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작은 전시회 소개입니다.

3층 분청사기, 백자 실에서 열리고 있는 '각진백자 이야기'  

 

오늘은 전시장 동선에 따라 소개합니다.

| '각角진 백자 이야기'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회 '각角진 백자 이야기'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3층 분청사기·백자실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전시회는 조선 17세기부터 등장하여 18세기를 중심으로 유행한, 외면을 모깎기한 백자에 대해 그 제작기법과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데요. 전시 공간은 해당 전시실 중간 정도 공간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도자기,
분청사기와 백자

분청사기(粉靑沙器)와 백자(白磁)는 조선시대(1392-1897)를 대표하는 도자기입니다.

분청사기는 회청색 흙으로 만든 그릇에 백토를 입힌 뒤 여러 기법으로 장식한 도자기로 분청사기는 고려 말 상감청자에서 유래됐으며, 16세기 중엽까지 만들어졌다고합니다.. '분청사기'라는 용어는 미술사가 고유섭(高裕燮, 1905-1944)이 1930년대에 '분청회청사기(粉靑灰靑沙器)'라는 미술사적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백자는 흰 백색의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유약을 입힌 다음, 1,300도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 낸 도자기입니다. 청자보다 더 우수한 기술로 제작된 백자는 조선시대에 널리 쓰였는데, 조선 백자는 절제미와 우아한 품격을 갖춘 뛰어난 품질의 도자기입니다.

조선 건국 후 15세기 중반까지 전국의 자기소와 도기소에서 제작된 분청사기와 일부 지역에서 생산된 백자가 중앙 관청에 진상(進上)됐다. 1467년(세조 13) 무렵 조선 도자기 생산체계를 개편하면서 전국의 주요 요지에 관영자기소를 설치하고, 15세기 말에는 도자기 제조법이 체계가 확립되었는데요. 공납 제도(국가에 바치는 진상)는 공물을 납부할 사람을 필요성에 따라 정했으므로 16세기 중엽에는 분청사기 제작이 중단되었습니다.

 

사기장의 공방

사람 흙 불 물... 분청사기와 백자를 만드는 공간과 함께

 

분청사기

먼저 분청사기로 부터 전시는 시작됩니다.

 

분청사기상감인화모란무니용머리주자
粉靑沙器象嵌印花牡丹文龍頭注子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분청 /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음식 - 주전자
크기 높이 30.2cm, 입지름 6.8cm, 바닥지름 7.1cm, 전체너비 20.0cm
소장품번호 건희897

 

분청사기 상감 구름 용무늬 항아리 (지정문화유산 국보)
국보 분청사기 상감 운룡문 항아리(1991), 粉靑沙器 象嵌 雲龍文 立壺), 粉靑沙器象嵌印花雲龍文壺, 분청사기 상감 인화 운룡문 호
전시명칭 분청사기 상감 인화 구름 용 무늬 항아리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출토지 경상북도 - 안동시
재질 도자기 - 분청 /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저장운반 - 항아리
크기 높이 48.5cm, 몸통지름 29.7cm
소장품번호 덕수2411

 

당당한 양감과 풍만함이 돋보이는 대형 항아리로, 조선시대 분청사기 제작과 함께 등장한 형태입니다. 아가리가 밖으로 벌어지고 몸통이 길며, 바닥이 뚫려 있는 독특한 구조를 지녔는데, 이는 성형한 도자기 벽에 접시로 바닥을 붙이는 중국 원대 대형 자기 제작방식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무늬는 상감과 인화 기법이 병용되었으며, 윗부분에는 원말 명초 청화백자에 나타나는 여의두 무늬가, 중간에는 용 무늬가, 하단에는 연꽃잎 무늬가 상감되었습니다. 밝은 회색 태토 위에 담청색 투명 유약이 입혀져 있으며, 가는 균열이 특징적이다. 전체적으로 원·명의 선덕자기 영향을 받았지만, 자유롭고 대담한 조선 도자기의 개성이 드러난 작품입니다.

 

백자 상감 연꽃 넝쿨무늬 대접 (지정문화유산 국보)
다른명칭 국보 백자 상감 연화당초문 대접(1974), 白磁 象嵌蓮花唐草文 大楪, 白磁象嵌蓮唐草文大楪, 백자 상감 연당초문 대접
전시명칭 백자 상감 연꽃 넝쿨무늬 대접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음식 - 대접
크기 높이 7.6cm, 입지름 17.5cm, 바닥지름 6.2cm
소장품번호 동원887

 

고려 연질 백자의 계통을 이은 작품으로, 조선시대 상감백자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 중 하나입니다. 조선시대 상감백자는 일반적으로 유약이 거칠고 상감 기법이 미숙한 경우가 많지만, 이 대접은 마무리가 깔끔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잘 살렸으며, 무늬 표현도 섬세합니다. 단정한 형태에 맞춰 간결하게 표현된 넝쿨 무늬는 중국 원말~명초 청화백자의 문양과 유사하며, 선은 예리하면서도 부드럽다. 대접의 형태는 중국 명나라 초기와 닮았지만, 상감 기법과 유약의 특징은 고려백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광주 분원 관요에서 15~16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양한 분청사기에서 백자로

분청사기는 지역마다 뚜렷한 개성을 보이며 발견됐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정교한 무늬가 돋보이는 인화 기법의 분청사기가 주로 생산되었습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백토를 바르고 무늬를 새긴 조화 기법, 무늬 주변의 백토를 파내어 무늬를 도드라지게 하는 박지 기법이 많이 쓰였으며. 철화 기법의 분청사기는 충청남도 공주 학봉리에서 생산되었으나 전라남도 고흥 운대리 가마터에도 소량 제작되었습니다. 무늬가 비교적 규칙적인 인화 기법 분청사기와는 달리 조화 기법, 박지 기법, 철화 기법의 분청사기는 무늬를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추상화하는 등 대범하고 생동감 있는 표현이 특징입니다.


15세기 후반 이후에는 그릇 표면에 백토를 바르거나 백토 물에 그릇을 직접 담가 백토를 입히는 분장 기법이 사용되었다. 분청사기는 점차 백자와 비슷한 모습으로 바뀌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분청사기 박지 모란무늬 자라병 (지정문화유산 국보)
다른명칭 국보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1991), 

粉靑沙器 剝地鐵彩牡丹文 扁甁, 粉靑沙器剝地鐵彩牡丹文자라甁, 분청사기 박지 철채 모란문 자라병
전시명칭 분청사기 박지 철채 모란무늬 자라병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분청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음식 - 병
크기 높이 9.4cm, 지름 24.1cm
소장품번호 덕수6231

 

자라를 닮은 모습 때문에 자라병이라 불리는 이 병은 끈을 매어 휴대할 수 있도록 제작되어 여행용 물병이나 술병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로 옹기로 만든 생활용기이기 때문에 분청사기나 백자로 된 것은 드물다. 이 자라병은 몸체 바탕에 백토를 씌워 희게 분장한 후, 모란 무늬를 그리고 바탕을 칼로 긁어 무늬가 도드라지게 표현하였습니다. 긁어낸 바탕에는 철분이 많은 안료를 덧발라 구워 검은빛을 내어 모란꽃이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높였습니다. 대담하고 활발한 모란 구성과 여백을 메운 흑갈색 철채 장식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잘 드러냅니다. 같은 시대 백자에도 자라병이 간혹 보이지만, 이 병처럼 낮고 원형의 두 면을 위아래로 맞붙여 완성한 형태는 흔하지 않다고합니다.

 

조선 백자의 품격, 청화백자

청화백자는 당대 최고급 도자기로 왕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귀한 도자기였다. 조선 초에는 중국 명나라에서 들여온 청화백자를 사용했으나 15세기 중반부터는 직접 제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식성이 강한 중국 명나라 청화백자를 모방했으나 점차 조선 고유의 색채를 띠며 우아한 청화백자가 제작되었다.


청화백자 제작에 사용된 청화 안료는 고가의 수입품으로 이를 관리하고 백자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궁중에 소속된 전문 화원이 담당했다. 성현(1439-1504)의 『용재총화』의 지리지에서 「신종동국여지승람」에 매번 사용의 책임 관리가 궁중 서화 담당 화원을 이끌책 임 관으로써 도자기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청화 안료의 수입이 어려울 때에는 철화 안료로 그린 철화백자가 만들어졌는데, 청화백자와 마찬가지로 우아하고 세련된 화원의 솜씨가 담겨 있다.

 

 

백자 청화 매화 대나무 새 무늬 항아리 ( 지정문화유산 국보)
다른명칭 국보 백자 청화매조죽문 유개항아리(1974), 白磁 靑畵梅鳥竹文 有蓋壺, 백자 청화 매조 죽문호
전시명칭 백자 청화 매화 새 대나무무늬 항아리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저장운반 - 항아리
크기 높이 16.5cm, 입지름 6.2cm
소장품번호 신수4522

 

청화 안료로 매화·대나무·새를 그린 청화백자로, 초기의 중국식 화려한 문양이 사라지고 조선 특유의 정취가 드러나는 시기 작품이다. 중앙 무늬는 짙고 강하게, 뚜껑·아랫부분·주둥이 주변은 옅게 표현해 입체감과 사실성을 높였다. 관요의 청화백자 그림은 궁중 화원이 담당해, 이처럼 우아한 화격을 지닌 걸작이 많이 제작되었다. 이 항아리 역시 원숙한 필치로 대나무·새·매화를 세련되게 묘사해 강한 회화적 성격을 보여준다.

728x90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 ( 지정문화유산 국보)
다른명칭 국보 백자 철화 매죽문 항아리(1974), 白磁 鐵畵 梅竹文 壺
전시명칭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저장운반 - 항아리
크기 높이 40cm, 몸통지름 37.9cm
소장품번호 덕수6294

 

품격 있는 장중한 형태와 뛰어난 그림으로 알려진 16세기 대표 철화 백자이다. 몸체에는 대나무와 매화나무를 사실적인 필치로 묘사하였다. 대나무는 몰골법으로 농담을 살려, 댓잎과 줄기의 표현을 통해 강한 절개와 고결함을 나타냈다. 반대편 매화나무는 휘어진 등걸과 곧은 잔가지의 대조로 서정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세련된 필치로 볼 때 궁중 화원의 솜씨임이 분명하며, 이는 사옹원 소속 관리가 매년 도화서 화원을 인솔해 관요에서 도자기 그림을 그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16세기 화단의 사군자 기법을 만나볼 수 있다.

 

다음 전시공간으로 이동합니다. 

 

백자로 꽃피운 도자 문화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이라는 연이은 전쟁으로 17세기 조선 사회는 어려움에 처했다. 궁중에서는 예배용 기물을 고쳐 쓰고 관요에서는 품질이 떨어진 백색 백자를 제작했다. 수입품인 청화 안료 대신 쉽게 구할 수 있는 철화 안료로 장식한 철화백자를 제작해 궁중 의례와 외국 사신 접대에도 사용했다.

17세기 후반부터는 관요에서 일하는 장인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사적인 백자 제작을 허용하는 변화가 있었다. 18세기 전쟁 복구를 완료하고 경제 호황이 증가하면서 백자 수요층이 확장되고 사대부는 물론 부유한 일반 백자가까지 확대되었다. 깨끗하고 깊은 빛은 백자가 다양하게 만들어졌고 특히 문의 취향이 반영된 청화백자가 유행했다.

 

조선의 백자라면 거대한 달 항아리가 빠질 수 없죠

 

[서울 전시회 추천]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 리움 미술관

지난 2월 28일 부터 5월 28일 까지 이태원 리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회 관람후기 입니다. 현재 리움미술관에서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회와 함께 오늘 소개하

www.a4b4.co.kr

 

백자 철화 포도 원숭이무늬 항아리 ( 지정문화유산 국보)
다른명칭 국보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1962), 白磁 鐵畵葡萄猿文 壺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저장운반 - 항아리
크기 높이 30.8cm
소장품번호 본관2029

 

조선 후기 철화백자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걸작이다. 몸통 전면에는 여백의 미를 살려 포도넝쿨과 원숭이를 표현하였다. 철화 안료가 짙게 설채되어 발색이 강하고, 일부는 번지거나 뭉그러져 섬세한 묘사가 드러나지 않지만, 깊고 진중한 색감과 온화한 유백색 바탕, 능란한 구도가 어우러져 원숙한 세련미를 보여준다.

 

조선 왕실과 의례용 백자

조선 왕실의 대표적인 의례 용기로 ‘용준’이 있다. 용준은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백자 항아리에 청화나 철화 안료를 써서 용무늬를 그린 것으로, 조선 왕실 연회와 제례에서 술을 담거나 꽃을 꽂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조선 초 명나라 용무늬 청화백자를 본떠서 청화백자 용준을 제작했고 이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에 운영된 경기도 광주 관요 가마터에서 나온 용준 조각으로 알 수 있다. 온전한 형태로 전하는 용준 중에서 가장 연대가 이른 것은 17세기 전반의 철화백자 용준이다. 사회가 안정되기 시작한 17세기 후반부터 다시 청화백자 용준을 제작했다. 1754년(영조 30) 기록에 “청화 안료로 그림 그리는 것은 사치한 풍속이므로 일체 금하지만, 용준은 예의로 둔다.”라고 했을 정도로 용준은 왕실의 의례와 연회를 상징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다른 도자기의 방황을 청화 안료로 그린 항아리는 청화백자 용준과 양식 변화를 함께 하며, 왕실의 의례를 비롯해 궁중의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백자실 절반정도 감상했네요. 전시장 한 켠에 이런 가림막이 설치된 공간이 있는데요. 

바로 오늘 포스팅 메인 공간 입니다. 

 

각角진 백자 이야기

조선 17세기, 그릇의 표면에 각(角)이 진 백자가 새롭게 나타났습니다. 물레로 만든 그릇의 겉면을 육각(六角)이나 십각(十角)으로 ‘모깎기’한 것입니다. '모깎기'는 모서리가 지게 깎는다는 의미의 우리말인데, 건축이나 공예품에서는 모서리가 지게 깎되 날카롭지 않게 깎아내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백자에서는 17세기부터 나타나 18세기를 중심으로 유행했고 19세기에도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백자를 각병(角瓶), 각호(角壺) 등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릇 표면을 각지게 하는 것은 중국 도자기에도 나타나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조선의 독특한 특징을 보여줍니다. 그릇을 만들고 나서 겉면을 깎아내었기 때문에 안쪽에는 각이 지지 않습니다. 외면은 각졌지만 모서리가 날카롭지 않은 까닭에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백자 표면의 여러 면으로 나눠서 여러 그림을 나눠 그리고 시구(詩句)를 한 줄 한 줄 써넣기도 했지만, 하나의 그림을 여러 면에 걸쳐 그러 넣기도 하였습니다.

 

 

 

꽃, 산수(山水), 인물 등의 그림과 시의 내용은, 모깎기한 백자를 애호한 이들이 문의 취향을 지녔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들 각진 백자는 전란(戰亂)으로 침체되었던 백자 생산이 다시금 부흥하는 시기에 등장하고 유행하여 주목됩니다.

한편 18세기 들어 사대부가를 중심으로 가문의 제사가 늘어나고 일상용기와 같은 형태의 제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급을 높이거나 각지게 깎아내어 구별하기도 했습니다.

이 그릇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관심을 두었던 건 백자의 각(角)이었을까요, 면(面)이었을까요. 새롭게 등장한 각진 백자는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주었을까요.

검소함을 강조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각병의 도드라진 각이 조화로운 백자의 은근한 멋을 함께 느끼게 했을 것입니다.

 

시가 쓰여진 백자 청화 매화 무늬 각병
전시명칭 백자 청화 매화무늬 병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음식 - 병
크기 높이 39.4cm, 입지름 7.7cm
소장품번호 덕수1138

 

시가 쓰인 백자 청화 산수 인물무늬 각진 병
다른명칭 白磁靑畵山水人物文詩銘角甁, 백자 청화 산수인물문 시명 각병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음식 - 병
크기 현재높이 32.8cm, 입지름 4.8cm, 몸통지름 18.3cm, 바닥지름 9.8cm
소장품번호 동원447

 

이 백자 청화 산수·인물무늬 각병처럼, 시문과 산수도가 부분적으로만 맞거나 전혀 맞지 않는 사례가 더 많다. 이 병은 목이 길고 몸체가 둥글게 부푼 팔각병이다. 앞·뒷면에 큰 능화창을 두고 그 안에 산수문을 넣었는데, 한쪽에는 신선으로 보이는 인물이 흰 새 두 마리를 바라보고, 다른 쪽에는 피리를 부는 사람이 소를 타고 간다. 창 사이에는 ‘우후청강흥(雨後淸江興)’과 ‘회두문백구(回頭問白鷗)’라는 시구가 적혀 있다. ‘비 온 뒤 맑은 강의 흥취, 머리 돌려 흰 갈매기에게 묻는다’ 정도로 해석되며, 지은이는 김정국(1485 ~ 1541)이다. 이 시 내용은 산수문의 한 장면과 대응되는 것으로 보인다. 굽다리는 각지고, 담청색을 띤 백자유가 시유되었으며, 굽바닥에는 ‘二’로 보이는 음각 명문이 있다.

 

백자 철화 난초무늬 팔각병

다른명칭 白磁靑畵蘭草文角甁, 백자 청화 난초문 각병

전시명칭 백자청화난초문각병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음식 - 병

크기 높이 41.1cm, 입지름 5.9cm, 바닥지름 11cm

소장품번호 동원425

 

몸체 표면이 여덟 면으로 각이 진 각병으로, 조선 중기(17~18세기 중반)부터 제작되기 시작했으며, 후기로 갈수록 몸통이 더 불룩해지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우윳빛 기면에 옅은 청화 안료로 난초와 풀꽃을 그렸다. 가는 붓선으로 여백을 많이 두고 간결하게 무늬를 표현한 방식은 임진왜란 이후 부흥한 조선 중기 청화백자의 특징이다. 이 문양의 각병은 달항아리와 함께 경기도 광주 금사리 관요에서 주로 생산되었다. 굽은 안바닥을 얕게 깎았으며, 접지면과 안바닥 유약을 닦아내고 모래받침을 받쳐 구운 흔적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회 '각진백자 이야기'에서는 각진병과 함께 각진연적, 각진필통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백자 청화 대나무 시명 연적
다른명칭 白磁靑畵竹文詩銘硯滴, 백자 청화 죽문 시명 연적
전시명칭 시가 쓰인 백자 대나무무늬 연적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주생활 - 생활용품/가전 - 문방구 - 연적
크기 높이 8.5cm, 너비 11.9cm
소장품번호 신수645

 

몸통을 8각형으로 만들고 윗면을 약간 볼록하게 한 연적이다. 윗면에는 청화 안료로 대나무를 시원하게 그렸으며, 8각형 몸통 측면 각 면에는 시가 적혀 있다. 시의 내용은 먹을 갈 때 필요한 물을 담는 그릇의 쓰임새와 관련된 것으로, 玆水之用 물을 담는데 쓰이는 용기라, 虛中受 빈 가운데 얻기도 하고, 而時出 때때로 내보내기도 하니, 於無有 무에서 유가 되는구나, 道其在 도가 거기에 있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금은 독특한 조선백자를 만나보게 되었는데요. 

 

백자시문각병
다른명칭 白磁詩文角甁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음식 - 병
크기 높이 27.5cm, 입지름 4.9cm, 바닥지름 8.4cm, 몸통지름 10.8cm
소장품번호 건희1735

반응형

'수복'이쓰인백자청화대나무무늬조롱박모양병
다른명칭 白磁靑畵'壽福'銘竹文瓢形甁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음식 - 병
크기 높이 19.4cm, 입지름 4.1cm, 바닥지름 6.9cm, 너비 10.3cm
소장품번호 건희1824

 

그리고 각진 접시들...

 

'현'자가 쓰인 백자 청화 팔각 병
다른명칭 白磁靑畵八角玄字文甁, 백자 청화 팔각 현자문 병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음식 - 병
크기 높이 28.8cm, 입지름 4.6cm, 바닥지름 10.1cm
소장품번호 남산504

 

 

백자면취제기(십각)
다른명칭 白磁面取祭器(十角)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사회생활 - 의례생활 - 제례 - 제기
크기 높이 7.5cm, 입지름 18.0cm, 바닥지름 10.5cm
소장품번호 건희2812

 

그리고 전시장 한 켠에 위치한 모니터를 통해 각진백자에 대한 이야기와 재현된 제작과정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기존의 둥근 모양의 백자와는 다르게 또 다른 정성과 조형미를 보여주네요.

 

여기까지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회 '각진백자 이야기' 공간입니다.

