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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3번째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관람후기 입니다. 이번 전시회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렸거나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한국미술명작과 이중섭에 이은 세번째 전시회입니다.

 

|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모네와 피카소 전시회는?

이번 전시회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전에서 열리는 첫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입니다. 또한, 지난 두 번의 특별전이 국내의 미술작품으로 전시되었다면, 이번에는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수집한 해외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카미유 피사로, 클로드 모네, 폴 고갱,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호안 미로의 회화 7점과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 90점을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원형전시실

전시회 장소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1층 1원형전시실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관람료는 무료로 전시관 가장 바깥쪽 공간에는 7명 작가의 회화작품이, 안쪽으로는 90여점의 피카소 도자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맨 안쪽에는 앉아서 쉬면서 휴식을 취하거나 멀티미디어 정보를 만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 무료 오디오 가이드, 이어폰 필수

이번 이건희 특별전도 국립현대미술관 사이트에서 무료로 오디오가이드가 제공됩니다. 이번에 전시된 회화 7점과 4개 섹션에 대한 소개는 물론 피카소 도자 작품에 대한 소개들이 충실하게 제공되고 있습니다.

| 총 4개의 섹션, 피카소를 위한 전시

이번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전시회는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00여점의 20세기 서양 미술 대가들의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지만, 전시의 대부분은 피카소의 도기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회화가 강조된 전시회를 기대 했다면 다소 아쉬운 전시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7명의 대가의 작품을 국내에서 한 번에 접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네요)

 

섹션 1 - 피사로와 고갱: 스승과 제자로 만난 파리의 두 거장

파리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낡고 오래된 중세식 도시 파리를 현대화하는 사업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중엽이었습니다. 에펠탑과 센강 변의 다리, 철골과 유리를 사용한 건물, 가로등 같은 전기 조명으로 빛을 밝힌 넓은 도로, 그리고 공원이나 유원지 같은 여가 시설도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불과 몇십 년 만에 전례가 없는 현대적인 대도시가 탄생한 것이죠. 
당시 젊은 미술가들은 파리의 이런 현대적인 모습을 새로운 예술의 주제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포착해낸 이들의 캔버스 위에서
인상주의 미술이 꽃을 피우게 됩니다. 카미유 피사로는 파리 근교의 퐁투아즈에 체류하며 그곳의 전원 풍경과 대도시 파리의 모습을 즐겨 그렸던 인상주의의 거장입니다.


새로운 작가의 발굴과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던 그는 젊은 화가들에게 스승 같은 존재였는데요, 폴 고갱도 그의 제자였습니다.
고갱은 피사로가 참여했던 1874년의 «제1회 인상주의 미술전»을 접한 뒤 화가로의 전업을 꿈꾸게 되었고, 피사로는 고갱이 이 시기에 그린 초기작을 보고 그의 꿈을 응원해 주었습니다.
자신을 따라 퐁투아즈로 이주한 고갱이 인상주의 풍경화를 완벽하게 그릴 수 있도록 지도하고, «인상주의 미술전»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죠.스승 피사로의 이런 따듯한 응원은 고갱이 무명의 화가에서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두 거장의 아름다운 순간을 이들의 작품을 통해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폴 고갱 ‹센강변의 크레인›

이 그림은 1870년대 중반, 고갱이 본 파리 센강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강변을 걷는 어머니의 뒷모습도 보이고, 저 멀리, 공장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도 보이지만, 이 그림의 주인은 강변에 설치된 거대한 크레인입니다. 이 크레인 주위의 풍경은, 19세기 후반, 현대화되기 시작하던 파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고갱은 증권 거래소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림 애호가이자 수집가에 더 가까웠던 고갱은, 인상주의 미술을 접하면서 미술 수업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하죠. 하지만 그가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직업 화가의 길로 들어선 건 조금 더 후의 일이었습니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사실 고갱은 근대화된 대도시 파리의 풍경보다는 파리 근교의 전원 풍경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는 것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의 이런 성향은 발전하는 서구 문명과 대비되는 또 다른 문화를 향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결국 그는 1891년 파리를 떠나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이주한 뒤, 그곳에서 이국적인 자연과 인물을 주제로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1903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말이죠.

 

피사로는 모네, 르누아르와 더불어 가장 적극적으로 인상주의 미술 운동에 참여했던 작가입니다.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가 개최되었던 1886년 즈음부터 4년여간 그는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젊은 작가들이 이끌었던 신인상주의 미술 운동에 잠시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이 그룹의 작가들은 점을 찍듯이 채색해 그리는 점묘 기법을 주로 사용했는데요, 1893년에 그려진 이 작품에서 이런 기법이 드러납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장 풍경은 피사로가 선호하던 주제 중 하나였는데요, 그가 그린 퐁투아즈 곡물 시장 풍경의 전면에는
곡물을 팔러 나온 상인들이 앉거나 선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뒤편으로는 물건을 구경하거나 구입한 물건을 옮기는 손님들이 보이죠. 그 너머로 보이는 광장에서는 구경거리라도 생겼는지,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린 채 모여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로 꽉 찬 풍경이지만, 이 그림은 조금도 혼잡하거나 소란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짧은 붓 터치로 표현한 눈부신 반사광 속에서, 윤곽선은 흐릿해지고 인물들은 풍경 속에 섞여들며 평화롭고 나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피사로는 이미 60대에 들어선 나이였지만 젊은 작가들이 주축이 된 신인상주의 미술 운동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고갱, 반 고흐, 앙리 마티스, 폴 세잔 같은 미래의 거장들이 화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력으로 인해 피사로는 인상주의와 그 이후 세대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했던 작가로 평가됩니다.

카미유 피사로 ‹퐁투아즈 곡물 시장›

 

섹션 2 - 모네, 르누아르, 피카소: 우정과 존경으로 서로를 빛낸 거장들

이번 섹션에서는 서로를 향한 우정과 존경으로 맺어진 세 거장, 모네와 르누아르, 피카소를 만나보실 텐데요,
모네와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미술가들 가운데서도 유독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습니다. 파리 근교에서 함께 야외 풍경을 그리는 일도 많았는데요, 이 과정에서 자연의 색채와 형태가 빛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관찰하게 된 이들은, 그 순간을 포착해 그리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특히 모네는 물과 안개, 눈과 바람 같은 유동적이고 변화가 많은 자연 풍경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반면, 카페나 유원지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던 르누아르는, 1881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르네상스 미술에 매료된
이후,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고전적인 회화를 주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르누아르의 작품들은 당시 이미 젊은 거장의 반열에 올라있던 피카소의 관심을 끌게 되는데요, 이탈리아 여행에서 고전주의 미술을 재발견했던 그에게, 고전주의 화풍으로 그려진 르누아르의 작품은 새로운 탐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여성을 작품의 주요 주제로 삼았던 점도 피카소가 르누아르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 가운데 하나였죠. 1919년, 르누아르가 세상을 떠났을 때, 피카소는 거장에게 바치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지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이건희 특별전에서 만났던 작품입니다.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인상주의라는 명칭이 ‹인상, 해돋이›라는 모네의 작품에서 유래했을 만큼,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가 바로 모네입니다. 그는, 특정한 대상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대상의 형태와 색채를 표현한 연작 시리즈를 여럿 남겼는데요, 이 작품을 포함한 수련 연작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모네는 1883년, 파리 근교의 지베르니에 정착한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집 정원의 연못과 그 위에 핀 수련을 대상으로, 40여 년 동안 약 250점의 연작을 그렸습니다. 처음에는 정원과 연못 주변의 모습까지 담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네는 연못의 수면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화폭 안에는 오직, 물과 수련, 그리고 물에 비친 하늘의 모습만 담기게 되죠. 1917년에서 1920년 사이에 그려진 이 그림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화폭의 왼쪽에는 수면에 비친 구름이 유유히 흘러갑니다. 마치 이 구름에서 점점이 떨어져나온 듯 화면 오른쪽에는 둥근 연잎 위에 흰 수련들이 떠 있고, 그 주변에는 물에 비친 나무 그림자들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과 연못, 구름과 수련이 뒤섞인 화면은 마치 하나의 평면처럼 흐릿하게 보이도록 그려져 있습니다.
당시 모네가 백내장으로 시력을 상실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는 인상주의 미술을 통해 대상의 평면성에 대한 탐구를 꾸준히 이어갔던 작가이기도 합니다. 20세기 초의 현대미술은 인물이나 풍경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대신 평면적으로 그리면서 대상을 추상화해 나가려는 시도로부터 시작되었죠. 이런 이유로 모네의 수련 연작은 현대회화, 특히 추상미술의 출발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3살이 되던 해 도자기 그림 공방의 견습생으로 그림을 시작한 르누아르는, 20대 초반, 파리에서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받기 시작하며 화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이때 모네나 피사로 같은 동료 작가들을 만나면서 인상주의 미술 운동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야외 풍경보다는 카페나 무도회장, 유원지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포착해내거나 사람들의 옷 위에 어른거리는 햇빛의 묘사를 통해 눈부시게 밝은 야외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그림처럼 여성 인물 역시 그가 즐겨 그린 주제였죠.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그림의 주인공은 앙드레라는 여인입니다.
앙드레는 1915년부터 르누아르가 세상을 떠난 1919년까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했던 모델입니다. 르누아르가 사망하기 1년 전에 제작된 이 작품은 여성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고전적인 기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대상을 포착해 그린 듯한 자유분방한 필치에서는 여전히 인상주의의 영향이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독서)›

 

 

