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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두 번째 공간입니다. 첫번째 공간에서는 조선의 백자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다음 공간에서는 조선의 회화와 글을 통한 조선시대 인문정신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은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앞부분에서 조선 전기 백자을 만나고 다음 공간에서는 이렇게 거대한 포토월을 먼저 만나게 됩니다.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를 잘 모르신다면, 지난 포스팅 먼저 보세요.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예약, 도슨트, 포토존 관람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 관람후기 입니다.아마도 올해 한국미술 전시회로는 가장 큰 규모의 핫 한 전시회가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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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묵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이 건국되면서 사람의 수양과 도덕을 중시하는 인문人文시대가 열렸습니다. 사대부들은 시와 글씨, 그림에 자신의 이상을 담았습니다. 그들이 남긴 글과 그림은 조선을 물들이며 문文의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문치文治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검지만 오색五色을 담은 먹은 사대부의 내면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도구였고, 자연과 만나며 더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수묵산수화의 풍경은 단순한 경치가 아니라 사대부가 꿈꾼 이상세계이자 내면을 확장하는 창이었습니다. 2부는 서화를 통해 사대부들이 바라본 세계와 품었던 인문정신을 들여다봅니다.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2부 '묵 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는 총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1. 인문정신, 자연에서 길을 찾다

자연은 우주 질서가 담긴 거대한 공간입니다. 사대부들은 자연을 보며 인간이 나아갈 길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그림 속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은 영원히 변치 않는 자연의 힘을 보여주고, 계절에 따라 바뀌는 풍경은 세상이 일정한 주기에 따라 변하는 것을 알려줍니다. 사대부들은 이러한 자연의 원리를 깨닫고 흐름에 순응하며, 백성의 삶을 돌보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더 나은 세상을 꿈꿨습니다.

 

먼저 입구에서부터 고풍스러운 그림들이 보입니다.

 

산수도 山水圖

계절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산수 

작가 모름 조선 16세기 중반 비단에 먹과 색 모리박물관

 

봄, 여름, 가을의 경치를 담은 산수화로, 본래 사계절이었으나 겨울은 결실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전기에는 자연의 변화에 주목한 이와 같은 사시도四時圖 유형의 그림이 자주 그려졌습니다. 양식적으로는 한쪽으로 치우친 구도, 넓은 공간, 언덕 위 소나무 등에서 안견파 화풍이 드러나지만, 물결치는 구름과 강한 명암 대비는 미법산수와 절파 화풍의 흔적도 엿보입니다. 

 

거대한 산을 배경으로 정교한 건축 묘사와 화려한 채색 등은 화원의 솜씨로 여겨지며, 건축 기단의 ‘허튼층쌓기’는 조선 건축 표현의 한 단면입니다. 이 작품은 조선 전기 회화의 새로운 기준작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그림입니다.

 

| 안견의 작품인가? 안견의 작품이 아닌가?

안견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본관은 지곡이며 자는 가도, 득수이고, 호는 현동자와 주경입니다. 그는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시기에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하며 정4품 호군까지 올랐으며, 산수화를 비롯해 초상, 화훼, 누각, 말, 의장도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안견은 안평대군을 가까이 모시면서 그가 소장한 고화들을 접하고, 북송 곽희의 화풍을 바탕으로 여러 화풍의 요소를 융합해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였으며, 이는 조선 중기까지 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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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작은 1447년 안평대군의 꿈을 바탕으로 3일 만에 완성한 ‘몽유도원도’로, 현재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안견의 화풍과 영향력은 후대 화가들에게 계승되어 ‘안견파’라는 유파로 불리며, 조선뿐 아니라 일본의 수묵화 발전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이번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에서 안견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적벽도 赤壁圖

적벽에서 뱃놀이 

구전舊傳 안견安堅(15세기 활동) 조선 16세기 후반 비단에 먹과 엷은 색 덕수2417

 

북송의 문인 소식蘇軾(1037~1101)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나온 뱃놀이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소식은 음력 7월 보름에 적벽 아래에서 배를 타고 시를 읊으며 달을 감상했는데, 조선 전기 사대부들도 소식을 본받아 7월 보름에 배를 띄우는 풍속을 즐겼습니다. 그림에는 절벽 아래 소식과 일행이 술을 마시고 퉁소를 부는 장면이 담겨 있으며, 험하고 복잡한 산과 바위의 표현에서 중국 명나라 절파 화풍의 영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본래 안견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나 그의 화풍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촌석조도 漁村夕照圖 

평사낙안도 平沙落雁圖

어촌에 지는 저녁노을과 모래에 내려앉는 기러기 

전傳 안견安堅(15세기 활동) 조선 15세기 말~16세기 초 비단에 먹과 엷은 색 야마토문화관

 

소상팔경 중 ‘어촌에 지는 저녁 노을’과 ‘모래에 내려앉는 기러기’를 묘사하였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고깃배가 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장면과 함께, 먼 산 뒤로 붉게 물든 석양이 표현되어 있으며, 왼쪽 그림에는 멀리서 날아오는 기러기 떼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양쪽 화면은 각각 오른쪽과 왼쪽으로 구도가 치우쳐 있으며, 나란히 걸었을 때 균형 잡힌 구도를 이룹니다. 나뭇가지는 게발처럼 뾰족한 해조묘蟹爪描 기법으로 표현되었고, 산봉우리의 나무는 가늘고 날렵한 세형침수細形針樹로 묘사되어 전체적으로 정제된 필치를 보여줍니다.

 

위에서 소개한 안견의 작품은 이번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조선 전기 미술 대전에서 7월 초까지만 전시되는 작품으로 지금 방문하시면 보실 수 없습니다. 아마도 다른 작품으로 대체되어 있을 것 같네요.

