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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시회 후기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 306호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시회 관람후기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관람했던 전시회 중에서 일본 작가의 전시회 또는 일본 미술전시회를 접했던 경험이 몇 손가락에 뽑는 것 같네요. 이번 전시회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잘 모르는 일본 전통미술에 대한 이해가 되는 좋은 기회로 추천 합니다.

 

| 전시회 개요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日本美術のとびら四つのまなざし
Japanese Art from Four Perspectives
전시기간 : 2025. 6. 17.~8. 10.
전시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06호

 

이번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시회는 총 4개의 섹션에서 가을풀무늬 고소데 등 62점의 회화, 도자, 공예, 의상 등 다양한 일본 미술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 관람시간은 최소 1시간 30분 할애하셔야 합니다. 

| 전시회를 시작하며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쿄국립박물관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여, 일본미술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망하는 특별전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을 공동 개최합니다. 양 기관은 오랫동안 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긴밀히 교류해 왔으며, 그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 관람객에게 일본미술을 소개하는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도쿄국립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엄선한 소장품 62건을 중심으로, 일본미술이 지닌 외적인 아름다움과 내면의 정서를 눈과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화려한 장식성(飾り), 이에 대비되는 절제된 미(反飾り), 자연의 섬세한 변화에 대한 감동(あはれ), 유쾌하고 재치 있는 미적 감각(遊び)이라는 네 가지 시선을 통해 일본미술을 조명합니다. 이 요소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며 일본인의 삶과 세계관을 반영합니다. 일본미술의 시각적 매력을 넘어서, 그 내면에 흐르는 사유와 감성을 오롯이 경험하는 기회를 선사할 것입니다. 네 가지 시선을 따라 일본미술을 좀 더 친숙하게 감상하고, 나아가 일본 문화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I. 꾸밈의 열정 Decorative Impulse

일본에서는 예부터 사물과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문화가 발전해 왔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92) 귀족들은 몸을 치장하고 공간을 호화롭게 장식하여 일상에 특별함을 더했다. 이러한 미의식은 여러 시대를 거치며 무사, 상인, 농민 등 다양한 계층으로 널리 퍼져 화려한 일본미술의 토대가 되었다.

 

조몬 시대(縄文時代, 기원전 11000년-400년)의 토기,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의 채색 자기, 금을 가루로 장식한 칠기, 금박 위에 화려한 색을 입힌 병풍, 그리고 장식적인 서체로 쓴 서예 작품까지 다양한 미술품 속에 담긴 꾸밈의 정신과 그 미적 의미를 살펴본다.

 

장식 종이에 꽃핀 글씨

Letters Blooming on Decorated Paper

우아한 귀족 문화가 꽃핀 헤이안 시대 이후에는 종이를 갖가지 색으로 물들이고 금과 은으로 그림을 그려 장식하는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이렇게 꾸민 종이에 글씨를 쓸 때는 굳이 빈 공간이 아닌 그림 위에도 겹쳐지도록 썼습니다. 즉 글씨는 단순히 문자의 기능을 넘어 종이 위에서 그림과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움을 자아냈습니다.

뜻보다 시각적 아름다움을 우선하여 글씨를 쓰는 서법도 등장합니다. ‘흩뜨려 쓰다’라는 뜻의 지라시가키(散らし書き)는 장식적 서법의 대표 사례입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쓰는 전통의 방식을 지키지 않고, 의미와 상관없이 줄을 바꾸며, 글자의 나열이 만드는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시회 1부 꾸밈의 열정 Decorative Impulse 에서는 화려한 일본 미술의 정수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겐지모노가타리 중 제39첩 유기리 源氏物語 第三十九帖 夕霧

고노에 노부타다(近衛信尹, 1565~1614)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와카 단간 和歌巻断簡

혼아미 고에쓰(本阿彌光悅, 1558~1637)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이 작품의 바탕 종이는 금은니(金銀泥)를 사용한 판화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양귀비 꽃과 열매, 수선화 세 가지 도안을 반간야 적되, 높낮이에 변화를 주어 시각적 리듬을 형성했다. 고예쓰는 밑그림에 맞추어 글씨 각 행의 높이와 길이를 조절했으며, 시의 운율이나 의미에 상관없이 줄을 바꾸어 장식적인 서예를 완성했다. 글씨의 굵기, 농담, 높낮이 변화가 만드는 시각적 아름다움은 물론 글씨와 그림이 이루는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봉황공작도병풍 鳳凰孔雀図屏風

가노 히데노부(狩野秀信, 1639~1718)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6폭으로 이어진 병풍 두 척이 한 쌍을 이루는 전형적인 일본 병풍이다. 오른쪽 병풍에는 냇가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봉황 한 쌍과 오동나무를, 왼쪽 병풍에는 벚나무 아래에서 노니는 세 마리 공작을 묘사했다. 화면의 여백에는 일정한 크기로 잘라낸 사각형 금박을 붙여 정교하게 장식했다. 오른쪽 병풍의 화면 오른쪽과 왼쪽 병풍의 화면 왼쪽 하단에 ‘히데노부 필(秀信筆)’이라는 묵서와 ‘가이의(外記의)’ 인장이 있어,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회화 제작을 전담하던 가노파(狩野派)의 화가가 주세기 히데노부(狩野常信, 1639~1718)의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학 거북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무늬 옷 모양 이불 夜着萌黄縮緬地松竹梅鶴亀模様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옷처럼 보이는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의 이불입니다. 원래는 붉은 비단 안감이 있었고, 겉감과 안감 사이에는 두툼한 솜이 들어 있었으나 현재는 해체되어 겉감만 남아 있습니다. 당시 잠자는 동안 마귀가 들 수 있다는 속설이 있었고, 이에 따라 이불에 봉황, 학, 거북, 여의보주, 소나무, 대나무, 매화 등 길상무늬를 자수나 화려한 염색 기법으로 대담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이불은 한 쌍을 나란히 놓으면 부리를 벌린 학과 다른 학이 서로 마주 보게 됩니다. 이러한 두 마리 학의 조합은 원만한 부부 사이를 상징합니다. 학은 천년을 사는 길조(吉鳥)로 여겨졌으며, 학무늬에는 부부가 오래도록 해로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불 전체에는 거상(巨商)의 부유함을 상징하는 호화로운 자수를 놓았으며, 혼례 때 신방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일본의 채색 자기

조몬 시대(繩文時代) 후기(繩文後期 기원전 2000년~1000년)와 만기(繩文晩期 기원전 1000년~400년)의 토기는 정교하게 무늬를 새겨 마감한 것과 조리용으로 비교적 간소하게 제작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깊은 바리 외에도 항아리 모양 토기[甕形土器], 뚜껑토기[蓋土器], 귀때토기[耳土器] 등이 등장한다. 토기의 종류에 따라 정확한 용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당시 사람들이 쓰임새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후기와 만기의 토기는 줄기처럼 입체감 있는 장식은 줄어들고, 선을 그어 만든 기하학무늬가 많이 나타난다. 또한 토기 표면에 새끼줄로 무늬를 새긴 뒤 일부를 갈거나 깎아 지우는 스트레치 조몬(撚消縄文 기법)이 널리 유행했다. 이 기법은 기하학적인 선무늬와 함께 사용되는데, 선을 경계로 새끼줄무늬가 남은 부분과 사라진 부분이 대비를 이루어 기하학무늬의 장식 효과가 강조됩니다.