섹션 3 - 피카소, 미로, 달리: 파리의 스페인 화가들과 에콜 드 파리

피카소와 후안 미로,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스페인 출신의 작가들이라는 것이겠죠. 그런데 이들이 서로를 만난 곳은, 흥미롭게도 스페인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였습니다. 1900년, 파리에 정착해 성공한 작가의 반열에 오른 피카소는 미로나 달리에게 일종의 롤모델과도 같은 선배였습니다. 
1920년 미로가 파리를 처음 찾았을 때, 피카소는 미로가 계속 파리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줍니다. 이 만남을 계기로 두 사람은 평생 친구이자 동료로서 관계를 이어나가게 되죠. 6년 뒤인 1926년에는 달리도 피카소를 만나기 위해 파리에 오는데요, 이때 달리에게 피카소를 소개해준 사람도 미로였습니다. 미로는 2년 후 달리에게 초현실주의 작가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줍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초현실주의 거장, 달리의 등장을 가능케 한 사람이 바로 미로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스페인 출신의 이 세 화가가 파리에서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던 모습은 20세기 초 파리의 상황을 잘 드러내 주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국제적인 미술 중심지였던 파리에 외국인 미술가들이 몰려들면서 이들을 지칭하는 ‘에콜 드 파리’라는 명칭이 생길 정도였는데요, 이들 외국인 미술가들은 각자의 고유한 문화적 전통과 파리에서 접한 새로운 미술 경향을 결합하면서 ‘에콜 드 파리’ 스타일까지 등장시켰죠.
피카소와 미로, 달리는 각자의 고유한 에콜 드 파리 스타일을 만들어냈지만, 이번 전시에 출품된 세 사람의 작품에서는 몇 가지 공통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과 피카소의 도자는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입니다. 사람, 새, 별이 있는 밤의 풍경을 추상화한 미로의 ‹회화›는 사람과 새를 주제로 한 피카소의 도자 작품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 ‹켄타우로스 가족›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말의 모양을 한 켄타우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종족입니다. 달리는 이 그림에서 켄타우로스를 캥거루처럼 아기를 넣는 주머니, 즉 육아낭을 가진 종족으로 설정합니다. 켄타우로스는 이 구멍을 통해 아이를 자유롭게 넣었다 뺄 수 있는 종족으로 그려지고 있죠. 달리의 고향인 스페인 카탈루냐 해변가를 배경으로 한 이 그림에는, 세 명의 성인 켄타우로스와 세 아이가 등장하는데요,


힘차게 뻗은 팔과 다리, 휘어진 허리 같은 이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화면의 네 모서리를 사선으로 분할한 듯한 선명한 대각선 구도를 만들어냅니다. 어머니의 배에서 나오는 두 아이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우선, 화면 아래쪽의 아이는 주머니에서 나오는 순간에도 어머니를 향해 손을 뻗고 있습니다. 반면, 화면 위쪽의 아이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고 있죠. 위로 뻗친 아이의 두 팔은 아버지에게 안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버지의 머리를 밀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두 팔로 안아 들고 있는 또 한 명의 아이는, 마치 자궁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듯, 어머니의 입으로 손을 뻗고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달리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강박증과 성적 환상에 대한 해답을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찾아냈는데요, 당시 그는,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분리되는 순간 최초의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는 정신분석학 이론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자궁과 유사하면서도 언제든지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육아낭을 가진 켄타우로스 종족을 부러워했습니다. 이 그림은 꿈과 무의식, 때로는 정신 착란의 상태에서 본 기이한 풍경들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달리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호안 미로 ‹회화›

살바도르 달리와 마찬가지로, 호안 미로도 1920년대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미술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하지만 달리와 미로의 그림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다르죠.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이 대상을 고전적인 방식으로 그렸다면, 미로는 보다 조형적인 자신만의 초현실주의 작품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1953년에 발표된 이 그림에는, 별과 새, 사람과 깃발 같은 형태들이 마치 도식이나 기호처럼 단순화된 형태로 표현돼 있습니다.
인물과 동물, 자연과 우주의 시공간이 공존하는 밤의 풍경을 보여주는 이 작품처럼, 미로의 그림은 언뜻 보면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단순하고 즉흥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미로는 붓을 들기 전, 아이디어를 구상하는데 오랜 시간을 할애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손이 이끄는 대로 붓을 움직여 선을 그리고 형태를 완성해나갔죠. 이렇게 우연성과 즉흥성에 기반한 미로의 초현실주의 작품은, 1920년 처음 파리에 발을 내디뎠던 무명의 화가를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게 됩니다.

 

섹션 4 - 피카소와 샤갈 :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낸 거장들

마르크 샤갈은 1910년, 고향 러시아를 떠나 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 작은 작업실을 마련했습니다. 이 시기는, 파리에서는 입체주의 미술의 영향력이 절정을 구가하던 시기였죠. 고향의 풍경과 사람들을 꾸준히 그려온 샤갈 역시 입체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아들여 화면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분할하는 구성법을 시도했습니다. 입체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피카소를 직접 만나고 싶어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들의 만남은 쉽게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1914년 러시아로 돌아간 샤갈은, 피카소를 만나지 못한 채 파리를 떠나게 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피카소를 생각하며›라는 작품을 그리기까지 했죠. 이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에 체류하던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샤갈은 피카소에게 편지를 보내고, 이 편지 덕에 전쟁이 끝난 1940년대 말, 두 거장은 드디어 조우하게 됩니다. 30년이나 기다려온 만남이었던 셈이죠.
이들이 조우한 장소는, 피카소가 도자기를 제작하던 남프랑스의 발로리스였는데요, 이 시기, 피카소는 도자기 제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기 때문에 샤갈이 직접 발로리스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마두라 공방에서 함께 도자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샤갈의 회화에는 염소나 물고기 같은 동물들, 꽃과 정물,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풍경들이 가득한데요, 이런 주제들을 피카소의 도자에서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 자연이 함께하는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이야말로 피카소와 샤갈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가치였기 때문일 겁니다.

 

마르크 샤갈 ‹결혼 꽃다발›

파란빛이 감도는 화면의 정중앙에, 붉은 꽃다발이 한 아름 담긴 꽃병이 놓여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누군가의 결혼을 축하하는 꽃다발이겠죠. 꽃병 오른쪽에는 결혼 피로연에 사용된 듯한 와인병과 과일 바구니도 보입니다. 왼쪽에는 이 결혼의 주인공인 한 쌍의 연인이 서로에게 기댄 채 흐릿하게 보이는 마을을 배경으로 서있습니다. 꽃과 연인이라는 주제가 샤갈의 그림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시점은, 아내이자 첫사랑이었던 벨라와 결혼하던 1915년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벨라에게 꽃을 받았던 가난한 화가, 샤갈에게 꽃은 행복하게 빛나는 삶을 의미했죠.


하지만 사랑과 꿈, 환상의 세계를 다루었던 샤갈의 인생은 그다지 평탄치 못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겪어야 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피신까지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1944년에는 그의 부인이자 뮤즈였던 벨라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전쟁이 끝난 후 파리로 돌아온 샤갈은 이런 수많은 고난을 뒤로한 채 다시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삶의 순간을 노래하는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프랑스 남부 니스 근처의 생폴 드 방스 지역에 정착한 뒤로는, 점점 더 크고 화려한 꽃들을 화면에 담아냅니다. 눈부신 남프랑스의 햇살 아래 빛나고 있는 이 결혼 꽃다발은 말년에 되찾은 새로운 사랑과 행복의 순간을 담아낸 샤갈의 대표작입니다.

 

이번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특별전 전시품의 대부분은 사진과 같이 피카소의 도자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카소의 도자

피카소는 파리에 온 첫해였던 1900년, 파리에서 고갱의 도자 작품을 처음 본 뒤 도자예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피카소가 직접 도자기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말 남프랑스에 체류하면서부터입니다. 발로리스에 위치한 도자 제작소 마두라 공방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불을 이용해 제작하는 도자예술의 새로움에 매료됐던 건데요, 흙을 빚어 형태를 만드는 조각적인 속성과 도기 위에 그림을 그리고 채색하는 회화적 속성이 결합됐다는 점 또한, 피카소가 도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도자기는 판화처럼, 같은 형태의 도기를 여러 점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피카소는 이런 특성을 이용해 도자 에디션을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1947년부터 1971년 사이, 총 633점의 ‘피카소 도자 에디션’이 만들어졌는데요, 각각의 에디션들은 적게는 25개에서 많게는 500개까지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피카소는 이런 작업을 통해 회화, 조각, 판화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형적 실험을 도자에까지 이어나가게 됩니다. ‘피카소 에디션’을 대표하는 주요 작품들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도자예술이 지닌 다양성과 그의 예술이 보여주는 확장성을 동시에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이번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전시회 작품의 대부분은 피카소의 도자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존 피카소 전시회에서 접했던 도자와는컬렉션에 다소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만 90여점의 방대한 작품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파블로 피카소 ‹이젤 앞의 자클린› (왼쪽)

1953년 마두라 공방에서 일하던 자클린 로크와 연인 사이가 된 피카소는 1973년 작고하던 해까지 그녀와 여생을 함께했습니다.
이십 년간, 삶의 동반자였던 자클린의 얼굴을 피카소는 400여 점에 가까운 초상화로 남겼을 뿐 아니라, 보시는 것처럼 도자 작품에도 새겨 넣었습니다. 도자 속의 자클린은 우아하게 묘사되기도 하고, 얼굴은 옆모습으로, 눈은 정면으로 그려 조합한 입체주의 스타일로 재현되기도 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여인›

피카소가 도자를 제작하는 방식은 다양했는데요,
앞서 보신 접시 작품들은 석고틀 위에 그림을 새기고 찍어내는 판화 방식의 작품인 반면, 지금 보시는 화병처럼 입체적인 작품들도 많았습니다. 피카소는 손잡이가 있는 주전자나 굴곡이 있는 화병 같은 전통적인 도자기를 여성의 모습으로 변형한 도자 작품들도 제작했는데요, 도기의 몸통에는 여성의 얼굴이나 몸을 그려 넣고 주전자의 손잡이는 길게 땋아 내린 여성의 머리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제작 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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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투우› 연작

피카소의 ‹투우› 연작은 8점으로 구성된 접시 세트입니다.
붉은 흙으로 만든 접시에 피카소가 제작한 틀로 기본적인 투우 장면들을 찍어낸 후 검정색 화장토로 채색해 제작한 작품이죠. 투우의 개막식 행렬을 시작으로, 경기가 진행되는 과정과 소를 찌르거나 일격을 가하는 다양한 기술에 이르기까지 투우의 장면들이 도자 위에 생생하게 재현돼 있는데요, 투우는 스페인의 국기(國技)라고 할 만큼 스페인을 대표하는 전통 기예죠.