 

산수행려도 山水行旅圖

산수 여정 

작가 모름 조선 16세기 중반 비단에 먹과 엷은 색 후쿠오카시미술관

 

긴 여정 중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산속 집 한 채가 그려져 있습니다. 집 옆으로는 첩첩이 이어진 능선 사이로 긴 폭포가 겹겹이 떨어지며, 떨어진 물은 언덕 왼쪽의 강가로 이어지는 듯한 구도를 이룹니다. 마당에는 두 마리의 닭이 있고, 쌍상투를 튼 아이가 손에 빗자루를 들고 대문을 열고 있어 일상의 정취를 더합니다. 나귀를 탄 인물들과 수레를 몰고 있는 인물이 이 집을 향해 오고 있는 것으 미루어 이들이 여정 중에 이 집에 잠시 들러 쉬려는 의도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산이 화면을 가득 채우면서도 비교적 가옥과 인물이 크게 묘사된 점이 특징입니다.

 

동자견려도 童子牽驢圖

나귀를 끄는 동자 

김시金禔(1524~1593) 조선 16세기 후반 비단에 먹과 엷은 색 개인소장 보물

 

개울을 건너기 싫어 버티는 나귀와 이에 맞서 고삐를 힘껏 잡아당기는 아이의 모습이 해학적이면서도 목가적인 정취를 자아냅니다. 반면 주변 자연은 대담한 구도와 강한 대비로 시선을 끕니다. 화면 왼쪽의 소나무는 쓰러질 듯 솟은 산과 맞닿아 있고, 바위와 암석은 도끼로 내리친 듯한 거친 붓질인 부벽준斧劈皴 기법으로 단단한 질감을 묘사했습니다. 그림 속 나귀는 예부터 벼슬을 할지, 은둔할지를 고민하는 선비의 마음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한림제설도 寒林霽雪圖

김시가 그려준 겨울 풍경 

김시金禔(1524~1593) 조선 1584년 비단에 먹 클리블랜드미술관 1987년 윌리엄 H. 말랫 부부 기금

 

김시가 안사확安士確에게 그려준 겨울 풍경입니다. 나귀를 탄 인물이 산길을 따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고, 화면 위쪽 눈 쌓인 웅장한 산이 시선을 끕니다. 산과 바위를 왼쪽으로 치우치게 배치하고, 강과 안개를 통해 표현한 넓은 공간감, 게 발톱처럼 뾰족하게 그려진 나뭇가지 표현은 15세기 안견파 화풍을 이어받은 모습입니다. 한편, 한쪽으로 기울어진 바위산과 강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각진 산 표현에서는 중국 명나라 절파 화풍의 영향이 드러납니다. 15세기와 16세기 화풍이 함께 나타나는 과도기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김시(金禔, 1524~1593)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 본관은 연안이며 호는 양송당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는 김안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벼슬길이 막혀 평생을 독서와 서화에 전념하였고, 산수, 인물, 우마, 화조 등 다양한 분야의 그림에 뛰어났으며, 대표작으로는 삼성미술관에 소장된 ‘동자견려도’가 있습니다.

 

송하보월도 松下步月圖

달밤 소나무 아래를 걷다

전傳 이상좌李上佐(16세기 활동) 조선 16세기 비단에 먹과 엷은 색 덕수2149

 

마르고 단단한 소나무가 쇠처럼 구부러져 자라고, 바람에 날린 솔잎들이 허공에 흩날립니다. 하늘에는 달이 떠 있고, 소나무 아래에는 고사와 시동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이러한 구도는 중국 남송 마하파 화풍을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 표현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달은 붉게 칠해져 있고, 금니로 달 테두리를 칠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소나무 아래의 매화는 붉은 매화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지금의 소슬한 분위기보다는, 원래 화려하고 경쾌한 봄의 정취를 담고 있었던 작품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신숙주 시 申叔舟 詩, 김종서 시 金宗瑞 詩

소상팔경시첩瀟湘八景詩帖》 15-16면·37면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의 아름다운 여덟 풍경을 읊은 시 

이영서李永瑞(?~1450), 김종서金宗瑞(1383~1453), 신숙주申叔舟(1417~1475) 등 

조선 1442년 이후 종이에 먹 신수14513 보물

 

안평대군 이용李瑢(1418~1453)이 중국 후난성湖南省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의 아름다운 풍경을 읊은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를 엮은 시첩입니다. 이 시첩에는 조선 전기 인물 19명의 시詩가 실려 있습니다. 그중 김종서의 시는 해서와 행서를 섞은 자연스러운 글씨로 친필로 여겨집니다. 신숙주의 독특한 예서 글씨는 후대에 그의 글씨를 모방해 쓴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은 소상팔경에 대한 조선 전기 명사들의 인식과 서예 문화를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사시팔경도 四時八景圖

아름다운 사계절 풍경 

전傳 안견安堅(15세기 활동) 조선 15세기 중반 비단에 먹과 엷은 색 덕수3144

 

사계절을 두 폭씩, 이른 봄부터 늦은 겨울까지 여덟 장면으로 구성한 작품입니다. 여름은 물기 많은 필묵으로, 겨울은 거친 필선으로 계절감을 표현하였습니다. 단순한 자연 풍경의 재현을 넘어 자연 만물의 생장과 소멸이라는 이치를 이상세계로 형상화한 그림으로, 농본農本 이념과도 깊이 관련됩니다. 절기에 따라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일은 왕을 비롯한 지배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덕목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백성의 삶을 이해하고 국정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지혜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사관수도 高士觀水圖

자연 속 생각에 잠긴 선비 

전傳 강희안姜希顔(1417~1464) 조선 16세기 중반 종이에 먹 본관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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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질 듯한 거대한 절벽 아래 한 사람이 물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거대한 절벽은 붓을 단번에 쓸어내려 표현하였고, 절벽 아래로 뻗어 나온 넝쿨은 빠른 필선으로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강렬한 필묵이 돋보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강희안의 필치를 성글고 거친 붓질이 특징이라고 한 언급과 맞닿아 있습니다. 화면 왼편 가운데 「인재仁齋」 인장이 있어 그의 작품으로 전해오고 있지만, 그의 작품으로 보지 않는 의견도 있습니다.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화가, 시인으로, 본관은 진주이며 자는 경우, 호는 인재입니다. 그는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해 집현전 학사, 호조참의, 황해도관찰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훈민정음 해석과 『용비어천가』 주석, 『동국정운』 편찬 등 학문적 업적도 남겼습니다. 시, 글씨, 그림 모두에 뛰어나 ‘삼절’로 불렸으며, 대표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사관수도」를 비롯해 「산수인물도, 교두연수도 등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인 『양화소록』을 저술하였으며, 평생 꽃을 가꾸고 예술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무이구곡도 武夷九曲圖