 

채색 꽃 새무늬 발 色絵花鳥文大深鉢

이마리 자기(伊萬里燒)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채색 참외무늬 대접 色絵瓜平文鉢

이마리 자기(伊萬里燒)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일본 중요문화재

 

채색 푸른 물결과 모란무늬 접시 色絵青海波牡丹文皿

나베시마 자기(鍋島燒)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일본미술

| 꾸밈의 원류, 조몬 토기

조몬 시대(繩文時代) 후기(기원전 2000년~1000년)와 만기(기원전 1000년~400년)의 토기는 정교하게 무늬를 새겨 마감한 것과 조리용으로 비교적 간소하게 제작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깊은 바리 외에도 항아리 모양 토기, 뚜껑토기, 귀때토기 등이 등장합니다. 토기의 종류에 따라 정확한 용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당시 사람들이 쓰임새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귀때토기 注口土器

도호쿠(東北) 지방 출토
조몬 시대(繩文時代) 만기
도쿄국립박물관

 

향로 모양 토기 香炉形土器

아키타현(秋田縣) 미사토정(美郷町)
로쿠고(六郷) 이시나다테(石名館) 출토
조몬 시대(繩文時代) 만기
도쿄국립박물관

 

후기와 만기의 토기는 줄기처럼 입체감 있는 장식은 줄어들고, 선을 그어 만든 기하학무늬가 많이 나타납니다. 또한 토기 표면에 새끼줄로 무늬를 새긴 뒤 일부를 갈거나 깎아 지우는 스트레치 조몬 기법이 널리 유행하였습니다. 이 기법은 기하학적인 선무늬와 함께 사용되는데, 선을 경계로 새끼줄무늬가 남은 부분과 사라진 부분이 대비를 이루어 기하학무늬의 장식 효과가 강조됩니다.

 

깊은 바리 深鉢形土器

도쿄도(東京都) 하무라시(羽村市)
하케타우에(羽ヶ田上) 출토
조몬 시대(繩文時代) 중기
도쿄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시회에서 만나본 일본의 도자들...

바로 옆동네 이지만 우리나 중국과도 확연하게 다르네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회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1부가 열리고 있는 전시장 공간

 

마키에 벚꽃무늬 향 놀이 도구 상자 桜蒔絵十種香箱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여러 향을 맡고 구별해 내는 구미코(組香) 놀이에 사용하는 도구를 담는 상자이다. 구미코 놀이는 기본적으로 ‘열 가지 향’이라는 뜻의 짓큐코(十種香)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먼저 세 종류의 향을 맡은 뒤 그 세 종류의 향을 각각 세 개의 향포에 넣어 아홉 포를 만들고, 시향하지 않은 새로운 향을 한 포에 넣어, 총 네 종류의 향이 든 향포 열 개를 준비한다. 이 향포 열 개의 향을 맡고 네 가지 향 중 어떤 향인지 알아맞히는 놀이다. 구미코 놀이는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92~1573)에 체계화되었고, 에도 시대(江戶時代, 1603~1868)에 이르러 널리 유행해 향의 도구 전문가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짓큐코 상자는 다이묘(大名) 혼슈를 모은 채택됨에 일정한 규격을 갖추고 상자를 다채로운 장식으로 화려하게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짓큐코에 사용한 도구를 담는 상자이다. 겉 상자를 비롯한 각종 도구 표면은 전체적으로 검은 칠을 하고, 금은 가루와 붉은 가루를 활용한 마키에(蒔繪) 기법으로 벚꽃무늬를 정교하게 장식했다. 또한 뚜껑 안쪽에는 은을 소량한, 흑칠하여 장식의 변화를 주었다. 다양한 꽃무늬와 풍부한 색채가 어우러져 우아하고 화려한 장식을 이루고 있다. 내용물은 향을 담는 도구(향로, 향봉 등을 담는 3단 상자, 제출할 때 담는 통)와 향을 맡을 때 제출할 때 사용하는 도구(향포, 향봉 등을 표시한 패, 제출할 패를 담는 종이 주머니와 통 등)로 구성되어 있다. 후쿠시마 오사무(福島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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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에 모란넝쿨 접시꽃무늬 오하구로 도구 牡丹唐草葵紋散蒔絵お歯黒道具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상류층 무사 가문에서 딸을 시집보낼 때 마련하던 칠기 혼수품 가운데 하나로,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데 사용한 도구입니다. 에도 시대(江戶時代, 1603~1868)의 여성은 성인이 되거나 결혼이 결정되면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오하구로(お歯黒) 화장을 했습니다. 검은색은 다른 색에 물들지 않아 정절의 증표로 여겨졌으며, 충치 예방에도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치아를 물들이기 전에는 먼저 뚜껑에 망을 댄 작은 상자에 담긴 양치 도구로 이를 깨끗이 닦고, 뚜껑이 있는 우묵한 그릇을 사용해 입을 헹궜습니다. 본격적으로 이를 물들일 때는 양옆에 귀가 달린 대야 위에 와타시가네(渡金)라는 긴 금속판을 걸쳐두었습니다. 그 위에 치아를 물들이는 염료와 용액이 담긴 금속제 주전자·그릇을 올리고, 새 깃털로 만든 붓으로 치아를 염색했습니다. 귀 달린 대야 안에는 끓인 물을 넣어 염색을 마친 뒤 입을 헹궜습니다..


한편, 이 시기 상류층 무가(武家) 사회에서 혼례 의식과 혼수품은 가문의 위세와 품격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이 도구 역시 검은 칠 바탕에 금은 가루를 뿌려 장식하는 마키에 기법으로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금은 가루를 배경에 흩뿌린 뒤, 그 위에 모란넝쿨무늬와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葵紋), 그리고 접시꽃무늬를 군데군데 배치해 한층 더 화려함을 살렸습니다. 이처럼 꾸밈은 때때로 권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II. 절제의 추구 Pursuit of Restraint

장식과 더불어 일본미술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화려함을 덜어내는 절제의 미의식입니다. 장식을 최소화하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며, 불완전함 속에서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하였습니다.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92~1573)부터 사찰 공방에서 제작된 붉은 칠기는 금을 장식 대신 실용성과 견고함을 강조하였으며,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에는 사치 금지령의 영향으로 단정하고 간결한 옷차림을 세련된 멋으로 여겼습니다. 절제미는 자연스러운 흠과 거친 질감을 그대로 살린 투박한 찻잔에 잘 드러납니다

 

다도 도구의 아름다움

Beauty of Tea Ceremony Utensils

 

16세기 무렵 일본에서는 공간과 도구를 갖추고 차를 대접하는 ‘차노유(茶の湯)’가 성행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조선이나 일본 각지에서 만든 꾸밈없는 도기가 다도 도구로 새롭게 조명받았습니다. 완벽한 형태를 고수하지 않고, 굽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흠이 생기더라도 애써 고치지 않고 개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표면과 찌그러지고 금이 간 모양을 마치 ‘차갑고 마른(冷え枯れる)’ 겨울처럼 담담하면서 깊은 멋을 풍기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전시에 선보이는 다도 도구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사용감까지 고려해 만든 것으로 여기에는 도구 하나하나를 아끼고 사랑한 다도인의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베개 모양 꽃병 旅枕花入

비젠 도기(備前燒)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라이도진’이라 불린 대추 모양 차통 黒漆大棗 銘 来道人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붉은 띠무늬 그릇 緋襷向付

비젠 도기(備前燒)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安土桃山時代)~에도 시대(江戸時代) 16~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모래톱 모양 손잡이 그릇 織部洲浜形手鉢

미노 도기(美濃燒)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한 줄로 쓴 ‘적덕후자수박’ 一行書 積徳厚自受薄

료칸(良寬, 1758~1831)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도쿄국립박물관

 

 

붉은 칠 굽다리 접시 朱漆高杯 / 붉은 칠 대접 朱漆鉢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安土桃山時代) 1597년
국립중앙박물관

 

붉은 칠 술병 朱漆瓶子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5~1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사치 금지령 속에 탄생한 또 다른 멋

에도 시대에는 오랫동안 평화가 이어지면서 도시 상공업자들의 경제력이 눈에 띄게 성장하였습니다. 이들은 귀족이나 무사처럼 각종 여가와 장식 문화를 누리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막부는 신분 질서를 유지하고 경제를 안정시키고자 사치 금지령을 여러 차례 내렸습니다.

