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나 SNS를 넘어 일본 등 동남아에서도 유명한 남대문시장 맛집골목으로 소문나면서 항상 빈 자리 없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십수년 동안 일년에 한 두번 꼭 방문하는 단골아닌 단골 입장에서는 더이상 방문할 이유가 없어진 곳...
그래도 남대문칼국수골목 위치, 주차, 영업시간, 휴일, 카드사용 가능여부 등 소개도 합니다.
| 남대문시장 주차장 및 위치
남대문칼국수골목은 지하철 회현역 5분 출구 바로 앞에 있습니다. 그냥 출구 나와서 몇 걸음 걸어가면 바로 위와 같은 칼국수골목 입구가 보입니다. 아쉽게도 남대문시장 칼국수골목 주차장은 없습니다. 평일에는 주변 유료주차장 이용하셔야 하고요. 공휴일에는 우리은행 본점 주자차장 무료 3시간이용이 가능합니다.
남대문 칼국수골목 영업시간은 보통 새벽 6시부터 21시 전후까지 영업합니다만 각각 식당 사정에 따라 유동적이고요. 공휴일에도 쉰다는 고지는 없지만 식당별로 상이합니다.
남대문칼국수골목 안에는 10여곳의 식당이 있는데요. 취급하는 메뉴나 서비스는 거의 동일합니다담, 각각의 식당별오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습니다. 어디가 이곳의 대표 맛집이다! 라기 보다는 각자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단골집이 생기는 모습.
이곳 남대문시장 칼국수골목 메뉴는 칼국수 수제비, 비빔냉면, 보리밥, 찰밥을 메인으로 세트로 구성되어 있네요. 그리고 좁은 테이블 앞에는 이렇게 비빔밥이나 찰밥에 들어가는 야채들이 수북하게 올려 있는것이 이곳의 특징입니다.
딱 전형적인 시장분위기를 보입니다. 위생이나 분위기 이런것에 민감하신 분들은 이곳 남대문 칼국수골목 오시면 안됩니다. 그냥 무던한 분들이 1만원 가격에 다양한 메뉴 맛보는 즐거움으로 방문하는 곳입니다.
| 남대문 칼국수골목 메뉴 (거제식당 기준)
제가 방문한 거제식당 기준으로 메뉴는 아래와 같이 찰밥 또는 보리밥 주문하면 맛보기 칼국수와 냉면이 나오고요. 칼국수나 수제비를 주문하면 맛보기 비빔냉면이, 비빔냉면 주문하면 맛보기 칼국수가 같이 나옵니다. 일타 삼피가 가능한...
저희는 수제비, 냉면, 보리밥 주문합니다. 선불 후불 모두 가능하지만 남대문칼국수골목 카드 결제 불가합니다. 현금이나 계좌이체가 기본...
주문 들어가면 준비하신 반죽으로 바로 칼국수나 수제비 만들어 주시고요.
반찬은 이렇게 김치와 무청김치가 나옵니다.
된장국과 함께 나오는 보리밥 세트 가격은 9,000원 입니다.
된장국과 맛보기 칼국수와 냉면이 같이 나오는데요.
1년 만에 방문했는데 실망이 크네요. 가격은 오르고 내용은 많이 부실하다는 느낌이 확 드네요.
아래는 과거에 찍었던 남대문칼국수골목 보리밥 사진입니다. 이때 비해서 심심한 보리밥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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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기 칼국수와 냉면은 맛있게 잘 먹었는데요. 과거에는 이 3종세트 다 먹기가 힘들었는데, 확실히 양이 줄었네요. 그냥 다 먹었다는...
아래는 남대문칼국수골목 비빔냉면입니다.
가격은 10,000원에 맛보기 칼국수가 같이 나오네요. 아주 그냥 자극적인 그 맛의 비빔냉면입니다. 참고로 물냉면은 없어요.
이녀석은 지난번에 실패했던 수제비 입니다.
수제비 가격은 9,000원에 맛보기 냉면이 나오고요. 무엇보다도 손님많고 바쁘실때는 수제비 안해주시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번에는 수제비 해 주시네요. (저는 칼국수 보다는 수제비 선호하는...)