입체주의를 필두로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한 작가였지만 고국의 문화적 전통을 잊지 않았던 피카소는, 도자뿐 아니라 회화, 조각, 판화 등 작품 전반에 있어 투우를 작품의 주요한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남프랑스에 위치한 마두라 공방에서 작업하는 동안, 그 지역에서 열린 투우 경기를 자주 관람하곤 했던 것도, 피카소의 도자 작품에 투우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파블로 피카소 ‹큰 새와 검은 얼굴›

피카소는 비둘기와 카나리아를 집에서 키울 정도로 새를 좋아했습니다.
1946년에는 프랑스의 앙티브 미술관에서 작업하는 동안 미술관 구석에서 상처 입은 올빼미를 발견해 치료해 준 뒤 파리로 데려가 키웠을 정도였죠. 올빼미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상징이자 용기와 지성의 상징이기도 한데요, 그리스 신화에 관심이 많았던 피카소에게 올빼미가 지닌 이런 상징성은 무척 흥미로웠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도자 작품에는 올빼미와 부엉이가 꽤 자주 등장합니다. 이 화병 역시 피카소의 손을 거쳐 올빼미를 닮은 새로 탈바꿈했는데요, 넓은 원통형의 밑굽은 새의 발이 되었고, 앞쪽으로 살짝 구부러진 입구는 쭉 뻗은 새의 목으로 변신했습니다. 화병 옆에 붙은 두 개의 손잡이는 두 개의 팔이 되었죠.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부리와 눈, 깃털과 날개, 다리를 칠하고 배의 앞쪽에는 검은 마름모꼴을 그린 뒤, 그 안에 눈과 콧대와 입술의 형태를 철사로 긁은 듯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단순한 얼굴은, 미로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조형적 형태와도 꽤 닮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원 없이 파블로 피카소의 얼굴 도자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이 외에도 피카소의 연작들이...

 

파블로 피카소 ‹검은 얼굴›


피카소는 유년 시절부터 말년까지,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제작한 작품은 초상화였습니다. 그에게 가장 흥미로운 탐구의 대상이 바로 인물이었기 때문인데요, 그의 도자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역시 사람의 얼굴입니다. 동일한 모티프를 여러 장르와 작품에 반복해서 그리는 작업은, 그에게는 하나의 대상을 다양하게 확장해 가는 실험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도자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얼굴도 재료와 기법에 따라 무한하게 확장됐는데요, 석고 틀 위에 백토를 올린 뒤 찍어서 완성하기도 했고 이 작품처럼, 백토 위에 검은 화장토를 채색한 뒤 나이프로 얼굴선을 새기고 그 위에 유약을 칠하는 기법을 사용해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러게 이렇게 끝도 없이 피카소의 도자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파블로 피카소 ‹염소 머리›

염소는 피카소에게 매우 특별한 동물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에 염소가 처음 등장한 건 파리로 건너오기 전이었던 1890년대 말이었는데요,
당시 피카소는 친구의 집 방목장에 있던 비쩍 마른 염소를 마치 해부하듯 자세히 데생했습니다.
이후 1950년대부터 회화와 조각, 도자 작품에 다시 염소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본래는 야생에서 살았지만 점차 가축화되면서 인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피카소는 염소를 선사시대부터 시작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기기도 했는데요, 발로리스에 머물렀던 1950년에는 등신대 크기의 염소 조각을 제작했으며, 1952년에는 자신의 도자 전시회 포스터를 염소 이미지로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염소는 점차 피카소를 상징하는 동물이 되어갑니다. 그래서였을까요. 1956년 말, 아내였던 자클린은 피카소에게 꼬마 염소 한 마리를 선물합니다.
피카소는 이 염소에 에스메랄다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직접 정성을 들여 키웠다고 합니다.

 

| 조금 아쉬운 부분...

아마도 이 이상의 엄청난 회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7점의 회화만 나온 부분은 다소 아쉬운 점입니다. 다음에는 소문에 도는 이건희 회장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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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사항 : 엄청난 주말 교통

토요일 오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랜드 방면 입구부터 미술관까지 무려 1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저는 이번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전시회를 토요일 오후 4시에 예약하고 사당에서 1시 30분에 출발했는데, 주차하고 전시장 도착을 3시 30분에 했습니다. 걸어가는 것보다 더 느리게 갔는데요. 주말에 자차로 방문한다면 상당히 여유있게 출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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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늘부터 열리는 고 이건희 회장 특별전 3탄입니다. 특히 MMCA 전시로는 작년말 '한국미술명작' 전에 이은 두 번째 전시회입니다. 또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회와도 이어지는 전시회입니다.

 

|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예매 및 오디오 가이드

이번 전시회 역시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이 가능합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2주 전 부터 예매가 가능합니다. 저는 운 좋게도 예매 오픈일에 정보를 알게 되어서 바로 예약게 성공하고 오늘 다녀왔네요.

국립현대미술고나 이건의 컬렉션 특별전 오디오 가이드는 무료로 제공됩니다. 별도 앱 다운로드도 없이 모바일웹에서도 득기가 가능하네요.

 

 

이중섭 특별전 들어가는 길...

별도 티켓도 없습니다. 지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에서는 기념 티켓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별도 티켓없이 사전 예약한 QR 코드 승인만으로 입장하게 되네요.

 

| 이번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전시회에 대한 소개입니다.

고 이건희 회장이 기중한 작품 중 이중섭 작품 80여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기소장품 10점을 모아 90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기쁨이...

 

 

| 이중섭 이건희 특별전 관람팁

이번 전시회 또한 한 시간 단위로 예약자대상 입장이 진행되는데요. 바로 앞에서 입장하기 보다는 입장시간 조금 지나 입장하시면 좀 더 편한하게 관람이 가능합니다. 아래 사진 왼쪽은 정각에 입장한 공간, 오른쪽은 입장후 30분 후에 다시온 공간입니다. 이 시간부터 관람하시면 쾌적하게 이중섭 전시회 관람이 가능합니다.

 

전시회 시작은 그의 초기 드로잉 작품으로 시작됩니다. 이중섭 세계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들이라고 할까요

약간의 미완의 작품들이지만, 그의 작품의 특징은 그데로 살아 있습니다.

| 초기드로잉

1950년 12월 한국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피난을 떠날 때 이중섭은 자신이 그렸던 대다수의 그림을 고향에 두고 왔습니다.
‘나 대신 보시라’며 어머니에게 남겼다는 그 그림들은 현재 확인할 길이 없지만, 1940년대에 남긴 몇 점의 드로잉을 통해 그 시기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 엽서화

1940년대, 이중섭에게 관제 엽서는 또 하나의 캔버스였습니다.
9센티미터 곱하기 14센티미터 규격의 이 작은 화면 위에 이중섭은 수많은 그림을 그렸는데요, 엽서의 수신인은 훗날 그의 아내가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였습니다. 프랑스 유학을 꿈꾸던 그는 마사코에게 보들레르, 발레리, 릴케, 베를렌느 같은 시인들의 시를 외워서 들려주거나 정결하게 베껴 써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40년부터 43년까지는 꾸준히 그림엽서를 보내는데요,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엽서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엽서화는 총 88점 그중, 국립현대미술관이 이건희 컬렉션으로 소장하게 된 작품은 40여 점에 이르는데요, 이중섭의 학창 시절 작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지금, 이 작은 엽서화들은 1940년대 그의 작품 경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그림들입니다. 또한, 주소나 발신인 소인 등을 통해 당시 그가 거처하던 곳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작가 연구에 유용한 자료가 됩니다.

이렇게 이건희 회장이 수집한 40여점의 이중섭 엽서화가 한 장 한장 전시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 메시지와 함께 보낸 그의 그림들... 현재 그의 작품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 세사람

그 중의 하나가 <세 사람>이라는 작품입니다. 엎드리고, 쪼그리고, 드러누운 자세의 세 인물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그림은, 1942년에서 45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두꺼운 종이 위에 무수히 겹쳐진 연필 자국은 일제 강점 말기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하듯, 삶의 피로와 무력감, 허무감을 드러냅니다.
언뜻 보면 꿈을 잃은 청년들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들의 처지를 묘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화면에 길게 가로누운 소년의 왼손과 오른발은 유독 짙은 선으로 강조돼 있습니다. 암울한 현실에 맞서려는 강한 의지를 이렇게 힘찬 선긋기로 표현해낸 것입니다.

 

조금은 샤갈의 느낌이 나오는 이중섭의 작품들...

| 엽서화 2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은 이중섭이 마사코 여사에게 보낸 첫 번째 엽서입니다.
1940년 12월 25일 자 소인이 찍혀 있는 이 엽서의 한 가운데에는 소의 머리에 물고기 꼬리를 한 동물이 물 위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동물 위에는 두 사람이 올라타 있는데요, 소의 머리 위에 뿔처럼 튀어나온 귀를 붙잡은 채 뒤를 돌아보고 있는 소년과, 물고기 꼬리를 두 다리로 휘감은 채 길게 팔을 뻗으면서 소년을 뒤따르고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물에서 날아오른 이 동물은 물가 왼쪽에 자리한 오리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리의 옆에는, 한쪽 팔을 젖힌 채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든 사람이 그려져 있죠.물고기와 소를 결합한 동물의 형상은 신화적 이야기를, 오리와 물가에 핀 연꽃은 고려시대의 청자를 각각 연상케 하는 이 그림에서는 40년대 초반 이중섭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초현실적 경향이 엿보입니다. 
이 엽서화를 시작으로, 이중섭은 41년 한 해 동안, 75장의 엽서화를 보냅니다. 현재 남아 있는 엽서화 가운데 80퍼센트에 해당하는 분량이라는 점에서, 이 시기, 그가 엄청난 양의 습작을 하며 기량을 닦아 나갔음을 짐작케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 이중섭 전시회 두 번째 공간입니다.