이 무렵부터 도시 사람들 사이에 잔무늬, 줄무늬 옷이나 회색·갈색·남색처럼 수수한 색으로 물들인 옷이 유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통제하던 시대에, 사람들은 꾸미지 않은 듯한 간결함에서 또 다른 세련된 멋을 찾았던 것입니다.

 

 

리칸 줄무늬 고소데 小袖紺木綿地璃寛縞模様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도쿄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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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벚꽃무늬 고소데 小袖鼠平絹地小桜模様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III. 찰나의 감동 Beauty of Ephemerality

일본미술을 바라보는 세 번째 시선은 미술에 깃든 마음에 닿습니다. 일본 문화에는 벚꽃이 피고 지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듯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면서도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애잔한 정서를 의미하는 ‘아와레(あはれ)’가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와레의 정서는 일본 고유의 시가인 와카(和歌)나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92)의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와 같은 고전 문학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미술에도 다양하게 표현되었는데, 잠시 꽃을 피우는 가을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아와레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전하는 소재로 사랑받았습니다. 전시에서는 가을풀이 묘사된 그림, 복식, 공예 등 미술품과 함께, 아와레를 표현한 문학 작품과 공연을 소개합니다.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시회 섹션 3 공간은 좌우에 대형 병풍이 전시되어 있고, 정면에 옷 한벌이 보입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생각되는 곳

 

무사시노도병풍 武蔵野図屏風

작가 모름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무사시노(武蔵野)는 지금의 도쿄도(東京都)와 사이타마현(埼玉縣)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으로, 와카(和歌)에 자주 등장하는 일본 동부의 대표적 명소이다. 달 아래 억새 등 가을풀이 무성한 너른 들판은 가을의 정취를 담은 와카의 주요 소재였다. 이 그림에서는 지평선 가까이에 떠오른 달과 웅장한 후지산의 산줄기가 대비를 이룬다. 달은 억새와 도라지 같은 가을풀에 가려져 있다. 

 

이는 “달이 숨어들 봉우리조차 없구나(月の入るべき嶺もなし,)”라는 와카 구절을 연상케 한다. 화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억새와 멀리 펼쳐진 산 사이에는 금빛 구름과 안개가 가로로 길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표현은 화면에 깊이감을 부여하는 일본 회화의 전통적 기법이다. 가까이서 보면 역시 일본인 특유의 성격이 작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 중앙에 있는 체험공간 원하는 소리의 종이를 중앙에 올려놓은면 내용에 맞는 문구와음삭, 배경이 출력되는데, 잘 모르겠다.

 

추초도병풍 秋草図屏風

와타나베 기요시(渡邊淸, 1776~1861)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각 병풍에는 흰 점 위에 노란색을 덧칠하여 입체적으로 표현한 마타리꽃과 푸른빛 도라지꽃이 풍성하게 피어 있습니다. 마타리와 도라지는 ‘가을의 일곱 가지 풀’에 속하며, 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 『만요슈(萬葉集)』에 수록된 “싸리꽃, 억새꽃, 칡꽃, 패랭이꽃, 마타리꽃, 등골나물, 도라지꽃[萩の花 尾花 葛花 なでしこの花 女郎花 藤袴 朝がほの花]”이라는 시 구절에서 유래했습니다. 가을에 잠시 피었다 지는 풀꽃은 지나감을 향한 아쉬움과 애틋함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을풀은 일본에서 그림의 소재로 널리 사랑받았습니다.

 

마타리꽃에 대한 표현, 사진에서는 잘 못 느끼겠지만 노란 금박 배경위에 금보다 더 노란 꽃들의 표현이 상당히 흡입력을 가진다.

 

앞의 병풍이 여백은 무시하고 병풍 전체를 빽빽하게 채웠다면 이번 작품은 여백의 미와 화려하면서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마키에 담쟁이 울타리무늬 벼루 상자 柴垣蔦蒔絵硯箱

고마 규이(古滿休意, 생몰년 미상)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일본 중요문화재

 

이 작품은 뚜껑이 달린 벼루 상자입니다. 뚜껑은 윗면이 볼록하게 솟아 있으며, 네 귀퉁이와 옆면이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둥근 느낌을 줍니다.  벼루와 연적을 놓는 판에는 비 내리는 강가와 갈대를 묘사하여, 뚜껑과 본체의 장면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였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마키에 기법을 활용해 대상의 움직임과 정서를 회화적으로 담아낸 표현은 이전 시대의 벼루 상자에서는 보기 어렵습니다. 이 벼루 상자는 1636년부터 에도 막부의 전속 마키에 장인으로 활동한 고마 규이(古満休意, 생몰년 미상)가 제작한 것으로, 뚜껑 안쪽에 그의 아들 고마 규하쿠(古満休伯, ?~1715)가 남긴 명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을풀무늬 고소데 小袖白綾地秋草模様

(그림)오가타 고린(尾形光琳, 1658~1716)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일본 중요문화재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 전기부터 중기까지 활약한 화가 오가타 고린(尾形光琳, 1658-1716)께서 직접 무늬를 그린 것으로 알려진 고소데(小袖)입니다. 이 옷과 함께 전해 오는 두루마리 그림을 통해 오가타 고린의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토에서 화가로 명성을 쌓으신 고린은 1704년에 더 큰 성공을 꿈꾸며 에도(현재의 도쿄)로 향하셨습니다. 당시 처음 머무르신 곳은 후카가와(深川)의 목재상인 후유키(冬木) 가문의 저택이었는데요, 그 시절 유복한 상인층 여성들 사이에서는 유명 화가가 직접 무늬를 그린 고소데가 큰 유행이었습니다. 고린의 작품으로 알려진 고소데는 몇 점 전해지지만,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이 작품이 유일합니다. 

 

비록 고린의 낙관은 남아 있지 않지만, 사카이 호이츠(酒井抱一, 1761-1829)의 제자 이케다 고손(池田孤村, 1801-1866)이 편찬한 『고린 신찬백도(光琳新撰百図)』에 이 고소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에도 시대 후기에도 이 고소데가 고린의 작품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고린께서 신세를 진 후유키 가문의 안주인을 위해 그리셨다는 설도 전해집니다.

