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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로랑생 전시회 관람후기 : 비극이 느껴지는...

a4b4 2026. 8. 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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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 마리 로랑생 회고전: 무지개 위의 춤' 전시회 관람후기 마지막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아름답고 독보적인 작품에 이끌려 방문했지만, 그녀의 비극적인 인생을 이해하고 작품을 접하니 감동보다는 슬픔이 가득한 전시회로 남게 되었습니다.

 

1. 마리 로랑생 회고전 개요

1) 마리 로랑생 회고전: 무지개 위의 춤
    Marie Laurencin : Dance above the Rainbow
2) 2026.04.10 – 2026.08.23 (매일 10:00 ~ 19:40)

3) 강남구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

 

이번 마리로랑생 전시회는 그녀의 사후 70주년이 되는 2026년, 유화와 판화, 드로잉 등 100여 점의 작품 4개의 섹션을 통해 마리 로랑생의 전 생애에 걸친 예술적 여정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전시회 전반부인 '1장 세탁선의 여인'과 '2장 잊혀진 여인' 섹션 소개합니다.

2. 인트로

마리 로랑생은 파리 몽마르트르의 '세탁선(Bateau-Lavoir)' 공동체에서 활동하며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남성 화가들이 형태를 분석적으로 해체하는 데 집중했다면, 그녀는 부드러운 곡선과 섬세한 파스텔 색조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 '로랑생 스타일'을 만들어냈습니다.
격변의 시대 속에서도 그녀는 우아하고 감각적인 화풍을 끝까지 지켜냈으며, 회화를 넘어 무대미술과 패션 디자인으로까지 세계를 확장했습니다. 당대의 지배적 예술 경향에 휩쓸리지 않고 내면의 평온함과 우아함을 화폭에 담아낸 마리 로랑생의 붓 끝에서 펼쳐지는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 비극적인 인생과 작품

저는 마리로랑생의 과거와 일생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이번 '마리 로랑생 회고전: 무지개 위의 춤' 전시회 방문 했는데요. 주말에는 도슨트 운영하지 않아 오디오가이드를 이용해서 작품 감상했습니다.

당시 파블로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작품활동을 하였지만...

 

가정의 문제, 결혼과 이혼, 세계대전 등 그녀의 일생이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 고통이 그녀의 작품에 녹여있다는 것을 알게되니, 작품이 다르게 보이네요. 이번 마리로랑생 전시회는 오디오가이드와 함께 감상하시는 것 적극 추천 드립니다.

 

| 자회상

첫 공간에는 마리로랑생의 자화상과 인물화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해당공간 이외에도 이번 전시회 곳곳에는 그녀의 자화상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마리 로랑생 자화상에서 그녀의 슬픔과 비극이 너무나도 잘 느껴지네요.

다른 작품보다도 자화상에 더 이끌리는 전시회가 되었네요. 자꾸 감성적으로 느껴지는 전시회가 되었다는...

 

안티 마리로랑생 시기에 대한 설명

03. 프롤로그 - 육식양의 탄생

마리 로랑생의 예술은 혼외자라는 출생 배경과 폐쇄적인 유년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부친의 방관과 경제적 지원은 그녀에게 남성 권위에 대한 위화감을 심어주었습니다. 학창 시절 '양'을 의도적으로 '육식동물'로 묘사한 행위는 사회적 규범과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저항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배경은 로랑생이 작품에서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 중심의 내밀한 감정 세계를 구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04년에서 1907년 사이, 로랑생은 '안티-마리 로랑생'이라 불리는 극심한 고뇌와 자기 부정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붉은색과 노란색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며 어두운 단색조를 사용해 치열하게 내면을 연구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나무판 양면에 거울 속 자신의 모습만을 반복해 그리던 그녀는, 부은 눈과 두꺼운 입술 등 자신의 결점을 오히려 대담하게 과장하며 억압적인 자아를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1830년

 

이비스와 살로메

 

 

마리 로랑생의 상징주의적인 판화작품들 먼저 만나보고요.

