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화이트스톤 갤러리 전시 three is a magic number 23, 피규어가 예술이 되는 순간
요즘 주말마다 전시 보러 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 있어요. 이번에는 용산 소월로에 있는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에 다녀왔는데요, 일본 아티스트 컬렉티브 three의 한국 첫 개인전 《three is a magic number 23》이 열리고 있더라고요.
피규어로 작업하는 작가라는 얘기만 듣고 가볍게 갔는데, 생각보다 훨씬 오래 머물다 나왔어요.


전시 정보부터 정리해 둘게요.
기간 : 2026년 10월 17일 ~ 11월 29일
장소 :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 (서울 용산구 소월로 70)
관람 시간 : 오전 11시 ~ 오후 7시
휴관 : 매주 월요일


전시장은 하얀 벽에 작품들이 여유 있게 놓여 있어서 천천히 둘러보기 좋았어요.

입구에서 받은 전시 서문을 먼저 읽어봤어요. three는 일본 후쿠시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컬렉티브인데,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게임에서 나온 양산형 피규어를 자르고 녹이고 다시 배열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대요.
각자 얼굴도, 옷도, 이야기도 있던 캐릭터들이 한 덩어리가 되는 거죠. 인터넷에서 수많은 사람의 생각과 이미지가 모여 하나의 흐름이 되는 것처럼,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작업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안에 담긴 결속의 힘과 불안정함까지요.


멀리서 보면 그냥 알록달록한 색 덩어리인데, 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손, 머리카락, 신발 같은 게 하나하나 보여요. 구상과 추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32V type Display 2019
TV Display, PVC Figure
73.5 × 9.0 × 44.0 cm
398.3 g 2024
Figure
10.0 × 10.0 × 10.0 cm



'V' 시리즈는 실제 텔레비전이나 아이폰 같은 화면 크기를 그대로 작품 규격으로 썼대요. 매일 들여다보는 스크린을 화면 속 이미지와 실제 사물 사이의 경계로 보고, 그 경계에 피규어로 형태를 입힌 거라고 해요.
진짜로 화면 속 캐릭터들이 밖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 것 같아서 한참 들여다봤어요.

58V Model Display 2019
TV Display, PVC, Figure
129.5 × 8.5 × 75.0 cm
21.5 V Model Display 2019
PC Display, PVC Figure
51.5 × 6.0 × 31.5 cm



이번 전시에서 제일 기대했던 신작 〈3234g〉이에요. 원형 작품인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피규어가 녹은 정도가 조금씩 달라져요. 그래서인지 작품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듯한 깊이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제목이 무게(g)로 되어 있는 것도 재밌었어요. 대체 피규어가 몇 개나 들어갔을까 괜히 상상하게 돼요.

3234g 2026
PVC, wood, figure
60.0φ × 4.0 cm



입체 작품도 있었어요. 잘게 잘린 피규어 조각들이 모여서 또 하나의 사람 형상이 된 모습이, 묘하게 귀엽기도 하고 묘하게 낯설기도 했어요.

1468g 2023
Wood, PVC, aluminum
32.0 × 4.0 × 42.0 cm
3017g 2022
Stainless, wood, PVC
34.0 × 34.0 × 58.0 cm





벽에 나란히 걸린 'bit' 시리즈는 옛날 게임 도트 그래픽이 떠올라서 반가웠어요. 제목 괄호 안에 들어간 이름을 보면서 '아, 이거 그 캐릭터구나' 하고 혼자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13 bit (I mas) 2019
Figure, PVC
116.3 × 12.0 × 30.0 cm



16 bit (Kamen Rider) 2019
Figure, PVC
82.8 × 12.0 × 40.3 cm



가까이서 보면 익숙한 얼굴들이 살짝살짝 보이는데, 반가우면서도 원래 모습은 사라져 있어서 기분이 좀 묘했어요.

412.6g 2019
Figure, Aluminum, PVC, Wood
14.8 × 2.6 × 19.7 cm


이것도 원형 작품인데, 더 크고 훨씬 촘촘해요. 사진으로는 이 밀도가 다 안 담겨서 아쉬울 정도예요.

42.zip 2026
PVC, wood, figure
100.0φ × 4.5 cm






전시장에서 제일 시선을 사로잡은 대형 작품이에요. 공중으로 힘껏 뛰어오르는 듯한 형상인데, 크기가 커서 한 바퀴 빙 돌면서 봤어요. 보는 각도마다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33.68kg
2025
Stainless Steel, PVC, Aluminium, Wood,
FRP 140.0 × 180.0 × 220.0 cm


그리고 신작 'TRANS' 시리즈. 화면을 여러 조각으로 자른 뒤 각 부분을 일정하게 밀어서 재구성하고, 앞뒤 깊이를 다르게 만들었대요.
공간과 경계를 가로지르고 상태를 바꾼다는 'TRANS'의 의미가, 캐릭터가 피규어로, 피규어가 다시 작품으로 바뀌는 three의 작업과도 이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설명을 읽고 다시 보니까 훨씬 재밌게 보였어요.

77V type 18.85kg TRANS 2026
Aluminum, PVC, figure, wood
258.0 × 7.2 × 80.0 cm








투명한 구조물 안에 선 인물 형상들은 자리를 옮길 때마다 실루엣이 겹쳐 보여서, 저도 모르게 한참을 서성였어요.

5679g 2026
Figure, PVC
52.0 × 52.0 × 120.0 cm
6344g 2026
PVC, figure, wood
52.0 × 52.0 × 120.0 cm

영상도 함께 상영되고 있으니 시간 여유가 있다면 꼭 보고 오세요.


6 bit (Precure) 2019
Figure, PVC
78.5 × 12.0 × 53.0 cm

피규어라는 너무 익숙한 재료가 이렇게까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개성 뚜렷한 캐릭터들이 하나로 섞이면서도 어딘가엔 각자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모습이, 회사에서, 또 사회 속에서의 제 모습 같기도 해서 괜히 마음이 찡하더라고요.
전시는 11월 29일까지라 아직 시간이 있어요. 용산 쪽에 갈 일 있으면 가볍게 들러보시길 추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