이 고소데에는 고린이 당시 자주 그리셨던 ‘가을풀’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쪽빛 농담이 돋보이는 도라지꽃을 중심으로 억새, 국화, 싸리 등 가을풀이 무성하게 어우러져 가을의 넓은 들판을 떠올리게 합니다. 허리 부분에 여백을 남겨 둔 점에서는 교토의 포목점 가리카니야(雁金屋)의 아들이었던 고린의 섬세한 배려가 엿보입니다

 

같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서로 다른 극, 노(能)와 교겐(狂言)

Same Stage, Different Dramas: Noh and Kyogen

노(能)는 일본을 대표하는 무대 예술로, 가면을 쓴 배우가 노래와 춤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가무극입니다. 노에서는 비극적 서사를 다룬 작품이 많습니다. 오늘날까지 상연되는 작품의 절반가량은 슬픈 사연을 지닌 혼령이 세상에 미련을 품은 채 등장해 살아 있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입니다. 이 밖에도 비극적 상황에 처한 인간의 슬픔과 고뇌가 노의 주요 소재입니다. 그러나 노에서는 슬픔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배우는 절제된 대사와 몸짓으로 슬픔을 담담히 표현하고, 관객께서는 절제된 연기와 가면 속에 드러나지 않는 표정을 보시며 슬픔을 느끼고 깊은 여운과 정취를 경험하시게 됩니다.

 

비극적인 노의 막간에는 희극인 교겐(狂言)을 상연하였습니다. 노의 체계를 확립한 제아미(世阿弥, 1363년경~1444년경)께서는 노 공연 세 편과 교겐 공연 두 편을 번갈아 올린다고 기록하셨습니다. 대사 중심으로 진행되는 교겐은 일상적인 유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루며, 교겐 가면은 개성 있는 생김새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배역의 성격을 단번에 드러냅니다. 배우는 과장된 몸짓과 대사로 관객 여러분께 웃음을 전해 드렸습니다. 이처럼 엄숙한 노의 막간에 등장한 교겐은 일본 미술 속에서 슬픔과 유쾌함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민들레 눈꽃무늬 누이하쿠 교겐 의상 縫箔白地花菱亀甲蒲公英雪輪草花模様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이 교겐(狂言) 의상에는 내리는 눈송이를 도안화한 둥근 눈꽃 모양 틀 안에 사시사철의 꽃과 풀을 수놓았습니다. 대나무와 어린 소나무, 조릿대는 새봄을, 등꽃은 초여름을 상징합니다. 마타리, 패랭이꽃, 싸리, 버드나무와 국화, 도라지와 나비는 일본인이 특히 사랑하는 가을풀 무늬입니다.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는 화려한 단풍을 비단에 빗대어 표현한 무늬도 있습니다. ‘흐르는 물과 단풍’은 전통적인 조합으로, 와카(和歌)에 자주 등장하는 명소 다쓰타강[龍田川]을 상징합니다.

 

노 가면 ‘샤쿠미’ 能面 曲見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일본 중요문화재

 

 

노 가면 ‘한나'

에도 시대(江戸時代) 17~18세기

불룩한 이마와 앞으로 돌출된 턱, 중앙이 움푹 들어간 얼굴 형태의 ‘샤쿠미(曲見)’ 가면입니다. 중년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일본의 전통 가무극 노(能) 공연에서 자식을 잃고 실의에 빠진 어머니 역할에 자주 사용됩니다.

 

교겐 가면 ‘오토’ 狂言面 乙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6세기
도쿄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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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 있고 사랑스러운 인상의 가면입니다. 통통한 볼에 살짝 위로 들린 낮은 코, 단정한 머리, 작은 입술, 초승달 같은 눈매, 혀가 살짝 보이게 웃는 표정이 귀여운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모습은 일본의 전통 희극 ‘교겐(狂言)’의 작품 <마쿠라노노구루이(枕物狂)>에 등장하는 ‘오토고제(乙御前)’ 역할에 어울리는 가면입니다.

IV. 삶의 유희 Aesthetics of Playfulness

사뭇 진지한 노(能)의 막간에 상연되는 교겐(狂言)이 웃음을 선사하듯이, 일본 미술에는 ‘아와레(あはれ)’의 마음과 함께 ‘아소비(遊び)’의 마음이 공존합니다. 이번 설명의 마지막 시선은 일본 미술에 드러난 아소비의 마음입니다. ‘놀이’를 뜻하는 아소비는 미술에서는 현실을 유쾌하게 바라보고 형식을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하며 표현하는 태도로 확장됩니다.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의 우키요에는 놀이와 여가를 즐기던 사람들의 일상이 생생하게 담겨 있으며, 동물이나 인물을 묘사한 작은 도자기에는 해학과 재치가 깃들어 있습니다. 또한 전통 수묵화의 틀에서 벗어나 먹의 번짐과 즉흥성을 활용해 자유로운 회화 세계를 펼친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1716-1800) 선생의 작품에서는 그림 그리는 행위를 놀이처럼 여긴 화가의 인식을 엿보실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과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시회 마지막 공간...

 

수묵유도권 水墨游図巻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1716~1800)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 후기에 ‘이색 화가’로 이름을 떨치셨던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17161800) 선생의 수묵 화조화입니다. 매화, 작약, 국화 등 계절을 대표하는 꽃과 뻐꾸기·닭·원앙 같은 새를 묘사한 다섯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화면은 제목·그림·제발문(題跋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목 ‘수묵유(水墨遊)’와 인장 ‘정선지인(淨善之印)’은 황벽종(黃檗宗) 선승 무센 조센(無染淨善, 1693-1764) 스님의 글씨를 판화로 찍은 것입니다.


제발문은 자쿠추 선생과 교유가 깊었던 선승 다이텐 겐조(大典賢常, 17191801) 스님의 글로, 판화첩 『현포요화(玄圃瑤華)』에 실린 글과 동일합니다. 제목과 제발문이 언제 추가되었는지는 확언할 수 없으나, 이 작품에 사용된 흑백 반전의 ‘다구한가(拓版畫)’ 기법 자체가 ‘먹의 유희’라는 주제를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수묵화에 비해서는 한 참 떨어진다는 생각 깊은 먹의 놀림이 없다는 생각

 

진짜진짜 마지막 전시공간

 

채색 오후쿠 향합 色絵於福香合

닌나미 도하치(仁阿彌道八, 1783~1855)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도쿄국립박물관

 

향합은 향을 담기 위한 뚜껑이 달린 그릇입니다. 다도에는 화로에 숯을 넣는 ‘스미테마에(炭手前)’라는 절차가 있으며, 이때 화로에 향도 함께 넣어 실내에 향이 퍼지게 하였습니다. 다도에서 사용하는 향합의 재질은 계절에 따라 달라집니다.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풍로를 사용하는 시기에는 칠기 향합을, 늦가을부터 봄까지 바닥에 고정된 화로를 사용하는 시기에는 도자기 향합을 사용합니다. 도자기 향합은 산지·형태·무늬가 매우 다양하여 차 모임의 취지나 주최자의 취향에 맞추어 선택하였습니다.


이 향합은 ‘오타후쿠’라고도 불리는 정감 있는 여성의 모습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한자로는 ‘많을 다(多)’와 ‘복 복(福)’을 써서 ‘오타후쿠(御多福)’라고 표기하며, 행운을 불러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향합을 만든 닛나미 도하치(仁阿彌道八, 1783-1855) 선생은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 후기부터 말기까지 교토에서 활약한 도공이셨습니다. 찻잔을 비롯하여 다양한 다기를 제작하셨고, 특히 상형 도자기를 훌륭히 만들어 세부를 섬세하게 묘사한 독특한 작품도 많이 남기셨습니다.

 

도슈사이 샤라쿠(東洲斎寫楽, 생년 미상)는

1794년부터 1795년 초까지 약 열 달간 판화 140여 점을 제작한 뒤 자취를 감춘, 수수께끼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794년 5월 에도(현재의 도쿄) 내 세 극장에서 열린 가부키(歌舞伎)에 출연한 배우들을 묘사한 판화 28점 연작은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됩니다.