그리고 분청사기·백자실 마지막 전시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새로운 취향과 백자 제작의 다양화

19세기에는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부유층이 늘어나고 중국·일본과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이전에는 없던 다양한 백자 그릇이 제작되었다. 이 시기에 작성된 백과사전류 책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정조 때 청화백자 제작을 금지한 뒤로 백자 위에 꽃무늬를 볼록하게 구워내더니, 오례치 않아 다시 청화를 사용하게 되었다.”라고 하여 당시 고급 백자의 유행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점차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화려한 도자기가 왕실을 물론 일반 백성의 생활 속에 폭넓게 자리를 잡아 갔고, 이러한 취향은 곧 백자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또한 차와 술을 소비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다양화된 형태의 주자와 잔이 만들어졌고 각이 진 병 등 새로운 형태의 그릇이 등장했다. 무늬를 도드라지게 표현하거나 청화와 철화 안료로 그릇 전면을 장식 기법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백자 동화 대나무 모양 연적
다른명칭 白磁銅釉笙簧形硯滴, 생황모양연적
전시명칭 백자 동채 생황모양 연적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주생활 - 생활용품/가전 - 문방구 - 연적
크기 높이 22.1cm, 지름 12.1cm
소장품번호 덕수4312

 

생황을 본 떠 만든 연적로, 17개의 가느다란 대나무 관대가 통에 둥글게 박혀 있는 악기이며, 국악기 중 유일하게 화음을 낸다. 백제금동대향로에서 보이듯 도교 제사에서 배소나 생황 같은 관악기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죽관에는 진사를, 동체와 주구에는 청화를 칠했고, 죽관 제1절과 동체 상단에는 백색 띠를 돌렸다. 동체에는 백색으로 ‘만수무강(萬壽無疆)’ 4자를 쓰고 그 사이에 점점이 운문을 표현하였다. 주구는 생황의 부서를 사실적으로 만들었으며, 반대쪽 동체 상단에는 작은 공기공이 있다. 조선시대에 만든 상형 연적 중에서도 우수작으로 꼽힌다.

 

백자 동채 야외용 합
다른명칭 白磁 酒盒
전시명칭 백자 동채 삼층 합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음식 - 합
크기 높이 20.1cm, 입지름 12.9cm
소장품번호 덕수1426

 

겉보기에는 3단의 일반 찬합처럼 보이지만, 술과 안주를 함께 담는 야외용 합이다. 가운데 단은 술병, 윗단과 아랫단은 안주 그릇이나 술잔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바깥 면에는 동화 안료를 고르게 칠하고, 옅은 푸른색을 띤 백색 유약을 씌웠다. 굽는 과정에서 동화 안료의 농담이 변해 깊고 차분한 밝은 자주색을 띠며, 윗단을 열면 내부의 백색이 드러나 붉은색과 흰색의 선명한 대비가 돋보인다. 무늬나 장식 없이 색감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백자양각매화문탁잔
다른명칭 白磁陽刻梅花文托盞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음식 - 탁잔
크기 전체높이 11.4cm, 지름 8.2cm, 받침지름 13.3cm
소장품번호 덕수1576

 

백자 청화 복숭아모양 연적
다른명칭 白磁靑畵仙桃形辰砂入硯滴, 백자 청화 선도형 진사입 연적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분류 주생활 - 생활용품/가전 - 문방구 - 연적
크기 높이 10.8cm
소장품번호 남산160

 

오늘은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분청사기·백자실 관람후기 였습니다. 전체적인 관람 시간은 약 1시간 전후 생각하시면 됩니다.

 

 

728x90
728x90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관람후기입니다.

 

이번 전시회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로버트리먼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인데요. 특히 모네, 르누아르 등의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부터 초기 모더니즘 작품까지 그의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 전시회 오디오가이드, 도슨트, 예약, 웨이팅 등 다양한 전시회 정보는 아래 지난 포스팅 참고하세요.

 

 

로버트 리먼 컬렉션 관람후기 : 도슨트, 웨이팅, 주차, 아트샵, 도록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전시회 관람후기입니다. 저는 얼리버드티켓팅 후 전시회 첫 날 방문 했는데요. 생각보다

www.a4b4.co.kr

 

이번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전시회는 총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오늘은 전반부 3개의 섹션에 소개된 작품과 구성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프롤로그 : 빛의 여정

언뜻 보면 이 그림은 레이스 뜨는 여인을 부드러운 빛과 색감으로 정교하게 묘사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 같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화가는 초현실주의의 선구자 살바도르 달리로, 미국 수집가 로버트 리먼의 의뢰로 그려졌습니다. 꿈과 환상을 표현하던 달리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작품입니다.


달리는 왜 이 그림을 그렸고, 리먼은 왜 의뢰했을까요? 리먼 가문은 거장들의 작품 수집을 중시했지만, 페르메이르만은 소장하지 못했습니다. 리먼은 달리가 페르메이르의 복제품이 걸린 집에서 자란 것을 알고 그의 컬렉션의 빈자리를 채우려 했습니다.
로버트 리먼은 아버지 필립 리먼과 함께 예술 수집의 열정을 이어갔는데. 그의 컬렉션은 한 미국 수집가의 독특한 취향을 보여주며,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까지 프랑스 화가들의 생동감 있는 예술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레이스를 뜨는 여인 (페르메이르 작품을 모사)

살바도르 달리 (1904–1989) 1955년
캔버스에 유화,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 (1975.1.232)

 

언뜻 보면 이 작품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페르메이르의 작품처럼 보입니다. 작품속에서  레이스를 뜨는 여인을 부드러운 빛과 색감으로 섬세하게 표현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작품의 화가는 초현실주의의 선구자 살바도르 달리입니다. 기이한 꿈의 세계를 그리던 달리답지 않게 매우 낯선 분위기의 작품 입니다. 이 그림은 미국 수집가 로버트 리먼의 의뢰로 제작되었습니다.


리먼 가문은 페르메이르 작품을 원했지만 얻지 못했습니다. 달리는 어릴 적 집에 걸린 페르메이르 복제화를 보며 자랐고,
리먼은 그 인연을 알고 컬렉션의 빈자리를 채우려 달리에게 부탁했습니다. 수집가의 열정과 화가의 특별한 사연이 어우러져 이 독특한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이렇게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전시회는 시작됩니다.

섹션 1: 더 인간다운, 몸

예술가들은 고대 그리스·로마 조각처럼 ‘이상적인 몸’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연습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이런 전통에 대한 반발이 커졌습니다. 현실 속 인물들이 이상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정면을 바라보며 등장했습니다.


이로써 인체는 전통에서 벗어나 현대적 감각과 예술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새 표현 수단이 되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 누드는 아카데미의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으며, 다양한 형태와 색이 실험되었습니다. 여성도 누드의 모델이 아니라 그리는 작가로 참여하며, 누드를 보는 시선도 더 진지하게 변했습니다.

 

01-01. 전통적인 ‘아카데미의 누드’

서양 미술에서 ‘누드’는 오랫동안 예술가의 실력을 보여주는 핵심 주제였습니다. 남성 누드 작품에 “아카데미”라는 제목을 붙일 정도로, 이는 중요한 교육 과정이었습니다. 아카데미 교육에서는 살아 있는 모델을 보고 그리는 수업이 중심이었지만, 여성은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20세기까지 참여가 제한됐습니다.

역사·신화 작품의 주인공이 주로 남성이었기에, 균형 잡힌 남성 모델이 선호됐고 여성 모델은 18세기 후반까지 금지됐습니다. 인체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은 기법 습득을 넘어 ‘예술의 정수’를 깨닫는 과정이었으며, 대형 작품을 그리는 화가가 되는 공식적인 입문 의례로 여겨졌습니다.

 

방어 자세를 취한 소년 (좌)

에드가 드가 (1834–1917) 1859–1860년 

줄무늬가 있는 담황색 종이에 연필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610)

팔을 들어 올린 소년 (우)

에드가 드가 (1834–1917) 1859–1860년 또는 1861–1862년 

얇은 베이지색 종이에 연필, 검은 분필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609)

 

팔을 들어 올린 남자 (자화상으로 추정)

전칭 귀스타브 쿠르베 (1819–1877) 1840년경 

푸른빛 종이에 흑연, 검은색과 흰색 분필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589)

 

고된 시골 노동자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쿠르베는 1840-1850년대에 20여 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이 작품은 그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여겨진다. 자화상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남성의 체형과 풍성한 머리 모양은 쿠르베의 젊은 시절과 닮았다. 팔과 상체의 근육을 강조한 자세와 손끝을 바라보는 긴장감 있는 시선에서 쿠르베의 특징이 드러난다.

01-02. 목욕하는 사람들’의 변주

목욕하거나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은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부터 르네상스, 근대 회화까지 오랫동안 사랑받은 주제입니다. 특히 자연을 배경으로 인체를 표현할 수 있어 화가들에게 매력적인 소재였습니다. 이상적인 인체, 자연과의 조화, 신화적 분위기를 담은 특별한 장르로 발전했습니다.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야외에서 수영하거나 여가를 즐기는 프랑스 시민들을 생생한 빛과 자연 속에 묘사하며 전통적 주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고전적 구도를 유지하면서 빛과 색채를 실험했고, 성별·인종·관음증적 시선 등 현대적 담론을 담아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었습니다.

 

목욕하는 사람들 

피에르 퓌비 드샤반 (1824–1898) 1864년경 

흑연 위에 수채 윌리엄 A. 퍼트넘 기증, 1928년 (28.216)

 

피에르 퓌비 드샤반은 파리 북쪽 피카르디의 아미앵에서 풍요를 찬양하는 벽화를 제작하며 여러 습작을 남겼다. 이 작품은 피카르디 지역 강가와 우거진 숲을 배경으로 세 여성을 그린 것으로, 그중 하나다. 차분한 색채와 고전적 형태로 이상적이고 목가적인 낙원의 분위기를 묘사했다. 여성들은 정령처럼 표현되어 피카르디의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목욕하는 타히티 여인들 

폴 고갱 (1848–1903) 1892년 

종이에 유화, 캔버스에 붙임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179)

 

세 여인이 물가에서 목욕하고 있습니다.
이국적인 갈색 피부는 짙은 푸른 강가와 대비되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이 그림은 폴 고갱이 번잡한 파리를 떠나 타히티에서 2년간 머물며 그린 작품입니다. 고갱은 강렬한 색감과 단순한 형태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 화가로, 특히 타히티와 남태평양을 소재로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쳤습니다.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목욕하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사랑받는 미술 주제입니다. 자연을 배경으로 여인의 누드를 그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19세기 들어 화가들은 신화나 역사가 아닌, 자신들의 시대를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야외에서 수영하고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이 주제를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고갱 역시 타히티 풍경 속에서 이 주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렸습니다.

 

목욕하는 사람들 

폴 세잔 (1839–1906) 1874–1875년 

캔버스에 유화 조앤 휘트니 페이슨 유증, 1975년 (1976.201.12)

 

목욕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폴 세잔의 초기작이다. 이상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여섯 여인의 누드를 그렸다. 여인들은 누워 있거나  앉아, 기지개를 켜는 등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세잔은 넓고 두꺼운 붓으로 자신의 화풍을 살렸다. 여성들의 얼굴을 흐릿하게 표현해 신화 속 인물인지 당시 사람인지 관람자가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붉은 벽에 걸려 있는 두 점의 실내 누드화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앉은 여성 

앙리 마티스 (1869–1954) 1920년 

캔버스 보드에 유화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195)

 

한 여인이 무늬가 있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나른하게 앉아 있습니다.
두꺼운 검은 선, 화려한 무늬, 활기찬 색감은 앙리 마티스의 대표적 특징입니다. 19세기 후반, 화가들은 인체를 신화 속 이상적인 모습으로만 그리지 않았습니다. 현실 속 사람들의 몸을 새로운 시선으로 담아내며, 화가의 개성과 감각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마티스가 그린 이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손과 발은 실제보다 크고 거칠게 표현되었고, 작품의 배경은 프랑스 동남부 해안의 도시 니스에서 마티스가 머물던 호텔 방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무기력해 보이지만, 전통을 벗어난 새로운 실험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마티스는 여인의 누드를 과감하게 해석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드러냈습니다.

 

누워 있는 여성  

쉬잔 발라동 (1865–1938) 1928년 

캔버스에 유화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214)

 

그림 속 여인은 관람자의 시선을 느끼는 듯 강렬한 푸른색 눈으로 관람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몸과 쿠션을 다 놓기엔 작아 보이는 화려한 무늬 소파에 누워 자세를 취했다. 어두운 선으로 몸의 윤곽을 그리고, 소파 무늬와 비슷한 색으로 피부와 머리카락을 칠했으며, 강렬한 선으로 얼굴의 이목구비를 강조했다. 솔직하면서도 섬세한 표현은 쉬잔 발라동의 모델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전시회에서 느낌 좋았던 프랑스의 화가 쉬잔 발라동의 작품. 여성이 본 여성 누드의 느낌은...

이어서 발라동의 목탄 드로잉 작품도 전시되어 있는데요. 그녀만의 그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습작과 드로잉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의 작품도 보입니다.

 

<모델들>을 위한 습작 

조르주 쇠라 (1859–1891) 1886–1887년 

줄무늬가 있는 종이에 콩테 크레용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704)

 

조르주 쇠라는 세밀한 점으로 색감을 표현한 점묘법 회화로 유명하지만, 질감 있는 종이에 부드러운 검은색 콩테 크레용으로 그린 드로잉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두 손을 모은 한 여인이 벽에 기대어 서 있습니다. 다소 어색한 자세지만, 몸은 빛과 그림자의 경계 속에서 흐릿하게 드러납니다.
선명한 선 대신 은은한 빛으로 표현된 몸은 신비롭게 빛나는 듯합니다. 쇠라는 밝은색을 작은 점으로 찍는 ‘점묘법’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질감 있는 종이에 검은 콩테 크레용으로 그린 드로잉에서도 매혹적인 표현력을 보여줍니다.

쇠라는 파리 살롱전의 권위에 반대하며 1884년 동료 화가들과 독립예술가협회를 만들었습니다. 이 협회는 지금까지도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앉아 있는 여성  

폴 시냐크 (1863–1935) 1906년 

종이에 붓, 먹, 흑연 스코필드 세이어 유증, 1982년 (1984.433.322)

 

화가 폴 시냐크가 수집한 250여 점의 작품에는 조르주 쇠라, 앙리 마티스 등이 그린 누드화가 포함돼 있어 그의 누드 표현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시냐크의 그림 중 매우 드문 누드 드로잉이다. 가벼운 연필 선 위에 굵은 선으로 덧칠한 여성의 모습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위로 틀어 올린 머리로, 어두운색으로 강조했다. 여성의 자세와 몸의 윤곽 표현 방식에서 마티스 누드화의 영향이 드러난다.

 

목욕하기 전 

쉬잔 발라동 (1865–1938) 1908년 

황갈색 종이에 목탄과 분필, 보드에 부착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735)

 

이 시기 여성 화가들은 ‘목욕’이라는 주제로 누드를 그릴 기회를 얻었다. 쉬잔 발라동도 목욕을 주제로 한 드로잉을 많이 그렸다. 이 작품은 한 여성이 목욕 준비를 하고, 옆에 사춘기 소녀가 서 있는 일상의 모습을 담았다. 소녀는 옷을 벗은 채 기다리고 있고, 나이 든 여성은 몸을 수그린 채 준비하고 있다. 소녀의 발치에 놓인 천, 의자 위의 푸른 줄무늬 드레스, 가림막에 걸어둔 흰 가운 등은 분필로 밝게 칠했다. 

 

역시나 발라동의 목탄 드로잉도 독특하네요.

 

옷자락을 든 여성 습작

오귀스트 로댕 (1840–1917) 1908년경 

황갈색 종이에 연필과 비스트르(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갈색 잉크)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697)

 

오귀스트 로댕의 드로잉은 대부분 조각을 위한 밑그림이었다. 그는 스케치북에 옷을 들어 올린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힘 있는 연필 선으로 여성의 형태를 간략하게 표현하고, 선을 번지게 해 몸의 명암을 나타냈다. 겹쳐 그린 팔과 얼굴에서는 운동감이 느껴진다. 조각과 그림 모두 정교한 묘사보다 거칠고 역동적으로 표현한 점에서 동시대 인상주의 화가들과의 연관성을 볼 수 있다.

 

거울에 비친 모습 

앙리 마티스 (1869–1954) 1923년 초 

종이에 목탄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669)

 

목탄을 사용해 전신 거울에 기댄 여성의 누드에서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탐구한 작품이다. 앙리 마티스는 재료를 능숙하게 다루며, 검은 선과 여러 색조의 회색을 번지게 한 그림자, 빛을 강조한 흰색으로 인체의 견고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단단해 보이는 여성의 몸이 그림 전면을 채우고, 거울에 비친 모습은 빛의 대비 효과를 만들어낸다.

 

섹션2. 지금의 우리, 초상과 개성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두 번째 전시공간입니다.

 

19세기 후반,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예술가들은 ‘현대인의 삶’을 새롭게 그리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 이후 새롭게 나타난 계층과 직업, 그리고 생활 방식은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 계층으로 급부상한 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기를 원했습니다.


원래 초상화는 오랫동안 귀족이나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 화가들은 파리의 일상 속 다양한 계층의 사람 들을 그렸고, 인물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그림 속 모델이 누구인지보다, 이 인물이 어떤 성격과 유형을 보여주는 사람인지가 중요해졌고, 화가마다 가진 고유한 양식이 중시 되면서 인물화 속에서도 예술적 개성을 드러낼 수 있게 됐습니다.

 

상당히 어둡고 붉은 방... 조명을 참 잘 사용한 공간이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전시회 두 번째 공간입니다.

 

이젤 앞에 선 마네 

장 프레데리크 바지유 (1841–1870) 1868–1870년으로 추정 

줄무늬 종이에 목탄과 흰색 분필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569)

 

정장용 모자를 쓰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성이 자신감 있는 자세로 붓을 들고 이젤 앞에 섰다. 이 남성은 1860년대 초반 파리 예술계에 큰 충격을 준 근대 화가 에두아르 마네로 추정된다. 장 프레데리크 바지유는 마네를 중심으로 모여 훗날 인상주의 화가로 불리게 된 핵심 인물이었다. 이 드로잉에서 바지유가 마네에게 느꼈던 우정과 존경심을 엿볼 수 있다.

 

02-01. 에두아르 마네의 혁신

마네는 <올랭피아>와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두 점의 과감한 작품을 발표하며 파리 예술계에 충격을 던졌습니다. 이 작품을 선보인 1860년대는 전통적인 회화가 막을 내리고 마침내 ‘현대적’ 회화가 탄생한 상징적인 해로 평가됐을 정도였습니다.

728x90

두 점의 작품은 고전적 주제에 바탕을 두었으나 관람자를 도전적으로 바라보는 여인의 누드를 그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가 그린 작품 속 여성은 19세기 파리의 거리에 실제로 존재할 법한 현실적인 누드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렇듯 마네는 화가로서의 개성을 담은 새로운 누드를 제시함으로써, 회화와 관람자의 관계, 여성의 주체적 의식, 미술의 전통적 역할에 도전하였고, 당대 예술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술을 마시는 두 사람 

오노레 도미에 (1808–1879) 1860–1879년 

종이에 목탄 밑그림, 펜과 잉크, 담채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601)

 

오노레 도미에는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모습을 활기찬 드로잉과 캐리커처로 표현했다. 나이 든 술꾼들을 그린 두 작품처럼, 도미에는 인간의 사회적 유형을 탐구하며 표정과 행동을 묘사한 수많은 그림을 남겼다. 한 그림에서는 지친 듯 우울해 보이는 남성이 멍하니 있는 친구 쪽으로 몸을 기대고 있다. 다른 그림은 도미에가 복잡한 선을 활용한 방식을 잘 보여준다. 한 남성은 이야기하던 중인 듯 가슴을 내밀고 입을 벌리고 있고, 다른 남성은 팔을 기대며 술잔을 들고 있다.

 

봄 

피에르 오귀스트 코 (1837–1883) 1873년 캔버스에 유화 스티븐 & 알렉산드라 코언 기증, 2012년 (2012.575)

 

고대 신화 속 주인공 같은 젊은 연인이 서로를 다정하게 끌어안고 그네를 타고 있습니다.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시간이 멈춘 듯한 이 장면은 고대 신화 속 한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그림은 1873년 파리 살롱전에 소개되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코는 당시 대중이 선호하던 신화를 자주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특정 신화 이야기는 아니지만, 고대의 낙원 ‘아르카디아’를 묘사하는 전통을 따랐습니다.

코는 아카데미 교육을 받아 고전적 규범과 세밀한 기법을 익혔습니다. 청춘과 사랑을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자주 그렸으며,
신화나 문학적 주제를 감각적이고 극적인 장면으로 연출해 살롱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아카데미 교육을 받은 코는 대중의 취향에 맞는 신화 소재를 주로 그려, 19세기 후반 프랑스 아카데미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가면무도회 참가자들 

이문도 데 마드라소 이 가레타 (1841–1920) 1875–1878년 

캔버스에 유화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233)


라이문도 데 마드라소 이 가레타는 초상화와 장르화로 유명하며, 1878년 파리 세계박람회에 이 작품을 출품해 1등상을 받았다.
가장무도회에 참가한 남녀가 온실에 앉아 잠시 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화려한 옷차림, 대리석 테이블 위의 병과 그릇, 활짝 핀 꽃들이 어우러져 장면은 쾌활하고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세밀한 질감 표현에서 화가의 뛰어난 솜씨가 드러난다.


라이문도 데 마드라소 이 가레타는 스페인 출신 화가로, 초상화와 장르화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화려한 색채와 세련된 표현으로 유럽 상류층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스페인 아카데미의 전통과 프랑스 살롱의 화풍을 결합해 우아한 사교 장면과 당대 생활상을 생생히 담아냈다. 그의 작품은 19세기 유럽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된다.