아홉굽이 물길을 따라 수양하다 

이성길李成吉(1562~1621) 조선 1592년 비단에 먹 덕수2216

 

중국 송나라 주희朱熹(1130~1200)가 머물렀던 무이산武夷山의 아홉 굽이 물길을 그린 그림입니다. 계곡은 1곡부터 9곡까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며, 1곡이 하류, 9곡이 상류에 해당합니다. 각 굽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경치를 배치하였습니다. 배를 타고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여정은 인간의 본성을 되찾고자 하는 수양의 길로 비유되는데, 이는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한 주희의 삶을 동경한 당시 사대부들의 이상과 내면을 반영한 그림입니다.

 

이성길(李成吉, 1562~1621)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화가로, 본관은 고성이고 자는 덕재, 호는 창주입니다. 그는 병조참판 등 관직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과 북관대첩 등으로 큰 공을 세웠습니다. 예술적으로도 뛰어나 <쌍포승첩도>와 <무이구곡도> 같은 산수화와 전쟁화로 유명하며, 특히 <무이구곡도>는 조선시대 무이구곡도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성길은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시와 그림에서도 높은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 2부 '묵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두 번째 공간입니다.

2-2. 사람과 사람, 인문으로 기록되다

조선 시대에는 서화가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지고 다양하게 활용되었습니다.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마음, 정신을 담아내려는 의지가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충忠과 효孝 같은 유교적 덕목을 널리 알리려고, 동료와 뜻을 나누려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려고, 이들은 붓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겨진 서화는 조선 전기 사람들이 삶 속에서 남긴 흔적, 즉 인문이 되었습니다.

 

이번 공간의 선비들의 초상으로 시작합니다.

 

김진 초상 金璡 肖像

16세기 평상복을 입은 선비의 초상 

작가 모름 조선 1572년경 비단에 먹과 색 의성 김씨 천전파 대종택(한국국학진흥원 기탁) 보물

 

김진(1500~1580)의 73세 초상입니다. 바닥에는 표범 가죽 방석을 깔았는데, 원근감 없이 네모난 모양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옷은 평면적으로 그려졌지만, 얼굴에는 붓으로 연하게 음영을 넣어 볼과 입, 코 주변의 주름을 살려 입체감이 느껴집니다. 김진은 이 초상을 자신의 별장 정자에 걸어두고, 자연 속에서의 여유로운 삶을 오래도록 즐기고 싶다는 바람을 읊기도 했습니다. 16세기 후반 평상복을 입은 선비의 모습을 담은 귀한 초상화입니다.

 

장말손 초상 張末孫 肖像

15세기 공을 세운 신하의 초상 

작가 모름 조선 1476년경 비단에 먹과 색 인동 장씨 연복군 종택 보물

 

장말손(1431~1486)은 세조와 성종 대 활약한 인물입니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으로 녹훈되었습니다. 이 초상화는 1476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장말손은 푸른빛이 도는 검은 예복을 입고 사모를 쓴 채, 몸과 얼굴을 약간 왼쪽으로 돌려 앉아 있습니다. 얼굴은 연한 붓질로 입체감 있게 표현되었고, 눈매와 주름은 섬세한 선으로 그렸습니다. 가슴에는 금실로 수놓은 백한白鷴 흉배를 하고 있어 당시 그가 3품 관직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초상은 15세기 후반 공신 초상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홍가신 초상 洪可臣 肖像

17세기 초 공을 세운 신하의 초상 

작가 모름 作家未詳 조선 朝鮮 17세기 비단에 색 絹本彩色 덕수2831

 

홍가신洪可臣(1541~1615)은 1596년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시기에 이몽학李夢鶴의 난이 일어나자, 당시 홍주목사로서 반란 진압에 앞장섰습니다. 1604년 그의 이러한 공로가 인정되어 청난공신 1등에 책록되었습니다. 이 초상화는 인물의 복식과 자세, 이전에 없던 바닥에 깔린 채전彩氈(문양이 있는 화려한 깔개) 등을 통해 17세기 초 공신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홍가신이 착용한 흉배에는 기러기와 구름 무늬가, 허리에는 삽금대鈒金帶를 착용하고 있어 그가 당시 정2품 관직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현보 초상 李賢輔 肖像

16세기 승려의 진영처럼 그려진 선비의 초상 

전傳 옥준상인玉峻上人 조선 1537년경 비단에 먹과 색 영천 이씨 농암종택(한국국학진흥원 기탁) 보물

 

이현보(1467~1555)는 조선 중종 대 문신입니다. 초상에서 그는 머리에 사모 대신 검은 발립鈸笠을 쓰고 있으며, 오른손에 불자拂子를 들고 왼손은 허리의 서대犀帶를 쥐고 있습니다. 벼루갑과 서책이 놓인 경상經床 앞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승려의 진영과도 같아 불교 회화의 영향이 엿보입니다. 실제로 이현보 아들의 문집에 그가 동화사의 승려 화가 옥준상인玉峻上人과 교유한 시문이 남아 있습니다. 이 그림도 1537년 이현보가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할 당시 옥준상인이 그려준 것으로 추정됩니다.

 

열심히 일하고 살았으면, 즐길 줄 알아야지!

조선시대에도 회식은 많았구나!!!

