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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이아트무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알폰스 무하 원화전 관람후기 2번째 리뷰 입니다.

이번에는 무하전시회 3장과 4장에서 전시되는 작품들 소개입니다. 1~2장에서는 아름다운 아르누보풍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면 오늘 소개하는 작품들은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무하의 아름다운 그림만은 아닙니다..


제3부 "무하 오디세이 "에서는 

1900년 파리 만국박 람회를 기점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활동 범위를 파리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고향 체코로 확장하는  과정을 조명합니다. 프리메이슨 회원으로서 무하가 탐구했던 영적 이상과 민족주의자로서 체코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려 했던 그의 철학을 탐구한다. 또한 무하가 미국에서 시카고의 찰스 리처드 크레인을 통해 후원을 언어 슬라브 서사시를 준비하게 되는 과정도 다룹니다.

 

제4부"슬라브의 화가"에서는 

고향 체코로 돌아온 무하가 조국과 슬라브 민족을 위한 작품에 몰두한 시기를 다루는데요. 그의 일 생프로잭트인 슬라브 서사시는 민축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체코의 문화 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이 섹선서는민 족주의와 인류애를 결합한 무하의 철화적 메시지를 탐구합니다. 체코 독립 이후 예술가로서의 감동과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에서 드러난 이상주의적 비전도 소개됩니다.

Section.3 : 무하 오디세이 Mucha's Odyssey

무하는 상업 디자이너로서 부와명예를 얻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철학과 디자인을 전파하는 예술 활동도 지속하고자 했습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그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관을 장식하며 슬라브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고자 했습니다.
또한, 자신만의 해석을 담은 주기도문 삽화집 <르 파테>를 출판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파하려 했으며, 장식자료집을 출간하여 아르누보의 원리를체계화하고 널리 보급했습니다. 그는 보석 디자이너 조르주 푸케와 협업하며 주얼리 디자인에도 도전했습니다. 이처럼 무하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틀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더욱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유명세로 인해 반복적으로 들어오는 상업적 의뢰 속에서 점차 지쳐갔습니다. 결국 1904년, 그는 진정으로 하고 싶은 예술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이후 다섯 차례 미국을 오가며 활동을 확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강력한 후원자 찰스 리처드크레인을 만나 그의 지원을 받으며, 슬라브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담은 대작 '슬라브 서사시' 프로젝트가 구체화되기 시작합니다. 3장에서는 무하가 시도한 다양한 예술적 여정과, 파리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수있습니다.

 

 

주얼리 디자인 & 코르사주 브로치

가끔씩 열리는 소규모의 무하 전시회나 보석전시회에서도 무하의 주얼리 디자인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이번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기대하고 방문했지만 다양한 알폰스무하 주얼리 디자인을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참고로 지난 롯데뮤지엄에서 열린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 전시회에 소개된 무하의 코르사쥬 장식품

그냥 딱 봐도 무하의 작품!

 

 

[관람후기] 롯데뮤지엄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 전시회 쏘쏘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위치한 롯데뮤지엄에서 12월 6일부터 열리고 있는 'The Art of Jewellery :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 전시회 관람후기입니다. (물론 내돈내산) 오늘은 전시관 섹션별 작품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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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보석

이 시리즈는 무하가 조르주 푸케의 부티크 푸케 매장 디자인을 맡았을 때 제작된 작품입니다. 그는 늘 그렇듯, 네가지 다채로운 보석을 네 명의 아름답고 젊은 여성으로 형상화했습니다. 각보석의 색감은 여성의 드레스, 주변 장식물, 그리고 전경의 꽃에 반영되어, 마치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듯한 다채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무하는 자신의 화풍을 더욱 성숙하게 다듬어가면서, 초기 작품에서 보였던 과도한 아르누보 스타일의 화려한 곡선과 장식을 점차 절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들의 뒤로 모자이크처럼 빛나는 둥근 후광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정교한 틀과 장식적인 곡선은 사라졌습니다. 또한, 무하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었던 풍성하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역시 이전보다 휠씬 단정하고 차분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네 개의 보석중 에메랄드

 

 

오트체나쉬

"오트체나쉬"는 체코어로 "주기도문"을 의미하며, 알폰스 무하가 1899년 말 파리에서 출판한 삽화 서적 "르 파테"의 체코어판입니다. 이 책은 곳곳에 프리메이슨의 상징들이 배치된 것이 특징이며, 표지와 삽화에는 삼각형, 별, 눈 모티프등이 등장하여 당시 신비주의와 결합된 프리메이슨적 사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존 가톨릭 도상을 탈피한 무하만의 독창적인 상징체계가 가장 두드러집니다. 전통적인 기독교 미술에서는 그리스도나 십자가의 형상이 중심이었지만, 무하는 이를 의도적으로 배제했습니다. 대신, 영적 개념을 여성의 형상으로 표현했으며, 작품 속 여성들은 자애로움, 순수함,희망 등의 덕목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는 기도문이 전달하는 사랑과 진리의 이상을 대변합니다. 프랑스어판 해설에서는 하느님을 여성으로 지칭하기도 했는데,

 

이는 신을 어머니 같은 존재로 묘사한 것으로, 당시 기독교 신학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해석이었습니다. 반면, 체코어판인 "오트체나쉬"는 동일한 구성과 삽화들 사용했으나, 해설을 보다 전통적인 가톨릭 신양에 맞게 조정했습니다. 무하는 이러한 조정을 통해 작품의 상징성과 예술성을 유지하면서도 체코 독자들에게 보다 친숙한 해석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 무하 원화전 제3 전시공간 모습

 

지나가는 바람은 젊음을 가져간다

작품 보다도 작품의 제목이 너무나도 매력적인...

이 그림은 원래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의 <인류의 전당>을 위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이 전시는 저명한 예술가들과 후원자들이 참여한 야심 찬 기획이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라는 주제가 박람회 주최 측에서 기대했던 상업적 효과를 얻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획이 무산되자, 무하는 완성한 그림을 인쇄소에 가져갔고, 샹프누와는 디자인을 수정하지 않은 채 부채 장식용으로 판매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몇몇 사본에는 부채 손잡이와 함께 "지나가는 바람은 젊음을 가져간다"*라는 문구가 추가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무하는 여성과 신비로운 존재를 결합했습니다.한 여성은 꽃잎을 흩뿌리며 저무는 해를 상징하고, 그녀의 뒤에 떠 있는 신비로운 존재는 그 꽃잎을 흩날리는 바람을 상징합니다. 이는 시간의 흐름을 시적으로 표현한 장면입니다. 이 작품의 사본은 모두 일부분이 수작업으로 채색되어 있으며, 부드러운 색감과 섬세한 표현이 더욱 돋보이는특징을 가집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00년 만국박람회에서황실이 직접 운영하는 구역의 벽화를장식하기 위해 자국민인 무하에게 작업을 의뢰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는 무하의 고향인 모라비아가 아닌, 이웃 지역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기념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제국의 남쪽에 위치한 솔라브 민족 지역으로, 훗날 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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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는벽 장식 디자인과 함께, 슬라브 민족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이 쟁반에 커피틀 들고 있는 매력적인 삽화를 제작했습니다. 이 그림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관의 식당 홍보물과 식당 메뉴 표지, 엽서 인쇄물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습니다. 이 삽화는 박람회를 방문한 참관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판매된 것으로 보입니다.

