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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전시 후기 | 현대회화 하이라이트: 시대의 초상

a4b4 2026. 10. 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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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전시는 초현실주의부터 지금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자리예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시작된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로 이어진 순수 추상, 그리고 다시 이야기와 형상을 불러온 포스트모더니즘까지, 크게 세 흐름으로 나눠서 작품들을 둘러보려고 하는데요. 근대 사회에서 화가들이 얻어낸 창작의 자유와 자율성이 이런 다양한 흐름을 가능하게 했다고 해요. 시대마다 미술이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시간 들여 천천히 감상하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 현대회화 하이라이트: 시대의 초상

  • 장소 :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 기간 : 2026. 9. 15. (화) - 2027. 1. 9. (토)
  • 관람시간 : Tue-Sat / 10am-6pm (일요일, 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 유료 전시회

이번 글로벌세아 전시회는 유료 전시회로 관람요금은 5천 원입니다. 놀티켓을 통해 예약 및 현장발권 방식으로 운영되니, 사전예약 또는 전시장 입구에서 QR코드 통해 티켓 구입 후 입장 하시면됩니다.

 

 

도슨트나 오디오가이드는 없지만, 비치된 책자 내용이 상당히 충실합니다. 

글시가 너무 작아서 불편 했지만 작품 관람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시장 입장시 꼭 챙긴 후 관람하시는 것 추천 드립니다.

 

 

이번 시대의 초상 전시회는 3개의 섹션 20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품 관람에는 한 시간은 아쉽고 두 시간은 조금 길 것 같네요. 물론 상당히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I. 꿈의 산책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후 등장한 초현실주의는 인간의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예술로 풀어낸 사조예요. 이성과 합리주의보다는 우연과 무의식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고 하는데요, 다다 이후 갈 곳을 잃었던 현대미술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 사조라고도 해요. 폴 델보와 마르크 샤갈, 이 두 거장의 몽환적인 작품들을 먼저 만나볼게요.

 

폴 델보 - 밤의 미녀들(저녁의 희극), 1936 · 캔버스에 유채, 100×100cm

데 키리코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델보의 초기작이에요. 거리에 서 있는 네 여인이 저마다 다른 시대의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 원근감 있게 표현된 게 인상적이더라고요. 사실 델보는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성에 대해 억압적인 환경에 놓여 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나부가 자유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대요.

카카오의 예술품에 대한 무지한 검열 기준을 충실하게 준수합니다.

 

그래서 델보에게 나부는 억압에서 벗어난 무의식의 해방구 같은 존재였다고 해요. 배경의 산도 델보가 어릴 적 자주 갔던 할아버지 댁 근처 풍경이라고 하니, 자기 기억을 낯설게 재조합한 셈이죠. 델보는 1934년 조르조 데 키리코의 '거리의 우울과 신비'를 보고 나서야 초현실주의에 눈을 떴다고 하는데, 그전엔 야수파와 표현주의에 가까웠대요.

 

폴 델보 - 잠든 도시, 1938 · 캔버스에 유채, 150.7×175.7cm

폐허가 된 도시 속에 나체의 여인들과 신사복 차림의 델보 자신이 함께 등장하는 몽환적인 작품이에요. 르네상스 건물에 고대 로마의 아치, 신석기 시대 유물까지 뒤섞어 놓아서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냈어요. 이렇게 기존의 신고전주의 형식을 빌려와 새로운 초현실 세계를 만들었다고 해서 '아카데미즘의 초현실화'라고도 불리는데요,

196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전시된 델보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해요. 델보는 이 여성 누드가 '특정 역할 없이 순수하게 시적인 요소로 참여한다'고 직접 설명하기도 했대요. 지그재그로 배치된 인물들과 투시법으로 그린 건물들 때문에 마치 무대 세트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폴 델보 - 크리스마스의 밤, 1956 · 메소나이트에 유채, 126.5×176.4cm

기차역을 참 좋아했던 델보라서 '역의 화가'라는 별명도 있대요. 실제로 역장을 꿈꾼 적도 있다고 하네요. 이 작품도 달빛 아래 기차역 풍경인데, 소실점을 이용한 과감한 원근법과 그림자 덕분에 낮인지 밤인지 헷갈릴 만큼 몽환적으로 느껴져요.