 

미원계회도 薇垣契會圖

안견풍으로 그린 사간원 관리들의 모임 

그림 작가 모름 제시題詩 성세창成世昌(1481~1548) 조선 1540년경 비단에 먹 신수13556 보물

 

그림 제목의 ‘미원薇垣’은 사간원의 별칭입니다. 참석자 중에는 퇴계 이황李滉(1501~1570)도 포함되어 있어 흥미를 더합니다. 이들은 관복을 차려입고 지위에 따라 차례대로 앉아 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들이 자리한 모임의 배경입니다. 높은 산과 쓰러질 듯한 절벽, 언덕 위의 소나무 등 안견풍 산수가 모임 장면보다 훨씬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 전기 계회도는 안견풍으로 그려진 이상경을 배경으로 모임을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사간원(司諫院)은 조선시대에 국왕과 조정의 잘못이나 부당한 점을 바로잡기 위해 간쟁(諫諍)과 논박(論駁)을 담당하던 독립 언론기관입니다. 사간원은 사헌부, 홍문관과 함께 ‘삼사(三司)’로 불리며, 조선 정치의 핵심적인 견제와 감시 역할을 맡았습니다. 관원들은 ‘간관(諫官)’이라 불렸고, 왕의 언행이나 정책, 인사 문제 등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하고 바로잡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사간원은 조선 왕정에서 공론(公論)과 민의(民議)를 전달하는 중요한 창구로, 왕권의 독주를 견제하고 균형 있는 정치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호조낭관계회도 戶曹郎官契會圖

모임 장면이 부각된 호조 낭관들의 모임 

작가 모름 조선 1550년경 비단에 색 신수2234 보물

 

호조戶曹의 전·현직 낭관이 모여 교류하는 모습을 담은 계회도입니다. 정자 안팎의 인물들은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는데, 참석자 명단은 8명이지만 그림 속에서는 9명의 관원이 보입니다. 사모紗帽와 단령團領을 착용하고 반원 형태로 둘러앉은 8명은 허리를 숙인 채 가운데 북쪽에 앉은 인물에게 예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산수보다 인물 묘사의 비중이 크고, 구성도 더욱 실제 모임의 질서와 형식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16세기 중엽 계회도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호조(戶曹)는 조선시대 육조(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중 두 번째로 높은 서열을 가진 행정기관으로, 호구(인구), 공납, 조세, 국가 재정 및 경제 전반을 담당하였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기획재정부에 해당하는 부서입니다. 호조는 판적사(호구·토지·조세), 회계사(회계·재정), 경비사(국가 경비·식량 등) 등 세 부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인구 조사, 세금 부과, 토지와 식량 관리 등 국가 재정의 핵심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탁지아문으로 개칭되기 전까지 조선의 재정과 경제를 총괄하는 중추 기관이었습니다.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 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圖

안견풍으로 그려진 과거 급제 동급생들의 모임 

그림 작가 모름 글·글씨 김인후金麟厚(1510~1560) 조선 1542년경

종이에 먹과 엷은 색 국립광주박물관 광주3869 2001년 울산김씨 문정공 대종중 기증

 

이 그림은 1531년 사마시司馬試에 함께 급제한 일곱 명의 인물들이 10여 년 후인 1542년경 다시 모임을 갖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계회도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구도, 언덕 위에 배치된 두 그루의 소나무 등에서 조선 전기 대표 화풍인 안견풍 산수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화면 상단에는 명필 김인후가 쓴 시詩가 적혀 있으며, 참석자 명단 양옆에는 매화와 대나무가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제2부. 묵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다음 공간에는 조선 전기의 서화 중에서 서예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행초 行草

목판으로 인쇄한 안평대군 글씨 병풍

이용李瑢(1418~1453) 조선 종이에 목판 강릉 오죽헌시립박물관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이 당나라 문인들의 시를 행서와 초서를 섞어 쓴 글씨를 후대에 목판으로 찍은 작품입니다. 나무판에 새긴 글씨라 획이 조금 각져 보이지만, 안평대군 특유의 시원하게 펼쳐지는 큰 글씨에서는 여전히 활달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이 작품에는 흘려 쓴 행서와 획을 과감히 생략한 초서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습니다. 삐치고 파인 획, 길게 뻗은 가로선, 글자의 위아래를 연결한 구성, 크기 차이를 둔 배열 등에서는 안평대군이 좋아했던 원나라 조맹부趙孟頫와 선우추鮮于樞의 영향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안평대군 이용(1418~1453)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아들로, 시·서·화에 모두 뛰어나 ‘삼절’로 불렸던 조선 전기의 대표적 예술가이자 왕자입니다. 그는 인왕산 기슭에 비해당과 무이정사를 짓고 많은 책과 서화를 수장하며 문인·예술가들과 교유했고, 당대 서화계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문종 사후 어린 단종을 보위하는 정치 세력의 중심에 섰으나, 1453년 수양대군(세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유배되어 교동도에서 사사되었으며, 이후 숙종 때 복권되었습니다

 

초서 草書

김구가 초서로 쓴 이별시 

김구金絿(1488~1534) 조선 1519년 종이에 먹 개인 소장(충재박물관 기탁)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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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가 삼척부사로 떠나는 친구 충재 권벌權橃을 위해 써준 작품입니다. 16세기를 전후해 명나라의 새로운 초서풍이 조선에 유입되었고, 김구는 이러한 서풍에 민감하게 반응한 대표적인 명필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감정이 폭발하듯 미친 듯이 써 내려간 초서, 즉 광초狂草를 능숙하게 구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그의 부드럽고 활달한 붓놀림이 돋보입니다.