 

 

무하의 장식자료집과 인체 장식집.

무하 스타일의 기반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을 보낸 공간입니다.

 

슬라비아

포스터속 전형적인 슬라브인'의 모델은 의외로 미국인이었습니다. 이 포스터는 무하가 미국에 거주하던 시기에 의뢰받은 작품으로,후에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 슬라브 서사시를 후원한 백만장자 친구찰스 리처드 크레인의 딸 조제핀 크레인브래들리를 참고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슬라비아는 손에 화합의 상징을 들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왕좌에 앉아 있습니다. 

 

팔걸이에는 평화의 비둘기 두마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릎 위에 검을 올려둔 모습은 슬라브 민족이 본래 평화를 사랑하지만, 공격을 받으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이 작품은 무하와 크레인이 특히 아꼈던 그림 중하나로, 1920년에 체코 100코루나 지폐에 사용되었으며, 1931년에는 슬라비아 은행의 요청으로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되었습니다.

Section.4 슬라브의 화가

Painter of the Slavs

1910년,알폰스 무하는 오랜 해외 생활을 끝내고 고향 체코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에서 찰스 리처드 크레인의 후원을 약속받아 '슬라브 서사시'라는 대작을 구상했지만, 그의 귀환이 그 프로젝트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체코의 문화와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힘쓰며, 공공 프로젝트와 국가적인 기념 작업들을 진행했습니다. 슬라브 민족의 단결과 독립을 위한 포스터를 제작했으며, 체코슬로바키아 독립을 기념하여 국가 지폐와 우표 디자인, 성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도면 제작 등을 맡으며 신생국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1939년, 나치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면서 무하는 독일 당국의 감시 대상이 되었습니다. 체코 민족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그는 나치 정권이 주시하는 대상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고,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 풀려났습니다. 당시 80세였던 그는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졌고, 결국 같은 해 7월 4일, 프라하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체코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예술가가 겪어야 했던 운명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4장에서는 무하가 민족의 정체성과 독립을 위해 남긴 작품들을 선보이며, 그가 추구했던 이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반을 살아간 예술인들의 비극 또한 무하도 비켜가지는 못했네요.

 

히아신스 공주

알폰스 무하 전시회에서 빠지지 않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무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상업 예술에서 은퇴하고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린 포스터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이 발레 팬터마임 공연은 동화 히아신스 공주틀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무하는 공연의스타 배우이자 이 그림의 모델이 된 안둘라 세들라코바를 통해 포스터 제작을 수락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들라코바는당시 프라하에서 유명한 무대 배우였으며,몇 년후 체코 영화계가 막 시작될 무렵,첫 스타로 자리 잡은 배우이기도 합니다. 포스터 속어린 공주는 매력적이고 사색에 잠긴 듯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고급스러운 옷감으로 만든 드레스와 무하가 자주 디자인했던 독특한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으며, 배경에는 무하 작품에서 늘 볼 수있는 둥근 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포스터의 레터링 역시 무하 특유의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 보헤미아 국가 연합 복권 포스터 시안 

현장에서 작품을 보면 사진보다 훨 강한...

 

 

참고로 이번 마이아트뮤지엄 알폰스 무하 원화전에는 노루페인트가 후원하고 있습니다. 요즘 전시회를 보면 노루페이트의 지원이 상당히 많은데요. 페인트 사용할 일 없지만 호감도는 급상승...

 

무하 전시회 브루클린 미술관

미국 산업계의 거물 찰스 리처드 크레인은 1909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당시 무하가 꿈꾸던 슬라브 역사를 재현하는 작품을후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무하는 또 다른 후원자인 체코 귀족이 제공한 성에서 머무르며, 20개의 거대한 유화 작품으로 구성된 이 연작을 위해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생계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 프로젝트는예상보다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겨우 5점의 대형 캔버스만이 완성된 상태였습니다. 무하는 이 시기에 작품을 일부 공개하기로 결정하고,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이 전시회를 알리기 위해 제작된 포스터에는 광대뼈가 도드라진 소녀가 등장하는데, 그녀는 슬라브 민족이 수 세기 동안 타국의 폭정 아래서견온 고통의 역사를 상징하는 가시관을 들고 있습니다. 전시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뉴욕에서만 60만 명이 관람할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후 무하는 꾸준히 작업을 이어갔고, 1928년 마침내 20점의 대작을 완성했습니다.

 

러시아 복구

라틴어로 된 문구에는 "러시아는 회복해야만 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냉혹하고 침울한 분위기는 굶주린 사람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훗날 소련과 러시아가 선전했던 승리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사실상 4년 동안 산발적인 내전을초래한 대재앙이었습니다. 많은 농민들이 토지를 빼앗겼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식량 생산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1921년까지 최소 800만 명의 농민이 굶어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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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은 초기부터 모든 언론을 강하게 검열했기 때문에, 이 끔찍한 사건이 서방에 알려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국, 모든 농민이 금주립으로 전멸할 위기에 처하자 레닌은 뒤늦게 외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반응은 즉각적이고 뜨거웠습니다. 문명화된 국가들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수백 톤의 식량과 구호 물품을 보내며 자원봉사자들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늘 대의를 위해 힘쓰던 무하 역시 이번에도 기부를 위한 탄원을 위해 자신의 그림을 제공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무하의 그림들과 다르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작품 보다는 상당히 강한 그리고 우울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시대가 이런 작품들을 만들게 한...

 

 

1918-1928

 

디포리스트 포노필름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 알폰스 무하 원화전 메인 포토존입니다.

다른 포토존은 전시장 로비에 있었다면 이곳은 전시장 안에 위치한 포토존입니다.

 

|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 Cathedral)은 체코 프라하에 위치한 대표적인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그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특히 아름답고 예술적인 가치가 높습니다. 그중에서도 체코의 유명한 아르 누보(Art Nouveau) 화가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가 디자인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특히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창의 축소판을 이번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요.

