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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취미 전시 공연 요리

기민정, 도현희, 손승범, 장승근 : 에브리데이몬데이 전시 On Paper

by a4b4 2026.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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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라는 물질 위에 남겨진 시간과 감각
에브리데이몬데이 전시회 'On Paper' 관람후기입니다.

에브리데이몬데이에서 열리고 있는 《On Paper》는 제목 그대로 ‘종이’에 주목한 전시입니다.
기민정, 도현희, 문민, 손승범, 이승애, 임선구, 장승근 등 7명의 작가가 참여하며, 종이를 단순히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바탕이 아니라 작품을 구성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적극적인 매체로 바라봅니다.

 

| 전시회 개요

  • 전시명 : On Paper
  • 참여작가 : 기민정, 도현희, 문민, 손승범, 이승애, 임선구, 장승근
  • 전시기간 : 2026. 8. 27 – 10. 11
  • 장소 : 에브리데이몬데이(EM Gallery), 서울 송파구 송파대로48길 14
  • 관람료 : 잠실 무료 전시회

 

에브리데이몬데이 전시 'On Paper' 는 지하1층 1층 2층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층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민정, 도현희,  손승범, 장승근 4명의 ㅈ각가 작품을 소개합니다.

| 기민정 작가

전통적인 화선지와 현대적인 스테인리스의 만남

기민정 작가는 동양 회화의 전통적인 시각 언어인 획과 여백을 기반으로 작업해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업에서 여백은 단순히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공간에 머물지 않습니다.


기민정 작가의 기존 작업에서도 화선지와 유리처럼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재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화선지의 흡수성과 유리의 투명성 등을 이용해 획과 여백,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탐구해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스테인리스라는 더욱 단단하고 차가운 물질이 그 관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보고 있으면 무엇이 그려져 있는가 못지않게 무엇이 남아 있고, 무엇이 사라졌는가​에 시선이 머물게 됩니다.
종이의 빈 곳을 제거했는데 오히려 그 빈자리가 더욱 강하게 존재하는 역설적인 경험입니다.

 

 

이번 전시의 작품 '남은 것들 Remains' (2025) 역시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위에 화선지와 먹을 사용한 작품으로, 특히 흥미로운 점은 화선지의 여백을 실제로 오려낸다는 것입니다. 종이 위에 여백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종이를 제거함으로써 실제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전통 회화의 재료인 화선지와 현대 건축·산업을 상징하는 스테인리스가 한 작품 안에서 만나지만 두 재료가 하나로 섞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물성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 도현희 작가

색을 입히고 씻어내며 기억의 시간을 남기다
도현희 작가의 작업에서 종이는 시간을 축적하는 표면에 가깝습니다.

 

 

도현희는 한지에 색을 입힌 뒤 다시 씻어내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보통 회화가 무언가를 계속 더해가며 이미지를 완성한다면, 도현희의 작업은 더하는 과정과 지우는 과정이 함께 존재합니다. 색이 입혀지고 다시 씻겨 나가면서 종이 위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흔적들이 축적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기억과도 닮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기억한다고 해서 당시의 장면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는 희미해지고, 또 어떤 부분은 오히려 선명하게 남습니다.
작가에게 색을 입히고 씻어내는 반복적인 행위는 개인이 시간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방식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도현희의 화면은 단순한 추상회화라기보다 시간이 지나간 표면으로 바라볼 때 더욱 흥미롭습니다. 한지 특유의 흡수성과 불균일한 표면 역시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색, 겹쳐진 흔적, 희미하게 남은 경계들이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에브리데이몬데이 전시 에서 만나보는 도현희 작가의 연작 ‘Scene of Senses’라는 제목처럼 구체적인 풍경을 보여주기보다 한때 경험했던 감각이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에 조금 더 가까운 작품입니다.

 

 

| 손승범 작가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존재들을 바라보는 시간
손승범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지나쳐버리는 존재들을 화면의 중심으로 옮겨옵니다.

 

잡초나 돌처럼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대상들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 평범한 존재들을 오랜 시간 바라보고, 장지 위에 먹을 반복적으로 쌓아가며 그립니다.
손승범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돌이나 잡초를 그린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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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업은 욕망과 상실이라는 개인적인 감정에서 출발해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사라져가는 대상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재개발 지역에서 수집한 돌이나 잡초, 나뭇가지 등을 작품으로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장지 위에 먹을 여러 차례 쌓아 올리는 과정에는 대상을 바라본 시간과 작가가 작업에 들인 시간이 함께 축적됩니다.
평소에는 이름조차 붙이지 않고 지나쳤던 존재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순간, 그 대상에는 이전과 다른 의미가 생겨납니다.
어쩌면 손승범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 자체보다 ‘바라보는 행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던 것을 멈춰 바라보고, 그 존재가 화면의 중심에 놓이는 순간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기준도 잠시 흔들립니다.

 

| 장승근 작가

완성된 형태보다 그림이 만들어지는 순간
장승근 작가의 작품은 앞선 세 작가와 또 다른 방식으로 종이를 사용합니다.

 

장승근은 일상의 장면과 사물을 빠르게 드로잉하고 선과 색을 겹치면서 형상을 만들어갑니다. 그런데 그의 그림에서 형태는 명확하게 완성되기보다 만들어졌다가 다시 흐트러집니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가 계속해서 움직이는 이유입니다.

 

이번 에브리데이몬데이 전시 'On Paper'에서는 특히 종이라는 매체가 작가에게 회화에 대한 부담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작용합니다. 캔버스에서 완성된 회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긴장보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감각과 붓의 움직임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망설임과 불안, 우연히 생겨난 붓질까지도 화면의 일부가 됩니다.

 

 

형태를 만들려는 움직임과 동시에 그 형태를 다시 무너뜨리려는 충동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합니다.
그래서 장승근의 작품은 무엇을 그렸는지 정확하게 알아보려고 할수록 오히려 멀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형상을 해석하기보다는 선이 움직이고 색이 겹치면서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따라가는 편이 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종이 위에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종이에 무엇이 남았는가

'On Paper'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일곱 명의 작가가 모두 종이를 사용하지만 종이를 대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특히 이번에 자세히 살펴본 네 작가만 비교해도 차이가 분명합니다.

기민정에게 종이는 잘라내고 공간을 만들어내는 물질이고, 도현희에게는 시간과 기억을 흡수하고 남기는 표면입니다. 손승범에게는 오랫동안 바라본 시간과 시선을 축적하는 장소이며, 장승근에게는 망설임과 즉흥적인 감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회화의 공간이 됩니다.


결국 이 전시는 ‘종이 작품을 모아놓은 전시’라기보다 하나의 재료가 작가의 태도에 따라 얼마나 서로 다른 예술적 언어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에 가깝습니다.
평소 작품을 볼 때 자연스럽게 이미지나 색, 형태를 먼저 보게 됩니다. 하지만 'On Paper'에서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보셔도 좋겠습니다.


종이가 얼마나 젖었는지, 어디가 잘려나갔는지, 무엇이 지워졌는지, 먹이 얼마나 반복해서 쌓였는지, 붓이 어디에서 망설였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작품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종이 위에 완성된 이미지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가 만들어지기까지 종이 위에서 일어난 사건과 시간을 함께 바라보는 것.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이번 에브리데이몬데이 전시 'On Paper' 를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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