 

천자문 千字文

석봉 한호가 쓴 천자문 

글씨 한호韓濩(1543~1605) 조선 1583년 간행 종이에 목판 개인소장 보물

 

조선 선조 대 명필 석봉石峯 한호가 쓴 천자문입니다. 천자문은 예로부터 글씨를 처음 배울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교육서였습니다. 이 책은 1583년(선조 16), 선조의 명을 받아 한호가 직접 쓰고 나라에서 목판으로 찍어 배포한 것입니다. 처음 간행된 판본인 만큼 석봉체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 있습니다. 글씨는 획의 굵기가 일정하고, 점과 선, 자형 모두 단정하고 깔끔합니다. 학습용 글씨로 손색이 없는 구조와 균형을 보여줍니다. 이후 한호의 『천자문』은 여러 차례 다시 간행되었으며 전국의 관아, 사람들에게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석봉진적첩 石峯眞蹟帖

석봉 한호가 말년에 쓴 글씨 

글씨 한호韓濩(1543~1605) 조선 1602~1604년 종이에 먹과 금니 본관2203 보물

 

조선을 대표하는 명필 석봉 한호의 노년 글씨로, 모두 세 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첩에는 한호가 가평군수에서 물러난 1602년부터 흡곡현령으로 있었던 1604년 사이에 쓴 글씨가 실려 있습니다. 검은색이나 감색紺色 종이에 금니金泥로 글씨를 썼으며, 해서·행서·초서의 다양한 서체를 사용했습니다. 세 번째 첩은 흰 종이에 검은 먹으로 도교 경전인 「설상청정경說常淸淨經」을 정갈하게 옮겨 쓴 것입니다. 이 첩은 석봉체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평가되며, 한호의 깊은 서예 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초서 草書

조선으로 전래된 명나라 초서 병풍 

장필張弼(1425~1487) 중국 명明 15세기 종이에 먹 개인소장(충재박물관 기탁) 보물

 

16세기 전반, 중국 명나라 서예가 장필의 글씨가 조선에 전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한 초서 작품입니다. 이 병풍은 문신 충재冲齋 권벌權橃이 사행 시에 북경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획마다 움직임이 강하고, 화면 전체에 리듬감과 생동감이 살아 있습니다. 이런 장필의 초서풍은 조선의 서예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자암 김구金絿, 고산 황기로黃耆老 등과 같은 16세기 조선의 대표적 초서 명필들이 장필의 필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서풍을 발전시켰습니다.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 2부. 묵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마지막 전시공간으로 이동합니다.

2-3. 영원한 조선을 꿈꾸다 

조선 전기 궁궐은 아름답고 상징적인 그림들로 꾸며졌습니다. 나라가 평안하고 왕이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태평한 세상이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기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자연에서 복을 상징하는 존재들을 그림에 담아 좋은 기운이 깃들길 바랐습니다. 이처럼 궁궐 안에 그려진 그림은 단순한 장식을 넘어서 조선이 오래도록 번영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상징적 표현이었습니다.

 

앞의 두 전시공간에서는 전통적인 서화가 중심이었다면, 이번 공간은 기복을 비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들 화조도와 다양한 채색화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화조도 花鳥圖

궁중 정원의 신기한 꽃과 새 

전傳 신잠申潛(1491~1554) 조선 16세기 전반 종이에 먹과 색 덕수1154

 

문인화가 신잠이 그린 네 폭 그림으로, 원래는 병풍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각 폭마다 새와 동물, 꽃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1폭에는 매화와 동백꽃이 핀 가지 위에 동박새 한 쌍이 앉아 있습니다. 2폭에는 태호석과 장미를 배경으로 연못에서 오리 한 쌍이 노닙니다. 3폭은 꽃가지 위에 앉은 수대조綏帶鳥로 보이는 새 한 쌍과 그 아래에 토끼 한 쌍이 등장합니다. 4폭에서는 여문 조 이삭과 들국화가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신잠은 신숙주의 증손으로 태어나 관리로 활동했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유배를 당한 뒤 서화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십장생도 十長生圖

장수와 왕실 번영의 염원 

작가 모름 조선 16세기 후반 비단에 색 일본 개인소장

 

열 가지 장수의 상징물을 그린 그림입니다. 오른쪽 화면에는 해, 사슴, 영지버섯, 소나무가 있고, 왼쪽 화면에는 달, 학, 대나무, 거북이가 등장하며, 두 화면 모두에 산과 시냇물이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사슴은 하얀 털로 표현되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사슴이 1,500년을 살면 흰 사슴이 된다고 전합니다. 두 폭은 구름과 안개에 싸인 산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곁에 해와 달이 떠 있어 화면 전체에 신비롭고 장엄한 분위기를 더해 줍니다. 십장생도는 고려 말부터 그 기록이 나타나며, 조선시대에는 궁궐 장식이나 의례용 그림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십장생(十長生)이란?

십장생은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을 상징하는 열 가지 자연물 또는 사물을 의미합니다. 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민속 신앙과 도교, 신선 사상에서 유래했으며, 인간의 장수와 건강, 영원한 삶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십장생은 조선시대 궁중과 민간에서 그림, 자수, 도자기, 가구, 복식 등 다양한 예술과 생활용품의 문양으로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십장생의 구성

십장생을 이루는 열 가지는 시대와 지역, 작품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해(日) 생명, 권위, 영원, 남성적 원리
산(山) 불변, 생명의 근원, 신성, 장수
물(水) 생명력, 복, 깨끗함, 영속성
돌(石) 변치 않는 견고함, 영원성
구름(雲) 신령스러움, 길상, 자연의 조화
소나무(松) 절개, 신의, 장수, 불사
대나무(竹) 절개, 불변, 장수
거북(龜) 장수, 지혜, 인내, 재물
학(鶴) 불사, 고귀함, 입신출세
사슴(鹿) 장수, 선함, 평화, 재생
불로초(芝) 불로장생, 신비, 소망

 

가응도 架鷹圖

충신을 상징하는 매 

전傳 이암李巖(1507~1566) 조선 16세기 중반 비단에 먹과 색 일본민예관

 

횃대 위에 매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단단한 부리, 매서운 눈, 발끝의 날카로운 발톱은 섬세한 필치로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꼬리 깃에는 ‘시치미’라 불리는 표식이 달려 있는데, 이는 주인 있는 매라는 뜻입니다. 이암은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증손으로, 특히 동물 그림에 능했던 화가입니다. 매는 예로부터 충신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는데, 횃대에 묶여 있는 매는 왕에게 바른말을 하며 간신을 물리치는 신하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화조구자도 花鳥狗子圖