 

 

이중섭 회화 : 아이들

| 다섯 아이와 끈

이중섭은 발가벗은 아이들의 걱정 없는 표정을 단순한 선과 형태로 표현하는 것을 즐겼는데요, 이 작품은 이런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그린 작품 가운데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그림 속에 보이는 다섯 명의 아이들은 뒷모습을 보이거나 앉아 있거나
앞으로 구부리는 등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죠. 이 아이들은 줄을 통해 서로 연결돼 있는데요, 자세히 보시면, 아이들의 신체 일부 역시 어떤 식으로든 다른 아이들과 접촉하며 얽혀 있습니다.
어린이와 동물을 그린 이중섭의 작품 대부분에는 이런 특징이 일관적으로 드러나는데요, 이런 특징은 심리적인 ‘분리 불안’의 징후를 나타낸다고 해석되기도 합니다.

탁월한 데생력과 섬세한 배경처리, 확신에 찬 선들의 리듬감이 잘 드러나 있는 이 작품은, 특히 마무리를 연필로 했다는 점에서도 독특합니다. 앞서 ‹세 사람›에서도 보셨듯이 이중섭에게 연필은 매우 중요한 미술 재료였습니다.
밑그림을 그리거나 스케치를 하는 용도가 아니라, 섬세한 묘사와 형태를 강조하는 용도로 연필을 사용했던 것이죠.
또한, 연필로 눌러 윤곽선을 강조하는 기법은 이후에 제작된 은지화 기법과도 연결됩니다. 이중섭의 실험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연필의 사용은 무척 흥미로운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아이들

이중섭이 아이들을 모티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46년부터였습니다.
원산의 한 고아원에서 잠시 미술을 가르치던 시기였으며, 갓 태어난 그의 첫아들이 디프테리아로 사망한 때이기도 했죠.
세상을 떠난 아들의 무덤에 이중섭은 온갖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 그려진 그림을 함께 묻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의 작품에서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 빈번히 등장합니다.
특히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라는 도상을 바탕으로 5점의 작품이 남겨져 있는데요, 그 가운데 두 점이 지금 보고 계시는 작품들입니다. 화면에는 두 아이가 위아래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긴 줄이 이 두 아이를 연결해주고 있죠.
줄을 잡고 있는 또 다른 생명체도 눈에 띄는데요. 줄의 양 끝에는 물고기가 매달려 있고, 화면 가운데에는 큰 꽃게가 앞발로 줄을 당기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모티브가 된 것은, 1951년 가족과 함께했던 제주도 피난 생활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서 딴 해초와 게를 주식으로 삼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이 시절은 이중섭과 가족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남았습니다. 이렇듯 아이들과 함께한 시절을 회상하고 있는 두 작품 가운데, 왼쪽 그림은 잉크 드로잉과 유채로 그림을 마무리한 뒤, 불투명한 색조로 다시 한번 덧바르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덕분에 마치 돌에 음각으로 새겨진 듯한 느낌을 받게 하죠. 원색이 조금 더 드러나는 오른쪽 작품은, 1954년 일본에 있던 큰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에 그려져 있던 그림입니다.

 

 

| 가족과 첫눈

이 작품은 이중섭이 피난 시절, 제주도에 정착해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이중섭과 그의 가족들은 머물 곳이 없어서 외양간 신세를 지기도 했다는데요, 이후 서귀포의 한 초가집에 정착하면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제주도 피난 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 이중섭은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드로잉과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중 ‹가족과 첫눈›은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 속에는 남녀노소가 자신들보다 더 큰 새와 물고기 사이에서 함께 첫눈을 맞으며 하릴없이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요, 사람과 새, 물고기의 크기가 현실 세계와는 다르게 표현됐기 때문인지, 그림은 무척 초현실적인 느낌을 풍깁니다.
실제로 이중섭은 일본 유학 시절, 인간과 동물이 어우러진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품을 다수 그렸는데요, 이 작품은 1972년 현대화랑에서 열린 이중섭 개인전에 출품된 후 거의 전시된 적이 없다가 이번 기증을 통해 다시 세상에 선보이게 됐습니다.

 

| 새

두 마리의 닭이 격렬하게 싸우며 역동적으로 얽혀 있는 모습을 담고 있는 ‹투계›는 이중섭의 대표작입니다.
화면의 오른쪽 위에서는 붉은 닭이 날아올랐다가 방향을 선회하며 내려오고 있습니다. 왼쪽 아래의 푸른 닭은 바닥에 풀썩 주저앉은 채 궁지에 몰려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부리를 쫙 열고 소리를 꽥 지르면서 필사적으로 응수하고 있죠. 유려한 선의 흐름과 거친 표면 효과가 서로 대비되면서 강한 운동감과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그림인데요, 작가는 흥미롭게도 빨강, 노랑, 파랑 등으로 작품의 주된 형상을 그린 다음, 짙은 회색 물감을 화면 전체에 다시 엷게 펴 발랐습니다.
그리고 이 회색 물감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살짝 비치는 닭들의 형상을 따라 넓은 끌과 같은 도구를 이용해 표면을 빠른 속도로 긁듯이 휘저어 놓습니다. 이런 기법을, 그라타주 기법이라고 하는데요, 일필휘지로 그려나간 이런 선들은 이 작품에 강렬한 생동감을 더해주며, 표면에 풍부한 질감을 선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화가는 그림 가장자리에 옅은 회색의 테두리를 둥그렇게 그려 넣음으로써, 이 격렬한 장면을 마치 아련한 과거의 일인 듯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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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와 까치가 있는 풍경

1953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6개월 동안, 이중섭은 통영에 머물며 교사 생활을 합니다.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온 후 생활고에 시달렸던 그에게 통영에서 머물던 이 시기는 이런저런 걱정 없이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평화롭고 소중한 시기였습니다. 특히, 이 시기 그는 통영의 풍경을 담은 꽤 많은 풍경화를 남겼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9점 가운데 하나인 ‹나무와 까치가 있는 풍경›은 제목처럼, 나무 위에 까치가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요, 화면 전면에 자리 잡은 나무의 가지에는 잎이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겨울의 풍경을 그린 듯하지만,
화면 오른쪽 윗부분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녹색 줄무늬의 밭이랑이 펼쳐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통영 시기, 이중섭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 수 있듯이, 왕성한 창작욕으로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며 ‹흰 소›, ‹부부› 같은 대표작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5월에는 유강열, 장윤성과 함께 «3인전»을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갔습니다.

 

| 회화 : 출판미술

이중섭은 작품 활동을 하는 틈틈이, 책 표지나 삽화 같은 출판미술을 제작하기도 했는데요, 표지화 한 점을 제작하기 위해, 같은 도상을 여러 번 그렸다고 합니다. 또한, 표지화를 제작하고 난 뒤에는 비슷한 그림을 그려서 편지와 함께 일본의 아내에게 보내곤 했습니다.

덕분에 비슷한 작품이 여러 점 남아 있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문중섭 대령의 전투를 담은 『저격능선』이라는 수기의
표지화와 관련된 두 작품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고지전을 벌였던 저격능선 전투 이야기를 담은
이 수기의 표지화를 위해, 이중섭은 칼을 든 병사의 모습을 그립니다.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켄타우로스처럼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말의 모습을 한 병사의 칼끝과 온몸에는 여기저기 핏자국들이 선명합니다.
그런데 사실, 전투능선 표지화를 위해 이중섭이 처음 그렸던 것은, 다른 그림이었습니다. 바로, 피 묻은 새가 능선 위를 날고 있는 그림인데요, 군인의 용맹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못한 이 그림은, 2년 뒤였던 1957년 『자유문학』 9월호에 실리게 됩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이중섭의 책 표지화는 총 8점인데요, 표지화나 삽화의 제작은, 생계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화가의 예술 세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날짜가 인쇄되어있는 덕분에, 유사한 도상을 즐겨 그렸던
이중섭의 작품 제작시기를 추정하고 진위여부를 판별하는 데에도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되어줍니다.

 

은지화 ; 너무나도 사랑하는...

은지화는 이중섭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독자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택이 나는 알루미늄 속지에 철필이나 못 등으로 윤곽선을 눌러 그린 다음, 그 위에 물감이나 먹물을 문질러서 완성하는 은지화는 은박지의 광택과 음각선에 묻혀 들어간 짙은 선으로 인해 도자기의 상감기법을 연상케 합니다.
이 독특한 그림은 가족과 헤어져 홀로 피난 생활을 이어가던 이중섭의 궁핍한 환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던 그림에의 열정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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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중섭은 다방이나 술집, 심지어는 길바닥과 쓰레기통에서 담뱃갑을 주워 그 안에 든 은박지를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접히고, 구겨지고 찢어져 있던 종이들을 그대로 살려둠으로써 화면의 우연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은지화의 경우 작품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다소 어두운 공간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또한 화학한응 등으로 작품 오염시 생기기도 했는데요. 확대된 영상을 통해 작은 작품을 디테일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1952년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그리기 시작한 수많은 은지화에는, 주로 가족과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요,
이중섭은 그 가운데 70여 점을 1953년 도쿄에 있는 아내에게 건넸다고 합니다.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대작으로 완성하려고 그려본 스케치이니,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는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아내가 간직하던 은지화들은 1979년 열린 이중섭 작품전에서
엽서화와 함께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됩니다.

 

 

 

 

 

| 가족을 그리는 화가

이 은지화는 꽤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화면 아래쪽을 보시면, 콧수염을 한 화가가 한 손에는 팔레트를, 한 손에는 붓을 든 채 그림을 그리고 있죠.
이 화가는 이중섭 자신입니다. 그런데 화가의 대각선 위쪽에도 콧수염을 한 이중섭이 등장합니다.
그는 아내 마사코 여사와 두 아들과 함께 서로의 몸에 손을 두른 채 하나의 덩어리처럼 엉켜있습니다.
이 단란하고 끈끈한 네 가족의 모습은, 그림 속의 화가 이중섭이 그리고 있는 그림 속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가족의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볼까요?