 

생선 장수 ‘고로베’를 연기한 4대 마쓰모토 고시로 四代目松本幸四郎の肴屋五郎兵衛 (우)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 생몰년 미상)
에도 시대(江戸時代) 1794년
국립중앙박물관

 

‘오시즈’를 연기한 3대 세가와 기쿠노조 三代目瀬川菊之丞の田辺文蔵女房おしづ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 생몰년 미상)
에도 시대(江戸時代) 1794년
국립중앙박물관


이 우키요에 작품은 미야코자(都座) 극장에서 상연된 가부키 〈하나야아메 본료쿠소가(花着清文蔵倶我)〉에서 ‘오시즈(おしず)’ 역을 맡은 3대 세카와 기쿠노조(三代目瀬川菊之丞, 1751-1810)를 그린 것입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관자놀이 부근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모습으로 보아, 병을 앓던 오시즈가 막 일어난 상황임을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
이 가부키는 형제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복수극으로, 오시즈는 형제의 복수를 돕는 다나베 본조(田邉文蔵)의 아내로 등장합니다. 결의에 찬 채 일어선 오시즈의 모습에서는 복수를 돕다 곤궁에 처한 부부의 절박한 상황이 드러납니다.
화면 왼쪽에는 도슈사이 샤라쿠의 이름과 함께, 그와 협업하여 판화 연작을 출판한 쓰타야 주자부로(蔦屋重三郎, 17501797)의 인장과 막부 검열을 통과했음을 증명하는 기아메(極印)가 찍혀 있습니다.

 

 

활기 연작 중 료고쿠 にぎわいぞろい·両国のにぎわい

우타가와 구니요시(歌川國芳, 1797~1861)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이 작품은 구니요시의 《활기》 연작 가운데 하나로, 우키요에와 부채를 취급하던 도매상 이세야 소에몬(伊勢屋惣右衛門, 생몰년 미상)이 출판을 담당했습니다. 요정 2층에서 젊은 여인이 스미다강[隅田川]의 료고쿠(両国) 다리를 내려다보며 활기찬 풍경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료고쿠는 에도 최고의 번화가였으며, 여름이면 불꽃놀이를 보려는 인파로 붐볐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강에는 지붕 달린 유람선과 쪽배가 떠다니고, 다리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인의 시선 끝에는 이제 막 솟아오르려는 불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내유락도병풍 邸内遊楽図屏風

작가 모름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전반
국립중앙박물관

 

건물 실내에서 다양한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묘사한 풍속화입니다.

이 작품은 6곡 병풍 두 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물의 마당과 실내에서 여러 놀이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큰 화면으로 이어 담았습니다. 오른쪽 병풍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 주인을 기다리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가마꾼과 하인들, 그리고 마당에서 북과 소고 연주에 맞추어 흥겹게 춤추는 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 병풍에는 증기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사람들과 샤미센(三味線, 일본의 대표적인 현악기) 연주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추는 사람들, 그리고 2층 누각에서 장기를 두고 편지를 쓰며 카드놀이와 차 마시기 등 여흥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유흥거리를 묘사한 ‘유락도(遊樂圖)’는 무사들의 패권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센고쿠 시대(戰國時代)가 끝나고 에도 막부가 들어서면서 사회가 안정된 16세기 말부터 17세기에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를 즐기려던 당시 사람들의 마음이 잘 반영된 작품입니다.

 

 

당자유도병풍 唐子遊図屏風

나가사와 로세쓰(長澤蘆雪, 1754~1799)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동자들이 물가에서 꼬리잡기 놀이를 하며 노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는 중국풍으로 머리를 묶거나 옷을 입은 아이들을 ‘가라코(唐子)’라고 부릅니다. 가라코는 다산(多產)과 다복(多福)을 상징하는 길상적인 소재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습니다. 이 병풍은 네 폭이 하나의 화면을 이루고 있으며, 양 끝과 중앙에 달린 손잡이를 통해 원래 종이를 바른 장지문에 그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 속 아이들은 일본 전통 놀이인 ‘고토로코토로(ことろことろ)’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이 놀이는 맨 앞 아이가 술래의 공격을 막아 뒤쪽 아이가 잡히지 않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생동감과 흥겨움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그림에는 동자가 모두 마흔여 명 있습니다.

 

 

이번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특별전은' 8월 10일 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06호 에서 전시될 예정입니다.

해당 기관 특별전시실1 에서는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매술 대전이 열리고 있으니 한일 양국의 비슷한 시기 작품들을 비교하면서 감상하실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예약, 도슨트, 포토존 관람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 관람후기 입니다.아마도 올해 한국미술 전시회로는 가장 큰 규모의 핫 한 전시회가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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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늘부터 열리는 고 이건희 회장 특별전 3탄입니다. 특히 MMCA 전시로는 작년말 '한국미술명작' 전에 이은 두 번째 전시회입니다. 또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회와도 이어지는 전시회입니다.

 

|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예매 및 오디오 가이드

이번 전시회 역시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이 가능합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2주 전 부터 예매가 가능합니다. 저는 운 좋게도 예매 오픈일에 정보를 알게 되어서 바로 예약게 성공하고 오늘 다녀왔네요.

국립현대미술고나 이건의 컬렉션 특별전 오디오 가이드는 무료로 제공됩니다. 별도 앱 다운로드도 없이 모바일웹에서도 득기가 가능하네요.

 

 

이중섭 특별전 들어가는 길...

별도 티켓도 없습니다. 지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에서는 기념 티켓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별도 티켓없이 사전 예약한 QR 코드 승인만으로 입장하게 되네요.

 

| 이번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전시회에 대한 소개입니다.

고 이건희 회장이 기중한 작품 중 이중섭 작품 80여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기소장품 10점을 모아 90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기쁨이...

 

 

| 이중섭 이건희 특별전 관람팁

이번 전시회 또한 한 시간 단위로 예약자대상 입장이 진행되는데요. 바로 앞에서 입장하기 보다는 입장시간 조금 지나 입장하시면 좀 더 편한하게 관람이 가능합니다. 아래 사진 왼쪽은 정각에 입장한 공간, 오른쪽은 입장후 30분 후에 다시온 공간입니다. 이 시간부터 관람하시면 쾌적하게 이중섭 전시회 관람이 가능합니다.

 

전시회 시작은 그의 초기 드로잉 작품으로 시작됩니다. 이중섭 세계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들이라고 할까요

약간의 미완의 작품들이지만, 그의 작품의 특징은 그데로 살아 있습니다.

| 초기드로잉

1950년 12월 한국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피난을 떠날 때 이중섭은 자신이 그렸던 대다수의 그림을 고향에 두고 왔습니다.
‘나 대신 보시라’며 어머니에게 남겼다는 그 그림들은 현재 확인할 길이 없지만, 1940년대에 남긴 몇 점의 드로잉을 통해 그 시기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 엽서화

1940년대, 이중섭에게 관제 엽서는 또 하나의 캔버스였습니다.
9센티미터 곱하기 14센티미터 규격의 이 작은 화면 위에 이중섭은 수많은 그림을 그렸는데요, 엽서의 수신인은 훗날 그의 아내가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였습니다. 프랑스 유학을 꿈꾸던 그는 마사코에게 보들레르, 발레리, 릴케, 베를렌느 같은 시인들의 시를 외워서 들려주거나 정결하게 베껴 써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40년부터 43년까지는 꾸준히 그림엽서를 보내는데요,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엽서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엽서화는 총 88점 그중, 국립현대미술관이 이건희 컬렉션으로 소장하게 된 작품은 40여 점에 이르는데요, 이중섭의 학창 시절 작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지금, 이 작은 엽서화들은 1940년대 그의 작품 경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그림들입니다. 또한, 주소나 발신인 소인 등을 통해 당시 그가 거처하던 곳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작가 연구에 유용한 자료가 됩니다.