 

알폰스 무하는 1931년에 성당의 북쪽 측랑에 위치한 창을 디자인하였습니다. 이 창은 체코의 수호성인 성 바츨라프(St. Wenceslas)와 그의 할머니 성 루드밀라(St. Ludmila)를 중심으로, 슬라브 민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한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의 삶의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체코 은행 슬라비아(Slavia)의 후원으로 제작되어, 창 하단에는 슬라비아 여신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무하의 아르 누보 스타일이 고딕 양식의 성당과 조화를 이루며, 강렬한 색채와 섬세한 선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특히, 무하의 대표작인 "슬라브 서사시(The Slav Epic)"와 유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도안들... 정말로 무하 스타일 답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나가 화가 중에서는 이런 다양한 역영에서 모두 활동한 작가가 없을까?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 알폰스 무하 원화전 마지막 공간입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국제 인쇄 전시회

무하가 마지막으로 작업한 포스터는 1935년 5월에 열린 시각장애인을 위한 국제 인쇄전시회 광고입니다. 포스터의 삽화는 사실 2년 전에 체코의 시각 장애인을 위한 신문을 위해 제작한 그림으로도 쓰였으며, 이는 많은 기부를 한 이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전달된 감사패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감사패에는 "감사합니다, 시각장애인으로부터"라는 문구가 함께 인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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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는 여리고 진중한 모습의 시각장애인 소녀가 나뭇가지와 앞에 둘러싸인채 무륜 위의 점자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화려한 장식이나 낭만적인 요소 없이, 무채색의 의상과 머리카락을 통해그녀가 속한 세계의 어둠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 체코슬로바키아 디자인

알폰스 무하가 단순한 유명 화가를 넘어 체코의 국민화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만나불 수 있는 공간

 

| 코루나 지폐와 우표

1919년 7월 5일, 알폰스 무하가 디자인한 100코루나 지폐가 발행되었습니다. 이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식 지폐로, 촉박한 일정속에서 제작이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국내에는 적절한 인쇄 시설이 없어 초기 지피는 미국 뉴욕에서 인쇄되어 들여왔으며,이후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체코슬로바키아 자체 인쇄 설비가구축되어 국내에서 지폐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하가 디자인한 지폐에는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다양한 요소들이 반영되었습니다. 

 

100코루나 지폐의 앞면에는 젊은 여성의 초상이 우아한 원형 테두리 안에 그려졌는데,이는 슬라브 민족을 의인화한 '슬라비아(Slavia)'입니다. 50코루나 지페의 뒷면에는 남성과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는 근로자와 농민을 대표하는 인물로 해석되며, 두 인물 뒤에는 곡식 단과 돕니바퀴가 배치되어 있어 농업과 공업의 조화로운 발전이라는 이상을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10코루나 지폐에는 무하가 자신의 딸을 모델로 삼아 그린 초상이 등장하며, 100코루나 지폐의 슬라비아 역시 그의 후원자였던 리처드 크레인의 딸을 모델로 삼은 그림입니다. 무하가 디자인한 지폐는 1930년대 초반까지 통용되었으며, 이후 점진적으로 새로운 지폐로 대체되었습니다.

슬라브 서사시(The Slav Epic)는

체코의 대표적인 아르 누보 화가 **알폰스 무하(Alfons Mucha)**가 1910년부터 1928년까지 18년에 걸쳐 완성한 20점의 대형 유화 연작입니다. 이 작품은 슬라브 민족의 신화적 기원부터 중세의 종교적 투쟁, 근대의 민족적 고난과 각성에 이르기까지, 슬라브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장대한 서사로 그려낸 걸작입니다.


무하는 체코뿐 아니라 폴란드, 러시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 모든 슬라브 계열 국가들의 문화적 뿌리와 공통된 정체성을 탐구하며, 각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과 사건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의 포교, 얀 후스의 종교개혁, 슬라브 농민들의 고난, 민족의 부흥을 그린 장면들이 있으며, 이는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민족의 영혼과 희망을 그려낸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슬라브 서사시》는 미국의 사업가 찰스 R. 크레인의 후원을 받아 제작되었고, 무하는 이를 체코 국민에게 기증하고 프라하에 전용 전시관을 짓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작품은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전시되지 못했고, 현재는 체코 남부의 모라브스키 크루몰로프에 임시로 전시되어 있으며, 프라하로의 회귀 여부는 아직 논의 중입니다.


이 서사시는 무하의 대표작이자, 슬라브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 유산을 시각적으로 집대성한 유일무이한 역사적 예술 유산으로 평가받습니다.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 알폰스 무하 원화전 마지막은 알폰스 무하와 가족들의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번 알폰스 무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마이아트 뮤지엄에 대한 기본 정보는 아래 지난 포스팅 참고하세요

 

'알폰스 무하 원화전' 관람 꿀팁! 포토존, 도슨트, 주차장, 아트샵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무하 스타일'이라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알폰스무하 대규모 전시회입니다. 특히 저에게는 제가 좋아하는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 2019년 개관전시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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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를 이야기하면 빠질 수 없는 알폰스 무하 전시회가 삼성동 마이아트갤러리에서 7월 13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알폰스무하 원화전 도슨트 및 오디오가이드, 아트샵 관람팁 포스팅 (링크는 본문 하단에)에 이어 오늘은 전시장의 작품소개 진행합니다. 이번 전시회는 주로 회화 중심의 다른 무하 전시회와는 다르게 상업적인 제품들도 전시되어 작가를 더 넓게 이해하는 시간이 될 것힙니다.

 

이번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 무하 원화전은 프롤로그와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오늘은 1~2섹션 감상후기 입니다.

 

프롤로그

| 알폰스 무하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1860–1939)는 체코 출신의 화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19세기 말 유럽을 풍미한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대표적인 예술가입니다. 그는 유려한 곡선과 화려한 장식, 이상화된 여성 이미지로 독창적인 스타일을 확립하며, 상업 그래픽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허문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무하는 파리에서 활동하던 중, 1894년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를 위한 연극 포스터 《지스몽다(Gismonda)》를 제작하면서 단숨에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후 그는 그녀와 6년간 독점 계약을 맺고, 《메데아(Médée)》, 《로렌자치오》 등 다양한 포스터 작업을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대중에게 각인시켰습니다. 그의 포스터는 유기적인 식물 모티프와 풍성한 머리카락, 부드러운 선 등으로 구성되어 ‘무하 스타일(Mucha Style)’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상업 분야에서도 그는 담배, 향수, 샴페인, 초콜릿 등의 광고 포스터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켰으며, 일상의 물건들까지 아름답게 만들어 ‘생활 속 예술’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무하의 예술은 단순한 장식성을 넘어 대중과 소통하며, 당시 예술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무하의 예술 인생 후반부는 민족 정체성과 역사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습니다. 1910년 체코로 귀환한 그는 20점으로 구성된 대작 《슬라브 서사시(Slav Epic)》를 18년간에 걸쳐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슬라브 민족의 역사와 신화를 대형 회화로 그려낸 것으로, 체코 민족주의 미술의 정수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이를 체코 국민에게 바치며, 예술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1939년, 나치 독일의 체코 침공 직후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무하는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예술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프라하에 위치한 ‘무하 박물관(Mucha Museum)’을 비롯해 전 세계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은 꾸준히 전시되고 있습니다. 알폰스 무하는 시대를 초월한 미의식을 통해 대중과 예술, 민족과 정체성을 잇는 다리를 놓은 예술가로 남아 있습니다.

