만 전념함으로써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려는 표현이다
| 칼 오토 괴츠 : 1955년 3월 6일의 그림
독일 앵포르멜을 대표하는 화가. 나치당에 의해 제작과 발표가 금지되기도 했다고 한다.
초현실주의나 위에서 본 폴록의 작품과 유사성을 보이기도 한다.
| 베르나르트 슐츠 : 풍경화
슐츠 또한 칼 오토 괴츠와 함께 독일 앵포르멜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 추상 회화 중에서도 서정적인 추상화화에 가까운 작품을 선보인 작가라고 한다. 마이아트 무지엄 현장에서도 다소 묘한 표현이 느껴지는 작품
한스 하르퉁 : 뉜지 잘 모르는 분인데. 작품 느낌은 상당히 좋았다.
04. 팝아트와 일상
Pop Art and Everyday Reallty
1960년대 서독의 기적적인 경제 부흥은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된 미국으로부터 새로운 예술을 받아들 이는 계기가 되었다. 1968년 카셀에서 개최된 <(도큐멘타 4)는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을 선보이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루드비히 부부는 1960년대 중반부터 고대와 중세 예술품을 수집했으며 점차적으로 현대미술예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그들이 살고있는 아헨을 비롯하여 서독의 다른 도시에서 작품을 실제로 보게 되면서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다. 루드비히 부부는 1967년 뉴 욕울 방문했고 새로운 예술의 흐름과 접촉하게 되었으며 그 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팝아트 컬렉션은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
팝아트는 1950년대에 영국에서 태동한 예술 운동으로, 팝아트의 창시자 리처드 해일턴의 1968년 작이 같은 해 <도큐멘타 4>에서 소개되었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번성한 팝아트는 대량소비에서 비롯된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을 가했고, 유일무이한 고유함에 입각한 전통적인 예술의 가치관에 반기를 들며 일상적인 이미지들을 예술적 표현으로 사용했다. 재스퍼 존스는 이미지와 오브제의 경계를 넘나들며 깃발, 표적, 숫자 등을 묘사했고 다른 일삼적 기호와 모티프들을 사용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타카타카> 작품은 만화책에 있는 패널을 참고하여 그래픽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회화로서 확고하게 박힌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층 더 진화하게 했다. 앤디 위홀은 평범한 사몰을 반복적인 이미지로 표현함으로써 소비주의 사회의 현실을 표현했다.
팝아트 [Pop Art]
팝아트는 파풀러 아트(Popular art)를 줄인 말로서, 19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일어나 유럽 예술계에도 큰 영향을 끼친 미술의 한 경향을 가리킨다. 그 발단은 매스 미디어에 주목한 1950년 초의 리차드 해밀튼 등의 영국 작가였다. 그러나 반예술적인 태도로 신문의 만화, 상업디자인 영화의 스틸컷, TV 등, 대중문화와 서브컬쳐의 매스 미디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주제 삼은 것은 뉴욕의 팝 아티스트들이다. 재스퍼 존스 라우센버그를 선두로, 리히텐슈타인, 워홀 올덴버그, 로젠퀴스트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앤디 워홀 : 브릴로 박스
아메리칸 팝아트의 아이콘. 현대미술 전시회에 빠지지 않는 아티스트 중 한 명
앤디워홀 : 두명의 엘비스
뭐 항상 그러하듯 이미지의 대량생산과 대중소비를 비판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뉴욕 모마 미술관에서도 본 것 같은데...
| 리처드 해밀턴 : 스윈징 런던 67-II
영국 팝아트를 창시한 작가 중 한 명. 믹제거와 로버트 프레이지가 마약소지로 체포되는 사진을 바탕으로 여섯점의 실크스크린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타카타카>
| 로버트 인디애나
글자와 숫자 표지판 등을 모티프로 작업하는 팝아트 작가. 본 작품을 가스비를 내지 않아 난방이 중단된 사건에서 작업했다고 한다. 가스와 관련된 기호와 색상 상징을 이용한 작품
뭐라해도 앞의 로버트 인디애나의 대표 작품은 바로 이녀석이 아날까요?
| 클래스 올덴버그
: 런던 무릎
스웨덴 출신, 미국에 유행한 미니스커트와 부츠가 유행했다고 하는데. 이때 드러난 신체의 일부를 표현했다고 한다. 뭐 관음증과 여성해방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이어서 클래스 올덴버그의 대표 작품은 우리에게는 청계천에 설치된 바로 이 골뱅이가 아닐까?
공식 작품 명은 Spring (봄) 이다.
