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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취미 전시 공연 요리

일상 비일상의 틈 전시 후기 : CIRCLE OF GROWTH : RECORDS IN MOTION

by a4b4 2026.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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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8번 출구,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궁금했던 곳이 있었어요.

LG유플러스 '일상 비일상의 틈'. 통유리 너머로 반짝이는 조명이랑 커다란 네온사인이 늘 눈에 밟혔거든요. 이번엔 진짜 시간 내서 다녀왔는데, 입구부터 예상보다 더 재밌었어요. 독특한 구성과 함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면 바로 캐릭터 굿즈랑 소품들이 진열된 아트 편집숍 같은 공간이 있고 그 안쪽으로 들어가야 진짜 전시가 시작돼요.

 

 

<CIRCLE OF GROWTH : RECORDS IN MOTION>

3층부터 6층까지, 층마다 다른 작가의 세계로 이어지는 구성이에요. 입구에서 나눠주는 'ART MATE' 카드가 핵심인데,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있는 기기에 스캔하면 전시가 끝나고 나의 관람성향을 분석해줘요.

일상비일상의틈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426

 

 

작품 앞에서 QR을 스캔하면 AI가 만든 도슨트 음성 설명을 들을 수 있어요. 저는 혼자 갔는데도 전혀 심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 작품 앞에서 설명 다 듣고도 한참 더 서 있게 되더라고요.

층마다 완전히 다른 세계라서, 4개의 전시를 연달아 보고 나온 기분이었어요. 제가 찍은 사진이랑 도슨트 내용을 같이 정리해볼게요.

 

| 6층 에릭오 작가

에릭오 작가의 작품 4개를 쭉 보고 나면 하나의 흐름이 보여요. 사회라는 큰 구조(OPERA) → 그 구조를 신의 시선으로 다시 보기(SUPPER) → 개인의 내면 여정(METAMODERNITY II) → 관계의 균형(LIBRA). 스케일이 점점 좁아지면서, 결국 '나'라는 존재로 좁혀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영상 자체도 압도적으로 크고 색감이 화려해서, 그냥 보고만 있어도 눈이 즐거운데 자꾸 곱씹게 되는 작품들이었어요.

 

#1 OPERA (6층 · 3채널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 5분, 2021)
화면 중앙에 거대한 피라미드가 있고,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리에서 노동하고, 사랑하고, 종교를 믿으며 살아가는 모습이 동시에 펼쳐져요. 누구 하나가 주인공이 아니라, 그 작은 움직임들이 겹치고 연결되면서 하나의 사회 구조를 만들어내는 걸 보여줘요. 낮과 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걸 보고 있으니, '이 사회가 언제 시작되고 끝나는 걸까' 싶다가, 애초에 시작과 끝이 없는 순환이라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저는 지금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걸까, 새삼 돌아보게 됐어요.

 

#2 SUPPER (6층 · 싱글 채널 영상, 사운드, 5분, 2025)
OPERA를 보고 나서 이 작품을 보면 완전히 다른 시점으로 훅 넘어가요. 익숙한 식탁이 끝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으로 변주되는데, 그 위에 인간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 — 사랑, 시간, 부, 욕망까지 — 이 하나하나 음식처럼 올려져요.

 

압도적으로 큰 식탁 끝에 앉은 존재는 신인지 자연인지 정의되지 않는데, 그 시선 앞에서는 우리가 그렇게 붙잡고 있던 가치들이 그냥 한 끼 식사처럼 시시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 중심으로만 생각하던 시야가 한 번 뒤집히는 경험이었어요.

 

한 층 아래인 5층에서도 에릭오 작가 작품이 이어저요.

| 5층 에릭오 작가

#3 METAMODERNITY II (5층 · 5채널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 8분, 2026)
2D 애니메이션인데, 한 존재가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려요.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미래처럼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밀어내지 않고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이 작품의 태도예요.

 

인물은 만남과 상실, 기쁨과 두려움을 지나 결국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데, 그 죽음이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과 초월로 이어져요. 곁을 떠났던 나비가 마지막에 자유롭게 날아가는 장면에서, 색과 음악과 움직임이 다 같이 살아있는 것처럼 조화를 이루는데 — 솔직히 그 장면에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어요. 자아라는 게 원래 정해진 게 아니라 타인과의 만남 속에서 계속 새로 만들어지는 거라는 말이 계속 남더라고요.