잠실 롯데월드몰과 올림픽공원 주변 송리단길과 방이동 먹자골목에 여러 맛집들이 있는데요. 오늘은 순대국밥 맛집으로 소문난 청와옥 본점 정보 공유합니다. 특히 기본 웨이팅이 한 시간 넘어가는 맛집으로 청와옥 본점 주차장 및 주차요금 할인, 메뉴, 가격, 웨이팅 없이 식사하는 팁 공유합니다.
올림픽공원 맛집 청와옥 본점 주차 한 방에 하고 주말 딱 5분 웨이팅하고 바로 입장해서 순대국밥과 오정어볶음, 육회 맛있게 먹었던 이야기!!!
| 방이동 청와옥 본점 웨이팅
청와옥 본점은 송파 올림픽공원 건너편 지하철 한성백제역 3번 출구에서 80미터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 송리단길 올림픽공원 순대국 맛집 중에서는 탑오브 탑으로 소문난 곳이어서 주말에는 항상 긴 웨이팅이 필요한데요
제가 방문한 토요일 오후 1시 경에도 청와옥 본점 웨이팅은 엄청나네요. 날도 추워지는데...
잠실 청와옥 웨이팅은 매장 앞 테블릿에서 휴대전화 번호 입력하고 대기하시면 되는데요. 제가 방문한 시간은 식사시간이 지났는데도, 43팀이 웨이팅 상태입니다. 이 정도면 90분 이상 대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 청와옥 본점 웨이팅 팁
청와옥 본점은 테이블링 앱을 통해서 원격줄서기 신청이 가능합니다. 주말에도 원격 웨이팅이 가능하니 방문전에 대기인원 확인하시고 청와옥 웨이팅 먼저 신청하시고 방문하세요.
또한, 3번까지 줄 미루기가 가능해서 상당히 매력적이네요.
| 최소 한 시간 전 예약하기
저는 11시 37분에 청와옥 방이점 웨이팅 신청시 44번째 대기였는데, 한 시간 지난 12시 37분 기준 11번째 대기였네요. 한 시간에 33팀이 줄었으니 2분에 한 팀 정도 줄어드네요.
해당기준으로는 주말 청와옥 본점 방문시에는 방문예정시간 최소 한 시간 전에는 테이블링 통해 예약하시는 것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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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가용 방문시 청와옥 본점 주차 팁
올림픽공원 청와옥 본점 주차장은 건물 뒷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청와옥 정문에서 아무리 찾아도 없고요. 입구에 주차장 안내는 그렇게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청와옥 방이점 주차장 가는길은 청와옥 건물을 지나 바로 나오는 골목으로 들어오셔서 다시 우회전 하시면 건물 뒷편 청와옥 주차장건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안동국시, 포몬스 베트남쌀국수, 청와옥이 같은 주차장을 사용하고요. 발렛파킹 운영됩니다.
발렛비용은 2,000원이며, 식사후 청와옥에서 해당 주차권에 도장받아 오시면 청와옥 본점 주차요금 없이 발렛비용만 지급하시면 됩니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김창열 전시회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김창열(1929–2021)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회고전으로, 한국의 근현대사와 미술사의 맥락 속에서 그의 작업을 재조명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알고 있는 김창열의 작품세계와는 전혀 다른,
전쟁을 겪고 이를 이겨나가면서 물방울은 그에게 있어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삶의 고통과 치유, 존재의 본질을 담아내는 철학적 상징이라는 부분을 이해하니 상당히 감동적인 전시회가 되었네요.
| 김창열 전시회 정보
전시기간 : 2025-08-22 ~ 2025-12-21
전시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지하1층 6, 7 전시실 / 2층, 8전시실
특히 평일인 매주 수요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저녁 9시까지 작품 관람이 가능합니다. 직장인으로는 상당히 매력적인...
이번 김창열 회고전은 국립현대미술관 6~8관에서 열리며, 지하에 있는 6관과 7관은 2천원의 입장료로, 8관은 무료 관람이 가능합니다. 작품 감상에는 최소 120분 이상 생각하셔야 합니다.
