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열 전시회 물방울 & 회귀 @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열 전시회 관람후기 2부 입니다.
이번 전시회는 물방울 작가로 알려진 김창열의 작품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전시회로 3개의 전시관에서 4개의 섹션과 1개의 특별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김창열 전시회 3장 물방울과 4장 회귀 전시관 소개합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김창열 화백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03. 물방울
1971년 드디어 등장한 투명한 물방울은 우연이 아니라 긴 실험과 철학적 성찰 끝에 얻은 필연적 발견이었습니다. 어디서든 둥근 형태로 맺히는 물방울은 앵포르멜 시기 ‘구멍’에서 출발해 작가가 탐구해 온 구체의 조형 변주의 완성이었습니다.
마구간을 개조한 작업실에서 열악한 삶을 이어가며 그는 물방울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1973년 첫 개인전에서 물방울 연작을 발표하며 프랑스 미술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이후 국내외에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의 물방울은 현실적 묘사력을 지니면서도 실재와 환영의 경계를 넘나들며 극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 사이에 존재했습니다.
초기에는 처리하지 않은 캔버스, 모래, 나무 같은 거친 바탕 위에 에어스프레이로 물방울을 표현해 실제 표면에서 생겨난 듯 보이게 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얼룩 자국이 더해져 흔적을 강조했고, 1980년대 중반에는 회화적 표현과 콜라주 등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밤에 일어난 일
김창열은 표현주의 회화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조형 형식을 모색하던 중, 화면의 점들이 투명하다면 어떨까 하는 착상에 이릅니다. 그는 공중에 머물다 떨어지기 직전의 물방울을 떠올리며, 흰 바탕이나 검은 바탕 위에 물방울과 그림자의 관계를 실험적으로 그렸습니다.
실험을 거듭하던 어느 날, 재활용 캔버스를 말리는 과정에서 뒷면에 맺힌 물방울을 발견합니다. 그는 그 순간 물방울의 생명감과 조형적 가능성을 직관적으로 깨달으며, 점이 지닌 최고의 성취이자 조형적 결론을 확인했습니다. 마침내 평생 찾아온 조형 언어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곧 초기 대표작 ‹밤에 일어난 일›로 이어집니다. 어두운 바탕 위에 떠 있는 투명한 물방울은 마구간 작업실의 어슴푸레한 풍경을 반사하며 그의 회화 전환점을 상징했습니다. 이후 그는 평생 물방울이라는 조형 언어에 매달리며, 그 안에 존재와 상처, 침묵과 사유의 층위를 응축해 나갔습니다.
“내 물방울은 아기의 소변이자,
스님이 사찰마당에 부은 정화수다.”
김창열에게 물방울은 단순한 자연 이미지가 아니라 전쟁의 참상, 위로의 눈물, 정화수, 순진무구한 생명과 소멸을 담은 상징이었습니다. 그의 물방울은 존재를 묻는 독보적 조형 언어로 자리했습니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김창열 전시회 3번째 공간은 바로 그의 대표작인 물방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1973년 김창열의 첫 개인전이 열린 파리 놀 인터내셔널 갤러리는 고가구와 미술품을 함께 다루던 공간이었지만, 그의 물방울 연작은 이곳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작품은 시각적으로 초현실주의의 정서를 자아내면서도 개념적으로는 추상적 감각에 가깝게 다가와 프랑스 문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평론가이자 시인 알랭 보스케는 그의 전시에 주목하며 “물질을 재정의하고 정신성을 제시하는 최면력”을 지녔다고 평가했으며, '꽁바' 지면 한 면을 할애해 극찬했습니다.
전시를 찾은 인물도 주목할 만했습니다.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와 국민 여배우 까트린 드뇌브가 방문해, 그의 회화가 당시 프랑스 예술계에 던진 신선한 충격을 보여주었습니다.