노루 페인트는 여러 미술 전시회와 작가를 후원하고 있는데요. 이번 알폰스 무하 전시회에도 협찬을 진행했네요. 저도 노루페인트 이벤트에 당첨되어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 아르누보

이번 알폰스 무하 전시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르누보' 미술사조를 이해해야 하는데요.
아르누보(Art Nouveau)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유럽 전역에서 유행한 예술 사조로,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을 지닌 만큼 기존의 전통적 양식에서 벗어나 자연의 유기적인 곡선과 형태를 예술 전반에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이 양식은 회화, 건축, 가구, 그래픽 디자인, 유리공예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식물의 줄기나 덩굴, 물결과 같은 곡선을 주요 조형 언어로 사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아르누보는 여성의 이상화된 모습을 즐겨 다루었으며, 긴 머리카락과 우아한 옷자락을 휘날리는 여성상은 당시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모티프로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단순한 장식적 요소를 넘어서 구조와 장식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디자인이 많았고, 실용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추구하며 일상 속에서 예술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대표적인 아르누보 작가로는 체코의 알폰스 무하가 있으며, 그는 광고 포스터뿐만 아니라 체코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에 아르누보 스타일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해 그 예술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파리 지하철 입구 디자인으로 유명한 헥토르 기마르, 오스트리아의 구스타프 클림트 등도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결국 아르누보는 산업화 시대의 기계적인 미감에 대한 반작용이자, 예술을 삶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총체적 디자인 운동이자 철학이었습니다. 이번 전시회의 타이틀이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 무하 원화전'인데요. 왜 무하가 '아르누보의 꽃'으로 불리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프롤로그 공간에서는 무하의 작품과 함께 왜 우리가 사랑하는 알폰스 무하가 탄생했는지 설명하는 공간입니다.

 

무하가 그린 동거인 고갱

전시장 첫 공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고갱을 그린 작품으로 시작합니다.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1893년에 고갱은 무하의 스튜디오를 같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동 시대에 전혀 다른 화풍으로 각자 최고의 경지에까지 올라갔다는 것이 너무나도 놀랍네요.

 

그리고 바로 옆에는 무하가 삽화 작업을 한 책들과 내지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할머니의 이야기

할머니의 이야기는 독일 스칸다니비아 등의 전래동화가 담겨 있는데, 이 책의 삽화를 작업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무하의 작품과는 다소 다르지만, 작품 디테일이 상당히 인상 깊습니다.

 

이번 알폰스 무하 전시회 프롤로그 공간의 모습...

 

| 자스몽다 - 사라 베르나르

무하를 이야기하자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 연극계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1844~1923)가 빠질 수 없는데요. 알퐁스 무하(Alphonse Mucha)와의 협업으로 무하는 그녀의 포스터를 그리며 알폰스 무하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이번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무하 전시회에서도 관련 작품은 여러점 만나볼 수 있습니다.

 

Section.1

뮤즈가 건넨 붓, 화가가 그린전설
The Muse's Gifted Brush, The Artist's Painted Legend


1894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파리, 무명의 삽화가였던 알폰스 무하는 운명적인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당시 사라 베르나르는 연극 <지스몽다>의 포스터가 필요했지만, 마감 기한이 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기존 포스터 제작자들이 모두 크리스마스 휴가로 자리를 비운 탓에, 극장 측은 인쇄소에 남아 있던 무하에게 작업을 의뢰했습니다. 무하는 며칠 동안 밤낮없이 작업에 몰두했고, 1895년 1월 1일, 그의 포스터가 파리 전역에 붙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존 포스터와 달리 실물 크기의 세로형 디자인과 섬세한 장식이 돋보였으며, 이에 감탄한 사라는 무하와 6년간의 독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무하는 사라의 주요 공연 포스터를 제작하며, 연극 포스터를 예술의한 장르로 승격시켰습니다. 그의 포스터 속사라는 단순한 배우가 아닌 신화적인 존재로 묘사되었습니다. 이 독창적인 스타일은 무하 스타일'로 불리며 유럽 전역에서 찬사를 받습니다. 무하는 연극 포스터뿐만 아니라, 사라를 위한 연극 프로그램, 무대 장식, 의상 디자인까지 맡으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학장했습니다. 사라와의 만남은 단순한 상업적 협업이 아니라, 배우와 화가가 함께 만들어낸 예술적 연대였습니다. 1장에서는 무하가 연극 포스터를 통해 확립한 독창적인 스타일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지스몽다

무하는이 포스터로 유명해지며 상업 석판 인쇄 업계에 새로운 화풍을 퍼뜨렸습니다. 종교적 의미가 깊은 이 연극의 3막에 성지주일 행렬 장면이 나오는데, 무하는 이때 화려한 의상과 커다란 잎사귀를 들고 있는 배우를 매우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포스터의 크기 덕에 배우가 입고 있는 가운의 길이가 체감되며,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 장식은 극이 성경을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을 암시합니다. 사라의 경건한 표정은 신앙을 나타내고, 동시에 포스터의 부드러운 파스텔 색감은 그 안의 상업성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며조용히 속삭이고 있습니다. 포스터는 기존에 유행하던 화풍과 크게 달랐으며, 파리는 이에 주목했습니다. 사라 베르나르는 매우 감동하여 이후 무하의 멘토를 자처했고, 무하는 향후 몇 년간 파리 사교계의 유명인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에 아르누보 화풍은 무하의 동의어나 마찬가지였고, 그의 구도와 장식적인 화풍은 미술 수업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가 됩니다. 단 하나의 포스터가 이처럼 그 창작자와 그 시대에 지대한 영항을 끼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

사마리아 여인은 성경을 바탕으로 한 연극입니다. 베르나르는 고대팔레스타인의 평범한 시골 농민으로 등장하며, 기독교로 개종한 후자신의 부족을 새로운 신앙으로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이 연극의 첫 공연은 1897년 부활절 시기에 맞춰 예정되었습니다. 무하의 그림에서사라는 3막에서 입는 의상을 하고 거대한 암포라를 들고 있습니다. 앤티크풍 글자와 배우 뒤의 둥근 모자이크 배경 속히브리어 문자는 극의 소재와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알폰스 무하 전설의 시작을 만들어준 인물 '라라 베르나르'

 

 

고난의 예수마저 너무나도 아릅답게 표현된...

 

 

햄릿

햄릿 포스터는 무하가 사라 베르나르들 위해 제작한 마지막 연극 포스터입니다. 사라 베르나르는 남성 배역도 자주 연기했으며, 이 포스터는 그녀가 연기한 햄릿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하단에는 오필리아의 죽음과 엘시노어 성의 야경이 배치되어 전체적인 디자인을 완성합니다. 이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당시 프랑스 문화에 맞게 각색한 작품으로, 1800년대 초 처음 공연될 당시 사라는 오필리아를 연기했으나, 이후 재공연에서는 언제나 주인공인 햄릿을 말았습니다. 이 포스터는 그녀의 극장에서 열릴 1899년 5월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이 포스터또한 사라 베르나르의 미국 순회 공연 홍보에 사용되었으며, 1905년부터 1911년에 걸쳐 엽서, 책자, 포스터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었습니다.