꽃나무 위 새와 강아지 

이암李巖(1507~1566) 조선 16세기 중반 종이에 먹과 엷은 색 개인소장 보물

 

한 쌍의 새가 앉아 있는 나무 아래 강아지 세 마리가 평화롭게 쉬고 있습니다. 화면 맨 앞에 있는 강아지는 벌레를 입에 문 채 엎드려 있고, 다른 두 마리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각각 잠을 자거나 먼 곳을 바라보며 앉아 있습니다. 강아지는 윤곽선을 쓰지 않고 먹의 진하고 옅음을 조절하여 칠했지만, 나무는 형태를 또렷하게 드러내기 위해 선으로 윤곽을 그려 넣었습니다. 또한 껍질의 울퉁불퉁한 질감을 살린 나무 표현은 이암의 특징적인 기법입니다. 배경을 생략하고 나무와 새, 강아지만을 그려 소재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합니다.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2부. 묵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마지막 공간에는 소개한 작품 이외에도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이런 그림들이 좋은지... 너무나 좋더라는...

 

나전 칠 모란 넝쿨무늬 능화형 반 螺鈿漆牡丹唐草文菱花形盤

조선 15~16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주름질로 작은 꽃과 넝쿨무늬를 만들고 줄기는 금속으로 표현하는 고려 나전칠기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모란 넝쿨무늬는 고려시대 도안화된 무늬에 비해 사실에 가깝게, 바람에 흩날리는 듯 표현되었습니다. 무늬 사이의 여백을 충분히 둔 점은 이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고려와 조선을 연결하는 과도기적 작품이지만 조선 전기 나전칠기의 새로운 풍조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나전 칠 국화 넝쿨무늬 상자 螺鈿漆菊唐草文箱子

고려 14세기 후반-조선 15세기 야마토문화관

 

려 나전의 전통을 기반으로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국화와 모란 넝쿨무늬, 세부를 선각으로 묘사하는 모조법毛彫法, 넝쿨 줄기와 경계선에 사용된 금속 등은 고려시대의 전통입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비해 무늬의 규칙성과 밀집도가 낮아지고 넝쿨 흐름이 보다 유연해지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각 면의 무늬가 옆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 전기 나전칠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표현 방식이기도 합니다. 조선 전기 나전칠기는 왕실 용품이나 왕실의 하사품, 외국과 교류에서 예물로 사용되는 고급 물품이었습니다

 

 

오늘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2부. 묵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소개를 마칩니다. 다음 공간은 '3부 금金,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로 조선의 불교미술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자세한 후기는 아래 포스팅 참고하세요.

 

조선 전기 미술 전시회 대전 : 불교미술 & 훈민정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관람후기 마지막 포스팅입니다.이번 전시회는 총 3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섹션인 조선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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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 관람후기 입니다.

아마도 올해 한국미술 전시회로는 가장 큰 규모의 핫 한 전시회가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금주까지는 무료관람이 진행되지만 다음주 부터는 유료전시회로 전환됩니다.

 

오늘은 새 나라 새 미술 전시회 관람팁 (예약, 할인, 도슨트, 오디오가이드, 포토존, 아트샵, 관람시간, 주차장 정보) 공유합니다.

| 전시회 정보

이번 조선 전기 미술 대전 특별전은 8월 3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1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조선 전기 15-16세기의 도자, 회화, 불교미술 690여건의 작품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대규모 특별전으로 여름방학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는 것도 추천 드립니다.

 

| 입장료, 사전예약 추천

이번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입장료는 개인기준으로 성인은 8,000원, 청소년 (13~24세)은 6,000원, 어린이는 4,000원입니다. 미취학 아동이나 65세 이상은 무료관람 또는 할인이 가능합니다.

다만, 워낙 핫 한 전시회로 30분 단위로 입장이 가능한 현장 발권은 오픈런 아니면 티켓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예매는 네이버와 티켓링크를 통해 사전 예약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6월 15알 까지는 개관 기념 무료입장이 가능해서 저는 무료관람하고 왔네요.

 

| 사진촬영 및 포토존

이번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는 한 점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실내촬영이 가능합니다. (삼각대나 플래시 사용금지) 

또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장 입구와 실내에 몇 몇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이번 전시회는 자율 입장이 아닌 오전 10시 부터 30분 단위로 예약 및 티켓팅이 가능합니다. 해당 시간이 지나면 입장이 어려울 수 있으니 시간 엄수해 주시고요. 실내에 충분한 실내공간과 아트샵 등이 있어 기다리기에 지루하지 않습니다.

 

| 오디오 가이드와 도슨트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도슨트는 없습니다.

별도 오디오 가이드 (음성안내기)가 티켓팅 전에 대여가 가능합니다. 저는 저의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오디오가이드를 선호하는데요.

 

아래와 같이 이번에는 가이드온 앱에서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오디오가이드를 서비스한다고 되어 있지만, 입장후 앱 확인하니, 현장 오디오가이드 기기만 가능하다고 안내가 나와있네요. (대략 난감)

 

앱 없어요. 현장 기기 꼭 대여하세요

 

| 총 5개 섹션, 관람 시간은 150분 이상 고려

이번 새 나라 새 미술 전시회는 입구의 프롤로그와 마지막 훈민정음 특별공간과 함께 크게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섹션별로 작품에 맞게 상당히 고급스러운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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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도 넓고, 작품수도 많고 국내의 여러 박물관과 사찰은 물론 해외 미술관이 보유한 작품까지 있다보니 이번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관람에 최소 2시간 이상 필요합니다. (대충 봐도) 

조금 시간을 가지고 작품을 감상한다면 반나절도 부족한 시간의 전시입니다. 시간안분 잘 하세요.