05. 미니멀리즘 경향
Minimalism Tendencies
제 5장은 1960년 중반부터 본격화된 포스트 모던의 물결이 구체화된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팝 아트가 일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현실을예술에 도입하기 시작했다면, 이에 더 나아가 미니멀리즘은 이미지의 2차원성과 재현에서 완전히탈피하어 현실과 작품과의괴리를 최소화하려 했다. 나치에 의해 바우하무스가 페쇄되면서 1933년에 요제프 알버스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색채 조합의 상대적인 시각적 효과를 실험한 그의 <정사각형에 대한 오마주: 초록향> 작품은 착시현상몰 이용한 색채 전이와 변화를 실험하는 옵아트의 등장에 기여했다
이 시기 미국에서는 색면화가 등장했는데, 요제프 알버스에게 바우하우스 이론과 색채에 대해 배운 케네스 놀랜드는 물감이 캔버스 천 위에 얇게 스며든 것처럼 보이는 '스테인' 기법올 통해 시각 효과 중심의 추상미술을 보여줬다. 1963년에서 1965년 사이, 뉴욕을 기반으로 한 일군의 작가들이 오브제를 다루는 독특한 3차원의 방식의 미술을 선보였는데, 반대로 도날드 저드는 알루미늄과 산업 재료로 만들어진 삼자원의 오브제 작품을 통해 오히려 그런 착시 효과를 지양하였다. 1950년대 말 뒤셀도르프에서 활동하는 독일 작가들로 구성된 '그룹 제로'의 구성원들 역시 공업용 재료들을 사용했는데, 이는 알루미늄파 칼은 새로운 재료와 혼합되어 움직임과 빛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예솔로 귀결되었다, 그들은 시간과 공간의 구조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이론을 개념화한 이탈리아 작가 루치오 폰타나를 동경했다
| 요제프 알버스 : 정사각형에 대한 오마주; 초록향
정사각형에 대한 모마주로 유명해진 작가 복수의 정사각형의 다른 모양과 다른 채도와 색체를 이용 색체의 상호 조화는 물론 착시,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전시회 제목과 같이 이번 전시회는 독일에 있는 독일인이 수집한 작품들 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독일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번 공간과 다음 공간에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독일 근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하인츠 마크 : 천사의 다섯 날개
빛을 탐구하는 독일 화가이자 조각가.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알루미늄박을 밟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 권터 워커 : 큰 나선 (검은색)과 큰 나선 (흰색)
무수한 못을 이용한 작품. 못을 이용해서 입체감과 공간감 방향성을 보여주는데. 여기에 조명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변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색체의 사용을 배제하고 못을 이용하여 의자나 피아노 등에도 못을 박는 등 다양한 활동을 시도했다고 한다.
| 루치오 폰타나 : 공간 개념 : 기대
06. 독일 헌대미슬과 새로운 등항
German Contemporary Art and New Tendency
마지막 장에서는 퍼포먼스 아트, 비디오 이미징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영역으로 성장한 현대미술의 다양한 면을 소개한다. 전후 독일 미술계의 한 단면을 상징하는 요셉 보이스는 사회와 예술의 이상적인 연결로서 '사회적 조각'을 강조했다. 뒤셀도르프 학교에서 재임하는 동안 많은 예술가들의 멘토가 되었는데,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이자 현대미술에서 페미니즘을 성장케한 울리케 로젠바흐가 그의 학생 중 한 명이다.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1957년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하였는데, 전쟁의 폐허와 국가의 분단으로 인해 상실된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고통받는 인물들을 묘사했다. 나이브 아트를 연상시키는 화풍의 페터 헤르만 역시 1980년 중반에 서독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수년 동안 동독에서 활동하였다. 볼프강 마트호이어는 라이프치히파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베를린 장벽 붕괴 전까지 동독에 남아 당대 고립된 사회를 그렸다. 냉전 시기 동안 루드비히 미술관은 동독 작가의 작품들을 구입하거나 동독의 미술관 전시에 그들의 컬렉션을 빌려주는 등 다양한 방식의 소통을 통해 동독과 서독을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 요셉 보이스 : 시빌라 / 유스티티아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로 퍼포먼스 정치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조각의 개념이 정치로 확대된 사회적 조각을 주창
| 볼프강 마트호이어 : 이젠 어떻게 해야 되나요
신화와 성서에서 나타난 모티를 사용해 동독의 내면을 표현한 작품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본 작품은 이카루스 신화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동독이라는 외딴섬에 갇힌 느낌이라고 할까...
| 게오르그 바젤리츠 : 채찍을 든 여인
한참동안 나를 서 있게 만든 작품. 투박하면서도 묘한... 색상도 묘한...
다만 예전에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던 웹툰작가 귀귀의 그림이 생각나서 별로...
| 카티야 노비츠코바 : 성장 가능성 / 근사갑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나타난 포스트인터넷 아트의 선구자라고 한다.
마지막 공간에는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에 선보인 작가와 작품들의 연표와 주요 작가의 도록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도록 탐나더란...
비디오 아트 [Video Art]
비디오 아트는 영상매체를 표현 수단으로 한 예술을 말하는데, 비디오 아트의 개척자로는 한국 태생의 백남준이 널리 꼽힌다. 초창기 비디오 아트를 이끌었던 예술가들은 동시대 개념미술, 퍼포먼스, 실험영화 운동과의 접점이 많았다. 비디오 아트의 전성기는 1970년대부터 시작되어, 그 시점부터 비디오 형식의 한계를 본격적으로 실험하였다. 독일을 대표하는 비디오 아티스트 마르셀 오덴바흐 역시 콜라주 기법을 연상시키는 혼합적 매체의 비디오 아트를 선보였다. <사진의 사진 찍기>는 화면 속의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루드비히 미술관 개관 40주년 기념전 <우리는 그것을 루드비히라고 부른다(We Call It Ludwig)> (2016~17년)를 위해 제작되었다.
페터와 이레네 루드비히 저택의 오래된 미술품으로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방에서 장면이 시작된다. 그리고 커피가 끓는 아침 주방에 이어 자동차가 나온 후 차고의 문에 영상이 투영된다. 다양한 연도와 장소에서 행해진 페터 루드비히의 연설과 인터뷰의 기록영상과 컬렉션의 전시풍경도 삽입된다. 여기서 페터의 현대 미술에 대한 열정과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깊은 신념,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과 꿈을 실현하는 실행력 등에 대해 냉정한 자기분석을 하고 있다. 영상 후반부에는 이레네와 담소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번 전시회를 만나게 해준...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아트숍
Picasso and the 20th century Masters Art Shop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아트숍에는 마음에 드는 소품들이 보이네요.
왜 길럭시 지폴드는 지원하지 않는지...
이번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전시회 후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