 


유디트

작품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유디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유디트는 유대인의 도시 베돌리아를 침략한 아시리아의 장군 흘로페르네스를 자신의 지략으로 무너뜨린 전설적인 여성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아름다움을 무기로 적진에 잠입해 홀로 페르네스의 관심을 사로잡고, 그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척하면서 그를 암살합니다. 결국,홀로페르네스를 잃은 아시리아 군대는 사기를 있고 후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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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베르나르는 이러한 강인한 여성 영웅들의 이야기에 늘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전에도 성서 속 여성 영웅을 다룬 작품을 선택해 공연한 적이 많았는데, <지스몽다>는 첫 공연 후 100회 넘게 상연되었고, <사마리아여인> 또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고, 그녀의 본명 또한 유디트'였습니다. 이러한 개인적 배경역시 그녀가 이 작품을 고려하는 데 영항을 주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라 베르나르는 결국 이 연극을 무대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작품을 진지하게 검토했고, 무하에게 의상 디자인을 의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Section.2

아르누보의꽃

The Flower of ArtNouveau


1895년, <지스몽다>포스터로 명성을 얻은 무하는 연극계를 넘어 상업 예술로 활동을 확장했습니다. 19세기 말 유럽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대중 소비문화가 급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기업들은 제품 홍보에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무하의 포스터는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새로운 광고 시대를 열었습니다.
무하는 포스터를 단순한 광고물이 아닌 독립적인 예술 장르로 변화시켰습니다. 그의 포스터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감성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으며, 식품, 음료, 출판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었습니다. 곡선적인 장식과 자연 모티프, 신비로운 여성상을 결합한 '무하 스타일'은 제품의 품격을 한층 더 끝어울렸습니다.


무하는 광고 포스터뿐만 아니라, 장식 패널 작업도 진행하며예술의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장식 패널은 인쇄 판화 형식으로 제작되어 가정과 공공장소에서도 쉽게 활용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술은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다 널리 향유될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의 포스터는 19세기 말 파리의 거리틀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으며, 일부 예술애호가들은 이틀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무하의 광고 포스터는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라, 예술과 소비문화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시각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2장에서는 아르누보 시대를 대표하는 무하의 상업 예술과 그 시대 파리 길거리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잉카의 와인

육감적인 여신이 코카로 만든 비밀스러운 음료를 내밀고 있고, 구릿빛 피부의 나이든 인디언 족장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이 강렬한 그림은 특이한 음료를 광고하기 위해 제작된 것입니다. 원래 잉카 족의 코카'라는 이름을가진 이 음료는, 회복 중인 환자에게 좋다는 애매한 설명과 함께 약국에서 판매되었습니다. 초기 기록을 보면, 이 포스터를 음료의 원래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코카 추출물의 중독성 덕분에 꽤 잘 팔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무하는 참고할 만한 잉카족 모델을 찾지 못해, 보다 현실적인 묘사를 위해 박물관에서 사진 자료를 찾아 활용했습니다. 화가로서는 좋은 선택이었지만, 지역적인 오류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림 속 인물은 잉카 족이 아니라 마야 문명의 인물입니다. 무하가 참고한 자료가 멕시코 동부 유카탄반도에서 발견된 비석 조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만능 치료제를 구매한 고객 중에서 이를 문제 삼은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모엣 샹동 그림들

무하는 상업적인 포스터, 메뉴판, 엽서, 문구용 삽화 등 상업적인 부분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다고 하는데요. 해당 작품은 어디에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모엣샹동 케이스 입니다.

보관 상태가 너무나도 좋은데요.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무하 전시회 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은 이런 알폰스 무하가 디자인한 제품들을 너무 좁은 공간에 배치해서 감상하기 다소 불편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또한 설명이 다소 부족한 느낌이...

 

무하의 술광고는 계속 이어집니다.

 

트라피스텐

매력적인 여성의 뒤로 고전적인 아르누보 풍의 둥근 배경이 보입니다. 무하의 연극 포스터와 흡사한 이 작품은 언뜻 보면 사라 베르나르의 홍보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성이 홍보하는 것은 파리의 한 주류회사가 만든 리큐어로, 트라피스트회 수도승들이 개발한 조리법을 따른다고 합니다.

 

트라피스트회는 17세기에 설립된 종교 단체로, 노르망디 트랍 대수도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성의 헤어스타일은 무하의 다른 그림과 달리 구불거리지 않습니다. 대신 그녀의 곧은 머리카락은 관람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의병으로 이급니다. 여성이 들고 있는 꽃은 음료의 제조에 사용되는 다양한 허브를 상징합니다. 수직적인 구도, 장식이 없는하단, 그리고 모든 요소의 완벽한 조화는 <지스몽다>포스터를 연상시킵니다.

 

다음 공간은 정말로 아름다운 무하의 작품들이 모여있는 공간...

 

사계

네 명의 요정 그림은 무하가 처음으로 장식 패널에 도전한 작품이었습니다. 1896년 카탈로그에 따르면, 서정적인 <봄>, 나른한 <여름>, 풍성한 <가을>, 그리고 추위에 떠는 <겨울>을 단돈 40프랑에 구매할 수 있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작품이 이번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무하 원화전 티켓 등에 사용된 대표작인 여름입니다만...

 

새틴 천에 인쇄되거나, 네 장을 한 장에 작게 인쇄하여 무하가 특별히 만든 장식용 들과 함께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1898년에 극 사계를 활용한 달력이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02년에는 마차업계 박람회에서 <여름>이 홍보용으로 사용되는 등, 상업적으로도 활발하게 활용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무하의 대표작 중 하나로,여성스러운 매력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세심한 손길로 그려져 섬세한 파스텔 색감 속에서 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알폰스 무하 사계 연작중에서는 아래 겨울 작품이 가장 좋네요

 

 

| 장식패널

알폰스 무하 전시회에 처음 오셨다면, 너무나도 광범위한 무하의 작업 영역에 감탄받으실 수 있는 공간입니다.

 


"샤를 로리유사(Ch. Lorilleux & Cie)"는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인쇄용 잉크 제조업체로,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의 상업 예술 초기 작품 중 하나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893년, 무하는 샤를 로리유사를 위해 12장의 일러스트로 구성된 달력 형식의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각 그림은 한 달을 상징하며, 무하 특유의 아르누보 스타일로 여성과 자연을 조화롭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무하가 상업적 목적을 위해 제작한 최초의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샤를 로리유사는 단순한 잉크 제조업체를 넘어, 무하와 같은 예술가들과 협업하여 상업 예술의 발전에 기여한 기업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들의 협업은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허물며, 대중에게 예술을 보다 친숙하게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파리스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은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은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와 바다의 요정 테티스의 결혼식에서 시작됩니다. 모든 신들이 초대받았지만,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제외되었습니다. 화가 난 에리스는 연회장에 황금 사과를 던지고 떠났는데,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 사과를 두고 세 여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서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주장하며 다투었습니다. 제우스는 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겼습니다

 

 

아침

 

역시 나는 밤이 제일 좋더라~

 

 

 