이렇게 이건희 회장이 수집한 40여점의 이중섭 엽서화가 한 장 한장 전시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 메시지와 함께 보낸 그의 그림들... 현재 그의 작품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 세사람

그 중의 하나가 <세 사람>이라는 작품입니다. 엎드리고, 쪼그리고, 드러누운 자세의 세 인물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그림은, 1942년에서 45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두꺼운 종이 위에 무수히 겹쳐진 연필 자국은 일제 강점 말기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하듯, 삶의 피로와 무력감, 허무감을 드러냅니다.
언뜻 보면 꿈을 잃은 청년들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들의 처지를 묘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화면에 길게 가로누운 소년의 왼손과 오른발은 유독 짙은 선으로 강조돼 있습니다. 암울한 현실에 맞서려는 강한 의지를 이렇게 힘찬 선긋기로 표현해낸 것입니다.

 

조금은 샤갈의 느낌이 나오는 이중섭의 작품들...

| 엽서화 2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은 이중섭이 마사코 여사에게 보낸 첫 번째 엽서입니다.
1940년 12월 25일 자 소인이 찍혀 있는 이 엽서의 한 가운데에는 소의 머리에 물고기 꼬리를 한 동물이 물 위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동물 위에는 두 사람이 올라타 있는데요, 소의 머리 위에 뿔처럼 튀어나온 귀를 붙잡은 채 뒤를 돌아보고 있는 소년과, 물고기 꼬리를 두 다리로 휘감은 채 길게 팔을 뻗으면서 소년을 뒤따르고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물에서 날아오른 이 동물은 물가 왼쪽에 자리한 오리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리의 옆에는, 한쪽 팔을 젖힌 채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든 사람이 그려져 있죠.물고기와 소를 결합한 동물의 형상은 신화적 이야기를, 오리와 물가에 핀 연꽃은 고려시대의 청자를 각각 연상케 하는 이 그림에서는 40년대 초반 이중섭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초현실적 경향이 엿보입니다. 
이 엽서화를 시작으로, 이중섭은 41년 한 해 동안, 75장의 엽서화를 보냅니다. 현재 남아 있는 엽서화 가운데 80퍼센트에 해당하는 분량이라는 점에서, 이 시기, 그가 엄청난 양의 습작을 하며 기량을 닦아 나갔음을 짐작케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 이중섭 전시회 두 번째 공간입니다.

 

 

이중섭 회화 : 아이들

| 다섯 아이와 끈

이중섭은 발가벗은 아이들의 걱정 없는 표정을 단순한 선과 형태로 표현하는 것을 즐겼는데요, 이 작품은 이런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그린 작품 가운데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그림 속에 보이는 다섯 명의 아이들은 뒷모습을 보이거나 앉아 있거나
앞으로 구부리는 등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죠. 이 아이들은 줄을 통해 서로 연결돼 있는데요, 자세히 보시면, 아이들의 신체 일부 역시 어떤 식으로든 다른 아이들과 접촉하며 얽혀 있습니다.
어린이와 동물을 그린 이중섭의 작품 대부분에는 이런 특징이 일관적으로 드러나는데요, 이런 특징은 심리적인 ‘분리 불안’의 징후를 나타낸다고 해석되기도 합니다.

탁월한 데생력과 섬세한 배경처리, 확신에 찬 선들의 리듬감이 잘 드러나 있는 이 작품은, 특히 마무리를 연필로 했다는 점에서도 독특합니다. 앞서 ‹세 사람›에서도 보셨듯이 이중섭에게 연필은 매우 중요한 미술 재료였습니다.
밑그림을 그리거나 스케치를 하는 용도가 아니라, 섬세한 묘사와 형태를 강조하는 용도로 연필을 사용했던 것이죠.
또한, 연필로 눌러 윤곽선을 강조하는 기법은 이후에 제작된 은지화 기법과도 연결됩니다. 이중섭의 실험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연필의 사용은 무척 흥미로운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아이들

이중섭이 아이들을 모티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46년부터였습니다.
원산의 한 고아원에서 잠시 미술을 가르치던 시기였으며, 갓 태어난 그의 첫아들이 디프테리아로 사망한 때이기도 했죠.
세상을 떠난 아들의 무덤에 이중섭은 온갖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 그려진 그림을 함께 묻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의 작품에서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 빈번히 등장합니다.
특히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라는 도상을 바탕으로 5점의 작품이 남겨져 있는데요, 그 가운데 두 점이 지금 보고 계시는 작품들입니다. 화면에는 두 아이가 위아래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긴 줄이 이 두 아이를 연결해주고 있죠.
줄을 잡고 있는 또 다른 생명체도 눈에 띄는데요. 줄의 양 끝에는 물고기가 매달려 있고, 화면 가운데에는 큰 꽃게가 앞발로 줄을 당기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모티브가 된 것은, 1951년 가족과 함께했던 제주도 피난 생활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서 딴 해초와 게를 주식으로 삼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이 시절은 이중섭과 가족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남았습니다. 이렇듯 아이들과 함께한 시절을 회상하고 있는 두 작품 가운데, 왼쪽 그림은 잉크 드로잉과 유채로 그림을 마무리한 뒤, 불투명한 색조로 다시 한번 덧바르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덕분에 마치 돌에 음각으로 새겨진 듯한 느낌을 받게 하죠. 원색이 조금 더 드러나는 오른쪽 작품은, 1954년 일본에 있던 큰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에 그려져 있던 그림입니다.

 

 

| 가족과 첫눈

이 작품은 이중섭이 피난 시절, 제주도에 정착해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이중섭과 그의 가족들은 머물 곳이 없어서 외양간 신세를 지기도 했다는데요, 이후 서귀포의 한 초가집에 정착하면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제주도 피난 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 이중섭은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드로잉과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중 ‹가족과 첫눈›은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 속에는 남녀노소가 자신들보다 더 큰 새와 물고기 사이에서 함께 첫눈을 맞으며 하릴없이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요, 사람과 새, 물고기의 크기가 현실 세계와는 다르게 표현됐기 때문인지, 그림은 무척 초현실적인 느낌을 풍깁니다.
실제로 이중섭은 일본 유학 시절, 인간과 동물이 어우러진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품을 다수 그렸는데요, 이 작품은 1972년 현대화랑에서 열린 이중섭 개인전에 출품된 후 거의 전시된 적이 없다가 이번 기증을 통해 다시 세상에 선보이게 됐습니다.