밤을 낮처럼 밝은 꿈의 세계로 표현해서, 검은색 없이도 밤을 표현하는 델보만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델보의 수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이라, 장대한 스케일 속 섬세한 묘사를 천천히 뜯어보는 재미가 있어요.

 

마르크 샤갈 - 방스 주변, 1955-1957 · 캔버스에 유채·톱밥, 162×131.1cm

유대인 화가 샤갈이 방스에 머물던 시절 그린 작품이에요. 러시아에서 태어나 파리, 미국을 거쳐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샤갈에게 성경은 가장 위대한 시의 원천이었다고 해요. 야곱의 사다리와 물고기, 촛대 같은 성경 속 상징들이 화려한 색채 속에 가득 담겨 있고, 그림 앞쪽엔 샤갈 자신도 황금빛 얼굴로 등장한답니다.

사랑하는 아내 벨라와의 삶이 그의 그림에 늘 따뜻한 생명력을 줬다고 하는데, 이 그림 속 과일과 꽃, 촛대가 놓인 식탁도 그런 생명력이 느껴져요. 유대교 신비주의인 하시디즘을 믿었던 집안에서 자란 영향으로, 바이올린 연주자나 랍비 같은 인물들이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고도 해요.

 

II. 난해한 추상

모더니즘 미술이 색과 형태만 남기고 점점 순수 추상으로 나아가던 흐름을 보여주는 섹션이에요. 그림에서 이야기와 역사를 지워버린 순수 추상은 결국 대중과 멀어지긴 했지만, 그만큼 작가 개개인의 실험이 돋보이는 지점이기도 해요. 드 쿠닝부터 쿠사마까지, 저마다 다른 방식의 추상을 만나볼 수 있어요.

 

피터 핼리 - 스토어, 1997 · 아크릴릭 등, 182.8×117cm

뉴욕에서 나고 자란 핼리는 어릴 때부터 봐온 빌딩과 격자형 도로, 아파트 구조 때문에 도시를 '감옥과 세포'로 바라봐요. 사각형과 직선만으로 화면을 채우는데, 네온 색과 롤-어-텍스라는 특수 건축 재료 덕분에 차갑고 딱딱한 도시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져요. 언뜻 보면 순수 추상 같지만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은유라는 게 이 작품의 재밌는 지점이에요.

1980년대 '네오 지오' 운동의 이론적 리더였던 핼리답게, 이론가로서의 면모가 그림 곳곳에서 느껴져요. 요제프 알버스의 색채 이론에 영향을 받아 평생 사각형이라는 형태에 매달렸다고 하니, 그 고집도 참 대단해요.

 

린 드렉슬러 - 활성화된 땅, 1965 · 캔버스에 유채, 182.9×223.5cm

드렉슬러는 오페라 공연장에 갈 때도 항상 스케치북을 챙겨서, 음악을 들으며 즉흥적으로 색과 선을 그려낸 작가예요. 이 작품도 패치워크 같은 붓터치로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했는데, 왼쪽의 푸른 바다와 나머지 부분의 색 대비가 정말 눈이 즐거워요. 남성 중심적이었던 뉴욕 추상표현주의 전성기를 함께한 몇 안 되는 여성 작가라는 점도 눈에 밟히네요.

매년 여름을 보낸 메인주의 외딴섬 몬헤건이 후기 작품에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고 해요. 부모님이 미술뿐 아니라 댄스, 음악까지 다방면으로 지원해줬다고 하니, 이 풍부한 색채감이 어디서 왔는지 알 것 같아요.