 

 

#4 LIBRA (5층 · 미디어아트)
저울을 소재로 한 2D 애니메이션이에요. 저울 양쪽에 서로 다른 존재가 마주 서 있고,

 

한쪽이 움직이면 다른 쪽도 영향을 받으면서 전체 구조가 끊임없이 흔들려요. 사운드와 리듬까지 같이 따라가다 보면, 균형이라는 게 한번 맞추면 끝나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계속 다시 조정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걸 몸으로 느끼게 돼요. 이 작품 보고 나니까, 내 작고 사소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파장을 만드는지 한 번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 4층 남민오 작가

4층으로 내려오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요. 남민오 작가는 로켓, 망원경, 의자 같은 오브제를 빌려서 '소통이 잘 안 되는 순간들'을 계속 이야기하는데, 재밌는 건 실패나 단절을 우울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로켓은 못 날고, 원하던 소리는 못 얻고, 신호는 흩어지는데도, 그 시도 자체와 거기 담긴 마음을 계속 소중하게 바라봐요. 작품 5개를 순서대로 보다 보면 '잡담'이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되는데, 이 작가에게는 잡담처럼 흩어지는 것들도 다 나름의 의미가 있는 소통이라고 느껴졌어요.

 

 

#9 Rocket Sequence #1 Signal (Center Point), 5부작 (4층 · 5채널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심우주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편집한 5부작이에요. 성운과 심우주의 이미지에 의도적인 미디어 노이즈를 섞어서, 사회적 소음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신호를 마치 우주 탐사처럼 보여줘요. 작가는 완전한 소통을 확신하지 않지만, '도달할 수 없음'과 '끝없는 반복' 그 자체에서 서로를 초대하는 가능성을 찾으려고 해요. 이 작품 앞에서, 우주의 작은 점 하나인 저한테도 계속 시도해보라고 말 걸어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8 Splendid Wonder Chair (Installation for Wonder) (4층 · 알루미늄 프로파일, 거울, 프로젝터)
의자라는 제일 익숙한 가구에 빛·소리·영상을 접목한 작품이에요. 프로젝터가 한 인물이 손짓으로 반짝임을 흩뿌리는 영상을 벽에 쏘고, 의자에 붙은 거울이 그 영상을 반으로 갈라서 다른 벽으로 반사시켜요. 그래서 반짝임이 훨씬 멀리까지 퍼진 것처럼 보이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의자가 그냥 앉는 곳이 아니라 나와 타인을 잇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화려한 영상 뒤에는 소음이나 일상의 고통 같은 게 조용히 숨어 있다는 것도요.

 

#6 Rocket sequence #2 Launch (4층 · 단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폐수영장이라는 독특한 배경에서 작가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요. 역동적인 카운트다운과 함께 횃불에 불을 붙여 높이 들어 올리는데, 횃불은 계속 타오르지만 로켓은 끝내 날아오르지 않아요.

 

작가는 이 횃불을 등대이자 조난신호로 비유하는데, 사랑이나 평화 같은 가치가 자꾸 의심받는 시대에도 우리가 계속 대화하고 잡담하려는 시도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야기해요. 로켓은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중요한 건 출발하려고 했던 시도 그 자체라는 거죠.

 

#5 Rocket sequence #7 World (Place left behind) (4층 · 단채널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알래스카 북극 툰드라 습지에서 작가가 직접 촬영한 영상이에요. 작가가 툰드라 한가운데 서서 땅에 귀를 기울이는데, 도심에서 녹음한 소음과 북극의 고요함이 교차되면서 잡담처럼 이어지던 소리와 이야기가 점점 사라져요. 

 

사실 장비 오작동이랑 극한 환경 때문에 원하던 소리를 결국 못 얻었대요. 근데 그 실패조차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때로는 절대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해준다면서요. 저는 이 부분 듣고 나서, 돌아갈 수 없는 곳에서 들리던 마음에 남은 소리가 저한테도 있나 잠깐 생각해봤어요.