그해 대표작들은 화면 전체를 채운 물방울의 강렬한 아우라와 사실적 묘사로 빛났습니다. 거친 캔버스 위의 물방울들은 각각 고유한 형태와 리듬을 지니며, 작가가 과거의 고통과 번민을 씻어내듯 새로운 창작의 길로 나아가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작업실이 생각나게 구성된 공간, 처음에 이곳에 비치된 작품은 소품으로 생각했지만...
물방울 SH87006 (1986)
시간이 지나며 김창열의 물방울은 회화적 실험을 넘어 정신적 차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물방울이 놓이는 배경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물방울 주변에 얼룩 자국이 등장해 흔적과 생성 과정을 드러냈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앵포르멜 회화의 두터운 마티에르와 문자·종이 콜라주를 시도하며 형식적으로 과감해졌고, 물방울의 존재감을 강화하기 위해 하이라이트와 그림자 효과도 강조했습니다.
'물방울 SH87006'은 이러한 실험을 집약한 작품입니다. 직사각형 화면은 거친 물질감과 영롱한 물방울이 대비되며 배치됩니다. 상단은 모델링 페이스트와 흑연으로 어두운 표면을 만들었고, 하단의 물방울은 두 겹으로 겹쳐진 듯한 잔상 효과와 길게 드리운 그림자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상단의 두터운 재질과 물방울의 투명성이 이루는 극적 대비는 화면에 독특한 긴장을 형성합니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장 고통스러울 때 물방울이 튀어나온 거야"
김창열의 피, 땀, 눈물...
정말 물방울로 많은 도전을 했다는 생각이...
국립현대미술관 김창열 개인전 3번째 섹션 메인홀을 지나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 갑니다.
회귀 & 물방울
회귀작품과 함께 반대편에는 물방울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세로가 긴 비례의 화폭에 단 하나의 커다란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상당히 인상깊은 작품입니다.
물방울 SH87032
그리고 어두운 전시장 맨 끝에 전시된 한 점의 작품
김창열 개인전 3번째 섹션이 끝나고 해당 공간을 나와 다음 전시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사인을 따라 이동하면 7전시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요.
이곳에서도 김창열 전시회 티켓확인이 있으니 꼭 챙기세요.
4. 회귀
1980년대 중반부터 김창열의 회화에 본격적으로 문자가 등장하는데요. 그는 신문지 위에 물방울을 그리며 글자와 이미지의 긴밀한 관계에 주목했고, 이는 천자문을 도입한 ‘회귀’ 연작으로 이어졌습니다. 천자문은 하늘 천, 땅 지로 시작하는 한문 교본이자 겹치는 글자가 없는 완결된 한시로, 김창열이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처음 배운 글이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천자문은 단순한 문자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드러내는 기호이자 유년의 기억을 불러오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습자지에 글자를 써내려가듯 화면을 천자문으로 빼곡히 채우며, 단정한 서체 위에 물방울을 얹거나 거친 종이에 문자를 흐리게 덧씌우기도 했습니다. 흔들리고 희미한 문자 표면 위의 물방울은 관람자에게 깊은 사유의 공간을 열어줍니다.
천자문이 세계 이해와 정체성 회복의 토대였다면, 물방울은 존재를 묻는 도구였습니다. 기억의 기호인 문자와 소멸을 예고하는 물방울이 결합한 ‘회귀’ 연작은 전통적 회화 문법과 사조를 넘어서는 독창적 조형 언어이자, 김창열이 이룩한 중요한 미학적 성취였습니다.
1970년대 중반 김창열은 신문지 위에 물방울을 그리며 문자와의 결합을 시도했지만, 신문지는 내구성이 약하고 크기가 작아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1980년대 중반부터는 캔버스에 직접 한자를 쓰고 그 위에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배운 익숙한 글씨였기에 여러 문자 중 한자를 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회귀’ 연작은 자신을 성장시킨 문화권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천자문을 겹쳐 쓰거나 화면을 가득 채우고, 글자 크기를 확대하거나 바탕에 색을 더하는 등 구성이 변화를 보였습니다.