마사코 여사는 한 손으로는 머리 위의 아들을, 한 손으로는 다리 위에 앉은 이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두 아이는 모두 아버지 이중섭의 목과 어깨로 팔을 뻗어 그를 안고 있고요. 이중섭의 한쪽 손에는 긴 막대기에 매달린 물고기가 보이죠.
이 물고기로 미루어볼 때, 그림 속의 화가 이중섭은, 가족과 함께했던 제주도 피란 시절을 추억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는 지금, 둘째 아들로 보이는 아이의 허벅지 뒷부분을 완성해 가고있는 중이죠. 그런데 이 은지화에서는 원근법을 무시한 채 평면화된 화면으로 인해, 화가 이중섭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캔버스 밖 세계와 그가 그리고 있는 캔버스 속 세계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화면 아래, 이중섭의 오른발 위에 그려진 가로선 하나가 그림 속 그림의 영역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죠.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특별전 '이중섭' 전시회장의 은지화 섹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네요.

다음 전시공간으로 이동합니다.

회화 | 가족

 

춤추는 가족

‹춤추는 가족›은 푸른 공간을 배경으로 나체의 가족이 춤을 추며 원을 이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붓이 아닌 나이프로 면을 표현한 덕분에, 원을 이룬 네 사람은 마치 한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긴 얼굴과 콧수염을 한 이중섭의 모습은 분명히 알아볼 수 있죠. 그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이들은 부인 마사코와 두 아들일 테고요. 이렇게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고 있는 가족의 모습은 앙리 마티스의 대표작, ‹춤›을 연상케 하는데요,
춤추는 가족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 이 그림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그렸던 화가 이중섭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그리움을 담아 작품 제작에 매진했던 그는, 거처를 옮기고 건강이 나빠지는 와중에도 아이들이나 가족을 그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요, 비슷한 도상의 작품이 여럿 남아 있다는 점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춤추는 가족의 모습을 담은 같은 제목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고 있습니다.

 

 

 

편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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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6월, 생활고 때문에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이중섭은 이듬해 3월 9일부터 55년 12월 중순까지 꾸준히 아내에게 그림을 곁들인 편지를 써 보냅니다.
이 편지들 속에는 자신의 애칭이었던 ‘아고리’, 아내의 애칭이었던 ‘천사’ 같은 애정 어린 말들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52년경 이중섭과 함께 범일동에서 생활했던 박고석 작가는 정성을 들여 편지를 쓰던 그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마치 연애편지라도 쓰듯, 몇 번이나 찢어버리면서 다시 쓰고 그림을 꼭 곁들였으며, 봉투를 쓸 때는 굵직한 펜으로 마음에 들 때까지 몇 장이고 글씨를 반복해서 다듬었다고요. 현재 남아 있는 38통의 편지 가운데, 1954년 11월경에 보낸 이 편지는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애정과 화가로서의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쓸 당시, 이중섭은 이듬해 열릴 개인전 준비에 한창이었는데요,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면, 일본에 있는 아내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작업에 매진하고 있었죠.
실제로 이중섭의 많은 대표작은 이 편지를 쓰던 즈음 제작되었는데요,편지에 함께 그려진 그림에서도, 당시 화가가 품었던 기대감과 의욕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중섭과 가족간의 편지는 예전 제주도 여행에서 방문한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서 접했었는데요. 이곳에서 또 다른 편지를 보게 되었네요. 사랑과 애정이 가득한 이런 편지를 보내고 받을때의 행복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번 이건희 틀별전 : 이중섭 전시회의 마지막 공간은 그의 연보와 평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1956년 41세 나이로 간장염으로 서울 적십자 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사망... T.T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2탄인 이중섭 전시회였습니다. 

과련 3탄은 어떤 작가 또는 소재를 가지고 찾아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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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실 포스팅에 이어 2실 소개진행합니다.

1실 관람이 끝나고 2실로 이동하는 중앙공간 입니다, 이 공간에는 4월~5월 기간에 전시되었던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큰 현수막으로 걸려 있습니다. 1실 관람에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 것 같은데요. 2실도 대략 비슷한 시간을 생각하세요.

 

 

|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

어 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2실 공간에서는 총 4개로 나누어 수집품이 소개됩니다.

인강과 자연 / 자연을 활용하는 지게 / 생각을 전달하는 지혜 / 인간의 변화...

 

황소 / 이중섭(1916 ~1956), 1950년대, 종이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여기부터 수집품의 이모저모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두 점의 황소 그림에서 자연을 표현하는 두 가지 방식인 구상과 추상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중섭의 <황소>가 먼저 여러분을 맞이합니다. 그림 속 황소는 붉은 바탕 앞에서 울음을 토해내듯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커다란 눈망울에 화가의 순수한 마음이 비쳐 보이는 것 같지요. 이중섭은 피폐한 세상을 우직하게 살아내는 황소를 사랑해서 여러 차례 그렸습니다. 화가는 소의 주름과 근육의 결을 드러내듯 선을 힘차게 그었습니다. 구상 회화는 대상의 형태를 닮게 모방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한눈에 황소라고 알아볼 수 있도록 애정을 담아서 그린 것이지요.

 

이번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에서 국내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부분도 상당한 매력포인트가 아닐까...

소와 여인 / 김기창(1914 ~ 2001), 1960년대 초, 종이에 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소와 여인>은 동양화가인 운보 김기창이 그린 반추상 회화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소도 여인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림 아래쪽을 유심히 보세요. 검은 선으로 소의 얼굴을 살짝 암시해 놓았습니다. 구긴 종이에 물감을 묻혀서 찍은 흔적이 쇠털 같기도 하고, 커다란 황토색 면은 황소의 듬직한 자태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추상화된 그림에서 소와 여인을 보고 화가가 느낀 마음이 곧바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는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자연을 예찬한 작품들이 모여 있습니다. 발걸음을 늦추고 하나씩 천천히 감상해보세요.

 

| 수집품 하나 :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

 

구담봉 / 윤제홍(1764-1845 이후), 조선 19세기 전반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단양 구담봉은 남한강 가에 솟아 있는 높이 338m의 바위입니다. 주위에 봉우리가 이어져 있으나 문인화가 윤제홍은 다섯 개의 봉우리로 구담봉을 표현했습니다. 화가가 화면 왼쪽에 "구담봉은 웅장하고 막힘이 없다. 신기한 절경 중에서도 특별하고 기이하다”라고 적은 것처럼 신선이 사는 곳처럼 신비롭게 묘사했습니다.

정사신이 참석한 계회도를 모은 병풍 / 작가 모름, 조선 1583-1587년, 비단에 먹, 보물, 국립중앙박물관

그림 여섯 장이 이어진 《정사신이 참석한 계회도를 모은 병풍》이 펼쳐져 있습니다. 계모임 그림이라서 계회도라고 합니다. 요새 사람들 모임 참 좋아하지요. 조선시대에도 그랬습니다. 과거 합격 동기끼리도 모이고, 같은 관청 동료끼리도 모여서 술을 나누고 시 짓는 걸 참 좋아했습니다. 단체 사진 남기듯이 계회도를 주문해서 나눠 가지는 것도 유행이었죠. 계회도는 형식이 있습니다. 제일 위에 무슨무슨 계회도라고 제목을 달고, 가운데에 모임 장면을 그림에 담습니다. 아래에는 참석자 명단을 줄줄이 써 놓지요. 친목을 다지는 그림이라서 그렇습니다.
장면마다 산수풍경이 다른데요, 서로 다른 장소에서 모였기 때문입니다. 두 장면을 같이 보실까요?
가장 오른쪽의 첫 번째 그림은 <괴원장방계회도>입니다. 괴원은 외교 문서를 담당하는 승문원의 다른 이름입니다. 정사신의 첫 근무지였던 승문원 동료들이 한강변에 모였습니다. 사람은 누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작게 그렸는데, 한강의 물과 강 건너 산은 시원하게 열려 있습니다. 한강은 한양에서 가깝고 경관이 아름다워서 계모임 장소로 사랑받았죠.

가장 왼쪽 그림은 <미원계회도>입니다. 미원은 사간원으로, 임금이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보필하는 관청입니다. 사간원은 경복궁 동쪽,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앞에 있었습니다. 그림 속 우뚝 솟은 산이 바로 한양의 상징 북악산입니다. 도시
가까이에 자연이 펼쳐진 서울의 매력은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합니다.
누구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보내는 시간을 꿈꿉니다.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하면 그 즐거움은 갑절이 되겠죠.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렸던 추억이 조선시대 계회도에 남아있습니다.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현대인의 마음도 마찬가지겠지요.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여기부터는 한국 근현대화가의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공간, 소위 이름 조금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들을 한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

 

웅혼하게 세상을 바라보다 / 장승업(1843-1897), 조선 19세기 후반,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정사신이 참석한 계회도를 모은 병풍 자연은 인간에게 어머니 같은 공간이지만, 맨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자연에서 느끼는 긴장감은 많은 예술의 밑거름이 됩니다. 가장 오른쪽에 걸린 <온 세상을 웅혼하게 바라보다>는 조선 말기의 대가 장승업의 작품입니다. 불쑥 솟아오른 바위에서 매가 날개를 쫙 펼치고 있습니다. 눈매도 발톱도 정말 날카롭네요. 바위 그늘에는 토끼 한 마리가 매의 시선을 피해서 황급히 달아나고 있습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팽팽합니다. 제왕의 위엄 앞에서 소인배는 움츠릴 뿐이라는 의미를 자연의 한 순간에 비유한 그림이지요.