 

페가수스와 벨레로폰 

오딜롱 르동 (1840–1916) 1888년경 

푸른색 종이(변색)에 목탄, 농담 표현, 흰색 분필, 콩테 크레용, 지우개로 밝은 부분 강조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686)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은 자신이 그린 목탄화를 프랑스어로 ‘누와르’(noir, 검은색)라고 불렀다. 그는 이 작품에서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와 그의 주인 벨레로폰을 그렸다. 벨레로폰은 페가수스 옆구리에 기대며 부드럽게 다루고 있다. 벨레로폰보다 크게 묘사된 페가수스는 종이 바깥까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다. 어둡게 칠한 그림자 속에서 형태가 드러나는 부분만 밝게 칠해 명암의 대비를 강조했다.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의 대부분의 작품에는 오디오가이드가 필요없을 정도로 작품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도 이번 전시회의 매력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에두아르 뷔야르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에두아르 뷔야르(Jean-Édouard Vuillard, 1868–1940)는 프랑스의 화가이자 장식 예술가, 판화가로, 1891년부터 1900년까지 나비파(Les Nabis)의 주요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아 순수한 색의 영역과 내부 장면을 조합한 작품을 제작했으며, 색과 패턴을 주제에 혼합하는 방식으로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한 작가인데요. 아마도 로버트 리먼은 이 작가를 더 좋아했나 봅니다.

 

트뤼포 거리가 보이는 창가에서 바느질하는 뷔야르 부인 

에두아르 뷔야르 (1868–1940) 1899년경 

카드보드에 유화, 목판에 붙임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225)

 

에두아르 뷔야르의 어머니 마리는 재봉사였다. 그는 어머니를 자신의 뮤즈라고 말하며, 즐겨 그린 실내 장면에서 어머니는 중심인물로 자주 등장했다. 그림 속 배경은 뷔야르가 어머니와 1899년부터 9년간 살았던 파리 아파트로, 어머니는 거실 창가에서 바느질하고 있다. 집 안은 소시민 계층의 일상용품으로 가득하다. 특히 다양한 질감의 천과 무늬들이 눈에 띄는데, 이는 어머니의 직업과 관련이 있다.

 

실내 장면 

에두아르 뷔야르 (1868–1940) 1900–1905년경 

종이에 유화, 카드보드에 붙인 뒤 목판에 부착 애들레이드 밀턴 데그루트 유증 (1876–1967), 1967년 (67.187.118)

 

에두아르 뷔야르는 실내 초상화를 많이 남겼다. 주로 친구, 가족, 부르주아 계층을 그렸다. 여성이 입은 부풀린 소매의 빨간색 블라우스와 푸른색 긴 치마는 1890년대 유행하던 옷차림이다. 뒤로는 다양한 작품을 놓은 선반이 있고, 위 칸에는 그림 액자를 무심히 기대어두었다. 액자, 선반, 사다리의 가로대 등 여러 사각형 형태로 채워진 배경에서 기하학적인 리듬감이 느껴진다.

 

와로키와 함께 있는 자화상 

에두아르 뷔야르 (1868–1940) 1889년 

캔버스에 유화 알렉스 M. 루이트 기증, 1955년 (55.173)

 

점잖게 차려입은 에두아르 뷔야르는 팔레트와 붓을 들고 서 있다. 정면을 바라보는 눈빛은 날카롭고, 빛과 그림자가 얼굴을 가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화가 뒤편에는 은은하고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또 한 사람이 흐릿하게 그려져 있다. 그는 뷔야르의 친구 와로키로, 어깨 너머 거울에 비친 모습이다. 오른쪽 아래 유리병의 반사된 형체에서 이 그림이 거울을 통해 본 장면임을 알 수 있다.


뷔야르는 스물한 살에 이 신비로운 분위기의 자화상을 그렸다. 이 시기 그는 아카데미 양식을 넘어 감각적인 상징주의로 나아갔다.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기보다 색과 무늬를 활용해 실내와 일상 풍경을 장식적인 공간처럼 구성했다. 이 공간에 전시된 다른 작품에서도 뷔야르가 일상을 바라본 특별한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이번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1은 두개 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섹션 2 지금의 우리, 초상과 개성의 두 번째 파트가 이어서 전시됩니다.

 

02-02. 19세기 프랑스의 여성

19세기 말 산업화와 도시화, 교육 기회의 확대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작품 속 여성의 모습도 새롭게 그려졌습니다. 교외 휴양지에서 여가를 즐기는 가족, 안락한 실내 공간과 정원 에서의 일상 등 근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다양한 모습이 화폭에 담겼습니다.


또한 여성 화가의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당시 여성의 삶을 소재로 섬세한 관찰력과 정서적 공감대를 담은 작품이 그려졌습니다. 여성 화가들은 전통적인 여성상이나 모성 대신 독립된 인격과 감성을 지닌 주체로서의 여성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예술계에서 여성 화가들의 약진과 함께, 변화하는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새로운 가능성과 자율성을 보여주며, 근대적 여성 이미지 형성의 중요한 단면을 반영합니다.

 

분홍색과 검은색 모자를 쓴 소녀 

오귀스트 르누아르 (1841–1919) 1891년경 

캔버스에 유화 캐스린 B. 밀러 기증, 1964년 (64.150)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감각적인 색채와 부드러운 화풍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890년대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르누아르는 세련된 모자를 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자주 그렸다. 이 작품에서 그는 다채롭고 풍부한 색감을 마음껏 사용했고, 각 색은 세밀한 변주로 다양한 색조로 표현되었다. 소녀의 옆얼굴과 모자의 부드러운 곡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 

오귀스트 르누아르 (1841–1919) 1892년 

캔버스에 유화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201)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밝은 색감과 부드러운 붓질로 오늘날에도 가장 널리 사랑받는 인상주의 화가다. 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은 초창기에 예술계의 냉대와 회의적 시선을 견뎌야 했다.


1891년, 르누아르는 프랑스 미술부로부터 뤽상부르미술관에 걸릴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는 국가가 인상주의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악기를 연주하는 소녀들은 미술사의 주요 주제였고, 르누아르는 부르주아 가정의 매력적인 소녀들을 포착해 이 주제를 재해석했다. 1892년, 르누아르는 네 점의 유화 완성작을 남겼고, 이 작품은 그 중 하나다. 다양한 색감을 생동감 있게 부드럽게 표현했고, 섬세한 붓질로 인물과 주변 환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르누아르의 피아노치는 소녀 작품중 두 점이 현재 서울에 있네요 다른 작품은 현재 예술의전당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오랑주리 오르세미술관 특별전 후기 : 오디오가이드, 도슨트, 티켓할인, 굿즈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전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랑주리 - 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 세잔, 르누아르' 전시회 관람후기 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지면 추천 드리지 어려운 실망 가득한 전시

www.a4b4.co.kr

 

소녀의 초상 

메리 커샛 (1844–1926) 1899년 

캔버스에 유화 제임스 스틸먼 컬렉션, 어니스트 G. 스틸먼 박사 기증, 1922년 (22.16.18)

 

한 소녀가 앞치마를 꼭 쥔 채 서 있다. 흘러내린 옷으로 드러난 어깨와 통통한 손이 사랑스럽다. 모델은 파리 교외에 살던 화가 메리 커샛의 이웃, 마고 뤽스였다. 하지만 커샛은 특정 인물로서의 마고가 아니라, 당시 파리 부르주아 계층 소녀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1890년대 이후 커샛은 어린이를 자주 그리며, 아이의 순수함과 자유로움을 표현했다. 그녀의 시선에는 어린이가 지닌 보편적인 순수성과 시대적 분위기가 함께 담겨 있다.

반응형

메리 커샛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단에 완전히 스며든 유일한 미국인이었다. 그녀는 당대 부르주아 계층 여성의 다양한 삶을 그려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이 작품에서 커샛은 교외로 나가 시간을 보내던 한 소녀의 여가 활동에 주목했다. 이는 파리 북서쪽에 살던 그녀에게 익숙한 장면이었다. 깊이감 없는 평면적인 풍경과 아래를 향한 시점은 일본 판화의 영향을 보여준다. 여성의 삶을 섬세한 관찰력과 심리적 깊이로 진지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봄: 정원에 서 있는 마고 

메리 커샛 (1844–1926) 1900년 

캔버스에 유화 루스 암스 바너드 유증, 1981년 (1982.119.2)

 

작품 속 소녀는 파리 교외에 살던 메리 커샛의 이웃 마고 뤽스다. 마고는 50점이 넘는 커샛의 작품에 모델로 등장한다. 커샛은 1890년대부터 어린이들의 모습을 자주 그렸고, 아이의 순수함과 자유로움을 사랑하는 화가의 시선을 잘 담아냈다. 이 작품에서 마고는 옷이 흘러내려 한쪽 어깨가 드러난 채, 통통한 손에 앞치마를 쥐고 있다. 정원에서 놀다 온 듯한 마고의 붉게 달아오른 뺨이 그림에 활기를 더한다.

 

 

화장대 앞에 있는 드니즈 

메리 커샛 (1844–1926) 1908–1909년경 

캔버스에 유화 조콘다 킹 유증, 2004년 (2005.129)

 

‘거울을 보는 여성’은 허영심과 자기 성찰이라는 주제로 오랫동안 다뤄져 왔으며, 메리 커샛은 이 고전적 주제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작품 속 주인공 드니즈는 옅은 분홍색으로 가장자리를 덧칠한 흰색 가운을 입고, 한 손에 손거울을 들고 있다. 당시 유행하던 올림머리를 했고, 뒤쪽 화장대 거울에 머리 뒷모습이 비친다. 커샛은 말년에 시력이 나빠져 작업을 거의 하지 못했지만, 얼굴 세부와 몸, 가운의 표현, 섬세한 색채 조절에서 여전히 능숙한 솜씨를 보여준다.

 

 

마리아 

키스 반 동겐 (1877–1968) 1907–1910년 

캔버스에 유화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230)

 

화가 키스 반 동겐은 네덜란드 출신으로,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했다. 자유분방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당대 파리의 풍경과 사람들을 그렸다. 강렬한 선과 색채를 대담하게 사용해 도시의 여성들을 세련된 인물화로 담아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에서도 색을 섞지 않고 선명한 원색으로 화려하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인물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작품에서 화가는 관람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여인의 큰 눈매와 검은 눈썹을 짙게 강조했다. 선명한 원색으로 화려하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야수파와 표현주의의 대표적 화풍을 드러냈다. 특히 목에 칠한 에메랄드색이 붉은색 의상과 보색을 이루며 뚜렷한 대비를 보여준다. 격자무늬 소매를 표현한 굵고 역동적인 붓 자국이 그림에 강렬한 인상을 더한다.

 

이 작품도 느낌 너무 좋았다.

 

식민지에 파견된 연대 부사관 

알베르 마르케 (1875–1947) 1906–1907년 

캔버스에 유화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192)

 

알베르 마르케는 앙리 마티스, 앙드레 드랭, 모리스 드 블라맹크 등과 함께 야수파의 시작을 알린 화가다. 이 작품에서 마르케는 콧수염을 기른 근엄한 표정의 군인을 그렸다. 제목으로 보아, 이 인물은 프랑스가 동남아시아, 서인도제도, 북아프리카 등지로 식민지를 확장하던 시기에 해외에 파견된 군인임을 알 수 있다. 반짝이는 놋쇠 단추와 황금색 견장, 붉은색과 금색 띠는 짙푸른 군복과 대조를 이루며 야수파 특유의 생동감 있는 색채를 보여준다.

 

오늘은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전시회 4개의 섹션중 앞부분 두 개의 섹션 소개였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는 81점의 작품 중 39점 소개...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로버트 리먼 컬렉션 섹션 3 이후는 다음 포스팅에서 소개합니다.

728x90
728x90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장이야기입니다.

최근 케이팝 데몬헌터스와 굿즈 대란 영향으로 박물관 관람객 증가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장도 주차대란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차요금 인상카드를 꺼내기까지 했지만 주말 주차는 헬 이라는...

 

오늘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과 주말주차, 주중주차 비교, 주차요금 할인 팁 공유합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장 위치 (서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주차는 서문으로 진입하고. 진입후 직진하시다가 오른쪽 소형 주차장 (지하)으로 진입하셔야 합니다.

- 시청방면 : 이태원방면 반포대교 진입 전 용산가족공원 방면 우회전 용산가족공원 입구에서 300M가량 직진
- 강남방면 : 반포대교 첫 삼거리(한강중교앞 교차로) 용산가족공원 방면 좌회전 용산가족공원 입구에서 300M 가량직진
- 삼각지방면 : 1호선 용산역방향 우회전 이촌역에서 용산가족공원 방향 150M좌회전

 

국립앙박물관 주차장 진입로 평일 점심상황입니다.

최근 주차난이 엄청나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정말로 주차하는데 다른 차량 딱 한대 봤네요.

 

국립중앙박물관 평일주차는 다른 어느때보다도 더욱 더 여유가 있네요. 

그래서 전시회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 빠르게 도착해 버렸네요. (얼리버드 티켓이어서 시간 변경도 안된다는...)

 

아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안내와 같이, 주말과 공휴일 등 국립중앙박물관 주말주차에는 한 시간 이상 대기할 수 있다고 하니 대중교통이용 또는 예정시간보다 여유있게 출발하셔야 합니다.

 

| 주차장 난이도는 매우 낮다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장은 미숙한 운전자도 큰 어려움 없이 이용 가능합니다. 진출입구도 분리되어 있고, 급커브나 급경사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차장 도로폭이 여유있어 큰 어려움없이 이용 가능합니다.

 

| 평일 주차공간은 정말로 여유 있구나

지하 주차장 진입하니 여유 공간이 106 + 54로 주차공간이 160 곳이나 있네요. 곳곳에 빈자리들이 보이는데요. 국립중앙박물관 주말주차 상황하고는 완전히 다르네요.

 

|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요금

최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요금 인상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기본 2시간 2,000원, 이후 30분 단위로 500원 씩 부과되었지만, 요금 인상후에는 기본 30분 900원, 이후 10분에 300원 주차요금 부과 됩니다.

보통 박물관에 3시간 이상 이용한다고 가정하면 과거 주차요금 3,000원 에서 5,400원으로 80% 인상되었습니다만 시내 일반 주차장 주차요금 고려하면 아직도 저렴합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요금 할인

전시장 유료관람객도 주차요금 할인은 없습니다. 이 부분이 예술의전당 주차요금 정책과 다른 부분

다만 극장 “용” 공연 관람 시: 사전정산(공연장 내 주차정산기 이용) 또는 관람권 제시 후 기본요금 3,600원이 적용됩니다.

728x90

 

국가유공자의 가족 경차(1,000cc이하) 환경 친화적 차동차 박물관 시설 대관 단체 다자녀 가족 중 세 자녀 이상 방문객의 경우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요금 50%할인 가능합니다.

 

경차나 친환경차량, 전기차는 주차장에 있는 무인주차정산기에서 할인요금 반영됩니다만, 다둥이 가족의 경우에는 유인 정산기에서 확인 후 정산됩니다.

 

저는 하이브리드차량인데요. 아래와 같이 50% 할인적용 되었네요.

저는 210분 주차해서 6,300원 주차요금 나왔는데요. 50% 할인적용 되었네요. 3,200원이면 뭐 아주 저렴한...

728x90
728x90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전시회 관람후기입니다. 

저는 얼리버드티켓팅 후 전시회 첫 날 방문 했는데요. 생각보다는 관람객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오늘은 로버트 리먼 컬렉션 웨이팅 및 예약, 티켓할인, 도슨트, 오디오가이드, 주차할인, 아트샵, 도록 소개합니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전시회 정보

이번 전시회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1관에서 어제부터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기간은 2025-11-14 ~ 2026-03-15 (10:00 ~ 18:00) 까지 열릴 예정입니다.

 

이번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전시회는 전시회 제목과 같이 19세기 말 인상주의부터 20세기 초기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81점이 전시됩니다.

| 티켓가격 및 할인 50%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티켓 가격은 성인 기준 19,000원, 청소년 16,000원 입니다. 저는 전시회 오픈 전 얼리버드 티켓을 구입해서 13,300원에 할인된 가격으로 관람 했습니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 티켓할인은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날에 (11. 26., 12. 31., 1. 28., 2. 25.), 각 권종 50% 할인합니다.

| 전시회 예약 vs 현장발권, 웨이팅 없음

가장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전시회 온라인 예약은 오전 10시 부터 30분 단위로 시간을 확정하고 예약해야 하는데요. 현장에서 시간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앞 시간 티켓 마감이 되지 않아도 먼저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예전 이건희컬렉션 등과 같이 사전마감되는 전시회가 아니라면 오히려 현장방문해서 시간에 맞춰 바로 입장하는 것이 더 좋은데요.

 

비록 평일이지만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전시회 오픈일인데도 관람객이 많지 않습니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 전시회 웨이팅 없이 발건 및 입장이 가능합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장 혼잡 x

저는 평일인 금요일 점심시간에 방문 했는데요. 수능도 끝났고 전시회 오픈일인데도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장 혼잡은 커녕 주차자리가 상당히 여유가 있었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기나긴 대기줄도 없고, 주차장 들어가는데 한 시간 소요된다는 것과 다르게 그냥 브레이크 한 번 밟지 않고 박물관 입구부터 주차장까지 운전 했네요.

| 오디오가이드 결제주의

이번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도슨트는 없고 두 가지 타입의 오디오 가이드가 유료로 제공됩니다. 먼저 오디오가이드 기기를 대여받아 감상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남이 사용하던 기기 싫어서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이번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오디오가이드 기기 대여금액은 3,000원 입니다.

 

QR 오디오 가이드는 스마트폰으로 아래 QR인식하고 사이트에 접속해서 결제 후 이용하는 방식인데요. 개인 무선이어폰 필요합니다.

 

그러나 결제 과정에서 아무 생각없이 승인 > 승인 진행하면 300원 추가결제 될 수 있습니다. 뭐 거의 다크패턴 수준의 악독한 결제프로세스가 보이네요.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오디오가이드에는 총 81점의 작품중 30점 작품에 대한 설명이 제공됩니다. 배우 이병헌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데, 뭐 그렇게 추천 드리지는 않습니다.

 

| 오디오가이드 없어도 작품 감상에 전혀 지장 없음

우선 대부분의 작품에 아주 자세하게 작품에 대한 설명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또한 오디오가이드와 내용이 동일해서 꼭 3,000원 지불하고 구입해야 하는 생각이 드네요.

 

또한 모든 작품에 대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공하는 모바일 전시 안내문이 있어 작품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728x90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아트샵

상품은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로버트 리먼 컬렉션에 전시된 작품을 소재로 제작한 기념품과 함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기념품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사진속 우산 가격은 35,000원, 머그컵은 15,000원 입니다. 그렇게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테이블패드 손수건 등도 만나볼 수 있고요.

 

아이폰 이용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맥세이프 굿즈도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아트샵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노트, 불펜, 연필, 파일 등 문구류도 판매하고 있는데요. 아주 특색있는 상품은 보이지 않네요.

 

| 특별도록

이번 도록은 현재 열이고 있는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도록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도록 가격은 37,000원

 

| 전시회 구성 및 관람 소요시간 

이번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포함 총 7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 81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관람에 소요되는 시간은 100분 정도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저는 평일 전시회 개막일 방문해서 그런지 전시장 초반부를 제외하고는 관람객이 밀리지 않아 전시장 안에서도 웨이팅 없이 편하게 작품을 감상 했는데요. 만약 주말에 전시장이 더 혼잡하다면 관람에 소요되는 시간은 더 생각 하셔야합니다.

반응형

|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리먼윙

이번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로버트 리먼 컬렉션은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 소장품 집합으로, 미국 금융가 로버트 리먼(1891~1969)이 두 세대에 걸쳐 직접 수집한 유럽 회화, 드로잉, 장식 미술품 3000점 이상을 포함합니다. 현재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내 독립된 전시 공간인 "리먼 윙"에서 주요 작품들이 상설 전시되고 있는데요.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전시장 공간도 리먼윙의 구성을 반영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1에서 열리고 있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도슨트, 예약, 웨이팅, 주차 등 전시회 기본정보 소개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작품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728x90
728x90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두 번째 공간입니다. 첫번째 공간에서는 조선의 백자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다음 공간에서는 조선의 회화와 글을 통한 조선시대 인문정신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은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앞부분에서 조선 전기 백자을 만나고 다음 공간에서는 이렇게 거대한 포토월을 먼저 만나게 됩니다.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를 잘 모르신다면, 지난 포스팅 먼저 보세요.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예약, 도슨트, 포토존 관람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 관람후기 입니다.아마도 올해 한국미술 전시회로는 가장 큰 규모의 핫 한 전시회가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금

www.a4b4.co.kr

2부. 묵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이 건국되면서 사람의 수양과 도덕을 중시하는 인문人文시대가 열렸습니다. 사대부들은 시와 글씨, 그림에 자신의 이상을 담았습니다. 그들이 남긴 글과 그림은 조선을 물들이며 문文의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문치文治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검지만 오색五色을 담은 먹은 사대부의 내면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도구였고, 자연과 만나며 더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수묵산수화의 풍경은 단순한 경치가 아니라 사대부가 꿈꾼 이상세계이자 내면을 확장하는 창이었습니다. 2부는 서화를 통해 사대부들이 바라본 세계와 품었던 인문정신을 들여다봅니다.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2부 '묵 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는 총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1. 인문정신, 자연에서 길을 찾다

자연은 우주 질서가 담긴 거대한 공간입니다. 사대부들은 자연을 보며 인간이 나아갈 길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그림 속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은 영원히 변치 않는 자연의 힘을 보여주고, 계절에 따라 바뀌는 풍경은 세상이 일정한 주기에 따라 변하는 것을 알려줍니다. 사대부들은 이러한 자연의 원리를 깨닫고 흐름에 순응하며, 백성의 삶을 돌보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더 나은 세상을 꿈꿨습니다.