샹프누와/백일몽

무하의 가장 사랑받는 작품중하나로,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차분히 앉아 인쇄소의 샘플 책자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1898년 상프누와에서 실내용 홍보 안내문으로 사용되었으며, 달력이 함께 놓여 있거나 원래 달력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달력 여부와 상관없이 작품 자체가 큰 인기를끌었고, 문구 없이 제작된 특별판도 판매되었습니다. 당시 이 그림은 프랑스어로 "몽상"을 의미하는 '헤브리'(Reverie)'로 불렸으며, 현재도 같은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샹프누아는 이 그림을 여러 상업 회사에 제공했고,각회사는 상단에 자사의 문구를 삽입해 인쇄하기도 했습니다. 무하가 그린 여성답게 우아한 분위기를풍기지만, 머리카락은 다른 작품들보다 휠씬 단정하게 묘사되었습니다. 하지만 머리와 원형 배경을 장식하는 꽃을 보면, 무하 특유의 화품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황도 12궁

본래 달력용으로 제작된 이 그림은 상프누와 인쇄소와 문화 예술 잡지 <라플팀> 에서 판매했으며,무하의 가장 유명한 삽화이자 실내용 장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한 샹프누와사의 고객들이 다양한 홍보용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미술 작품으로 판매된 버전에서는두 아기 천사가 차지하고 있던 공간에, 달력용 버전에서는 12개의 세로 칸을 넣어 한 해의 12달을 표시했습니다. 1897년부터 1901년까지 제작된 달력에는 위쪽에 각기 다른 고객의 이름이 삽입되기도 했으며, 영국의 고객들은 이 그림을 목욕용 거품 비누나 입 냄새 제거제 홍보몰로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무하는 보석 디자인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그림 속에 여성이 쓰고있는화려한 티아라와 목걸이에서 그 관심이 잘 드러납니다. 무하의 대표적인 구도 중하나인 원형 배경이 이 작품에서도 눈에 띄며, 달력이라는 용도에 맞게 황도 12궁의 상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잔틴 양식의 두상, 갈색머리, 금발 머리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무하 전시회에서 처음 보는 무하의 청동 도자 작품입니다만, 이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는 부분은 너무나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이곳은 지난 알폰스 무하 전시회에서도 만났었던 작품들이 많네요.

 

 

르페브르 위틸의 샴페인 비스킷

제과사르페브르 위틸을 위해 작업한 초기 그림 중하나로, 우아한 배경 속에서 매력적인 연회 장면이 펼쳐집니다. 상류 사회에서는 이 회사의 비스킷을 선호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합니다. 회사의 이니설은 눈에 띄지 않게 배치되었으며,원쪽위 벽의 장식, 금발여성 옆에 놓인 쿠션, 그리고 그녀의 무물에 놓인 손수건에서도 이니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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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페브르 위틸은 포스터를 별도로 판매하지 않았기때문에,회사의 삽화는 매우 희귀하다. 이 작은 삽화는 벽에 걸리는포스터가 아니라, 계산대에 놓거나 창문에 걸어 눈에 띄게하기 위한 용도로 제작되었습니다. 삽화는 판지에 고정된 후 구멍을 뚫어 쉽게 고정하거나 걸어둘 수 있도록 제작되었습니다.

 

 

이 아르누보 스타일의 장식장 안에는 무하가 디자인한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역시나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무하 원화전에서 이에 대한 설명이 전무한 부분은 상당히 아쉽네요. 좀더 감상하기 편하게 공간이 할애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biscuits

비스켓 상자가 맞을까요?

 

아래는 향수로 보입니다만...

 

이 상품은 아마도 차가 담긴 케이스로 생각되는데요, 설명이 없으니 답답답

 

 

아래도 비스켓 박스로 생각되는데요. 아니면 말고...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무하 전시회, 다음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뤼송

프랑스남서부에 위치한 뤼송휴양지로 향하는 기차 노선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이 포스터는 무하의 초기 상업 작품 중하나이자, 보기 드물게 여성 모델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림 속말을 탄 남성이 카지노와 기둥이 줄지어 선 회랑식 목욕탕으로 관람자의 시선을 이급니다. 포스터 속 건물 묘사는 무하가 직접 작업한 것이 아니며, 건축 도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은 무하의 서명이 빠져 있어 여러 차례 다른 예술가의 작품으로 오해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카탈로그 원본과 무하의 개인 소장품에서 이 작품의 초안이 발견되면서, 결국 무하의 작품임이 확실해졌습니다.

 

 

담배광고가 이래도 되는 것일까요? 지금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페르펙타 자전거

무하는 머리카락 표현에 대한 제약이 없을 때, 과감하게 모든 억압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자전거 홍보 포스터는 그의 스타일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완벽한 작업이었습니다. 자전거 광고에서 강렬한 역동성은 필수적입니다. 여성의 머리카락이 마치 자전거 위에서 날아오를 듯이 휘몰아치는 장면은, 이 포스터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완벽하게 어우러집니다. 바로 그 역동성 자체가 홍보하는 상품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림 속에는자전거의 앞바퀴와 손잡이가 살짝 보이지만, 브랜드나 제품을 강조하기보다는 자전거 타기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페르펙타는 프랑스에서 판매된 영국 브랜드의 자전거로,이 포스터는 유럽 전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무하가 영국 고객을 위해 작업한 몇 안 되는사례 중하나이기도 합니다.

 

 

네슬레의 영유아 식품

1890년대만 해도 이유식은 주로 모유에 오트밀을 섞어 직접 만들어 먹이는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포스터 속 어머니가 들고 있는 시판 이유식은 당시에는 생소한 제품이었던 반면, 아기가 타고 있는 나무 요람은 이미 구식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시대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어머니와 아기의 모습은 따뜻하고 매력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상단 모서리에는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 새가 배치되어 모성과 영양이라는주제를 더욱강조하고 있습니다.

 

1866-1905: The pioneer years 

네슬레의 역사는 1866년 앵글로-스위스 연유 회사가 유럽 최초 연유 공장을 스위스에 설립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1867년에는 앙리 네슬레가 획기적인 영아식을 개발했으며, 1905년 앵글로-스위스와 합 병을 통해 현재의 네슬레 그룹이 탄생되었습니다.

작품의 시점을 보면 제품 출시 후 약30년 후 무하와 만나게 되었네요.

 

2025

 

다음 공간은 무하의 가장 큰 작품과 함께 포토존으로 가장 좋은 공간 중 하나입니다.

아래 사진은 5년 전인 마이아트 뮤지엄 개관 전시회 무하전에서 찍은 사진인데요. 역시나 이 자리에는 이 작품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2019

웨스트 엔드 리뷰

영국 런던의 문학잡지중 하나인 '웨스트엔드 리뷰'의 표지로 사용된 작품입니다. 세로 3미터 가로 2미터가 넘는 사이즈의 작품으로 9장의 종이를 붙여서 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석판화로 어떻게 이런 대작을 남길 수 있었는지... 무하의 열정에...