기대했던 회화와는 다른 작품들을 먼저 접하니 다소 당황스럽기도 하네요.

 

 

04. 1섹션. 세탁선의 여인 : 혁신의 물결 속에서

1907년, 뵝베르 아카데미 시절부터 그녀를 눈여겨보았던 전위적 미술상 클로비스 사고(Clovis Sagot)는 파리 라피트 거리 46번지 갤러리에서 그녀의 첫 전시회를 열어주었습니다. 이곳에서 파블로 피카소 역시 로랑생의 존재를 처음 발견하게 됩니다. 이후 로랑생은 친구 조르주 브라크에게 이끌려 세탁선에 들리게 되었고, 피카소의 소개로 그곳을 본격적으로 드나들게 됩니다.


'바토 라부아르'는 당시 파리에서 가장 활발한 예술가 공동체 중 하나로, 피카소를 비롯해 기욤 아폴리네르, 막스 자코브 등 당대의 예술가들이 모여 활동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로랑생이 동시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아방가르드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예술가'로 인식하게 된 로랑생은, 남성들의 시선에 머무르기보다 그들을 바라보는 주체로서 동료 예술가들을 자신의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 화병 속의 꽃

로랑생은 '화병 속의 꽃'을 통해 '앙데팡당전'에 데뷔하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야수파적 기법과 독특한 색채를 선보인 그녀의 작품은 당시 여성 예술가에 대한 편견을 깨고 동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시기 그녀는 피카소의 소개로 전위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를 만나게 됩니다. 사생아라는 공통된 태생적 배경과 정서적 결핍을 공유한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강렬한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자화상이 아닌 남성의 초상화 석 점...

 

아래 작품 제목은 '피카소의 초상' 입니다.

그녀 또한 입체파의 영향을 받아 작업한 것이 아닐지...

 

시인의 가족

| 사냥하는 다이아나 여신

보통 해당 제목의 조각 회화 작품들은 활과 화살을 들고 사슴을 전리품처럼 배치한 작품들이 대부분인데요. 마이아트 뮤지엄 마리 로랑생 회고전의 다이아나 여신에서는 사슴과 함께하는 그녀만의 해석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항상 마이아트뮤지엄에서는 전시 작가의 특별한 주제와 함께 작품이 모여있는 공간.

|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1913년, 로랑생의 삶에 깊은 상실이 찾아옵니다. 그녀에게 가장 큰 존재였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엄격한 보호자이자 거의 유일한 의지처였던 어머니와의 이별은 마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아폴리네르와의 이별과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이중의 상실은 그녀를 깊은 공허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으나,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예술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제 로랑생은 더 이상 누군가의 딸이나 뮤즈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 변화는 1913년의 작품 〈우아한 무도회〉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부드러운 핑크, 회녹색, 블루의 팔레트를 사용한 이 작품은 입체주의의 단단한 구조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색감과 유려한 분위기로 여성들만의 우아한 장면을 그려내며, 로랑생이 만들어낸 새로운 미적 세계를 보여줍니다.

 

| 첼로를 켜는 두 자매

1914년 초, 로랑생은 국제 화단에서 거장으로 인정받으며 명성의 정점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은 달랐습니다. 오랜 고투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이미 깊이 지쳐 있었고, 안정을 향한 절박한 갈망은 그녀를 예상치 못한 선택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녀가 선택한 인물은 뵝베르 아카데미 시절 동기이자 독일인 귀족 화가 오토 폰 바트옌이었습니다. 아폴리네르와의 관계가 엉킨 실타래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과 달리, 오토와의 관계는 매우 빠르게 전개되었습니다. 