 

마리나 페레즈 시마오 - 무제, 2021 · 캔버스에 유채, 160×200cm

팬데믹으로 이동이 막혔던 시기, 시마오는 그리워하던 브라질의 바다와 하늘을 화면에 불러왔어요. 원래는 법대를 다니면서도 미술을 놓지 않았던 사람인데, 그래서인지 그림에 지적인 엄격함과 자유로운 상상력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 같아요. 프리다 칼로의 화집을 보고 미술을 사랑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한 화면에 지평선을 여러 개 그려 넣어서, 실제 풍경 같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세계 같기도 한 몽환적인 느낌을 줘요. 격리된 스튜디오 안에서 창밖 빛의 변화만 보고 그렸다는 게 더 특별하게 느껴져요. 브라질에서 미술을 배운 뒤 파리로 유학까지 다녀왔다고 하니, 동서양 화풍이 자연스레 섞여 있는 것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쿠사마 야요이 - 인피니티 도트(AB), 2003 ·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2×130.5cm

끝없이 증식하는 물방울은 쿠사마가 어릴 적부터 봐온 환시에서 나온 이미지예요. 식탁보 무늬가 자꾸 번져 자신을 덮치는 것 같은 환시를 겪었다는데, 그걸 그림으로 옮기면서 공포를 극복하려고 했대요. 초기 뉴욕 시절엔 어둡고 단색이었던 물방울이 2000년대 들어 이렇게 원색으로 화려해진 게 특징이에요.

조지아 오키프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써서 미국행을 이룬 일화도 유명하죠. 세계적인 거장으로 발돋움한 이 시기 작품이라 원색을 과감하게 쓴 게 특징인데, 뉴욕 초기의 어둡고 강박적이었던 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예요.

 

윌렘 드 쿠닝 - 무제 XIX, 1984 · 캔버스에 유채, 203.2×177.8cm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이후에 그려진 작품이에요. 조수들이 캔버스를 준비하고 돌려주는 등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실제로 붓을 쥐고 색을 칠한 건 드 쿠닝 자신이었다는 게 1995년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전시를 통해 나중에 공식적으로 확인됐다고 해요.

기억은 점점 잃어가면서도 손끝의 감각만큼은 남아있었던 거죠. 부드럽게 흐르는 리본 같은 선이 오히려 더 자유로워 보여요. 원래 주택 페인트공으로 생계를 이어갔다는데, 그때 다뤘던 큰 붓의 감각이 훗날 추상표현주의의 자양분이 됐다고 하니 인생이 참 신기해요.

 

쿠사마 야요이 - 실버 인피니티 네트, 2014 ·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130cm

같은 쿠사마지만 이번엔 은색이에요. 2009년부터 정사각형 캔버스로 작업하던 시기의 작품인데, 은색 물감이 조명 각도와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다르게 반사돼서 그물망 패턴이 훨씬 더 신비롭고 우주적인 느낌을 줘요.

차갑고 서늘한데도 왠지 편안해지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앞서 본 인피니티 도트가 원색으로 환한 느낌이었다면, 이 작품은 은색 특유의 서늘함이 우주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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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형상의 부활

추상이 대중과 멀어지자, 작가들은 다시 구체적인 형상과 이야기를 화면으로 불러왔어요. 전쟁, 차별, 자본주의, 인종 문제 같은 메시지는 아무래도 사람의 몸과 구체적인 사물이 있어야 전달이 되니까요. 과거의 명화나 신화, 역사적 도상을 자유롭게 인용하고 패러디하는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에요. 이 섹션에서는 개인적인 서사와 유머, 풍자가 담긴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요.

 

힐러리 페시스 - J의 집 와인, 2020 · 캔버스에 아크릴릭, 193×162.6cm

팬데믹 시기, 페시스는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원래는 인터넷 이미지를 조합하는 추상 콜라주 작업을 했었는데,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면서 강렬한 햇빛에 감동해 이렇게 구상 회화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대요. 책이 쌓인 테이블 위 와인잔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따뜻하고 갖고 싶은 그림이 될 수 있구나 싶어요.

이 작품은 2022년 나온 작가 모노그래프의 표지로도 쓰였다고 하네요. 어릴 때 TV 프로그램을 따라 그리던 게 미술을 시작한 계기였다니, 저랑도 비슷한 시작이라 더 친근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낮엔 회사 다니고 밤과 주말에만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더 응원하게 되는 작품이에요.