 

먼저 입구에서부터 고풍스러운 그림들이 보입니다.

 

산수도 山水圖

계절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산수 

작가 모름 조선 16세기 중반 비단에 먹과 색 모리박물관

 

봄, 여름, 가을의 경치를 담은 산수화로, 본래 사계절이었으나 겨울은 결실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전기에는 자연의 변화에 주목한 이와 같은 사시도四時圖 유형의 그림이 자주 그려졌습니다. 양식적으로는 한쪽으로 치우친 구도, 넓은 공간, 언덕 위 소나무 등에서 안견파 화풍이 드러나지만, 물결치는 구름과 강한 명암 대비는 미법산수와 절파 화풍의 흔적도 엿보입니다. 

 

거대한 산을 배경으로 정교한 건축 묘사와 화려한 채색 등은 화원의 솜씨로 여겨지며, 건축 기단의 ‘허튼층쌓기’는 조선 건축 표현의 한 단면입니다. 이 작품은 조선 전기 회화의 새로운 기준작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그림입니다.

 

| 안견의 작품인가? 안견의 작품이 아닌가?

안견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본관은 지곡이며 자는 가도, 득수이고, 호는 현동자와 주경입니다. 그는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시기에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하며 정4품 호군까지 올랐으며, 산수화를 비롯해 초상, 화훼, 누각, 말, 의장도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안견은 안평대군을 가까이 모시면서 그가 소장한 고화들을 접하고, 북송 곽희의 화풍을 바탕으로 여러 화풍의 요소를 융합해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였으며, 이는 조선 중기까지 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728x90

그의 대표작은 1447년 안평대군의 꿈을 바탕으로 3일 만에 완성한 ‘몽유도원도’로, 현재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안견의 화풍과 영향력은 후대 화가들에게 계승되어 ‘안견파’라는 유파로 불리며, 조선뿐 아니라 일본의 수묵화 발전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이번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에서 안견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적벽도 赤壁圖

적벽에서 뱃놀이 

구전舊傳 안견安堅(15세기 활동) 조선 16세기 후반 비단에 먹과 엷은 색 덕수2417

 

북송의 문인 소식蘇軾(1037~1101)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나온 뱃놀이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소식은 음력 7월 보름에 적벽 아래에서 배를 타고 시를 읊으며 달을 감상했는데, 조선 전기 사대부들도 소식을 본받아 7월 보름에 배를 띄우는 풍속을 즐겼습니다. 그림에는 절벽 아래 소식과 일행이 술을 마시고 퉁소를 부는 장면이 담겨 있으며, 험하고 복잡한 산과 바위의 표현에서 중국 명나라 절파 화풍의 영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본래 안견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나 그의 화풍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촌석조도 漁村夕照圖 

평사낙안도 平沙落雁圖

어촌에 지는 저녁노을과 모래에 내려앉는 기러기 

전傳 안견安堅(15세기 활동) 조선 15세기 말~16세기 초 비단에 먹과 엷은 색 야마토문화관

 

소상팔경 중 ‘어촌에 지는 저녁 노을’과 ‘모래에 내려앉는 기러기’를 묘사하였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고깃배가 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장면과 함께, 먼 산 뒤로 붉게 물든 석양이 표현되어 있으며, 왼쪽 그림에는 멀리서 날아오는 기러기 떼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양쪽 화면은 각각 오른쪽과 왼쪽으로 구도가 치우쳐 있으며, 나란히 걸었을 때 균형 잡힌 구도를 이룹니다. 나뭇가지는 게발처럼 뾰족한 해조묘蟹爪描 기법으로 표현되었고, 산봉우리의 나무는 가늘고 날렵한 세형침수細形針樹로 묘사되어 전체적으로 정제된 필치를 보여줍니다.

 

위에서 소개한 안견의 작품은 이번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조선 전기 미술 대전에서 7월 초까지만 전시되는 작품으로 지금 방문하시면 보실 수 없습니다. 아마도 다른 작품으로 대체되어 있을 것 같네요.

 

산수행려도 山水行旅圖

산수 여정 

작가 모름 조선 16세기 중반 비단에 먹과 엷은 색 후쿠오카시미술관

 

긴 여정 중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산속 집 한 채가 그려져 있습니다. 집 옆으로는 첩첩이 이어진 능선 사이로 긴 폭포가 겹겹이 떨어지며, 떨어진 물은 언덕 왼쪽의 강가로 이어지는 듯한 구도를 이룹니다. 마당에는 두 마리의 닭이 있고, 쌍상투를 튼 아이가 손에 빗자루를 들고 대문을 열고 있어 일상의 정취를 더합니다. 나귀를 탄 인물들과 수레를 몰고 있는 인물이 이 집을 향해 오고 있는 것으 미루어 이들이 여정 중에 이 집에 잠시 들러 쉬려는 의도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산이 화면을 가득 채우면서도 비교적 가옥과 인물이 크게 묘사된 점이 특징입니다.

 

동자견려도 童子牽驢圖

나귀를 끄는 동자 

김시金禔(1524~1593) 조선 16세기 후반 비단에 먹과 엷은 색 개인소장 보물

 

개울을 건너기 싫어 버티는 나귀와 이에 맞서 고삐를 힘껏 잡아당기는 아이의 모습이 해학적이면서도 목가적인 정취를 자아냅니다. 반면 주변 자연은 대담한 구도와 강한 대비로 시선을 끕니다. 화면 왼쪽의 소나무는 쓰러질 듯 솟은 산과 맞닿아 있고, 바위와 암석은 도끼로 내리친 듯한 거친 붓질인 부벽준斧劈皴 기법으로 단단한 질감을 묘사했습니다. 그림 속 나귀는 예부터 벼슬을 할지, 은둔할지를 고민하는 선비의 마음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한림제설도 寒林霽雪圖

김시가 그려준 겨울 풍경 

김시金禔(1524~1593) 조선 1584년 비단에 먹 클리블랜드미술관 1987년 윌리엄 H. 말랫 부부 기금

 

김시가 안사확安士確에게 그려준 겨울 풍경입니다. 나귀를 탄 인물이 산길을 따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고, 화면 위쪽 눈 쌓인 웅장한 산이 시선을 끕니다. 산과 바위를 왼쪽으로 치우치게 배치하고, 강과 안개를 통해 표현한 넓은 공간감, 게 발톱처럼 뾰족하게 그려진 나뭇가지 표현은 15세기 안견파 화풍을 이어받은 모습입니다. 한편, 한쪽으로 기울어진 바위산과 강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각진 산 표현에서는 중국 명나라 절파 화풍의 영향이 드러납니다. 15세기와 16세기 화풍이 함께 나타나는 과도기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김시(金禔, 1524~1593)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 본관은 연안이며 호는 양송당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는 김안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벼슬길이 막혀 평생을 독서와 서화에 전념하였고, 산수, 인물, 우마, 화조 등 다양한 분야의 그림에 뛰어났으며, 대표작으로는 삼성미술관에 소장된 ‘동자견려도’가 있습니다.

 

송하보월도 松下步月圖

달밤 소나무 아래를 걷다

전傳 이상좌李上佐(16세기 활동) 조선 16세기 비단에 먹과 엷은 색 덕수2149

 

마르고 단단한 소나무가 쇠처럼 구부러져 자라고, 바람에 날린 솔잎들이 허공에 흩날립니다. 하늘에는 달이 떠 있고, 소나무 아래에는 고사와 시동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이러한 구도는 중국 남송 마하파 화풍을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 표현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달은 붉게 칠해져 있고, 금니로 달 테두리를 칠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소나무 아래의 매화는 붉은 매화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지금의 소슬한 분위기보다는, 원래 화려하고 경쾌한 봄의 정취를 담고 있었던 작품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신숙주 시 申叔舟 詩, 김종서 시 金宗瑞 詩

소상팔경시첩瀟湘八景詩帖》 15-16면·37면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의 아름다운 여덟 풍경을 읊은 시 

이영서李永瑞(?~1450), 김종서金宗瑞(1383~1453), 신숙주申叔舟(1417~1475) 등 

조선 1442년 이후 종이에 먹 신수14513 보물

 

안평대군 이용李瑢(1418~1453)이 중국 후난성湖南省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의 아름다운 풍경을 읊은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를 엮은 시첩입니다. 이 시첩에는 조선 전기 인물 19명의 시詩가 실려 있습니다. 그중 김종서의 시는 해서와 행서를 섞은 자연스러운 글씨로 친필로 여겨집니다. 신숙주의 독특한 예서 글씨는 후대에 그의 글씨를 모방해 쓴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은 소상팔경에 대한 조선 전기 명사들의 인식과 서예 문화를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사시팔경도 四時八景圖

아름다운 사계절 풍경 

전傳 안견安堅(15세기 활동) 조선 15세기 중반 비단에 먹과 엷은 색 덕수3144

 

사계절을 두 폭씩, 이른 봄부터 늦은 겨울까지 여덟 장면으로 구성한 작품입니다. 여름은 물기 많은 필묵으로, 겨울은 거친 필선으로 계절감을 표현하였습니다. 단순한 자연 풍경의 재현을 넘어 자연 만물의 생장과 소멸이라는 이치를 이상세계로 형상화한 그림으로, 농본農本 이념과도 깊이 관련됩니다. 절기에 따라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일은 왕을 비롯한 지배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덕목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백성의 삶을 이해하고 국정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지혜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사관수도 高士觀水圖

자연 속 생각에 잠긴 선비 

전傳 강희안姜希顔(1417~1464) 조선 16세기 중반 종이에 먹 본관2504

반응형

쓰러질 듯한 거대한 절벽 아래 한 사람이 물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거대한 절벽은 붓을 단번에 쓸어내려 표현하였고, 절벽 아래로 뻗어 나온 넝쿨은 빠른 필선으로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강렬한 필묵이 돋보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강희안의 필치를 성글고 거친 붓질이 특징이라고 한 언급과 맞닿아 있습니다. 화면 왼편 가운데 「인재仁齋」 인장이 있어 그의 작품으로 전해오고 있지만, 그의 작품으로 보지 않는 의견도 있습니다.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화가, 시인으로, 본관은 진주이며 자는 경우, 호는 인재입니다. 그는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해 집현전 학사, 호조참의, 황해도관찰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훈민정음 해석과 『용비어천가』 주석, 『동국정운』 편찬 등 학문적 업적도 남겼습니다. 시, 글씨, 그림 모두에 뛰어나 ‘삼절’로 불렸으며, 대표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사관수도」를 비롯해 「산수인물도, 교두연수도 등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인 『양화소록』을 저술하였으며, 평생 꽃을 가꾸고 예술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무이구곡도 武夷九曲圖

아홉굽이 물길을 따라 수양하다 

이성길李成吉(1562~1621) 조선 1592년 비단에 먹 덕수2216

 

중국 송나라 주희朱熹(1130~1200)가 머물렀던 무이산武夷山의 아홉 굽이 물길을 그린 그림입니다. 계곡은 1곡부터 9곡까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며, 1곡이 하류, 9곡이 상류에 해당합니다. 각 굽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경치를 배치하였습니다. 배를 타고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여정은 인간의 본성을 되찾고자 하는 수양의 길로 비유되는데, 이는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한 주희의 삶을 동경한 당시 사대부들의 이상과 내면을 반영한 그림입니다.

 

이성길(李成吉, 1562~1621)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화가로, 본관은 고성이고 자는 덕재, 호는 창주입니다. 그는 병조참판 등 관직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과 북관대첩 등으로 큰 공을 세웠습니다. 예술적으로도 뛰어나 <쌍포승첩도>와 <무이구곡도> 같은 산수화와 전쟁화로 유명하며, 특히 <무이구곡도>는 조선시대 무이구곡도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성길은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시와 그림에서도 높은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 2부 '묵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두 번째 공간입니다.

2-2. 사람과 사람, 인문으로 기록되다

조선 시대에는 서화가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지고 다양하게 활용되었습니다.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마음, 정신을 담아내려는 의지가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충忠과 효孝 같은 유교적 덕목을 널리 알리려고, 동료와 뜻을 나누려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려고, 이들은 붓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겨진 서화는 조선 전기 사람들이 삶 속에서 남긴 흔적, 즉 인문이 되었습니다.

 

이번 공간의 선비들의 초상으로 시작합니다.

 

김진 초상 金璡 肖像

16세기 평상복을 입은 선비의 초상 

작가 모름 조선 1572년경 비단에 먹과 색 의성 김씨 천전파 대종택(한국국학진흥원 기탁) 보물

 

김진(1500~1580)의 73세 초상입니다. 바닥에는 표범 가죽 방석을 깔았는데, 원근감 없이 네모난 모양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옷은 평면적으로 그려졌지만, 얼굴에는 붓으로 연하게 음영을 넣어 볼과 입, 코 주변의 주름을 살려 입체감이 느껴집니다. 김진은 이 초상을 자신의 별장 정자에 걸어두고, 자연 속에서의 여유로운 삶을 오래도록 즐기고 싶다는 바람을 읊기도 했습니다. 16세기 후반 평상복을 입은 선비의 모습을 담은 귀한 초상화입니다.

 

장말손 초상 張末孫 肖像

15세기 공을 세운 신하의 초상 

작가 모름 조선 1476년경 비단에 먹과 색 인동 장씨 연복군 종택 보물

 

장말손(1431~1486)은 세조와 성종 대 활약한 인물입니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으로 녹훈되었습니다. 이 초상화는 1476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장말손은 푸른빛이 도는 검은 예복을 입고 사모를 쓴 채, 몸과 얼굴을 약간 왼쪽으로 돌려 앉아 있습니다. 얼굴은 연한 붓질로 입체감 있게 표현되었고, 눈매와 주름은 섬세한 선으로 그렸습니다. 가슴에는 금실로 수놓은 백한白鷴 흉배를 하고 있어 당시 그가 3품 관직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초상은 15세기 후반 공신 초상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홍가신 초상 洪可臣 肖像

17세기 초 공을 세운 신하의 초상 

작가 모름 作家未詳 조선 朝鮮 17세기 비단에 색 絹本彩色 덕수2831

 

홍가신洪可臣(1541~1615)은 1596년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시기에 이몽학李夢鶴의 난이 일어나자, 당시 홍주목사로서 반란 진압에 앞장섰습니다. 1604년 그의 이러한 공로가 인정되어 청난공신 1등에 책록되었습니다. 이 초상화는 인물의 복식과 자세, 이전에 없던 바닥에 깔린 채전彩氈(문양이 있는 화려한 깔개) 등을 통해 17세기 초 공신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홍가신이 착용한 흉배에는 기러기와 구름 무늬가, 허리에는 삽금대鈒金帶를 착용하고 있어 그가 당시 정2품 관직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현보 초상 李賢輔 肖像

16세기 승려의 진영처럼 그려진 선비의 초상 

전傳 옥준상인玉峻上人 조선 1537년경 비단에 먹과 색 영천 이씨 농암종택(한국국학진흥원 기탁) 보물

 

이현보(1467~1555)는 조선 중종 대 문신입니다. 초상에서 그는 머리에 사모 대신 검은 발립鈸笠을 쓰고 있으며, 오른손에 불자拂子를 들고 왼손은 허리의 서대犀帶를 쥐고 있습니다. 벼루갑과 서책이 놓인 경상經床 앞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승려의 진영과도 같아 불교 회화의 영향이 엿보입니다. 실제로 이현보 아들의 문집에 그가 동화사의 승려 화가 옥준상인玉峻上人과 교유한 시문이 남아 있습니다. 이 그림도 1537년 이현보가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할 당시 옥준상인이 그려준 것으로 추정됩니다.

 

열심히 일하고 살았으면, 즐길 줄 알아야지!

조선시대에도 회식은 많았구나!!!

 

미원계회도 薇垣契會圖

안견풍으로 그린 사간원 관리들의 모임 

그림 작가 모름 제시題詩 성세창成世昌(1481~1548) 조선 1540년경 비단에 먹 신수13556 보물

 

그림 제목의 ‘미원薇垣’은 사간원의 별칭입니다. 참석자 중에는 퇴계 이황李滉(1501~1570)도 포함되어 있어 흥미를 더합니다. 이들은 관복을 차려입고 지위에 따라 차례대로 앉아 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들이 자리한 모임의 배경입니다. 높은 산과 쓰러질 듯한 절벽, 언덕 위의 소나무 등 안견풍 산수가 모임 장면보다 훨씬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 전기 계회도는 안견풍으로 그려진 이상경을 배경으로 모임을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사간원(司諫院)은 조선시대에 국왕과 조정의 잘못이나 부당한 점을 바로잡기 위해 간쟁(諫諍)과 논박(論駁)을 담당하던 독립 언론기관입니다. 사간원은 사헌부, 홍문관과 함께 ‘삼사(三司)’로 불리며, 조선 정치의 핵심적인 견제와 감시 역할을 맡았습니다. 관원들은 ‘간관(諫官)’이라 불렸고, 왕의 언행이나 정책, 인사 문제 등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하고 바로잡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사간원은 조선 왕정에서 공론(公論)과 민의(民議)를 전달하는 중요한 창구로, 왕권의 독주를 견제하고 균형 있는 정치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호조낭관계회도 戶曹郎官契會圖

모임 장면이 부각된 호조 낭관들의 모임 

작가 모름 조선 1550년경 비단에 색 신수2234 보물

 

호조戶曹의 전·현직 낭관이 모여 교류하는 모습을 담은 계회도입니다. 정자 안팎의 인물들은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는데, 참석자 명단은 8명이지만 그림 속에서는 9명의 관원이 보입니다. 사모紗帽와 단령團領을 착용하고 반원 형태로 둘러앉은 8명은 허리를 숙인 채 가운데 북쪽에 앉은 인물에게 예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산수보다 인물 묘사의 비중이 크고, 구성도 더욱 실제 모임의 질서와 형식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16세기 중엽 계회도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호조(戶曹)는 조선시대 육조(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중 두 번째로 높은 서열을 가진 행정기관으로, 호구(인구), 공납, 조세, 국가 재정 및 경제 전반을 담당하였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기획재정부에 해당하는 부서입니다. 호조는 판적사(호구·토지·조세), 회계사(회계·재정), 경비사(국가 경비·식량 등) 등 세 부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인구 조사, 세금 부과, 토지와 식량 관리 등 국가 재정의 핵심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탁지아문으로 개칭되기 전까지 조선의 재정과 경제를 총괄하는 중추 기관이었습니다.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 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圖

안견풍으로 그려진 과거 급제 동급생들의 모임 

그림 작가 모름 글·글씨 김인후金麟厚(1510~1560) 조선 1542년경

종이에 먹과 엷은 색 국립광주박물관 광주3869 2001년 울산김씨 문정공 대종중 기증

 

이 그림은 1531년 사마시司馬試에 함께 급제한 일곱 명의 인물들이 10여 년 후인 1542년경 다시 모임을 갖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계회도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구도, 언덕 위에 배치된 두 그루의 소나무 등에서 조선 전기 대표 화풍인 안견풍 산수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화면 상단에는 명필 김인후가 쓴 시詩가 적혀 있으며, 참석자 명단 양옆에는 매화와 대나무가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제2부. 묵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다음 공간에는 조선 전기의 서화 중에서 서예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행초 行草

목판으로 인쇄한 안평대군 글씨 병풍

이용李瑢(1418~1453) 조선 종이에 목판 강릉 오죽헌시립박물관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이 당나라 문인들의 시를 행서와 초서를 섞어 쓴 글씨를 후대에 목판으로 찍은 작품입니다. 나무판에 새긴 글씨라 획이 조금 각져 보이지만, 안평대군 특유의 시원하게 펼쳐지는 큰 글씨에서는 여전히 활달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이 작품에는 흘려 쓴 행서와 획을 과감히 생략한 초서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습니다. 삐치고 파인 획, 길게 뻗은 가로선, 글자의 위아래를 연결한 구성, 크기 차이를 둔 배열 등에서는 안평대군이 좋아했던 원나라 조맹부趙孟頫와 선우추鮮于樞의 영향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안평대군 이용(1418~1453)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아들로, 시·서·화에 모두 뛰어나 ‘삼절’로 불렸던 조선 전기의 대표적 예술가이자 왕자입니다. 그는 인왕산 기슭에 비해당과 무이정사를 짓고 많은 책과 서화를 수장하며 문인·예술가들과 교유했고, 당대 서화계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문종 사후 어린 단종을 보위하는 정치 세력의 중심에 섰으나, 1453년 수양대군(세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유배되어 교동도에서 사사되었으며, 이후 숙종 때 복권되었습니다

 

초서 草書

김구가 초서로 쓴 이별시 

김구金絿(1488~1534) 조선 1519년 종이에 먹 개인 소장(충재박물관 기탁) 보물

반응형

김구가 삼척부사로 떠나는 친구 충재 권벌權橃을 위해 써준 작품입니다. 16세기를 전후해 명나라의 새로운 초서풍이 조선에 유입되었고, 김구는 이러한 서풍에 민감하게 반응한 대표적인 명필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감정이 폭발하듯 미친 듯이 써 내려간 초서, 즉 광초狂草를 능숙하게 구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그의 부드럽고 활달한 붓놀림이 돋보입니다.