 

산정도 / 박노수(1927~2013), 1960년, 종이에 수묵채색, 국립현대미술관

거대한 바위산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오른쪽 하늘에 초승달이 떠올랐습니다. 달빛이 비친 듯, 바위에는 노란 빛이 어렸습니다. 어디선가 말 달려온 여인이 이 밤의 정적을 깨트립니다. 맨몸으로 푸른 말을 타고 채찍을 휘두르고 있네요. 커다란 바윗돌이 앞에 있어도 거리낌 없이 맹렬하게 앞으로, 앞으로 달려갑니다. 화면 가득한 청록색과 푸른색은 어딘지 모를 신비한 세계로 안내하는 것 같습니다.
제목의 ‘산정’은 산의 정령, 산도깨비를 뜻합니다. 생명의 원천인 천지의 기운을 인간 모습의 정령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자연의 끝없는 생명력이 한 폭의 대작에 담겼습니다.


자기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지만, 이번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은 회화에 집중된 전시라고 생각됩니다.

 


항아리들과 독특한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

 

홍매 / 강요배(1952년생), 2005년, 캔버스에 아크릴, 국립현대미술관

안쪽의 그림은 강요배의 <홍매>입니다. 화가의 심리를 표현한 추상화 같은 풍경화입니다. 캔버스에 겹겹이 쌓아올린 물감의 질감과 흐릿하고 짧은 선에서 매화나무 줄기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물감은 수수한 색을 써서 거칠거칠한 질감이 먼저 느껴집니다. 조금씩 찍은 붉은 물감에서 매화꽃 향기가 은은하게 풍기는 것 같습니다. 대상의 윤곽선이 허물어진 대신, 깊이감과 섬세한 맛이 함께 살아났습니다. <홍매>의 반추상 표현과 <분청사기 조화 모란무늬 항아리>는 묘하게 닮았습니다. 현대 미술과 전통 공예의 만남, 낯설지만 서로 통하는 예술의 세계입니다.

 

분청사기 조화 모란무늬 항아리 / 조선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 국립중앙박물관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에 <분청사기 조화 모란무늬 항아리>가 있습니다. 귀가 네 개 달린 큼직한 항아리입니다. '조화'는 백토 바른 표면을 선으로 긁어 그리는 기법을 말합니다. 분청사기의 갈색 바탕흙과 정돈되지 않은 흰색 붓자국 위로 무늬를 긁어내기 때문에 여러 겹의 깊이감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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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고 빠른 선으로 긁어낸 표현법인데, 현대적이라고들 많이 말합니다. 이 항아리는 표면이 정말 거칠거칠합니다. 날카로운 선으로 그린 꽃무늬는 사실 모란꽃인지 잘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백토를 휘둘러 바른 흔적과 자유로운 선에서,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백자 청화 구름 용무늬 항아리 / 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참고로 용은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령한 동물로 일반인들은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니비 / 나비 群蝶圖, 남계우(1811-1890),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사랑해 웹 사업을 유지하고 있고 오후 7일 봄이 시작되면 나비가 찾아옵니다. 나비 그림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좋은 의미를 지녔습니다. 나비 '접蝶'과 노인 '질'의 중국어 발음이 모두 '디에 (dié)'여서 나비 그림으로 장수를 축원합니다. 19세기 문인화가 남계우는 나비를 관찰해서 종류와 암수를 알아볼 수 있도록 세밀하게 그렸습니다.

 

 

이번 이건희 특별전 4차 전시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불국설경

 

겨울은 고요한 계절입니다. 소복하게 쌓인 눈 속에 소리마저 묻혀버리면 새하얀 별세상이 펼쳐집니다.
박대성의 <불국설경>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눈 덮인 소나무들만 저마다 가지를 늘어뜨리며 겨울의 고요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1995년 가을, 뉴욕에서 귀국한 박대성은 경주로 내려가 1년간 불국사 손님방에 머물며 불국사 연작을 선보였습니다. 마침 그해 겨울 경주에는 7년 만에 눈이 내렸고, 박대성은 불국사의 설경을 고즈넉한 풍경으로 그렸습니다.

불국설경 / 박대성(1945년생), 1996년, 종이에 수묵채색, 국립현대미술관

그림 왼쪽 윗부분에는 불국사에서 받은 감동을 한글 고체古體로 적어놓았습니다.


불국설경 관람을 마치고 옆 방으로 이동합니다.

 

해학반도도 병풍 /작가 모름,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자연은 늘 변화하지만 짧은 시간을 살다 가는 인간의 눈에는 영원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병풍은 바닷가 절벽에서 자라난 복숭아와 학 무리를 그린 것으로 십장생도에서 파생된 장식 그림입니다. 반도蟠桃는 삼천 년에 한번 열매를 맺으며, 한 알을 먹으면 수명이 삼천 년 늘어난다고 하는 복숭아입니다. 해가 떠올라 불그스름하게 물든 대기 속에 신선의 세계처럼 환상적인 경치가 펼쳐져 있습니다.

 

작품 / 김흥수(1919~2014), 1970년대,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붉은색과 녹색 계통 물감이 번지고 서로 스며들면서 생명력을 표출하는 작품입니다. 김흥수는 추상과 구상을 오가며 실험적인 작품을 남긴 화가입니다. 구상과 비구상, 한국화와 서양화, 음과 양 등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함께 존재하는 작업을 했는데, 이 <작품>은 두 가지 개념이 양립하는 시기 에 제작한 작품입니다.

 

구리선으로 작업한 정광호의 나뭇잎 어디서 이런작품을 본적이 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천경자 화백의 만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여성 작가로 기존 그림과 다소 다른 것 같지만, 색감은...

 

흙을 다루는 지혜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는 문명의 조건입니다. 인간은 변화무쌍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을 탐구하고 인간에게 유리하게 활용했습니다. 여기 토기부터 도기, 청자, 자기로 이어진흙 그릇의 수천 년 역사가 한눈에 펼쳐집니다.
윗줄 제일 왼쪽에는 반질반질하게 문질러 만든 <붉은간토기 항아리>가 있습니다. 토기 만들기는 최초의 화학 기술이자 혁신이었습니다. 흙과 물로 빚은 그릇을 불에 구우면 단단해진다는 것을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오랜 경험으로 터득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닥불을 피웠지만, 나중엔 경사면에 가마를 지어서 물이 스며들지 않는 단단한 도기를 구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끓이는 조리법도, 물기 있는 음식물 보관도 훨씬 편해졌지요. 생활의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윗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그릇인 <긴 목 항아리>를 보세요. 가마 속에 날리는 잿가루가 우연히 그릇 표면에 녹아내리면 반짝이는 막이 생깁니다. 인간은 이 현상을 연구해서 유약을 만들어냈습니다. 재료 배합과 불 때기를 섬세하게 조율하면 옥처럼 고운 그릇을 만들 수 있습니다. 청자의 탄생입니다.

더 아름답고 더 단단한 그릇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은 마침내 자기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자기 흙은 고령토에 장석과 석영을 섞어 1300도의 고온에도 견디도록 특별히 만든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백자 만들기 좋은 흙을 찾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전국을 조사할 정도로 힘을 기울였지요. 도자기 만들기는 과거의 첨단 기술이자 예술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첨단 공학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권진규 / 손

박수근, 이중섭과 더불어 근대 3대 화가중 한명인 권진규의 작품

권진규는 몰라도 얼굴이라는 테라코타 작품을 모두들 알고 있을 듯...

 

생각하는 여인 / 최종태(1932년생), 1992년, 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인간은 모르는 것이 참 많습니다. 자연은 경이로우면서도 두렵고, 죽음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끝이지요.
인간은 오래전부터 삶의 본질을 사유해 왔습니다. 최종태가 만든 <생각하는 여인>은 반가사유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왜 모든 것은 병들고 죽을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유한한 생의 의미를 고뇌한 석가모니의 말씀은 글로 남아 지혜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 생각을 전달하는 지혜

오늘 소개하는 2관의 세번째 전시공간입니다. 우리나라 불교예술의 정리

 

보살과 부처 불상

 

 

불설아미타경

여러 불교서적들과 불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불화의 경우 설명 없이 감상하기 참 어려운데, 하단 설명과 함께 감상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감상이 된다는...

 

대광방불 화엄경

 

바로자나불, 문수보실, 아수라... 등등 

 

업경대 /;조선 17세기, 나무와 금속, 국립중앙박물관

대웅전이나 지장전 안에는 <업경대>가 있었습니다. 『불설예수시왕생칠경』 등 경전에는 죽은 이가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을 때, 생전의 죄를 모두 비추는 거울인 업경 앞에 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업경대는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입니다.

 

번좀 / 고려 10~11세기

사운드 키시고 동영상 감상해 보세요

 

 

 

고사인물화보 /진재해, 장득만 등 8인, 조선 18세기 전반, 종이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유난히 자녀 교육에 힘을 쏟았습니다. 왕실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천자문』은 기본이고 어려운 유교 경서까지 읽어야 했습니다. 아직 글자를 모르는 어린 아이를 위한 교재도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과 똑같이 그림책으로 공부를 시작했지요. 그림책인 《고사인물화보첩 》4권에 모두 65장의 그림이 실려 있습니다. 본받을만한 옛 성인과 역사적인 사건을 한 장씩 그려서 교훈을 배울 수 있게 엮은 것입니다. 필선과 채색이 꼼꼼해서 원색 화보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림 아래에는 화가의 이름도 작게 써 놓았습니다. 장득만, 진재해 등등 여덟 명이 나오는데, 모두 18세기 초반에 도화서에서 근무한 화원들입니다. 여러 왕실 화가들이 힘을 합쳐 그렸으니 왕실 어린이를 위한 귀한 그림책이었겠지요. 정조 임금은 이 그림책 맨 뒷장에 자기 도장을 찍어놓았습니다.