이 시기의 한 작품은 네 개의 캔버스로 이루어진 대작으로, 음영이 다른 한자와 물방울이 함께 배치되었습니다. 작은 활자체로 천자문을 쓰던 이전과 달리 글자 크기를 확대하고, 날카로운 조형성을 가진 한자와 부드러운 물방울을 대조적으로 놓아 물방울의 특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표현되었습니다.
천자문과 물방울... 정말로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시도를...
작가의 작품 방식도 인고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화면을 가득 메운 천자문은 작가가 유년 시절 습자지 위에 글씨를 쓰던 기억을 환기합니다. 거친 종이에 덧씌운 문자는 형태가 흐려지고 지워지며, 그 위에 떠 있는 물방울은 감각과 사유가 교차하는 내면의 공간을 열어줍니다.
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색채입니다. 1990년대 중반 남프랑스 드라기냥에서 작업실을 마련한 그는 강렬한 햇빛과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색채를 본격적으로 탐구했습니다. 이 경험은 회화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었고, 화면은 점차 대형화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색과 재료의 물질감이 더욱 생생하고 밀도 있게 표현됩니다.
흔들리고 불분명한 문자 표면 위에서도 맑고 생동하는 물방울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존재의 본질을 묻습니다. 노년기의 김창열에게 물방울은 삶과 예술을 넘나드는 실존적 동반자였고, 동시에 그의 궤적과 감정을 응축한 형상이자 회화를 통해 세계를 응시하는 고유한 방식이었습니다.
물방울과 회귀작품관련 조각품도 있네요.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김창열 전시회 4번째섹션 회귀의 두 번째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마주보는 작품
해당 공간으로 이동하면 붉고 강렬한 두 점의 작품이 마주보고 있는데요.
기존에 접하던 김창열 그림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번 김창영 전시회는 마주보는 두 작품, 1965년 '제사'와 1991년 '회귀'로 끝맺습니다. 두 작품은 김창열 예술의 근원적 주제와 미학적 성취를 응축한 대표작입니다.
이 두 작품은 물방울의 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김창열 예술 속 상흔과의 대화를 드러냅니다. 물방울은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눈물이자 핏물, 상처를 씻는 정화수이자 인간의 비루한 분비물이었고, 결국 집착과 감정을 비워내 무(無)의 상태로 향합니다. ‘회귀’ 연작은 상처를 응시하고 붓질로 꿰매는 애도의 행위였습니다. 청년의 고통을 노년이 위로하듯, 두 작품은 조용히 마주 서서 인간적 고뇌와 깊은 사유를 관객에게 전합니다.
청년 김창열은 전쟁의 상흔을 안고 새로운 예술과 구원을 갈망했으며, 노년의 그는 삶의 무게와 침묵 속에서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제사›에는 울부짖는 얼굴 같은 형상과 물방울을 예고하는 원형의 구멍이 나타나고, 26년 뒤의 ‹회귀›에서는 지워진 글자 위에 물방울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습니다.
앞에서 김창열 회귀연작 전에 신문에 물방울 작업을 시도했다고 언급했는데요. 이번 전시회 4부 마지막 공간에 신문지에 작업한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만났던 김창열 작품의 기원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
전시장 마지막에는 영상으로 작가와 작품세계를 만나볼 수 있고요.
전시장 출구에는 김창열 작가의 연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슈 구뜨, 김창열
이어서 한 층 올라가 8전시실에 방문하면 '작가의 방 무슈 구뜨 도, 김창열' 전시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은 작가의 여러 물방울 작품은 물론 스케치 등 작가의 작품기록과 함께 편지 등 그의 모든것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창열 개인전 마지막 공간인 '무슈 구뜨, 김창열' 소개는 아래 포스팅 참고하세요.
작가의 방 '무슈 구뜨 도, 김창열' 전시회 @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열 전시회 마지막 공간 '무슈 구뜨 도, 김창열' 8전시실 소개입니다.해당공간은 이번 전시회의 별책부록 같은 곳이라고 하는데요. 작가의 작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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