 

조나단 가드너 - 빛의 통로, 2021 · 린넨에 유채, 170.1×182.8cm

피카소, 마티스, 루소까지 여러 거장의 화풍을 콜라주하듯 섞어낸 작품이에요. 시카고 이미지스트의 영향을 받은 가드너답게 인체 비율을 늘리거나 단순화해서 화면의 공간감을 완전히 눌러버리는데, 그래서 평면인지 입체인지 자꾸 헷갈리게 만드는 게 가드너 특유의 장난기 있는 스타일이에요.

이 작품은 파리에서 전시됐던 그림이라고 해요. 뉴욕에서 공부하다 시카고로 건너가 짐 너트라는 작가에게 영향을 받았다는데, 그래서인지 그림에 위트와 장난기가 가득해요.

 

아드리안 게니 - 담배를 피우는 자화상, 2015 · 캔버스에 유채, 230×160cm

루마니아의 독재 시절을 겪은 게니는 어느 날 우연히 파이 던지는 코미디 장면을 보고, 인간을 가장 잘 굴복시키는 방법이 수치심이라는 걸 깨달았대요. 그때부터 얼굴을 파이 맞은 것처럼 뭉개버리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해요.

붓 대신 나이프로 물감을 두껍게 얹어 긁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한다는데, 이 자화상도 자세히 보면 이목구비가 다 뒤엉켜 있는데, 그게 오히려 현대인의 불안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프랜시스 베이컨의 기괴함과 반 고흐의 격정적인 자화상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게니만의 방식으로 잘 녹여낸 것 같아요.

 

조지 콘도 - 경영진들과 그들의 아내들, 2011 · 린넨에 유채·아크릴릭 등, 177.8×152.4cm

정장 차림의 남성들 사이에 나체의 여성들을 배치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풍자한 작품이에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현대적으로 비튼 구도라고 하는데요. 인물들 얼굴에 불안, 탐욕, 광기 같은 여러 감정을 한꺼번에 담아낸 걸 콘도는 '심리적 입체주의'라고 불러요.

피카소가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담았다면, 콘도는 여러 감정을 한 화면에 담은 거죠. 콘도는 앤디 워홀의 팩토리에서 실크스크린 조수로 일했던 경험도 있대요. 대학에서 실기 대신 미술사를 공부했던 게, 오히려 렘브란트나 피카소 화풍을 자유롭게 갖다 쓰는 밑거름이 됐다고 하네요.

 

쿠사마 야요이 - 호박 [TWAQN], 2015 · 캔버스에 아크릴릭, 112×145.5cm

쿠사마에게 호박은 어릴 적부터 마음의 안정을 주던 존재예요. 집안이 종자, 묘목 농장을 했었다는데, 그때 접한 호박의 유머러스한 형태가 계속 마음에 남았대요.

이 작품은 특이하게 호박 세 개가 함께 등장하는 희귀한 구성인데, 대부분 호박 하나가 화면 중앙을 차지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라서 더 눈에 들어와요. 2017년 싱가폴 회고전에도 출품됐던 작품이라고 해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대표로 참여하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고 하니, 호박 하나로 이렇게까지 갈 수 있다는 게 대단해요.

 

쿠사마 야요이 - 호박, 1981 · 캔버스에 아크릴릭, 116.5×91cm

쿠사마가 호박을 본격적인 작업 소재로 삼기 시작한 시기의 작품이에요. 노랑과 검정의 강렬한 대비가 인상적인데, 이 시기 호박은 빨강, 초록 등 다양한 색으로도 그려져서 지금은 희귀하고 가치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대요.

쿠사마에겐 이 호박이 고통스러운 환각 증세 속에서도 위안을 주는 일종의 구원의 오브제이자 자화상 같은 의미를 갖는대요. 1977년 일본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한 뒤로 어릴 때 그렸던 호박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뭉클해요.