 

천자문 千字文

석봉 한호가 쓴 천자문 

글씨 한호韓濩(1543~1605) 조선 1583년 간행 종이에 목판 개인소장 보물

 

조선 선조 대 명필 석봉石峯 한호가 쓴 천자문입니다. 천자문은 예로부터 글씨를 처음 배울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교육서였습니다. 이 책은 1583년(선조 16), 선조의 명을 받아 한호가 직접 쓰고 나라에서 목판으로 찍어 배포한 것입니다. 처음 간행된 판본인 만큼 석봉체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 있습니다. 글씨는 획의 굵기가 일정하고, 점과 선, 자형 모두 단정하고 깔끔합니다. 학습용 글씨로 손색이 없는 구조와 균형을 보여줍니다. 이후 한호의 『천자문』은 여러 차례 다시 간행되었으며 전국의 관아, 사람들에게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석봉진적첩 石峯眞蹟帖

석봉 한호가 말년에 쓴 글씨 

글씨 한호韓濩(1543~1605) 조선 1602~1604년 종이에 먹과 금니 본관2203 보물

 

조선을 대표하는 명필 석봉 한호의 노년 글씨로, 모두 세 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첩에는 한호가 가평군수에서 물러난 1602년부터 흡곡현령으로 있었던 1604년 사이에 쓴 글씨가 실려 있습니다. 검은색이나 감색紺色 종이에 금니金泥로 글씨를 썼으며, 해서·행서·초서의 다양한 서체를 사용했습니다. 세 번째 첩은 흰 종이에 검은 먹으로 도교 경전인 「설상청정경說常淸淨經」을 정갈하게 옮겨 쓴 것입니다. 이 첩은 석봉체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평가되며, 한호의 깊은 서예 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초서 草書

조선으로 전래된 명나라 초서 병풍 

장필張弼(1425~1487) 중국 명明 15세기 종이에 먹 개인소장(충재박물관 기탁) 보물

 

16세기 전반, 중국 명나라 서예가 장필의 글씨가 조선에 전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한 초서 작품입니다. 이 병풍은 문신 충재冲齋 권벌權橃이 사행 시에 북경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획마다 움직임이 강하고, 화면 전체에 리듬감과 생동감이 살아 있습니다. 이런 장필의 초서풍은 조선의 서예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자암 김구金絿, 고산 황기로黃耆老 등과 같은 16세기 조선의 대표적 초서 명필들이 장필의 필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서풍을 발전시켰습니다.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 2부. 묵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마지막 전시공간으로 이동합니다.

2-3. 영원한 조선을 꿈꾸다 

조선 전기 궁궐은 아름답고 상징적인 그림들로 꾸며졌습니다. 나라가 평안하고 왕이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태평한 세상이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기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자연에서 복을 상징하는 존재들을 그림에 담아 좋은 기운이 깃들길 바랐습니다. 이처럼 궁궐 안에 그려진 그림은 단순한 장식을 넘어서 조선이 오래도록 번영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상징적 표현이었습니다.

 

앞의 두 전시공간에서는 전통적인 서화가 중심이었다면, 이번 공간은 기복을 비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들 화조도와 다양한 채색화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화조도 花鳥圖

궁중 정원의 신기한 꽃과 새 

전傳 신잠申潛(1491~1554) 조선 16세기 전반 종이에 먹과 색 덕수1154

 

문인화가 신잠이 그린 네 폭 그림으로, 원래는 병풍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각 폭마다 새와 동물, 꽃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1폭에는 매화와 동백꽃이 핀 가지 위에 동박새 한 쌍이 앉아 있습니다. 2폭에는 태호석과 장미를 배경으로 연못에서 오리 한 쌍이 노닙니다. 3폭은 꽃가지 위에 앉은 수대조綏帶鳥로 보이는 새 한 쌍과 그 아래에 토끼 한 쌍이 등장합니다. 4폭에서는 여문 조 이삭과 들국화가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신잠은 신숙주의 증손으로 태어나 관리로 활동했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유배를 당한 뒤 서화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십장생도 十長生圖

장수와 왕실 번영의 염원 

작가 모름 조선 16세기 후반 비단에 색 일본 개인소장

 

열 가지 장수의 상징물을 그린 그림입니다. 오른쪽 화면에는 해, 사슴, 영지버섯, 소나무가 있고, 왼쪽 화면에는 달, 학, 대나무, 거북이가 등장하며, 두 화면 모두에 산과 시냇물이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사슴은 하얀 털로 표현되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사슴이 1,500년을 살면 흰 사슴이 된다고 전합니다. 두 폭은 구름과 안개에 싸인 산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곁에 해와 달이 떠 있어 화면 전체에 신비롭고 장엄한 분위기를 더해 줍니다. 십장생도는 고려 말부터 그 기록이 나타나며, 조선시대에는 궁궐 장식이나 의례용 그림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십장생(十長生)이란?

십장생은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을 상징하는 열 가지 자연물 또는 사물을 의미합니다. 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민속 신앙과 도교, 신선 사상에서 유래했으며, 인간의 장수와 건강, 영원한 삶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십장생은 조선시대 궁중과 민간에서 그림, 자수, 도자기, 가구, 복식 등 다양한 예술과 생활용품의 문양으로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십장생의 구성

십장생을 이루는 열 가지는 시대와 지역, 작품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해(日) 생명, 권위, 영원, 남성적 원리
산(山) 불변, 생명의 근원, 신성, 장수
물(水) 생명력, 복, 깨끗함, 영속성
돌(石) 변치 않는 견고함, 영원성
구름(雲) 신령스러움, 길상, 자연의 조화
소나무(松) 절개, 신의, 장수, 불사
대나무(竹) 절개, 불변, 장수
거북(龜) 장수, 지혜, 인내, 재물
학(鶴) 불사, 고귀함, 입신출세
사슴(鹿) 장수, 선함, 평화, 재생
불로초(芝) 불로장생, 신비, 소망

 

가응도 架鷹圖

충신을 상징하는 매 

전傳 이암李巖(1507~1566) 조선 16세기 중반 비단에 먹과 색 일본민예관

 

횃대 위에 매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단단한 부리, 매서운 눈, 발끝의 날카로운 발톱은 섬세한 필치로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꼬리 깃에는 ‘시치미’라 불리는 표식이 달려 있는데, 이는 주인 있는 매라는 뜻입니다. 이암은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증손으로, 특히 동물 그림에 능했던 화가입니다. 매는 예로부터 충신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는데, 횃대에 묶여 있는 매는 왕에게 바른말을 하며 간신을 물리치는 신하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화조구자도 花鳥狗子圖

꽃나무 위 새와 강아지 

이암李巖(1507~1566) 조선 16세기 중반 종이에 먹과 엷은 색 개인소장 보물

 

한 쌍의 새가 앉아 있는 나무 아래 강아지 세 마리가 평화롭게 쉬고 있습니다. 화면 맨 앞에 있는 강아지는 벌레를 입에 문 채 엎드려 있고, 다른 두 마리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각각 잠을 자거나 먼 곳을 바라보며 앉아 있습니다. 강아지는 윤곽선을 쓰지 않고 먹의 진하고 옅음을 조절하여 칠했지만, 나무는 형태를 또렷하게 드러내기 위해 선으로 윤곽을 그려 넣었습니다. 또한 껍질의 울퉁불퉁한 질감을 살린 나무 표현은 이암의 특징적인 기법입니다. 배경을 생략하고 나무와 새, 강아지만을 그려 소재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합니다.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2부. 묵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마지막 공간에는 소개한 작품 이외에도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이런 그림들이 좋은지... 너무나 좋더라는...

 

나전 칠 모란 넝쿨무늬 능화형 반 螺鈿漆牡丹唐草文菱花形盤

조선 15~16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주름질로 작은 꽃과 넝쿨무늬를 만들고 줄기는 금속으로 표현하는 고려 나전칠기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모란 넝쿨무늬는 고려시대 도안화된 무늬에 비해 사실에 가깝게, 바람에 흩날리는 듯 표현되었습니다. 무늬 사이의 여백을 충분히 둔 점은 이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고려와 조선을 연결하는 과도기적 작품이지만 조선 전기 나전칠기의 새로운 풍조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나전 칠 국화 넝쿨무늬 상자 螺鈿漆菊唐草文箱子

고려 14세기 후반-조선 15세기 야마토문화관

 

려 나전의 전통을 기반으로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국화와 모란 넝쿨무늬, 세부를 선각으로 묘사하는 모조법毛彫法, 넝쿨 줄기와 경계선에 사용된 금속 등은 고려시대의 전통입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비해 무늬의 규칙성과 밀집도가 낮아지고 넝쿨 흐름이 보다 유연해지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각 면의 무늬가 옆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 전기 나전칠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표현 방식이기도 합니다. 조선 전기 나전칠기는 왕실 용품이나 왕실의 하사품, 외국과 교류에서 예물로 사용되는 고급 물품이었습니다

 

 

오늘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새나라 새미술 전시회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2부. 묵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소개를 마칩니다. 다음 공간은 '3부 금金,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로 조선의 불교미술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자세한 후기는 아래 포스팅 참고하세요.

 

조선 전기 미술 전시회 대전 : 불교미술 & 훈민정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관람후기 마지막 포스팅입니다.이번 전시회는 총 3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섹션인 조선 전기

www.a4b4.co.kr

 

728x90
728x90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외규장각 의궤 전시회 '왕의 서고' 관람후기 입니다.

우선 외규장각의궤의 가치와 역사적 아픔과 환수과정 등 많은 이야기가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직 소유권은 프랑스에 있는) 기록문화의 정수입니다.

 

오늘은 '왕의서고' 외규장각 의궤 전시장 위치 및 전시해설 (도슨트)시간 등 관람정보 공유합니다.

 

| 외규장각 의궤 전시실 위치 201호

위치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2층 201호 입니다. 박물관에서 검색대를 통과하고 바로 왼쪽 2층 맨 첫 방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등으로 이동하시면 되고요.

바로 건너편에는 또 하나의 대표 전시관인 사유의 방에서 반가사유상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왕의 서고 '어진 세상을 꿈꾸다'

외규장각 의궤는 조선 왕실의 주요 의식과 행사를 기록한 책인 의궤 중, 강화도에 위치한 외규장각에 보관되었던 특별한 의궤들을 의미합니다. 이 의궤들은 주로 국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된 어람용으로, 국내외에 단 한 권만 존재하는 유일본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매우 높은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닙니다. 외규장각은 1782년(정조 6년)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강화도에 설치한 규장각의 별관으로, 기존의 규장각(내규장각)과 구분하여 서적을 분산 보관했습니다만...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침입하면서 외규장각은 불에 타고, 의궤를 비롯한 340여 권의 도서가 프랑스에 약탈되었습니다. 약탈된 의궤는 오랜 기간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분관의 창고에 방치되어 있었고, 1979년 박병선 박사가 그 존재를 확인해 한국에 알렸습니다. 이후 환수를 위한 노력과 협상이 이어졌으나, 2011년에서야 145년 만에 1차분 75권이 반환되었고, 이후 전량이 5년마다 갱신하는 대여 형식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에 있습니다.

| 약정은 치욕적이다.

사실 당시의 협정은 물론 최선을 다한 결과이고 결국 우리의 손에 있지만 협정 내용은 치욕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외규장각 의궤 반환 약정은 5년마다 갱신하는 대여(임대, 기탁) 방식으로 체결되었으며, 실물 도서는 한국에 반환되지만 소유권은 프랑스에 남아 있습니다. 대여 기간은 5년 단위로 갱신할 수 있고, 반환된 의궤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전시됩니다. 소유권이 프랑스에 있기 때문에, 한국이 전시나 연구 등으로 의궤를 활용하려면 프랑스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한편, 프랑스는 반환 조건으로 등가의 도서를 맞교환(대차)할 것을 요구했으나, 국내 여론의 반발로 인해 최종적으로 맞교환 없이 대여 형식만 채택되었습니다.

| 전시해설 매일 13시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전시 '왕의 서고' 전시회 전시해설은 휴일 없이 매일 13시에 외규장각의궤 도슨트가 진행됩니다. 전시해설 진행시간은 약 30분입니다.

외규장각 의궤 전시 '왕의 서고' 전시회는 총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람시간은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01. 책이 입는 옷, 책의

전시장 첫 공간은 이번 왕의 서고 전시회 포토존이자 환수된 의괘의 모형이 전시된 공간입니다.

 

靖殿都監儀軌 (정전도감의궤)

궁궐의 주요 전각(정전)과 관련된 행사의 절차와 내용을 기록한 도감의 공식 문서

嘉禮都監儀軌 (가례도감의궤)

왕실 혼례 등 경사스러운 의식의 절차와 내용을 기록한 도감의 공식 문서

 

프랑스 것들이 외규장각의궤에 붙여놓은 분류 스티커 'CHINOIS' 한국이 아닌 중국으로 분류되어 있다.

 

敬惠嫄嬪禮部監儀軌 (경혜원빈예부감의궤)

경혜 원빈(왕세자빈) 관련 예식을 담당한 예부감에서 절차와 내용을 기록한 공식 문서

 

02. 왕실의 위엄 만세의 모범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전시 '왕의 서고' 전시회 두 번째 섹션은 두 점의 의궤가 넓은 공간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인선왕후의 장례를 기록한 의궤

어람용 의궤의 외형과 역사적 가치 

이 의궤는 제작 당시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간직하고 있는 어람용(御覽用) 의궤입니다. 표지는 큰 구름무늬와 작은 보배무늬가 어우러진 초록색 비단으로 만들어졌으며,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 변철을 덧댄 뒤 황동못으로 책을 고정하였습니다. 앞뒤 표지의 마감은 국화 모양의 장식으로 품격을 더했고, 제목은 흰색 비단 위에 따로 쓴 뒤 표지에 붙여 어람용 의궤의 고급스러운 외형을 보여줍니다.

728x90

 기록 내용과 특징 

이 의궤는 1674년 승하한 조선 제17대 임금 효종의 비, 인선왕후(仁宣王后, 1618-1674)의 장례 절차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선왕후의 시신을 여주 영릉(英陵)으로 운구할 때 전례 없이 남한강의 물길을 이용한 점이 특징적입니다. 배의 원활한 운행을 위해 강 주변의 바위를 깨고 정비하는 등, 수로 발인의 준비와 절차가 매우 구체적으로 수록되어 있어 당시 장례 문화와 기술, 그리고 왕실 의례의 엄격함을 잘 보여줍니다. 이처럼 어람용 의궤는 조선 왕실의 장례 의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예술적·기술적 수준과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인선왕후의 장례를 기록한 의궤

| 즉위한 숙종이 쓸 가마와 의장을 제작한 일을 기록한 의궤

별삼방 의궤의 의의와 내용 

이 의궤는 조선 숙종 임금께서 앞으로 사용하실 가마와 각종 의장물을 제작하기 위해 설치된 별삼방의 업무를 기록한 소중한 자료입니다. 숙종 임금께서는 1674년 현종께서 승하하신 후 왕위를 계승하셨으나, 27개월 동안 현종의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상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실 시기가 다가오자, 왕께서 사용하실 새로운 물품들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즉위 2년째에 별삼방이 설치되었습니다.

 

별삼방은 현종, 숙종, 경종, 영조 네 분의 임금 시기에만 운영된 특별한 기구입니다. 이 의궤는 숙종대 별삼방의 설치 경위와 담당 업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기록으로, 당시 별삼방이 1661년 현종 2년에 설치된 별삼방의 전례를 따라 운영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별삼방에서 사용할 예산과 물품 역시 이전의 별삼방 의궤를 참고하여 책정하였으며, 국왕의 의장물 마련에 필요한 다양한 사항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별삼방 의궤는 조선시대 왕실의 의장물 제작과 관련된 제도, 예산, 운영 방식 등 여러 측면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CHINOIS > COREEN

한 권의 책에 두 스티커가 붙어 있네요. 

 

03. 조선 왕실 의례

해당 섹션은 조선 왕실 의례 가례와 흉례 관련 의궤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비디오도 없이 오직 현장에서 손으로 종이에 기록한 내용이지만 세심함과 디데일에 놀라게 됩니다.

 

3-1. 경사스러운 왕실의 결혼 가례

 

| 경종의 세자 시절 혼례 기록한 의궤

1696년, 당시 세자이셨던 경종께서 세자빈(훗날 단의왕후로 추존되신 분)을 맞이하시는 혼례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혼례를 담당하는 임시 관청인 가례도감은 3월에 설치되었으며, 세자빈의 최종 간택은 4월 8일에 이루어졌습니다. 세자빈께서는 간택 당일 별궁으로 들어가신 후 약 한 달 동안 혼례 절차를 진행하셨습니다. 5월 19일에는 왕세자께서 직접 별궁으로 가셔서 세자빈을 모셔 오는 친영이 거행되었습니다. 의궤에는 친영 때 왕세자께서 세자빈의 아버지께 기러기를 전달하고 절을 올리는 등 구체적인 동선과 행동이 명시된 의주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효장세자의 혼례를 기록한 의궤

효장세자(1719-1728)는 영조가 연잉군延礽君이었던 1719년(숙종 44)에 태어난 첫아들이다. 영조가 국왕으로 즉위한 뒤, 8세의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이후 1727년(영조 3) 세자빈을 맞이하는 가례를 올리게 되었는데, 이 의궤는 그때 혼례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효장세자는 이듬해인 1728년(영조 4)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의궤에는 12면에 걸친 반차도가 수록되어 있는데, 세자빈이 별궁에서 궁궐로 들어갈 때의 행렬을 확인할 수 있다.

 

 

| 사도세자의 혼례 기록한 의궤

사도세자(1735-1762)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효장세자가 세상을 떠난 지 8년이 지나 태어난 왕위계승자였다. 태어난 이듬해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0세가 되던 해인 1744년(영조 20)에 세자빈(훗날 혜경궁 홍씨)을 맞이하는 혼례를 올렸다. 이 의궤에도 세자빈을 궁궐로 모셔 오는 반차도가 수록되어 있다. 앞선 효장세자 혼례 당시 반차도의 행렬 구성과 동일하다. 바로 직전에 있었던 왕세자의 가례를 참고하여 의례를 치렀음을 알 수 있다.

 

의궤의 두께가... 

한 장 한장 그리고 글쓰고... 정말로 대단하다는...

 

 

3.2. 장엄한 왕실의 장례. 흉례

사극에서 많이 보던 3년 국장에 대한 이야기도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전시 '왕의 서고'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아래 표시된 국장 기간만 27개월 7일...

 

 

| 효종의 장례를 기록한 의궤

이 문서는 효종 임금님의 장례 절차를 담당하신 임시 관청인 국장도감의 업무를 기록한 의궤입니다. 국장도감에서는 효종께서 승하하신 뒤, 어진(御身)을 영릉(寧陵)으로 옮겨 장례를 모시고, 다시 궁궐로 돌아와 신주(神主)를 봉안하는 모든 과정을 주관하셨습니다. 의궤의 마지막에는 국왕의 어진을 묘소로 모실 때의 행렬을 그린 발인반차도(發靷班次圖)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의궤의 기록에 따르면, 이 발인 행렬에는 총 6,000여 명의 인원이 동원되었습니다.

 

| 효종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절차를 기록한 의궤

효종 임금님의 시신을 영릉(寧陵)에 안장하신 뒤, 임금님의 혼을 모신 신주(神主)는 궁궐 내 혼전(魂殿)에 모셔 두었다가, 돌아가신 지 27개월이 되는 때에 종묘로 옮겨 모시게 됩니다. 이 의식을 **부묘(祔廟)**라고 부르며, 선왕의 삼년상을 마무리하는 중요한 의례 절차입니다. 

 

궁궐에서 종묘로 신주를 옮기실 때에도 정해진 절차와 행렬 구성이 엄격히 지켜졌으며, 이러한 내용은 의궤에 수록된 반차도(班次圖)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임금님의 행차 중 가장 규모가 큰 **대가의장(大駕儀仗)**의 규정에 따라 행렬과 의장이 마련된 점도 알 수 있습니다.

 

 

| 인선왕후의 능을 조성한 일을 기록한 의궤

이 문서는 인선왕후의 묘소를 조성하신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인선왕후의 능은 효종 임금님의 능인 영릉(寧陵) 권역 내에 함께 조성되었습니다. 효종 임금님의 봉분이 있는 언덕 아래쪽에 인선왕후의 봉분을 마련하였습니다.

의궤의 첫 부분에는 사수(四獸), 즉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그린 도설(그림)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능에 관을 모시기 전에 임시로 관을 넣어두는 구조물인 찬궁(攢宮) 내부에는 관을 수호하는 의미로 사수의 그림을 붙였습니다. 찬궁은 매장 절차가 끝나면 모두 불태우기 때문에, 그 실제 모습은 의궤에 남아 있는 도설을 통해서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전시 '왕의 서고' 전시회 마지막 공간입니다.