로랑생은 결국 1914년 6월 22일, 파리 화단을 경악시킨 충동적인 결정으로 그와 결혼식을 올리며 법적으로 독일 국적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불과 며칠 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적국의 시민'이 된 로랑생은 스페인으로의 비극적인 망명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영광이 절정에 이르던 순간, 그녀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으로 휩쓸려 파리 시절의 화려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 가구가 딸린 렌트하우스

예술가로서의 성공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 로랑생의 사생활은 점차 균열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연인이었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강한 소유욕과 불안정한 감정으로 관계에 긴장을 더했고, 그의 보헤미안적 성향은 안정된 삶을 바랐던 로랑생의 어머니와도 끊임없이 충돌했습니다. 아폴리네르의 어머니 역시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1911년 8월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은 그들의 파국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폴리네르는 과거 비서였던 제리 피에레가 루브르에서 조각상을 훔쳤던 사건과 연루되어 장물 취득 및 도난 방조 혐의로 체포되고, 5일간의 수감 끝에 석방되었습니다. 수감의 공포는 극심한 피해망상, 통제 불능의 질투, 폭력적인 알코올 남용으로 변질되어 로랑생의 일상을 무너뜨리기 시작합니다. 가부장적 폭력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던 로랑생은 결국 1912년 여름 아폴리네르와의 긴 사랑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이별 후 아폴리네르가 남긴 무정한 시간과 상실의 탄식은 프랑스 현대 시의 불멸의 고전 '미라보 다리'가 되었습니다.

 

| 뾰족한 머리를 가진 여인의 초상화

Portrait of a Woman with a Pointed Head

| 마담 피카소

Madame Picasso

 

 

다시 마리 로랑생의 자화상

이 무표정한 표정과 눈빛은 정말로...

 

이 외에도 그녀의 자화상과 다양한 여인의 초상화들...

 

05. 2섹션. 잊혀진 여인 전쟁과 망명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시작된 로랑생의 망명 생활은, 개인의 선택과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맞물리며 만들어낸 비극이었습니다. 전쟁을 거부했던 남편 오토는 독일군 징집을 피했고, 프랑스 역시 적국 국민이 된 이들의 체류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스페인으로 향하게 되고, 파리에 남겨둔 아파트와 재산, 소중한 초기 작품들은 '적국인의 자산'으로 분류되어 모두 압류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아폴리네르와의 이별에 이어진 또 하나의 상실로, 이 사건은 로랑생이 파리에서 쌓아온 예술적 기반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전쟁 발발 후 로랑생은 남편 오토의 방탕함과 무관심 속에 망명지의 고립을 견뎌야 했습니다. 파리 지인들과 아폴리네르의 서신만이 유일한 위안이었을 뿐, 피카소를 비롯한 옛 동료들은 그녀를 '예술의 탈영병'이라 비난하며 차갑게 외면했습니다. 시대적 상황으로 인한 오해와 고립은 그녀에게 큰 상처를 남겼으나, 역설적으로 남성 중심의 입체주의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완성해 나가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 왕녀 (L'infante)

파리라는 예술적 기반을 잃은 로랑생에게, 마드리드에 모여드는 이방인들과의 교류는 고립 속에서 이어진 작은 연결고리였습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 마드리드 사교계로 로랑생을 이끌어준 세실리아 데 마드라조 후작 부인을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되며, 제목은 프라도 미술관에서 깊이 매료되었던 벨라스케스의 스페인 공주 초상화들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프라도 미술관은 로랑생이 매일같이 찾았으며, 벨라스케스의 절제된 빛과 엘 그레코의 신비로운 인체, 고야의 어두운 감정이 담긴 작품들이 있는 곳입니다. 파리 시절엔 입체주의가 형태를 분해하고 구성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 당시에는 내면을 응시하는 조용한 깊이를 보여줬습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이전의 밝고 부드러운 색감은 점차 사라지고, 화면은 차분한 회색 빛으로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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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려나무 아래의 젊은 여인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시댁의 지원이 끊기고 당국의 감시가 강화되자, 부부는 결국 남부의 항구 도시 말라가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그 당시 남부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눈부신 햇빛과 이국적인 풍경과는 달리, 로랑생의 내면은 점점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창백한 인물의 피부와 허공을 향한 시선은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도 위로받지 못했던 로랑생의 깊은 고독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거울에 비친 누드

로랑생의 내면적 긴장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화면 한쪽에 자리한 장식적인 틀은 비스듬히 앉아 거울을 들고 있는 나체의 여인을 둘러싸듯 압박하고 있습니다. 인물은 거울 속 자신을 응시하는 대신, 화면 밖 어딘가를 향해 공허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훗날 비평가 간바라 타이는 로랑생이 이 작품을 장롱 속에 숨겨두고 가장 아꼈다는 일화를 전했는데, 그만큼 이 작품이 그녀의 가장 정직하고도 아픈 내면을 담고 있습니다.