 

01. 프롤로그 : 조선의 새벽 새로운 나라로

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시작됩니다. 어떤 역사의 새벽녘을 들여다봅니다. 고려 말 1391년, 이성계와 그 측근들은 사리장엄을 조성하여 금강산 월출봉의 석함 안에 봉안했습니다. 고려 말 부처에게 기원하는 영험한 장소였던 금강산에 납입한 사리장엄에는 미륵의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혼란한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을 구원하는 존재인 미륵에게, 저무는 시대를 뒤로하고 새로운 나라를 열고자 한 이성계의 굳은 다짐을 투영했습니다. 사리장엄을 구성하는 금동 사리함에 보이는 티베트계 불교미술의 영향은 조선 건국 이후 전개될 불교미술의 한 단면을 제공합니다. 사리함이 담겨 있던 백자 발은 청자 중심의 고려 도자에서 백자 중심의 조선 도자로 이행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고려 말 사람들이 가지고 온 물질문화의 기반 위에서, 이제 새 나라 조선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 첫 공간은 프롤로그로 조선의 건국과 방향이 소개됩니다. 이곳에서는 이성계가 조선 건국 직전에 발원한 사리장엄 (李成桂 發願 舍利莊嚴)과 함께 조선의 시작을 알립니다.

 

조선 건국 직전인 1390-1391년에 이성계가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금강산에 모신 사리장엄입니다. 백자 발과 청동 발, 탑 모양의 금동 사리함 등 여러 점을 돌로 된 함에 넣어 모셨습니다. 백자 발과 사리함의 표면에 미륵이 내려올 때를 기다린다는 내용의 명문을 적었습니다. 불교를 깊이 믿었던 이성계는 고려시대의 불교 성지였던 금강산에 사리장엄을 모시면서 새 나라의 건국을 꿈꿨던 것으로 보입니다.

 

02. 白 조선의 꿈을 빚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푸른 청자의 시대가 가고 하얀 백자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은 유교 질서를 세우고 중앙집권을 강화하며 나라의 기틀을 갖추었습니다. 나라에서는 전국의 물자와 장인을 엄격하게 관리했고, 이를 바탕으로 도자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고려 말 쇠락한 청자는 인화印花 분청사기로 변모하며 다시금 전성기를 맞이하고, 마침내 새하얀 경질백자가 탄생했습니다. 조선 건국 후 200여 년 동안은 우리 역사상 가장 다양한 도자가 공존했습니다. 1부에서는 조선 전기 도자를 살펴보며 백색을 향한 정신과 새로운 미감으로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첫 공간에서는 조선 전기 백자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 백자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과 멀티미디어 자료를 통해 작품에 대한 자세한 배경설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조오례의서례 國朝五禮序例

『세종실록世宗實錄』「오례五禮」를 정비한『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序例』 

 

1474년(성종 5) 편찬된 의례서로 국가 의례 전반의 기준을 마련한 『국조오례의』와 짝을 이룹니다. 이 책에 수록된 길례 제기도설祭器圖說, 가례·빈례 준작도설尊爵圖說 등은 당시 정비된 의례기의 형식과 조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제기는 금속으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조선 초에는 금속이 부족해 경제적이고 제작이 쉬웠던 도자제기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일부 의례에는 의도적으로 도자제기가 선택되기도 했으며, 분청사기는 도설에 제시된 복잡한 문양들을 표현하는 데에 적합한 기법상의 장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자 철화 끈무늬 병 白磁 鐵畫 繩文 甁

조선 16세기 신수12074 1995년 서재식 기증 보물

 

이 병은 회색빛을 살짝 머금은 옥호춘병에 목을 한 바퀴 돌려 감은 끈 한 가닥이 자연스럽게 밑으로 흘러내리듯 철화 장식을 더하였습니다. 이 병의 굽 안 바닥에는 음각으로 ‘니ᄂᆞ히’ 라는 한글이 쓰여 있습니다. 조선 전기 청화백자와 철화백자의 문양이 대체로 세한삼우歲寒三友처럼 상징적인 소재로 확장성을 보이는 것에 비해, 이 병과 같이 간결한 표현은 매우 드물어 신선합니다. 관련하여 경기도 광주 관요 도마리 1호 가마터에서 출토된 청화백자 전접시 편片에서 쓰인 시詩에 ‘옥호(술병)에 푸른 실을 묶어 술을 사 오는 것이 왜 이리 더딘가?’ 라는 표현이있어 주목됩니다. 조선 전기 왕실과 관인사대부의 풍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에서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던 백자 작품 중 하나

 

섹션 1이 끝나고 다음 전시공간으로 이동합니다. 2관과 3관에서는 조선의 회화와 서예, 그리고 불교미술이 소개됩니다.

 

03. 묵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이 건국되면서 사람의 수양과 도덕을 중시하는 인문人文시대가 열렸습니다. 사대부들은 시와 글씨, 그림에 자신의 이상을 담았습니다. 그들이 남긴 글과 그림은 조선을 물들이며 문文의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문치文治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검지만 오색五色을 담은 먹은 사대부의 내면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도구였고, 자연과 만나며 더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수묵산수화의 풍경은 단순한 경치가 아니라 사대부가 꿈꾼 이상세계이자 내면을 확장하는 창이었습니다. 2부는 서화를 통해 사대부들이 바라본 세계와 품었던 인문정신을 들여다봅니다. 한 점 한 점에 담긴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따라가며 그 시대의 풍경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작품 보호와 집중을 위해 다소 어두운 공간...

 

어촌에 지는 저녁노을과 모래에 내려앉는 기러기 

어촌석조도 漁村夕照圖 평사낙안도 平沙落雁圖

전傳 안견安堅(15세기 활동) 조선 15세기 말~16세기 초 비단에 먹과 엷은 색 야마토문화관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에서는 국내에 소장된 조선전기 작품은 물론 일본이나 미국 미술관 등에서 소장한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작품별로 전시기간이 상이하니 이 부분도 확인하고 방문하세요.