반응형

04. 디지털 서고

이 공간은 1866년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 군대가 가져갔다가 2011년에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를 전시하는 곳입니다. 외규장각은 정조(재위 1776-1800) 임금님의 명으로 강화도에 설치되었던 왕실의 중요 기록물을 보관하던 장소입니다. 의궤는 왕실의 중요한 행사를 세세하게 기록한 책을 의미합니다. 외규장각 의궤는 대부분 임금님께서 직접 보시던 ‘어람(御覽)’용 의궤이며, 세상에 단 한 부만 남아 있는 유일본 의궤 29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궤는 조선 왕조의 대표적인 기록유산이지만, 한자로 작성되어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진열장 안에 전시된 의궤는 직접 넘겨보며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제한적입니다. 이에 따라, 전시실 내에 디지털 방식을 활용한 ‘디지털 책’을 마련하였습니다. 관람객 여러분께서는 실제로 책을 넘기듯이 디지털 책을 조작하며 의궤 속 다양한 내용을 직접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디지털 책 위에 있는 책장에서 미니북을 선택하여 올려두시면 해당 콘텐츠가 재생됩니다. 

 

이번에 만나볼 수 있는 콘텐츠는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한 권으로 읽는 의궤: 의식의 궤범(軌範)
공문서, 도설, 반차도 등 의궤의 기록적 특징을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를 통해 살펴보실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어람용 의궤와 분상용 의궤 비교
어람용(왕이 보는 책) 의궤와 분상용 의궤(기관 배포용) 사이의 다양한 차이점을 알아보실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효종이 읽어주는 발인반차도
효종이 본인의 장례행렬 그림을 직접 넘기며 내용을 들려주는 스토리북 형식의 콘텐츠입니다.

 

전시실은 마치 외규장각에 실제로 있는 듯 ‘왕의 서고’를 재현하였고, 외규장각 의궤의 아름다운 외형뿐만 아니라 정교한 기록을 통해 조선 왕실의 중요한 의례를 이해하실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또한 어려운 의궤 속 내용을 현대의 언어로 더욱 쉽게 접하실 수 있도록 ‘디지털 서고(書庫)’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외규장각 의궤실은 3개월마다 전시품을 교체하여 다양한 자료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도설(圖說) 아카이브도 함께 제공됩니다.

 

도설圖說은 행사에 실제로 사용한 물품의 형태를 알 수 있도록 의궤 속에 그려놓은 그림이다. 외규장각 의궤 속에는 약 3,800개의 도설이 있다. 이를 기반으로 관람객이 직접 흥미로운 테마를 선택하여 도설과 관련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콘텐츠이다. 가로 4.8m의 디스플레이에서 60종의 테마가 보여지고, 눌러볼수록 더욱 많은 의궤 속 도설을 볼 수 있다.

 

오늘 소개한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전시 '왕의 서고' 전시회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방문하셨다면 꼭 방문하셔야 하는 특별전시관 중 하나로 추천 드립니다.

728x90
728x90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장 및 주차요금 할인팁 공유합니다.

특히 특별전시실이나 어린이박물관 등 박물관 입구와 가장 잘 연결되어있는 구역 주차팁도 소개합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장 가는길

국립중앙박물관 입구로 들어오면 2차로 길이 나옵니다. 왼쪽 1차선은 대형, 오른쪽 2차선은소령자동차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길입니다. 자가용으로 방문 하셨다면 2차선 소형차 자로로 진입하시면 됩니다.

 

쭈욱 오시면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구로 안내됩니다.

 

주차장 진출입구 난이도는 보통입니다.

도로폭도 넓고 급커브도 없고. 운전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큰 어려움 없이 주차 가능합니다.

| B60, B70번 구역 추천

국립중앙박물관 지하1층 관람객용 주차장은 522대 차량 수용이 가능한데요. 주말에는 다소 주차난이 생깁니다.

특히 여름 겨울방학 주말시즌 큰 전시회나 행사가 있는 기간에는...

728x90

자리 공간이 있다면 매표소, 상설전시관과 어린이 전시관 극장용 등으로 바로 연결되는 B60, B70번 구영 주차 추천 드립니다. 이곳이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장 명당자리 입니다.

| 환경친화적 자동차 주차구역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주차장에는 환경친화적 자동차 및 경차·하이브리드용 자동차 전용 주차구역이 위치해 있습니다. 또한 지하주차장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이나 매표소, 상성전시관 출입구와 바로 연결되어 있는 곳입니다.

 

특히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국립중앙박물관 방문 하신다면 꼭 초록색 공간 찾아보시고요. 해당 공간은 전기차, 수소차, 하이브리드차 전용공간으로 일반 차량 주차시 과태로 10만원이 부과됩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전기차 충전소

B34 B44 B54구역 근처에 전기차 충전소가 있고요. 지상층 이동 접근성도 좋습니다.

 

관람객 전용 주차장은 지하 1층에 있고요. 우리가 박물관으로 알고 있는 국립중앙 박물관 상설 선지관, 특별전시실, 어린이박물관, 매표소 등의 시설은 지상 3층에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로 이동가능 합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요금 할인

국립중앙박물관 일반 유료 관람객 주차요금 할인제도는 없습니다.

다만 주차요금이 비싸지는 않습니다.. 2시간 기본 2,000원, 이후 초과시 30분에 500원 입니다. 즉 한 시간에 1,000원 주차요금이 부과되니 큰 부담없습니다.

 

장애인 또는 국가유공자는 주차요금 무료, 경차나 친환경차 방문자는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요금 할인 50% 됩니다.  정산은 지하주차장 무인 정산기에서 가능한데요. 이제는 대부분의 공공기관 주차정산기에서 친환경차 전산연동이 완료된 것 같습니다.  

반응형

별도 확인 없이 차량 번호로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요금 할인 가능하네요. 하이브리드 차량의 경우 한 시간에 500원 주차요금이 발생하니 주차요금에 큰 부담없이 시간여유 가지고 관람이 가능하네요.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3층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다만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는 유모차 관람객이 많으니 에스컬레이터 사용하시는 방법도 추천 드립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오시면 바로 어린이 박물관과 특별전시실  1관으로 진입할 수 있고요. 건너편 건물에는 국립중앙박물관 메인 전시동인 상설전시관과 특별전시실2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 전시실과 특별전시실2 방문하기 위해서는 금속탐지기 통과하셔야 합니다. 가방 없이 방문하시면 그냥 걸어가면서 편하게 통과할 수 있고요. 가방이 있다면 별도 추가 확인이 필요합니다만, 공항 검색대처럼 까다롭지는 않습니다.

워낙 미친 인간들이 많으니 이 정도 보안은 운영되어야 하겠죠.

 

제가 포스팅 작성시점 추천하는 전시회 입니다.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예약, 도슨트, 포토존 관람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 관람후기 입니다.아마도 올해 한국미술 전시회로는 가장 큰 규모의 핫 한 전시회가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금

www.a4b4.co.kr

 

 

728x90
728x90

국립중앙박물관에 방문했다면 꼭 방문해야 하는 곳인 사유의 방 소개입니다.

이 공간에는 6세기와 7세기에 제작된 두 점의 국보, 바로 반가사유상 半跏思惟像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단순히 작품전시 공간이 아닌 넓은 공간에서 여유와 명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꼭 방문하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사유의 방 위치 및 관람시간, 작품소개, 도록, 굿즈 안내

 

| 사유의 방 위치

오늘 소개하는 사유의방 위치는 국립중앙박물관 2층 209호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들어와 로비와 검색대를 지나 바로 오른편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시면 됩니다. 안내가 잘 되었어 사유의방 위치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래 국립중앙박물관 지도에 라이언이 있는 곳입니다.

 

 

2층으로 올라오시면 사진과 같이 검은 벽으로 만들어진 전시관을 볼 수 있고요. 이곳이 바로 두 점의 국보 반가사유상을 만나볼 수 있는 사유의 방 입구입니다.

| 소개사이트, 도록, QR

입구에는 사유의 방 소개와 함께 QR 코드가 있는데요.

스마트폰으로 QR코드 인식하면 사유의방 안내페이지와 관련 가이드북, 도록등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별도의 오디오가이드는 없습니다.

 

다소 어두운 공간입니다.

어둠 주의 하시고요. 이곳에서는 정숙입니다. (아이들 떠드는데 장난 아니네요.)

전시장에는 운영요원이 상주하고 있습니다만, 애나 부모나 X판 이네요. (이건 강력하게 퇴장 시켜야)

 

| 전시실 미디어아트

사유의 방으로 들어가는 길 벽면에는 멀티미디어 아트가 상영되고 있는데요. 저는 잘 이애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728x90

순환 장줄리앙 푸스, 2021 

디지털 비디오, 3430 x 1200 픽셀, 5분, 흑백, 사운드 

 

끝없는 물질의 순환과 우주의 확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고체, 액체, 기체의 각기 다른 상태로 존재하는 물질을 미세한 크기에서 거대한 크기로 변화시켜 보여주며 관람자로 하여금 사물의 너머를 보도록 연출하였습니다.

 

| 사유의 방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소개합니다.

 

| 반가사유상 뜻, 결가부좌 結跏趺坐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가볍게 얹고 오른손을 살짝 뺨에 댄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이라는 명칭은 상 像의 자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반가 半跏’는 양쪽 발을 각각 다른 쪽 다리에 엇갈리게 얹어 앉는 ‘결가부좌 結跏趺坐’에서 한쪽 다리를 내려뜨린 자세입니다.

‘사유 思惟’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상태를 나타냅니다. ‘반가의 자세로 한 손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불상’을 반가사유상이라고 합니다.

 

석가모니는 태자 시절부터 인간의 생로병사를 깊이 고뇌했고,

출가를 결심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도 깊은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반가사유상은 이처럼 깊은 생각에 빠진 석가모니의 모습이면서, 깨달음을 잠시 미루고 있는 수행자와 보살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반가의 자세는 멈춤과 나아감을 거듭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움직임 가운데 있습니다. 한쪽 다리를 내려 가부좌를 풀려는 것인지, 다리를 올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갈 것인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반가의 자세는 수행과 번민이 맞닿거나 엇갈리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살짝 다문 입가에 잔잔히 번진 ‘미소’는 깊은 생각 끝에 도달하는 영원한 깨달음의 찰나를 그려 보게 합니다. 이 찰나의 미소에 우리의 수많은 번민과 생각이 녹아들어 있다고 합니다.

 

가.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7세기 전반

높이 90.8cm, 무게 112.2kg,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3312

 

크기도 크기지만 무게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 중에서 저에게는 더 익숙한...

과거에는 국보 83로 명명 되었지만 국보에 순서는 없다는 취지에서 이제 연번은 없습니다.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전시실 우측 반가사유상은 

단순하고 절제된 양식을 보여 줍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반신, 세 개의 반원으로 이루어진 보관 寶冠의 형태와 두 줄의 원형 목걸이는 간결함을 더합니다. 반면, 무릎 아래의 옷 주름은 물결치듯 율동감 있게 표현되어 입체적으로 흘러내리며 역동성을 보여 줍니다. 양손의 손가락들에선 섬세함이 느껴지고, 힘주어 구부리고 있는 발가락에는 긴장감이 넘쳐흐르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곳 사유의방에 전시된 두 점의 반가사유상 중에서 조금 더 애착가는 작품이 바로 이 반가사유상입니다.

 

뒷태까지 너무나도 아름다워라~

이 반가사유상은 1912년 이왕가 李王家박물관이 일본인 고미술상 가지야마 요시히데 梶山 義英에게 2,600원이라는 큰돈을 주고 구입한 것으로 알려 있습니다. 당시 2,600원 이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이라고 하네요.

 

두 점의 반가사유상에는 

삼국시대의 최첨단 주조 기술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주조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수직과 수평의 철심으로 불상의 머리에서부터 대좌까지 뼈대를 세운 뒤에 점토를 덮어 형상을 만들고 밀랍을 입혀 반가사유상 형태를 조각한 다음, 다시 흙을 씌워 거푸집(외형)을 만듭니다.

거푸집에 뜨거운 열을 가하면 내부의 밀랍이 녹아 반가사유상 모양의 틈이 생기는데 여기에 청동물을 부어 굳힌 다음 거푸집을 벗기면 반가사유상이 완성된다고 합니다.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금속가공 기술이라 하네요

나.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높이 81.5cm, 무게 37.6kg,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본관 2789

이 반가사유상은 과거 국보 78호 였네요.

 

전시장 좌측에 위치한 반가사유상은 6세기 후반에 제작된 작품입니다.

날카로운 콧대와 또렷한 눈매, 그리고 화려한 장신구와 정제된 옷 주름 등이 특징으로 꼽히며, 양옆으로 휘날리는 어깨 위의 날개옷은 생동감을 주고, 옷 사이로 살짝 드러난 목걸이와 팔 장식은 화려함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부분이 두 점의 반가사유상의 극명한 차이가 아닐까요?

 

같은 해인 1912년에 조선총독부가 사업가이자 골동품 수집가인 후치가미 사다스케 淵上貞助에게 4,000원을 보상해 주며 구입했고,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입수하였습니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1945년 국립박물관이 인수하였고, 이왕가박물관(덕수궁미술관) 소장품은 1969년 국립박물관에 통합되었습니다.

 

반가사유상을 보존하고 있던 사찰과 만든 곳을 짐작하게 해주는 단서들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며, 옛 사람들의 말을 통해 전해질 뿐입니다. 보관 상태, 장신구, 옷 주름 등의 모양으로 살펴볼 때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반가사유상(전시실 오른쪽)은 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만 하네요.

 

| 사유의 방 구성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방 전시장에 들어오시면 상당히 고급스럽고 안정적인 실내 분위기를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이 공간은 건축가 최욱(원오원 아키텍스 대표)이 디자인하였다고 하네요.

 

건축가는 반가사유상의 에너지와 공간이 일체화된 느낌으로 전시를 경험할 수 있도록 관람객과의 거리를 고려하여 소극장 규모로 전시실을 설계하였습니다. 관람객은 어둠을 통과하는 진입로, 미세하게 기울어진 벽과 바닥, 반짝이는 천정 등 추상적이고 고요한 전시 공간에서 반가사유상을 집중적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 반가사유상 굿즈 아트샵

반가사유상 문화상품은 박물관 내 문화상품점과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온라인상품점(museumshop.or.kr)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출구에는 점자로된 반가사유상 안내책자도 다국어로 비치되어있습니다.

 

사유의 방과 반가사유상에 대한 안내책자는 아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ome

국립중앙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www.museum.go.kr

 

728x90
728x90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관람후기 마지막 포스팅입니다.

이번 전시회는 총 3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섹션인 조선 전기 불교미술을 다룬 '금金,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 소개입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섹션 + 마지막 특별섹션인 훈민정음 소개입니다.

섹션 3: 금金,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 

조선의 건국되면서 유교의 시대가 시작된 뒤에도 불교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교는 공적 영역에서 경제적·사회적 위치가 제한되었지만, 이념과 명분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또한 변함없이 삶의 고통과 죽음의 슬픔을 위로하는 신앙으로 존재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왕실 가족과 사대부는 물론, 일반 백성까지 화려한 불교미술의 조성과 불교 행사에 끊임없이 열중했습니다. 빛나는 금빛 부처를 만드는 마음은 유교의 사회가 시작되어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는 않는 금처럼, 변치 않는 마음을 담은 조선 전기의 불교미술이 소개됩니다.

 

조선 전기 미술 전시회 대전 금金,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 섹션에서는 총 3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첫 주제는 바로..

01. 조선 부처, 유교의 시대를 가로지르다 

조선 초에는 왕실 가족이 불교미술의 조성을 주도했습니다. 왕과 왕비, 대군과 종친들은 사찰을 짓고 불상과 불화를 만들었으며 경전을 간행했습니다. 왕실에서는 가장 뛰어난 장인을 고용하고 가장 좋은 재료를 들여 최고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세상을 떠난 가족을 추모하고 산 자를 위해 복을 비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조선의 불교미술은 최고의 정성과 간절한 바람을 담고 유교의 시대를 가로질러 갔습니다.

 

조선시대를 배우면 가장 먼저 듣는 단어중 하나가 '억불숭유' 정책인데요. 고려시대부터 계속된 불교문화가 한 번에 사라지기는 불가능 했겠죠. 조선시대에도 불교 예술은 계속됩니다. 

조선 전기 미술 전시회 대전 : 불교미술에서는 불상과 불화, 서적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심곡사 탑에서 발견된 부처와 불감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과 금동불상군 深谷寺 七層石塔 出土 金銅佛龕·金銅佛像群

조선 전기 금동 익산 심곡사 보물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기단에서 발견된 부처와 불감입니다. 상자 모양의 불감 안에 7구의 부처와 보살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7구 중 크기가 큰 아미타부처와 관음보살, 지장보살의 삼존상은 원·명 티베트계 불교미술의 영향으로 날씬한 신체를 드러내고 화려한 장신구를 걸쳤습니다. 4구의 작은 상은 대좌가 없고 부처는 양 어깨를 가리는 옷을 입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이처럼 탑 안에 부처와 불감을 넣는 신앙이 유행했습니다

 

 

왕실 가족이 금산사 탑을 수리하고 모신 사리장엄 

금산사 오층석탑 출토 사리장엄 金山寺 五層石塔 出土 舍利莊嚴

조선 1492년 봉안 금동 금산사 성보박물관

 

세조의 아들인 덕원군과 만 명이 넘는 신도들이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을 수리하고 넣은 부처와 보살, 사리함 등과 중창 기록입니다. 금산사는 1460년 세조의 시주로 중창이 시작되어 왕실의 지원을 받은 사찰이었습니다. 금산사 탑을 해체할 때에 향기가 나고 장륙상丈六像이 땀을 흘리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왕실 후원 불사에는 이러한 기적이 자주 기록되어 불사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석가탄생도 釋迦誕生圖

석가모니 부처의 탄생

조선 15세기 비단에 색, 금니 혼가쿠지 

 

그림속에서 석가모니를 찾아 보세요. 이런 불화 너무나 좋다는... 불교신자도 아닌데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

 

석가모니 부처의 일생을 그린 여러 폭의 그림 중 하나입니다. 석가모니가 카필라 왕국의 왕자로 태어날 때의 여러 이야기를 한 화면에 그렸습니다. 그림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는 모습을 그렸고, 시간적으로 전후에 해당하는 장면들을 배치했습니다. 이 그림에 나오는 장면은 조선 전기 왕실에서 지은 부처의 일대기인 '석보상절'에 실린 변상도와 매우 비슷하여, 왕실에서 만든 그림으로 추정됩니다.

728x90

 

조선 전기 미술 대전 불교미술 공간은 불교를 조금 알고 감상한다면 더 매력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석가출가도 釋迦出家圖

석가모니 부처의 출가 

조선 15세기 비단에 색, 금니 쾰른동아시아미술관

 

석가모니 부처의 일생을 그린 여러 폭의 그림 중 출가 장면을 그렸습니다. 그림 오른쪽에 그려진 큰 궁궐 건물 안에는 석가모니가 떠난 것을 알아차리고 슬퍼하는 태자비와 시녀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화면 위 왼쪽에는 집을 나서 스스로 머리를 깎는 석가모니의 모습을 그렸고, 화면 아래쪽에는 슬퍼하는 아버지 정반왕과 빈 말을 붙들고 우는 태자비를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조선 전기 왕실에서 지은 부처의 일대기인 『석보상절』 등에 나오는 구절을 충실히 나타냈습니다.

 

 

영산회상도 靈山會上圖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 부처 

조선 16세기 비단에 금니 호놀룰루아카데미미술관

 

갈색 비단 바탕에 금선으로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 인도의 영취산에서 『묘법연화경』을 설법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강조되고 『묘법연화경』 신앙이 유행하면서 설법도가 많이 그려졌습니다. 그림 아래쪽에는 부처의 설법을 듣는 인물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설법을 들으며 꿇어앉은 보살이나 승려의 뒷모습은 조선 15세기의 경전 변상도에서부터 등장해 조선 후기까지 유행합니다.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조선초기 불상들이 소개됩니다. 첫 섹션에서는 금동 불상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금강산에서 발견된 관음보살 

금동관음보살좌상 金銅觀音菩薩坐像

여말선초 금동 높이 18.6 본관11724 보물

 

이번 새나라새미술 전시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불상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아트샵에서도 모형을 구입할 수 있네요.

 

연꽃 모양의 대좌 위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입니다. 화불이 있는 보관을 쓰고 큰 귀걸이와 목걸이, 무릎까지 드리워진 장신구를 걸쳤습니다. 허리가 잘록하고 곧은 자세와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은 고려 말 원 티베트계 불교미술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이 보살은 금강산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합니다. 금강산은 고려시대부터 불교 성지로 여겨졌고, 불상을 금강산의 암벽에 봉안하는 신앙이 조선 초까지 유행했습니다.

 

무량사 탑에서 발견된 부처와 보살

 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금동삼존불좌상 無量寺 五層石塔 出土 金銅三尊佛坐像

조선 15세기 금동 불교중앙박물관 보물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향완 청곡사 청동은입사향완 靑谷寺 靑銅銀入絲香爐

인수대비가 만든 수종사 동종 수종사 동종 水鐘寺 銅鐘

왕실이 후원한 유점사에서 만든 종 유점사 동종 楡岾寺 銅鍾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만들어 수종사에 모신 종입니다. 인수대비는 아들이 왕이 되기 전, 수빈 한씨였던 시절에 남편인 의경세자가 세상을 떠난 후 궁궐을 나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종은 당시에 만든 것으로, 왕실 여성들이 궁궐을 나와 머물렀던 사찰인 정업원淨業院 주지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이 종은 어깨에 문양대를 세우고 연꽃 모양 당좌를 표현하는 등 고려 종 양식을 이어받았습니다.