대중 미술 협회

대중 미술 협회는 영사기'를 통해 대중에게 예술을 전파하고자 한 단체로, 무하의 관심을 끝었던 활동 중 하나였습니다. 무하는 예술이 부유송뿐만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대중에게 슬라이드를 통해 여러 작품을 상영하고 소개하는 이 협회의 목적은 그에게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당시 영상기술이 존재하긴 했지만, 금방 사라질 유행으로 여겨졌으며 이러한 목적에 적합한 매체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협회는 포스터가 완성되었을 당시 회원 수가 7,000명에 달했었고 영사기 상영뿐만 아니라 무명의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구매하여 후원합으로써 예술가들을 위한 시장이 성장하길 바랐습니다. 포스터 속 젊은예술가는 기이하게 휘날리는 머리카락의 뮤즈를 바라보며 영감을받고 있습니다. 이는 무하가 평소 즐겨 그리던 현실적인 인물과 신화적인 인물의 대비를 보여주는 예시로, 뮤즈는 협회의활동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장식자료집

무하는 1902년에 그가 익혀온 미술적 지식을 담아 장식자료집을 출간 했다고 하는데,...

 

이 그림 한 장 한장을 보다 보면 관람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는...

 

여기 까지가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무하 원화전 4개의 섹견중에서 1, 2섹견 소개를 마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3~4섹션에서 만나볼 수 있는 무하 작품을 소개합니다.

(아래로 한 번 더 스크롤...)

 

아직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무하 전시회를 보지 않으셨다면 아래 포스팅 참고하세요

 

'알폰스 무하 원화전' 관람 꿀팁! 포토존, 도슨트, 주차장, 아트샵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무하 스타일'이라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알폰스무하 대규모 전시회입니다. 특히 저에게는 제가 좋아하는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 2019년 개관전시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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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무하 스타일'이라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알폰스무하 대규모 전시회입니다. 특히 저에게는 제가 좋아하는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 2019년 개관전시회가 알폰스 무하전 이었고, 이후 5년 만에 다시 전시회를 만나게 되어 매우 기대되는 전시회가 되었네요.

 
오늘은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관람꿑팁과 도슨트, 오디오가이드, 주차장, 주차요금 할인, 전시회구성, 포토존, 무하 아트샵  등등 주요정보 공유합니다.

 
 

전시회 정보

| 전시회 관람시간은 유동적 - 특히 종료시간 단축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 무하 원화전 전시회는 2025년 3월 20일 ~ 7월 13일 까지 열릴 예정입니다. 별도 휴무일 없음
관람시간은 월-일 10:00 - 19:40 (입장마감 19:00) 이지만, 전시장 사정에 따라 오픈 및 종료시간이 변경되기도 합니다. 

 
이번달에도 미술관 사전으로 18시에 전시회가 단축운영된 경우도 있는데요. 마이아트 뮤지엄 방문시 홈페이지를 통해 휴무일 및 운영시간 확인하세요.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웨이팅은 없습니다. 평일 주말 모두 단체 관람객만 없으면 긴 웨이팅 없이 입장 가능합니다.

 

| 평일 정규 도슨트 3회 / 주말도슨트 없음

마이아트 뮤지엄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시회 도슨트는 주말에는 운영하지 않습니다. 평일오전 11시 오후 2시와 4시총 3회 진행되며, 정우철, 이지안, 한지원 도슨트분들께서 진행하십니다. 도슨트 일정도 마이아트뮤지엄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 H.Point 무하 오디오가이드 4천원  : 이어폰 챙기기

도슨트 시간에 맞추시기 어렵다면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오디오가이드를 HPoint 앱에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무료이용이 아닌 유료 서비스로 제공됩니다. 무하 전시회 오디오가이드 가격은 4,000원으로 역시나 최근 고물가 추세에 맞춰 오디오가이드 이용요금도 높아지고 있네요. 올해 초만해도 다른 전시회들 오디오가이드 요금이 3,000원 정도 했는데.

 
1분 전후의 오디오 파일 30클립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오디오가이드에서 작품 소개 클립은 약 25개 입니다.

 

| 사진촬영 가능 (카메라 X)

이번 마이아트뮤지엄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사진촬영 가능합니다. DSLR 카메라 사용은 제한되며 플래쉬 없는 스마트폰 카메라 이용한 작품촬영만 허용됩니다. 삼각대등 촬영 보조도구도 사용제한 됩니다.
나머지 마이아트뮤지엄 이용조건은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제한 됩니다.

 

 4개의 섹션 구성 

이번 알폰스 무하 원화전은 총 4개의 섹션과 아트샵, 포토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그의 오리지널 포스터,판 화, 유화, 드로잉 등 20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마이아트뮤지엄 개관전시로 였렸던 2019년 무하 전시회에서는 작품 대부분이 회화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디자인이 적용된 상품과 화폐등도 (조금) 전시되어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작품 다양성을 확보했네요.

 
티켓팅하고 거대한 문으로 전시관을 들어가면 먼저 프롤로그가 진행됩니다.

| 프롤로그

알폰스 무하는 1885년, 25세의 나이에 뮌헨 미술 아카데미에 입가하며 정규 미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1887년에는 파리로 떠나 아카데미 줄리앙과 콜라로시 아카데미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보다 개방적인 환경에서 예술적 탐구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1889년, 후원자의 지원이 끊기면서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고, 생계를 위해 삽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당시 출판 시장이 성장하면서 그의 뛰어난 드로잉 실력은 주목받았으며,삽화 작업을하며 다양한 기법을 익히고 경험을 쌍아갔습니다.

 
하지만 무하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삽화 작업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랑드 쇼미에르 거리의 크레메리에 거주하며, 제임스 맥닐 휘슬러, 폴 세뤼지에, 폴 고갱 등과 교류하며 예술적 시야를 넓혀갔습니다.이시기를 거치며 구하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예술적 기반을 다졌으며, 이후 아르누보의 상징이 되는 "무하 스타일"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프톨로그에 전시된 작품들은 그의 성장 과정과 예술적 탐구를 보여주며, 파리에서 명성을 얻기 전의 여정을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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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부 

뮤즈가 건넨붓, 화가가 그린전설 : The Muse's Gifted Brush, The Artist's Painted Legend


알폰스 무하의 이름을 전 세 계에 알린 포스터 '지스몽다'를 중심으로 그를 유명인의 반열로 올리고 파트너가 된 사라베르나르와의 만남이 그 의 경력에 미친 영항을 살펴보는 섹션입니다. 이 섹션에서는 지스몽다를 필두로 무하가 그린 연극 포스터들을 통해 그의 초기 성공과 예술적 정체성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 제 2부 

아르누보의꽃 : The Flower of ArtNouveau


무하는 지스몽다의 대성공 이후 무하가 광고 포스터를 통해 도시 거리를 '야외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는 장식 패널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포스터를 디자인하며 예술을 소수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대중적으로 접근 가능한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이 섹선은 무하가 대중예술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혁신적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또한 이번 섹션에서는 무하의 회화뿐 아니라 도자, 제품등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 제 3 부 

무하 오디세이 : Mucha's Odyssey

 
무하는 1900년 파리 만국박 람회를 기점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활동 범위를 파리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고향 체코로 확장하는 과정음 조명합니다. 프리메이슨 회원으로서 무하가 탐구했던 영적 이상과 민족주의자로서 체코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려 했던 그의 철학을 탐구하는데요. 기존 무하스타일의 작품과는 다른 다소 강한 이미지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또한 무하가 미국에서 시카고의 찰스 리처드 크레인을 통해 후원을 언어 슬라브 서사시를 준비하게 되는과정도 다룹니다.