김창열 전시회 입장료는 2,000원,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날과' 매주 수요일 저녁 6시 이후에는 무료 관람이 가능합니다. 돈 없다고 문화생활 못한다는 말은 뻥...
| 오디오가이드 도슨트
김창열 전시회 현장 도슨트가 있다고 하는데,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국립현대미술관 앱에서 김창열 전시회 오디오가이드는 무료로 이용이 가능합니다. 총 17개 클립으로 내용은 충실합니다. 오디오가이드 청취 위한 이어폰 챙기세요.
6전시실
이번 김창열 전시회는 총 3개의 전시실에서 열리는데요. 첫 전시공간인 6전시실 입장합니다.
온라인 예약하신 분은 스마트폰의 QR을 현장예매 하신 분들은 티켓 QR 인식하시고 입장하시면 됩니다. 7관도 필요하니 잘 챙기세요.
김창열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6관의 모습, 홍보물에 보인 거대한 물방울 조형물이 보이네요.
01. 상흔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김창열은 열다섯에 홀로 월남해 성북회화연구소에서 미술을 배우고 서울대 미대에 진학했으 한국전쟁으로 학업이 중단됩니다. 그는 해방과 분단, 전쟁 속에서 “너무 많은 죽음과 잔인함을 봤다”고 회상하며, 삶과 죽음을 주제로 삼게 됩니다.
전쟁 중 경찰전문학교에 입교해 제주 근무 시에도 그림을 이어갔고, 해외 예술지와 문학을 접하며 창작을 넓혔습니다.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를 창립해 앵포르멜 운동을 주도했는데, 이는 단순 양식이 아니라 전쟁의 상처를 새기고 죽음을 위로하는 제의와 같았습니다. 당시 다수 작품에 ‘제사’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이 맥락이었습니다.
제사 (1965)
김창열 제사 작품은 김창열이 1965년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입니다. 당시 한국은 정부 통제와 재정 부족으로 해외 활동이 가능한 예술가가 극히 드물었습니다.
김창열은 일본 『미술수첩』, 프랑스 『오주르뒤』 같은 미술지의 흑백 도판과, 해외공보처를 통해 접한 『타임』, 『라이프』의 컬러 화보로 해외 동향을 겨우 파악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미술제는 세계 미술의 흐름을 인식하고, 각국 작가들이 교류할 수 있는 귀중한 장이었습니다.
‹제사›는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 무대와 만난 작품입니다. 화면에는 총탄 자국을 연상시키는 불규칙한 구멍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훗날 김창열 회화의 핵심 모티프인 물방울 묘사를 예고합니다. 이후 그는 1973년 제1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명예상을 수상하며 국제적 입지를 굳혔습니다.
김창열 제자 연작
김창열이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할 무렵, 한국 미술계에는 서양의 앵포르멜 미술이 유입됩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출현한 비정형 추상 운동으로, 전통을 거부하고 즉흥적이며 감정적인 표현을 중시하며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 존재의 불안을 드러냈습니다.
전후 혼란 속에서 한국 미술계는 이를 온전히 받아들일 토양이 부족했지만, 김창열과 ‘현대미술가협회’ 작가들은 앵포르멜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습니다. 그는 전쟁의 상처와 고통, 총탄 자국 같은 거친 표현을 반복하며 시대적 비극을 마주했고, 이는 현실 극복의 몸부림이자 예술 확장에 대한 열망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도 속에서 한국 현대미술 역시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김창열 전시회 첫 공간 '상흔'에는 작가의 제사 작품들과 함께 '무제' 작은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물방울 작가로 알고 있던 김창열 작품세게의 시작을 만나볼 수 있었네요.
국립현대미술관 6전시실 지하로 이동합니다.
계단을 통해 다시 아래로 내려가게 되는데요. 약간 경사진...
02. 현상
김창열 전시회 두 번째 섹션입니다.
1965년 김창열은 김환기의 추천으로 록펠러 재단 지원을 받아 뉴욕에 진출합니다. 미국은 전후 문화 외교를 통해 미술 위상을 높이고 있었고, 그의 체류도 그 일환이었습니다. 그러나 뉴욕에서 앵포르멜 회화는 주목받지 못했고, 소비사회 속 이질감은 소외와 회의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당시를 “전쟁보다 힘든 악몽 같은 시간”으로 회고했습니다.