 

사대부가 발원한 건칠 관음보살 

기림사 건칠관음보살반가상 祇林寺 乾漆觀音菩薩半跏像

조선 1501년 건칠 경주 기림사 보물

 

기존에 보던 불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강한 느낌의 불상입니다.

 

한쪽 다리를 내리고 편안하게 앉은 관음보살입니다. 흙으로 만든 상 위에 삼베를 겹겹이 씌우고 옻을 발라 단단하게 만든 뒤 속을 비우는 건칠 기법으로 만들었습니다. 건칠상은 재료인 옻이 귀하고 제작이 까다로워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의 예가 여러 구 남아 있습니다. 이 상은 태내군수太內郡守를 지냈던 이원림李園林이 발원했습니다. 관직에 올랐던 인물이 발원하여 조성한 뛰어난 상으로 주목됩니다.

 

15세기의 뛰어난 조각 수준을 보여주는 부처 

조계사 목조여래좌상 曹溪寺 木造如來坐像

조선 15세기 나무 서울 조계사 보물

 

조선 전기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부처이며, 15세기 조선에 새롭게 들어온 명 티베트계 불교미술 양식을 보여줍니다. 신체와 이목구비가 균형잡혔고, 자연스러운 옷주름이 뛰어난 조각 수준을 보여줍니다. 전라남도 영암 도갑사에 봉안되었다가 1938년 현재의 조계사로 옮겨져 봉안되었습니다. 도갑사는 15세기 후반 왕실의 후원을 받아 대대적인 중창을 한 일이 있는데, 이 불상은 그 때 왕실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무에 금칠을 해서인지 이곳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다른 금동불상과는 확연하게 다른 발색을 보여줍니다.

02. 부처의 말씀을 전할 것이니 

조선에서 출판문화가 발전하면서 불교 교리를 담은 경전도 활발히 간행되었습니다. 15세기에는 왕실과 관청에서 불교 경전을 간행했습니다. 한문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해 새로 만든 문자인 한글로 경전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왕실에서 펴낸 경전은 전국으로 퍼져 나가 16세기 전국의 사찰에서 다시 간행되었습니다. 사찰에서는 기도와 학습, 불교 의식 등 사찰에 실제로 필요한 경전을 펴냈습니다.

 

금강경, 고려대장경, 부모은중경, 묘법연화경 등 이번 조선 전기 미술 전시회 대전 금金,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 섹션에서는 다양한 불교관련 책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만, 책하고는 친하지 않아서... 간략하게 소개를...

 

세종이 왕후의 명복을 빌며 한글로 지은 불교 노랫말 

월인천강지곡 권상 月印千江之曲 卷上

세종世宗(재위 1418~1450) 어제구결 조선 1447년 종이에 금속활자 인쇄 한국학중앙연구원(미래엔 기탁) 국보

반응형

세종이 비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명복을 빌기 위해 한글로 지은 불교 노랫말입니다. 소헌왕후에게 부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쓰였습니다. 전체 노랫말이 모두 전해지지는 않지만 원래는 600곡 정도 실려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새로 만들어진 문자인 한글로 왕이 직접 지어 금속활자로 찍어냈습니다.

 

성달생이 글씨를 쓴 묘법연화경 

묘법연화경 권5-7 妙法蓮華經 卷5-7

조선 1405년 종이에 목판 인쇄 신수15340 보물

 

조선 초의 무신 성달생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글씨를 써서 안심사에서 펴낸 『묘법연화경』입니다. 책의 앞머리에는 가로로 긴 변상도가 있는데, 고려시대의 그림을 다시 새겨서 찍어낸 것입니다. 안심사에서는 이 책 외에도 여러 번 『묘법연화경』을 간행했고, 전국의 사찰에서 다시 찍어내며 널리 퍼졌습니다.

 

03. 모두의 손에서 모두의 마음으로 

불교는 16세기에 정책적으로 소외되었지만 지방 사찰은 신앙의 중심지로 세력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사찰에서 불교미술을 조성하거나 의식을 베풀 때에는 신분이 높고 낮은 수많은 사람이 참여했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불교미술을 조성하게 되면서 값비싼 재료보다 나무, 흙과 같이 구하기 쉬운 재료가 선호되었습니다. 사찰마다 불교 의식을 자주 행하면서 의식에 필요한 불화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조선 전기 미술 전시회 대전 이번 작품들은 목조불상입니다.

수백년의 시간을 지났는데, 목조 작품이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다는 부분이 놀랍네요.

 

나무에 흙을 씌워 만든 관음보살과 지장보살 

소조관음보살입상 塑造觀音菩薩立像 소조지장보살입상 塑造地藏菩薩立像

조선 전기 나무, 흙 덕수2209, 덕수1780

 

한 쌍으로 만들어진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입니다. 조각난 나무를 못으로 연결하여 상을 만들고 전체적으로 흙을 얇게 씌웠습니다. 얼굴과 턱, 온몸에 걸친 옷주름처럼 섬세한 표현이 필요한 곳에 흙을 덮어 조각한 후 삼베를 씌우고 옻칠을 더했습니다. 나무의 단단함과 흙의 섬세함을 모두 이용한 방법입니다. 보살은 얼굴이 장방형에 하반신이 긴 비율을 보입니다. 이는 가슴 앞에서 세 줄로 나뉜 장신구와 다리 앞에서 주름진 옷주름 표현과 함께 15세기 보살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원래 아미타부처를 중심으로 삼존상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무에 흙을 씌워 만든 관음보살 

목조관음보살좌상 木彫觀音菩薩坐像

조선 전기 나무, 흙 국립경주박물관 접수411

 

한쪽 무릎을 세우고 편안하게 앉은 관음보살입니다. 이 윤왕좌輪王坐 자세는 고려시대 이후 수월관음보살의 전형적인 자세였으며, 조선 전기에도 여전히 이어졌습니다. 보살의 몸체는 여러 조각의 나무를 못으로 조립하고 바닥에 흘러내린 옷자락은 흙으로 섬세한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보관과 양팔 장식은 금속으로 만들고 색색의 보석을 박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보살의 둥근 얼굴과 좁은 어깨, 편평한 가슴 등에서 조선 전기의 특징이 엿보입니다.

 

이번에는 무서운 불화들이 소개됩니다. 죄 짓지 않고 살아야 극락왕생 한다는...

 

감로를 베풀어 아귀를 구하는 그림 

감로도 甘露圖

조선 16세기 삼베에 색 증7551

 

굶주린 영혼을 먹이고 위로하는 불교 의식에 걸었던 그림입니다. 굶주린 아귀가 그림 가운데 그려져 있으며,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가족, 춤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승려들, 의식 공간에 내려오는 부처와 보살이 그려졌습니다. 의식의 목적과 절차, 내용을 그림으로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일반 신도들을 위한 의식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측하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조선 전기부터 많이 그려지기 시작해 조선의 독특한 의식용 그림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 부처 석가여래설법도 釋迦如來說法圖

지장보살과 10명의 왕 지장시왕도 地藏十王圖

 

에필로그 조선의 빛, 훈민정음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마지막 공간입니다. 에필로그 공간으로 훈민정음이 소개되는데요.

해가 떠올라 세상을 비춥니다. 새 나라 조선의 문화도 해와 달처럼 빛났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유교적 이상을 바탕으로 옛 문물을 연구하여 새로운 문화와 미술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은 이전 시대와도, 주변 어느 나라와도 다른 조선만의 고유한 세계였습니다. 이 시대의 혁신과 창조성은 훈민정음을 만들어냈습니다. 듣는 대로 쓰고, 말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문자였습니다. 자음과 모음이 어울려 하나의 소리를 이루고, 그 소리가 다시 세상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자기나 불상을 만드는 장인들도 쉽게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교적 이상을 좇던 사대부는 한편으로 이 문자를 만드는 주역이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훈민정음으로 번역되어 모두가 소리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새 시대의 찬란함 속에서 만들어진 훈민정음은 오늘날에도 빛처럼 우리 삶 구석구석을 비춥니다. 빛이 어디에나 닿고, 누구에게나 스며드는 것처럼, 조선 전기와 우리도 500여 년의 시간을 건너 연결됩니다. 앞으로의 우리와도 여전히 그러할 것입니다.

 

 

해당공간에서는 영상으로 한글의 원리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번 조선 전기 미술 대전은 국내는 몰론 해외의 박물관과 사찰에서 보관중인 우리의 문화재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번 전시회가 끝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작품들이 많이 있으니 꼭 시간내서 방문하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이번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관람팁 및 예매, 도슨트, 아트샵 등 정보는 지난 포스팅 참고하세요.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예약, 도슨트, 포토존 관람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 관람후기 입니다.아마도 올해 한국미술 전시회로는 가장 큰 규모의 핫 한 전시회가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금

www.a4b4.co.kr

 

728x90
728x90

오늘 전시회 후기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 306호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시회 관람후기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관람했던 전시회 중에서 일본 작가의 전시회 또는 일본 미술전시회를 접했던 경험이 몇 손가락에 뽑는 것 같네요. 이번 전시회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잘 모르는 일본 전통미술에 대한 이해가 되는 좋은 기회로 추천 합니다.

 

| 전시회 개요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日本美術のとびら四つのまなざし
Japanese Art from Four Perspectives
전시기간 : 2025. 6. 17.~8. 10.
전시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06호

 

이번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시회는 총 4개의 섹션에서 가을풀무늬 고소데 등 62점의 회화, 도자, 공예, 의상 등 다양한 일본 미술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 관람시간은 최소 1시간 30분 할애하셔야 합니다. 

| 전시회를 시작하며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쿄국립박물관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여, 일본미술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망하는 특별전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을 공동 개최합니다. 양 기관은 오랫동안 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긴밀히 교류해 왔으며, 그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 관람객에게 일본미술을 소개하는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도쿄국립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엄선한 소장품 62건을 중심으로, 일본미술이 지닌 외적인 아름다움과 내면의 정서를 눈과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화려한 장식성(飾り), 이에 대비되는 절제된 미(反飾り), 자연의 섬세한 변화에 대한 감동(あはれ), 유쾌하고 재치 있는 미적 감각(遊び)이라는 네 가지 시선을 통해 일본미술을 조명합니다. 이 요소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며 일본인의 삶과 세계관을 반영합니다. 일본미술의 시각적 매력을 넘어서, 그 내면에 흐르는 사유와 감성을 오롯이 경험하는 기회를 선사할 것입니다. 네 가지 시선을 따라 일본미술을 좀 더 친숙하게 감상하고, 나아가 일본 문화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I. 꾸밈의 열정 Decorative Impulse

일본에서는 예부터 사물과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문화가 발전해 왔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92) 귀족들은 몸을 치장하고 공간을 호화롭게 장식하여 일상에 특별함을 더했다. 이러한 미의식은 여러 시대를 거치며 무사, 상인, 농민 등 다양한 계층으로 널리 퍼져 화려한 일본미술의 토대가 되었다.

 

조몬 시대(縄文時代, 기원전 11000년-400년)의 토기,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의 채색 자기, 금을 가루로 장식한 칠기, 금박 위에 화려한 색을 입힌 병풍, 그리고 장식적인 서체로 쓴 서예 작품까지 다양한 미술품 속에 담긴 꾸밈의 정신과 그 미적 의미를 살펴본다.

 

장식 종이에 꽃핀 글씨

Letters Blooming on Decorated Paper

우아한 귀족 문화가 꽃핀 헤이안 시대 이후에는 종이를 갖가지 색으로 물들이고 금과 은으로 그림을 그려 장식하는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이렇게 꾸민 종이에 글씨를 쓸 때는 굳이 빈 공간이 아닌 그림 위에도 겹쳐지도록 썼습니다. 즉 글씨는 단순히 문자의 기능을 넘어 종이 위에서 그림과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움을 자아냈습니다.

뜻보다 시각적 아름다움을 우선하여 글씨를 쓰는 서법도 등장합니다. ‘흩뜨려 쓰다’라는 뜻의 지라시가키(散らし書き)는 장식적 서법의 대표 사례입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쓰는 전통의 방식을 지키지 않고, 의미와 상관없이 줄을 바꾸며, 글자의 나열이 만드는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시회 1부 꾸밈의 열정 Decorative Impulse 에서는 화려한 일본 미술의 정수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겐지모노가타리 중 제39첩 유기리 源氏物語 第三十九帖 夕霧

고노에 노부타다(近衛信尹, 1565~1614)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와카 단간 和歌巻断簡

혼아미 고에쓰(本阿彌光悅, 1558~1637)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이 작품의 바탕 종이는 금은니(金銀泥)를 사용한 판화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양귀비 꽃과 열매, 수선화 세 가지 도안을 반간야 적되, 높낮이에 변화를 주어 시각적 리듬을 형성했다. 고예쓰는 밑그림에 맞추어 글씨 각 행의 높이와 길이를 조절했으며, 시의 운율이나 의미에 상관없이 줄을 바꾸어 장식적인 서예를 완성했다. 글씨의 굵기, 농담, 높낮이 변화가 만드는 시각적 아름다움은 물론 글씨와 그림이 이루는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봉황공작도병풍 鳳凰孔雀図屏風

가노 히데노부(狩野秀信, 1639~1718)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6폭으로 이어진 병풍 두 척이 한 쌍을 이루는 전형적인 일본 병풍이다. 오른쪽 병풍에는 냇가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봉황 한 쌍과 오동나무를, 왼쪽 병풍에는 벚나무 아래에서 노니는 세 마리 공작을 묘사했다. 화면의 여백에는 일정한 크기로 잘라낸 사각형 금박을 붙여 정교하게 장식했다. 오른쪽 병풍의 화면 오른쪽과 왼쪽 병풍의 화면 왼쪽 하단에 ‘히데노부 필(秀信筆)’이라는 묵서와 ‘가이의(外記의)’ 인장이 있어,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회화 제작을 전담하던 가노파(狩野派)의 화가가 주세기 히데노부(狩野常信, 1639~1718)의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학 거북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무늬 옷 모양 이불 夜着萌黄縮緬地松竹梅鶴亀模様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옷처럼 보이는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의 이불입니다. 원래는 붉은 비단 안감이 있었고, 겉감과 안감 사이에는 두툼한 솜이 들어 있었으나 현재는 해체되어 겉감만 남아 있습니다. 당시 잠자는 동안 마귀가 들 수 있다는 속설이 있었고, 이에 따라 이불에 봉황, 학, 거북, 여의보주, 소나무, 대나무, 매화 등 길상무늬를 자수나 화려한 염색 기법으로 대담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이불은 한 쌍을 나란히 놓으면 부리를 벌린 학과 다른 학이 서로 마주 보게 됩니다. 이러한 두 마리 학의 조합은 원만한 부부 사이를 상징합니다. 학은 천년을 사는 길조(吉鳥)로 여겨졌으며, 학무늬에는 부부가 오래도록 해로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불 전체에는 거상(巨商)의 부유함을 상징하는 호화로운 자수를 놓았으며, 혼례 때 신방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일본의 채색 자기

조몬 시대(繩文時代) 후기(繩文後期 기원전 2000년~1000년)와 만기(繩文晩期 기원전 1000년~400년)의 토기는 정교하게 무늬를 새겨 마감한 것과 조리용으로 비교적 간소하게 제작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깊은 바리 외에도 항아리 모양 토기[甕形土器], 뚜껑토기[蓋土器], 귀때토기[耳土器] 등이 등장한다. 토기의 종류에 따라 정확한 용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당시 사람들이 쓰임새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후기와 만기의 토기는 줄기처럼 입체감 있는 장식은 줄어들고, 선을 그어 만든 기하학무늬가 많이 나타난다. 또한 토기 표면에 새끼줄로 무늬를 새긴 뒤 일부를 갈거나 깎아 지우는 스트레치 조몬(撚消縄文 기법)이 널리 유행했다. 이 기법은 기하학적인 선무늬와 함께 사용되는데, 선을 경계로 새끼줄무늬가 남은 부분과 사라진 부분이 대비를 이루어 기하학무늬의 장식 효과가 강조됩니다.

 

채색 꽃 새무늬 발 色絵花鳥文大深鉢

이마리 자기(伊萬里燒)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채색 참외무늬 대접 色絵瓜平文鉢

이마리 자기(伊萬里燒)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일본 중요문화재

 

채색 푸른 물결과 모란무늬 접시 色絵青海波牡丹文皿

나베시마 자기(鍋島燒)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일본미술

| 꾸밈의 원류, 조몬 토기

조몬 시대(繩文時代) 후기(기원전 2000년~1000년)와 만기(기원전 1000년~400년)의 토기는 정교하게 무늬를 새겨 마감한 것과 조리용으로 비교적 간소하게 제작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깊은 바리 외에도 항아리 모양 토기, 뚜껑토기, 귀때토기 등이 등장합니다. 토기의 종류에 따라 정확한 용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당시 사람들이 쓰임새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귀때토기 注口土器

도호쿠(東北) 지방 출토
조몬 시대(繩文時代) 만기
도쿄국립박물관

 

향로 모양 토기 香炉形土器

아키타현(秋田縣) 미사토정(美郷町)
로쿠고(六郷) 이시나다테(石名館) 출토
조몬 시대(繩文時代) 만기
도쿄국립박물관

 

후기와 만기의 토기는 줄기처럼 입체감 있는 장식은 줄어들고, 선을 그어 만든 기하학무늬가 많이 나타납니다. 또한 토기 표면에 새끼줄로 무늬를 새긴 뒤 일부를 갈거나 깎아 지우는 스트레치 조몬 기법이 널리 유행하였습니다. 이 기법은 기하학적인 선무늬와 함께 사용되는데, 선을 경계로 새끼줄무늬가 남은 부분과 사라진 부분이 대비를 이루어 기하학무늬의 장식 효과가 강조됩니다.

 

깊은 바리 深鉢形土器

도쿄도(東京都) 하무라시(羽村市)
하케타우에(羽ヶ田上) 출토
조몬 시대(繩文時代) 중기
도쿄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시회에서 만나본 일본의 도자들...

바로 옆동네 이지만 우리나 중국과도 확연하게 다르네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회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1부가 열리고 있는 전시장 공간

 

마키에 벚꽃무늬 향 놀이 도구 상자 桜蒔絵十種香箱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여러 향을 맡고 구별해 내는 구미코(組香) 놀이에 사용하는 도구를 담는 상자이다. 구미코 놀이는 기본적으로 ‘열 가지 향’이라는 뜻의 짓큐코(十種香)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먼저 세 종류의 향을 맡은 뒤 그 세 종류의 향을 각각 세 개의 향포에 넣어 아홉 포를 만들고, 시향하지 않은 새로운 향을 한 포에 넣어, 총 네 종류의 향이 든 향포 열 개를 준비한다. 이 향포 열 개의 향을 맡고 네 가지 향 중 어떤 향인지 알아맞히는 놀이다. 구미코 놀이는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92~1573)에 체계화되었고, 에도 시대(江戶時代, 1603~1868)에 이르러 널리 유행해 향의 도구 전문가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짓큐코 상자는 다이묘(大名) 혼슈를 모은 채택됨에 일정한 규격을 갖추고 상자를 다채로운 장식으로 화려하게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짓큐코에 사용한 도구를 담는 상자이다. 겉 상자를 비롯한 각종 도구 표면은 전체적으로 검은 칠을 하고, 금은 가루와 붉은 가루를 활용한 마키에(蒔繪) 기법으로 벚꽃무늬를 정교하게 장식했다. 또한 뚜껑 안쪽에는 은을 소량한, 흑칠하여 장식의 변화를 주었다. 다양한 꽃무늬와 풍부한 색채가 어우러져 우아하고 화려한 장식을 이루고 있다. 내용물은 향을 담는 도구(향로, 향봉 등을 담는 3단 상자, 제출할 때 담는 통)와 향을 맡을 때 제출할 때 사용하는 도구(향포, 향봉 등을 표시한 패, 제출할 패를 담는 종이 주머니와 통 등)로 구성되어 있다. 후쿠시마 오사무(福島修).

728x90

 

마키에 모란넝쿨 접시꽃무늬 오하구로 도구 牡丹唐草葵紋散蒔絵お歯黒道具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상류층 무사 가문에서 딸을 시집보낼 때 마련하던 칠기 혼수품 가운데 하나로,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데 사용한 도구입니다. 에도 시대(江戶時代, 1603~1868)의 여성은 성인이 되거나 결혼이 결정되면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오하구로(お歯黒) 화장을 했습니다. 검은색은 다른 색에 물들지 않아 정절의 증표로 여겨졌으며, 충치 예방에도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치아를 물들이기 전에는 먼저 뚜껑에 망을 댄 작은 상자에 담긴 양치 도구로 이를 깨끗이 닦고, 뚜껑이 있는 우묵한 그릇을 사용해 입을 헹궜습니다. 본격적으로 이를 물들일 때는 양옆에 귀가 달린 대야 위에 와타시가네(渡金)라는 긴 금속판을 걸쳐두었습니다. 그 위에 치아를 물들이는 염료와 용액이 담긴 금속제 주전자·그릇을 올리고, 새 깃털로 만든 붓으로 치아를 염색했습니다. 귀 달린 대야 안에는 끓인 물을 넣어 염색을 마친 뒤 입을 헹궜습니다..