 

| 새

두 마리의 닭이 격렬하게 싸우며 역동적으로 얽혀 있는 모습을 담고 있는 ‹투계›는 이중섭의 대표작입니다.
화면의 오른쪽 위에서는 붉은 닭이 날아올랐다가 방향을 선회하며 내려오고 있습니다. 왼쪽 아래의 푸른 닭은 바닥에 풀썩 주저앉은 채 궁지에 몰려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부리를 쫙 열고 소리를 꽥 지르면서 필사적으로 응수하고 있죠. 유려한 선의 흐름과 거친 표면 효과가 서로 대비되면서 강한 운동감과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그림인데요, 작가는 흥미롭게도 빨강, 노랑, 파랑 등으로 작품의 주된 형상을 그린 다음, 짙은 회색 물감을 화면 전체에 다시 엷게 펴 발랐습니다.
그리고 이 회색 물감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살짝 비치는 닭들의 형상을 따라 넓은 끌과 같은 도구를 이용해 표면을 빠른 속도로 긁듯이 휘저어 놓습니다. 이런 기법을, 그라타주 기법이라고 하는데요, 일필휘지로 그려나간 이런 선들은 이 작품에 강렬한 생동감을 더해주며, 표면에 풍부한 질감을 선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화가는 그림 가장자리에 옅은 회색의 테두리를 둥그렇게 그려 넣음으로써, 이 격렬한 장면을 마치 아련한 과거의 일인 듯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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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와 까치가 있는 풍경

1953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6개월 동안, 이중섭은 통영에 머물며 교사 생활을 합니다.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온 후 생활고에 시달렸던 그에게 통영에서 머물던 이 시기는 이런저런 걱정 없이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평화롭고 소중한 시기였습니다. 특히, 이 시기 그는 통영의 풍경을 담은 꽤 많은 풍경화를 남겼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9점 가운데 하나인 ‹나무와 까치가 있는 풍경›은 제목처럼, 나무 위에 까치가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요, 화면 전면에 자리 잡은 나무의 가지에는 잎이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겨울의 풍경을 그린 듯하지만,
화면 오른쪽 윗부분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녹색 줄무늬의 밭이랑이 펼쳐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통영 시기, 이중섭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 수 있듯이, 왕성한 창작욕으로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며 ‹흰 소›, ‹부부› 같은 대표작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5월에는 유강열, 장윤성과 함께 «3인전»을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갔습니다.

 

| 회화 : 출판미술

이중섭은 작품 활동을 하는 틈틈이, 책 표지나 삽화 같은 출판미술을 제작하기도 했는데요, 표지화 한 점을 제작하기 위해, 같은 도상을 여러 번 그렸다고 합니다. 또한, 표지화를 제작하고 난 뒤에는 비슷한 그림을 그려서 편지와 함께 일본의 아내에게 보내곤 했습니다.

덕분에 비슷한 작품이 여러 점 남아 있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문중섭 대령의 전투를 담은 『저격능선』이라는 수기의
표지화와 관련된 두 작품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고지전을 벌였던 저격능선 전투 이야기를 담은
이 수기의 표지화를 위해, 이중섭은 칼을 든 병사의 모습을 그립니다.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켄타우로스처럼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말의 모습을 한 병사의 칼끝과 온몸에는 여기저기 핏자국들이 선명합니다.
그런데 사실, 전투능선 표지화를 위해 이중섭이 처음 그렸던 것은, 다른 그림이었습니다. 바로, 피 묻은 새가 능선 위를 날고 있는 그림인데요, 군인의 용맹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못한 이 그림은, 2년 뒤였던 1957년 『자유문학』 9월호에 실리게 됩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이중섭의 책 표지화는 총 8점인데요, 표지화나 삽화의 제작은, 생계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화가의 예술 세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날짜가 인쇄되어있는 덕분에, 유사한 도상을 즐겨 그렸던
이중섭의 작품 제작시기를 추정하고 진위여부를 판별하는 데에도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되어줍니다.

 

은지화 ; 너무나도 사랑하는...

은지화는 이중섭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독자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택이 나는 알루미늄 속지에 철필이나 못 등으로 윤곽선을 눌러 그린 다음, 그 위에 물감이나 먹물을 문질러서 완성하는 은지화는 은박지의 광택과 음각선에 묻혀 들어간 짙은 선으로 인해 도자기의 상감기법을 연상케 합니다.
이 독특한 그림은 가족과 헤어져 홀로 피난 생활을 이어가던 이중섭의 궁핍한 환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던 그림에의 열정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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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중섭은 다방이나 술집, 심지어는 길바닥과 쓰레기통에서 담뱃갑을 주워 그 안에 든 은박지를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접히고, 구겨지고 찢어져 있던 종이들을 그대로 살려둠으로써 화면의 우연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은지화의 경우 작품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다소 어두운 공간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또한 화학한응 등으로 작품 오염시 생기기도 했는데요. 확대된 영상을 통해 작은 작품을 디테일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1952년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그리기 시작한 수많은 은지화에는, 주로 가족과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요,
이중섭은 그 가운데 70여 점을 1953년 도쿄에 있는 아내에게 건넸다고 합니다.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대작으로 완성하려고 그려본 스케치이니,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는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아내가 간직하던 은지화들은 1979년 열린 이중섭 작품전에서
엽서화와 함께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됩니다.

 

 

 

 

 

| 가족을 그리는 화가

이 은지화는 꽤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화면 아래쪽을 보시면, 콧수염을 한 화가가 한 손에는 팔레트를, 한 손에는 붓을 든 채 그림을 그리고 있죠.
이 화가는 이중섭 자신입니다. 그런데 화가의 대각선 위쪽에도 콧수염을 한 이중섭이 등장합니다.
그는 아내 마사코 여사와 두 아들과 함께 서로의 몸에 손을 두른 채 하나의 덩어리처럼 엉켜있습니다.
이 단란하고 끈끈한 네 가족의 모습은, 그림 속의 화가 이중섭이 그리고 있는 그림 속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가족의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볼까요?

마사코 여사는 한 손으로는 머리 위의 아들을, 한 손으로는 다리 위에 앉은 이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두 아이는 모두 아버지 이중섭의 목과 어깨로 팔을 뻗어 그를 안고 있고요. 이중섭의 한쪽 손에는 긴 막대기에 매달린 물고기가 보이죠.
이 물고기로 미루어볼 때, 그림 속의 화가 이중섭은, 가족과 함께했던 제주도 피란 시절을 추억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는 지금, 둘째 아들로 보이는 아이의 허벅지 뒷부분을 완성해 가고있는 중이죠. 그런데 이 은지화에서는 원근법을 무시한 채 평면화된 화면으로 인해, 화가 이중섭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캔버스 밖 세계와 그가 그리고 있는 캔버스 속 세계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화면 아래, 이중섭의 오른발 위에 그려진 가로선 하나가 그림 속 그림의 영역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죠.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특별전 '이중섭' 전시회장의 은지화 섹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네요.

다음 전시공간으로 이동합니다.

회화 | 가족

 

춤추는 가족

‹춤추는 가족›은 푸른 공간을 배경으로 나체의 가족이 춤을 추며 원을 이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붓이 아닌 나이프로 면을 표현한 덕분에, 원을 이룬 네 사람은 마치 한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긴 얼굴과 콧수염을 한 이중섭의 모습은 분명히 알아볼 수 있죠. 그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이들은 부인 마사코와 두 아들일 테고요. 이렇게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고 있는 가족의 모습은 앙리 마티스의 대표작, ‹춤›을 연상케 하는데요,
춤추는 가족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 이 그림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그렸던 화가 이중섭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그리움을 담아 작품 제작에 매진했던 그는, 거처를 옮기고 건강이 나빠지는 와중에도 아이들이나 가족을 그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요, 비슷한 도상의 작품이 여럿 남아 있다는 점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춤추는 가족의 모습을 담은 같은 제목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고 있습니다.