이 시기 그의 회화는 전환점을 맞습니다. 두껍고 거친 질감 대신 매끈한 화면과 기하학적 형태가 등장하고, 색 띠 안의 구형 이미지와 팽창하는 듯한 원근감이 반복됩니다. 넥타이공장 노동을 통해 습득한 스프레이와 스텐실 기법도 작품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1969년 뉴욕 생활을 접고 파리로 옮기면서 또 변화가 일었습니다. ‘현상’ 연작에서 차가운 기하학은 녹아내리듯 유기적 형상으로 변했고, 이는 인체의 점액질을 연상시켰습니다. 김창열은 이를 ‘창자 미술’이라 부르며 신체·물질, 추상·재현의 경계를 탐구했습니다. 이 실험은 곧 이어질 ‘물방울’ 회화의 중요한 전조가 되었습니다.
전시장 좌우로는 작가의 앵포르멜 시기의 작품들이 중앙에는 작가의 소품들과 스케치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잘 보관 하셨네요.
구성연작
세밀하게 묘사된 둥근 구체들은 화면 중심축에 놓여 키아로스쿠로 기법으로 부피감이 강조됩니다. 구체의 윤곽을 따라 방사형으로 퍼지는 색채 레이어는 내밀한 형태들이 안으로 침잠했다가 다시 돌출되는 듯한 리듬을 만듭니다.
앵포르멜 시기의 거친 점들은 뉴욕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응축된 구체로 변형되며, 내면의 뜨거운 응어리가 차갑게 굳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김창열은 이때 초현실적 효과와 옵아트를 연상시키는 시각적 연출을 발전시켰고,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옵아트 작가 래리 푼스에게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기 작품에는 정육면체, 삼각형 등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가 등장하며, 방사형 색채 레이어 속에서 어긋나거나 분할되며 독특한 긴장을 형성합니다. 의인화된 형상과 날카로운 기하학적 구조의 대비는 전쟁의 상흔을 여전히 드리웁니다. 한편, 록펠러 재단 지원이 끊기자 넥타이 공장에서 생계를 이어갔고, 이때 익힌 스텐실과 스프레이 기법이 작품 속에 활용되었습니다.
현상작품
뉴욕에서 김창열은 경제적 어려움과 작업에 대한 무관심 속에 지쳐 결국 귀국을 결심했습니다. 록펠러 재단은 그에게 귀국 경유지로 파리, 로마, 아테네 등을 거치는 세계 일주 항공권을 제공했고, 1969년 12월 파리에 도착한 그는 평생의 정착을 선택합니다. 처음에는 비 새고 난방조차 되지 않는 다락방에서, 이후에는 파리 외곽 팔레조의 허물어진 마구간에서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이 마구간은 오랫동안 그의 작업실이자 사유의 공간이 됩니다.
환경 변화와 함께 작품에도 전환이 나타났습니다. 뉴욕 시기의 냉각된 점들은 점액질처럼 흘러내리고, 찢긴 캔버스 틈새로 액체가 새어 나오는 형상이 등장했습니다. 이 흐물거리는 액체 덩어리는 단순한 추상 표현을 넘어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김창열은 이때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인체가 뒤틀린 살덩이로 표현되는 베이컨의 회화는 그에게 전쟁과 폭력의 흔적을 새롭게 시각화할 언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뉴욕에서 이어진 표현주의적 회화는 파리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밤에 일어난 일
김창열은 표현주의 회화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조형 형식을 모색하던 중, 화면의 점들이 투명해질 수 있다는 착상에서 물방울 형상을 떠올립니다. 그는 흰색이나 검은색 바탕 위에서 물방울과 그림자의 관계를 실험적으로 그려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캔버스를 재활용하려 물을 뿌려두었다가 뒷면에 맺힌 물방울을 발견하며, 그 충일한 생명감과 조형적 가능성을 직관적으로 체감했습니다. 점이자 동시에 살아 있는 존재처럼 보이는 물방울은 회화적 성취이자 조형적 결론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깨달음은 곧 ‹밤에 일어난 일›로 이어졌습니다. 어두운 바탕 위 투명하게 떠 있는 한 방울은 작업실의 어슴푸레한 공간을 반사하며 김창열 회화의 전환점을 상징합니다. 이후 그는 평생 물방울에 천착하며 존재와 상처, 침묵과 사유를 응축해 나갔습니다.
이 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김창열 전시회 물방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다음 공간으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