 

경현당 갱재첩 /영조(재위 1724-1776), 권적(1675-1755), 김상성(1703-1755) 등 14인, 조선 1741년, 그림:

교육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두자니 불안하고, 너무 간섭하자니 잔소리가 되니까요. 《경현당 갱재첩>에서 영조 임금의 아들 교육 이야기를 살펴보세요. 사도세자는 두 살 때부터 『천자문』을 읽었습니다. 대단한 조기교육이었네요. 영조는 경현당에 세자와 신하들을 불러서 공부 성과를 들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빈자리로 나타낸 왕과 세자 앞에서 열세 명의 신하들이 임금이 내린 술상을 받고 있습니다. 영조는 세자가 총명하다는 신하들의 칭찬을 들으면서도 아들이 영 미덥지 못했나 봅니다. “살이 찌고 밖에서 노느라고 피부가 탔다”고 핀잔을 준 일이 이 서화첩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물론 영조는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사도세자를 다그쳤겠지만, 지나치게 강압적인 교육은 훗날 벌어지는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

 

 

| 인간의 변화를 탐색하는 경험

오늘 소개한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의 마지막 공간

 

전우 초상과 권상하 초상

 

박수근의 한일
서진달의 나부입상

 

근대 작품중 인물화를 대표하는 석점의 작품들...

 

노란 옷을 입은 여인 / 이인성(1912~1950), 1934년, 종이에 수채, 대구미술관

20세기 전반 인간을 향한 시선과 표현이 다양해지면서 근대 지식과 문물을 체현한 신여성이 그림에 등장했습니다. 화가 이인성이 연인이자 훗날 아내가 되는 김옥순을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녀는 대구 유지의 딸로 당시 일본 도쿄에서 의상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던 신여성이었습니다.

 

여인과 고양이 /박래현(1920-1976), 1959년, 종이에 수묵채색, 국립현대미술관

불안한 현실과 이를 포용하듯 묵묵히 받아들이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여인의 다리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 고양이, 여인 뒤쪽의 검은 그림자, 날카로운 가시와 나뭇가지, 그리고 거꾸로 매달린 새는 여인 주위에 존재하는 불안을 상징합니다. 여러 불안 요소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여인은 묵상하고 있습니다.

 

 

군상 /이응노(1904 ~1989), 1985년, 캔버스, 종이에 수묵, 국립현대미술관

이응노가 그린 <군상>은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화가 나름의 대답처럼 보입니다.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운 인간은 작게는 가족, 크게는 국가라는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또 누구나 독립된 주체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근원적인 모순이지요.
<군상>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얽혀 거대한 에너지를 분출합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저마다 몸짓도 모습도 똑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따로, 그러나 함께하는 그림이라서 이처럼 용솟음치는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겠지요.

 

산울림 19-II-73#307 / 김환기(1913 ~ 1974), 1973년,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인간은 상상의 힘을 발휘해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김환기의 <산울림>은 예술가의 상상력이 무르익었을 때 한 폭의 그림에 우주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화가는 캔버스에 아교물을 바르고 그 위에 하나씩 하나씩 점을 찍고 테두리를 두르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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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에 몰두하다보면 어느새 이 큰 캔버스가 점으로 가득 찹니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별과 달과 우주가 소용돌이치는 파동이 캔버스에 번져나갑니다. 문화유산과 예술은 무한한 세계로 들어가는 초대장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어느 수집가의 초대”는 어떠셨나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셨기를 소망합니다.

 

방혜자 / 하늘과 땅

 

김정숙의 비상과 백남준의 브람스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인 그의 작품은 역시 동영상으로 감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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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집가의 초대-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삼수 끝에 드리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회장 특별전 다녀 왔습니다.

매달 예매에는 성공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이 된면 일이 생기면서 예약 취소를 거듭하다가, 마지막 차시에 전시회를 다녀 왔습니다. 

지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전시회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재력과 안목을 모두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본인은 물론 지금 전시장에 있는 저에게도 큰 축복으로 생각됩니다.

 

|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현장 판매 및 사전예매

이미 두 방법 모두 쉽지는 않습니다. 이건희 전시회 온라인 예약은 이미 마감되어, 인터파크티켓 사이트에 잠복하면서 취소표를 기다리거나, 관람일 오전 일찍 현장에 와야 당일 티켓을 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후 2시 30분 예약한 티켓을 발권하러 왔는데, 이미 당일티켓은 다 마감이네요.

 

장소는 국립중앙박물롼 3층에 위치한 기획전시실입니다. 굵직한 전시들이 자주 열리는 장소로 매시간 정시와 30분에 입장이 가능하고 매 시간 입장인원이 정해있어 너무 일찍 올 필요 없습니다.

 

| 전시장 아트숍

아트숍에는 이번 전시작품을 이용한 엽서나 소소한 기념품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도록은 25,000원

 

십장생도를 모티브로 디자인된 피트닉 세트. 가격은 무난한데, 크게 매력적인 디자인은 아니네요.

 

2시 30분 전시회 입장을 시작합니다. 입장후 관람시간 제한은 없네요.

 

| 아쉬운 오디오 도슨트

어느 수집가의 초대-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은 국립박물관 전시안내앱에서 무료로 오디오 도슨트 이용이 가능합니다. 또한, 가수 양희은씨가 오디오를 담당했네요.

다만 앱이 백그라운드 재생지원이 되지 않아, 카메라를 켜거나 하면 초기회되는 불편함이 있네요.

 

|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회는 1실과 2실로 나누어 전시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1실 전시품 소개합니다.

 

이번 전시회의 시작은 소박하면서 따뜻한 느낌으로 시작됩니다.

석인상 조선, 화강암, 국립중앙박물관

어느 수집가가 여러분을 집으로 초대합니다. 이 집은 다양한 수집품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수집품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겠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 <석인상>이 먼저 반겨줍니다. 어딘지 정겨운 모습입니다. 길쭉하게 늘어진 귓불을 보면 부처님같기도 한데, 퉁방울눈에 주먹코는 아무래도 장승을 닮았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잡귀를 쫓아주던 고마운 석물이었습니다.

 

 

테라코타 하면 생각나는 귄진규 조각가의 작픔으로 시작하는...

..권진규(1922-1973), 1967년, 테라코타에 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왼쪽으로 돌면 저 앞에 궁궐 대문처럼 위가 둥근 문이 보입니다. 우리나라 근현대 조각의 선구자 권진규가 점토로 빚어 만든 작품입니다. 닫힌 문 뒤에 펼쳐질 세계를 상상해보니 어딘지 두근거리네요.
권진규는 점토를 참 좋아했습니다. 자유롭게 주무르기 좋고, 불에 구울 때 우연한 변화도 기대해볼 수있는데다가, 작가가 끝손질까지 맡는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점토로 만들어 영원히 존재할 이 <문>을 지나 수집가의 집으로, 그리고 수집품이 만들어진 과거의 시간으로 들어갑니다.

 

1.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

 

임옥상(1950년생), 1991년, 종이부조에 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오른쪽으로 들어서니 기와집이 있는 종이부조가 보입니다. 작품 제목은 <김씨연대기>입니다. 가만히 보면 기와집 아래에 거인처럼 큰 노부부가 누워있습니다. 황토 땅 위에 긁어 그린 것처럼 윤곽만 보입니다. 

임옥상은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굳건하게 터전을 일구고 살아간 우리윗세대의 삶을 이야기해주지요. 우리 눈앞의 오늘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선조의 땀과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사실을 곱씹게 됩니다.

 

 

키스 김정숙

 

가족 장욱진(1918&ndash;1990), 1979년,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수집가의 집으로 들어서면 가족의 사랑을 표현한 그림과 조각들이 여러분을 맞이합니다. 먼저 장욱진이 그린 <가족>을 보세요. 그림에는 허물없이 지내는 행복한 가족이 등장합니다. 동화처럼 순진무구한 모습입니다. 하늘에는 해와 달이 떠있고, 땅에는 원두막이 서있습니다. 그림 한가운데에 둥근 보금자리가 떠올라 있습니다. 세 가족과 강아지를 우주가 보듬어주는 것 같습니다. 벌거벗은 모습에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집니다. 장욱진은 "나는 심플하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합니다. 화가의 소탈한 성품이 그대로 그림이 된 것 같습니다.

 

모자상 권진규(1922-1973), 1960년대, 테라코타에 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온 세상 풍파에서 아이를 지켜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내는 듯한 어머니와 아이를 조각했습니다.
여인의 시선과 입매, 그리고 아이를 두 다리로 받치고 탄탄한 양팔로 감싸 안은 자세에서 긴장감이 전해집니다. 엄마의 든든한 보호를 받고 있는 아기는 평온하기만 합니다. 권진규 특유의 사실성과 정신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모자 백영수
꽃과 새 / 작가미상

 

어느 수집가의 초대 두 번째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동자석

주인의 영혼을 위로하고 수호신 역할을 한다고 한다.

 

아기 업은 소녀 /&nbsp;박수근(1914&ndash;1965), 1962년, 패널에 유채, 박수근미술관

다음으로는 박수근이 그린 <아기 업은 소녀>를 감상하세요. 짧은 치마에 저고리를 입은 소녀가 아기를 업고 어르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모두 일하는 한낮에는 아기 돌보기가 소녀의 몫이었나 봅니다.
옆집 친구는 학교에 간다는데, 서운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래도 소녀는 지긋이 미소 짓고있습니다. 떼쟁이 막냇동생이지만 내 가족이니까요. 박수근은 캔버스에 채도가 낮은 물감을 겹겹이발라서 독특한 질감을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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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바닥 같이 거칠면서도 어딘지 그리운 느낌이 듭니다. 박수근은 1950년대 서울의 일상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으로 상처를 입었지만 결코주저앉지 않았습니다. 폭격으로 무너진 잔해를 치우고, 가족이 굶지 않도록 일거리를 찾아 뚜벅뚜벅 살아내었습니다. 박수근은 이런 보통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림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현해탄 /&nbsp;이중섭(1916&ndash;1956), 1954년, 종이에 유채, 연필, 크레용, 이중섭미술관

오른쪽 벽에 작은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이중섭이 그린 <현해탄>입니다. 그림 가운데 검푸른 파도가 '현해탄'이라고 불렀던 대한해협입니다. 그 파도 너머 엄마와 두 아이가 어서 오라고 손짓합니다.
이중섭 자신은 배를 타고 가족에게 향하고 있네요. 얼마나 반가운지, 화가의 얼굴은 거꾸로 돌아가 있습니다. <현해탄>은 소망을 그린 작품입니다. 1952년, 이중섭의 부인 마사코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서울에 남은 이중섭은 종종 편지에 그림을 동봉해서 가족에게 보냈습니다.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말이지요. 이중섭은 이 그림을 부친 뒤에 가족을 다시 보지 못하고 마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국 이루지 못한 소망이 담긴 그림이라 더 쓸쓸합니다. 글과 그림에 남은 가족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오늘 우리에게도 그 진실한 마음이 잔잔하게 다가옵니다.