 

| 제 4 부

슬라브의 화가 : Painter of the Slavs


고향 체코로 돌아온 무 하가 조국과 슬라브 민족을 위한 작품에 몰두한 시기를 다루는데요. 무하의 일생프로젝트인 슬라브 서사시는 민축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체코의 문화 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이번 섹션에서는 무하의 민족주의와 인류애를 결합한 무하의 철화적 메시지를 탐구하는 공간입니다. 체코 독립 이후 예술가로서의 감동과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에서 드러난 이상주 의적 비전도 소개됩니다.

 

| 2019 무하 전시회 vs 2025 무하 전시회

5년전에 마이아트뮤지엄에서 무하 전시회를 감상하셨다면, 이번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전시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실 수 있는데요.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작은 19년이 더 많았던 것 같네요. 그리고 무하의 작품 30% 정도는 지난 전시화와 중복되는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알폰스 무하전 관람, 도슨트, 기념품샵. 그리고 아쉬운 마음... @ 마이아트뮤지엄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 지하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개관특별전으로 열리고 있는 알폰스 무하전 다녀 왔습니다.전시회는 너무나도 좋았고, 기대 이상의 짜임새 있는 전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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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하 전시회 포토존  / 포토부스 

이번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포토존은 로비와 전시장 내부에 준비되어 있고요. 이외에도 포토부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 무하 포토부스 

마이아트 뮤지엄 지하 1층에는 포토이즘 포토그레이 인생네컷 같은 포토부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포토부스 가격은 1+1 기준 작은 사이즈는 5,000원, 큰 사잊 사진은 7,000원 입니다. 관련 프로모션도 있네요.

 
일반 포토부스와 동일하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스킨이 그렇게 매력았지는 않네요.

 

 
무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삼성동 섬유센터 1층 주변에도 무하의 작품이 인쇄된 대형 현수막이 있어 이를 배경으로 사진찍기 좋고요.

| 로비 포토월 

이번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마이아트뮤지엄 1층 로비에는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포토월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오셨으면 사진찍기 최적의 장소입니다. 조명까지 고려하면... 이곳은 전시회 관람여부와 상관없이 이용이 가능합니다.

 
아쉬운 부분은 2019년 무하 전시회 포토존은 소품과 테이블 등도 준비되어 상당히 정성스럽게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번 포토월은 그냥 그냥 쏘쏘...

 

| 전시장 입구 포토존

티켓팅하고 들어오면 바로 거대한 문이 보이는데요. Alphonse Mucha 글씨가 양각된 거대한 문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어보세요.

 

| 웨스트 엔드 리뷰 - 무하의 가장 큰 작품

가로 2.1미터 세로 3미터가 넘는 알폰스 무하의 가장 큰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전시된 공간도 이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찍기 좋게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 공간도 역이 이번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시회 포토존 중 하나입니다.

 
 

| 성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 Cathedral)은 체코 프라하에 위치한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성당으로, 그 내부를 장식하는 다채로운 스테인드글라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체코의 국민 화가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가 디자인한 창은 예술성과 역사적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이곳을 배경으로 이번 전시회 추억사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차장 & 아트샵

| 마이아트뮤지엄 주차장, 주차요금

주차장은 마이아트뮤지엄이 있는 강남구 삼성동 섬유센터빌딩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테헤란로 기준으로 건물을 지나 바로 우회전 후 직진하시면 주차장 입구가 보입니다. 

 
주차장은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시면 되는데요. 평일에는 빌딩 입점직원 차량과 방문자 차량으로 만차, 주말에는 웨딩홀 방문객으로 시간이 겹치면 역시나 주차장 만차인데요. 이 또한 운에 따르는... 다만 이곳 웨딩홀이 법적 이슈가 있어서 주말 주차장 다소 한가합니다.

 
마이아트뮤지엄 주차요금은 최초 30분 3,000원 이후 10분당 1,000원 주차요금 발생합니다. 3시간 이용시 주차요금 9,000원 인데요.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주차요금 할인을 위해서는 티켓부스에서 3,000원에 2시간 무료 주차권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뭐 2시간 기준으로 50% 할인된 가격인데. 
이번 무하 전시회 주차부터 관람 출차까지 2시간은 부족합니다. 최소 3시간은 생각하셔야.

 

 

마이아트뮤지엄 주차, 주차할인, 주차요금, 난이도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제가 최애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마이아트뮤지엄 주차 및 주차요금 할인정보, 주차장 주차 난이도 공유합니다. | 마이아트뮤지엄 위치위치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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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 무하 원화전 아트샵 굿즈 가격 및 종류

이번 전시회는 무하의 작품을 다양한 제품에 적용한 굿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갤럭시 아이폰, 버즈 케이스도  있고요. 그러나...

알폰스 무하 아이폰 케이스 가격은 25,000원, Z플립 케이스는 26,000원 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쿠팡에서 찾아보면 1.5만원 전후에 구입할 수 있다는...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 도록입니다.

무하도록 가격은 48,000원, 현장 구매 불가. 아마도 재고고나리를 위해 최소 수량만 인쇄하고 이후 주문 받아 해당 수량만큼 인쇄하려는 것 같네요.

 

알폰스 무하 소품

손거울 (5,500), 오프너, 마그넷 (7,000) 등 소품은 몇 천원 수준에서 무하 굿즈를 소장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양산이나 안경집, 안경수건, 옆서 포스터 등 다른 전시회에서도 보이는 굿즈 들은 대부분 준비되어 있고요.

 

 
알폰스 무하 아크릴 거울이나 쿠키 트레이 등은 가격이 좀 나갑니다. 맥주쟌과 와인잔도 있네요.

 

| 여담

이번 아르누보의 꽃:알폰스 무하 원화전은 노루페인트로 전시장이 시공되었습니다. 노루페인트가 여러 전시회와 작가들을 후원하는데요. 이번 무하 전시회도...

 
저도 이번 전시회는 인스타그램 노루페인트 프로모션에서 당첨되어 다녀왔네요.
(최근 자잘한 무하 전시회에 노출되어서 갈까 말까 고민중이었는데...)

 

 
얼마전에는 이탈리아 밀라노 홍철원더랜드 전시회도 노루페인트가 전시지원을 한 기사도 봤는데요. 또 이를 축소한다는 기사도 나오네요. 그래도 기업의 이런 후원이 계속 되었으면 합니다.

 

 

[단독]노루페인트, ‘홍철 원더랜드’ 끝으로 밀라노 법인 서울에 통합

노루페인트(090350)가 이탈리아 밀라노 전시 참여를 목적으로 세운 법인(NOROO Milano Design Studio, 이하 NMDS) 청산을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의 사업 방향과 업황 등을 고려해 서울 스튜디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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