 

 

 

편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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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6월, 생활고 때문에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이중섭은 이듬해 3월 9일부터 55년 12월 중순까지 꾸준히 아내에게 그림을 곁들인 편지를 써 보냅니다.
이 편지들 속에는 자신의 애칭이었던 ‘아고리’, 아내의 애칭이었던 ‘천사’ 같은 애정 어린 말들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52년경 이중섭과 함께 범일동에서 생활했던 박고석 작가는 정성을 들여 편지를 쓰던 그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마치 연애편지라도 쓰듯, 몇 번이나 찢어버리면서 다시 쓰고 그림을 꼭 곁들였으며, 봉투를 쓸 때는 굵직한 펜으로 마음에 들 때까지 몇 장이고 글씨를 반복해서 다듬었다고요. 현재 남아 있는 38통의 편지 가운데, 1954년 11월경에 보낸 이 편지는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애정과 화가로서의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쓸 당시, 이중섭은 이듬해 열릴 개인전 준비에 한창이었는데요,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면, 일본에 있는 아내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작업에 매진하고 있었죠.
실제로 이중섭의 많은 대표작은 이 편지를 쓰던 즈음 제작되었는데요,편지에 함께 그려진 그림에서도, 당시 화가가 품었던 기대감과 의욕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중섭과 가족간의 편지는 예전 제주도 여행에서 방문한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서 접했었는데요. 이곳에서 또 다른 편지를 보게 되었네요. 사랑과 애정이 가득한 이런 편지를 보내고 받을때의 행복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번 이건희 틀별전 : 이중섭 전시회의 마지막 공간은 그의 연보와 평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1956년 41세 나이로 간장염으로 서울 적십자 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사망... T.T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2탄인 이중섭 전시회였습니다. 

과련 3탄은 어떤 작가 또는 소재를 가지고 찾아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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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여름방학 시즌이 왔습니다.

코로나19로 짧은 여름방학이지만 아이와 함께, 가족과 함께 꼭 봐야하는 전시회 추천합니다. 

2017-2019년 사이에 새로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우리 문화재를 한 곳에서 만날수 있는 두 번 다시 없을 특별전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관람팁 공유합니다.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관람팁 #1 : 매진 행렬 사전예약 필수


이번 전시회는 하루 4회차 ~ 5회차로 나누어 입장이 제한됩니다. 한 회차에 오직 200명 입장 (150명 온라인 예약 / 50명 현장예약 방식

새 보물 납시었네 특별전은 인터파크 티켓을 통해서 사전 에약이 가능합니다.

[에매 바로가기] https://www.museum.go.kr/site/main/exhiSpecialTheme/view/specialGallery?exhiSpThemId=519848&listType=gallery


다만 아래 이미지와 같이 8월 중순까지는 평일에도 이미 입장권 매진상태입니다.

물론 중간중간 취소 입장권이 나오기는 하지만, 예약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바로 접속하셔서 가능한 일자 예약하세요



이렇게 전시회장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시행되지만...




새 보물 납시었네 관람팁 #2 : 빠른 입장을 위한 사전 준비



전시회 입장을 위해서는 발열체크 > 손소독 > 출입명부 작성의 과정을 거칩니다. 입장과정에서 상당히 시간이 오래 소요됩니다.

회차 10분전에 미리 줄서기 + 네이버나 카카오톡 전자출입명부 설정하시면 좀더 빠른 입장 가능합니다.





전시장은 2개의 전시공간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간 여유롭게 가지고 화장실 다녀오시고, 입장하세요. 200명 제한이지만 관람객 많아서 여유로운 관람은 힘듭니다.


그냥 흐르듯 감상하면 한 시간, 조금 관심을 가지고 감상하면 두 시간도 부족한 전시입니다.




새 보물 납시었네 관람팁 #3 : 사진촬영 가능 + 마스크 착용 + 도슨트X






전시의 시작은 국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말로만 듣던 가장 오래된 역사책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시회 발권 및 입장은 사회적 거리두기, 그러나 전시회 내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불가!!!

제 1전시관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 1부 역사를 기록하다


조선왕조 실록과 이와 관련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벽면에 설명되어 있는 조선왕조 실록에 대한이야기를 먼저 보시고, 실록 전시물을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듯...





구한말 옥새, 오바마 정부에서 환수된 옥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국보 제325호 '기사계첩' / 보물 제1936호 '최석정 초상 및 함' 

이렇게 제 1부 역사를 기록하다. 전시공간에서는 조선시대 실록과 이와 관련된 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제 1실 전시가 끝나고 2부와 3부가 준비되어있는 제 2실로 이동합니다.

제 2실에서는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회화와 공예, 도자, 불교 미술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제2부 예술을 펼치다.




제 2부 시작은 신라의 공예품과 고려의 청자로 시작합니다.

신라의 금귀걸이와 수막새... 작년 경주박물관 여행에서 만난 그 아름다운 작품들을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만나네요.






이번에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고려시대 청자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국보 제326호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 / 보물 제1932호 '청자 투각 연당초문 붓꽂이' 등...







기다란 두 점의 산수화가 전시되어 있는 공간...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보물 제2029호, 856×43.9㎝)와 심사정의 ‘촉잔도권’ (보물 제1986호, 818×58.cm)입니다.

이인문은 심사정의 제자. 스승과 제자의 같으면서도 다른 두 작품을 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 외에도 정선 김득신 등의 당대 유명화가의 산수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의 풍속화... 3회에 나누어 교체전시


이번 전시회의 상당수 작품들은 간송미술관의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현재 간송미술관은 리뉴얼을 위해 기약없는 휴관중에 있습니다. 최근에는 상속세 문제로 보유중인 문화재를 경매에 내놨다는 슬픈 소식도 있죠...

다만 3회에 나누어 교차 전시가 진행됩니다. 보고 싶었던 신윤복의 미인도는 이번이 아는 8월 2회차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김득신의 풍속화도 나누어 전시된다 합니다.)






김홍도 심사정 등 조선시대 문인들의 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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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마지막 제 3전시실은 불교미술입니다.


이번에는 불상 불화 사찰 등 많은 불교 미술품들이 국보와 보물로 승격 또는 지정되었는데요.

이동 전시가 가능한 문화재는 이곳 국립중앙 박물관에 모여 전시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면 만나기 쉽지는 않겠죵?

그래서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을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다양한 사리장엄구와 출토품, 공양품, 비석들...





목판과 불경 등... 

특히 이번 전시에서 만족할만한 부분은 전시품에 대한 간략하면서도 상세한 설명이 아주 좋았다는...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이번에 지정된 국보와 보물 중에는 박물관으로 이동 전시가 어려운 불상등이 다수 있습니다.

이런 문화재는 영상실에서 별도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국미술 카테고리인 불화와 불상입니다.

무신론자 이지만 종교적인 부분을 떠나 절에 가면 마음의 안정이 찾아오는 듯... 그리고 불상과 불화를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담겨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보물 제1990호 ‘대곡사’명 감로왕도 : 감로탱화 죽은 사람의 영혼 구제를 위한 의식용 불화

7여래와 재사상, 관음보살... 악귀, 승려, 지옥, 역대왕들... 화면 우하단에 조총을 든 무리도 보이는...


보물 제1994호 지장시왕도



보물 제2003호 남양주 불암사 목조관음보살좌상 ... 목조불상...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지키려 노력한 분들의 업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간송 전형필, 혜전 송성문 성문출판사 창업주, 송암 이회림 OCI 창업주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새 보물 납시었네 전시회의 1/100도 소개 못했네요.

감동은 현장에서 느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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