 

판잣집 화실 /&nbsp;이중섭(1916&ndash;1956), 1950년대, 종이에 펜, 수채, 크레용, 국립현대미술관

인간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데, 이를 잘 하는 사람이 바로 화가입니다. 화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창작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 속 화가는 단칸방 벽에 수많은 작품을 붙여놓고 파이프를 문 채 누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예술에 몰입한 화가에게는 허름한 골방도 예술의 성전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백자 달항아리 /&nbsp;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가장 왼쪽에 걸린 1968년 작품은 푸르스름한 배경에 빨간색, 파란색, 검정색 점을 찍은 그림입니다. 1960년대에 뉴욕에 정착한 김환기가 더 완전한 추상 회화를 시도하면서 그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림 왼쪽 위를 가만히 보세요. 큼직한 동그라미에서 달이 연상되고, 그 주변의 점들은 수많은 별처럼 보입니다. 김환기가 그리고 싶었던 마음의 풍경은 달과 달항아리에 뿌리내리고 있었나 봅니다. 시작은 항아리였지만 그 끝은 추상 회화가 된, 김환기의 달 이야기였습니다.

 

춤추는 가복 / 이중섭

 

정효자전ㆍ정부인전 /&nbsp;정약용(1762-1836), 조선 1814년, 비단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200년 전 조선시대 글이 위아래로 걸려있습니다. 위쪽 액자는 <정효자전>입니다. 전라도 강진 사람 정여주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이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손주들을 홀로 키우는 며느리도 안타까웠지요. 마침 고을에 귀양살이 온 선비가 그렇게 글을 잘 쓴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비에게 가족 이야기를 글로 남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선비는 다산 정약용이었습니다. 가족과 떨어진 유배 생활이 벌써 10년이 지나고 있었으니, 아들을 잃은 아버지 마음이 남 일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효자전>은 어린 시절부터 효성스러웠던 정관일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정관일이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나자, 부친은 이렇게 울었다고 합니다. “너는 한번 죽었지만, 나는 세 가지를 잃었다. 아들을 잃고, 친구를 잃고, 스승을 잃었다.” 그 아래의 액자는 <정부인전>입니다. 홀로 남은 정관일의 부인이 두 아들을 엄하게 가르친 마음가짐이 실려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작품 옆 모니터로 읽어보세요.

 

 

 

책가도 병풍과 이를 재현한 장식물...

소소한 볼거리가 많아 관림객이 밀리는 곳...

자개함과 주판, 주판알이 어떤 것인지 궁금 하다... 설명이 없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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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연적들... 복숭아연적과 사자 연적...

 

 

책가도 병풍 /&nbsp;작가 모름,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수집의 공간으로 어서 오세요. 귀한 물건을 수집하고 싶은 마음은 옛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책가도 병풍>에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수집하고 싶었던 물건이 잔뜩 그려져 있습니다. 벼루와 연적은 선비의 친구였고, 청동향로와 옥장식 같은 골동품도 하나쯤 가지고 싶은 물건이었습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어서, 이렇게 실감나는 그림으로 그려서 방에 펼쳐놓았나 봅니다.

 

삿자리 장식 삼층 장&nbsp; / 조선 18-19세기, 나무와 금속, 국립중앙박물관

<책가도 병풍> 왼쪽에는 한옥 방 같은 공간에 여러 가지 목가구가 놓여 있습니다. 가구는 공간입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의 공간이 쓰임새가 있으니까요. 그 공간에 갖가지 물건을 보관했습니다. 먼저 가장 큼직한 삼층장을 살펴보세요. <삿자리 장식 삼층 장>입니다. 붉은 칠은 왕실의 품격을 상징합니다. 기둥을 삼각형 단면으로 섬세하게 깎아서, 큼직하지만 날렵한 모습입니다. 앞면을 자세히 보세요. 가늘게 쪼갠 대오리로 삿자리무늬를 엮어 붙였습니다. 값싼 재료도 솜씨부리기에 따라 얼마든지 값진 물건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작품 87-A1 /&nbsp;곽인식(1919&ndash;1988), 1987년, 캔버스, 종이에 수채, 국립현대미술관

흡습성이 좋은 얇은 화지和紙에 색점을 무수히 많이 칠해 물감이 번지는 효과를 내는 기법으로 활동을 한 곽인식의 작품입니다. 물감 농도에 따라 색점이 다르게 보이며, 관점에 따라 색점이 서로 밀치고 흩어집니다. 이 작품과 조선 19세기 청화백자 문양의 푸른색이 잘 어울립니다.

 

 

이번 이건희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에서 유일한 외국 작가의 작품이자 가장 관심을 모으는 작품 중 하나가 있는 공간입니다.

수련이 있는 연못 /&nbsp;클로드 모네(1840-1926), 1917&ndash;1920년,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수집가의 집을 돌아보고 나오면 이제 후원에 해당하는 공간이 나타납니다. 여기에 클로드 모네의 그림 <수련이 있는 연못>이 걸려 있습니다. 정원과 연못을 사랑한 화가들이 많지만 인상주의의 창시자 모네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모네의 별명은 ‘빛의 사냥꾼’입니다. 야외에서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풍경을 재빨리 그렸기 때문입니다. 여러 곳을 여행하며 풍경의 빛을 그렸던 모네는 결국 자신의 뒷마당이 가장 좋은 풍경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네는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집을 마련하고, 정원에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을 심어 가꾸었습니다. 모네는 “정원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명작이다”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모네의 수련 그림은 250점이 넘습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빛에 따라 눈에 보이는 색이 달라지니까 여러 번 그린 것입니다. 작업은 결코 편하지 않았습니다. 야외에서 오래 작업한 탓인지 시력이 많이 나빠졌고, 70대에는 아내와 아들을 차례로 잃었습니다. 모네는 실의에 빠져 6년 가까이 그림을 그릴 수 없었습니다. 친지와 친구들의 위로 덕분에, 모네는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이 그림에서 연못의 주변 풍경은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수련과 물 표면의 미묘한 색조만 남았습니다. 대상은 빛 속에 모호하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훗날 추상 회화의 출현을 예고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상주의의 거장 모네가 삶의 끝자락에서 다다른 경지를 느껴보세요.

 

이건희 특별전 제1실 전시장 마지막 공간은 촉각체험장으로 마무리됩니다. 

모네의 수련과 달항아리 동자승 모형을 만지면서 작품의 촉각적인 부분도 느낄 수 있는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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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예매 및 관람후기 입니다. 

|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예약 꿀팁

참고로 이건의 컬렉션 특별전은 온라인 사전예약으로만 관람이 가능합니다. 현장에서 티켓을 구할 수 없다는...

매일 저녁 6시부터 예약이 진행되는데, 매번 시간 까먹고 실패하다가, 매일 아침 9시에 오픈되는 예약취소 티켓을 잘 잡았네요. 14일전 예약은 물론 매일 아침에 진행되는 취소 티켓에 대한 도전도...

또한, 예약한 일자와 시간 외에는 티켓팅은 물론 관람도 불가합니다. 또한 티켓 발부시 신분증 확인되 진행되니 신분증 꼭 챙켜가세요. 위 사진과 같이 예매 시간에 맞춘 스티커도 준답니다.

 

1회 전시에 60명 입장제한으로 감상에 불편은 없습니다. 이번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은 총 3개의 섹션으로 두성되어 있습니다.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 작가 34명의 작품 58점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또한, 삼성가의 미술품에 대한 안목을 느낄 수 있는 기회입니다.

 

01. 수용과 변화

20세기 초 서양문물이 들어오고 전통 동양화와 서양화 기번이 혼재된 족특한 한국만의 작품들이 탄생했던 시기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대표 화가인 이상범과 변관식의 작품

 

 

어전은 물론 한국의 초상미술을 대표하는 채용신의 노부인 초상...

 

이번 이건희 컬렉션 전시장 구성은 이러하다. 전시공간 대비 여유있는 관람객, 예약은 어렵지만, 예매에 성공하면 여유 있는 관람을...

 

02. 개성의 발현

우리가 사랑하는 대표적인 근현대 한국화가들의 작품을 만날수 있는 공간... 

삼성가 특히 이건희 회장의 미술적인 안목을 느낄 수 있는 섹션, 재력이 있다고 아무나 다 할수 있는 것은 아닌...

 

학생시절 조소 양식중 하나인 테라코타 기법의 대표작품으로 나왔던 권진규의 자소상. 느낌이 좋은 작픔...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한국 현대 미술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조각가...

그리고 몰랐던 그의 작품 두 점...

 

벙어리화가 운보 김기창의 군마도... 

엄청난 필력을 보여주는 김기창의 걸작 이지만, 그는 친일파 작가라는 불명예를...

 

박수근의 작품 '농악' 아쉽게도 이번 이건희 컬렉션 전시회 에서는 박수근의 작품은 이 한 점만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공간...

 

이중섭 박물관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이중섭의 흰 소와 황소 작품.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에...

 

그리고 이중섭의 다섯 아이와 끈, 가족과 첫눈...

4점의 작품 모두 그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정말 감동이었음...

 

작년 서거 30주년 기념전이 열렸던, 장욱진의 작품 4점. 시간되면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 가봐야..

 

이번 이건희 컬렉션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 대한민국 추상을 대표하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들... 그의 작품 변화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03. 창작과 모색

이 섹션 또한 현대 한국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대한민국 추상 조각의 시작 '김종영'

 

 

여성화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천경자 작가의 작품, 그리고 진채 채색의 박생광의 무녀

 

이 외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전시회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행운이라는...

다시 이건희 컬렉션 2편이 기다려 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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