 

 

자연 속 생각에 잠긴 선비 고사관수도 高士觀水圖

전傳 강희안姜希顔(1417~1464) 조선 16세기 중반 종이에 먹 본관2504

 

쓰러질 듯한 거대한 절벽 아래 한 사람이 물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거대한 절벽은 붓을 단번에 쓸어내려 표현하였고, 절벽 아래로 뻗어 나온 넝쿨은 빠른 필선으로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강렬한 필묵이 돋보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강희안의 필치를 성글고 거친 붓질이 특징이라고 한 언급과 맞닿아 있습니다. 화면 왼편 가운데 「인재仁齋」 인장이 있어 그의 작품으로 전해오고 있지만, 그의 작품으로 보지 않는 의견도 있습니다.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

 

16세기 평상복을 입은 선비의 초상 김진 초상 金璡 肖像

15세기 공을 세운 신하의 초상 장말손 초상 張末孫 肖像

많은 작품은 아니지만 조선 전기의 초상화를 만나볼 수 있는 것도 이번 전시회의 매력입니다. 

 

석봉 한호가 쓴 천자문 천자문 千字文

글씨 한호韓濩(1543~1605) 조선 1583년 간행 종이에 목판 개인소장 보물

 

조선 선조 대 명필 석봉石峯 한호가 쓴 『천자문』입니다. 『천자문』은 예로부터 글씨를 처음 배울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교육서였습니다. 이 책은 1583년(선조 16), 선조의 명을 받아 한호가 직접 쓰고 나라에서 목판으로 찍어 배포한 것입니다. 처음 간행된 판본인 만큼 석봉체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 있습니다. 글씨는 획의 굵기가 일정하고, 점과 선, 자형 모두 단정하고 깔끔합니다. 학습용 글씨로 손색이 없는 구조와 균형을 보여줍니다. 이후 한호의 『천자문』은 여러 차례 다시 간행되었으며 전국의 관아, 사람들에게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이것이 정녕 사람이 쓴 글씨인가?

 

04 금金,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 

조선의 건국되면서 유교의 시대가 시작된 뒤에도 불교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교는 공적 영역에서 경제적·사회적 위치가 제한되었지만, 이념과 명분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또한 변함없이 삶의 고통과 죽음의 슬픔을 위로하는 신앙으로 존재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왕실 가족과 사대부는 물론, 일반 백성까지 화려한 불교미술의 조성과 불교 행사에 끊임없이 열중했습니다. 빛나는 금빛 부처를 만드는 마음은 유교의 사회가 시작되어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는 않는 금처럼, 변치 않는 마음을 담은 조선 전기의 불교미술을 3부에서 소개합니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불교 미술 중에서도 화려한 불상과 불화등을 국립중앙박물관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심곡사 탑에서 발견된 부처와 불감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과 금동불상군

深谷寺 七層石塔 出土 金銅佛龕·金銅佛像群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기단에서 발견된 부처와 불감입니다. 상자 모양의 불감 안에 7구의 부처와 보살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7구 중 크기가 큰 아미타부처와 관음보살, 지장보살의 삼존상은 원·명 티베트계 불교미술의 영향으로 날씬한 신체를 드러내고 화려한 장신구를 걸쳤습니다. 4구의 작은 상은 대좌가 없고 부처는 양 어깨를 가리는 옷을 입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이처럼 탑 안에 부처와 불감을 넣는 신앙이 유행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의 탄생 석가탄생도 釋迦誕生圖

조선 15세기 비단에 색, 금니 혼가쿠지

 

석가모니 부처의 일생을 그린 여러 폭의 그림 중 하나입니다. 석가모니가 카필라 왕국의 왕자로 태어날 때의 여러 이야기를 한 화면에 그렸습니다. 그림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는 모습을 그렸고, 시간적으로 전후에 해당하는 장면들을 배치했습니다. 이 그림에 나오는 장면은 조선 전기 왕실에서 지은 부처의 일대기인 『석보상절』에 실린 변상도와 매우 비슷하여, 왕실에서 만든 그림으로 추정됩니다.

 

작품 속에서 한 손으로는 하늘을 다른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석가모니를 찾아 보세요.

 

금동관음보살좌상 金銅觀音菩薩坐像

여말선초 금동 높이 18.6 본관11724 보물

 

연꽃 모양의 대좌 위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입니다. 화불이 있는 보관을 쓰고 큰 귀걸이와 목걸이, 무릎까지 드리워진 장신구를 걸쳤습니다. 허리가 잘록하고 곧은 자세와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은 고려 말 원 티베트계 불교미술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이 보살은 금강산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합니다. 금강산은 고려시대부터 불교 성지로 여겨졌고, 불상을 금강산의 암벽에 봉안하는 신앙이 조선 초까지 유행했습니다. 

 

보살님 저에게 구원과 자비를...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불상중에 너무나도 매력적인...

 

오늘은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작품소개는 이렇게 간략하게 마칩니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훈민정음을 해설한 책 훈민정음 訓民正音이 전시되어 있는데 생략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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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아트샵과 주차장 정보 공유합니다.

 

| 아트샵 및 상품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아트샵에는 이번에 전시된 대표 작품들의 굿즈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작품감상 중에 에 저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작품들이 이곳에 모여 있는데요. 모두 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아트샵에서 구입하고 싶은...

 

다만 국립중앙박물관 아트샵 굿즈의 경우 워낙 완성도가 높게 나오는 편이어서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금동관음보살좌상 金銅觀音菩薩坐像 미니어처도 아트샵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중간 크기는 레진제품으로 72,000원 오른쪽 작은 보살님은 16만원

 

백자 철화 끈무늬 병 도자도 구입할 수 있는데요. 제가 이번 전시회에서 좋았던 작품들이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아트샵에 있는 것을 보니 작품을 선호하는 기준이 다 비슷한 것 같네요.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도록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도록 가격은 54,000원. 전시회 도록 구입하다가 가산 탕진할 듯...

 

|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장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주차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소형차 전용 지하 주차장 이용하시면 됩니다.

주차요금은 2시간 2,000원 기본요금이 부과되며, 이후 30분당 500원 주차요금으로 큰 부담은 없습니다. 주말에 자리가 없어서 그렇지...

추가로 다둥이, 국가유공자, 하이브리드 차량등 친환경 자동차 등 50% 주차요금 할인이 지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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