한편, 이 시기 상류층 무가(武家) 사회에서 혼례 의식과 혼수품은 가문의 위세와 품격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이 도구 역시 검은 칠 바탕에 금은 가루를 뿌려 장식하는 마키에 기법으로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금은 가루를 배경에 흩뿌린 뒤, 그 위에 모란넝쿨무늬와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葵紋), 그리고 접시꽃무늬를 군데군데 배치해 한층 더 화려함을 살렸습니다. 이처럼 꾸밈은 때때로 권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II. 절제의 추구 Pursuit of Restraint

장식과 더불어 일본미술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화려함을 덜어내는 절제의 미의식입니다. 장식을 최소화하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며, 불완전함 속에서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하였습니다.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92~1573)부터 사찰 공방에서 제작된 붉은 칠기는 금을 장식 대신 실용성과 견고함을 강조하였으며,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에는 사치 금지령의 영향으로 단정하고 간결한 옷차림을 세련된 멋으로 여겼습니다. 절제미는 자연스러운 흠과 거친 질감을 그대로 살린 투박한 찻잔에 잘 드러납니다

 

다도 도구의 아름다움

Beauty of Tea Ceremony Utensils

 

16세기 무렵 일본에서는 공간과 도구를 갖추고 차를 대접하는 ‘차노유(茶の湯)’가 성행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조선이나 일본 각지에서 만든 꾸밈없는 도기가 다도 도구로 새롭게 조명받았습니다. 완벽한 형태를 고수하지 않고, 굽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흠이 생기더라도 애써 고치지 않고 개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표면과 찌그러지고 금이 간 모양을 마치 ‘차갑고 마른(冷え枯れる)’ 겨울처럼 담담하면서 깊은 멋을 풍기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전시에 선보이는 다도 도구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사용감까지 고려해 만든 것으로 여기에는 도구 하나하나를 아끼고 사랑한 다도인의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베개 모양 꽃병 旅枕花入

비젠 도기(備前燒)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라이도진’이라 불린 대추 모양 차통 黒漆大棗 銘 来道人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붉은 띠무늬 그릇 緋襷向付

비젠 도기(備前燒)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安土桃山時代)~에도 시대(江戸時代) 16~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모래톱 모양 손잡이 그릇 織部洲浜形手鉢

미노 도기(美濃燒)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한 줄로 쓴 ‘적덕후자수박’ 一行書 積徳厚自受薄

료칸(良寬, 1758~1831)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도쿄국립박물관

 

 

붉은 칠 굽다리 접시 朱漆高杯 / 붉은 칠 대접 朱漆鉢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安土桃山時代) 1597년
국립중앙박물관

 

붉은 칠 술병 朱漆瓶子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5~1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사치 금지령 속에 탄생한 또 다른 멋

에도 시대에는 오랫동안 평화가 이어지면서 도시 상공업자들의 경제력이 눈에 띄게 성장하였습니다. 이들은 귀족이나 무사처럼 각종 여가와 장식 문화를 누리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막부는 신분 질서를 유지하고 경제를 안정시키고자 사치 금지령을 여러 차례 내렸습니다.

이 무렵부터 도시 사람들 사이에 잔무늬, 줄무늬 옷이나 회색·갈색·남색처럼 수수한 색으로 물들인 옷이 유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통제하던 시대에, 사람들은 꾸미지 않은 듯한 간결함에서 또 다른 세련된 멋을 찾았던 것입니다.

 

 

리칸 줄무늬 고소데 小袖紺木綿地璃寛縞模様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도쿄국립박물관

반응형

 

잔벚꽃무늬 고소데 小袖鼠平絹地小桜模様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III. 찰나의 감동 Beauty of Ephemerality

일본미술을 바라보는 세 번째 시선은 미술에 깃든 마음에 닿습니다. 일본 문화에는 벚꽃이 피고 지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듯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면서도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애잔한 정서를 의미하는 ‘아와레(あはれ)’가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와레의 정서는 일본 고유의 시가인 와카(和歌)나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92)의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와 같은 고전 문학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미술에도 다양하게 표현되었는데, 잠시 꽃을 피우는 가을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아와레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전하는 소재로 사랑받았습니다. 전시에서는 가을풀이 묘사된 그림, 복식, 공예 등 미술품과 함께, 아와레를 표현한 문학 작품과 공연을 소개합니다.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시회 섹션 3 공간은 좌우에 대형 병풍이 전시되어 있고, 정면에 옷 한벌이 보입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생각되는 곳

 

무사시노도병풍 武蔵野図屏風

작가 모름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무사시노(武蔵野)는 지금의 도쿄도(東京都)와 사이타마현(埼玉縣)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으로, 와카(和歌)에 자주 등장하는 일본 동부의 대표적 명소이다. 달 아래 억새 등 가을풀이 무성한 너른 들판은 가을의 정취를 담은 와카의 주요 소재였다. 이 그림에서는 지평선 가까이에 떠오른 달과 웅장한 후지산의 산줄기가 대비를 이룬다. 달은 억새와 도라지 같은 가을풀에 가려져 있다. 

 

이는 “달이 숨어들 봉우리조차 없구나(月の入るべき嶺もなし,)”라는 와카 구절을 연상케 한다. 화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억새와 멀리 펼쳐진 산 사이에는 금빛 구름과 안개가 가로로 길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표현은 화면에 깊이감을 부여하는 일본 회화의 전통적 기법이다. 가까이서 보면 역시 일본인 특유의 성격이 작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 중앙에 있는 체험공간 원하는 소리의 종이를 중앙에 올려놓은면 내용에 맞는 문구와음삭, 배경이 출력되는데, 잘 모르겠다.

 

추초도병풍 秋草図屏風

와타나베 기요시(渡邊淸, 1776~1861)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각 병풍에는 흰 점 위에 노란색을 덧칠하여 입체적으로 표현한 마타리꽃과 푸른빛 도라지꽃이 풍성하게 피어 있습니다. 마타리와 도라지는 ‘가을의 일곱 가지 풀’에 속하며, 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 『만요슈(萬葉集)』에 수록된 “싸리꽃, 억새꽃, 칡꽃, 패랭이꽃, 마타리꽃, 등골나물, 도라지꽃[萩の花 尾花 葛花 なでしこの花 女郎花 藤袴 朝がほの花]”이라는 시 구절에서 유래했습니다. 가을에 잠시 피었다 지는 풀꽃은 지나감을 향한 아쉬움과 애틋함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을풀은 일본에서 그림의 소재로 널리 사랑받았습니다.

 

마타리꽃에 대한 표현, 사진에서는 잘 못 느끼겠지만 노란 금박 배경위에 금보다 더 노란 꽃들의 표현이 상당히 흡입력을 가진다.

 

앞의 병풍이 여백은 무시하고 병풍 전체를 빽빽하게 채웠다면 이번 작품은 여백의 미와 화려하면서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마키에 담쟁이 울타리무늬 벼루 상자 柴垣蔦蒔絵硯箱

고마 규이(古滿休意, 생몰년 미상)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일본 중요문화재

 

이 작품은 뚜껑이 달린 벼루 상자입니다. 뚜껑은 윗면이 볼록하게 솟아 있으며, 네 귀퉁이와 옆면이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둥근 느낌을 줍니다.  벼루와 연적을 놓는 판에는 비 내리는 강가와 갈대를 묘사하여, 뚜껑과 본체의 장면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였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마키에 기법을 활용해 대상의 움직임과 정서를 회화적으로 담아낸 표현은 이전 시대의 벼루 상자에서는 보기 어렵습니다. 이 벼루 상자는 1636년부터 에도 막부의 전속 마키에 장인으로 활동한 고마 규이(古満休意, 생몰년 미상)가 제작한 것으로, 뚜껑 안쪽에 그의 아들 고마 규하쿠(古満休伯, ?~1715)가 남긴 명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을풀무늬 고소데 小袖白綾地秋草模様

(그림)오가타 고린(尾形光琳, 1658~1716)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일본 중요문화재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 전기부터 중기까지 활약한 화가 오가타 고린(尾形光琳, 1658-1716)께서 직접 무늬를 그린 것으로 알려진 고소데(小袖)입니다. 이 옷과 함께 전해 오는 두루마리 그림을 통해 오가타 고린의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토에서 화가로 명성을 쌓으신 고린은 1704년에 더 큰 성공을 꿈꾸며 에도(현재의 도쿄)로 향하셨습니다. 당시 처음 머무르신 곳은 후카가와(深川)의 목재상인 후유키(冬木) 가문의 저택이었는데요, 그 시절 유복한 상인층 여성들 사이에서는 유명 화가가 직접 무늬를 그린 고소데가 큰 유행이었습니다. 고린의 작품으로 알려진 고소데는 몇 점 전해지지만,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이 작품이 유일합니다. 

 

비록 고린의 낙관은 남아 있지 않지만, 사카이 호이츠(酒井抱一, 1761-1829)의 제자 이케다 고손(池田孤村, 1801-1866)이 편찬한 『고린 신찬백도(光琳新撰百図)』에 이 고소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에도 시대 후기에도 이 고소데가 고린의 작품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고린께서 신세를 진 후유키 가문의 안주인을 위해 그리셨다는 설도 전해집니다.

이 고소데에는 고린이 당시 자주 그리셨던 ‘가을풀’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쪽빛 농담이 돋보이는 도라지꽃을 중심으로 억새, 국화, 싸리 등 가을풀이 무성하게 어우러져 가을의 넓은 들판을 떠올리게 합니다. 허리 부분에 여백을 남겨 둔 점에서는 교토의 포목점 가리카니야(雁金屋)의 아들이었던 고린의 섬세한 배려가 엿보입니다

 

같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서로 다른 극, 노(能)와 교겐(狂言)

Same Stage, Different Dramas: Noh and Kyogen

노(能)는 일본을 대표하는 무대 예술로, 가면을 쓴 배우가 노래와 춤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가무극입니다. 노에서는 비극적 서사를 다룬 작품이 많습니다. 오늘날까지 상연되는 작품의 절반가량은 슬픈 사연을 지닌 혼령이 세상에 미련을 품은 채 등장해 살아 있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입니다. 이 밖에도 비극적 상황에 처한 인간의 슬픔과 고뇌가 노의 주요 소재입니다. 그러나 노에서는 슬픔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배우는 절제된 대사와 몸짓으로 슬픔을 담담히 표현하고, 관객께서는 절제된 연기와 가면 속에 드러나지 않는 표정을 보시며 슬픔을 느끼고 깊은 여운과 정취를 경험하시게 됩니다.

 

비극적인 노의 막간에는 희극인 교겐(狂言)을 상연하였습니다. 노의 체계를 확립한 제아미(世阿弥, 1363년경~1444년경)께서는 노 공연 세 편과 교겐 공연 두 편을 번갈아 올린다고 기록하셨습니다. 대사 중심으로 진행되는 교겐은 일상적인 유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루며, 교겐 가면은 개성 있는 생김새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배역의 성격을 단번에 드러냅니다. 배우는 과장된 몸짓과 대사로 관객 여러분께 웃음을 전해 드렸습니다. 이처럼 엄숙한 노의 막간에 등장한 교겐은 일본 미술 속에서 슬픔과 유쾌함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민들레 눈꽃무늬 누이하쿠 교겐 의상 縫箔白地花菱亀甲蒲公英雪輪草花模様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이 교겐(狂言) 의상에는 내리는 눈송이를 도안화한 둥근 눈꽃 모양 틀 안에 사시사철의 꽃과 풀을 수놓았습니다. 대나무와 어린 소나무, 조릿대는 새봄을, 등꽃은 초여름을 상징합니다. 마타리, 패랭이꽃, 싸리, 버드나무와 국화, 도라지와 나비는 일본인이 특히 사랑하는 가을풀 무늬입니다.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는 화려한 단풍을 비단에 빗대어 표현한 무늬도 있습니다. ‘흐르는 물과 단풍’은 전통적인 조합으로, 와카(和歌)에 자주 등장하는 명소 다쓰타강[龍田川]을 상징합니다.

 

노 가면 ‘샤쿠미’ 能面 曲見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일본 중요문화재

 

 

노 가면 ‘한나'

에도 시대(江戸時代) 17~18세기

불룩한 이마와 앞으로 돌출된 턱, 중앙이 움푹 들어간 얼굴 형태의 ‘샤쿠미(曲見)’ 가면입니다. 중년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일본의 전통 가무극 노(能) 공연에서 자식을 잃고 실의에 빠진 어머니 역할에 자주 사용됩니다.

 

교겐 가면 ‘오토’ 狂言面 乙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6세기
도쿄국립박물관

반응형

정감 있고 사랑스러운 인상의 가면입니다. 통통한 볼에 살짝 위로 들린 낮은 코, 단정한 머리, 작은 입술, 초승달 같은 눈매, 혀가 살짝 보이게 웃는 표정이 귀여운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모습은 일본의 전통 희극 ‘교겐(狂言)’의 작품 <마쿠라노노구루이(枕物狂)>에 등장하는 ‘오토고제(乙御前)’ 역할에 어울리는 가면입니다.

IV. 삶의 유희 Aesthetics of Playfulness

사뭇 진지한 노(能)의 막간에 상연되는 교겐(狂言)이 웃음을 선사하듯이, 일본 미술에는 ‘아와레(あはれ)’의 마음과 함께 ‘아소비(遊び)’의 마음이 공존합니다. 이번 설명의 마지막 시선은 일본 미술에 드러난 아소비의 마음입니다. ‘놀이’를 뜻하는 아소비는 미술에서는 현실을 유쾌하게 바라보고 형식을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하며 표현하는 태도로 확장됩니다.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의 우키요에는 놀이와 여가를 즐기던 사람들의 일상이 생생하게 담겨 있으며, 동물이나 인물을 묘사한 작은 도자기에는 해학과 재치가 깃들어 있습니다. 또한 전통 수묵화의 틀에서 벗어나 먹의 번짐과 즉흥성을 활용해 자유로운 회화 세계를 펼친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1716-1800) 선생의 작품에서는 그림 그리는 행위를 놀이처럼 여긴 화가의 인식을 엿보실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과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시회 마지막 공간...

 

수묵유도권 水墨游図巻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1716~1800)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 후기에 ‘이색 화가’로 이름을 떨치셨던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17161800) 선생의 수묵 화조화입니다. 매화, 작약, 국화 등 계절을 대표하는 꽃과 뻐꾸기·닭·원앙 같은 새를 묘사한 다섯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화면은 제목·그림·제발문(題跋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목 ‘수묵유(水墨遊)’와 인장 ‘정선지인(淨善之印)’은 황벽종(黃檗宗) 선승 무센 조센(無染淨善, 1693-1764) 스님의 글씨를 판화로 찍은 것입니다.


제발문은 자쿠추 선생과 교유가 깊었던 선승 다이텐 겐조(大典賢常, 17191801) 스님의 글로, 판화첩 『현포요화(玄圃瑤華)』에 실린 글과 동일합니다. 제목과 제발문이 언제 추가되었는지는 확언할 수 없으나, 이 작품에 사용된 흑백 반전의 ‘다구한가(拓版畫)’ 기법 자체가 ‘먹의 유희’라는 주제를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수묵화에 비해서는 한 참 떨어진다는 생각 깊은 먹의 놀림이 없다는 생각

 

진짜진짜 마지막 전시공간

 

채색 오후쿠 향합 色絵於福香合

닌나미 도하치(仁阿彌道八, 1783~1855)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도쿄국립박물관

 

향합은 향을 담기 위한 뚜껑이 달린 그릇입니다. 다도에는 화로에 숯을 넣는 ‘스미테마에(炭手前)’라는 절차가 있으며, 이때 화로에 향도 함께 넣어 실내에 향이 퍼지게 하였습니다. 다도에서 사용하는 향합의 재질은 계절에 따라 달라집니다.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풍로를 사용하는 시기에는 칠기 향합을, 늦가을부터 봄까지 바닥에 고정된 화로를 사용하는 시기에는 도자기 향합을 사용합니다. 도자기 향합은 산지·형태·무늬가 매우 다양하여 차 모임의 취지나 주최자의 취향에 맞추어 선택하였습니다.


이 향합은 ‘오타후쿠’라고도 불리는 정감 있는 여성의 모습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한자로는 ‘많을 다(多)’와 ‘복 복(福)’을 써서 ‘오타후쿠(御多福)’라고 표기하며, 행운을 불러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향합을 만든 닛나미 도하치(仁阿彌道八, 1783-1855) 선생은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 후기부터 말기까지 교토에서 활약한 도공이셨습니다. 찻잔을 비롯하여 다양한 다기를 제작하셨고, 특히 상형 도자기를 훌륭히 만들어 세부를 섬세하게 묘사한 독특한 작품도 많이 남기셨습니다.

 

도슈사이 샤라쿠(東洲斎寫楽, 생년 미상)는

1794년부터 1795년 초까지 약 열 달간 판화 140여 점을 제작한 뒤 자취를 감춘, 수수께끼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794년 5월 에도(현재의 도쿄) 내 세 극장에서 열린 가부키(歌舞伎)에 출연한 배우들을 묘사한 판화 28점 연작은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됩니다.

 

생선 장수 ‘고로베’를 연기한 4대 마쓰모토 고시로 四代目松本幸四郎の肴屋五郎兵衛 (우)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 생몰년 미상)
에도 시대(江戸時代) 1794년
국립중앙박물관

 

‘오시즈’를 연기한 3대 세가와 기쿠노조 三代目瀬川菊之丞の田辺文蔵女房おしづ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 생몰년 미상)
에도 시대(江戸時代) 1794년
국립중앙박물관


이 우키요에 작품은 미야코자(都座) 극장에서 상연된 가부키 〈하나야아메 본료쿠소가(花着清文蔵倶我)〉에서 ‘오시즈(おしず)’ 역을 맡은 3대 세카와 기쿠노조(三代目瀬川菊之丞, 1751-1810)를 그린 것입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관자놀이 부근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모습으로 보아, 병을 앓던 오시즈가 막 일어난 상황임을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
이 가부키는 형제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복수극으로, 오시즈는 형제의 복수를 돕는 다나베 본조(田邉文蔵)의 아내로 등장합니다. 결의에 찬 채 일어선 오시즈의 모습에서는 복수를 돕다 곤궁에 처한 부부의 절박한 상황이 드러납니다.
화면 왼쪽에는 도슈사이 샤라쿠의 이름과 함께, 그와 협업하여 판화 연작을 출판한 쓰타야 주자부로(蔦屋重三郎, 17501797)의 인장과 막부 검열을 통과했음을 증명하는 기아메(極印)가 찍혀 있습니다.

 

 

활기 연작 중 료고쿠 にぎわいぞろい·両国のにぎわい

우타가와 구니요시(歌川國芳, 1797~1861)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이 작품은 구니요시의 《활기》 연작 가운데 하나로, 우키요에와 부채를 취급하던 도매상 이세야 소에몬(伊勢屋惣右衛門, 생몰년 미상)이 출판을 담당했습니다. 요정 2층에서 젊은 여인이 스미다강[隅田川]의 료고쿠(両国) 다리를 내려다보며 활기찬 풍경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료고쿠는 에도 최고의 번화가였으며, 여름이면 불꽃놀이를 보려는 인파로 붐볐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강에는 지붕 달린 유람선과 쪽배가 떠다니고, 다리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인의 시선 끝에는 이제 막 솟아오르려는 불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내유락도병풍 邸内遊楽図屏風

작가 모름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전반
국립중앙박물관

 

건물 실내에서 다양한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묘사한 풍속화입니다.

이 작품은 6곡 병풍 두 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물의 마당과 실내에서 여러 놀이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큰 화면으로 이어 담았습니다. 오른쪽 병풍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 주인을 기다리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가마꾼과 하인들, 그리고 마당에서 북과 소고 연주에 맞추어 흥겹게 춤추는 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 병풍에는 증기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사람들과 샤미센(三味線, 일본의 대표적인 현악기) 연주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추는 사람들, 그리고 2층 누각에서 장기를 두고 편지를 쓰며 카드놀이와 차 마시기 등 여흥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유흥거리를 묘사한 ‘유락도(遊樂圖)’는 무사들의 패권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센고쿠 시대(戰國時代)가 끝나고 에도 막부가 들어서면서 사회가 안정된 16세기 말부터 17세기에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를 즐기려던 당시 사람들의 마음이 잘 반영된 작품입니다.

 

 

당자유도병풍 唐子遊図屏風

나가사와 로세쓰(長澤蘆雪, 1754~1799)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동자들이 물가에서 꼬리잡기 놀이를 하며 노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는 중국풍으로 머리를 묶거나 옷을 입은 아이들을 ‘가라코(唐子)’라고 부릅니다. 가라코는 다산(多產)과 다복(多福)을 상징하는 길상적인 소재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습니다. 이 병풍은 네 폭이 하나의 화면을 이루고 있으며, 양 끝과 중앙에 달린 손잡이를 통해 원래 종이를 바른 장지문에 그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 속 아이들은 일본 전통 놀이인 ‘고토로코토로(ことろことろ)’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이 놀이는 맨 앞 아이가 술래의 공격을 막아 뒤쪽 아이가 잡히지 않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생동감과 흥겨움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그림에는 동자가 모두 마흔여 명 있습니다.

 

 

이번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특별전은' 8월 10일 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06호 에서 전시될 예정입니다.

해당 기관 특별전시실1 에서는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매술 대전이 열리고 있으니 한일 양국의 비슷한 시기 작품들을 비교하면서 감상하실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예약, 도슨트, 포토존 관람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회 관람후기 입니다.아마도 올해 한국미술 전시회로는 가장 큰 규모의 핫 한 전시회가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금

www.a4b4.co.kr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