 

 

니콜라스 파티 - 풍경, 2016 · 캔버스에 소프트 파스텔, 260×89.9cm

피카소의 파스텔화에 반해서 손끝으로 문질러 그리기 시작한 파티예요. 10대 시절엔 그래피티를 그리다 경찰에 쫓기기도 했다는데, 그때 익힌 단순한 형태와 강렬한 색채 대비가 지금 화풍에도 그대로 남아있어요.

자녀 출산을 계기로 삶의 유한성을 느끼면서, 17세기 정물화의 바니타스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고도 해요. 사람 하나 없는 이 풍경은 마치 인류가 태어나기 전, 혹은 사라진 뒤의 지구처럼 고요하면서도 묘하게 긴장감이 흘러요.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사라져버리는 파스텔의 연약함도 이런 분위기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살보 - 프리마베라, 1997 · 캔버스에 유채, 150×200cm

이탈리아어로 '봄'이라는 뜻의 작품이에요. 개념미술로 이름을 알렸던 살보인데, 피카소가 죽은 1973년부터 갑자기 구상 회화로 완전히 돌아섰대요. 실험미술이 주류였던 시절에 오히려 회화로 돌아가는 게 더 강한 실험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노랑과 분홍 같은 화사한 색으로 봄의 생기를 동화처럼 그려냈어요. 라파엘로의 자화상을 보고 고전 회화에 매력을 느꼈다는 어린 시절 이야기도 이 화사한 색감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살보 - 우나 세라, 2004 · 캔버스에 유채, 189×139cm

'어느 저녁'이라는 뜻으로,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와 유럽, 이집트를 여행한 뒤 기억을 더듬어 그린 작품이에요. 여행 직후에 바로 그리지 않고 시간을 두고 기억의 잔상으로 작업하는 게 살보 스타일이라고 해요.

검은색을 안 썼는데도 어둠이 스스로 빛나는 것처럼 표현된 게 신기해요. 이국적인 고대 유적지 건축물과 불타는 듯한 저녁노을 색감이 만나서, 빛과 시간의 흐름이라는 주제를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것 같아요.

 

데이비드 호크니 - 더 많은 월드게이트 통나무, 2009년 10월 13일 · 캔버스에 유채, 91.5×122cm

고향 요크셔로 돌아온 호크니가 10년 가까이 그린 풍경화 시리즈 중 하나예요. 원래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했었는데, 사계절이 없는 그곳이 지루해져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풍경화 실험을 시작했다고 해요.

빨강과 초록의 강렬한 보색 대비 덕분에 평면인데도 평면 같지 않은 생생함이 느껴져요. 1959년 런던 왕립예술대학 시절부터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당당히 밝혔던 작가이기도 해요. 회화, 판화, 사진, 디지털 미디어까지 매체를 가리지 않고 오래도록 자신이 보는 세계를 평면 위에 담아온 작가라, 이 풍경화도 그런 오랜 실험의 결과물인 셈이에요.

 

이번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전시를 준비하면서 느낀 건,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정말 짧은 시간 안에 미술이 엄청나게 빠르게 변해왔다는 거예요. 상류층의 이상화된 아름다움을 그리던 도구에서, 색과 형태 자체를 탐구하는 순수 추상으로, 그리고 다시 개인의 파편적인 이야기까지 담아내는 지금의 모습으로요. 작품 하나하나를 볼 때 작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무슨 일을 겪었는지 함께 떠올려보면, 그림이 훨씬 더 깊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특히 쿠사마처럼 한 작가가 여러 섹션에 걸쳐 등장하는 경우도 있어서, 같은 작가가 시기별로 얼마나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지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어요. 시간 여유가 있으시면 순서대로 천천히, 그림 옆의 설명까지 같이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전체적으로 보면 I. 꿈의 산책에서는 델보와 샤갈의 몽환적인 작품 4점, II. 난해한 추상에서는 핼리, 드렉슬러, 시마오, 쿠사마, 드 쿠닝의 작품 6점, III. 형상의 부활에서는 페시스, 가드너, 게니, 콘도, 쿠사마, 론디노네, 파티, 살보, 호크니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요. 초현실주의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한자리에서 비교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인 것 같아요.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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