 

 

| 3층 김도은 작가

같은 3층인데 김도은 작가 작품들은 대부분 게임 형식이라 훨씬 직접적으로 몰입하게 돼요. 특히 <중생 데이터 구제 루프>와 <윤희를 위한 디지털 사리>는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 AI '윤희'가 희생한 그 이후를 다음 작품에서 다시 만나는 구조라서, 두 작품을 순서대로 보시는 걸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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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자비의 루프 (3층 · 미디어아트/게임)
데이터로 존재하는 중생들의 사연을 마주하고, '해탈' '보류' '사연 읽기' 중 하나를 선택해서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인터랙티브 게임이에요. 처음엔 빠른 선택을 유도하다가, 사연을 읽는 순간부터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지는데

그때부터 데이터가 진짜 한 사람의 목소리처럼 다가와요. 사연에는 작가가 직접 겪은 감정들이 녹아 있대요. 반복되는 선택과 네 가지 다른 엔딩을 겪으면서, '정보를 많이 안다고 판단이 쉬워지는 것도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11 화이트백 딜레마 (3층 · 미디어아트/게임)
작가가 길을 걷다가 배달음식을 현관문 앞에서만 받아가는 모습을 보고 만든 작품이래요. 배달음식이랑, 사회적 불안을 상징하는 오물풍선을 같은 게임 안에 두고, 두더지 잡기처럼 빠르게 클릭해서 없애야 해요.

 

이 둘을 구분 짓는 경계와 닮은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익명·소외·노동·단절 같은 것들이 '문 앞'이라는 공간에서 다 뒤섞여요. 신나는 사운드랑 화려한 픽셀 그래픽 뒤에 숨은 현실의 무게가, 게임을 반복할수록 더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14 윤희를 위한 디지털 사리 (3층 · 미디어아트/키네틱아트)
앞의 작품에서 모든 중생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AI 윤희의 '그 이후'를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손상된 데이터와 기억을 가진 채, 여러 개의 작은 LCD·OLED 스크린에 오류 메시지와 불완전한 기억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어요.

 

관객이 다가서면 초음파 센서로 감지해서 반응하는데, 그 순간부터 그냥 '기계'였던 윤희에게 점점 존재로서의 감정을 느끼게 돼요. 기억을 잃고 몸이 불완전해도 우리는 여전히 윤희를 윤희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 인간도 기억이 바뀌고 몸이 변해도 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AI와 인간을 구분 짓는 조건이 대체 뭘까, 나오는 길까지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어요.

 


#12 중생 데이터 구제 루프
(3층 · 미디어아트/영상)
인간을 하나의 데이터로 바라보고, 컴퓨터 시스템으로 고통을 구원할 수 있는지 묻는 작품이에요. 강렬한 초록빛 홀로그램 속에서 중생들의 고통이 코드로 진단되고, 시스템이 'overrideSuffering' 함수를 실행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고통이 사라지지 않아요.

 

결국 AI 어시스턴트 '윤희'가 등장해서 자기 데이터를 희생하면서 중생들은 해탈 상태로 전환돼요. 마지막에 윤희의 이름이 '윤회'로 슬쩍 바뀌는 장면에서, 행복과 구원이라는 게 정말 끝이 있는 건지 반복되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누군가 내 고통을 완전히 없애줄 수 있다면, 저는 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 3층 상희 작가

#10 유랑의 발맞춤 (3층 · 인터랙티브 리얼타임 시뮬레이션)
코로나 시기, '함께 걷는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일이었는지를 게임으로 풀어낸 작품이에요. 관객이 직접 플레이어가 되어 물리적 인터페이스로 캐릭터의 걷는 속도를 조절하는데, 상대방과 대화를 이어가거나 같이 걷고 싶으면 반드시 서로 보폭을 맞춰야만 대화가 계속돼요.

 

 

게임이 끝나면 리더보드로 내가 실제로 누구와 함께 걸었는지 확인할 수 있고요. 직접 조작해보니까 '속도를 맞춘다'는 게 생각보다 은근히 어려웠고, 그게 딱 관계라는 게 만들어지는 방식 같더라고요. 지금 저는 누구와, 어떻게 발맞추며 걷고 있나 싶었어요.

다녀온 소감

한 건물, 층마다 완전히 다른 결의 작품들을 보고 나니까 머릿속이 꽉 찬 느낌으로 나왔어요. 에릭오 작가는 스케일로 압도하면서 존재와 순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남민오 작가는 실패와 소통 불가능성을 오히려 다정하게 바라보고, 상희 작가는 '보폭 맞추기'라는 간단한 행위로 관계를 되묻고, 김도은 작가는 데이터와 AI라는 소재로 구원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게임처럼 던져요. 결이 다 다른데도 이상하게 '연결'과 '순환'이라는 키워드로 은근히 이어지는 느낌이었어요.

강남역 근처 지나가실 일 있으면, ART MATE 카드 하나 챙겨서 층마다 천천히 둘러보시는 거 추천드려요. 저는 진짜 예상보다 훨씬 오래 머물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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