말라가에서의 숨 막히는 침잠은 1916년 4월 바르셀로나로 거처를 옮기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이 시기에 화면을 반복적으로 채우는 '격자무늬'가 핵심적인 특징으로 드러납니다. 파리 시절에는 단순한 장식 요소에 불과했던 이 패턴은, 망명이라는 경험을 거치며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로랑생의 정체성을 가두는 감옥의 창살이자, 물리적 자유를 박탈당한 상황과 끊임없이 감시받는 이방인의 삶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이 됩니다.

 

| 춤

옛 연인 아폴리네르의 사망 소식에 무너진 로랑생은 망명 생활의 슬픔을 담아 1919년 대작 '춤'을 완성했습니다. 남성이 배제된 이 화면에는 자신을 투영한 인물과 친구 니콜 그루를 은유한 인물 등 여성들만이 등장합니다. 특히 허공을 응시하는 인물과 고립을 상징하는 격자무늬 스카프는 망명지의 억압적 상황을 드러냅니다. '춤'은 상실 이후 남겨진 이들의 복합적인 감정과 내밀한 연대를 조명하며 로랑생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확고히 보여주는 대표작입니다.

 

이번 마이아트뮤지엄 마리 로랑생 회고전 대표 작품 중 하나. 그래도 나는 초상화가 더 좋다.

 

 

오늘 소개하는 마이아트 뮤지엄 '마리 로랑생 회고전: 무지개 위의 춤' 전시회에서 아쉬웠던 부분 중 하나.

작품 설명은 상당히 충실하게 제공되고 있는데, 이렇게 명제표가 작품옆이 아닌 공간 입구에 배치되어 있다. 사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읽어보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

| 고양이를 안은 P공주

전쟁 직후 로랑생은 독일 국적자라는 이유로 프랑스 자산을 몰수당하고 입국을 거부당하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만난 탁카마르 본 뷔하우젠의 지지 속에 그녀는 스스로를 '그림 그리는 기계'라 칭하며 오로지 창작에만 매달렸습니다. 이 시기의 집중적인 작업은 파리 미술 시장에서 재조명받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녀의 재기를 이끌었습니다. 작품 속 인물의 차분한 표정과 대비되는 억압적 구조는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예술가적 의지와 내면의 긴장감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 조각배

1920년 어렵게 파리를 방문했던 로랑생은 다시 돌아온 독일에서 남편 오토와의 회복 불가능한 관계를 확인하며 깊은 환멸을 느꼈습니다. 남편의 방탕함과 모멸적인 태도에 지친 그녀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국 1921년, 로랑생은 자신의 경제적 권리인 연금을 모두 포기하는 대가로 이혼에 합의했습니다. 이로써 그녀는 7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예술가로서 온전한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마리로랑생 회고전 4개 섹션 중 앞부분 1, 2섹션 소개를 마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섹션 3 무지개 위의 춤 : 파리에서의 전성기' '섹션4 장미와 연인 : 흔들리지 않는 세계' 작품 소개합니다.

 

 

삼성동 마이아트 뮤지엄 마리 로랑생 전시 티켓 할인, 도슨트, 전시장구성, 굿드, 도록, 도슨트, 오디오가이드 정보는 지난 포스팅 참고하세요.

 

마리 로랑생 회고전 : 무지개 위의 춤 할인, 굿즈, 도슨트 정보

마이아트뮤지엄 2026년 봄 전시 '마리 로랑생 회고전: 무지개 위의 춤' 관람후기입니다. 기대한 느낌과는 정 반대의 느낌을 받고 미술관을 나왔지만, 나름 매력있는 전시회 였네요. 오늘은 마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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